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6권 – 제11부 :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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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6권 – 제11부 :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4화

4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 오크들은 대지를 할퀴는 폭풍처럼 질주해 왔다. 황야를 빽빽하게 덮으며 몰려오는 오크들의 모습은 악몽 같았다. “우아아아! 취이이익!” 번쩍 이는 글레이브의 반사광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먼지가 오크들의 뒤로 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오크들은 화살을 막기 위하여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올 리고 돌격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크들의 무리 가운데로 그 공성추, 충차? 어쨌든 바퀴 달린 통나무가 돌격해 왔다. 거기에는 오크 수십 마리가 매달려 밀고 있었 으며, 그 거대한 공성추는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가속도를 받자 곧 굉장한 속도로 돌진했다. 투투투투! 방패로 만들어진 그 바퀴가 깨어져나갈 듯이 진동했고 그 몸체는 위아래로 정신 없이 흔들리면서도 곧장 성문을 향하여 돌격해 오고 있었다.

칼은 고함을 질렀다.

“첫 번째에서 기를 꺾어야 된다! 아프나이델!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법을! 목표는 저 공성추요!”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아프나이델은 곧장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는 손에 쥔 그 장난감 삽으로 허공을 퍼내듯이 손을 놀리며 고함질렀다.

“디그 어스!”

콰우웅! 오, 맙소사! 공성추가 굴러오던 길 앞에서 흙이 솟구쳐 올랐다. 마치 아프나이델이 그 땅을 퍼낸 것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질주하던 공성추 는 걷잡을 수 없이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거대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거대한 공성추는 구덩이에 곤두박질쳐 마치 황야에 나무가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땅에서 비스듬하게 솟아나온 공성추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공성추를 밀고 있던 오크들 중의 상당수도 구덩이에 빠지며 비명을 질렀다.

“쾌애애액!”

“취이이익!”

“맙소사! 이토록 멋진 마법이라니!”

칼은 펄쩍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고 크레블린 대장은 체통 없게시리 함성을 지르며 하늘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러대었다.

“우아아아!”

그리고 성루 양쪽에서도 병사들이 커다랗게 함성을 질렀다. 아프나이델의 마법 한 방으로 공성추는 당장 못쓰게 되어버렸고 그러자 오크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 었다. 질주하던 오크들 중 상당수가 제자리에 멈춰 서기까지 했다. 아넨드 씨도 그 모습을 보며 함성을 지를 듯이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넨드 씨 는 숨막힌 소리를 내었다.

“맙소사! 갈고리?”

칼은 자기 머리를 딱 쳤다.

“이런 빌어먹을! 그래서 사다리가 없었군!”

그렇다. 성쪽으로 돌격하던 오크들 중 일부가 갑자기 등 뒤에서 밧줄을 꺼내어 든 것이다. 그것은 앞쪽에 갈고리가 달려 있었으며 오크들은 밧줄을 빙빙 돌리면서 달 려오기 시작했다. 칼은 옆에 세워두었던 활을 들어올리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

“일제 사격! 목표는 갈고리를 든 오크!”

크레블린 대장이 다시 고함지를 필요도 없었다. 사수들도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수들은 갈고리를 든 오크들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퓽퓽퓽퓽퓽!

첫 번째 일제 사격에서 많은 수의 오크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혹은 다른 곳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취에에엑!” “크우욱!” 그러나 다른 오크들이 커다란 방패를 들어 올려 갈고리를 든 오크를 보호했다. 그리고 갈고리를 든 오크들 뒤쪽으로 다른 오크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놈들은 곧장 성 위를 향해 활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오크 들이 가진 것은 조잡한 쇼트 보였지만 조잡하다고 해서 맞아도 안 죽는 것은 아니다. 빌어먹을! 놈들이 성문을 향해 올 줄 알았는데 성벽을 곧장 넘을 생각을 하고 있 었다니!

길시언은 프림 블레이드를 뽑아든 채 외쳤다.

“성벽 위로 갑니다! 칸 아디움의 성벽을 넘을 오크들은 나 길시언에게 허락을 받아야 될 거요!”

그렇게 외치면서 길시언은 성루에서 곧장 갤러리를 향해 뛰어내렸다. 그러자 샌슨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저쪽의 통과 허가증은 내가 발부하지! 대가는 오크의 모가지야!”

그리고 샌슨은 반대쪽 갤러리로 뛰어내렸다. 사수들의 2회에 걸친 사격이 끝나고 잠시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오크들은 어느새 성벽 아래까지 진격했다. 놈들은 빙빙 돌리던 밧줄을 힘차게 위로 던져올렸고 곧 흉벽에 갈고리가 걸리면서 쇳소리를 내었다. 철컥, 타당! 흉벽 뒤의 사수들은 당황해서 활을 내려놓으며 갈고리를 다시 던 져내려고 했지만 사수들이 일어나면 곧장 아래쪽의 오크 사수들이 집중 사격을 했다. 삽시간에 상당수의 사수들이 성벽 위에 쓰러졌다.

“어머니! 으악!”

“크으윽!”

갤러리로 뛰어내린 길시언은 두말하지 않고 갈고리 자체를 후려쳤다. 카각! 밧줄이 잘려나가며 올라오고 있던 오크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시언은 갤러리 를 주욱 달려가면서 계속해서 옆으로 검을 휘둘러 밧줄을 잘라내었다. 칵! 카가각, 탕탕! 흉벽의 돌과 프림 블레이드가 부딪히며 뼈를 긁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성 루에 남아 있던 나머지 일행들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다음 양쪽으로 뛰어내렸다. 아주 빌어먹게도 성벽 위에는 칼잡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보병들은 성문이 돌파당 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모두 아래쪽의 옹성에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벽을 넘어오는 오크들을 막을 사람은 우리들뿐이다. 엑셀핸드와 운차이는 길시언 쪽으로, 그

리고 나와 네리아는 샌슨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제레인트와 아프나이델, 레니는 성루 위에 남았다.

