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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1773화


1773화. 지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8)

“또 당했다고요?”

눈을 뜨기 무섭게 간밤의 비보를 전달받은 조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모양이다.”

“…….”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평소의 조걸이라면 다짜고짜 울분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화조차 나지 않았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그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적은요?”

“전혀.”

“인원도 늘렸고, 경계를 더 확실하게 하라고 당부했잖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호각조차 불지 못하고 당했다는 겁니까?”

“그래.”

조걸의 표정이 더욱더 굳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경우의 수는 오직 하나, 경계를 서던 이들이 다가오는 이를 적으로 여기지 않았을 경우뿐이다.

“……사형. 혹시 내부…….”

“거기까지만 해라.”

윤종이 엄하게 쏘아보자 조걸이 입을 다물었다. 눈빛으로 조걸을 다스린 윤종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군을 의심하는 건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도 신중해야 한다. 아직 우리가 따져 보지 않은 경우가 있잖으냐?”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그 대답은 천막의 문을 활짝 걷으며 들어선 이의 입에서 나왔다.

“천면수사.”

“……뭐?”

조걸이 입구를 향해 획 시선을 틀었다. 임소병이었다.

“천면수사 담여해라면 어떻습니까?”

그는 실로 여유 넘치는 말투로 심각한 말을 늘어놓았다. 조걸이 탄성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

“그 인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불리는, 천하제일의 역용술 대가니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당장 얼마 전에 지척에서 마주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가 태양궁주를 공격해 쓰러뜨리는 광경을 코앞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확실한 겁니까, 녹림왕?”

“글쎄요.”

임소병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담여해의 역용 능력이 어떤 경지에 올라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천하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다만 고려는 해야 한다는 거죠.”

조걸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불평했다.

“뭐가 이리 복잡해? 여하튼 간에 지금 천면수사 그놈이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거잖아요.”

“……단순해서 좋군요. 네, 그런 걸로 합시다.”

“그럼 대응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예?”

“어떻게 대응하죠?”

“그야 당연히…….”

대꾸하려던 조걸이 멍하니 말끝을 흐렸다.

“이거…….”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큰 외통수에 말려들었는지.

“천면수사라 했소이까?”

“예.”

임소병이 빠진 가운데, 많은 이들이 천막에 모여 있었다.

“천면수사 담여해라…….”

나직이 읊조리던 야수궁주 맹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라면 가능하겠군요. 아군으로 위장해 접근할 수 있었을 테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용위경은 의견이 전혀 다른 모양이다.

“그만한 위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작자가 직접 이런 일을 벌일 리 있겠습니까?”

“왜 안 됩니까?”

“답답하기는! 천면수사는 하오문의 문주이자, 사패련의 이인자나 다름없는 인물이란 말입니다.”

물론 실질적인 이인자는 독심나찰 호가명이겠지만, 그의 권위는 오로지 장일소에 기대어 만들어졌다. 그러니 냉정히 따지자면 천면수사 담여해가 사패련의 이인자라 보아도 틀리진 않았다.

“그래서요?”

“그런 자가 적진에 직접 잠입해 초병이나 암살하고 다니는 게 말이 됩니까?”

격양된 어조로 물은 모용위경이 이번엔 당군악 쪽을 보며 말했다.

“맹에서 이인자라 하면, 여기 계신 당 가주님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 말씀은…….”

“당 가주님께 적진에 잠입해 용독(用毒)으로 적을 줄여 달란 명령을. 아니, 부탁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확실히 그들의 상식선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장일소라고 해도 하오문주에게 그토록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사패련 역시 한 문파가 아닌, 여러 문파가 모여 만들어진 연합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천면수사가 제 의지로 나섰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남궁도위의 말에 풍영신개가 고개를 내저었다.

“천면수사 담여해는 무척이나 신중한 이일세. 그가 조금 더 과감했다면 사파의 판도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만큼. 그런 인물이 굳이 그런 위험한 일을 자처했을 것 같지 않네.”

“그렇습니까…….”

순간적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 그때였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 됩니다.”

모두의 시선이 종리곡에게 쏟아졌다.

“그가 담여해든 아니든, 간밤에 일어난 일의 과정은 명백합니다. 누군가가 번을 서는 이들을 속여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날에는 그저 의심에 그쳤지만, 하루를 더 겪어 보니 명명백백해졌다. 이전보다 더욱 경계했을 이들을 소리 소문 없이 해하려면 의심받지 않는 접근이 필수적이었다.

“그럼 그것만 경계하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무슨…….”

“접근하는 자는 그게 누구든 공격하라고 명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종리곡의 말에 몇몇 이들이 작게 탄성을 뱉으며 끄덕였다.

하나 반면에 안색을 굳히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 제갈자인이 입을 열었다.

