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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32화


1632화.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2)

아주 묘한 어색함이 회의실 내부에 흘렀다.

종리곡, 당군악, 맹소, 풍영신개, 그리고 모용위경까지.

익숙한 얼굴과 아직은 조금 낯선 이들이 섞여 있었지만, 천우맹의 회의실 안에 있기에 딱히 어색한 인물은 없었다. 심지어 백천과 윤종, 조걸, 그리고 혜연은 이곳에 있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존재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여 앉은 광경이 굉장히 어색하고, 식은땀 나도록 긴장감을 주는 이유는…… 아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배치 때문일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주님.”

“으음. 나도 잘 부탁하네.”

윤종의 정중한 인사에 모용위경이 움찔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고 있던 화산오검의 정보를 바탕으로 내심 생각했다.

‘윤종이라……. 그나마 나은 결과인가?’

모용위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와 호흡을 맞출 남궁 소가주는 아직 섬서로 오지 못하였으니, 오는 대로 제가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전(前) 방주님.”

“그냥 장로라 불러 주십시오.”

풍영신개가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를 한동안 응시하던 청명이 불현듯 미간을 확 찌푸렸다.

“으음. 사고를 그냥 부당주 시켰어도 됐으려나? 둘이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야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을 당주와 부당주로 모셔야 하는 당원들은 죽을 맛이겠지. 표정과 어투로는 도무지 감정을 읽어 낼 수 없는 인물이 둘이나 있었을 테니까.

청명과 윤종의 대화에 당군악이 쿡쿡 웃다가 제 옆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부당주라니…… 나도 조금 부답스럽군. 아무쪼록 방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잘 부탁하네.”

“아미타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맹주……. 아니, 당주님.”

당군악과 혜연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도 확실히 쉽게 보기 힘든 조합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 회의실의 분위기를 기이하게 만든 게 이들은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된 원흉이 누구냐면…….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항상 우렁우렁하고 묵직한 음성을 내던 맹소가 오늘따라 평범하고 또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명이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뭔가요?”

“……당주 권한으로 부당주를 지정할 수는 없는 건가?”

청명이 빙그레 웃었다.

“되겠어요?”

“안 되는 건 아는데…….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여지가 없겠는가?”

“이왕 이리된 거 그냥 마음을 편히 먹으세요.”

맹소는 한숨을 푹 내쉬며 커다란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의 두터운 목이 드러났다. 평소라면 위압적이기까지 했을 그 목이 오늘따라 참 가냘프고 구슬퍼 보였다.

“아니, 궁주님?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어째서요? 와! 배신감 장난 아니네. 나는 그래도 궁주님이 제일 좋았는데.”

“……그래. 고맙네.”

“아니……!”

붉으락푸르락하는 조걸과 벌써 혼이 빠져 버린 맹소를 보며 청명이 낄낄 웃었다.

“어차피 동물은 익숙하시잖아요? 원숭이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하세요.”

“……차라리 원숭이면 걱정도 안 하지.”

맹소가 중얼거렸다. 이에 동조하며 몇몇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원숭이는 말은 안 하니까.”

“말대꾸도 안 하겠지.”

“칼도 안 휘두르고.”

“사람을 괴롭힌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건 청명이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 사람들이…….”

조걸이 씩씩거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현종과 다른 장문인들이 있는 자리라 차마 그 이상 투덜대지는 못했다.

서로 어색한 거야 매한가지지만, 어쨌든 당주에 올라앉은 이들이 조금 더 어색해하고 겸연쩍어했다. 물론 직위와 입장만을 고려하면 오검 쪽이 더 껄끄러워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그럼. 궁주님 빼고는 다들 문제는 없으시겠지요?”

“네, 맹주님.”

“어휴. 청명이랑도 다니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내 말이.”

“…….”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의 패악질을 받아 내는 데 익숙한 오검은 다른 문파의 장문인쯤이야 딱히 불편하다 느낄 이유조차 몰랐다. 어쨌든 간에 말은 통하지 않는가?

“그럼, 음……. 남은 건…….”

그리고 이젠 모두가 차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아주 불편한 조합만이 남았다.

“저……. 태상장문……. 아니, 맹주님.”

서글픈 목소리가 현종의 귀를 찔렀다. 범의 앞발에 잡힌 토끼의 울음소리를 듣는다면 딱 이러할까.

현종은 과히 묘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평소 그 헌앙하고 반질거리던 얼굴이 저렇게까지 푸르딩딩하게 질리다니. 현종은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백천은 그만큼 간절해 보였다.

“정말…… 정말 이 방법……밖에……는?”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안타까운 마음이고, 이건 그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생각을…….”

돌부처도 눈물을 흘릴 만큼 애절한 목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걸이……. 조걸이가 가기로 했었……는데, 왜 내가…….”

“장문대리께서는 제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그럴 리가요, 장문인.”

“그런데 왜 굳이 다시 생각하라 하시는지?”

토끼를 앞발로 꾹 눌러 잡은 범, 종리곡이 백천을 향해 빙긋 웃었다. 백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 그게…… 제가 뭔가 그…… 의사? 소통? 그런, 어……. 이야기와 말이 어제 먹은 식사에서……. 어? 낮에? 아니, 밤에?”

‘맛이 갔네.’

‘고장 났네.’

‘저러다 죽겠는데?’

‘사숙 얼굴에 비 내린다.’

종리곡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인연이 닿았다면, 장문대리와 제가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면 사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요.”

