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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43화


“…….”

애초에.

내가 이 위험한 세광특별시를 계속 탐사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모호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거대하고 비밀 많은 괴담을 캐내다 보면, 어쩌면 이 괴담 세상의 근원적인 진실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그러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갑자기 어둠탐사기록의 세상에 던져져 영문을 알 수 없는 개고생을 하고 있는 원인이나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나는 방금 그 기대감들이 보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여기서 나를 초대하려고 했던 거라고….’

유쾌연구소는, ‘괴담이 없는 안전한 세상’을 증명하려는 용도로 그곳의 사람인 나를 불러내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세광특별시의 재난이 일어났다.

심장이 서늘하게 식는다.

‘그럼… 세광특별시에서 수십만 명이 죽고 도시가 봉쇄된 건 결국 나와도 관계가….’

…아니! 착각하지 말자.

‘내가 불러 달라고 했나?’

죽어도 아니다.

나도 다른 세광시 시민들처럼 여기 휘말려 든 것이다. 이 망할 괴담 세상의 기관들이 정신 나간 시도를 하는 짓에 휘말려서….

휘말려서 하필 내가.

“…….”

순간 격통 같은 게 가슴팍에서부터 머리까지 치밀어올랐다.

분노였다.

나는 간신히, 옅게 숨을 내쉬며… 유쾌연구소의 연구원을 보았다.

말은 이상하도록 건조하게 나왔다.

요원의 단어로.

“그러니까, 결국 괴현상이 없는 세상의 사람을 불러내려고 했다는 허무맹랑한 말이군요. 그리고… 실패했고 말이죠.”

“…….”

“대도시 하나가 통째로 괴담이 됐잖습니까. 대체 책임질 능력도 없이 이런 짓은 왜 벌인 겁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저희가 벌인 게 아닙니다. 원래는 실패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이번 시도는….”

“‘실패하지 않았어야 한다’라니, 그게 무슨 대책 없는 이야깁니까? 연구소라면 실패했을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요.”

이허운 연구원의 표정이 더 창백해졌다.

그러라지.

“어떻게 수습하실 겁니까? 지금 다른 연구원들은 모두 어디 있습니까?”

“화재로, 대피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대비책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습니다. 저희도 속은 겁니다. 저희는….”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입니까?”

“그러게요.”

…!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잊고 있던 그 자리의 구성원이 조용히 입을 열고 있었다.

표정이 사라진 상담 교사.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토록 무책임할 수가.”

“…….”

“저는 분명 이들에게 그런 약조를 받았거든요.”

공기가 기이하게 뒤틀린다.

“자신들의 노력이 성공하는 날에, 이 도시가 지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 사람에게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요.”

이허운의 대답은 없었다.

아니,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연구원이 스스로 목을 틀어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알록달록한 장난감으로 가득한 환상적인 공간에서 끅끅 소리와 함께 그자가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상담 교사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마치 상담 전 안내 사항을 친절히 말해주듯이 설명한다.

“나는 세광특별시, 과거에는 광진이라고 불린 이 지역에 아주 오래 살았지요. 한때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해치기도 했지만, 정이 들고 이지가 생긴 이후로는 쭉 돌보고 지켰어요. 그래서 그 말이 퍽 기껍게 들렸답니다.”

그의 차분하고 이지적이던 말투는 점점 더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바뀌었다.

마치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처럼.

“저자들을 따라온 관아의 사람도 장담하기에, 나는 이 땅 지하를 내주고, 그들이 요청하는 말을 들어주었지요. 그러다가 어느날 간곡한 요청을 듣게 되었답니다.”

“…어떤 요청 말입니까?”

“신묘한 구슬을 잠시만 빌려 쓸 수 있냐는 요청.”

상담 교사, 아니, 영물의 손짓에 그 손가락 위로 훤하고 둥근 구체의 모습이 허공에 떠오른다.

오색찬란한 영롱함이 붉다.