“그리 좋은 생각 같지 않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지금 천우맹은 안 그래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서로를 의심하라는 명을 내리는 셈이 되지 않습니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면 감수해야지요.”

“피해를 줄이려다 맹에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

“금 가는 걸 피하려다 손발이 잘릴 수도 있지요.”

제갈자인과 종리곡이 팽팽하게 서로를 주시했다. 제갈자인도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장문인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겁니다. 애초에 천우맹은 한 문파가 아닙니다. 작은 이견 하나로도 언제든 갈라설 수 있는 연맹입니다. 그런 곳에 불화의 씨앗을 던지자고요?”

“번을 설 때 누구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원칙입니다. 지켜지지 않던 원칙을 이제라도 지키자는 게 왜 불화의 씨앗입니까?”

“그 의심이 번을 설 때만 들고 말겠습니까?”

제갈자인이 굳은 낯으로 말을 이었다.

“알 수 없는 이가 우리 사이에 잠입해 있음을 시인하는 일입니다. 번을 설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다른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될 겁니다. 자문의 사형제들보다는 타문의 낯선 이들을 의심하게 될 테고요.”

“음.”

“총사께서 겨우 당으로 엮고 개편하여 완화해 놓은 문파 간의 경계에 다시 거대한 벽이 들어설 겁니다. 어쩌면 그 전보다 더욱 높은 벽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럼 맹은 그 길로 끝입니다.”

“그건…….”

“이미 징후는 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 서로를 의심하는 말과 행동이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의심을 더욱더 부추기게 될 명령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종리곡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경계하여 당장 눈앞의 피해를 외면하자는 것이오? 그리 반대할 거라면 대안을 내놓으시지요.”

“대안은…….”

“대안조차 없다면, 대체 뭘 위한 반대란 말입니까?”

천막 안 공기가 이젠 칼날처럼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당군악이 깊게 한숨을 내쉬어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쯤 하시지요.”

“…….”

“…….”

“우선은 번을 늘리겠습니다.”

“당 가주님!”

종리곡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당군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당군악은 철회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만일 놈들이 노리는 게 우리 사이의 분열이고, 그 틈을 타 전면 공세를 할 셈이라면. 지금은 최대한 분열을 막아야 합니다.”

“죄 없는 이들이 희생된다고 해도 말이오?”

“번을 늘리고 교대 횟수를 늘린다면 희생은 줄일 수 있습니다. 번을 서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위험은 줄어들 테니.”

“그럼 인원이 과다하게 필요하오.”

“감수합니다.”

종리곡이 팔짱을 끼더니 차게 조소했다.

“위험하니 쉬지 말라는 소리군.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 않소? 저들이 우리를 갉아먹을 심산이었다면 제대로 통한 모양이구려.”

몇몇 수장들의 눈빛이 종리곡에 동조하듯 빛났다. 당군악은 흔들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태상방주님.”

“예.”

“사방에 퍼져 정보를 수집 중인 개방도들을 소집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주변에 있는 이들이라면, 하루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수는 개방도로 보충할 수 있겠습니다.”

“정보 수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저들의 동태보다 우리 내부의 단속이 중요합니다.”

확실히 당군악의 말대로 하면 어느 정도 해결은 될 것이다. 혹 문제가 생겨 개방도들을 소집하는 데 하루 정도 더 걸린다고 해도 이틀 정도는 참아 낼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는 그 대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영 마뜩잖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군악은 이 천막 안의 인원이 둘로 나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맹의 선택이라는 거군.”

나직이 중얼거린 종리곡이 당군악을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서늘해져 있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무엇입니까?”

“맹주께서는 어디에 있소?”

당군악은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애초에 종남은 맹에 합류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입장을 같이하는 것뿐. 그런데 맹주님도 아닌 당가주의 지시에 따르라 하니 심히 불쾌하오.”

“그건…….”

“맹은 맹대로 하십시오. 종남은 종남대로 할 터이니.”

종리곡이 몸을 일으켜 천막을 나서며 몇몇 수장들에게 눈빛을 주었다.

“애초에 화합할 수 없는 이들도 있는 법이지.”

“장문인!”

종리곡이 무심히 나가 버리자, 천막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종리곡이 마지막에 던진 시선을 받고 위축된 한 사람이 옆에 있는 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윤종 도장.”

“예, 궁주님.”

“청명 도장은 어디 계시나요?”

윤종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설소백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너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분만 있으면…… 이런 건 언제든 해결될 텐데.”

윤종은 대답 대신 설소백의 팔을 가만히 잡았다. 그러고 한참 후에나 나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 * *

번을 선다는 건 으레 무료한 일이다.

보통 적이란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지 않는 적을 경계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니 무척 피곤하고 지루할 수밖에.

