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30화
“아아! 냠냠. 꿀꺽! 아아! 냠냠쩝쩝. 꿀꺽! 아아!”
아기 새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듯 입을 벌리고 뼈를 발라낸 생선살을 받아먹기에 여념이 없었던 동천은 편하게 눈을 감으며 생선을 씹어 먹다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입은 벌리고 있는데 더 이상의 생선이 입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 먹었어요?”
동천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소홍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바닥에 쌓인 수북한 생선뼈들을 힐끗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나 보네? 더 잡아올까?”
동천은 조금이지만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뇨, 이제 됐어요. 생각 같아서는 더 먹고 싶은데 환자니까 소식을 해야죠.”
머엉!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 강소홍은 급히 정신을 차리곤 바닥의 생선뼈들을 한아름 모아 내다버리러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한 동천은 잇새에 낀 이물질을 빼내려는지 츱츱거리며 짜증을 냈다.
“어우 씨! 줄라면 좀 한꺼번에 잡아서 주던가. 무슨 개미 똥구녕도 아니고 조금 잡아서 구워 오고, 또 조금 잡아서 구워 들고 오고 그런댜? 아, 젠장. 이러다 입맛만 버리게 생겼네.”
성공적으로 공청석유를 활용한 동천은 뼈까지는 완벽히 회복된 상태였지만 그곳에 너무 많은 공청석유를 쏟아 붓다 보니, 다른 곳에 활용해야 할 공청석유의 힘이 모자라는 바람에 하단전의 주위까지는 매끄럽게 회복을 시켰지만 나머지는 겨우겨우 전체적으로 뒤틀리고 엇나간 부분들만 바로 잡아놓은 상태였다. 일종의 부실공사를 한 셈이었다.
‘소홍이 걔는 주려면 다 줄 것이지 쪼잔하게 반이 뭐야, 반이? 어차피 지께 내 거고 내께 내 거인데 말이지.’
그녀가 들으면 더 안 주고 버틸 말만 골라서 씨부렁거린 동천은 갑자기 천마동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꼭 죽어줘야 할 냉현은 제발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혈각주와 요림주는 나름대로 친분이 각별했기에 살아 있기를 바랬다. 그 와중에 자신을 이곳에 떨어트린 연주신군이 떠올라, 그 신발인지 신군인지 하는 놈들이 모두 뒈지기를 기도한 동천은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그나저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이것들은 뭐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름과 사람의 얼굴. 그리고 산세와 지명들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떠올랐다. 더욱 이상한 것은 떠오르는 기억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고 언제 한번 봤던 사람이거나 가봤던 곳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 현상은 상단전을 운기할 때 더욱 도드라졌는데 그럴 때마다 무언가 섬뜩하여 상단전의 운기를 중단하곤 했다.
‘이거 상단전이 뚫린 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도 당연히 뚫린 게 좋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짜증이 치밀었던 것이다.
“동처어어언!”
안 그래도 짜증나는 생각들을 떨치고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려던 그때 화정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라오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천은 ‘쟤 또 신나는 일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글거리는 그녀의 입가에 검댕이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너 또 생선 구워먹고 왔냐?”
화정이는 깜짝 놀랐다.
“어? 동천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벌써 3번 째. 동천도 대단했지만 그녀도 강적이었다.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고파지는 한창 성장기의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처자가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는지 먹고 돌아서면 다시 손을 쪽쪽 빨고 있고, 또 먹고 돌아서면 슬슬 눈치를 보며 ‘배 안고파?’ 라는 말이나 하고 있으니, 어찌 동천이라고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동천은 그녀가 3번 나누어 먹을 것을 한번에 다 먹은 상태였지만 말이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다 이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어 네가 하는 짓을……,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화정아, 너 정말 아까 이 몸이 속으로 생각하던 목소리가 들렸어?”
화정이는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는 부분까지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흐르자 순간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뭐가? 동천이 하늘에서 굽어보시는데 속으로 생각하던 목소리가 들렸다고?”
“뭔 소리를 하는 겨.”
“아냐? 우웅, 그럼 나도 모르는데.”
너무 불쌍하게 웅얼거려서 혼내줄 마음조차 사라진 동천은 중간에 말을 바꾼 자신의 잘못도 있었으므로 일단 손만 들고 벌을 서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말야. 아까 이 몸이 속으로 화를 내고 계시는데 니가 다 들렸다고 했잖아. 전음으로 보내준 것도 아닌데. 기억 안나? 뭐 기억 안 나면 계속 그러고 있고.”
