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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55화


1655화. 좋은 날이군. (5)

탓! 타다탓!

다급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장문…….”

“비켜라!”

발소리의 주인을 보며 놀란 이들이 분분히 좌우로 길을 텄다. 그렇게 열린 길로 허도진인이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경내에 자리한 중문을 지나자 고풍스러운 도가 특유의 궁이 나타났다.

조사전이다.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무당의 성지에서 십여 명의 도인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를 뻔했던 허도진인이 아랫입술을 짓깨물며 가까스로 노화를 억눌렀다.

이곳은 평생 무당을 위해 살고 등선한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가장 신성하고, 그 어떤 소란이나 다툼도 허락되지 않는 장소다. 제아무리 허도진인이라 해도 말이다.

“네 이놈…….”

“일 배.”

허도진인이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보다 앞서 엄숙하고 단단하며 차분한 목소리가 이를 덮었다. 그러자 조사전에 있던 무당의 제자들이 경건한 자세로 선조의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

허도진인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무리 조사전에 들어 절을 올리고 있다지만, 저 무당의 제자들이 허도진인이 왔음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허도진인이 애초에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깨끗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일 배!”

아홉 번의 절.

스승과 조사에게만 바칠 수 있는 강호인들만의 의식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완벽히 이어지고서야 제자들이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이 모든 의식이 끝나길 기다리며 입술을 짓깨물던 허도진인이 즉시 한기 어린 목소리를 뿜어냈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조사전에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허도진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물었다!”

“보시다시피, 조사께 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그것을 묻고 있음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장문인.”

“……뭐라?”

“선조들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말에 허도진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제 앞에 선 이들을 넘어 조사전에 모셔진 위패들 쪽으로 향했다.

잘 손질된 고급스러운 위패 앞으로 향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허공. 네 녀석의 짓이더냐?”

허도진인이 묻자, 위패 앞에 절을 올리고 있던 허공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말없이 허도진인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깊게 포권하며 예를 표했다.

“장문인을 뵙…….”

“대답해라!”

결국 허도진인은 참지 못하고 매섭게 허공의 예를 끊어 버렸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열이 오른 모습이었다.

“네놈의 짓이냐고 물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지시한 게 네놈이더냐, 정녕?”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장문인.”

“이해하기 힘들다고?”

“예.”

잔뜩 흥분한 허도진인과 달리 허공은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날 선 분노를 정면으로 맞받고 있음에도 말이다.

“무엇이 이해하기 힘들단 말이냐? 당장 제대로 답하지 못하겠느냐?”

“드린 말씀 그대로입니다. 어째서 장문인께서 그리 생각하는지 소도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뭐라?”

“제게 무당의 제자들을 강제할 권한이 있습니까?”

순간 허도진인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무당의 제자들이 누구의 말을 듣고 거기에 휘둘려 제 뜻을 정하는 그런 이들입니까?”

“그럼 네 말은…….”

“예, 장문인.”

허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한 사람 같은 건 없습니다. 누구도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이건 그저 제자들의 뜻이 한데 모인 결과일 뿐입니다.”

담담한 목소리를 들을수록 허도진인의 가슴은 터져 나갈 듯 답답해졌다. 그렇게 살을 난자하는 듯한 시선으로 한참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다른 제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사실이더냐?”

“…….”

“대답해라, 무진. 사실이냐?”

서늘하게 날아든 질문에, 무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장문인. 강요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저 뜻이 맞았을 뿐입니다.”

“진현. 너도 마찬가지냐?”

“예.”

진현 역시 조금도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었고, 제 의지였습니다.”

으득.

허도진인의 입술 새로 이 갈아붙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근엄한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나, 그 소리만으로도 허도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생각들이냐.”

“장문인.”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거냐! 이 어리석은 녀석들!”

“장문인. 선조들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허공! 네 이놈!”

끝내 허도진인의 일갈이 천둥처럼 터져 나왔다. 내력까지 실린 그 기파에 낡은 조사전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조사께서 보고 계시니 하는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이냐! 무당의 업을 네 대에서 끊어 버릴 셈이더냐? 무당의 선조들께서 지금의 너희를 보면 뭐라 하시겠느냐!”

“훌륭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뭐?”

“기특하고 훌륭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조사들께 예를 올리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 이런…….”

허도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나서인지, 속이 갑갑해서인지 자신도 알기 어려웠다.

“무당의 명맥을 끊는 마당에, 조사들께서 너희를 기특해하실 거라고?”

“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더냐?”

“당연히 말이 됩니다.”

황망해 보이는 허도진인에 비해 허공은 차분하게 답했다.

“그게 옳으니까요.”

“…….”

“무당은 이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당은 옳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옳음을 행하다 명맥이 끊긴다면 옳지 않게 명맥을 유지하는 것보단 훨씬 훌륭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이놈이…….”

