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8화 – 왈라키아의 밤 8 : 왈라키아의 밤

랜덤 이미지

퇴마록 세계편 3권 8화 – 왈라키아의 밤 8 : 왈라키아의 밤


왈라키아의 밤

박 신부는 준후를 끌어당기고 있는 코제트를 향해 고함을 치 며 몸에서 오라를 발하기 시작했다. 코제트는 주춤했지만 이내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어 댔다.

“잘도 쫓아왔군. 그러나 신부 당신을 여기까지 따라오게 하는 것도 내 계획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무슨 말이냐! 각오해라. 어서 준후를 내려놔!”

박 신부는 말을 함과 동시에 오라를 쏘아 코제트의 채찍을 강 타했다. 코제트는 방심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예기치 않은 기습에 당황했는지 한걸음 물러섰다. 그 바람에 준후의 손목에 감겨 있 던 채찍이 풀렸고, 준후는 균형을 잡으며 발딱 몸을 일으켜 세웠 다. 준후는 일어나자마자 수인부터 맺었으나 코제트의 모습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준후는 코제트가 보이지 않자 화난 표정을 풀 고 꼬맹이로 돌아왔다. 울먹이는 눈으로 박 신부를 보며 말했다.

“신부님! 고마워요. 그런데 어떻게 여길………….”

“저 여자를 추적해 왔지. 모두 코제트가 꾸민 짓이었어.”

“그렇군요. 그나저나 윌리엄스 신부님이 큰일이에요.”

“뭐, 윌리엄스 신부님이?”

준후가 박 신부에게 상세한 설명을 하기도 전에 철창 안쪽에 서 윌리엄스 신부가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왔고, 곧바로 박 신부 에게 덤비려는 듯 방향을 바꿨다. 박 신부는 놀라서 눈이 휘둥 그레졌다. 준후가 발을 구르자 땅이 파도치듯 출렁거렸고 윌리 엄스 신부는 그만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박 신부는 놀란 표정이 었다.

“신부님 도대체………….”

준후의 빠른 목소리가 박 신부에게 들려왔다.

“윌리엄스 신부님은 코제트의 술수에 걸려서 반은 흡혈귀가 되어 버렸어요. 그러다 정신을 차리기도 하던데. 도대체………… “

“호호호.”

준후의 말을 코제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끊었다. 코제트는 어느새 나타나 앞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코제트의 웃음소리에 무슨 힘이 깃들어 있는지 코제트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주변에 둘러서 있던 흡혈귀와 반 흡혈귀가 된 윌리엄스 신부까지도 조 금씩 더 난폭해지고 있었다. 준후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선 저 여자를 막아야 돼요.”

윌리엄스 신부가 다시 준후에게 덤벼들었고 준후는 몇 장 남지 않은 부적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 광경을 본 박 신부가 치를 떨면서 코제트에게 큰 소리를 질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이따위 짓을 태연히 저지르다니! 이 마녀! 내 절대 너를 용서치 않겠다!”

박 신부는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는 라틴어로 기도를 읊기 시 작했다. 그러나 코제트도 지지 않고 채찍을 허공에 휘두르더니 맞받아 고함을 질렀다.

“간신히 도망친 주제에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군!”

코제트는 박 신부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박 신부는 오라를 크게 내쏘며 채찍을 막았다. 오라에 채찍이 튕겨 나가는 틈을 이 용해 박 신부가 코제트를 향해 여러 개의 오라 구체를 내쏘았으나. 코제트는 검은 구름을 엉키게 하더니 오라 구를 그대로 맞받 아쳤다. 두 개의 힘은 허공에서 퍼벅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다. 준후는 정신이 없었다. 조금 전에 떨어뜨린 부적들은 흡혈귀 들의 발에 밟혀서 엉망이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부적만으로 흡 혈귀들과 윌리엄스 신부를 상대해야 한다는 게 힘이 부쳤다. 게 다가 멸겁화로 흡혈귀 하나를 태워서 없애 버린 다음부터는 강 력한 주술을 쓴다는게 개운치 않았다. 그 이후론 조금씩 충격을 주어 뒤로 물러나게 하거나 쫓아 버리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흡 혈귀들은 더 사납게 달려들었고, 준후는 점점 벽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박 신부도 준후를 도울 겨를이 없었다. 한 손에 베케트의 십자 가를 쥔 채,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은 십자가를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고 성수 뿌리개를 꺼냈다. 코제트도 박 신부가 성수 뿌리 개를 꺼내는 것을 보고는 기합을 넣으면서 채찍을 휘둘러 댔다. 채찍은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박 신부에게 파고들었다. 오라 막 한쪽을 채찍의 끝이 날카롭게 뚫고 들어오자, 박 신부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사제복 자락이 찌이익 찢겨 나갔다.

