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1권 – 제 2부 : 주전자와 머리의 비교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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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1권 – 제 2부 : 주전자와 머리의 비교 8화

8

순종 헬턴트 사나이인 샌슨은 무조건 내 말에 찬성이었고, 좀 괴짜이긴 해도 역시 헬턴트 남자인 칼은 주저하면서도 복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허…………. 조용히 떠나는 게 좋을 텐데.”

“아니죠. 추격대가 따라올지도 몰라요. 확실히 매듭을 지어놓는 게 좋겠지요. 그리고 이곳 시청은 어차피 그 가짜 남작의 꼭두각시니까 결판을 지으 려면 그 작자와 지어야죠.”

“위험하지 않겠나? 그 저택에는 사병들도 많고.”

“그 엉터리 사병들? 틀림없이 곯아떨어져 있을 거예요. 트롤이 설쳐도 잠이 덜 깨서 출동 못했다는 놈들이에요. 그 자식들은 우리가 그 저택을 몽땅 불태우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을걸요?”

나는 계속 이것은 우리의 불유쾌한 감금과 불가피한 탈옥이 발생한 데 대한 모종의 해명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거기에 복수도 포함되면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설득했고 결국 칼은 결정을 내렸다.

“한번 가보기나 하세.”

“아뇨. 먼저 12인의 여관으로 우리 짐은 다 챙겨와야죠.”

우리는 말을 몰아 12인의 여관으로 달려갔다. 샌슨은 이루릴을 등 뒤에 태우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루릴은 자연스럽게 샌슨의 허리를 잡 고 있는데 샌슨만 마치 음란한 일이나 벌이고 있는 것처럼 혼자서 흥분하고 있다. 에이, 빨리 장가를 보내야지, 원.

12인의 여관에도 불이 다 꺼져 있었지만 1층 홀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는 살그머니 홀의 창문으로 다가갔다. 홀 안에는 유스네가 혼자 테이블 에 앉아서 장부 같은 것을 펼쳐놓고는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두드렸다.

유스네는 깜짝 놀라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더 놀라버렸다.

“후, 후치?”

“안녕?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이지?”

“어, 어떻게 나온 거야?”

“믿을 수 있겠어? 아까 그 독한 술을 뿌리니까 돌벽이 녹더라고.”

유스네는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하더니 달려와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유스네는 우리들을 상하좌우로 정신 사납게 살펴보더 니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이렇게 나오다니………….”

칼이 손을 내저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우리 짐은 우리 방에 있나?”

“아, 그건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우리는 곧 유스네를 따라가 우리들의 배낭을 각자 들었다. 쉐린이나 다른 하인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지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샌슨이 물통에 물 을 채우는 동안, 나는 유스네에게 말했다.

“자, 말할 테니까 중간에 끼어들지 마. 우린 탈옥했어. 그리고 이대로 이 도시에서 달아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손 좀 봐줄 사람이 있어서 먼저 거기 로 갈 거야. 여관비는 모두 얼마지?”

유스네는 내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했다.

“떠난다고? 지금?”

“따뜻한 봄이 올 때 출발할까?”

“……넌 입이 참…….”

“참? 어떻단 말이야, 키스하기 좋다고?”

유스네는 볼이 불룩해서 샌슨에게 여관비를 받았다. 우리는 잽싸게 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유스네가 안에서 바구니를 가져오더니 내밀 었다.

“급해서 줄 게 없네. 도시락이야. 가면서 먹어.”

“이거 정말 고맙네. 이 여관에 들르면 대륙 어디에 가서라도 좋은 추억을 말할 거라고 한 사람이 있었지. 고마워요, 레이디 유스네. 그리고 오빠에게

도 고맙다고 전해 줘.”

“응, 알았어. 그런데…”

유스네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투였다. 급한데 참 시간 끄네. 에이, 아가씨들도 역시 헬턴트 아가씨가 최고야. 시원시원하거든.