하지만 만약 적진이 지척에 있으며, 심지어는 더없이 두려운 존재라면? 그때부터는 번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피가 마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발끝에 절로 힘이 들어가게 되는, 마치 고문과도 같은 시간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번을 서기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차마 알지 못했던 모용세가 검수는 벌써 몇 차례나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엔 어둠이 내린 초지만이 펼쳐져 있었다. 달빛조차 없으니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함만 밀려들었다.

스슷.

그 순간, 뒤쪽에서 수풀이 무언가에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모용세가 검수가 바짝 긴장하고 있던 몸을 획 돌리며 검을 들었다. 한 손으로는 잽싸게 호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잔뜩 끌어 올렸던 몸의 긴장은 금세 풀리고 말았다.

“교대다, 교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린 이가 짜증 어린 기색을 내비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복색으로 보아 제갈세가 사람인 듯했다.

‘그래. 제갈세가와 교대하기로 했었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같이 번을 서던 나머지 모용세가 검수들도 급히 검을 들었다가 교대라는 말을 듣고 서서히 자세를 풀었다. 의심이 느슨히 풀리는 순간이었다.

“좀 늦었다. 미안하다. 긴장했는지 배가 아파서.”

“그럴 수 있지.”

모용세가 검수 역시 번을 서는 내내 은근한 복통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긴장을 내려놓지 못해서였다.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며 들었던 병기를 내려놓으려던 바로 그때, 순간 스치는 생각에 그가 멈칫했다.

“잠깐……. 그런데 왜 혼자지?”

“응?”

“교대는 셋 아닌가?”

“그놈들도 배가 아픈 모양이야. 우선 나 먼저 왔지.”

그럴 수 있다. 모두가 긴장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정말로 의심이 가는 게 있었다.

“그런데…… 정말 교대 시간이 지났나?”

“응?”

“아직 좀 남은 것 같은…….”

“아, 그래?”

다가오던 제갈세가의 무인이 피식 웃었다.

“조금 더 빨리 눈치채지 그랬나?”

“뭐?”

“여기까지 접근하기 전에.”

제갈세가 무인의 몸이 일그러졌다. 아니, 너무 빨리 달려들어 마치 몸이 일그러지고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적!’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의 손이 모용세가 무인의 얼굴 지척에 날아든 뒤였다. 새하얀 손에 어린 서슬 퍼런 강기. 차마 눈을 감을 틈도 없이 죽음을 직감했다.

카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커다란 쇳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모용세가 무인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허억! 헉?”

격통이 밀려드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만 간신히 알았다. 그가 화들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당신?”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어느새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달을 검면에 담은 채.

“화산…….”

모용세가의 무사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달빛이 시려서일까, 얼핏 보이는 낯빛이 유독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분명히 그가 익히 아는 인물이 맞았다.

“물러나.”

“예!”

모용세가들인이 황급히 끄덕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죽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한 줌 고혼이 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괜한 오기 따위를 부릴 엄두도 못 내었다.

까마득한 격차 앞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원을 불러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흐음…….”

제갈세가의 무인……. 아니, 천면수사 담여해가 제 얼굴을 슬쩍 매만졌다. 뺨이 길게 베여 옅은 피가 배어났다. 매끈하게 갈라진 면구(面具)가 살에서 떨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기운도 완벽히 속였을 텐데?”

“냄새.”

“뭐?”

“구린내가 진동하더군.”

어처구니없다는 듯 잠시 침묵한 천면수사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구린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에게서 피 냄새를 맡았다는 의미리라.

“냄새라니……. 차라리 짐승을 상대한다고 여겼어야 했나? 개새끼가 따로 없군.”

천면수사의 눈빛이 새파랗게 가라앉았다.

“생각한 것과 다소 다르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네. 아니, 오히려 좋겠지.”

그의 창백한 손이 새하얀 장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화산검협의 목이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이 될…….”

파아아앗!

그 순간, 청명의 검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천면수사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뭐?’

서걱!

천면수사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일 장 넘게 옆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는 이미 시뻘건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청명의 검이 연이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피하기에는 늦었음을 직감한 담여해가 양손을 교차해 치켜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그러나 검과 손이 맞닿기 직전 청명의 검이 기이하게 뒤틀리더니, 이내 담여해의 손목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큭!”

담여해가 뒤로 훅 물러났다. 손목이 얕게 갈라져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공력으로 감싼 손이…….’

화산검협. 아니, 매화검귀.

련에 떠도는 그에 대한 숱한 소문을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는 검기였다.

“지껄이지 마.”

“…….”

“말했잖아. 냄새난다고. 구역질 나니까 주둥이 닥쳐.”

청명이 검을 끌며 담여해에게로 다가갔다. 눈빛이 북해의 삭풍보다 더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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