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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02화


1602화. 웃음도 안 나오는군. (7)

쩌적.

“⋯⋯.”

무겁게 내리깔려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차마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듯, 힘겹게 눈꺼풀이 열렸다. 그러자 그 깊이와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검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눈에는 앞에 놓인 금강종(金剛鍾)이 비쳐 있었다.

금강종이 길게 갈라지며 금이 가 있었다.

“옴 마니⋯⋯.”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반메⋯⋯훔.”

끊길 듯한 목소리가 겨우겨우 여섯 자 진언을 완성한다. 아직 앳된 손이 갈라진 금강종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법왕.”

소년, 달뢰라마가 고개를 들었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금불(金佛)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참 동안 그 불상을 응시하던 달뢰라마가 다시 눈을 감았다.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반센라마는 안색을 굳힌 채 그런 달뢰라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때로 달뢰라마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홀로 되뇌곤 한다. 속세의 불완전한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법으로 가득 찬 말을 조악한 사람의 말로 옮기기에 벌어지는 일일 터.

“피할 수 없기에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겠지요.”

이는 반센라마에게 하는 말이되, 반센라마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저⋯⋯.”

다시 눈을 뜬 달뢰라마의 뺨으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고통이 너무 깊지는 않기를.”

❀ ❀ ❀

⋯⋯참혹하다. 그 정도 말이라면 이 광경을 설명할 수 있을까.

호가명은 수많은 전장을 거쳐 왔고, 숱한 죽음을 보았고, 그 안에 스민 까마득한 비참함을 보아 왔다.

오히려 그렇기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광경 하나가 그의 주인인 장일소를 단숨에 이 먼 곳까지 이끌었다는 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눈앞의 광경은 참혹하고도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조금 큰 웅덩이뿐이다. 정확히는 황톳빛을 띤 주변 땅에 비해 검붉게 물든, 지름 이십여 장 남짓의 대지.

사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간혹 보이는 옷가지 조각이나 드문드문 흩어진 육편이 이곳에 수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호가명은 문득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마른침을 삼켜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마치 가시 같은 게 목을 파고들며 계속해서 날카롭게 할퀴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입 안의 혀까지 모래 덩어리로 변한 듯 입 안이 까슬거린다.

갈기갈기 조각 나 본래 형태를 잃었다고 해도 홍견 특유의 문양을 새긴 옷자락이 말해 주었다.

이곳에 있었다. 분명 이곳에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명백히 여기에, 그들이 보낸 홍견이 존재했다. 저 화음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짜내고 짜내어 돌린 별동대가.

도대체 어떻게 그 별동대가 이렇게 당할 수 있는가?

어떻게?

아니, 사실 당했단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당했다는 말을 쓰기 위해선 적어도 서로가 충돌하고 맹렬히 싸운 끝에 패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일방적이라 해도, 적어도 저항이라도 해 보았을 때 그런 말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런 흔적이 조금도 없다.

수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단어 중 그나마 이 광경을 구차하게나마 표현할 수 있을 것은 ‘증발’. 그뿐이었다.

말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그가, 그리고 장일소가 심혈을 들여 키워 낸 정예들이.

세상 누가 이런 일을 가능케 할 것인가?

저 소림이 온전한 힘으로 이들을 상대했다고 해도 이렇게는 안 된다. 어쩌면 저 구파일방이 통째로 달려들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에워싸서 궁지에 몰아넣고 죽이는 거야 가능할 테다. 그건 굳이 구파가 아니라 만인방의 힘만으로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정예인 무인을 이렇게 저항한 흔적조차 없이 모조리 터트려 죽이는 건⋯⋯ 사람의 힘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이 광경은 작되 압도적이다.

호가명의 앞에 선 장일소는 한참을 침묵했다.

저 소림을 격퇴했으며, 구파일방의 치세를 끝낸 이.

당금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말 그대로 희롱하고 있는, 천하의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패군.

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일소의 어깨가.

“련주⋯⋯.”

“하⋯⋯.”

내내 침묵하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호가명은 장일소의 뒷모습만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표정을 능히 짐작하였다.

잠깐 흘러나왔던 실소는 채 웃음이 되지 못하고 공허하게 흩어졌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그 어정쩡한 목소리는 그저 흐려졌다.

이윽고 장일소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웃음도 안 나오는군.”

소매 아래로 늘어진 그의 손이 호가명에게도 보일 만큼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호가명은 차마 그런 장일소를 비웃지도, 격려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게 된다.

신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이일수록 신을 숭배하게 된다. 이 광경을 더 잘 이해할수록 이 거대한 힘에 짓눌릴 것이다.

호가명이 느끼고 있는 이 숨 막히는 공포는 장일소가 느끼고 있을 거대한 압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악마라도 되는 건가? 아니⋯⋯. 차라리 신이라 해야겠군.”

채 완성하지 못한 웃음이 신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질 나쁜 농담이야.”

늘 장일소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여유나 특유의 웃음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패련의 련주, 이제는 그것마저 넘어 사도대종사(邪道大宗師)라 불려야 마땅할 존재. 지금쯤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안주 삼아 한없는 즐거움에 취해 있어야 할 자.

하지만 이곳에 그 위대한 자는 없다. 그저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고 절망해 버린 한 인간뿐이었다.

“⋯⋯누구지? 여길 발견한 이는?”

장일소가 묻자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떨고 있던 이들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꾸역꾸역 떼며 나섰다.

“말해 보렴.”

“저, 저희는⋯⋯ 마, 말을 돌보기 위해 따라온 이들입니다.”

“말?”