아프나이델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파이어볼!” 성 아래쪽에 불구덩이가 만들어지며 수많은 오크들이 산 채로 불타올랐다. 굉장한 폭음과 연기. 불 붙은 오크들 이 발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크아아악! 그러자 옆에 있던 오크들이 극진한 우정으로서 불 붙은 놈들의 목을 단숨에 날려주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머리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사수들이 날린 화살보다 오크에 의해서 쓰러지는 오크가 더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 앞쪽으로 샌슨은 작두로 건초 썰듯이 갈고리 밧줄들을 신나게 잘라내고 있었다. 탱탱탱! 샌슨은 여유 있게도 밧줄에 오크들이 매달릴 때까지 기다린 다음 잘라내고 있었다. 그래서 밧줄이 끊어지면서 오크들은 아래로 떨 어져 목뼈를 부러뜨리고 있었다. 아넨드 씨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사수들 중 셋의 하나는 대거를 꺼내어 밧줄을 잘라라! 명심해! 셋의 하나다! 나머지 둘은 계속 활을 쏴!”

웃기는 소리! 이 난장판에서 어떻게 셋을 정하고 어떻게 하나를 고른단 말이야! 명령을 받은 사수들은 대거를 뽑아들면서 엉거주춤 일어났지만 오크들의 쇼트 보는 사정이 없었다.

“으아아아!”

“꺄아아악!”

네리아는 가슴에 화살을 맞은 채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병사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난 허리를 굽힌 채 달려가며 고함을 질렀다.

“머리를 들지 마! 머리를 들지 말라구!”

“카리스 누멘!”

저편의 엑셀핸드는 도끼를 양손 잡기로 쥔 채 신나게 흉벽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도끼가 돌에 부딪혀 불꽃이 튀었고 그때마다 밧줄은 끊어지며 오크들은 아래로 떨 어졌다. 그때였다.

“후치! 엎드려!”

난 항상 그 명령에 충실하지! 난 앞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높은 성벽 위였고 함부로 몸을 던질 수 없었다. 옆을 돌아본 순간 커다란 이빨들 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제에에길!

“크아아악!”

흉벽 너머에서 오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어느새 밧줄을 타고 올라온 그놈은 흉벽을 걷어차며 나에게로 몸을 날렸다. 컥!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은 짧았고, 순간 목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 그리고 뒤로 디딘 발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하늘이 빙 도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뻗은 팔에 잡히는 것 을 콱 끌어당겼다.

“후치잇!”

그렇게 해서 나와 오크는 성벽 뒤 도시 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간신히 면했다. 난 한 손으로 성벽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내게 뛰어든 오크는 내 허리에 매달렸다. 그런 데 망할 오크 녀석은 내게 매달린 채 내 허리를 깨물었다. 이 개자식아! 난 다른 손을 들어올렸다가 그놈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꽤애액!”

오크는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네리아의 팔을 붙잡아 간신히 올라왔다. 깨물린 허리에서는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난 숨을 헐떡이며 흉벽을 쳐다보았다. 흉벽 여기저기서 오크들의 머리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샌슨이 고함을 지르며 흉벽 위로 올라오는 오크들의 머 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활을 들어 오크를 내려치는 사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제길, 성벽이 함락 직전이다! 그러나 내가 있는 한 그건 안 돼! 트라이던트를 휘둘 러 성벽 위로 올라온 오크의 손을 내려친 네리아가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후치야! 너 괜찮아?”

“직접 보여드리죠!”

난 허리의 고통을 깨끗이 무시한 채 손을 뻗어 가까이 걸려 있던 갈고리 밧줄을 잡았다. 묵직한 느낌으로 봐서 오크가 매달려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 됐어! 난 고 함을 지르며 밧줄을 끌어올렸다.

“이야아아! 성벽 위의 사람들! 모두 머리를 숙여!”

그리고 곧장 밧줄을 머리 위까지 단숨에 튕겨올렸다. 네리아가 숨 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후치야!”

고향 개울에서 낚시하던 생각이 나는군. 지금 나는 칸 아디움의 성벽 위에서 거대한 낚시질을 하는 셈이야. 낚싯줄인 밧줄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밧줄에 매달린 대어인 오크는 찍 소리도 못하고 죽어라고 밧줄을 붙잡았다. 성벽 위를 중심점으로 해서 허공에 수직으로 거대한 원호가 그려지는 순간 주위에서 비명 과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오크와 밧줄이 정점으로 솟아올라 중량감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흉벽 위로 뛰어오르며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외쳤다.

“사랑스러운 악마 제미니의 이름으로!”

나는 오크가 매달린 밧줄을 힘차게 끌어당기면서 동시에 옆으로 뿌렸다. 눈앞에 섬광이 번쩍하면서 허리가 아우성을 쳤지만 공중에서 잡아당겨진 밧줄은 천천히, 하 지만 무서운 힘을 담은 물체 특유의 완강함으로 장대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그것이 한 바퀴 돌아 네리아의 머리 위를 스치자 네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다.

“임마! 누구 목을 날릴 생각이야!”

