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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15화


1715화. 그걸로 됐소. (10)

긴장한 조걸이 마른침을 삼켰다.

불길과 얼음으로 동시에 뒤덮인 백천과 그런 그의 이마에 손을 짚은 채 눈을 감은 허공.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조걸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진정 가능할까?

당가의 의술로도 고치지 못하는 이를 무당의 무학으로 치료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사, 사형. 사숙은…… 괜찮을까요? 예?”

“…….”

“사형!”

“조용히!”

윤종이 눈을 일그러뜨리며 나직이 조걸을 나무랐다. 지금은 작은 방해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 까딱하다가는 백천뿐 아니라 허공조차 그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윤종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자리의 누가 알겠는가. 이건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니 누구도 감히 성패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기댈 곳이라고는…….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지.”

“……예?”

“궁극에 이르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한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해 궁극에 이르기 전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의미다.”

“…….”

“둘 다 도가 계열의 무학을 익힌다고는 하지만, 화산의 무학과 무당의 무학은 엄연히 다르다. 화산이 할 수 있는 것을 무당이 할 수 없고, 화산이 할 수 없는 것을 무당은 할 수 있다.”

윤종은 굳은 얼굴로 눈을 감은 허공을 주시했다.

“내가 아는 건, 적어도 서로 다른 기운을 다루고 이끄는 데 있어 천하의 어떤 문파도 무당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조걸은 윤종의 말을 들으며 백천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 무당에서도 허공은 탁월한 존재다. 이미 조걸은 보았다. 허공이 극에 달한 양의심공을 바탕으로 음과 양이 조화된 태극혜검을 전개하는 모습을.

그러니 결국 지금은 허공이 아니면 누구도 백천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제발…….’

조걸의 눈에 전에 없는 간절함이 어렸다.

우우우우웅.

한편 허공의 의식은 깊은 곳으로 침전해 들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육신 안에 있는 기운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이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육신이라면 더더욱.

‘불덩어리 같군.’

아니, 고작 그런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펄펄 끓는 용암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기분이다. 사람이 이만한 양기를 몸속에 채우고도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게 괴이할 정도다.

‘……그런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백천은 일견 모든 걸 놓아 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허공은 깨달았다. 화산의 장문대리는 지금 세상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와중에도 백천만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절망스러울 만큼 막대한 열기와 싸우고 있었다.

허공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존경스럽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이는 청명을 조우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과는 결이 달랐다. 무위가 아닌 사람 자체에 감탄한 것이므로.

이러한 기분을 느껴 본 게 대체 언제던가.

우우우우우우우웅!

백천의 몸으로 흘러든 백단(白丹)의 기운이 용암 바다 한가운데서 요동치고 있다. 태양궁주가 남긴 양기도 막강하지만, 태극신단 역시 천하에 다시 없을 영약이다. 이만한 두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인간의 육신 따위는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버릴 것이다.

쿵!

아니나 다를까, 두 기운이 서로 맞닿는 순간 백천의 육신이 거대한 몽둥이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

“사, 사형!”

“사숙! 이런, 빌어먹을!”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지만, 허공은 감각을 모조리 차단했다. 오로지 백천이라는 사람의 내부에 모든 감각과 신경을 집중시켰다.

‘살려 낸다.’

반드시.

우우우우우우웅.

허공의 손에서 맑은 기운이 퍼져 나오며 백천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들끓는 용암 같은 양기와, 사방을 얼려 버릴 듯 매서운 한기를 뿜어내는 음기. 그 두 기운에 비하자면 허공의 것은 한없이 미약하였다. 충돌하며 한껏 날뛰는 기운을 찍어 누르기에는 하찮게까지 보였다.

그럼에도 허공은 끊임없이 기운을 불어넣었다.

애초부터 그는 날뛰는 두 기운을 찍어누를 생각이 없었으니까.

허공이 뻗어 낸 기운이 들끓는 양기와 음기의 경계로 느리게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짓눌려 으스러질 듯했던 이 미약한 기운은 용케도 힘을 잃지 않고 두 기운이 충돌하며 맞닥뜨린 자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무엇이던가?’

위험하던가? 괴이하던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애초에 그러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메마른 사막이 있으면 얼어붙은 빙벽이 있듯, 세상에는 음과 양이 존재한다.

태초의 혼원에서 갈라져 나온 두 기운이 세상을 이루었다. 하지만 무당은 혼원, 즉 무극을 추구하지 않는다.

무극. 완전한 합일이란 사람의 마음을 이끌지만, 사실상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갈라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반목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뉘어 있는 것. 그 자체를 자연(自然)히 여기는 것. 그게 무당의 가르침이다.

하면 다를 게 무언가. 음과 양이 공존하는 장문대리의 육신과 무당이 추구하는 태극이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허공의 선기(仙氣)가 백천의 몸 안을 채운 음기와 양기를 부드럽게 감싸며 천천히 휘돌기 시작했다.

조화란 머물러 있지 않는 것. 세상은 그 자리에서 영원한 것 같지만, 항상 변한다. 머무르지 않고 휘돈다. 때로 음은 양이 되고, 양은 또한 음이 된다.

그렇기에 태극이라.

우우우우웅.

