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1776화
1776화. 그럼 어디 확인해 보지. (1)
“장문인!”
진송원이 피에 젖은 이를 으스러트릴 듯 악물었다.
“놈들이! 놈들이 내문(內門)을 뚫어 내고 있습니다! 장문인!”
그의 어깨를 꿰뚫고 등 뒤로 삐죽이 튀어나온 칼날에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후욱……. 후욱!”
진송원이 있는 힘을 다해 제 검을 움켜잡는다.
‘사파 놈들…….’
진송원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타오르는 붉은 불길과 겁에 질린 얼굴로 검을 들고 있는 제자들.
장문의 처소를 중심으로 둘러쳐진 내벽 밖으로는 아마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저들을 막아 내기에 점창의 힘은 너무도 부족하니까.
수백 년을 이어 온 점창의 현판은 오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진송원의 이름은 치욕의 상징으로서 대대로 구전되겠지.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 과분한 바람일지 모른다. 어쩌면 점창이란 이름조차 세상에서 사라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라.
“흐…….”
진송원의 입에서 비통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울음도 아닌, 그렇다고 비명도 아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무게에 짓눌려 버린 이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서글픈 신음이었다.
“장문인. 이제 어떻게…….”
그의 제자가 희게 질린 얼굴로 진송원을 바라본다. 애원하듯이, 울부짖듯이. 하지만 그 순간 진송원은 위로 대신 제자의 뺨을 올려붙였다.
쫘아아아악!
그 생경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놀란 점창의 제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진송원을 바라보았다.
“그딴……. 그딴 얼굴 하지 마라!”
“자, 장문인.”
“수를 내면 살 수 있을 거 같으냐?”
“…….”
진송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부르튼 입술이 쩍 갈라지며 시뻘건 피가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다!”
“…….”
“살아날 방법 같은 건 없다. 청성과 아미의 소식을 듣지 못했더냐?”
제자들의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이 진송원의 두 눈에 담겼다.
버겁다.
아직 점창의 장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버겁기만 했다.
저 적들을 맞이하는 것도, 결국 죽음이란 결과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제자들을 독려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어라!”
진송원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빌어 본다 한들, 살아날 길 따위는 없다.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다고 인정을 보일 놈들도 아니다. 그러니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저놈들에게 겁먹은 얼굴 따위는 보이지 마라. 어차피 살아날 수 없다면, 한 놈이라도 더 끌고 지옥으로 가라. 그게 점창의 문도로서 우리가 지켜 내야 할 마지막 자존심이다!”
피가 끓는 듯한 외침이었다. 그 말을 들은 점창의 제자들은 저마다 입술을 깨물고 의지를 다졌다.
진송원의 말이 그들을 뒤흔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어차피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어떻게 죽느냐 뿐.
대 점창의 문도로서 사파 따위에게 겁먹은 얼굴로 죽고 싶은 이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모르되, 죽음이 결정된 이상은 고민의 여지조차 없다.
“각오는 됐느냐!”
“예!”
진송원이 일그러진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가슴은 비통함으로 가득 찼지만, 제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 이 모습이 저들에게 남는 그의 마지막 모습일 테니까.
“점창은 사파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없다면 검 따위는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 가슴 안에 협의가 없다면 거추장스러운 점만 가득한 정파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형…….”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진송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네, 사제. 내가 미욱하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게 어찌 사형의 잘못이겠습니까?”
그의 사제 현연백(玄煉白)이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닙니다. 그저 점창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죽으면 될 일이지요.”
“…….”
“옵니다.”
쾅!
진송원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방의 문이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파편을 뿌려 댔다. 그 파편들 사이로 핏덩어리가 된 문도들의 시신이 처참한 몰골로 날아들었다.
쿵. 쿵!
“이명아!”
“사제!”
사방에서 비통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급히 달려간 이들이 쓰러진 이들을 부여잡을 때였다.
“우욱!”
“이…….”
답답한 신음과 억눌린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온다.
전신이 난도질당한 시신들.
