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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18화


1618화. 끊을 각오는 있어. (3)

“일어나세요. 붕대 갈아야 해요.”

전신에 붕대를 친친 감은 채 누워 있던 남궁도위가 조금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 혹시…… 다른 의원은 없소?”

“왜요? 뭔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아니라 소저께서는…….”

“소저가 아니라 도장이요.”

“그렇지요, 도장. 중한 임무를 맡고 계신 분께서 이런 사소한 일까지 해 주시는 게 영 죄송스러워서…….”

“지금 여기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 저니까 잔말 말고 일어나세요.”

“……예.”

남궁도위가 상체를 일으켰다. 당소소가 능숙한 손길로 더러워진 붕대를 풀고 새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남궁도위는 그 모습을 조금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당소소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왜요?”

“아니……. 무척 능숙해 보여서 말이오.”

“…….”

“남궁세가에도 의약전이 있지만, 그곳의 전주도 도장처럼 능숙하지는 못……. 아아아악!”

당소소가 무표정한 얼굴로 상처를 꾹 찌르자 남궁도위가 불판에 떨어진 오징어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그의 얼굴이 당혹과 고통으로 시뻘게졌다.

“무, 무슨……!”

“여긴 다 아물었고. 흠. 여기는…….”

“잠깐! 서, 설마 또 찌르려는 건 아니겠지요?”

“뭔 엄살이 이렇게 심해요? 우리 사형들은 상처를 맨손으로 헤집어도 심드렁하게 헛소리나 해 대는데.”

남궁도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물론 당소소의 실력은 확실히 인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성격도 다른 의미로 인정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남궁세가의 자식과 당가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서로 왕래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 속의 당소소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당소소와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달랐다.

물론 가장 다른 건 성격이 아닌 실력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당소소가 청명과 백천이 부재한 이곳을 무리 없이 장악해 낼 줄은 몰랐다. 물론 등 뒤에 청명의 그림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본인의 능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당소소는 명주실로 꿰매어진 상처들을 꼼꼼히 점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물었네요. 내일부터는 조금씩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

“……감사하오.”

“아, 그리고.”

“예?”

“딱히 내 실력이 탁월한 건 아니에요. 워낙 상처를 꿰매고 돌본 경험이 많다 보니 능숙해진 것뿐이죠. 우리 사형들은 사람 몸뚱이가 대충 꿰매면 낫는 헝겊 인형쯤 되는 줄 알거든요.”

그건 그렇기야 하지…….

남궁도위가 보기에도 화산의 과격함은 어떤 의미로는 사파도 넘어섰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천하의 마교 놈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 것이다.

남궁도위는 본인이 앓는 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을 물었다.

“전황은 어떻소?”

“수로채 쪽은 이제 거의 정리되고 있어요. 강북에서 몰아내는 건 곧 끝날 거예요.”

수로채 이야기가 나오니 남궁도위의 얼굴이 슬며시 굳어졌다.

“나는 아직도 이게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소. 조금 더 희생을 각오한다면 저들을 모조리 격멸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퇴로를 열어 줄 필요가 있겠소?”

“퇴로를 열어 주지 않으면 우리도 희생을 각오해야 해야 하니까요.”

“음…….”

“말씀드렸지만, 저는 무인인 동시에 의원이에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덜 죽고 덜 다치는 거죠.”

남궁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당소소의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방식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사실 냉정히 따져 보면, 그렇기에 지금 남궁도위가 이곳에 누울 수 있었다. 만약 당소소가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수로채를 모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남궁도위 역시 이렇게 몸을 돌보긴 어려웠을 것이다. 상처가 덧나고, 그러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장을 지켜야 했겠지.

‘쉽지 않군.’

남궁명을 섬서로 보내 놓고 그는 이렇게 몸져누워 있다. 초조함을 금할 수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남궁의 전력이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남궁도위를 한시도 평온치 못하게 했다.

그나마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하는 이가 당소소이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일 다른 이가 지휘를 맡았다면 이렇게나마 안정을 취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제…….’

“꿈도 꾸지 마세요.”

“……무슨 말이오?”

“외상은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내상은 아직 심해요. 벌써 무리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예요. 설마 그런 바보는 아니겠죠?”

남궁도위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싼 상황이라는 건 압니다. 그런데 좀 억울하군요. 부상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날뛰는 건 화산의 특기가 아니었소?”

“……부정하기 어렵지만, 화산은 경우가 달라요. 화산의 내가기공은 몸을 보호하는 안정성에 있어선 비교할 데가 없거든요. 패도를 중심으로 한 남궁세가의 심법과는 차이가 있죠.”

“아…….”

“물론 그것 때문에 정도를 모르고 날뛰니 의원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긴 하지만요.”

당소소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에 쥐고 있던 새 붕대를 정리해 넣었다.

“그리고…… 이왕 신경 쓸 거면 이곳이 아니라 섬서에 더 관심을 두는 게 어떨까요?”

“……섬서? 혹여 무슨 일이 있소?”

“아직 들려온 소식이 없어요.”

“그럼 괜찮지 않소?”

“그러니 문제죠.”

“예?”

남궁도위가 의문 어린 눈빛으로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당소소의 얼굴에 우려가 스쳤다.

“비할 바 없는 참패를 겪었으니 청명 사형의 성격상 뭔 일을 벌여도 벌써 벌였을 거예요. 그런데 아직 잠잠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 것 같아요?”