“유스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버리는 게 나아.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욕설이라도 퍼붓는 게 낫지. 자, 빨리 해. 나한테 제대로 욕을 못해서 그런 거야?”

유스네의 입이 갑자기 뚫렸다.

“야! 이 나쁜 놈아, 내 마음을 돌려줘!”

“뭐?”

뭐냐고 묻는 내 목소리는 밤의 미풍보다도 가늘고 낮았다. 칼과 샌슨도 망치로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간신히 목을 가다듬어 이번엔 조금 크게 물었다.

“뭐라고 했니?”

그래도 별로 크지 않군. 유스네는 코를 훌쩍거리며 이야기했다.

“흥, 훌쩍, 오래된 이야기대로야, 크응. 여관에서 일하는 처녀는, 훌쩍, 방랑자에게 마음을 뺏기지. 하지만 방랑자는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처녀는 평생을 기다리지. 크응, 아마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겠지만, 훌쩍, 평생 그리움은 남아.”

아악! 못말리겠다, 정말! 이 애는 자신과 날 소재로 삼아 이렇게 음침하고 현실성이라고는 눈 뜨고 찾아볼 수 없는 상상을 마구 펼치고 있었단 말이 야? 정말 사춘기 취향에 딱 맞는 공상이다. 나는 유스네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물어보았다.

“야, 야! 너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잖아?”

“그때부터 난 마음을 뺏긴 거지. 그걸 알았어야 했어. 내가 널 거칠게 대할 때, 난 이미 네가 내 마음을 뺏어갈 남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던 거 야. 맞아. 그랬을 거야. 난 내가 내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마법의 가을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지.”

마법의 가을…………, 미치겠군. 야, 네가 날 거칠게 대한 거야 그때 네가 주정뱅이에게 화가 나 있어서 그랬던 거지, 어디에 무엇을 짜맞추는 거야? “그리고 그날 아침,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트롤과 싸우고도, 그 사람들에게는 냉대를 받는, 상처입은 전사를 봤을 때, 난, 난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어.”

그랑엘베르여, 제발! 난 속으로 악악거린 다음 가까스로 조용히 말했다.

“유스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넌 날 겨우 사흘 봤어.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틀은 내가 감옥에 있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난 좋은 남자가 아니 야. 네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 중에 90퍼센트 이상은 너 스스로 만들어낸 거야.”

“아냐, 이건 운명이야. 하지만 널 붙잡지 않겠어. 자신의 마음을 함부로 방랑자에게 줬으니, 처녀에게 다가오는 징벌은 당연하지. 가. 붙잡지 않아.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이대로 영영 사라져가겠지만, 원망하지 않아.”

아무래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유스네는 가을과 함께 떠나간 방랑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평생 그리움 속에 매년 가을을 맞이하는 처녀의 역할을 하 고 싶은 모양이야. 그렇다면 일부러 현실성을 머리에 집어넣어 주고 싶지는 않다. 유스네도 얼마 있지 않아 자기가 왜 그랬던가 하고 생각하게 되겠 지. 그때까지는 조금 슬퍼서 오히려 아름다운 그런 공상을 계속 유지하렴.

나는 두말하지 않고 제미니에 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말에 올랐다. 난 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봐, 유스네.”

“응?”

“넌 좋은 남자를 만날 거야. 아들을 낳는다면, 그리고 그중 하나가 말썽꾸러기가 될 것 같은 이마를 타고 난다면, 그 이름은 후치로 지어주겠어?” 칼과 샌슨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 양반들아. 나도 이런 말 하려니 간지러워 미치겠어. 하지만 유스네가 좋아할 거란 말이야. 예상대로 유스네는 볼 이 발그레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헹, 웃기네. 아마 남편의 반대에 부딪힐 거다, 요 깜찍한 소녀야! 하지만 난 끝까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여주었다.

유스네는 갑자기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것, 날 위해 간직해 줘. 잊지 말아줘.”