“제 기억에는 다른 분이…….”

“그럴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장문대리.”

“……예.”

백천이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런 그를 구경했다.

‘솔직히 동정이 간다.’

‘종남을 탈주한 인간이 종남 장문인이랑 같이 다녀야 한다니.’

‘이게 사람 새끼가 할 짓인가?’

다른 이들은 그저 동정하면 그만이지만, 백천에게 있어서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파랗게 질린 채로 땀을 쏟던 백천이 어떻게든 말을 짜내려 입을 열었다.

“그…… 어찌 되었든 잘 부탁……드리겠…….”

“아닙니다, 장문대리. 잘 보여야 할 이는 되레 저이겠지요. 이번에는 제가 과거처럼 장문대리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딸꾹.

“이번 기회에 종남도 꽤 쓸 만한 문파라는 걸 증명하고자 합니다만…… 아쉽게 되었습니다. 제가 종남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면 더 확실히 보여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딸꾹.

“아……. 장문대리, 혹시 그건 알고 계십니까?”

“뭘…….”

“당주들은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두엇 정도의 보좌를 둘 수 있더군요. 당연히 저도 종남의 장로를 한둘 데려갈 생각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종남의 진초백 장로와 동행할 예정입니디만, 괜찮으실는지…….”

이젠 동석한 모든 이들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백천이 칼을 물고 앞으로 엎어져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된 것이다.

몸에서 무언가가 점점 빠져나가는 것처럼 텅 비어 가던 백천이 이내 푹 젖은 미역처럼 의자에 늘어졌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울음을 삼켰다.

그때였다.

“좀 친해진 것 같네?”

“뭐?”

청명의 심드렁한 말에 오검과 당군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친한 거냐, 미친 새끼야!”

“자네가 사람인가? 악마도 이렇게 잔인하진 않겠네!”

“차라리 나랑 바꿔! 내가 갈게! 차라리 내가 간다고!”

“아미타불. 아수라도 도장을 보면 한 수 배우겠다고 고개를 조아리겠소! 퉤엣!”

사방에서 비난과 욕설이 날아들자 청명은 정말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무구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래도 나름 고민해서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줬구만! 이것들은 사람이 배려해 줘도 배가 불러선!”

“……저 미친놈이.”

현종은 그저 한없이 안타까운 눈으로 백천을 보았다. 청명이 놈이 강력히 주장한 대로 백천이 종리곡과 함께 움직이는 게 모양새가 가장 좋긴 하지만, 이건 정말 뭐랄까…….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담한…….

“아, 아. 그만 징징거려요. 첨엔 원래 다 좀 어색하고 그런 거예요. 거, 같이 지내다 보면 정도 쌓이고, 친분도 생기고 그런 거지.”

“……죽여 줘…….”

“안 돼. 전쟁 끝나고 죽어.”

“사파보다 악독한 새끼…….”

장일소도 이 광경을 보았으면 몸서리를 쳤으리라, 이곳의 모두가 확신했다.

낄낄 웃은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이걸로 대충 조합은 나왔고.”

웃음기 어려 있던 눈이 살짝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명령체계는 최대한 단순하게 갈 거예요. 맹주님 아래 제가 있고, 군사부의 두 분이 저를 보좌해 주실 거예요. 여러분은 이 넷의 명 외에는 누구의 명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주시면 돼요.”

“으음.”

당주들과 부당주들이 다소 불안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맹소가 겨우 힘을 내어 입을 열었다.

“……총사. 방식은 알겠지만…… 막상 이리 자리를 잡으니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인가 걱정이 되네.”

“옳은 선택이에요.”

청명이 단호하게 모두를 바라보았다.

“대신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 두세요.”

“뭔가?”

“사패련……. 아니, 장일소 놈에게 전략 같은 건 없어요.”

“……응?”

모두의 얼굴에 의혹이 맺혔다.

소림뿐만 아니라 천하가 장일소의 손에 놀아났다. 그런데 장일소에게 전략이 없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이곳에서 비웃음을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을 꺼낸 이가 청명이기에, 무슨 생각이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놈은 병법 같은 건 쓰지 않아요. 병력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원칙 같은 것도 없죠. 놈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럼 무얼 했다는 말인가?”

“사기.”

청명의 단호한 대답에, 사람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려는 찰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심리전이죠. 놈은 사람의 심리를 읽어요. 그리고 그걸 이용할 줄 알죠. 그러니 병법 같은 걸로는 놈을 상대할 수가 없어요. 놈은 아는 겁니다. 상대가 천이든, 만이든, 백만이든 결국 그 군을 움직이는 건 고작 몇몇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 그 몇몇 사람의 생각만 읽을 수 있으면 뭐든 상대할 수 있는 거예요.”

듣다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중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게 그것인가?”

“아니요.”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그냥 상식이에요. 우리가 알아야 할 건 따로 있죠.”

“…….”

“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파고듭니다. 서로를 어긋나게 하는 작은 부분, 욕망이 충돌하는 미묘한 경계. 모두가 그 경계 위에 있기에 놈은 지금까지 무적이나 다름없었던 거예요. 백 명이 있어도 천 명이 있어도, 그 하나하나를 떼어 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니까. 그러니까…….”

청명이 가라앉은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반드시 서로를 믿으세요.”

“…….”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린 이길 겁니다.”

모두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시작합시다. 놈과 우리, 둘 중 하나만 남을 전쟁을.”

새벽 공기처럼 차가운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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