“신부! 그따위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증오 의 힘이 얼마나 큰지 어디…………….”

코제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놀라운 기색을 띠었다. 박 신부 의 눈에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아이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어 서 발을 들여놓지 못하다가 이제야 얼굴을 내민 것 같았다. 코제 트의 얼굴이 핼쑥해지면서 긴장된 듯한 억양으로 소리를 질렀다. 

“너, 너는 또 왜 왔어! 어서 가! 사라져!”

아까 코제트는 여자아이를 보고 놀라서 달아났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여자아이에게 분노의 고함을 터뜨리며 아이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박 신부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성수를 뿌렸고, 성 수 몇 방울이 채찍에 닿자 흰 연기가 피어나면서 살아 있는 뱀처 럼 날아가던 채찍은 주춤거렸다. 그사이에 박 신부는 아이의 앞 을 가로막고 섰다.

“코제트 이 가엾은 아이까지도 해칠 생각이냐?”

“가! 가! 어서 꺼져 버려. 더 이상 보기 싫어. 나를…………… 내 얼굴을 태우지 맛!”

이상하게도 코제트는 아이가 나타나자마자 평상시의 싸늘한 기운을 잃고 반쯤 실성한 듯 외치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 아이를 보고 저토록 이성을 잃고 발광하는지 의아했지만,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코제트가 저 아이 를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의 지은 죄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기회 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현암과 연희는 승희를 찾아 벽난로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방 의 책꽂이를 밀고 안으로 몸을 날려 떨어진 뒤 미로 안을 헤매는 중이었다. 거의 뜀박질하듯 걸음을 옮기면서 현암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뒤를 쫓아오는 연희에게 말했다.

“이 성은 코제트의 요새 같아요. 겹겹이 함정이 있는……………. 승 희가 무사해야 할 텐데.”


현암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우뚝 섰다. 연희도 현암을 따라 멈추더니 불안한 듯 물었다.

“왜 그래요, 현암 씨?”

“앞에 뭐가 있어요.”

현암은 나지막이 대답을 하고 연희에게 손을 뻗어 뭔가를 달라는 시늉을 했다. 연희가 현암에게 램프를 건네주었다. 램프를 받아 든 현암이 심지를 돋우어 불을 최고로 밝게 한 다음, 저만치 앞을 비춰 보았다.

“으악! 저건!”

연희가 기겁을 했다. 램프의 불빛이 비치는 한도 내에만도 백 마리도 더 돼 보이는 쥐들이 바글바글 들끓고 있었다. 쥐들은 불 빛을 피해 달아나려고 버둥거렸다.

“쥐 떼가…………….”

현암은 램프를 들고 조금씩 쥐 떼를 내몰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당황한 연희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간신히 마음을 다 잡고 현암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쥐들을 쫓으면서 걸 음을 옮기던 현암이 또다시 멈춰 섰다.

“저 앞에 누가 있어요.”

현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말 저쪽에 누가 있는 듯 날카롭 고 듣기 싫은 고함 소리가 들렸다.

“뭐죠?”

연희가 현암에게 채 묻기도 전에,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쥐 떼! 저자가 쥐 떼를 부리고 있어요!”

현암이 램프를 연희에게 건네주고는 월향검을 빼 들었다. 웅웅하면서 검기가 뻗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복도 저편에서는 시커떻게 많은 쥐 떼가 현암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뒷걸음을 친 현암이 연희의 앞을 막아섰다.

“연희 씨. 조심해요. 쥐들이 엄청납니다.”

연희는 한두 마리라 해도 징그러워서 피하고 싶을 지경이었는 데 엄청나게 많은 쥐 떼가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는 거의 제정신 이 아니었다. 연희가 가지고 있던 구리 십자가에서 파란 염체가 뛰쳐나왔다. 염체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현암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느새 쥐들은 코앞까지 몰려들어 자기보다 몇십 배 큰 현암을 향하여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쥐가 이렇게 공중으 로 뛰어오르는 것을 현암은 처음 보았다. 일단 몇 놈을 오른손의 기공력으로 날려 버리긴 했지만 덤벼드는 놈들의 수가 더 많았 다. 현암이 팔로 쥐들을 휘젓는 사이에 뒤에서 연희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현암이 막는다고 막았지만 쥐들은 현암과 연희의 옷자락이며 신발을 물어뜯고 있었다. 푸른 염체도 연희 에게 덤벼드는 쥐들을 방어하고 있었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았다.