칸 아디움의 외성 위 하늘에 지름이 80큐빗은 넘어 보이는 동그라미가 그려지는 순간, 아래의 오크들과 성벽 위의 인간들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원심력이 발생하 면서 아래로 처지는 힘은 사라지는 대신 밧줄은 무서운 속도로 돌게 되었다. 부웅, 부웅, 붕붕붕붕! 난 팔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고함을 질렀다.

“이 자식아, 그거 놓지 마라!”

물론 밧줄에 매달린 오크를 향해 지른 고함이다. 오크는 지금 허공에서 지름 80큐빗의 원을 형성하는 무게추 역할을 하면서도 밧줄을 놓치지 않았다. 저놈에게라면 오크라는 것 잠시 잊고서 키스를 해도 좋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느낌이 폐부를 찔러왔다. 나는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핫하하하하! 미치도록 헬턴트식이야!”

성벽을 오르던 오크들은 기겁하면서 밧줄을 놓고 내려갔다. 밧줄을 놓치고 떨어지는 녀석도 보였다. 아래에서 고함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악마, 악마다! 취이익! 악마다!”

“괴물 초장이다아앗! 취이이익! 췻췻, 취익!”

“뭐? 췻, 취익! 저, 저게 그 괴물 초장이인가!”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진다. 돌아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다. 날 노리고 쏘아붙이는 것이 확실한 화살들이 핑핑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지나쳤지만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다만 웃고 싶을 뿐이다. 난 화살을 바라보며 웃었다.

“우하하하! 받아볼래!”

정신없이 돌아가던 밧줄을 놓는 순간 오크와 밧줄은 쏘아진 화살처럼 황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성벽 위의 인간과 성벽 아래의 오크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그 것을 바라보는 가운데, 황야 위로 혜성처럼 날아가던 오크는 오크들의 무리 뒷편 멀리 떨어진 곳에 작렬했다. 콰아앙! 오크의 단단한 머리에 화렌차의 축복을! 아쉽게 도 먼지가 팍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눈앞을 어지럽히는 피보라가 튀어올랐다. 구토가 일어날 것 같군. 젠장! 난 구토를 참기 위해 흉벽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요철 형으로 생긴 흉벽의 돌을 징검다리 밟듯이 뛰는 동안 모든 것이 잊혀진다. 나는 성벽 위로 부는 가장 날카로운 바람!

“이 미친 자식아, 어서 내려와!”

샌슨에겐 틀림없이 미친 놈으로 보였을 것이다. 화살이 정신없이 날아드는 흉벽 위를 줄타기하듯 달려가는 내 모습은. 나는 허리를 숙여 갈고리 밧줄 두 개를 한꺼번 에 끌어올렸다. 밧줄에 매달렸던 오크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밧줄을 놓아버렸고 그래서 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나는 밧줄을 거 꾸로 들어 갈고리를 추로 삼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알아둬라, 이 망할 자식들아! 괴물 초장이의 여가 생활은 즐거운 오크 낚시와 함께! 쿠핫하하하!”

이번에는 훨씬 간단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도는 밧줄은 삽시간에 직경 100큐빗은 넘는 원을 형성했고 공기를 가르는 밧줄에서는 살갗을 간질이는 파열음이 들려 왔다. 성벽 위의 사수들은 모두 질겁하면서 갤러리의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그래서 다행히도 누군가의 목을 걸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오크들을 노려서 천천히 밧줄의 회전 경사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핑핑핑핑핑! 빙빙 도는 갈고리 밧줄은 성벽과 지면을 잇는 대각선이 되어 회전했다.

아무래도 갈고리 밧줄을 돌려서 오크를 낚아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무서운 속도로 도는 갈고리가 땅을 스치며 불 꽃과 흙먼지, 돌멩이들을 튀기는 마당에 뒤로 물러나지 않는 오크가 어디 있으랴. 오크들은 뒤로 물러나며 정신없이 쇼트 보를 당겼다. 코 바로 앞으로 화살이 지나가 는 순간, 나는 밧줄을 놓아버리고는 흉벽 아래 갤러리로 뛰어내렸다.

“오늘치 용기는 다 소모! 이젠 겁많은 소년으로 복귀!”

네리아는 정신나간 듯이 웃으며 외쳤다.

“아핫하하하!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복귀야! 핫하하하!”

그리고 저편 성루 쪽에선 칼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오! 손님들께 잊혀지지 않는 작별선물을 주시오, 아프나이델!”

“플레이밍 스피어!”

아프나이델이 있는 성루 쪽의 허공에서 폭발하듯이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르르! 허공에 나타난 불의 공은 천천히, 하지만 점점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땅 에 부딪혀 몇 번 퉁, 퉁 튕기더니 그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황야의 잡초들을 불태우며 굴러가는 불의 공은 오크들을 미치게 만들었으며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죽 어라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의 공은 계속해서 그 뒤로 따라 굴러갔다. 지평선으로 달려가는 오크들의 모습과 그 뒤를 따라 텅, 텅 굴러가는 불의 공의 모습 을 보면서 나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주위의 병사들은 모두 얼빠진 모습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아넨드 씨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고함을 질렀다. “아우우! 이후, 이후, 이후후후후!”

아넨드 씨의 고함소리는 찬물을 뒤집어쓰는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경비 대원들은 성벽이 무너질 것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승전의 함성이 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봐요! 멋쟁이 괴물 초장이 씨!”

창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길시언은 프림 블레이드를 닦아내며 웃었다.

“멋지군, 자네. 몇 년만 지나면 이 도시의 아이들은 루트에리노 대왕이나 핸드레이크의 이름보다는 황야에서 나타난 전설의 명검 프림 블레 젠장. 황야에서 나 타난 괴물 초장이 후치 네드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며 자라나겠는걸?”