목걸이…….돌아버리겠군. 유스네가 내민 것은 알록달록한 구슬들이 꿰어져 있는 목걸이로 누가 볼까 무서워 목에 못 걸고 다닐 물건이었다. ‘야! 내가 어떻게 이렇게 야하고 유치한 목걸이를 걸고 다니냐!’라고 고함지르는 대신, 난 그것을 받아들어 목에 걸었다. 그리고 말없이 말을 달려갔 다. 말없이, 묵묵하게, 가을밤을 밟아가며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방랑자. 그러나 내 마음 한 조각 훔쳐간 남자. 그걸 원한단 말이지? 해줄 수 있지……하지만 간지러워 죽겠다!

레너스 시 시민들의 안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달려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12인의 여관 앞에는 유스네가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멋 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은데. 흐음. 한참 달려온 후, 샌슨은 말을 걸어왔다.

“야, 후치.”

“그만! 나 저 계집애 원하는 대로 해주기에도 지쳤어. 그러니 더 이상 그 일로 날 놀리지 마.”

표독스러운 하녀의 목소리에 이어 문이 활짝 열렸다. 하녀는 부지깽이를 들고 돌격해 나왔다가 샌슨에게 팔을 잡혔다. 하녀의 눈이 커지고 고함을 지르려 하는 순간, 샌슨은 하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떠들면 가만 안 두겠어.”

두건 뒤에서 들리는 샌슨의 목소리는 무시무시했다. 하녀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샌슨은 하녀의 입을 막은 채 말했다.

“입을 놓겠어. 하지만 만일 비명을 지르거나 하면 큰일 날 줄 알아.”

하녀는 입이 풀리자 당장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모기 소리를 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샌슨은 좀 당황해서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다치지 않아요. 자, 안에 당신 말고 또 깨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뇨, 아무도 없어요. 저도 자고 있었는데 누가 불러서………….”

그러자 샌슨은 하녀를 돌려세우고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좋아요. 안을 안내해 주십시오. 당신 등에 단검이 있으니 서툰 짓은 말고.”

하녀는 너무 떠느라 걸음을 못 옮길 지경이었다. 어쨌든 하녀를 다그쳐서 우리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부엌 건물과 본관이 연결된 문이 보였다. 그 안쪽은 홀이고, 대개 그렇듯이 홀에는 하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원래 하인 방이라는 것 은 없으니까. 하녀 방은 있는데 말이야.

나는 그 와중에도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들어 있는 하인을 밟을 뻔했다. 간신히 그 손을 조금 차는 선에서 멈추었다. 하인은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잠들었다. 그 짧은 순간 우리 넷은 식은 땀을 흘리며 굳어 있었다. 샌슨은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후치, 임마!”

“우하, 후! 내가 더 놀랐으니 그만해.”

우리는 살금살금 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이 삐걱이는 소리에 질겁했지만 하인들은 낮의 고된 집안일 때문인지 깨지 않았 다. 2층에 다 올라오자 계단 좌우로 복도가 있었고 앞으로도 복도가 있었다. 앞쪽 복도의 끝에는 화려한 문이 보였다. 하녀가 그 방을 가리키기도 전 에 우리는 그 방이 남작의 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샌슨은 말했다.

“마법사는 어디 있습니까?”

“지, 지하에, 저기 복도 끝에 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요.”

“당신은 저 문을 열 수 있습니까?”

“아, 아뇨. 열쇠는 남작님과 집사님만 가지셨어요.”

“그래요. 당신이 우릴 안내했다는 것을 들키면 당신은 무사하지 못하겠지요? 이렇게 합시다. 내가 당신을 기절시키지요. 당신은 우리들에게 반항하 다가 맞았다고 하세요. 알겠죠?”

하녀는 허옇게 질렸지만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사, 살살 해주세요.”

“그럼 실례.”