‘이거 안 되겠다. 수가 너무 많아. 이럴 때 한꺼번에 쥐들을 몰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잠깐 사이. 현암의 머리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현암은 급히 공력을 손에서 단전으로 모으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사자후의 수법이었다.

어어헝!

엄청난 사자후의 고함 소리가 사방을 메우자 연희는 그 자리 에 쓰러져 버렸고, 달려들던 쥐들도 타격을 받은 듯 좌충우돌하 고 있었다. 사자후의 고함 소리는 사자의 울음과 흡사한지, 조그 만 쥐들로서는 본능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쥐 떼 는 대혼란에 빠졌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던 놈들은 충격을 받고 고꾸라졌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리는 놈도 있었다. 남은 놈들 은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아우성을 치면서 몰려올 때보다 더 빠 르게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암이 달아나는 쥐 떼를 향해서 다시 한번 사자후의 고함을 밀어붙이자 쥐들은 썰물처럼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복도 저쪽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저건 또 무슨소리지?”

현암은 중얼거리면서 연희를 부축해 일으켰다.

“연희 씨. 괜찮아요?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아니, 괜찮아요. 현암 씨, 그건 그렇고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 요. 더 이상…….”

연희는 새파랗게 질린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이었 다. 현암의 사자후로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너무도 많 은 쥐 떼를 보고 쇼크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현암은 고개를 끄 덕하고는 복도 저편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편에서는 누가 새카맣게 쥐 떼로 뒤덮인 채 쓰러져 가고 있었다. 현암이 다시 한번 사자후로 쥐 떼를 다른 쪽으로 쫓아 버렸다.

현암이 다가가 보니 양 이빨이 비죽이 튀어나오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는 흡혈귀였다. 쥐 떼를 부리던 흡혈귀였던 모양인 데, 쥐들이 현암의 사자후에 놀라 방향을 바꿔 이 흡혈귀의 온몸 을 물어뜯어 버린 것이다. 완전히 숨이 끊기지 않은 듯 꿈틀꿈틀 움직이고는 있었으나 일어날 가망은 없어 보였다. 현암은 그런 흡혈귀의 모습을 연희가 보지 않게 앞을 가리면서 흡혈귀가 쓰 러져 있는 곳을 뛰어넘어 달려갔다. 쥐들은 곳곳으로 숨어 버렸 는지 죽어 있는 쥐 외에는 하나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로 안은 매우 복잡했다.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닌 후에야 철 문 하나를 발견했다. 현암과 연희가 철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자 철문 저쪽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현암의 귀에 조그맣게 들렸다.

‘아니, 누굴까?’

현암은 문을 당겨 열려고 했으나, 저쪽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 면서 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현암은 개의치 않고 문고리를 잡 은 손에 힘을 주어 왈칵 열어젖혔다. 안에서 째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암이 문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뒤에서 연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중얼거렸다.

“어? 저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들은 소린데?”

현암이 안으로 들어서자 철문 바로 앞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 겨 나간 시체가 보였다. 현암은 너무도 참혹한 모습에 차라리 눈 을 감고 싶었다. 현암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철문 뒤쪽에 낯익은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승 희였다.

“어, 승희야! 무사했구나!”