사정없이 모든 걸 부술 듯 날뛰던 거대한 음기와 양기가 이내 허공의 선기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숨을 죽이고 있던 윤종이 움찔하며 백천을 응시했다.

‘뭔가 바뀌었다.’

물론 몸을 얼린 음기도, 남은 반쪽의 몸을 금세 살라 먹을 것 같은 양기도 여전하다.

하지만 윤종은 분명 느꼈다.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 긍정적인 신호인지, 부정적인 신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허공은 여전히 백천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참선하듯 눈을 내리감고 있었는데, 이마에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자꾸 조바심이 일었다. 사실 백천의 몸에 손을 대고 확인해 보는 게 가장 확실하겠으나, 지금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윤종은 결국 조금 전에 조걸을 나무랐던 일도 잊은 채 나직이 당군악을 불렀다.

“가, 가주님. 지금…….”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에 커다란 놀라움과 함께 희미하지만 확연한 기대감이 피어 있었다.

“조금이긴 하네만…… 점차 안정되어 가는 것으로 보이네.”

“저, 정말입니까?”

당군악이 초조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물론……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중간에 조금만 일이 틀어져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지리란 사실은 여전하니.”

말을 하며 당군악은 저도 모르게 허공을 주시했다.

이대로 치료가 끝까지 계속될 수 있다면, 정말 백천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허공이 버틸 수 있을까?

안색은 창백하고 땀도 끊임없이 흘리고 있다. 이 치료에 얼마나 많은 힘을 소비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광경이었다.

그러잖아도 심하게 부상을 입은 사람이, 그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버텨 줄까?

그런데 그 순간.

“괜찮습니다.”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도 못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자네.”

“장로님이라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부러져 꺾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 놓은 적은 없는 분이시니까요.”

무진이 허공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채 다 숨기지 못한 감정이 아릿하게 배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무진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랑스러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리라.

“장로님이라면 반드시 해내실 겁니다.”

당군악과 화산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저 저 사람을, 무당을 믿는 것 외엔 길이 존재하지 않으니.

투웅!

하지만 그 순간, 백천의 몸이 다시 한번 튀어 올랐다.

“엇!”

화아아악!

축 늘어진 몸에서 음기와 양기가 미친 듯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치 백천의 몸을 갑갑한 감옥으로 여겨 빠져나가기 위해 날뛰는 것처럼 보였다.

“큭!”

누가 시키기도 전에 오검이 황급히 달려와 백천의 몸을 잡고 눌렀다. 약해진 몸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하지만 결단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치이이이익!

“큭!”

백천의 몸을 쥔 조걸의 손이 연기를 내며 익어 갔다. 물론 다른 이들의 처지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갑자기 무슨……. 가주님!”

당군악은 한껏 굳은 얼굴로 황급히 백천의 상태를 살폈다.

“장문대리의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걸세.”

“예?”

조걸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치떴다.

“장문대리의 육신이 더는 기운을 잡아 두지 못하고 있네.”

“자, 잠시만요. 아니, 그럼 어떻게…….”

윤종의 얼굴이 흙빛으로 질렸다.

몸이 기운을 잡아 두지 못하는 것. 이를 두고 무가에서는 죽음이라 부르지 않는가.

“장문대리의 몸을 보하게. 더는 한 톨의 기운도 이 몸에서 빠져나가게 둬서는 안 되네!”

“예?”

“기운을 가두란 말일세. 당장!”

당군악이 다급히 기운을 끌어 올려 펼쳤다. 이는 곧 백천의 육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제기랄!”

윤종이 이를 악물었다.

몸속 기운이 빠져나갈 한 올의 틈을 주지 않고 한 사람의 몸을 기운으로 감싼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설령 호신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극강의 고수라고 해도 제 몸이 아닌 타인에게 그럴 수는 없을 터.

그러나 확실히 지금은 어렵고 쉽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해야 한다.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

결국엔 오검과 혜연까지 달려들어 이를 악물고 백천의 몸 주위로 기운을 전개했다.

“비, 빌어먹을! 모자…….”

“돕겠습니다!”

심지어 무진과 진현까지 달려와 옆에서 기운을 내뿜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잠시 후, 악을 쓰며 요동치던 기운들이 가까스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한다.

“돼, 됐나……?”

“안심하긴 이르네! 치료가 끝나기까지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해.”

조걸이 고개를 애써 끄덕이며 이를 꽉 물었다. 그러다 문득 진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에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조걸은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감사…….”

“인연이란 무섭군요, 도장들.”

그 말에 오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현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얽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확실히 그렇…….”

기운을 불어넣으며 오검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문득 귓가에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인연이라……. 나도 그 말을 꽤 좋아하지.”

모두가 움찔하며 의약당 문 쪽으로 시선을 획 틀었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마당. 그곳에 낯선 무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와 있었다.

전신을 핏빛 붕대로 칭칭 감은 그들을 보는 순간, 오검의 눈에 끝을 헤아리기 힘들 만큼 깊은 절망감이 드리웠다.

“거기 누운 이와 나도 인연이 조금 있어서 말이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데, 잠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

붕대로 덮인 혈교주의 입가에 짙은 그림자가 어렸다.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 비릿한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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