샌슨은 고개까지 꾸벅하고 나서 하녀의 복부를 후려쳤다. 둔한 소리가 나고 하녀는 그대로 허물어졌지만 샌슨은 하녀를 받쳐들었다가 그대로 벽에 기대어 앉혔다. 샌슨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거, 여자를 때리다니 너무 미안하군.”

“그래도 고마워할 거야. 자, 지하로 내려가자.”

“왜?”

“저 문을 열려면 하인들이 다 일어날 테니까. 먼저 마법사를 붙잡은 다음 마법사를 시켜 문을 열게 하자.”

우리는 2층 끝에 있는 계단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2층에 있는 거지? 희한하군. 칼이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지하실은 원래 중요한 용도가 있을 거야. 어떤 예법에 의하면 1층은 하인들의 생활 공간이고 2층은 주인 가족들의 생활 공간이거든. 그래 서 중요한 지하와 2층을 연결해 둔 거야. 거기엔 하인들이 다가가지 못하지.”

그런가? 어쨌든 원래 무슨 목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2층에서 지하까지 내려가는 길이라 그런지 계단은 가파르고 꽤 길었다. 다행히 돌계단이라 소리 는 나지 않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 계단을 내려가자니 벽을 더듬으며 꾸물거려야 했다. 그러자 이루릴이 말했다.

“자신의 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령, 그를 감추는 어둠은 오히려 그의 먹이, 나와서 어둠을 삼켜요.”

갑자기 환한 빛이 떠올라 기겁할 뻔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캄캄한 복도에서 갑자기 빛을 보아서 놀란 것이다. 빛의 중 앙에는 그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하늘거리는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난 칼을 바라보았고, 칼은 대답했다.

“윌로위스프로군. 듣던 대로 아름다워. 빛의 정령이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윌로위스프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간단했다. 그 불빛은 붉지 않고 약간 푸르스름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바닥까지 내려오니 문 하나가 보였다. 문은 나무판에 철재로 보강한 꽤 튼튼해 보이는 것이었다. 자! 어떻게 열지?”

이번에도 이루릴이 나섰다. 그녀는 나와 샌슨을 문 양쪽에 서게 하고 윌로위스프는 문 위쪽으로 날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또 캐스트했다. “그 숨결에 생명을 담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종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여. 여기서 그대의 권능 중 하나를 거두세요.”

바람이 있을 리 없는 지하에 바람이 불었다. 잠시 이루릴은 우리가 내려온 계단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위쪽으로는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을 거예요. 이제 그자로 하여금 문을 열게 하지요.”

“예? 문을 어떻게?”

“불이야.’라고 고함치세요.”

오호라! 지하실에 있는 자라면 불이 났다는 소리에 질겁을 할 게다. 샌슨과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불이야!”

과연 문 안쪽에서는 잠시 후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뛰어나온 것은 웃통을 벗은 남자였다. 문이 열리자 윌로위스프는 그 사람의 눈에 다가들었고 그 남자는 다급하게 눈을 가렸다. 아프나이델이었다.

샌슨은 눈을 가리고 있는 아프나이델의 뒤통수를 간단히 잡았다. 샌슨은 그의 팔을 꺾어 잡으며 목에 대거를 들이대었다.

“안녕하시오? 싸구려 마법사.”

그자는 그제야 눈을 슬며시 뜨더니 우리를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뭐야………….., 불이 난 게 아닌가?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가 고함친 거야. 자, 안으로 들어가실까?”

샌슨은 그자를 밀어붙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괴상한 냄새도 풍기고 있었는데 썩는 냄새, 기름 냄새, 유황 냄새 등으로 코를 싸매야 될 지경이 었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 쇳가루, 금가루, 크리스털 볼, 유황, 동물의 내장이나 털 등의 일부분들, 동물의 대소변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온갖 희 한하게 생긴 도구들과 철사, 밧줄들이 벽에 가득 걸려 있었고 책장마다 요상한 병이 가득 차 있었다. 이루릴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윌로위스프를 돌려 보냈다.