동천에게 잠시 놀러 왔다가 다시 생선을 잡아 구워먹으러 가야 했던 화정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끙끙거리며 기억을 반추했다. 역시, 목표가 있으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인지 화정이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아? 그거? 생각났어, 동천! 그러니까 그때 동천이 직접 말해준 거는 아닌데 이상하게 생생히 들려오면서 귓가로 울리는 것도 아닌, 그저 평상시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또 보니 말하지는 않았는데 말해주는 것처럼 말을 하더라고.”
“이게 장난하나…….”
손들고 벌서는 것에서 엎드려 뻗쳐로 난이도가 높아진 화정이는 다시 설명해보라는 주인님의 요구에 징징거리면서 아까와 같은 이야기만을 해주었다. 사실 그녀의 어휘력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든 현상이었는데 동천이 그것을 억지로 시키다 보니 그렇게 밖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던 것을 동천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동천이 먼저 포기하고 나섰다.
“아아, 됐으니까. 확인도 해볼 겸, 그때 이 몸이 하셨던 말씀을 대충이나마 떠올려서 말해봐.”
그건 자신이 있었는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자세까지 난이도가 변경되었던 화정이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으응,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먹여주려고 했는데 알아서 몸을 회복하라는 거냐는 둥, 나는 착하신 분인데 화를 내게 만든다는 둥, 그런 말은 옆에 있는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며 화를 내는 둥……. 아, 여기까지구나. 이렇게 말했어, 동천. 이거 맞지? 그지?”
틀림없는 진실이자 깜짝 놀란 동천은 그녀의 위치를 원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산발된 그녀의 머리가 좀 괴기스러워서 정돈할 약간의 시간을 내준 동천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거 참. 틀림없이 이 몸이 모르는 무언가가 발동한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원리로 발동한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때 화정이가 한줄기 빛을 내려주었다.
“저기, 동천. 나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돼?”
눈을 반짝인 동천은 바로 접대용 미소를 보이며 그녀를 부드럽게 대했다.
“하하, 물론이지. 뭐 의심나는 거라도 있어? 있으면 기탄 없이 말해봐.”
그 모습에 자신을 얻었던지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말했다.
“그러니까 있잖아. 나 생선 먹으러 가도 돼?”
“…….”
그녀가 내려준 한줄기 빛은 바로 소멸되어 버렸다. 잠시 후 석실의 내부에서 화정이의 잘못했다는 울먹임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창 생선을 구워 놓고 기다리다 못해 안으로 들어온 강소홍은 깜짝 놀라 석실 내부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머리를 바닥에 박고 양손을 뒷짐진 채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화정이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아니, 너 왜 이러고 있었던 거니? 동천, 이게 무슨 짓이야!”
괜히 멋쩍어진 동천은 궁색한 변명을 했다.
“쟤가 주인인 이 몸을 가지고 놀잖아요. 그래서 기합을 좀 줬어요.”
동천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합을 줄 만한 일이었지만 어디 보는 이의 입장이 똑같겠는가? 강소홍은 주인이라고 화정이를 함부로 대하는 동천의 행동에 화를 내며 한참동안 설교했고 동천은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재빨리 합의를 보았다.
“아참, 이곳에 비급들도 있었다고 했죠?”
강소홍은 동천이 화제를 돌리고자 하는 노력이 빤히 보였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화정이의 주인이고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닌 기합만 준 것이지 않은가. 또한, 그가 화정이를 혹사시키는 무정한 주인도 아니었고(?) 말이다. 아까는 화정이를 너무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서 화를 냈던 것인데, 생각해보니 너무 나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 그녀였다.
“맞아. 구대문파의 비전절기부터 시작해서 한때 절대자라고 소문이 났던 무인들의 무공까지 모아져 있더라고.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았으니까 다 낫거든 살펴보도록 해.”
‘이 나이에 내가 가리?’
그럼 그 나이에 그가 가야지 누가 간다는 말인가. 괜히 자존심상 가져와서 보여달라고 하기가 좀 그랬던 동천은 화정이를 시켜도 될 문제였지만 은근히 오기가 생겨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회복을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하여, 양해를 구하고 다시 운기요상에 들어간 그는 갑자기 무언가에 생각이 미치자 운기를 멈추고 화정이가 구운 생선을 다 먹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녀는 동천에게 기합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새 잊어버렸는지 다 먹고 나자 맑게 웃으며 금세 돌아왔다.
“동처어어언!”
