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8권 22화 – 건곤일월합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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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8권 22화 – 건곤일월합격진

건곤일월합격진

ᅳ미완성된 조화

“본녀는 이 현천묵검을 휘두르기 전에 딱 한 번만 양보해 주겠다. 어디, 펼쳐 보거라! ‘건곤일월합격진(乾坤日月合擊陣)’을!”

구천현녀의 한마디에 염도와 빙검이 경악했다.

“그, 그 무공을 어떻게…….”

그 무공의 존재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부가 남겨준 ‘비전(秘傳)’이었기에.

염도와 빙검의 뇌리에 화인(印)처럼 박힌 사부님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염백(魄)과 빙혼(魂)의 극의를 깨우치거라. 그리하여 태극을 하나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 그분의 유지, 그들은 그것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주욱……. 단지 그들이 서로가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염도와 빙검의 몸이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렸다.

“왜 그러느냐? 설마 그것도 완성하지 못하고 내 앞을 막아서겠다는 건 아니겠지?”

대답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모, 못했습니다.”

겨우 입을 연 두 사람의 목소리는 거의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너희는 아직도 염백과 빙혼의 극의를 얻지 못했다는 게냐? 아직도?!”

염백과 빙혼의 극의를 얻은 다음에야 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건곤일월합격진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무화는 그 사실마저도 알고 있었다.

“…..”

염도와 빙검에게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무화의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네 이놈들! 그것도 얻지 못한 채 감히 본녀에게 대적하려 했단 말이냐? 이런 천치 같은 놈들을 봤나!”

무화의 힐문은 추상과도 같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염도와 빙검의 몸이 점점 더 위축되었다. 지금 두 사람의 마음은 사부님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으로 가득했기에 어떤 변명도 감히 내뱉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오너라! 내 오늘 이 일검으로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어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리라!”

준엄한 목소리로 무화가 일갈했다.

-우리가 사부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구천현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는 그 말의 무게가 달랐다. 의미가 달랐다. 염도와 빙검은 자신들이 사부님께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달았다. 가슴이 턱 막히고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비분이 솟구쳐 올랐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주르륵!

염도와 빙검의 두 눈에서 뜨거운 회한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구천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냉소하며 말했다.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늦었느니라. 좌우(左右)가 따로 노는 철없는 것들에게 본녀가 질 거라 생각하느냐? 너희들의 사부가 역시 보는 눈이 없었구나, 보는 눈이 없었어!”

“사부님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염도가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들을 욕하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에 대한 모욕은 참을 수 없습니다!”

빙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일 저희들이 정말로 사부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면 저희 목숨 같은 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모욕하진 마십시오.”

염도와 빙검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리석은 것들! 너희들의 사부를 모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니라!”

현천묵검을 들어 올린 무화의 몸에서 조용하지만 무거운 살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크헉! 꾸웩! 보글보글! 꼬르륵!

사방에서 괴이한 비명 소리가 합창하듯 들려왔다.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몇몇 무사들이 그 무시무시한 위압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한 것이 다.

“좋다. 그렇다면 나의 이 일검을 받아보거라!”

염도와 빙검은 몸을 긴장한 채 그녀가 천천히 들어 올린 새카만 목검, 현천묵검을 바라보았다. 신병이기와 같은 날카로움은 그 검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정 신을 억누르는 이 압력은 무화 그녀가 익힌 검도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무화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과의 과거를 정리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잠시 후, 감겨졌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그러자 심원한 검은 눈동자가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구천현녀는 천천히 현천묵검을 뒤로 뺐다. 매우 느릿한 동작이라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이 그들의 눈에 각인되듯 박혔다. 무화는 뒤로 뺐던 검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새 목도의 주위에는 검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현천묵린강기가 일으키는 조화였다.

검은 강기를 감싼 현천묵검의 검끝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너무나 느려서 보고 있는 게 지칠 정도의 일검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일초를 절대로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방위가 그 검끝에 장악된 것만 같 았다.

피할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위험하다! 막아야 해!’

섬뜩한 전율, 무인의 본능이 요란스럽게 신경을 뒤흔들며 경고한다.

염도가 홍염을 움직였다.

‘어라?”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 천근만근이라도 된 듯 몸이 늦게 움직인다.

‘홍염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이렇게까지 홍염이 무겁게 느껴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무거운 철기둥을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홍염을 들기도 전에 저 목도에 휩싸인 검은 불꽃이 그의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이이익! 염도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전심전력을 다해 홍염을 크게 휘둘렀다.

