동천(冬天) – 689화
천마동으로…… 2.
“음!”
동천은 한창 땅을 파고 굴을 파는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려 보냈다.
“으음!”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심기 불편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으으음!”
다시 한번 더 심한 짓거리를 하자 근처에서 보다 못한 암흑마교 측의 감독관 중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약소전주 님,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죽립을 쓰고 있는 상태인 동천은 고개를 약간 치켜올린 후 내리까는 눈빛으로 상대에게 대답했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네. 그저 조금 따분해서 그랬을 따름이네. 정말 조금이지. 음음!”
앞에 조금 말을 돌리긴 했지만 결론은 무지하게 따분하다는 이야기였다.
재수 없게 근처에 있다가 마지못해 말을 걸었던 사내는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심심하다는 소악마의 이야기에 난감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비슷한 지위였다면 놀러 온 것도 아니거늘 그 무슨 소리냐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줬을 터인데, 눈앞의 상대는 애당초 말이 통하지 않는 망나니였던 것이다.
“아, 그러셨군요.”
사내가 얼버무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동천이 대뜸 물었다.
“그게 끝인가?”
“예?”
“이 몸이 조금 심심하시다고까지 말씀을 드렸는데, 고작 ‘아, 그러셨군요’ 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려고 했냐는 말일세.”
위기감을 느낀 사내는 바로 분위기를 맞춰 주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시면 저쪽 막사에 가셔서 차라도 한 잔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천은 인간들이 개나 소나 더럽게 차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만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차를 내왔으니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차 말고, 달콤하게 절인 과일이나 방금 요리한 고기는 없는가?”
사내는 잠시 머리를 굴린 후 대답했다.
“아직 식전이라 준비된 것은 없겠지만 숙수들에게 따로 이야기를 하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 그럼 잠시 쉬기로 할 터이니 자네는 여기에서 계속 수고를 하시게나.”
자기는 먹으러 갈 테니, 자신의 몫까지 감시를 해달라는 말이었다.
사내는 차라리 그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여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옛, 약소전주 님! 천천히 드시고 소화까지 다 시키신 후 오십시오!”
동천은 뭘 좀 아는 기특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닐 터이니 조금만 수고를 해주시게.”
감독관들의 전용 막사는 발굴 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상당히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다들 한 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럴 때가 있었기에 사람 수에 맞추어 크게 지어 놓은 것이었다.
“쉬는 인간들은 당최 없네? 쳇, 일 벌레들 같으니라고.”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 점심이 되려면 아직 1시진은 있어야 했고 다들 감시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어서 식사 때 외에는 감독관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거기에다 식사를 한다고 해도 각 파의 감독관들이 절반씩 교대를 하며 움직이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감독관들 중 한가한 사람은 아마도 동천이 유일할 듯 싶었다.
“아! 걔는 왜 공사다망(公私多忙)하신 이 몸을 별 쓰잘데기 없는 일에 투입시켜서 생고생을 하시게 만드는 거지?”
차마 누군가 들을까봐 사정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씨부렁거린 동천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러고 있는 것이 벌써 사흘 째.
처음에는 땅 파고 굴 파는 거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켜봤었지만 어디 동천의 성격에 그 따위 일에 계속 흥미를 느낄 수나 있겠는가?
당연히 한나절 정도가 지나자 좀이 쑤시기 시작했고, 보는 사람들의 눈깔이 있어서 마음 편히 놀지도 못했다.
그러다 이런 좋은(?) 장소를 발견해서 바로 어제부터 빈둥거리는 실정이었고 말이다.
“얌냠, 발굴 속도가 빨라서 곧 드러나긴 할 것 같은데 그 이후에 몰려들 잔챙이들의 문제는 어떻게 한다?”
바로 준비된 따끈따끈한 돼지고기를 집어먹으며 동천은 그렇게 고민했다.
동천의 입장에서는 별로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간식을 먹어도 좀 더 고상하게 먹어보자는 취지에서 그저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일 따름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어? 벌써 다 먹었나? 우씨, 이놈의 요리사 새끼는 사람을 물로 보나. 뭘 이 따위로 적게 만들어서 드시라고 준거야?”