알 수 있다. 검을 쓰는 이들이기에 알 수밖에 없다. 이 상흔들이 결코 전투의 와중에 새겨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상흔들은 하나같이 철저하게 고통을 위한 것들이다. 저 작자들이 이들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처참한 고문을 자행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는 없다. 사람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저들이 사파고, 사람의 목숨을 깃털만큼 가벼이 여기는 작자들이라고는 하나, 멀쩡한 사람을 이리 처참하게 난도질해 죽일 수는 없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그 사실을 알아챈 이들이 피를 토하는 듯한 노호를 내질렀다.
하지만 동시에 점창의 제자들은 느껴야 했다. 적을 성토하는 사형제들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이 녹아들어 있음을.
처참한 죽음. 상상만 했던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 눈으로 확인한 순간, 있어서는 안 될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그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 순간, 부서진 문으로 수십의 사파인들이 걸어 들어왔다.
“…….”
그 모습 역시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광기에 미쳐 피를 탐하는 짐승이 아니다. 걸음걸음마다, 흔들리는 손짓 하나마다 철저하게 훈련된 절도가 느껴진다.
숨이 막혀 왔다.
상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저 감정조차 없어 보이는 자들이 어떤 식으로 죽어 가는 이를 난도질하고, 고통을 주었을지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죽음. 절대 피할 수 없는 자신들의 미래를 떠올린 이들의 얼굴이 다시금 희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쾅!
그때, 진송원이 강렬하게 진각을 밟았다. 단단한 청석이 잘게 부서질 정도로 힘을 실은 일격. 그 일격이 잠시나마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조무래기에겐 볼 일 없다.”
파앗!
진송원이 검을 뻗어 눈앞에 선 이들을 겨누었다.
“네놈들의 수괴. 패군 장일소는 어디 있느냐?”
“…….”
차가운 눈빛. 하지만 결코 동요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눈빛들이 진송원을 노려본다.
“장일소! 어디에 있느냐! 설마 두려워 뒤로 숨은 건 아니겠지! 네 놈도 사내라면 앞으로 나서라! 내 검을 받을 용기가 네게 있느냐!”
진송원이 그의 온 힘을 끌어올려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화답은 그리 늦지 않게 들려왔다.
“이런, 이런……. 살살 좀 말해 주면 좋잖니.”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선 이들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한 사내가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붉은 장포, 새하얀 얼굴, 그 머리에 쓴 면류관.
그 차림새만으로도 이제 천하의 모든 이가 알아보고도 남을 이. 사패련의 련주, 패군 장일소였다.
“내가 보기보다 간담이 작은 사내라서 말이다. 그렇게 소리를 치면 심장이 떨린단다.”
뿌드득.
진송원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자다. 이 사내다.
이자가 점창을 불바다로 만들고 그의 제자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든 장본인이다.
“나서라! 내 친히 네 목을 베어 주겠다!”
그 말을 들은 장일소가 둘째 손가락을 느릿하게 피더니 제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가명아.”
“예. 련주님.”
“왜 정파라는 놈들은 다들 내가 제 놈들의 의도대로 따라 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둔한 머리로 짜낼 방법이 그것뿐이겠지요.”
“끄응. 이리 답답해서야.”
장일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방금도 말했듯 나는 간담이 작은 사내라, 굳이 검을 섞고 싶지 않단다.”
“네가 그러고도 사파의 수괴를 자처하느냐?”
“멍청하긴. 그러니 사파의 수괴지! 내가 그리 당당하게 살 거면 뭐하러 사파로 살겠느냐?”
“이……!”
“아서라.”
장일소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소맷자락이 펄럭이며 휘날린다.
“내 목을 벤다 한들, 너희가 살아날 길 따위는 없단다. 알잖니. 너희는 결국 모두 저 앞에 놓인 고깃덩어리 꼴이 될 거란다. 하나……. 그래,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지.”
“…….”
점창 제자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들 앞에 널브러진 시신에게 향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눈빛엔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알겠니?”
그 순간,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내벽 위로 수많은 사파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 타는 듯한 시선을 받은 점창의 제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독 안에 든 쥐가 된 듯 여길 수밖에 없었다.
“확언컨대, 너희가 살아날 가능성 같은 건 없단다. 굳이 하나 있다면……. 너희가 아니라 내 변덕에 달려 있겠지.”
