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14화 – 세크메트의 분노 2 : 실종된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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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1권 14화 – 세크메트의 분노 2 : 실종된 고고학자


실종된 고고학자

“백호 씨의 소개로 왔습니다. 저는 홍영기라고 합니다.” 머뭇거리면서 퇴마사들의 거처로 들어서는 영기의 모습은 퍽 학구적이었다. 검은 안경을 쓰고 단정한 차림새를 한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로, 얼굴이 희고 파리한 것으로 보아 자연스럽게 공 부벌레가 연상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마침 퇴마사들은─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지난번 케인을 죽게 만든 일에 대해 상심 해하던 현암을 달래느라고 한데 모여 있던 참이었다. 일행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자 당황스러웠다.

“백호 씨의 소개라구요?”

“예. 저는 전에 보도되었던 덴데라 유적의 발견자였던 홍승표 박사의 아들입니다.”

“아! 덴데라 신전의 비밀 석실.”

승희가 아는 척을 했다. 역시 고고학을 전공했던 승희라서 기 사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이미 실종된 지 삼 개월이 넘었지요. 그동안 갖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검찰 쪽의

어느 관계자가 백호라는 분을 소개해 주었고, 백호 씨가 이곳으 로 찾아가 보라고 해서…………….”

남자는 조금씩 더듬거리며 슬픈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일행 앞에 내밀었다. 백호의 소개장인 듯했다. 승희는 어느새 영기의 마음을 읽었는지 일행에게 고개를 끄덕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 다. 믿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영기는 침울한 어조로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데에 퇴마사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 다. 백호의 소개장에도 씌어 있기를 ‘유럽에서의 일도 급하지만 홍 박사를 찾지 못하는 것도 국가적인 손실이라 할 수 있으니 협 ‘조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기에 일행은 승희에게 그 일을 부탁 하기로 했다. 승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는 홍승표 박사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요. 아무리 투시를 한다 해도 그건 뜬구름 잡기죠. 더구나 몇천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

“투시가 거리와도 상관이 있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알아내기 어 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혹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영기가 눈썹을 찡그렸다.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요?”

“예. 그러니까 박사님이 평소에 자주 가지고 다니시던 물건이 라거나 아님 직접 만드신 것같이 박사님의 손이 많이 닿았던 것 말이에요.”

“아, 그렇다면.”

영기는 주머니 속에서 몇 장의 편지를 꺼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버님이 이집트에서 보내신 편지지요.”

현암이 편지를 쳐다보았다.

“내용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편지 자체도 물론이지만 내용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러시지요. 이미 경찰에도 여러 번 보여 주었습니다만 특별한 내용은 없으니까요.”

승희는 편지 두어 장을 들고 옆방으로 들어갔고 현암은 그중 한장을 집어 들고 유심히 읽어 보았다. 아마도 발굴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쓴 편지였던 듯, 당최 알 수 없는 문구들로 가득 씌 어 있었고 이집트의 그림 문자도 그려져 있었다.

발굴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날씨가 매우 덥지만 이제 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 어려움은 없단다. 커크 교수와 카프너 기사는 매우 열성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상하게 나 는 그런 그들이 두렵다는 생각도 약간은 가지고 있단다. 그러나 별것은 아니겠지. 그 석실은 하토르의 숭배를 위한 방이 아닌 세 크메트를 섬기는 방이었던 듯하구나. 벽에 새겨져 있는 문구가 아무래도 조금 섬뜩하지? 그러나 그런 것이야…………….

현암은 별생각 없이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림 문자가 나오는 부분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세크메트? 세크메트가 도대체 뭐지?”

현암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박 신부나 준후는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승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 고 땀을 흘리며 방에서 나왔다.

“이걸로는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더 알아볼게요.”

영기는 대단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잠시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작별을 고했다. 승희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영기가 홍 박사의 편지를 주섬주섬 챙기려 할 때 쯤에서야 입을 열었다.

“홍영기 씨, 가능하다면 이 편지들은 놔두고 가시는 게 어떨지요? 제가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할 테니까요.”

“예? 아, 예, 그러나 이건 아버님의 친필이라…………….”

“예. 틀림없이 돌려 드리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요.” 승희는 영기가 대답하기도 전에 편지들을 차곡차곡 포개서 손 에 들었다. 영기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집 전화번호를 적어 주며 혹시라도 알아낸 것이 있다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퇴마 사들의 거처를 나섰다.

문을 나서는 영기의 뒷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승희는 편지들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박 신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승희 에게 물었다.

“승희야, 왜 그러지? 투시가 되지 않았다면서?”

“아니에요. 투시가 되었어요. 그런데……….”

현암이 눈을 치켜 올렸다.

“음! 투시가 되었다면 왜 이야기하지 않았지?”

승희가 정신없이 편지를 읽더니 고개를 들었다. 승희의 위로 쭉 찢어진 눈에 두려운 기색이 돌고 있었다.

“홍 박사는 죽었어요, 분명히. 하지만………….”

“뭐? 죽었다고? 저런……………”

박신부가 신음하자 현암이 말을 꺼냈다.

“그렇더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승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뭔가 무서운 것, 무서운 것이 있어요.”

조용히 있던 준후가 고개를 들었다.

“무서운 것이요?”

승희가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무서운 것・・・・・・ 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둡고 분노에 가득찬 힘. 홍 박사님의 죽음 뒤에는 그런 힘이 있었어. 틀림없어.” 승희는 편지를 뒤적거렸다.