요리사는 시킨 인간의 먹성을 생각해서 3인분을 만들어 준 것이었는데 동천에게는 그것도 모자란 듯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근처의 인부를 시켜서 추가로 2인분을 더 먹고 나서야 배를 두들겼고, 그 후로 딱히 할 일이 없어 왔다갔다하다가 저녁이 되자 거처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나흘이 더 지난 어느 날 오후, 동천은 심부름꾼에게 하나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약소전주 님, 속히 돌아가 보셔야 할 듯 싶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간식 아닌 간식을 먹고 있었던 동천은 아직 반도 다 안 먹었는데 본진으로 돌아오라고 하자 양 눈썹을 역 팔자로 만들며 짜증스럽게 물었다.
“뭐라? 이것들이 간이 부었나. 이 몸으로 말씀드리자면 아가씨께서 직접 일을 부탁하신 몸인데, 감히 뼈빠지게 열심히 일하고 계신 이 몸에게 일하는 중간에 오라고 해? 우씨, 누구야? 도대체 어떤 자식이 오라 마라야?”
동천의 위세에 찔끔한 심부름꾼은 대답했다.
“저기, 그 어떤 자식이 아가씨인데요.”
“뭐? 그게…, 음! 안 들리는군. 자네는 다시 한번 말해보겠는가?”
심부름꾼은 사가지가 없는 약소전주 녀석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갑자기 없던 용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저 인간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하인들과 신분이 낮은 무사들이 고역을 치렀는가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어디 골탕먹어 보라는 심보로 처음과는 달리 당당하고 힘차게 말했다.
“예! 그 어떤 자식이 사정화 아가씨입니다!”
“이보게. 자네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묻는 데…….”
“그 어떤 자식이 사정화 아가씨입니다!”
간 크게도 동천의 말까지 자르고 들어간 심부름꾼의 두 눈은 흥분과 두려움으로 이성이 마비되었는지 광기(狂氣)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심부름꾼의 행동에 입을 쩍 벌린 동천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자, 자네 이 미친 자식이 하는 말을 들었는가?”
“으음, 감히! 예, 들었습니다!”
대답은 심부름꾼이 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동천의 물음도 심부름꾼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들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심부름꾼은 싸늘해진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감독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그의 귓가에서는 환영인양 ‘싸아악’ 핏기가 가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나, 나리! 오해입니다요!”
이내 정신을 차린 심부름꾼은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순간에 감독관이 들어올 것이 뭐란 말인가.
바로 그때 그의 등을 사정없이 걷어차는 발이 있었다.
퍼억!
“꽥?”
“오해? 너 같음 그런 엄청난 소리를 들었는데, 딸랑 오해라고 한마디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 하냐? 이런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동천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심부름꾼은 제대로 맞았는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억울함에 눈물을 줄줄 흘렸지만 동천은 그에게 시간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지만 말이다.
“이보게 정 감독관!”
“예, 약소전주님!”
“이 자식을 끌고 가서 정신 좀 차리게 패주고 이번 발굴단 노역에 참가시키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불가합니다! 아가씨께서는 곧 교주가 되실 분! 그런 분을 한낱 심부름꾼이 모독했으니 즉결처형이 마땅한 줄 압니다!”
동천은 확고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감독관을 흐뭇하게 바라본 뒤,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심부름꾼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내 자네의 말을 충분히 공감하네. 하지만 이런 놈은 즉결처형이 되려 도와주는 것일세. 내 말은 이 자식을 이번 발굴단의 노역에 참가시킨 후 평생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일세.”
“헉?”
즉결처형보다 그게 더 충격적이었는지 꽉 막혔다고 생각했던 심부름꾼의 목청이 바로 뚫리는 인체의 신비를 보여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감독관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렇군요. 하하, 지당하신 판결이십니다. 이놈! 어서 가자! 일단 맞고 시작해야겠으니!”
“흑흑, 나리! 오해입니다요! 약소전주님! 뭐라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동천은 그의 부탁대로 말했다.
“꺼져.”