나는 진저리를 치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내가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일을 했지? 오크 사수들이 노리고 있는 성벽 위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한참 동안 서 있었다니. 화살에 맞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군. 오크들의 쇼트 보의 취약한 성능에 대해 화렌차에게 감사해야 되겠군.

“됐어. 이제 옷 입어.”

샌슨은 내 허리에 붕대를 다 감아놓고는 붕대 위를 철썩 때렸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되다니! 붕대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옷을 입는다. 망할 오크 녀석. 내 살 맛 이 그렇게 궁금했나?

우리 일행은 지금 성탑 2층의 회의실 같은 방에 집결해 있었다. 물론 정식 대 오크 전투 지휘소는 성 안쪽 평지에 설치된 야전 막사지만, 병사들이 날 어깨에 떠메고 도시를 일주하겠다는 계획을 말한 순간 나는 성탑으로 도망쳤고 그래서 다른 일행들도 터덜터덜 이곳으로 올라왔다.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질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후드를 깊이 눌러쓴 두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후드를 걷어올리자 나는 그들이 바구니를 든 네 리아와 레니인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네리아는 질겁한 내 얼굴을 보더니 당장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이봐, 괴물 초장이 씨. 지금 밖에선 칸 아디움의 낭만적인 소녀들이 당신의 발치에 몸을 던져 기절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오로지 후치 네드발을 찾기 위해서 말이야.”

“……이곳에서는 후치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기를 바라겠어요.”

“왜지?”

“그 소녀들에게 헛된 명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줄 수 있는 교훈이 될 테니까. 엉뚱한 남자의 발치에 몸을 던지면 부끄러워서라도 뭔가 깨닫는 것이 있겠 지요.”

“음. 좋은 말이네. 하지만 그때문에 우린 이런 후드를 둘러쓰고 돌아다녀야 된다구.”

레니 역시 발그레한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후치. 너 때문에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 컴컴한 성탑 안에 갇혀 있잖니.”

“모두들 미안해요.”

“괜찮네, 네드발 군. 그런데 어디 보자…………., 왠지 즐거울 것 같은 바구니로군요, 네리아 양?”

네리아는 웃으면서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샌슨의 황급한 손길이 바구니를 덮은 천을 걷어내었고, 그러자 곧 구운 새고기와 빵, 와인병, 치즈, 말린 과일 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엑셀핸드와 샌슨은 환성을 질렀다.

네리아는 마치 테이블을 관장하는 가정 주부라도 된 양 자상하면서도 품위 있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영웅이라서 이런 음식들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아넨드 씨가 우리 바구니를 풍성하게 채워주었지요. 지금 아래의 경비 대원들은 멀건 수프와 딱딱한 빵을 먹고 있지요.”

“아, 이런 부끄러운 노릇이군.”

칼은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샌슨도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참으로 부끄럽다는 듯이 와인병의 병마개를 이빨로 뜯어내었다. 그러곤 곧장 엄청나게 부끄 러워하는 엑셀핸드에게 와인병을 빼앗겼다. 어이구, 이 작자들아! 네리아는 샌슨과 엑셀핸드 때문에 아프나이델과 제레인트가 굶주리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여 러 가지로 배려하면서, 그러니까 새구이의 다리를 뜯어 아프나이델에게 건넨다든지 엑셀핸드를 흘겨보면서 와인병을 빼앗아 잔에 부어 제레인트에게 건넨다든지 하 면서 말했다.

“라스 대장님하고 시장님이 잠시 후에 올라오겠다고 전해 달라더군요.”

“아, 그래요. 승전 처리로 바쁘시겠군요. 그런데 내가 전하라고 한 말은 전했습니까?”

“예. 성벽 바깥으로 바리케이드와 목책 등을 구축하게 하는 것. 맞지요? 그대로 전했어요. 지금 경비 대원들은 성밖으로 통나무와 수레 등을 이동시키고 있어요.” “아, 그것말고도 또 있었는데?”

“물론이죠. 사수들로 하여금 목책 구축 작업을 엄호하게 한다. 맞지요? 그것도 다 제대로 되었어요.”

“훌륭한 전령입니다. 네리아 양.”

네리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나이트호크는 기억력이 좋아야 되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요?”

“오크들이 성벽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럽니다. 아까 돌격 때 녀석들이 밧줄을 던지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지요. 놈들은 공성추로 성문을 파괴한 다음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제 목책이 설치되면 오크들이 접근하여 밧줄을 던지기 전에 사수들이 저격할 수 있겠지요.”

“정확하네요!”

“예?”

“아넨드 씨도 그럴 거라고 말했거든요.”

“아아. 그렇습니까. 역시 참전 용사라 다르군요.”

그리고 네리아는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아, 너한테도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

“뭔데요?”

“아넨드 씨는 자식이 없다던데. 양자로 들이고 싶다고 하던걸?”

“아이고, 맙소사!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요?”

“내가 엄마라고 대답했지. ….어머? 후치야? 괜찮아?”

모두들 즐거운 식사를 마칠 때쯤 해서 다시 문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전투 동안 내내 보이지 않던 카를로스 안티고어 시장과 라스 크레블린 경비 대장, 그리고 아넨 드 씨였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아넨드 씨가 외쳤다.

“여기 칼 씨에게 물어봅시다! 이봐요, 칼, 당신 생각은 어때요?”

칼은 당황한 얼굴로 아넨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군요.”