그러나 승희는 현암을 알아보지 못했다. 공포와 절망감으로 뒤범벅이 된 승희의 눈을 본 현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후는 완전히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흡혈귀도 흡혈귀였지 만 흡혈귀로 변해 버린 윌리엄스 신부가 더욱더 흉포하게 준후 에게 덮쳐들었기 때문이었다. 코제트가 유독 윌리엄스 신부에게 더 강력한 주술을 걸었는지, 신부는 다른 흡혈귀보다 훨씬 강한 기운을 몸에서 뿜어내고 있었고, 손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허공 을 가르는 강한 바람이 밀어닥쳐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 다. 흡혈귀들의 숫자는 윌리엄스 신부를 빼고서도 여덟. 넓지 않 은 공간에 여덟이나 되는 흡혈귀들의 손을 이리저리 피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 했는지 모른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부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른 시도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 준후의 손에는 호신부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코제트는 박 신부를 향하여 채찍을 계속 휘둘러 댔고, 박신 부는 오라 막을 펼쳐서 공격을 겨우 막아 냈다. 그러고 보니 코 제트의 채찍은 박 신부보다도 뒤에 있는 여자아이를 향하고 있 었다. 아이는 채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를 노리고 있 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공포에 질렸다. 코제트는 아이의 그런 모 습을 보고는 더 독살스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저주의 말을 퍼부 으면서 채찍을 휘둘러 댔고, 박 신부는 있는 대로 오라를 펼쳐서 막아냈다. 갑자기 코제트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박 신부의 뒤편 에 나타났다. 박 신부는 재빨리 몸을 돌려보았지만 코제트의 채 찍은 틈을 주지 않고 아이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박 신부가 오라 력으로 밀어내기는 했으나, 코제트의 채찍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아이의 등에 스치고 말았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엎어 졌다가 벌떡 몸을 일으켜서 미친 듯 자신이 들어왔던 통로 쪽으 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아 무리 적이라지만 조그맣고 힘없는 아이에게 인정사정없이 채찍 을 후려갈기는 것을 보고 박 신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나마 박 신부가 오라로 막아내지 못했다면 아이는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화가 난 박 신부가 힘을 모아 오라의 구체를 내쏘는 순간, 코 제트는 채찍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코제트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박 신부의 뒤쪽에 나타나는 것이었 다. 그 순간, 코제트의 손에서 뭔가가 반짝하고 빛났다. 아주 짧 은 순간이었다. 멈칫하는 사이 코제트의 채찍은 박 신부의 등쪽 으로 날아들어 박 신부의 오라 막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박 신부는 주춤주춤 몇 걸음 밀려났다. 여러 차례 타격을 받자 박 신부의 오라 막은 점차 그 빛이 흐려져 갔다. 코제트의 비아냥거 리는 웃음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너는 내 상대가 못 돼! 그 빌어먹을 애를 끌고 와서 나를 겁주 려고 했었나? 그런 치사한 수법에 내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박 신부는 간신히 몸을 돌려서 코제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코제트의 얼굴보다도 왼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코제트의 손에 있는 반지, 뭔가 각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혹시 저것이?’

가만 생각해 보니 코제트가 공간 이동술을 쓸 때는 항상 왼손 으로 기묘한 동작을 취했던 것 같았다. 예전에 대적할 때는 자세 히 볼 수 없었지만, 이곳 트란실바니아에 온 이후에 코제트의 공 간 이동술을 여러 번 보았고 그때마다 그런 행동을 취했었다.

‘가만, 그렇다면……’

박신부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승희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설명 좀 해 보렴.”

현암은 정신을 잃을 듯 흐느끼는 승희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진정시키려 했으나, 승희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현암은 승희가 쥐 떼, 또는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흡혈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희도 흡혈귀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금방이라도 졸도해 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승희가 받을 충격을 우려해 억지로 참고 있었다.

“승희야, 진정해. 괜찮아, 괜찮아……..”

현암이 승희를 다독거리는 동안 연희는 흉악한 시체를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저쪽에서 희한한 느낌 이 밀려왔다. 싸늘하고 음습한 기운. 연희의 손아귀가 간질간질 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왜 이러지? 준후가 심어 준 부적이 또……………..’

그때, 연희의 목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서 염체가 휙 하고 뛰어 나갔다.

“현암 씨. 저쪽에 뭐가 있나 봐요.”

연희가 소리를 치려는 찰나, 시커먼 그림자가 연희에게 덮쳐 들었다. 현암이 월향검을 내쏘려고 했지만, 왼팔이 부러진 상태 라 여의치 않았다. 현암은 할 수 없이 오른손으로 월향검을 뽑아 들면서 연희 곁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아악!”

연희의 놀라는 소리가 좁은 토굴 안에 울려 퍼졌다. 시커먼 그림자는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있었다.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 어 있었고 얼굴은 파란색으로, 그리고 입에는 기다란 이빨이 돋 아나 있었다. 비쩍 마른 몸에 키가 몹시 컸고 얼굴도 이 마을 사 람들처럼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연희의 앞을 막고 선 현암이 월향검에 검기를 주입하려고 하는 사이에, 흡혈귀가 망토 자락 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일더니 대처할 틈도 없이 현암과 연희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둘은 몇 미터를 날아 우당탕 소리를 내며 한쪽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현암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는 연희에게 외쳤다.

“힘이 굉장하네요. 승희를 데리고 피하세요. 저놈은 내가 맡을테니!”

