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938화
군림천하 (938)
제382장 자투라망(自投羅網)
산해루의 오후는 언제나처럼 분주했다.
서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산해루는 음식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종업원들의 교육도 잘되어 있고, 공간도 넓어서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오늘은 유달리 손님이 많아 산해루의 종업원들은 주문을 받으랴, 음식을 나르랴, 식탁을 정리하랴, 정신이 없었다.
노일)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바탕 넋두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길. 날도 더운데 손님들이 정말 미친 듯이 몰려드는구나. 아직 본격적인 저녁 시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니 오늘은 정말 반쯤 죽어나겠어.”
그 말을 들었는지, 근처에서 손님이 먹고 난 접시와 그릇을 산더미처럼 들고 가던 하(夏)가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꿈도 야무지다. 반이나 살아날 생각을 하다니. 아마 오늘 밤에 잠들면 비몽사몽간에 넋이 구천을 맴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일은 그를 힐끔 쳐다보며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약골 같은 네 녀석은 구천을 헤맬지 몰라도 천부적인 강골인 나는 이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이구, 그러셔? 그래서 허구한 날 아침마다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못 일어나고 빌빌대는 거냐?”
하규가 계속 약점을 후벼 파며 놀리자 노일은 펄쩍 뛰었다.
“뭐라고? 내가 언제 앓는 소리를 냈단 말이냐?”
“그 끙끙거리는 게 앓는 소리가 아니면 뭐냐?”
“원래 나같이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비켜라, 안 보인다!”
하규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를 지나쳐 계단 쪽으로 향했다.
노일은 순간적으로 분기를 참지 못하고 하규의 뒤통수를 한 대 치려다가 그가 접시와 그릇을 한가득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멈추었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마침 그들 곁을 지나가던 손님이 노일에게 살짝 부딪치는 바람에 노일의 손은 그대로 하규의 등을 밀치고 말았다. “어어?”
하규가 중심을 잡으려고 바둥거렸으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가득 쌓여 있는 접시와 그릇 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노일도 다급하게 하규를 도우려고 했으나, 이미 그때는 하규가 들고 있던 산더미 같은 접시와 그릇 들이 옆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옆 탁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로서는 그야말로 때아닌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콰차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음식물이 담긴 접시와 그릇들이 쏟아져 내리자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어억! 이게 무슨 난리냐?”
졸지에 음식 찌꺼기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성난 말처럼 길길이 날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노일은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안색이 노랗게 변했고, 하규는 반쯤 넋이 나가 성난 손님들이 멱살을 잡고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봉변을 당한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몇 개의 탁자에 깨진 접시와 그릇의 파편들이 튀고 음식 찌꺼기들이 사방으로 뿌려져 온통 난장이 되어 버렸다.
하필이면 한창 손님들이 가득 밀려올 때인지라 소란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았다.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사람도 있고, 음식 찌꺼기가 옷에 튀어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아예 매운 국물을 머리에 뒤집어썼는지 온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으아아!”
그가 어찌나 발버둥을 치는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사방으로 피하느라 난리법석이었다.
그 소란의 여파는 막 산해루로 들어서던 사람들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흑의를 입은 날카롭게 생긴 중년인과 머리를 산발하고 거친 마의를 입은 우람한 체구의 거한은 입구에 선 채로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뭐, 난장판이 따로 없군. 서안에서는 알아주는 주루라고 해서 은근히 기대했는데, 소문이 완전히 와전된 것 아닌가?”
흑의 중년인이 투덜거리자, 마의 거한이 히죽 웃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벌어질 일이 미리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긴 하지만, 이래서야 철면호라는 놈이 어디에 처박혔는지 제대로 찾아볼 수도 없지 않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군.”
마의 거한은 거칠게 웃으며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차피 다 때려 부수면 아무리 꽁꽁 숨어 있는 쥐새끼라도 알아서 기어 나오게 되어 있다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한쪽에 몰려서서 장내의 소란을 구경하고 있던 손님들을 향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퍽!
“어이쿠!”
“이건 또 뭐야?”
순식간에 서너 명이 그의 주먹을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흥분하여 마의 거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미친놈 아냐?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다니!”
마의 거한은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활짝 웃으며 솥뚜껑같이 커다란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래, 어서 와라! 오늘 모처럼 서안 샌님들의 야들야들한 주먹맛 좀 보자!”
“뭐라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인지 모를 놈이 헛소리를 하는 거냐?”
제법 체구가 건장한 장한 한 명이 덩치와 다르게 빠른 동작으로 몸을 날려 마의 거한의 턱을 강하게 후려쳤다.