샌슨은 그자를 바닥에 무릎꿇게 한 다음 얼굴을 가린 두건을 풀었다.

“너, 너는!”

아프나이델은 대경실색했다. 그리고 다른 우리들도 각자 두건을 풀자 아프나이델은 숨이 막혀서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샌슨은 능글맞게 웃으 며 말했다.

“죽이고 나서 괴롭혀줄까, 괴롭히고 나서 죽여줄까?”

아프나이델의 얼굴이 초주검이 되었다. 나는 먼저 내 물건을 돌려받기로 했다.

“이봐, 내 OPG부터 내놔 어디 있지.”

“그건, 저, 저기 화로 위의 냄비에…………….”

“으악! 냄비라고?”

난 놀라서 화로로 다가가보았다. 정말 냄비에는 물이 담겨 꿇고 있었고(뭔지 모를 것을 잔뜩 넣어 물의 색깔과 냄새는 엉망이었다), 그 안에 내 OPG가 둥둥 떠 있었다. 아이고 맙소사. 난 옆에 있던 쇠막대기를 사용해 그것을 꺼내들었다.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끌려 올라오고 있었고 집게손가락 부분에는 어떤 동물의 눈알까지 하나 딸려 올라왔다. 욕지기 나는군.

“도대체 뭘 한 거야?”

“여, 연구를…….”

“삶아먹으려고 했던 것 아냐? 돌겠네.”

난 그것을 옆에 있는 물통에 집어넣어 씻고는 대충 턴 다음 수건으로 닦고 다시 손에 끼어보았다. 아무런 감각은 없었지만 이건 원래 그렇다. 알아보 려면…………, 난 벽에 걸려 있던 쇠몽둥이 하나를 꺼내어 휘어보았다. 예전처럼 부담 없이 휘어졌다.

“괜찮은데. 그런데 이걸 어쩌려는 생각이었어?”

“오, 오거 패밀리어를 불러내려고………….”

패밀리어? 그때 이루릴이 미소를 지었다.

“우습군요. 어떻게 오거를 패밀리어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당신은 도대체 마법을 어디서 익혔나요?”

그러자 아프나이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다, 당신 패밀리어를 아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아요.”

“좀, 가, 가르쳐줄 수…….”

“예. 불러내려는 패밀리어의 종류에 따라 밤낮의 시간이 달라지는데 원하는 동물의 활동 시간을 골라 시작합니다. 놋쇠 화로에 숯을 가득 채우고 거 기에 향을 가득 집어넣어요. 향의 양은 숯을 완전히 덮을 정도면 충분하며, 주문이 완성될 때까지 몇 번 더 집어넣어야 해요. 그리고 이때 알로에 …….”

샌슨과 칼, 그리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차분히 불러주는 이루릴과 열심히 받아적는 아프나이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화기애애하고 탐구적인 분 위기네? 우리는 그 동안 아프나이델의 해괴한 물건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기다렸다. 이루릴은 설명해 주고는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주기도 했다.

아프나이델은 다 받아적고는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맞았어! 여, 역시 엘프는 인간과 달라서 마법을 잘 가르쳐주는군!”

이루릴도 방긋 웃었다.

“새로운 주문은 소중한 것이죠. 대가는 목숨이에요.”

아프나이델은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의 얼굴이 질리는 것이 우리를 퍽 유쾌하게 만들었다. 이루릴은 정말 침착하며 냉철한데. 그녀는 싸늘하게 말했 다.

“당신은 이미 받았어요. 그러니 이젠 내가 대가를 받지요. 불만은 없겠지요?”

이루릴은 에스터크를 뽑아들었다. 아프나이델은 뒷걸음질치다가 발이 걸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말했다.

“사, 사, 살려주…….”