“으아악! 악! 오, 오해, 살려주유∼!”
끌려나간 밖에서는 매타작 소리와 함께 자지러지는 심부름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구경거리를 놓칠 리 만무했던 동천은 열심히(?) 맞고 있는 심부름꾼의 모습에 안도하며 역시 자신의 총명함은 천하제일이라고 스스로 칭송했다.
“큭큭, 그러게 왜 까불어 자식아. 퉤, 까불고 있어!”
다소 불량스럽게 침을 뱉고 난 그는 뒤늦게 아가씨께서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그런 거야 가서 알아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곤 안내자를 붙여 본진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뒤 의외로 소식통인 소연을 찾아가 본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물었다.
그녀가 알면 대외적인 일이고, 모른다면 내부적인 일이거나 사정화의 개인적인 일로 자신을 찾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마! 발굴에 참여 중이신 주인님도 부르셨어요?”
“그래. 니 말투를 보아하니 확실히 일은 벌어진 것 같은데, 뭔 일이냐?”
소연은 대답했다.
“그게요. 소교주 님과 만독문의 소문주 님께서 호위대를 대동하시고는 함께 오셨어요.”
“컥! 뭐시여? 그 개새끼가?”
“으아, 조용 좀 하세요. 그러다가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기겁을 한 소연이 주제넘게 동천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런 행동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또 그만큼 가까웠으므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실제로 동천은 입을 틀어막은 행위가 아니라 그저 답답해서 소연의 손을 뿌리쳤다.
“읍, 으프! 놔 임마! 에휴, 입 찜찜해. 너 손 안 닦았지!”
엄청난 모욕적인 발언에 얼굴이 달아 오른 소연은 소리쳤다.
“너무하세요! 제가 얼마나 손을 깨끗이 닦는데!”
“이건 심심하면 너무하대. 아아, 알았으니까 그만 하자. 나 아가씨께 가봐야 하니까.”
아무리 소연이 동천과 가깝다지만 하녀는 하녀였다.
제일 꼭대기가 소집한 명령을 그녀가 뒤집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으으, 알았어요. 대신 조심해서 다녀오시고 오시면 꼭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셔야 해요? 알았죠?”
심심해서 그런지 몰라도 소연은 그 날에 있었던 일들을 물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동천은 귀찮아서 건성 건성으로 대답해주곤 했는데 그럼에도 즐겁게 들어주었고 그러다 보면 동천도 신이 나서 거짓말 반 진담 반으로 부풀려서 그 날의 일들을 들려주었다.
신기하게도 소연은 동천의 거짓말들을 재깍재깍 걸러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아서 동천은 그것을 몰랐다.
여하튼 동천은 어김없이 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알긴 개뿔이 아냐? 시끄럽고, 니 막사에서 빈둥거리는 화정이랑 연화나 잘 가르쳐. 그럼 갔다 올게.”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에는 말해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소연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예, 주인님. 다녀오세요!”
“오냐.”
팔자 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간 동천은 누구에게 물어 볼 것도 없이 잘 보이는 사정화의 막사로 찾아갔다.
그녀의 막사 앞에는 소교주가 호위대를 이끌고 왔다더니 칼날 같이 정렬한 고수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천의 앞에서는 기분 나쁜 존재들일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동천은 무시하는 척 걸어가다가 눈이 부리부리한 한 명을 찍어서 시비를 걸었다.
“자네는 뭘 그렇게 쳐다보는가. 이 몸이 띠꺼운가?”
그가 그렇게 시비를 걸자 이미 많이 겪어봤던 사정화의 호위대들은 한결 같이 생각했다.
‘저 자식 또 저런다.’
‘저것도 병이여.’
그런 생각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사라진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던 동천은 목표물에만 정신을 집중했고 졸지에 목표물이 된 사내는 난감했지만 예의를 갖추어 대답했다.
“제 눈빛이 강하다는 지적을 평소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이셨다면 송구할 따름입니다.”
제대로 된 사과에 동천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지만 자신도 마침 바쁜 터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음, 그랬구먼. 알면 앞으론 눈 좀 깔게.”
“예, 약소전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