“이번 일에 뭔가 크게 느낀 바가 있어 진중해지기로 하셨다?”

“반대예요. 웬만한 거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정말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이겠죠. 사형은 그런 사람이거든요. 어정쩡한 걸 못 참는.”

남궁도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다.

“그럼 굳이 도장께서 제 몸을 봐주시는 것도……?”

어서 빨리 몸을 고치고 섬서로 가라는 의미인지 묻는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선 당소소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리예요. 일은 일이고 환자는 환자죠. 의원은 목적을 두고 사람을 돌보지 않아요. 설사 앞에 쓰러진 게 적이고 원수라도 치료만큼은 성심성의껏 한다. 그게 의원 된 이가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에요.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

“원칙을 어기는 순간, 사람은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에요.”

“그 길은 도를 의미하는 거요?”

“그렇겠죠?”

당소소가 처음으로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저도 도사니까요.”

남궁도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삼 생각했다. 아마 과거의 그라면 당소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사파는 그저 박멸하면 그만인데 그 앞에서 왜 인의와 원칙을 들이미느냐고 물었을 테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당소소의 말을 이해한다.

만일 남궁이 고난을 겪지 않았다면. 그가 화산과 당가, 그리고 심지어 녹림과도 어울리며 더 큰 세상을 보지 않았다면. 그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랬다면 과연 남궁도위는 지금 당소소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남궁이라는 드높은 성벽 안에서 그대로 자랐다면, 남궁도위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생각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내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우물 속 개구리처럼 살아갔겠지.

남궁이라는 그의 세상이 무너졌기에, 지금의 남궁도위가 이곳에 있을 수 있었다.

당소소 역시 마찬가지다. 사천당가라는 폐쇄적인 가문 안에서 그대로 머물렀다면 지금의 당소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화산이라는 문파가 그 벽을 허물고,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넘어 들어왔기에 지금의 두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아마 핵심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네?”

“아니오, 아무것도.”

남궁도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남 앞에서 내뱉기엔 조금 민망한 말이었다.

“그럼 되도록 빨리 고쳐 주시오.”

“네?”

“하루라도 빨리 섬서로 가 청명 도장을 도와야 할 테니까.”

남궁도위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자 당소소가 피식 웃었다.

“음, 그래도 사람이 좀 괜찮아지긴 했네요.”

“음? 무슨 말이오?”

“예전에는 진짜 재수 없었거든요.”

“……서로 과거는 묻어 둡시다, 도장.”

“좋아요.”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역사를 묻기로 원만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남궁도위가 물었다.

“그보다…… 소림은?”

“……아. 하남에서 수로채를 모두 몰아내자마자 다시 숭산으로 돌아갔어요. 원래 그러기로 약속했었으니까요.”

“으음, 그럼 혜방 스님께서도?”

“그분은…….”

* * *

사락. 사락.

기다란 빗자루가 연신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낸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비질이지만, 혜방에겐 귀찮은 기색일랑 조금도 없었다. 내력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그는 늘 굳이 비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때때로 생각했다. 불도를 걷는 건 마당을 쓰는 일과 같다고.

아무리 깨끗이 쓸어 내도 그 노력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하루의 게으름은 여실히 드러난다.

불도를 걷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거듭 정진해도 불법에 다다르기란 지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단 하루만 수행을 게을리해도 자신이 불법에서 성큼 멀어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평생 끝이 없는 고행의 길이다.

그 고행 속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찾으려 했던가?

“아미타불…….”

사락. 사락.

생각을 접어 둔 혜방이 마지막 남은 낙엽을 길가로 쓸어 낸 후 허리를 폈다. 이제는 내방객도 잘 찾지 않는 텅 빈 소림의 소로(小路)가 눈에 들어왔다.

그 적막이 혜방의 눈에까지 스미는 그 순간이었다. 그의 동공이 살짝 좁아졌다.

붉게 물든 나무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선 오솔길, 그 끝에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혜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법정이었다. 소림을 떠날 때의 근엄하고 고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젠 그저 추레하고 볼품없는 꼴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법정의 눈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건 그저 깊은 고단함뿐이었다.

말없이 법정을 빤히 보던 혜방이 천천히 반장을 취했다.

“다녀오셨습니까, 방장.”

한참을 말없이 혜방을 응시하던 법정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여전히…… 나를 방장이라 불러 주는가?”

“물론입니다.”

혜방은 짧게 불호를 외고 말을 이었다.

“삶이란 나침반이 없는 항해와도 같다. 그 과정 속에 사람은 항상 고통받고 방황한다. 그렇기에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또한 후회할 일만을 남긴다.”

혜방의 두 눈이 법정에게 올곧도록 향했다.

“고해로 가득한 그 삶 속에서 불법이란 하나의 등불일 뿐이다. 하나 그 등불이 있기에 사람은 고해의 바다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혜방.”

“제게 그 말씀을 해 주신 건 다름 아닌 방장이십니다.”

“…….”

“잘 오셨습니다, 방장. 길을 잃으셨다면, 이곳에 방장의 등불이 있을 것입니다.”

법정이 눈을 감았다.

“나무…….”

불호를 외려던 그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단 하나만은 잃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

“아미……타불.”

불호(佛號).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바라고 또 궁구하는 것.

그날부로 법정은 기약 없는 폐관에 들어갔다.

잃었던 그 안의 등불을 언제고 되찾을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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