이전 어느날, 은하제 대리님이 무명찬란교에 노인의 잠입하기 위해 비슷한 구슬을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다만 그건 손가락 크기였고, 저만큼 영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 세간에서 여우 구슬에 대한 전승을 들어보셨나요? 열매가 아니라, 여우 요괴가 가진 구슬말이죠.”

반짝인다.

“용의 여의주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아마 비슷한 이야기가 전래되기에 생겨난 말일 거예요…. 바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 말이지요.”

“…!”

곧 그 환상적인 형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꿈 배양기의 수조 한 가운데 있던 알의 형상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원.’

설마.

“당신이 빌려준 그게, 이번 실험에 쓰인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요?”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얼른 내 구슬을 되찾아서 손을 쓰려고 했습니다. 영역을 지키며 다른 삿된 것을 밀어내는 일은 이미 관리국이 정성껏 제사를 보며 내게 여러 번 요청한 일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엄정해진다.

“구슬이 사라졌다고 하는군요.”

“…….”

“이제 방법이 없네요. 저 바깥의 삿된 침투와 전염병처럼 번지는 감염으로부터 이 도시를 지킬 방법이 없어요.”

연구원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다. 곧 정신을 잃을 듯이 손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여기서 이허운을 이렇게 보내봤자 의미 없어.’

이 사람 개인의 책임도 아닐뿐더러 정보만 없어진다.

나는 결국 빠르게 입을 열었다.

“구슬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추적은 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혹시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시를 구할 방법이 있을지 알아봐야 하고요. …연구원을 심문해서 말입니다.”

…….

…….

“그렇네요.”

“컥!”

이허운이 목을 잡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전기가 오른 듯이 튀기듯 놓았다.

그리고 바닥에서 몇 번 허덕이더니, 그러면서도 아직 초점 있는 눈빛으로 말한다.

“죄송,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고, 어떻게든 수습할 방법부터 찾아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실험이 진행된 건지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예, 쿨럭, 그러니까, 저희는….”

하지만 그 순간.

이허운 연구원의 얼굴에서 오른쪽 귀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

“아.”

연구원이 바닥을 더듬어 귀를 들어 올렸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어느새 완연한 플라스틱 장난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고개를 돌려 복도를 보았다.

이자헌과 두 일행의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복도의 모습은 어쩐지 아까보다 정적으로 느껴졌다.

알록달록한 장난감 중 몇 가지가 작동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거나 생기를 잃었다….

신비를 잃어버린 모습.

“…얼른 도망치십시오. 이, 이 사무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이허운 연구원이 허겁지겁 말한다.

“지금은 화재와, 바깥의 재난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지만… 이곳도 곧 화마가 들이닥칠 겁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잠깐.

“지금 이 층으로 불이 번지는 걸 막고 있는 것도 초자연 현상의 힘인데…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떠올렸다.

괴물에게 넣었던 상담 교사의 손 하나가 절단되는 순간 ‘사라지듯’ 흐물흐물 없어진 것을.

…그렇다면.

설마.

“지금 세광특별시에서는… 초자연 현상이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겁니까?”

“…….”

연구원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린다.

“맞습니다.”

…!!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저희 실험의 목표는 달성한 겁니다. 분명 초대는 성공했을 겁니다…!”

연구원의 목소리에는 옅은 희열까지 느껴졌다.

“누군가… 온 겁니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모를 감정으로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다.

하지만 내 이성은 위화감을 잡아낸다.

“이상한데요. 초자연 현상이 사라졌다면 도리어 안전해져야 하는데, 왜 바깥은 저 꼴인 겁니까?”

“그래서 저희의 의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목표상 불가능한 결과니까요….”

“불가능한 결과라고요?”

“예. 저희는 오늘 그저 ‘괴담이 없는 곳’의 존재를 확립하고,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지친 목소리가 낮아진다.

“누군가, 끼어들어서 의식을 교묘히 바꾼 겁니다.”

“…….”

-저희가 연구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군가 손을 썼어요!

