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693화
“막아아아아아아아!”
임소병의 처절한 외침에 격전을 치르던 천우맹도들이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건?’
종남 장문인 종리곡이 눈을 부릅떴다.
붉게 물든 절벽으로 한 무리가 내달리고 있었다.
가장 가파른 정면으로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옆으로 타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결국 절벽이다. 저 까마득한 경사면을 평지처럼 달리는 모습만으로도 저들이 보통 정예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종리곡의 시선이 절벽 좌우로 타오르는 드높은 불길로 향했다. 아무리 무인이라지만 결국은 사람이 아니던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 어떻게 저 불길을 뚫을 수 있단 말인가.
“남해……태양궁?”
“태양궁?”
풍영신개의 중얼거림으로 저들의 정체를 알아챈 종리곡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인가? 열양공의 대가들이기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저 불길을 뚫어 냈느냐가 아니다.
“대체 저기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풍영신개가 종리곡의 의문을 대신 드러내 주었다.
‘왜’가 중요하다. 단순히 절벽 위로 올라간 이들을 지원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저 화염을 뚫고 절벽으로 향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마, 막아! 당장!”
그 순간, 다시 한번 처절한 임소병의 비명이 들려왔다.
임소병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올라가! 당장 올라가라고! 저 망할 새끼들을 당장 이 절벽에서 떨어뜨려야 해!”
“군사, 대체 무슨……?”
“당장! 움직이라고!”
“일단 진정부터…….”
그때였다.
“아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에, 어찌할 바 모르던 천우맹도들이 저도 모르게 획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건?’
절벽으로 가기 위해 타오르는 화염을 뚫던 이 중 하나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열양공의 경지가 충분치 않아 침습하는 불길을 온전히 막아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풍영신개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저 비명은 너무 처절했다.
그게 이상했다. 물론 살아 있는 육신이 타는 고통이야 당연히 끔찍하겠지만, 저들은 애초에 열양지력에 익숙한 이들이 아닌가.
남해태양궁의 무인쯤 되는 이가 단순히 작열통을 이기지 못해 저리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애초에 저리 아무 대처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이상하다.
전신이 불로 뒤덮인 이는 한 손으로 절벽을 움켜잡은 채, 품속을 더듬더듬 뒤적거렸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거리가 워낙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풍영신개는 얼른 내력을 밀어 넣어 안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하늘이 터져 버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불길에 휩싸인 이가 있던 곳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그 여파에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까지 휩쓸리며 연쇄적으로 폭발이 벌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
연쇄적으로 터진 폭음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겹쳐지고.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충격을 이기지 못한 절벽이 쩌적 갈라졌다.
이내 커다란 검으로 베어 내기라도 한 듯, 거대한 암벽이 절벽에서 떨어져 나오며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속도를 붙여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릉!
모두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어, 엎드려! 아니, 피해! 이곳에서 벗어나라아아아아아!”
“깔리면 다 죽는다!”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기세로 이곳 무당까지 진격했던 천우맹도들이 황급히 땅을 박찼다.
조금 전까지 맹렬하게 천우맹을 몰아치던 사패련의 무리조차 기겁하며 뒤로 몸을 빼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거대한 암벽 덩어리가 땅에 추락했다.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뿜어지고, 부서진 바위 파편들이 칼날이 되어 주위를 휩쓸었다.
“으, 으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천우맹도 하나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제 앞을 멍하니 보았다. 비산했던 흙먼지가 천천히 걷혔다.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엄청난 크기의 암석이 모습을 드러내며 위용을 자랑했다. 그의 바로 앞에서.
단 한 걸음만 모자랐어도,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이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헉?”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주저앉은 이가 퍼뜩 시선을 올렸다.
퍼억! 퍼어어억!
절벽에서 떨어진 사패련도들이 바닥에 처박히며 피곤죽이 되어 나뒹굴었다.
“어, 어어…….”
퍼어어억!
못해도 족히 수십에 달할 수였다.
그들이 추락하며 만들어 낸 풍압이 아직 허공에 떠 있던 흙먼지를 사방으로 밀어내었다.
“어으…….”
주저앉은 이는 거의 기다시피 암벽에서 멀어졌다.
“괜찮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가까스로 벗어난 이들은 넋이 나가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비산한 파편에 맞아 부상 입은 이들이 꽤 되었지만, 그래도 신속하게 반응하여 다행히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다.
종리곡은 얼이 빠진 얼굴로 무너진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엇이었는가? 방금 그…….”
“폭약!”
뿌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나타난 임소병이 이를 갈아붙였다. 눈으로는 여전히 절벽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폭약입니다! 폭약!”
“아니, 그게 무슨……. 폭약이라니?”
강호인이 폭약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과거 장강에서 장일소가 존재하지도 않는 폭약으로 모두를 농락한 이후, 아무리 만인방이나 사패련이라 해도 대규모의 폭약을 동원하기란 어렵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말도 안 되네! 이 정도 폭발력이라면 폭약 중에서도 상급일진대, 이걸 저들이 구할 방법은…….”