“오냐, 화정아. 너 마침 잘 왔다.”
“와아! 나 기다렸어? 왜?”
동천은 같이 돌아온 강소홍이 보이자 정중하게 화정이와 자신이 함께 비전의 요상법을 행하고자 하니, 다른 석실로 가주십사 양해를 구했다. 이때 그녀는 화정이까지 필요하다고 하자 순간 음양대법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눈치 100단인 동천이 먼저 음양대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자 안심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쳇, 벌써부터 마누라 행세를 하려고 하다니. 화정이는 언젠가 이 몸의 첩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벌써부터 투기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에잉~!’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지 동천은 화정이를 거리낌 없이 첩의 후보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혼자 남은 화정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자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말했다.
“화정아, 너 내공심법 알고 있지?”
화정이는 주인님이 갑작스러운 것을 물었음에도 의문보다는 대답을 먼저 생각했다.
“내공심법? 응, 검법에도 하나 있고 소연이 가르쳐준 것도 하나 있어. 그건 왜?”
잘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물었다.
“어느 쪽이 더 좋아?”
절기들의 우위를 비교하자니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던지 화정이는 어지간하면 찡그리지 않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우웅, 그게. 기본적으로는 검법의 내공심법이 더 빠르게 힘을 옮겨줘서 그게 더 좋아 보이는데, 내가 즐겨 쓰는 무공은 소연이 가르쳐준 심법이야. 내가 지닌 힘과 잘 맞더라고.”
아마도 절기로는 옥로무녀검법(玉露巫女劍法) 상의 내공심법 편이 더 뛰어났을 텐데, 소연이 본의 아니게 가르쳐 준 꼴이 된 내공심법은 만독문의 최고 당주였던 민소희(旼少希)의 절기였기에 인면지주의 힘을 소유한 화정이로서는 같은 독(毒) 계열의 무공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편했던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좋았어! 그럼 넌 나하고 같이 운공을 시작할 거니까 그때 소연이 가르쳐 준 내공심법을 운기하도록 해. 그럴 수 있지?”
‘응!’ 하고 대답해준 화정이는 갑자기 흥미가 동한 얼굴이 되어 마구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와, 재밌겠다! 나나, 내공심법 그거 심심하면 가끔 혼자서 해봤는데 재미없어서 금방 관뒀어. 헤헤, 근데 동천이랑 둘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언제 하는 거야? 지금?”
“그래, 맞아. 그보다 먼저 이 몸을 부축해서 천천히 일으켜줄래? 말 그대로 천천히 이니까 생각 없이 일으켜주면 그땐 아주 혼난다, 너.”
“응, 동천. 조심해서 천천히 이지?”
자신 있게 말한 화정이는 동천이 다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그의 상체를 끌어올려 주었다.
그렇다 해도 기본적으로 손상된 근육들을 사용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을 수반했고, 이를 악문 동천은 ‘끄응!’ 하는 신음소리를 낸 뒤 벌써부터 땀이 맺히기 시작한 등골을 감내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화정이의 손을 맞잡았다.
“크윽! 손바닥이 확실하게 붙어 있어야 하니까 니가 손을 가슴부위까지 들어올려봐. 윽? 처, 천천히! 후우우. 좋아, 됐어. 이제부터 시작할 테니까 행여나 이 몸의 내공이 너에게 밀려들어가거나 반대로 네 내공이 이 몸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 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흐름에 맡기도록 해. 알았지? 모든 것은 이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 동천. 근데 나 이상하게 기대가 되어서 가슴이 뛰는데 그래도 되지?”
“그럼 뛰는 걸 멈추리?”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 짜증을 낸 동천은 중요한 순간이기에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난 그는 천천히 귀의흡수신공을 시전 했고, 우선 가볍게 소주천을 한 뒤 몸의 고통을 줄였다.
그제야 한시름을 놓은 동천은 진기의 흐름을 이동시켜 결코 조급하지 않게 화정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맴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진입할 듯 말 듯 하며 약올리듯 그녀의 손까지 진기를 주입한 동천은 어느 순간 화정이의 진기와 자신의 진기가 천천히 어우러지기 시작하자 내심 환호성을 지르며 전진을 시도했다.
그렇게 무리 없이 그녀의 팔을 타고 흘러 들어간 동천의 진기는 마치 바닷물과 합류한 강물의 지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고 하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 뒤 잠시 대기했다.