마의 거한은 코앞으로 주먹이 다가오는 광경을 뻔히 보고도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철탑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장한의 주먹이 마의 거한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하나 마의 거한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휘둘렀던 장한이 제 주먹을 반대편 손으로 감싸안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억! 내 손이 부러졌어! 저놈, 외문기공(外門氣功)을 익힌 것 같다!”
장한이 부러진 손을 움켜쥔 채 끙끙거리자, 그의 일행인 듯한 남자 두 명이 눈빛을 교환하고는 양쪽에서 마의 거한을 향해 덤벼들었다.
“외문기공이 대수냐? 어차피 몸에 구멍 뚫리면 죽는 건 똑같다!”
그들의 손에는 언제 뽑았는지 날카로운 빛을 뿌리는 단검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마의 거한은 예리한 단검이 자신의 양쪽 옆구리를 파고드는데도 여전히 버티고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남자는 쾌재를 부르며 마의 거한의 옆구리를 단검으로 세차게 찔렀다.
땅!땅!
그런데 그의 옷을 뚫고 옆구리를 파고들어야 할 단검이 마치 단단한 쇠판에라도 막힌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헉!”
두 사람이 놀라 뒷걸음질 치려는데, 마의 거한이 징그럽게 웃으며 양손으로 그들의 머리통을 하나씩 움켜잡았다. 거한의 손이 어찌나 컸던지 두 사람의 머리가 각기 다른 손안에 거의 들어가 버렸다.
두 사람은 거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마의 거한은 꿈쩍도 하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뿌드득!
괴이한 음향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몇 차례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늘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마의 거한은 머리가 으스러져 숨이 끊어진 그들의 시체를 놓아주었다.
쿵!
벼락 맞은 고목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시신들의 오공에서 시커먼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실핏줄이 터진 채 반쯤 튀어나온 눈알과 입 밖으로 삐져나온 시뻘건 혀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마의 거한을 향해 달려들려던 사람들이 기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미친놈이다!”
“희대의 살인귀가 나타났다!”
마의 거한은 오히려 광소를 터뜨리며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크하하! 역시 서안의 촌놈들은 비리비리하기 짝이 없구나!”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몸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빨랐다.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그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크악!”
주먹을 휘두르는 마의 거한의 솜씨는 거친 듯하면서도 정교해서 누구도 그의 일 권(拳)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주먹에 맞고 몇 장이나 날아가 쓰러지는 사람, 그를 피해 도망가려는 사람들로 산해루의 일 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마의 거한과 함께 산해루로 들어왔던 흑의 중년인은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식하긴. 이래서야 숨어 있던 쥐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꼬리를 감추고 더욱 깊숙한 곳으로 도망치지 않겠는가?”
흑의 중년인은 사람들이 마의 거한을 피해 도망가느라 텅 비다시피 한 일 층의 중앙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털썩 앉았다.
그가 앉은 위치는 공교롭게도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앞이라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일 층과 이 층을 모두 훤히 볼 수 있었다.
“이제 쥐새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할까?”
상당히 넓은 산해루의 일 층은 이미 마의 거한이 저지른 만행으로 대부분의 손님들이 도망가거나 바닥에 쓰러져,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마의 거한은 더 이상 쓰러뜨릴 사람이 없자 입맛을 다시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영 시원치 않군. 내 주먹 한 방을 제대로 견디는 놈이 없다니……. 이거 괜히 대형을 따라왔나?”
마의 거한이 이 층으로 올라가서 제일 처음 본 것은 머리에 붉은 국물을 뒤집어쓴 채로 마구 발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으아아!”
아래층의 소란을 전혀 모르는지 그 사람은 자신의 눈에 들어간 매운 국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마의 거한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군지 몰라도 정말 재수 없는 놈이로군.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내가 특별히 아량을 베풀어 그 고통을 멈추게 해 주지!”
그는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그 사람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이어 주먹을 들어 상대의 머리통을 후려치려는 순간, 미친 듯이 발작하던 그 사람이 돌연 마의 거한을 향해 입을 딱 벌렸다.
“우웩!”
그러자 그의 입에서 시뻘건 국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누구도 상상치 못할 일이었기에 마의 거한 또한 피하지 못하고 국물을 그대로 뒤집어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의 거한이 쳐들었던 주먹이 크게 한 바퀴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빨라서 허공에 커다란 원형의 궤적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였다.
파아아!
마의 거한의 몸을 뒤덮어 버릴 줄 알았던 시뻘건 국물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그리고 마의 거한은 어느새 바짝 다가가 국물을 토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쥐새끼가 이곳에 숨어 있었구나!”
살광이 이글거리는 마의 거한의 눈빛에 그의 손에 잡힌 사람은 새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머리와 얼굴에는 아직도 붉은 국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더럽고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