“아니! 그게 아니고! 승전의 기세를 살려서 진격하자는 얼빠진 주장 말이오!”

그러자 칼이 대답할 새도 없이 안티고어 시장이 외쳤다.

“말 조심하게, 아넨드!”

“제기랄, 시장님. 난 원래 입이 거치니 적당히 순화해서 들으시지요. 어쨌든 칼에게 물어보자는 말입니다!”

“말을 조심하라니까, 아넨드! 헬턴트 공이라고 불러야 되네!”

그러자 칼은 피곤한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그냥 칼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런데 진격 의견이 나왔습니까?”

안티고어 시장은 방 가운데 있던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렇소. 우리 경비대는 성벽에서 커다란 승리를 획득했고 지금 그 기세가 영광의 7주 전쟁 때의 바이서스 군보다 낮다고는 못할 정도란 말이오. 이 기세를 살리지

못한다면 작은 승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소. 지금 오크들이 패배의 충격에 빠져 있는 동안 즉시 공격을 감행해야 되오!”

도대체 커다란 승리야, 작은 승리야? 말이 빨리도 바뀌는군 그래. 칼은 안티고어 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조금 전 공방전에서 오크들의 사상자는 얼마나 됩니까?”

“예? 아, 이봐, 크레블린 대장?”

아이고 맙소사. 숫자에는 신경도 안 쓰시나 보군. 안티고어 시장은 크레블린 대장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대장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성벽 바깥에서 확인된 오크의 시체는 약 80구 정도 됩니다. 1차 돌격 때의 사망 숫자까지 합친 겁니다. 그리고 부상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크들은 부상자들을 호송해 가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칸 아디움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사망 11명, 그리고 부상자가 20명 정도 됩니다.”

“그럼 아군은 120명 정도 남았군요. 오크들은 500마리 정도?”

“그런 셈이죠.”

안티고어 시장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지만 곧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승기가 있지 않습니까, 헬턴트 공. 게다가 인간이 오크보다는 더 크고 그 창도 더 길단 말입니다.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칼의 눈썹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그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님. 검을 가지고 계시지 않군요. 하지만 검이 없으시진 않겠죠. 나가서 오크 다섯 마리만 처리해 주시겠습니까?”

“뭐, 뭐요?”

“명령을 내릴 자는 모범을 보여야 되니까요. 시장님께서는 지금 경비 대원들에게 다섯 마리의 오크들을 상대하라고 말하려 하십니다. 그러니까 시장님께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안티고어 시장은 입을 딱 벌렸다.

“이보시오! 그 무슨 유치한 논리란 말이오? 난 노인이오. 내가 나가서 오크들을 상대하라니! 물론 난 시장으로서 이 도시를 지키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소. 하지만 난 몽상가는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내가 나서서 오크들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이 도시는 그 지휘자를 잃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거요. 어떻게 그런 위험한 말씀을 하시는 거요?”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크레블린 대장이나 아넨드가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꺼내놓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몹시 하고 싶을 것이다. 다 행히 그 말은 운차이가 대신 했다.

“내가 보기에, 아까 전투에선 그 중요한 지휘자가 없이도 잘들 싸우던데.”

안티고어 시장은 당황한 얼굴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곧 적개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다. 하지만 또다시 공포스러운 얼굴로 바뀌게 되었는 데, 운차이가 안티고어 시장을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참 다채로운 표정 변화로군. 엑셀핸드 역시 수염을 쓸어내리며 결코 친근하다고는 볼 수 없는 어조로 말했다.

“이거 보오, 당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괜히 나서서 돌아다니다가 흙탕물을 밟고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잖겠는가? 안전한 시청에 틀어박혀 계시는 것이 좋겠구 “먼.”

“이거 보시오, 말이면 다 말인 줄……………”

엑셀핸드는 곧 서슬퍼런 기세로 말했다.

“말이라고 다 말은 아니지! 그러니 진격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는 그만 하시지? 오크들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켜 놓는 작업이라면 나 드워프의 노커 엑셀핸드 아인델 프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자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나 역시 몽상가가 아니네. 그러니 입 닥치고 전투는 전문가에게 맡기게! 무릇 우두머리가 하는 일은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기르는 것인 법일세. 그리고 이곳의 전문가는 저기 아넨드라는 젊은이고!”

우하하, 엑셀핸드가 저렇게 달변이라니. 어, 아넨드 씨를 젊은이라고 말한 것은 좀 이상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엑셀핸드의 나이는 300살 가량이다. 당연한 말이 로군. 안티고어 시장 역시 그 젊은이라는 말에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기서 가장 연장자였지만 그것은 인간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고 엑셀핸드가 있는 이상 연장자의 권위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군. 설마……………, 엑셀핸드가 그것까지 예견해서 젊은이라는 말을 한 것일까? 에이, 설마.

어쨌든 엑셀핸드는 그 말 한마디로 당장 좌중의 최연장자의 후광을 빛내게 되었다. 그리고 제2연장자로 그 격이 떨어져버린 안티고어 시장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 했다.

“그럼 어쩌자는 말입니까? 화살은 떨어지고 경비 대원들은 모두 지쳐버리길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이 도시에 대해 이방인이시라 잘 모르실 테니 말씀드리지요. 이 칸 아디움은 교역 도시입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논밭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곳은 오로지 이스트 그레이드를 가로지르는 여행자들과 상인들에 의해 유지되는 도시 란 말입니다. 만일 오크들의 봉쇄가 더 길어지면 이 도시는………….”