“여기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승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편지들을 읽어 내려갔다. 평소의 푼 수 같던 모습과는 달리 긴장되어 있는 승희의 모습을 보면서 일 동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승희는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토르………… 덴데라∙∙∙∙∙∙ 세크메트∙∙∙∙∙∙. 이럴 줄 알았으면 이집트도 들어 둘걸! 나는 인도 쪽 강의만 들었으니. 대체 뭐 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승희가 편지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현암이 한마디 했다.

“홍 박사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없지 않나?”

“아니야, 현암군!”

되돌아보는 승희의 눈에는 뭔가 섬뜩한 것을 본 듯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난………… 난 투시를 하다가 협박을 받았어………………”

“협박?”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아주 깊고 분노로 가득 찬 기분. 바로 이런 내용이었어.”

승희는 눈을 감았다.

“그 사람은 죽었다. 알려 하지 마라, 여신의 분노를 일깨우는 자는 모두…….”

승희의 말을 듣고 모두들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박 신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신이라고?”

현암이 승희의 말을 받았다.

“여신이야 이집트에도 여럿이 있지요. 듣자 하니 덴데라 유적 의 숭배 대상이었던 하토르도 여신이었던 것 같은데.” “연희 누나를 불러서 이 그림들을 해독해 보는 게 어때요?” 

준후가 편지에 그려져 있는 상형문자들을 보면서 말했다. 현 암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로 향했고 박 신부는 서재로 들어갔 다. 책을 뒤져 볼 모양이었다. 준후는 승희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승희 누나, 내가 그분의 영을 불러 볼까? 어때?”

“네가?”

“응, 실은 나도 궁금해. 신부님이나 현암 형은 내가 소혼한다고 하면 어린애가 그런 거 한다고 질색을 하지만 뭐 어때? 살짝 해보자.”

승희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근데 왠지 불안해.”

“괜찮을 거야. 얼마 전에 아주 빨리 소혼할 수 있는 수법을 익 혔어. 후후후, 시험도 할겸.”

준후는 더 이상 승희의 말을 듣지 않고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허공에 작은 도형을 그리면서 나직이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 다. 승희는 말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미 술수를 부리기 시작 한준후를 제지하기도 뭐했고 또 궁금한 생각도 들었다.

현암은 연희에게 바로 오겠다는 답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연희는 요전의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죽은 이후 충격을 받고 블 랙서클이라는 집단에 대항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집트 문자에 관한 일이 있다 고 하자 연희는 전에 고대 이집트어를 배운 적이 있다며 흔쾌히 응낙한 것이다. 현암이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마루 중앙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준후야! 뭐니?”

현암은 본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기운만은 확연히 느낄 수 있 었다. 마루 저만치에서 준후가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굳어 버 린 듯 앉아 있었고, 승희가 놀라서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 었다.

“현암군, 이건, 이건!”

“무슨 일이야!”

마루 가운데에 있던 탁자가 와지끈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폭 발하듯 부서져 나가면서 방 안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준후의 얼굴이 파리해지면서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듯했다.

“무슨 일이냐!”

서재에서 뛰쳐나온 박 신부의 눈에 희미한 한 영의 그림자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승희가 외치고 있었다. “피하라고 소리치고 있어요! 분노해서! 세, 세……!”

영의 그림자 뒤편에서 늑대의 머리를 한 다른 거대한 영의 모 습이 허공을 가르고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현암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기합을 발하면서 기공을 끌어 올린 주먹을 날 렸으나 다른 힘과 부딪혀서 굉음을 내었다.

“어엇!”

현암이 놀라서 얼얼한 주먹을 쥐고 뒤로 물러섰다. 상대는 눈 에 보이지 않았지만 손에 부딪혀 온 느낌은 놀랄 만큼 서늘한 것이었다. 

“웬 놈이냐!”

박 신부도 급히 손을 마주 모으고 오라를 발하기 시작했다. 오 라 막이 퍼지자 갑자기 두 영의 자취는 열린 공간으로 흡수되듯 이 스며들다가 박 신부의 오라에 부딪혔다. 쾅 하는 굉음이 들리 면서 영의 부르짖음이 길게 들렸다. 그 소리는 영적 능력이 가장 약한 현암의 마음속에까지 울렸다.

막아야…………… 분노를…………… 그 분노를…….

순식간에 영의 자취는 없어져 버렸고, 영이 사라지자마자 얼 굴이 파리해진 준후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박 신부가 얼른 가 서준후를 일으켜 안았고 현암도 그쪽을 쳐다보다가 승희를 향 해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결계로 수호되는 집 안에 웬 영의 그림자가!”

승희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 면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준후가 홍 박사님의 영을 부르겠다고…………. 그런데 나타난 것은…….”

“뭐? 소혼술을 했구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에잇!”

현암이 화를 내었으나 승희는 계속 몸을 떨었다.

“홍 박사님 영의 외침을 들었어. 피하라고 했어. 막아야 한다고…………. 거대한 분노를, 곧 닥쳐올 거대한 분노를….”

“무슨 말이냐, 희야?”

박신부가 준후를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준후는 다행히 약간 의 충격만 입었을 뿐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박 신부는 자신이 직접 들은 영의 부르짖음보다는 승희가 더 알아낸 것이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승희가 말했다.

“홍 박사님의 영을 데려간 것………… 그건 아누비스라고도 불리 는 이집트의 죽음의 신.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아누비스의 모습이 직접 나타나다니……… 뭔가 큰일이…………….”

현암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소리를 쳤다.

“아누비스라고? 소혼술로 불러낸 홍 박사의 영을 데려갔다 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불안해. 뭔가 있어. 분명, 분명히・・・・・・ 알아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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