“화정아, 네가 보유한 내공이 너무 거대해서 이 몸이 더 진입을 시도하면 내공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반대로 네가 이 몸 쪽으로 진기를 흘려보내 줘야겠거든? 할 수 있지?”
화정이는 대답을 하고자 입을 살짝 벌렸다가 무언가 뜻대로 안 되는지 오물거렸다. 놀란 동천은 서둘러 제지했다.
“야! 넌 입 열지마! 후우, 십년 감수했네. 네가 내공이 엄청난 건 인정하는데 네 말대로 운기조식을 몇 번이나 해봤다고 입을 열려고 그러냐? 그런 것도 다 몸의 세맥들까지 지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거야. 억지로 말하려고 하면……, 어? 지배?”
지배라는 단어를 무심결에 말하고 보았는데, 예사로 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동천의 예감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당장 자신에게 밀려드는 화정이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귀의흡수신공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그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좋았어. 잘 하네? 하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더 이상 내공을 흘려 보내주지 말고 너와 내 기운이 하나가 되어 네 몸과 내 몸 또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봐. 으음! 그래. 잘 하는데?”
일체화가 고조될수록 쌍방 간에 느끼게 되는 쾌감의 고조 또한 일치했다. 동천은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야릇한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서 되레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화정이는 원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체질인지라 발갛게 달아올라 열락(悅樂)에 물든 그녀의 달뜬 표정은 동천을 더욱 흥분시키게 만들어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우씨! 나, 나, 안 봐!”
처음 멋모르고 강소홍과 운기요상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 서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기요상을 하긴 처음이었던 동천은 의외로 이런 경험 쪽으로는 약했는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안면에 철판 깔고 히히거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천진난만한 화정이를 데리고 이러고 있자니 어쩐지 자신이 변태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을 위한 운기요상이 아니라 몸의 치유를 위한 대법이었으므로 동천은 그나마 위안을 가졌다. 그래봤자 그 위안은 곧 동천의 이상야릇한 신음소리에 먹혀버렸지만 말이다.
“읍! 으읍! 아이구야. 아으으으! 흐미이이~! 하늘님, 이러시면! 아윽?”
이렇게 말이다.
“동천.”
“…….”
“아이, 동처언!”
“…….”
“동처어어어어!”
“그만해라.”
“응.”
“…….”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거센 훈풍을 몰아치게 한 첫 번째 운기요상이 끝난 후 효과가 있자 두 번째까지 시도한 동천은 돌연 그만 하자고 말했다.
그라고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뿐이지 성관계와 비견될 정도의 쾌감이 싫겠는가 만은, 몸까지 회복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뿌리친 이유는 어디까지나 화정이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야 멋모르고 만지는 느낌이 좋아서 잘 때 가슴에 손을 넣고 잤다지만 지금은 알 거 다 알고 있는 시기였던 만큼, 괜히 천진난만한 화정이에게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어 스스로가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이다.
“저기 동천. 우리 그거 또 하자. 응? 응응?”
“하긴 뭘 해. 어여 가서 자.”
어지간해서는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번만큼은 후회가 되었다. 막말로 그녀가 무엇을 알겠는가. 지금도 그 색다른 맛에 도취되어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르는 그녀가 말이다.
‘아, 짜증나. 이건 마치 어린애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럽네? 아우 썅!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 색마인데!’
두 번의 운기요상이 끝나자 확실히 몸에 변화가 생겼다. 처음엔 앉아 있는 것만 해도 부담이 상당했는데 이제는 앉아 있어도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는 한 버틸 만했던 것이다.
“나 하나도 안 졸려. 우웅! 그러지 말고 딱 한번만 그거 더 하자. 응?”
간절하게 매달리는 표정에 욕망이 다시 고개를 쳐든 동천은 그녀의 말대로 딱 한번만 더 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꾹 참았다.
이 상황에서 예전의 그였다면 백이면 백, 못 이기는 척 넘어갔을 것이 분명한데 상단전이 열려서 그랬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의지력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해진 것을 피부로 느꼈다. 같은 그일 지라도 느슨할 때의 그와 일단 마음을 먹고 난 후의 그가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어허! 너 자꾸 그러면 혼난다?”
“히잉…….”
동천은 앞서 장난 식으로 화정이를 첩으로 들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좀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첩이 아닌 작은 부인으로 데리고 살 생각이었다.