벌컥!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든 병사 때문에 안티고어 시장의 청산유수 같은 말은 중단되었다. 들어온 병사는 황급히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보고합니다! 지금 몇 명의 여행자들이 오크들과 접전중입니다! 그들은 성문 쪽으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오크들의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뭐라구? 이런! 어서 가보세!”

크레블린 대장은 당장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방문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성벽 위 갤러리였다. 크레블린 대장은 성루 쪽으로 달려갔고 우리들은 흉벽 너머로 황야를 바라보았다. 해는 이미 중천으로 떠오 르고 있는 정오였다. 그리고 그 정오의 햇살 아래 저편 지평선에서 굉장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맙소사! 저거 제정신이야?”

샌슨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들의 무리 한가운데서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크들은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마구 움직이고 있었는데 대단히 무질서한 모습이었다. 멀리서 바 라보니 마치 꿈틀거리는 슬라임처럼 보였다. 그때 갑자기 오크들의 무리가 갈라지며 그 가운데로 달리고 있는 몇 명의 인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오크들의 무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대담한 짓을 하고 있었고 오크들은 그 인간들을 가로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양이다. 오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몰아붙이는 바람에 인간들은 맹렬히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위진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굉장했다. 그들은 포위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고 그에 따 라 오크들은 이곳저곳으로 급격하게 움직였다. 레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파도를 뚫기 위해 애쓰는 배 같아.”

음. 항구의 소녀다운 말이야. 정말 오크들은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인간들은 절묘하게 그 힘이 흩어지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크들이 다시 움직이자 인 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 붙잡히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포위진은 두꺼웠고 저 인간들이 저지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거친 욕설과 창 칼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칼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젠장! 저 여행자들은 미쳤군! 오크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다니! 이 넓은 황야를 두고 왜 저기로 뛰어들었단 말이야! 눈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나?”

길시언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 성으로 곧장 달려오고 싶었던 모양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좀 돌아오면 되는 거 아니오!”

“저 사람들을 구해야 됩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곧 잡힐 겁니다!”

샌슨은 그렇게 외치며 몸을 돌렸고 칼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길시언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팔짱을 낀 채 황야를 바라보던 운차이가 혼잣말처럼 말했 다.

“남자가 세 명이오. 그런데 아주 이상한 모습이 보이는걸.”

“이상한 모습이라니오?”

“저 친구들…… 마치 후치 같은걸.”

“예?”

난 놀라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샌슨과 길시언도 달려가던 동작을 멈추고 운차이를 돌아보았다.

“저 친구들 말이오. 마치 후치처럼 오크들을 날려버리고 있는데. 지금 오크가 찌른 글레이브를 빼앗았군. 지금 휘두르는데, 저거 굉장하군! 한 번 휘두르니까 오크들 대여섯 마리가 날아가버리는걸? 그리고 저거, 이런 오크 하나를 들어 던지는데 주위의 오크들이 모두 밀려서 날아가 버리는걸. 도저히 사람의 힘이 아니오.”

왜 서늘한 기분이 드는 거지? 칼은 질린 어투로 질문했다.

“남자들의 얼굴이 보입니까, 운차이?”

“아니,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럽니까?”

“그럼…………, 혹시 두 명은 롱소드를 쓰며 한 명은 대거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롱소드를 쓰는 남자 중 하나는 덩치가 좀 크고 나머지 둘은 보통 체격.. “그렇군요. 아는 사람들입니까?”

샌슨과 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둘 다 꺼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할 수 없군. 내가 말하지.

“샌슨. 오크들만 끈질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샌슨 생각은 어때?”

샌슨은 대답을 하는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외치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자식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쫓아온 거지? 우리는 어제 24펜큐빗을 달렸는데!”

“예? 아니, 저 녀석들이 어떻게 후치의 OPG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어, 후치는 지금 그걸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복제품이란 말입니까?”

“영원의 숲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요.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어쨌든 믿기 어려운 괴력을 사용하는 세 명의 남자라면, 그리고 두 명이 롱소드를 사용하 고 한 명은 대거를 사용한다면 거의 확실하군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넥슨 휴리첼과 하슬러, 그리고 자크의 세 명인 것이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말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렇게도 빨리 우리들을 추적해 왔단 말이 야? 저 녀석들과 헤어졌던 것은 사흘 전이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는 거의 45펜큐빗은 넘게 달려왔다. 아니, 어떻게 인간이 사흘 동안 45펜큐빗을 달릴 수 있단 말이 야! 엑셀핸드는 수염을 비비 꼬면서 말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쫓아와?”

“OPG를 가진 세 명의 여행자들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제레인트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들을 저대로 내버려둘 생각입니까?”

샌슨은 못마땅한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구해 주자는…… 말씀입니까?”

“예? 그러면 내버려둡니까? 오크들에게 죽음을 당하도록?”

“글쎄요. 그건 어느 누구에게도 저지르면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참, 그거…………, 에잇!”

샌슨은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이것 정말 골치 아프군. 길시언은 프림 블레이드를 뽑아들다가 칼을 중간쯤 뽑아든 채로 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이렇

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요?’

칼은 찌푸린 얼굴로 황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야에선 여전히 오크들의 소란이 요란했고 비명소리 같은 것이 아스라이 들려오곤 했다. 제기랄, 저 빌어먹을 녀석들! 난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주어를 빠뜨렸다. 도대체 오크들을 욕해야 할지 넥슨 일행을 욕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난 고개를 돌려 칼의 입을 바라보았다.

칼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젠장……, 저 친구들 때문에 우리까지 위험해지는 것은 탐탁찮은데요. 우리에겐 일이 있습니다. 게다가 목전에 적을 두고 성문을 여는 것은 고려할 일이 못 된다고 봅니다.”

