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1781화
1781화. 이제 당신이 해야 할 후회입니다. (1)
“대답해. 넌 알고 있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억지를 쓴다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려는 게 아니었다. 청명의 얼굴에 드러난 건, 절망이나 공포에 더 가까웠다.
천마는 되살아났다. 청명이 직접 죽였음에도. 목을 베던 때의 감각이 아직 손끝에 생생한데도.
천마는 ‘죽음’이라는, 모두에게 공평한 결말마저 짓뭉개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실이 청명의 심장을 옥죄었다. 금방이라도 으깨고 짓이겨 버릴 것처럼.
천마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한 공포가 아니다. 다시 쓰러뜨린다고 해도, 언제고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또 부활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공포다.
한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므로.
그렇다면……. 기껏 쓰러뜨린 천마가 또다시 당연하다는 듯 부활해 버린다면, 세상은 어찌 되는가.
청명조차 없는 세상이 천마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청명이 지키려 했던, 이으려 했던, 피 흘려 세운 것들. 그가 간신히 지탱하며 막았던 모든 재앙이 한꺼번에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천마의 존재를 완전한 무(無)로 돌려야 한다.
그 방법은 알지 못한다. 다만…….
청명이 눈앞의 청년을 빤히 응시했다. 이 인외(人外)의 존재는 여전히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달뢰라마는 분명 평범하지 않다.
포달랍궁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존재다. 당연히 가진 지식의 폭도 평범한 이들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다.
그러니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빌어먹을 놈을 저지할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청명의 시선을 느꼈는지, 달뢰라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시주…….”
달뢰라마의 두 눈에 일순 감정이 스쳤다. 그렇게 일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청명은 너무도 잘 알았다.
서글픔이다.
그러나 알 수는 있을지언정, 이해할 순 없었다. 어째서 달뢰라마는 저런 시선을 보내오는가.
그때, 달뢰라마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주. 그건 저의 역할이 아닙니다.”
실로 진중한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거절의 뜻이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청명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뢰라마가 할 말을, 그리하여 그 자신이 듣게 될 대답을.
“역할이 아니라고?”
“시주…….”
“안다, 모른다가 아니라……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
“그게 네 대답인가?”
청명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 적의도, 서늘함도 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곁에서 듣고 있던 반선라마는 움찔하며 청명을 보았다. 그러다 이내 짙은 당혹감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청명을 보게 된 이유가, 그의 목소리에 드리운 아득한 무게 때문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선라마는 달뢰라마를 바로 곁에서 보좌한다. 이 천하를 통틀어, 달뢰라마의 말보다 더한 무게를 지닌 게 무엇이 있겠는가.
바다를 보며 사는 이는 호수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 제아무리 거대한 호수라고 해도 결국 생경한 광경을 선사할 뿐, 바다를 아는 이를 놀라게 할 수는 없다.
같은 이치로, 반선라마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에 실린 무게 때문에 놀랄 이유는 결단코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반선라마는 분명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청명은 반선라마가 생각을 이어 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렇겠지. 그래……. 당연히 그러시겠지.”
청명의 목소리에, 달뢰라마의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렸다. 청명이 말을 이었다.
“전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도문에 몸을 담았음에도, 심지어는 두 번의 생에 걸쳐 도사로서 살아가면서도 끝끝내 풀지 못했던 의문이다.
청명의 눈빛은 달뢰라마를 꿰뚫을 듯 날카로웠다.
“도가도, 불가도 매한가지.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고, 부처가 되기 위해 수련한다. 다치면 상처받고, 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주…….”
“도문은 말한다. 선도(仙道)를 통해 속세를 벗어나 등선에 이르라고. 불문은 말하지. 참선과 고행을 통해 해탈에 이르라고. 그리하면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될지니, 오물로 가득한 속세를 벗어나 마침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낼 수 있다고.”
청명의 입꼬리가 매정하게 비틀리고 일그러졌다.
“하지만 거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
“수많은 이들의 삶이 유린당하고.”
심장이 울렸다.
“마땅히 이어져야 할 미래가 끊기고.”
지극히 아프도록.
“‘선(善)’을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이 숱하게 죽어 나갈 때.”
그날의 광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그 부처와 신선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
“너희는 그저 보고 있지. 마치 물이 차오르는 개미굴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비웃는 인간처럼.”
“시주…….”
“너는 조금 전 그렇게 말했다. 구도는 고독한 일이고, 나와 남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다고. 고뇌에 떠는 것도,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그저 깨닫지 못한 중생의 일이라고.”
달뢰라마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하면, 묻겠다.”
“시주.”
“너의 구도에는 무슨 의미가 있나.”
“시주!”
비명처럼 외친 건 달뢰라마가 아닌 반선라마였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말았다. 하지만 청명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혼자 높은 뜻을 알아서 대단한 세상을 보고, 혼자 위대할 뿐이라면! 네 그 잘난 깨달음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시주. 부처의 높은 뜻은…….”
“입 다물어. 네게 묻는 게 아니야.”
청명이 반선라마의 말허리를 자르고는 이를 드러냈다.
“대답해 봐.”
“…….”
“잘난 척 선문답만 늘어놓지 말고 대답해 보라고. 네가 뭐가 다르지? 사람을 벌레처럼 보고 짓밟는 이와, 그 짓밟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가 대체 뭐가 다르냔 말이다. 이르지 못한 이들의 괴로움을 외면하는 게 너희의 잘난 법도라면, 대체 왜 너희를 두고 위대하다고 해야 하지?”
그따위 신선은 필요 없다. 그따위 부처도 필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힘껏 경멸하고 힐난하며 비웃을 것이다. 힘이 없는 자의 외면은 서글픔이지만, 힘이 있는 자의 외면은 비겁함이니까.