“태양궁입니다!”
임소병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날카롭게 종리곡의 말허리를 끊었다.
“모르십니까? 태양궁은 단순한 강호의 문파가 아닙니다! 그들은 임읍의 왕족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라고 말할 수준의 폭약이 한 나라의 기준으로는 ‘고작’에 불과한 양이란 말입니다!”
일순, 종리곡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럼…….”
그의 시선이 격하게 절벽 위쪽으로 향했다.
붉디붉은 절벽 중앙에 커다랗게 금이 가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종리곡의 심장에도 금이 쩌저적 가는 듯했다.
“폭약이 더…… 있다고?”
그럼 지금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저 무리가 모두 저만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인가?
‘안…… 돼.’
이만한 폭발만으로도 절벽이 떨어져 나가고, 저렇게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이보다 더한 폭발이 벌어진다면 저 절벽은 어떻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달음에 달려온 남궁도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절벽이 무너지다니, 그럼 절벽 위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꼴이 말이 아닌 데다, 거기에 넋까지 나가서 일견 패잔병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로 절벽을 올려다봤다.
까마득하다. 어지간해선 오를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절벽이다. 저 높은 절벽이 한순간에 붕괴한다면, 과연 그 위에 있는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은 새가 아니다. 무인도 마찬가지다.
무인은 아무리 높은 절벽이라 해도 힘이 남아 있는 이상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발 디딜 데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까마득히 추락하는 중에 제 몸을 지킬 방도는 없었다.
“말이 안 되잖습니까! 저 절벽 위에는 화산과 무당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모용위경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저 위를 빼곡하게 채운 건 대부분 사파 놈들 아닙니까! 절벽이 무너지면 화산의 몇 배나 되는 이들이 모조리 죽을…….”
하지만 그 목소리도 별안간 뚝 끊겼다. 가뜩이나 창백하던 얼굴이 이젠 거의 푸른빛을 띠었다.
“……장일소.”
직감한 것이다.
장일소라면,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호가명이라면 그런 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릴 수 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 수백을 지옥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일 따위,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인두겁을 쓴 사람이 어찌…….”
모용위경은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듯 그 말만 거듭 중얼거렸다. 대꾸한 사람은 없으나, 다른 이들의 심정도 그와 딱히 다르진 않았다.
“그, 그럼 산을 오르면 되지 않습니까! 일단 절벽에서 벗어나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지금쯤이면 보나 마나 적진 한가운데에 파고들었을 터인데 그럴 여유가 어디에 있소!”
“그…….”
화산을 아는 이들의 눈앞이 순간 아찔해졌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아는 화산은 적을 앞에 두고 변죽을 울릴 문파가 아니니까.
“그, 그럼 이 모든 게, 화산을 저기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벌인 일이란 말입니까?”
“호가명! 이 개 같은 새끼가……!”
임소병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알려야 합니다!”
“뭘 어떻게?”
“올라가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화산이!”
그렇다.
알려야 한다. 아니, 당장 저들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저 절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릴 것이고, 절벽 위에 있는 화산은 떼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른다고? 여길?’
모용위경이 멍한 얼굴로 앞에 처박혀 있는 거대한 암석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눈길은 이내 처참한 시신이 되어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패련도들에게로 향했다.
……지금 막 저 절벽에서 추락해 죽은 이들에게로 말이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제 뒤를 받쳐 주십시오!”
남궁도위가 검을 들고 외쳤다. 금방이라도 절벽으로 달려갈 것처럼 발을 내디딘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당장 가야 합니다!”
“……소가주.”
“뭐 하는 거냐고 묻잖습니까! 이럴 시간이…….”
“오, 오르다가 폭약이 터지면?”
“……예?”
모용위경이 질린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 아래에 있는 이들은? 절벽을 오르던 이들은?”
“…….”
“그러면 결국 절벽 위에 있는 이들과 같은 꼴……. 아니, 그보다 더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게 아닌가?”
“그게 뭔……!”
벌컥 역정을 내려던 남궁도위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암담함이 서린 걸 봐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설마……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 봐야…….”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데!”
남궁도위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풍영신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남궁도위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금 저 절벽을 올라 저들을 막아야 한다는 지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다. 화산의 무덤에 다 함께 묻히자는 말밖에 더 되는가.
남궁도위는 이를 갈아붙이며 노기등등한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남궁명은 그 눈빛을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불안해져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소가주? 도위야. 자, 잠시 진정하거라. 응?”
“…….”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알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서늘한 눈으로 모두를 응시하던 남궁도위가 한마디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절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도위야, 안 된다! 도위야아아아아아!”
남궁명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한 그가 쇄도하는 길을 따라 붉게 물든 절벽에 새하얀 궤적이 그어졌다.
위태롭고, 또 아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