“움직여라!”

팍!

한순간 홍염이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불꽃의 궤적을 그려냈다.

진홍십칠염(眞十七炎)

검염기(劍焰

극상(極上) 오의(義)

홍련지벽(紅蓮之壁)

홍염의 궤적이 그 둘을 감싸며 홍련의 성벽을 이루었다. 쌍둥이를 상대로 펼쳤던 홍염의 방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홍련의 성벽이 그들을 감싸자 빙검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검압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빙검이 빙백을 휘둘렀다.

빙령수류검(氷靈水流劍)

검한기(劍氣)

극상(極上) 오의(奧義)

극광성련벽(極光星連壁)

빙백의 끝에서 극광 같은 무지갯빛이 일렁이더니 그와 함께 뿜어져 나온 북해의 눈보라와도 같은 검기가 그들 주위에 금강석처럼 단단한 얼음의 성벽을 만들었다. 불꽃과 얼음의 이중 장벽.

‘어떤 검초도 이 수비식을 뚫을 수는 없어!”

그러나…….

스—윽.

구천현녀의 묵검은 너무도 간단하게 홍련의 성벽을 꿰뚫고 들어왔다. 놀랄 새도 없을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홍련의 성벽에 마치 도려내어진 듯 커다란 구 멍이 뚫렸다. 마치 그 묵검에 먹히기라도 한 듯이. 무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그 검은 불꽃에 휩싸인 묵검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슈―욱!

현천묵검은 극광성련벽의 얼음 성채마저 너무나 간단하게 뚫고 들어왔다. 빙검은 기절초풍할 듯 놀랐다. 오직 수비에 전념하고 있던 그의 절대방어가 너무나 쉽게 꿰뚫렸던 것이다.

‘이럴 수가! 아무런 저항이 느껴지지 않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무언가가 부딪치면 그에 따른 반발로 저항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현천묵검이 얼음 성벽을 마치 공기의 벽이라도 뚫듯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느낄 수 없다니,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사고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구나! 검천(天) 아래에서 죽거라!”

무화의 준엄한 목소리가 먼 데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구천현현신공(九天玄玄神功)

제팔천(第八)

구천현녀지검(九天玄女之劍)

묵린현현(墨燐玄玄)

지ᅳ잉!

미세하게 요동치는 현천묵검의 검극으로부터 검은 불꽃이 폭발하듯 확장됐다.

순간, 염도와 빙검의 눈앞이 새카만 암흑으로 뒤덮였다. 하늘이 검은 장막으로 둘러쳐진 듯했다. 어디서 검초가 날아오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새카맸다. 세상에서 마치 빛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득하고 심원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어둠의 심연만이 주위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다음 순간.

엄청난 충격이 염도와 빙검의 몸을 후려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부가 진탕되며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그들의 생명이 뜯겨져 나가는 듯했다.

몸이 찢겨져 나가는 충격 속에서 그들의 의식은 그대로 끊어졌다.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캄캄한 어둠에 빛이 떨어져 내린 듯 확 밝아졌다. 눈앞이 다시 밝아졌을 때, 염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긴 저승인가.

옆에서 빙검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하고 같은 곳에 떨어지다니, 이곳은 지옥이 틀림없나 보군.”

염도는 미묘한 체념과 불쾌함이 뒤섞인 어조로 투덜거렸다.

“자네랑 있으면 어느 곳이고 다 지옥 아니겠나.”

빙검이 되받아치는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격통이 몸 안을 달렸다.

“쿨럭쿨럭!”

염도가 피를 토해냈다.

“마지막에 손속을 거두었는데도 엄살이 심하구나.”

어디선가 구천현녀의 냉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수십 개의 바늘이 마구 몸을 찌르는 느낌에 두 사람은 저절로 크윽,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겨우겨우 악을 써서 일어나자 무화가 다시 냉엄한 목소리로 명했다.

“꿇어라!”

두 사람은 그녀의 명에 따라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강호에 출두한 이래 가장 처절한 패배였다.

자신들이 토해냈던 선혈 위에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무화의 눈빛은 싸늘할 정도로 차가운 한광을 내비치고 있었다.

“너희들은 마지막 기회까지 날려 버렸다.”

“…..”

염도와 빙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면목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냉엄한 눈길로 바라보던 구천현녀가 수도(手刀)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남길말은 있느냐? 너희들을 단 일검에 죽이지 않은 것은 단지 그 말을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련이 없도록.”