“예! 가, 갈아탈 말을⋯⋯.”

장일소의 눈이 가라앉았다.

“본론만.”

그 섬뜩한 눈빛에 겁을 집어먹은 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뭐라 지껄이는지도 모르는 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았다.

“저, 저희가 뒤늦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미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도 따, 딱히 특별한 걸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그들의 시선이 변명하듯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백치처럼 허공을 보며 주저앉아 있었다.

장일소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저 넋을 놓아 버린 이의 복색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저, 저분이⋯⋯.”

“데려와.”

“예?”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호가명이 직접 움직였다. 넋을 놓은 홍견이 질질 끌려왔다. 우악스러운 손길이었지만, 홍견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하얗게 타 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털썩.

홍견이 앞에 주저앉혀졌다. 이를 빤히 내려다보던 장일소가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마주했다.

“날 보렴.”

“⋯⋯.”

“날 봐.”

풀려 있던 눈동자가 아주 조금 또렷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지?”

탁하게 초점이 없던 눈동자가 점차 무언가를 되살려 내려는 듯 어지럽게 움직였다.

“죽⋯⋯.”

“뭐라고?”

“죽⋯⋯어. 다⋯⋯ 다 죽⋯⋯.”

“⋯⋯.”

“죽어. 다 죽어. 다 죽어. 다, 다 죽을 거야. 다! 죽는다. 죽어. 죽는다. 다 죽을 거야! 다아아아아아아아아!”

홍견이 눈을 까뒤집고 발작을 일으켰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양손을 허우적대며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급기야 목을 움켜잡은 채 경련했다.

“끄르륵⋯⋯. 끄륵! 끄으으⋯⋯.”

게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그는 제 얼굴과 목을 뜯어내듯 거세게 긁었다. 얼굴이 금세 상처에 뒤덮이며 피로 범벅되었다.

장일소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끄륵.”

결국 혼절해 버린 이가 축 늘어졌다.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호가명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의식을 잃고도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발작하는 홍견을 빤히 보던 장일소가 말했다.

“여길 본 건 이자와 너희 둘뿐인가?”

“그, 그렇⋯⋯.”

파하아아앗!

그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머리와 쓰러져 경련하던 홍견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흠칫 놀라고 만 호가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처사다. 이런 걸 알려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이런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대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는 모든 걸 무너뜨리는 법이니까.

피를 쏟는 세 구의 시신과 검붉은 웅덩이를 말없이 응시하던 장일소가 마침내 웃음 같은 웃음을 피식 흘렸다.

“살려 줬군.”

“⋯⋯.”

“개미 떼를 밟는 사람이 옆으로 삐져나가는 한 마리의 개미 따위는 굳이 쫓아가서 눌러 죽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맥 빠진 실소에 지나지 않았지만.

“신기루라⋯⋯.”

장일소가 쿡쿡 웃었다.

“제아무리 아등바등해 봐야⋯⋯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건가? 내가 손에 넣는 건 어차피 가질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거라고?”

끔찍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거대한 허탈감이 그의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장일소는 붉은 입술을 콱 짓씹었다.

항거할 수 없는 힘. 차마 대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대한 존재. 이건 ‘재해’다.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앞에선 사람이 일으킨 겁화 따위야 우습지도 않은 장난에 불과하다.

이 순간 그 사실을 가장 절감하는 건 바로 장일소였다.

“하⋯⋯. 하하하.”

억눌려 있던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터질 듯한 광소. 그러나 평소 그가 쏟던 웃음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돌아가자, 가명아.”

“예⋯⋯.”

붉은 장포를 날리며 장일소가 몸을 돌렸다.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이 그의 눈에 한껏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는 더없이 생생했던 세상이 이제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신기루처럼 허황하고 위태롭게만 느껴진다.

‘⋯⋯웃기지 마라.’

장일소의 두 눈이 새파란 귀화를 품었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 망가뜨려 주지. 그게 내⋯⋯. 아니,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장일소의 묵직한 걸음이 내디뎌졌다.

언제고 사라질 족적을 땅에 아로새기며.

❀ ❀ ❀

사그락.

사그락.

신을 신지 않은 흰 발이 짧게 자라난 수풀을 느릿느릿 밟았다.

결코 빠르지 않은 걸음. 서두르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넝마 같은 피풍의에 반쯤 가려진 얼굴은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했다. 다만 눈은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것처럼 텅 비었다.

사그락.

발이 내디뎌진다.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채, 깨어난 이는 그저 제 본능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윽고 찾아내리라.

걷고 또 걷다 보면 알게 되리라. 그가 있어야 할 곳, 그가 닿아야 할 곳에 당도하는 순간이 오면.

사그락.

고행처럼 발을 내딛던 이가 천천히 눈길을 어디론가 돌렸다.

남쪽 하늘과 맞닿아 있는 커다란 산맥. 그리고 그 중심에 솟아 있는, 바위로 가득한 드높은 봉우리.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내는 손에 잡힐 것처럼 그 모든 것을 훤히 보았다. 텅 빈 두 눈으로.

말없이 산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억하고 있다.

들은 적 없음에도, 배운 적 없음에도 사내는 자신이 조금 전에 본 게 무언인지 알고 있었다.

“화⋯산⋯⋯.”

그 짧은 한마디를 노래처럼 흘린 그는 다시 걸음을 이어 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또 이내 거짓말처럼 끝나 버릴 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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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가입니다.

항상 화산귀환과 함께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단원의 마침표를 찍은 지점이라, 차후 연재 준비를 위해 10일간 휴재 기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잘 준비하여 더 좋은 내용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10월 16일 연재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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