“그리고 저희가 대처하지 못하도록 불을 지른 게 분명합니다. 그건….”

“보통 가장 이득 보는 사람이 범인인데.”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은하제 기자가 머리를 긁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솔직히 이게 뭔 소린가 싶은데, 그 맥락은 또 확실히 내 전공이라서 말이야. 보통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그렇지. 이 꼴이 되면서 누가 제일 이득을 봅니까?”

연구원의 눈이 가라앉는다.

맞는 말이지만 그걸 추측하기는 성정상 어려운 듯했다.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주면 되지.’

“좋은 말씀입니다. 시민님.”

나는 덧붙이듯 물었다.

“몇 가지 생각나는 인물이 계시는 것 같은데… 그중, 현장에서 실험 직후에 갑자기 사라진 자가 있습니까?”

“……!”

멍한 표정의 연구원이 나를 돌아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한다.

“있습니다.”

“이야.”

은하제 기자의 감탄사가 들린다.

[훌륭한 심문입니다. 친구!]

“누굽니까?”

“이번 실험을 반드시 참관하고 싶다며 온 후원자입니다. 저희와 협력해서 꿈결 용액을 개발하던 회사의 영물이기도 합니다. 그건….”

“인상착의나 이름을 알려줄 수 있습니까?”

연구원이 더듬거리며 뒤로 일어나서 자신의 책상으로 보이는 것을 뒤진다.

그러더니 맨 아래 서랍에서 ‘유쾌연구소 창립기념 발간’이라고 적힌 청록색 양장본을 꺼내, 휙휙 넘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페이지에서 멈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에는 ‘기업 협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연구원이 그 중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건….

“이자입니다.”

청 이사였다.

지난번, 별관 지하에서 보았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외관의 그 이사는 가운을 입은 채 사진에 담겨 있었다….

“…….”

얼얼한 충격이 머리를 퍼진다.

“용의 일종으로 파악되는 괴현상 속 존재입니다. 분명 오늘 실험을 위해 시청 옥상에서 일을 진행할 때까지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데, 어느 순간 연락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음….”

떨떠름한 은하제 기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 되게 뻔한 상황 같은데. 협력회사가 뒤통수치고 개발 결과만 쏙 빼먹으려던 거 아닙니까? 아니면 자기들 원하는 결과값 얻으려고 슬쩍 환경 조작하다가 망했거나.”

“…!”

이허운의 표정에 경악과 거부감이 드러났다가, 곧 체념과 씁쓸함으로 변했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는….”

다음 순간, 이허운 연구원의 엄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이었다.

“…!”

“이제…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허운의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얼른 지하철로 도망치십시오. 이번 실험은 범위가 ‘지상’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근원지가 아닌 지하철은 비교적 안전할 겁니다. 여러분이라도 안전히….”

그리고 상담 교사를 돌아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상황상, 영물님의 보물이 분실된 건 아마 이번 실험에서 쓰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

“그러니 어쩌면 그 옥상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소에는 이제 그곳에 갈 수 있을 만한 위력의 신비한 장난감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상담 교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허운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복도와 사무실의 화려한 장난감의 움직임들이 간헐적으로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허운의 발이 툭 떨어져 나갔다.

호두까기 병정 인형의 구두 같은 장난감이 바닥을 구른다. 연구원이 비틀거렸다.

문가에 있던 고등학생 류재관이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제가 부축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만….”

이허운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진다.

“저는 이 연구소 안에서만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신체 대부분을 잃은 상태거든요.”

“…….”

“하지만 저 연구원은… 나가서도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문가의 이자헌 연구원을 가리켰다.

“그는 다른 부서의 사람입니다. 이번 연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어요. 책임이 없으니 되도록 함께 빠져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이자헌은 그 사려깊은 말에도 그 어떤 감흥을 느끼지 않은 듯 가만히 그를 보고 있다.

“자네도 대피해야지… 그 이상한 버튼 아이템만 믿지 말고, 이제 얼른 사무실에서 나가서 탈출하게. 어서.”