그녀의 손에 검은 빛이 모여들면서 현현(玄玄)하게 빛나는가 싶더니, 이내 날카로운 칼날 모양을 형성했다. 강철도 두부처럼 벨 수 있다는 장공의 최고 경지, 바로 수강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남길 말이 있느냐?”

무화가 다시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새하얀 섬섬옥수에 한밤처럼 검게 맺힌 강기의 칼날이, 마치 형장 위에서 빛나는 단두대처럼 보였다. 염도와 빙검은 밤처럼 빛나는 칼날을 보며 스르륵 눈을 감았 다.

“죽이십시오.”

패배한 그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구천현녀의 눈썹 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과거의 인연이 잠시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설마 그녀 자신이 그의 일맥을 끊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맹세하지 않았는가.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겠다고.

다시금 아들을 잃은 슬픔이 물밀듯 밀려와 그녀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고통 앞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잘 가거라.”

무화는 검은 단두대처럼 치켜든 수도를 그대로 내려쳤다.

검은 단두대가 떨어졌다.

그러나 염도와 빙검의 목은 아직 그들의 어깨 위에 달려 있었다.

무화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손을 내려치는 자신을 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가왔을까. 사란이 어느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질책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화를 향해 사란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란의 눈동자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째서더냐?”

“이 둘은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 일은, 누구보다도 큰언니께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또 자네의 그 ‘불편한 마음’이로군.”

그러나 신마가에서 사란의 그 불편한 마음’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심원하고 거대한 직관의 덩어리로부터 나오는 경고라는 것을 잘 알 기 때문이다.

사란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만일 죽여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제가 큰언니를 대신해 저 아이들의 목숨을 거두겠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무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의 말대로 하겠다. 이 녀석들은 오늘 운이 좋구나.”

그리고는 참았던 깊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것이 이들의 운명인 게지요.”

철썩! 철썩!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던 염도와 빙검의 얼굴이 홱 꺾이며 돌아갔다. 두 사람은 볼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난 이십 년간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맞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뭐라고 항의할 수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무화의 눈동자가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린 탓이다. “이것은 그분을 대신하여 행한 것이다. 죽이기로 했다면 모르되 살리기로 했으니 계도를 내려야겠지. 어리석은 천하의 천치 같은 놈들! 너희들은 그분의 오른팔과 왼팔이 아니었더냐? 좌수와 우수가 싸워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그분이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슬퍼할지 네놈들은 상상이나 가느냐?”

그녀의 꾸짖음에 염도와 빙검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특히 사부님의 얘기가 거론되자 자신들이 천하의 몹쓸 불효불충한 자들로 느껴졌다.

“효홍, 용근삭(龍筋索)을 가져오너라.”

“네, 어머니. 여기 대령했습니다.”

팔선자 중 둘째 갈효홍이 특이한 재질의 밧줄 하나를 양손에 받치고는 다소곳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공손히 내밀었다. 무척이나 정숙하고 어딘가 수줍음이 감추 어진 걸음걸이였다.

보통은 일신상에 지닌 무공의 속성과 그 사람의 성정이 일맥상통하는 법이다. 무공이 영향을 주기도 했고, 성정대로 무공을 골라서 수련하기도 해서였다. 때문에 열염계 무공을 익힌 사람은 활활 타오는 불처럼 정열적이지만 때때로 성질이 급하고, 악화되면 폭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효홍이라 불린 그녀는 기이하게도 차분해 보였다.

머리칼마저 붉어진 것을 보면 그녀의 열염계 공부는 상당히 깊을 텐데도, 무척이나 차분하고 정숙해 도저히 열염계 무공을 상승의 경지까지 익힌 여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묶거라.”

무화가 명했다.

“어찌 외간 남자의 몸을……. 부족한 실력이지만 명이시라면 따르겠나이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렇게 대답한 효홍이었지만, 의외다 싶을 정도로 능숙한 솜씨로 염도와 빙검을 꽁꽁 묶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내고 말았 다.

“다 묶었습니다, 어머님. 미숙한 솜씨나마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전히 붉은 기가 감도는 얼굴로 효홍이 말했다.

“수고했다. 물러가거라.”

어딘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효홍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번 풀어보겠느냐? 장담하건대 너희들은 절대로 그 밧줄을 풀지 못할 게다.”

무화가 꽁꽁 묶여진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정도 밧줄쯤이야…… 썩은 동아줄처럼 단숨에…….?”