아직은 주인과 강시의 관계로 유지할 계획이지만 때가 되고 본처를 얻게 되면 자연스레 그녀를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노리개로 여겼다는 인상을 동천 스스로가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 동천아. 네가 드디어 진정한 남자가 되었구나. 강 아저씨가 자신의 여자를 아끼고 지켜줄 수 있는 사내가 진정한 남자라고 했으니 너는 비로소 진정한 남자가 된 것이다! 크윽, 근데 왜 자꾸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그때였다. 아쉽다는 생각을 못하게끔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
우르르르릉!
“엇? 뭐, 뭐지?”
“으아! 동천, 벽이 흔들리는 거야, 내가 흔들리는 거야?”
화정이의 헛소리 아닌 헛소리에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던 동천은 불안한 눈으로 흔들리는 동공 전체를 느꼈다. 그는 퍼뜩 스치는 생각이 이었다.
“서, 설마 천마동이 무너지는 건가?”
그들이 있는 지하동공은 동천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거친 수로를 따라 한참을 떠내려간 뒤 깊은 와류(渦流)에 휩쓸려야만 그곳에 존재하는 수로를 따라 이곳까지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또한,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상하로 분리된 두 개의 큰 지류 중에 경사진 언덕형 지류에 몸을 맡겨야 이곳의 지하호수로 떠오를 수 있었는데, 지금 이것을 언급한 이유가 뭐냐하면 천마동이 무너질 정도의 큰 진동이 아니고서는 이 먼 곳까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혹, 천마동이 무너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일이 벌어진 것만은 확실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가운데 석실에서 한창 무공비급의 독파에 열을 올리던 강소홍은 갑자기 석실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서둘러 달려와 그렇게 물었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버린 동천은 자신의 생각을 그녀에게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난 강소홍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 이외에는 없어 보이자 대번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천마동에 만독문의 식구들이 적지 않게 들어가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쳇, 문파의 사람들은 너만 들어갔냐? 본교의 사람들도 들어갔어, 이거 왜 이래.’
과연 이곳까지 여파가 미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 신경을 쏟느라 암흑마교 사람들의 안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동천은 강소홍이 문도들의 생각에 어쩔 줄을 몰라하자 괜히 배알이 꼴려 내심 중얼거렸다.
자신은 기껏 그녀와 화정이를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무슨 성녀라도 되는 양 문도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으니 동천의 성격상 좋게 봐주게 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는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혹시나, 천마동의 파괴로 인하여 이곳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서둘러 챙길만한 것들은 다 챙기도록 하세요, 누님. 화정이 너도 담을 수 있는 것은 다 품속에 집어넣고!”
“응, 동천!”
화정이는 힘차게 대답했지만 강소홍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되물었다.
“물이 역류하여 차 오르면 버텨낼 재간이 있을까?”
꼭 물이 역류하리란 보장이 없었지만 천마동의 방대한 내부를 보았을 때 그곳이 전부 무너진다면 산허리가 폭삭 주저앉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천은 이럴 때일수록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씨익 웃었다.
“물론이에요. 제가 나가는 방법을 다 알고 있으니 저만 믿고 꼭 붙들어 매시면 되요. 하하!”
자신을 그저 안심시키고자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 강소홍은 분명 심각한 상황인데 전혀 두렵지가 않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왜 일까? 내가 이토록 침착한 이유가?’
그녀는 잘 몰랐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믿음이라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동천의 행동이 믿음직하고 그의 말이라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동천과 함께 있으면 그 과정이 어떠하든 기필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뭐 별로 좋은 뜻의 믿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이런 멍청한! 누님, 서둘러 아래 통로에 열린 구멍을 닫아…….”
순간 번뜩인 생각이 떠올라 그곳을 닫아달라고 부탁하려 했던 동천은 어찌된 일인지 차마 끝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가 알기로 그 통로는 아래층 보석창고의 횃불걸이를 움직여야만 열렸다 닫히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말인즉, 그 기관을 움직여 통로를 닫는다면 누군가는 아래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강소홍은 기쁜 신색으로 대답했다. 그곳만 막을 수 있다면 일단은 버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그런 방법이! 그럼 서둘러 닫는 게 좋겠어. 어떻게 닫는 거지?”
그녀가 닫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재촉하자 동천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리 있게 설명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는 희생하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러니까요. 에 또, 그게……. 헉?”
우르르르릉!
아까 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거센 흔들림이 지하동공의 전체를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화정이가 말했다.
“동천, 바닥에 물이 들어오는데 좋은 거야?”
“…….”
“…….”
그녀의 말대로 그들이 진동음에 정신이 팔린 사이, 소리 없이 흘러 들어온 물살은 빠른 속도로 통로의 내부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위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