…버튼 아이템?

내게는 이자헌 연구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복도로 나서는 것만은 보였다.

“지하철 출입구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이허운 연구원은 안심한 것 같았다.

“저는 다른 방법을 알아볼 테니, 모두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휴우.”

은하제 기자를 시작으로 모두가 사무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상담 교사마저도 일단 복도로 나갔을 때.

“…….”

“요원님?”

나는 가만히 이허운 앞에 섰다.

“연구원님. 당신은 ‘괴담이 없는 세상’의 사람이 이곳에 왔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건… 예.”

“그 결과는 기쁘십니까?”

이허운의 얼굴에 아쉬움과 절망 너머로 연구자로서의 성취감이 짧게 비친다.

“그것만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숙여서 그 귀에 속삭였다.

“그럼, 그렇게 불러낸 존재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예?”

“당신들이 불러낸 건 영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요.”

내 목소리가 천천히 느릿느릿 말한다.

“괴현상을 접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낯선 환경에 끌려와서 어떤 꼴로 살게 될지 상상해 본 적… 있습니까?”

“그게 무슨….”

의아해하던 이허운의 눈빛이,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변한다.

“…….”

“자, 잠깐만.”

이허운의 눈이 떨린다.

“혹시….”

나는 말없이 연구원을 내려다보았다.

이허운의 눈이 황급히 내 행색을 훑는다.

그리고 내 옷에 멈추더니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것이 정식 요원복이 아닌 협력 영물, 상담 교사의 의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요원, 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글쎄요.”

“세광특별시 시민… 이십니까?”

“글쎄요.”

이허운 연구원은 마치 무엇이라도 단서를 찾고 싶은 듯, 혹은 기억하고 싶은 듯이 나를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

나는 동요하는 대신, 살짝 몸을 낮춰 속삭였다.

“하지만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예! 무슨….”

“제 생각에는, 만일 당신들의 초대가 성공했다고 해도… 불려 온 존재는 당신들에게 절대 협력할 것 같지 않습니다.”

“…….”

“절대로.”

이허운이 멈췄다.

삐리리리리릭!!!

복도로 화재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는 유쾌연구소의 연구원을 두고, 복도로 나왔다.

물론 이허운 연구원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과연 있다고 해도 내가 그 방법을 썼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에… 약간의 참담함을 느낀 채로.

“…….”

‘가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을 탈출시켜야 해.’

그리고 복도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요원님.”

상담 교사가 말을 걸었다.

“그거 아세요? 방금 저 연구원님이 말해준 바로는, 이곳은 세광시청의 지하라네요.”

“…예?!”

멀뚱한 이자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세광시청의 지하라고 말했….”

“그건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여기가 바로 사건 발생지 바로 아래인 겁니까?”

“예.”

내가 찝찝함을 넘어선 오싹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냥 위로 올라가면 옥상이겠네요?”

“예.”

젠장.

“다만 극도로 위험할 확률이 지극히 높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때로는 위험해도 해야 할 경우가 있죠.”

…상담 교사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요원님.”

“…….”

“함께 가보실래요? 시청 옥상으로.”

“…….”

“비상계단을 이용하면 될 거예요. 제가 열매를 충분히 제공할게요.”

내가 뻣뻣하게 굳은 머리로 그를 돌아보려던 순간.

“추천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노루 씨.”

“…….”

…?!

자, 잠깐만.

“…과장님?”

“예.”

나는 휙 이자헌 연구원, 아니… ‘이자헌’을 돌아보았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얼굴이 없으나 전 같은 꺼림칙하고 기이한 느낌 대신 경악부터 든다.

설마.

“기억이 있으십….”

아니! 이건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랐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본질적이라면 본질적인 질문을.

…….

“저희가 회사에서 무슨 조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예.”

그리고 나는 이유 없이 알았다.

“D조입니다.”

만일 얼굴이 보였다면, 지금 그 도마뱀의 주둥이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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