우리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우리는 벌써 칸 아디움을 등지고 수도로 달려갔어야 옳다. 그래서인지 칼의 말에는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제레인트는 기겁했 다.

“아뇨! 안 됩니다! 저렇게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요! 저 사람들은 모두 OPG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조금만 도와주면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 입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지쳐서 잡히고 말 거예요. 모르는 척할 수는 없어요! 이건 살인입니다!”

모르는 척? 순간 가슴 한 구석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모르는 척한다고? …디트리히를 모르는 척했다고? 난 칼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칼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갑자기 외쳤다.

“제기랄, 구합시다! 저 친구들은 끝까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군!”

네리아는 놀란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예? 구해요?”

“그럼 어쩝니까?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데.”

“어째서요? 오크가 죽이는 거지…….”

네리아는 말끝을 흐렸다. 칼은 네리아를 바라보면서 무겁게 말했다.

“지금 특별히 할 일 있습니까?”

“예?”

“별로 할 일 없지요? 난 세레니얼 양의 말을 기억합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게 뉘우칠 시간은 줘야 합니다. 식후 운동 삼아 인간 세 명을 오크 무리에서 구출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청산할 시간을 남겨주는 일은 어떻습니까.”

어라? 이루릴이 언제…… 아 그렇군. 난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인 아프나이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 던 길시언은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웃음을 참는 것이다.

“괜찮은 운동이군요. 육체와 육체와의 뜨거운…, 으악! 에, 육체와 정신! 그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 좋은 운동이지요! 난 찬성입니다.”

그러면서 길시언은 곧장 성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샌슨은 길시언의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휙휙 휘두르 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쓴웃음을 지었다. 샌슨은 마침내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오, 맙소사. 내가 날 못 믿겠어! 내가 저 저주받을 녀석들을 구하러 600마리의 오크 무리에 뛰어들다니!”

“500마리야.”

내가 정정해 주며 그의 옆을 지나치자 샌슨은 당황하며 뒤를 따라왔다. 칼은 재빨리 지시했다.

“아프나이델 씨, 침버 씨, 아인델프 님은 여기 남아 있으십시오. 레니 양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네리악!”

네리악? 무슨 소리야? 난 놀라서 뒤를 돌아보고는 역시 비명을 지를 뻔했다. 네리아는 갤러리 위를 달리다가 그대로 트라이던트로 바닥을 짚으며 옆으로 뛰었다. 그 리고 그녀는 성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2층 건물의 건초로 된 지붕 위에 뛰어내렸다.

“오, 맙소사! 아가씨!”

아래에서 경비대원들이 기겁했다. 난 틀림없이 네리아가 목뼈를 부러뜨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리아는 그대로 지붕 위에서 한 바퀴 구르고는 엎드렸다. 그 녀는 그렇게 주루루 미끄러지다가 지붕 끄트머리에서 트라이던트를 앞으로 내밀어 땅에 짚고 나서는 멋지게 반원을 그리며 땅에 사뿐히 섰다.

네리아는 가슴에 묻은 건초 부스러기를 털더니 위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 옆에선 땅에 주저앉은 채 네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몇 명의 경비대원들이 보였는데 모두들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난 아래를 향해 외쳤다.

“시범은 고맙지만 난 계단을 이용하겠어요!”

칼잡이들은 모두 계단을 이용해서 품위 있게 내려갔다. 여기서 품위라는 것은 네리아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발목이 삘 정도로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 다. 성탑 아래로 나서니 네리아는 이미 작전 지휘소 옆에 매어둔 우리 말들을 끌고 오는 중이었다. 네리아는 우리들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고 샌슨은 입이 귀 밑까지 찢어져서 말했다.

“헤이, 멋진 말구종! 원하는 포상이 있다면?”

“손등에 키스해 줘.”

네리아는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올렸고 샌슨은 거기에 대충 입을 맞추어주고 나서는 슈팅스타 위에 뛰어올랐다. 네리아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다음 차례.”

길시언은 그 와중에서도 한쪽 무릎을 꿇고 네리아의 손등에 키스를 해버려 주위를 당황시켰다. 누가 왕자 아니랄까 봐. 운차이는 네리아를 싹 무시하며 지나치려고 했고 그러자 네리아는 재빨리 운차이의 발을 걸었다. 물론 운차이는 가볍게 뛰어넘어갔고 네리아는 그 뒤를 향해 주먹을 마구 흔들었다.

“나도 좀 넘어가지요.”

“까르르르!”

네리아는 웃으면서 에보니 나이트호크 위에 뛰어올랐다. 샌슨은 어느새 성문 경비병에게 외치고 있었다.

“성문을 여시오! 밖의 여행자들을 구출해야 하오!”

경비대원은 당황한 눈으로 샌슨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성루 위를 바라보았다. 그때 성루 위에서 크레블린 대장이 외쳤다.

“이거 보시오! 만일 오크들을 끌고 돌아온다면 성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요! 괜찮소?”

샌슨은 기세좋게 맞받아쳤다.

“그런 거 걱정했으면 애초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좋소! 성문을 열어줘! 그리고 통과하는 즉시 다시 닫아! 여러분의 무운을 비오!”

경비대원들은 상기된 얼굴로 성문을 열었다. 샌슨은 성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 뒤로 선더라이더를 탄 길시언이 뛰어나갔다. 성문 옆으로 물러 난 경비대원들은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죽지 마시오!”

“고마워요! 멋쟁이 경비 대원!”