허도진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예,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장문인, 아니……. 장문사형.”

“…….”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이것만은 아주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허공!”

“사형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우린 물러서지 않아야 했습니다.”

“…….”

“물러서지 않아야 했음에도 물러섰습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잘못된 선택으로 잃어야 했던 것들은 어떻게 해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또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건 너희의 업이 아니다! 바로 내가! 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이다! 한데 너희가 어찌 그 업을…….”

“그게 어째서 전 장문인의 업입니까?”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진현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무당의 업입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예. 전(前) 장문인. 전 장문인께서 선택하셨지요. 하지만 선택하셨다 해서 그 모든 죄를 전 장문인께서 짊어지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여기신다면, 그건 오만이고 과신입니다.”

“……뭐라 했느냐?”

“오만이라 했습니다.”

진현이 또렷한 눈빛으로 허도진인을 직시했다.

“어찌 생각하시든, 장문인의 선택을 받아들였던 건 우립니다. 우리 역시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동일한 명령하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라는 말씀이십니까? 장문인께서 그리 지시하셨다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이밀며 말입니까?”

“…….”

“저는 무당의 제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무당이 제게 가르친 것 중에 비겁 같은 건 없었습니다.”

“너, 이놈…….”

“장문인께서 진정 저의 스승이시라면, 제게 충성을 가장한 비겁으로 목숨을 구걸하라 하지는 마십시오. 그건 저를 살리시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저의 남은 생을 죽이시는 길입니다.”

허도진인의 얼굴이 짧은 순간 몇 번이고 변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며 나왔다.

“그래서 죽겠다는 것이냐?”

“…….”

“감당할 수 없는 적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 목숨을 던지겠다는 것이냐? 네가 생각하는 옮음을! 정녕 옳은 것인지도 확연히 알 수 없는 그 아집을 관철하기 위해? 너를, 네 스승을, 네 사형제들을 모조리 차가운 고혼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단 게냐!”

“강요한 이는 누구도 없었습니다, 장문인.”

“…….”

“오직 스스로 선택한 이들뿐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믿는 ‘옳음’이라는 이름의 ‘아집’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겠다 한 이들 말입니다.”

진현의 시선이 허도진인을 넘어 그 뒤를 응시했다. 허도가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중문 밖에 도열해 있는 수없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결연한 의지로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죽음을 불사하는 이들의 눈빛이다. 이는 어쩌면 얼마 전 허산자와 대화를 나누던 허도의 것과 닮았을지 모른다.

배분도 입장도 무의미하다. 일대제자도, 이대제자도 모두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의에 찬 얼굴로 선 진현, 단호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무진을 잠시간 보던 허도진인이 다시금 허공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공아…….”

“아무 말씀 마십시오, 사형.”

“…….”

“무슨 말씀 하실지 압니다. 아마도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고 싶으실 겁니다. 그게 장문인의 방식이시니까요.”

“허공…….”

“하지만 사형. 그 방식이 사형의 마음을 편케 하고, 세상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제 마음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허도진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안다.

어쩌면 허도진인은 자신의 장렬한 죽음으로 이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이들을 해방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안다. 허공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세상 모든 이들이 무당의 속죄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니, 세상이 다시 무당을 상찬하는 날이 올지라도 이들이 허도진인의 명령이란 변명을 내세워 적에게서 달아났을 때 새겨진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속일 수 있는 사람도 제 마음만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까.

의식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의식하는 순간 이들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다.

“……그게 너의 대답이냐?”

“예, 장문인. 그리고 이건 저의 대답이자, 이들의 대답이고, 무당의 대답이자, 장문인의 대답입니다.”

“나의…… 대답?”

선뜻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 허도진인을 보며 허공이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띠었다.

“장문인께서 저희의 입장이셨다면 당연히 이리하셨을 테니까요.”

허도진인은 순간 세상이 아뜩해지는 느낌에 눈을 감아 버렸다.

“이게 저희가 무당에서 배운 것이자, 장문인께 배운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한숨이 무겁게 터져 나왔다.

‘어찌하여…….’

봉문의 시간 동안 이들의 상처 역시 깊어졌으리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깊어진 상처와 그로 인해 덩달아 깊어진 생각이 이들을 성장시켰을 거란 사실은 헤아리지 못했다.

이들은 이제 그의 명에 맹목적으로 따르던, 과거의 미욱했던 무당의 제자들이 아니다. 이제는 허도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당당한 도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여 그때가 지금이란 말인가!’

이들의 성장이, 이들의 정의가, 이들의 도가 무당을 멸문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허도진인이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던 이들의 성장이 말이다.

눈앞에 참혹한 결말이 그려지는 듯했다. 절망인지 슬픔인지 모를 무거운 감정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원시천존이시여……. 이건…… 이건 너무도 가혹하시지 않습니까…….’

허도진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안타깝고, 또 서글픈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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