청명의 눈빛이 너무도 무겁고 버거워서일까. 아니면 그에게도 할 말이 있어서일까. 한참 침묵하던 달뢰라마가 입을 뗐다.
“다른 것은……. 아니.”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는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한숨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달뢰라마의 얼굴에 머물렀던 감정은 사라졌다. 사람의 영역에서 벗어난 인외의 존재임을 증명하듯.
“같은 것을 본다고 해도 깨닫는 바는 다른 법. 시주께서 그리 느끼신다면 그 또한 틀리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청명은 순간 허탈한 마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과거에 그랬다. 사람들은 천마를 두려워하고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증오를 보이지는 않았다. 마음속 깊이 천마를 증오하고 또 증오한 사람은 오직 청명뿐이었다.
청명은 다른 이들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다른 이들은 외려 청명을 괴이하게 여겼다. 그때는 이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어째서 모두가 천마를 증오하지 않았는지.
사람은 산을 원망하지 않고, 바다를 증오하지 않으니까.
거대하고, 무심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아무리 소리치고 발악해도 무엇 하나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앞에 선 미약한 인간의 절망을, 청명은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달뢰라마가 청명을 똑바로 주시했다.
“다만, 제 대답이 그저 면피가 아님은 알아주시길 청합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였습니다. 그건 저의 역할이 아닙니다.”
청명의 눈썹이 희미하게 꿈틀했다.
묻지 않았다. 그럼 그게 누구의 역할이냐고. 대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달뢰라마의 속뜻은 다르다고 해도, 청명은 그 역할을 타인에게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
청명이 경멸을 담아 씹어뱉었다.
“여기까진 뭐 하러 처왔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시주의 후회에 대해 논하고자 왔다고.”
“후회?”
청명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왜? 내가 후회하니까, 다정하게 위로라도 해 주려고?”
“아닙니다.”
달뢰라마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청명은 더 이어질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꺼져.”
“…….”
“설령 내가 후회에 잠겨 익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후회에 대해 너랑 논할 일 따위는 없으니까.”
달뢰라마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나는 인간이다. 네가 하찮게 여기는, 평범한 인간.”
“……시주.”
“그리고 인간인 나는 대단하신 분이 선심 쓰듯 던져 주는 부스러기 따위에 관심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 네 도움 같은 건 받지 않겠다.”
달뢰라마의 두 눈에 다시금 작은 서글픔이 머물렀다.
순간적으로 청명은 말문이 막혔다. 기억이 떠올라서다.
저 눈. 과거 달뢰라마와 마주했던 때와 같다.
지금보다 더욱 인간 같지 않았던 달뢰라마가 홀린 듯 중얼거렸던 말이 뇌리에 선명히 떠올랐다.
삼아승지겁.
영원히 자세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그 영문 모를 말이 왜 하필 지금 떠오르는 걸까.
“오해가 있습니다, 시주.”
“오해? 아, 사람을 향한 네 대단한 자비를 알아주기라도 하라고?”
청명이 비아냥거리자 달뢰라마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후회는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후회가 아닙니다.”
“……뭐?”
“이제 당신이 해야 할 후회입니다.”
청명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 침묵을 지키다 툭 내뱉었다.
“후회라면 지긋지긋하게 했어. 이제 와 새삼 후회할 일이 생긴다 해도…….”
“사바세계는 고해로 가득합니다. 그 고해의 가장 깊은 곳은 후회라는 이름으로 채워져 있지요. 때로는 후회가 이승을 나락보다 더한 고통으로 물들이기도 합니다.”
청명이 달뢰라마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시주는 살아서 지옥을 겪게 될 것입니다.”
달뢰라마는 무척 진지해 보였다. 청명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래서 잘난 것들과는 대화가 안 통한다.
살아서 지옥을 겪어? 그런 건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다. 어쩌면 지금도 지옥일진대.
“다 지껄였으면 꺼져라.”
“시주.”
달뢰라마는 다시 한번 단호히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절실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제 말을 허투루 넘기셔선 안 됩니다. 시주께는 많은 것이 얽혀 있습니다. 시주께서 앞으로 겪어야 할 후회는 지금껏 겪어 온 어떤 후회와도 다릅니다. 영혼이 부서지고, 영원한 암흑을 헤매는…… 차마 겪을 수 없는 고통과도 같을 것입니다.”
“…….”
“저는 그걸 막기 위해 이곳까지 왔습니다.”
청명의 눈빛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암흑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들을 필요도, 상대할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막을 수 있다고?”
“그러합니다. 시주께서 결심만 하신다면 말입니다.”
두 사람이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마주 보았다. 손끝이 바짝 타들어 갈 것 같은, 숨 막히는 대치 끝에 청명이 입을 열었다.
“말해 봐.”
“…….”
“들어는 보지.”
달뢰라마는 말하기 전 짧게 탄식했다.
그는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청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어쩌면 이 말을 꺼냄으로써 청명을 더한 고통으로 몰아넣게 될 수도 있음을 알기에.
하지만 말해야 한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할 수 없다. 이자를 구원하는 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일 테니까.
“시주께서 가장 증오하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이를 떠올려 보십시오.”
달뢰라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명의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청명은 그 인물을 떠올린 후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그 얼굴이 천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뢰라마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청명 역시 천마를 완전한 증오의 대상으로는 삼을 수는 없는 걸까? 그도 아니면…….
아니, 지금 이런 건 중요치 않다.
“그래서, 그 인물이 뭐가 어쨌는데.”
“그를…….”
달뢰라마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하고자 했던 말이 아주 어렵사리 흘러나왔다.
“지금 떠올린 그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순간, 청명의 두 눈에 북해의 빙하보다 서늘한 한기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