끄으으응!

염도는 내심 달궈진 철광석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용을 썼다.

한참을 힘을 썼는데도, 염도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 이외에 특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염도의 전신에서 수증기 같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나 싶더니 금세 가 라앉았다.

“이럴 수가!’

염도가 밧줄을 끊어버리기 위해 요란스럽게 행동하며 주위의 시선을 끄는 동안, 몰래 밧줄을 끊으려 했던 빙검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기가 제대로 돌지 않다니……!’

옆에 있던 염도는 어느새 땀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소용없답니다. 둘째 언니의 밧줄 묶기 기술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묶기와 점혈을 동시에 행하는 특별한 기술이지요.”

딱히 다른 제지도 하지 않은 채 염도의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여인들 중 갈효혜가 화사하지만 무섭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시험해 보셔서 직접 몸으로 느끼셨으리라 믿지만, 두 분을 묶은 이 밧줄 역시 범상한 물건이 아니랍니다. 괜히 용근삭이라 불리겠습니까.”

진기 운용이 안 되면 근력만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했으나, 힘을 주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늘어났다가 힘을 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반면 효홍은 자신의 ‘여의포박술(如意捕縛術)’에 묶인 염도가 힘을 쓰는 걸 보고는 상당히 놀란 듯했다.

“저… 큰어머니. 제가 마음이 약해서 좀 살살 묶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더 묶을까요? 설마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요…….”

둘째 갈효홍이 손을 들며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이 이상 더 어떻게 세게 묶는단 말이냐?!’

염도와 빙검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여기서 더 강하게 묶였다가는 밧줄에 교살당할 것만 같았다. 온몸을 칭칭 감은 밧줄이, 살아 있는 이무기처럼 그들의 몸을 엄청난 힘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니, 됐다. 저 정도면 충분하니 그대로 놔두어라.”

둘째 효홍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목례를 한 후 물러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사로잡힌 채, 그녀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정천맹주 나백천을 구할 가능성은 더욱더 줄어든 것이다.

“대부인! 큰일 났습니다! 객잔 안이 텅 비어 있습니다!”

염도와 빙검이 사로잡히자마자 수색을 하러 들어갔던 손 단주가 달려와 보고했다.

“사방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포위를 담당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인지라 그의 얼굴은 송구스러움이랑 두려움으로 인해 핼쑥했다. 그러나 객잔 안이 텅 비어 있다는 말에도 삼대낭랑과 십지선녀 갈효혜의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잘됐군요.”

“네! 네? 자, 잘됐다니요?”

의외의 대답에 깜짝 놀라는 손 단주를 무시한 채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요, 잘됐고말고요. 모두 계획대로니까요.”

십지선녀 갈효혜의 얼굴에 칼날을 품은 듯한 무시무시한 미소가 떠올랐다.

“…….?”

도대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손 단주 혼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조용히 서 있던 구천현녀 무화가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느냐?”

갈효혜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어머니. 이미 여섯째 효민과 일곱째 효효를 보냈습니다. 지금쯤 비밀 통로의 출구 앞에서 흑견대 제이대와 함께 포진(布陣)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빙검과 염도의 안색이 대변했다. 신마팔선자의 수가 모자란 듯하더니, 다 그런 연유에서였던 것이다.

“그래, 역시 너의 안배는 항상 치밀하고 군더더기가 없구나.”

망설임이 없는 효혜의 대답에 무화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님. 모든 것이 예정대로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갈효혜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진한 웃음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

“…이제 어쩌면 좋겠나, 류연?”

빙검과 염도가 꼼짝없이 사로잡히는 것을 숨어서 목격하고는 몰래 빠져나온 후, 모용휘가 딱딱하게 굳어서 물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심적 타격이 무척이나 큰 듯했다.

거의 무적을 자랑하던 염도와 빙검이 패배했다.

그것은 그들을 든든한 마음의 지주로 삼고 있던 천무학관 출신의 구출대에게 있어서 심대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그 두 사람을 또 다른 사부로 생각하고

있던 모용휘에게 있어서는.

“글쎄, 이건 정말 예상 밖인걸.”

염도와 빙검이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힐 가능성은 비류연의 예측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나?”

모용휘는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바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류연은 손을 턱에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상당히 곤란해진 것만은 틀림없 는 것 같았다.

“흠, 어떻게 한다…….”

지금 이 순간 염도와 빙검의 운명은 비류연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좋아! 결정했어!”

비류연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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