“당신은 그 싸구려 마법으로 그 남작을 보좌하며 이 시의 시민들을 농락해 왔겠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욕망도 마음껏 채웠겠지요. 아마 퍽 즐거웠을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하지만 유피넬은 반드시 대가가 치러지도록 세상을 규정지었다는 것을 왜 몰랐나요. 유피넬이 저울을 만들고, 헬카네스는 추 를 만들지요. 당신의 저울대는 너무 기울었어요. 이제 평형을 맞춰야지요. 당신의 목숨을 추로 삼아.”

이루릴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마치 내일의 날씨에 대해 말하는 투였지만 아프나이델에게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아프나 이델은 계속 뒷걸음질치다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루릴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아프나이델은 고함을 질렀다.

“나, 내가 욕망을 채웠다고!”

이루릴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아프나이델은 공포로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매몰차게 외쳤다.

“제기! 당신네 엘프와 달라서 인간 마법사는 마법을 선선히 가르쳐주지 않아! 10년을 공부해도 겨우 클래스 2 마법밖에 배우지 못했어! 그렇게 오랜 세월 봉사해 주었는데!”

“마법은 쉽게 배워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텐데요.”

“그래도 난 견딜 수 없었어! 젊은 시절을 모두 그 곰팡내 나는 늙은이에게 바칠 수는 없어. 그래서 뛰쳐나온 거야! 하지만 클래스 2 마법 가지고는 이런 싸구려 장사꾼의 부하 노릇밖에 할 수 없었어!”

이루릴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인간에겐 마법을 익히기 위해 소모되는 기간이 너무 길겠지요.”

“그래! 우린 엘프가 아냐. 다른 젊음의 욕구를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마법만 갈고 닦아도 쓸 만한 마법사가 되려면 이미 중풍 맞을 나이가 된단 말이 야. 난 그게 싫었어. 그래서 뛰쳐나온 거야! 욕망? 허! 욕망이라. 그래, 솔직히 생활은 편했지. 남작이 지정하는 사람들을 적당히 괴롭히면 그만이었 어. 그래, 꼬마야! 네 말대로 그런 사람에게 밧줄이나 던지고 뼈다귀나 던지면서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항상 불안했어. 언제 나보다 더 우수한 마법 사가 여기 들이닥칠지 몰랐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별볼일 없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무서웠어! 그래서 스스로를 대마법사라 불렀고, 저런 욕지기나는 옷도 입었어! 하지만 나도 결국 못 견디겠더라고. 나는 마법사야! 마법 연구가 그리워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그래서 매일 연구하 고, 알지도 못하는 주문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보려고 실험해 보고…”

아프나이델은 내 OPG를 가지고 주문을 만들어내어 보려고 했던 것이군. 칼이 물어보았다.

“왜 스승께 돌아가지 않았소?”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내 방종한 생활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요.”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울고 있었다. 이루릴은 그 모습을 보더니 에스터크를 다시 집어넣었다.

“유피넬과 헬카네스는 시간을 만들었지요.”

아프나이델은 눈물을 닦으며 이루릴을 올려다보았다. 이루릴은 말했다.

“시간은 절대적이며, 불변적인 것. 그러나 이용할 수는 있겠지요.”

이루릴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시간을 남겨두겠어요. 잘 이용해 보아요. 당신 스스로 당신의 기울어진 저울대를 바로잡아요. 스스로의 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을 바꿔 요.”

아프나이델의 얼굴에 그제야 희망이 돌아왔다. 그는 이마를 땅에 찧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샌슨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이루릴이 다 해버려서 우린 더 할 게 없군.”

“맞아. 나라면 가차없이 두드려 팼을 텐데. 저거 점잖긴 한데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기대했던 것은 아니야.”

이루릴은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후치.”

“아뇨, 천만에요! 썩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남작은 우리에게 남겨줘요. 이봐! 아프나이델?”

아프나이델은 그때까지 계속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가 다시 한번 부르고 나자 일어섰다. 난 그에게 말했다.

“자, 당신은 이루릴이 처리했지만 남작은 좀 다를 거야. 우리와 함께 올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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