봄날 망아지라던가? 네리아는 유쾌하게 외쳤고 그러자 경비 대원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 뒤로 운차이가 입을 꽉 다문 채 무서운 눈길로 지나갈 때는 경비 대 원들도 찔끔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와 뒤늦게 내려온 칼이 지나칠 때는 경비 대원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어왔다.

“괴물 초장이 만세! 유피넬의 이름으로 축복을!”

난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제미니에 박차를 가했다. 제미니는 용맹스럽게 돌진했다. 성문을 통과하는 동안 아주 빠르게 그림자가 지나갔고, 잠시 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넓은 평야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저 앞에선 이미 샌슨과 길시언, 네리아, 운차이 등이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경비 대원들이 설치해 둔 목책이 보였지만 그것은 오크들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그렇게 높지 않았다. 앞의 네 명은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랴아! 제미니! 매일 고생만 시켜 미안한데, 이번에도 날 도와줘!”

“이힝힝히잉!”

제미니는 우렁찬 울음소리로 대답한 다음 가볍게 목책을 뛰어넘었다. 오, 말에 대해 끓어오르는 이 애정! 난 바스타드를 뽑아 말 옆으로 늘어뜨린 채 한 손으로 고삐 를 거머쥐고 달려갔다. 뒤에서는 성문을 닫아거는 소리가 둔중하게 들려왔지만 희한하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입술이 저절로 움직인다.

“야하아아!”

뒤에선 칼이 외쳤다.

“퍼시발 군! 길시언! 쐐기꼴 형태로! 뱅가드를 형성합시다! 선두 자리 비우고!”

뱅가드가 뭐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합시다, 칼! 그러나 샌슨과 길시언은 그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다. 그들은 갑자기 속도를 늦추더니 서로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 다. 정신 없는 돌격 가운데서도 차가운 정확함으로 두 사람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의 고함소리는 계속되었다.

“운차이와 네리아, 뒤로 벌리시오! 그리고 가운데로 네드발 군이 강행합니다! 네드발 군! 고개를 숙이고 최고 속도로 달려!”

뭔 말이야! 어디로 강행하라는 거야? 그러나 다시 앞의 사람들이 나를 도왔다. 샌슨과 길시언이 양쪽으로 벌려서고 그 뒤에서 네리아와 운차이가 더 폭이 넓게 벌어 졌다. 그러자 마치 쐐기꼴 형태로 앞쪽이 뾰족하고 뒤가 넓은 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쐐기꼴의 첨단부가 없는 것이다. 바로 저기구나!

“이랴아! 핫, 하아! 저기가 네 자리다, 제미니!”

난 제미니를 독려했고 제미니는 크게 울부짖더니 앞으로 죽죽 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내 왼쪽으로 네리아와 샌슨, 그리고 오른쪽으로 운차이와 길시언이 지 나갔고 곧 나는 선두에 서서 달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뒤를 흘긋 보자 칼도 속도를 높이는 것이 보였다. 최전방에 나, 그리고 그 뒤로 샌슨과 길시언, 그리고 운차이, 칼, 네리아로 완전한 삼각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왜 내가 최전방이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오크들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놈들의 모습이 시시각각 커 지면서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당황한 모습으로 활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길시언의 고함소리가 터졌다.

“프로텍션 프롬 애로!”

바우우! 내 앞쪽으로 푸르스름한 막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오크들이 날린 화살, 돌멩이 등이 튕겨나는 모습이 보였다. 좋아, 해보자구! 난 바스타드를 높이 들어올리 며 고함을 질렀다.

“이야아아아! 내가 간다! 헬턴트 만세!”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 괴물! 취익! 괴물 초장이다악!”

“끄아아아! 괴물 초장이다!”

“취이이익! 달아나랏!”

어라? 뭐 이래? 전방의 오크들은 날 바라보더니 곧장 옆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으로 물러나면서 날 공격하려던 놈들은 뒤에서 따라오던 샌슨과 길시 언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난 오크들로 이루어진 벽으로 뛰어들었지만 제미니는 무인지경을 달리듯이 달리고 있었다. 앞에 있던 오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갈라 져가는 것이다. 헤엣? 그거 신기하네? 그러나 기뻐할 새도 없었다. 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네드발 군! 머리를 숙이라고 했잖아!”

아, 그렇지. 난 급히 허리를 숙여 제미니의 목 옆으로 머리를 내려서 바스타드를 마구 휘둘렀다. 이거 마치 멧돼지 같은 모습이군. 턱 바로 아래에서 흙먼지가 튀어올 라 눈을 뜨기가 겁난다. 오크들의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에 눈이 돌아버리는 것 같다. 난 되지도 않는 고함소리를 지르며 계속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머리 위쪽 으로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쓩쓩쓩!

아이고, 칼! 칼은 내 머리 위로 활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절대로 머리는 못 들겠군! 난 제미니가 제발 앞발로 돌을 차올리지 않기를 빌며 바스타드를 풀 베듯이 휘저었다. 오크들의 글레이브가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주위로는 거친 바람 소리와 오크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모든 소음보다 더 큰 소음은 바 로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야야야야야! 모두들 비이이켜어엇!”

그때였다.

“너! 후치 네드발!”

제기랄! 이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까! 난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들은 오크 무리의 바깥 부분에 있었다. 그런데 오크들의 무리가 좌우로 좌악 갈라지면서 바로 앞 30큐빗 정도에서 오크 한 놈의 가슴을 베고 발로 걷어차는 하슬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검을 옆으로 늘어뜨린 넥슨 휴리첼의 모습이 보였다. 그

는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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