“변덕?”
“끄응. 망할 산을 올라왔더니 다리가 아프구나. 일단 좀 앉고.”
장일소가 손짓을 하자 뒤쪽에 있던 이들이 의자를 날라 왔다. 그러자 장일소가 태연하게 그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이제 좀 살 것 같구나.”
진송원과 점창의 제자들이 멍한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보았다.
의자?
아무리 저들이 승기를 잡았다지만, 이 전장에 태연히 의자까지 구비해 와 자리에 앉는다고?
그들을 얼마나 안중에도 두지 않으면 저런 짓거리를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장일소!”
“그래. 변덕, 그저 변덕이지.”
하지만 장일소는 환담이라도 나누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적을 살려 두지 않지. 그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니까. 그리고 돼지도 살려 두지 않는단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올라오는 기분이거든.”
장일소가 제 코를 쥐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악취가 지금도 난다는 듯이.
“그러니까 내가 살려 두는 건 오직 하나.”
새빨간 장일소의 입술 끝이 기이하게 말려 올라갔다.
“개뿐이란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송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우리더러…….”
“아아.”
빙긋이 웃은 장일소가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눈으로 진송원을 바라보았다.
“벌써 그리 기뻐할 건 없단다. 물론 흔치 않은 기회를 받아 들뜬 건 이해하지만.”
“…….”
“아무래도 우리 역시 손실이 꽤 커서 말이야.”
장일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평소였다면 더러운 개새끼 따위에 관심을 둘 일은 없겠지만, 지금은 외롭고 적적해서 굳이 다가와 신발을 핥아 댈 개가 있다면 밀어내긴 어려운 처지란 말이지.”
진송원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니 결정하렴. 거기서 죽을 건지, 아니면…….”
장일소가 한쪽 발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이리 와 내 신을 핥고, 멍멍 짖어 볼 건지 말이다.”
“…….”
“정 간절하다면 받아 줄 테니까.”
진송원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지금 그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지금 그더러 사파의 신을 핥고 개처럼 짖으라 말하는 건가?
“개 같은 소리 작작 지껄여라! 내가 죽는다 한들 그런 모욕을 받아들일 것 같은가!”
진송원이 그 스스로를 다잡는 것처럼 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무인은 죽을지언정 치욕을 감내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어 점창이라는 이름을 지킬 것이다!”
“흐음. 그래……?”
장일소가 기특하다는 듯 진송원을 보며 웃는다.
“그럼 어디 확인해 보지. 네 각오가 진짜일지 말이다.”
“……뭐?”
“끌고 오렴.”
진송원의 두 눈에 의문이 어린다.
“무슨 개수작…….”
하지만 노기를 뱉으며 벌어졌던 그의 입은 이내 허무하게 다물어졌다.
“너…….”
장일소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
겁에 질린 그들의 얼굴이 진송원도 익히 아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장……문인.”
“스, 스승님!”
아이들.
적의 습격을 예감한 순간 진송원이 재빨리 탈출시킨 점창의 어린 제자들이었다.
아직 그 얼굴에서 붉은 기가 사라지지도 않은 작은 아이들이 눈물투성이가 된 얼굴로 겁에 질려 있었다.
“너……. 장일…….”
“그 각오는 물론 너뿐 아니라. 점창의 제자들도 모두 한 것이겠지?”
“…….”
“어떠니?”
장일소가 손을 뻗어 옆에선 아이의 가슴팍을 움켜잡는다. 작은 무복에 새겨진 점창의 문양이 진송원의 두 눈에 틀어박혔다.
“대답해 보렴. 너희도 점창의 제자겠지?”
안 돼.
진송원의 생각은 차마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이 잡힌 아이는 눈물투성이가 된 얼굴로도 입을 앙다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
더없이 바랐고, 결코 바라지 않은. 그 작은 동작에 장일소가 미소를 짓는다.
“과연…….”
부드럽기 짝이 없는 미소를.
“착한 아이구나.”
우드드득!
아이의 가슴이 그대로 으스러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일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이를 보며 진송원이 지옥의 끝자락에서나 흘러나올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