현암이 외치는 사이에도 흡혈귀는 망토를 또 한 번 휘저어 강 한 바람을 일으키고는 괴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너, 이놈!”

현암이 월향검에 검기를 실어 흡혈귀를 향해 날렸다. 그러나 흡혈귀가 괴성을 지르며 손짓을 하자 흡혈귀 뒤쪽에서 뭔가가 우르르 날아들어 월향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박쥐들이었다. 

‘흡혈귀는 박쥐나 늑대, 쥐 들을 자유롭게 부리는 힘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로군.’

월향검은 공중전을 하듯 박쥐들의 몸을 가차 없이 꿰뚫으며 흡혈귀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박쥐 한 마리를 떨어뜨릴 때마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어 흡혈귀는 가볍게 월향검의 공격을 피했다. 박쥐들은 산산이 조각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계속 월향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차, 이럴수가! 돌아와라, 월향!”

현암은 월향을 부르기 위해 습관적으로 왼손을 뻗었다. 그러 나 부러진 왼손에 통증이 왔을 뿐, 칼집을 앞으로 내밀 수가 없었다. 현암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자 흡혈귀는 다시 한번 괴성을 지르며 망토를 휘둘렀다. 그러자 광풍이 일면서 현암의 몸이 반대편 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쾅 소리와 함께 현암의 몸 이 벽을 타고 스르르 내려앉았다. 연희가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요. 현암 씨!”

현암은 몸을 일으키며 빠르게 연희에게 말했다.

“연희 씨. 어서 피하세요. 이놈은 내게 맡기고요. 승희를 데리고 피해요!”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좌우간 좌우간 피하세요!”

승희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현암이 흡혈귀와 치 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에도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연희는 도저 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승희를 들쳐 업다시피 해서 방금 열 고 들 어왔던 철문으로 빠져나갔다. 저쪽에서 현암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세크메트의 눈, 그걸 이용해요! 신부님과 준후에게!”

‘아, 내가 세크메트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연희는 한 손으로 승희를 부축한 채 세크메트의 눈을 꺼내 들 었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준후가 박 신부와 함께 코 제트, 그리고 흡혈귀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연희는 알 턱이 없었다.

‘이런! 어쩐다지? 어디로 가야하나?’

연희는 다시 현암 쪽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으나 현암은 피해 있으라는 소리와 함께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닫힌 철문 너머에서 는 기합 소리와 흡혈귀의 외치는 소리, 박쥐의 울음소리, 또 월향검의 귀곡성이 뒤범벅된 요란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러나 조금 숨을 돌리고 냉정히 생각해 보니 현암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연희나 지금의 승희는 현암이 싸우는 데에 도움은커녕 방해가 될 뿐이었다. 차라리 그 틈을 타 서 박 신부나 준후를 부르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박 신부를 부 르려면 밖으로 나가 마을로 가야 하는데, 이 미로 속을 어떻게 뚫고 나간단 말인가?

‘일단은 여기에 좀 있자. 나중에 현암 씨가 사자후라도 써서 불러 주겠지.’

연희는 승희를 데리고 무턱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암은 부러진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흡혈귀가 휘저어 대는 망토의 바람을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좁은 토 굴 안인데다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게 바람은 계속 몰려들 었고, 그럴 때마다 현암은 비틀거리면서 여기저기 정신없이 나 뒹굴었다. 부러진 왼팔이 이곳저곳에 부딪혀서 심한 통증을 느 꼈다. 허공에 떠 있는 월향이 내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박쥐들은 이제 월향의 모습과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월향을 빽 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박쥐들은 시커먼 덩어리처럼 바글바글 몸을 맞대며 뭉치고 있었다. 월향은 시커먼 공처럼 뭉쳐진 박쥐 떼 속에 갇혀서 금세라도 땅에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 자 현암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월향을 저토록 몰아붙이다니!’

현암은 무리를 해서라도 다시 한번 ‘탄’ 자결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까 주술 갑옷을 입고 있던 거인 미르챠도 단번에 쓰러뜨린 수법 아닌가. 현암은 심호흡을 하면서 공력을 모았다. 그러나 현암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을 눈치챈 듯 흡혈귀는 바람 일으키기를 그만두고 날카로운 손톱을 뻗으며 현암에게로 덤벼 들었다. 현암은 오른손에 기공력을 실어 흡혈귀의 손톱 공격을 막았다. 손톱이 현암의 팔에 박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통증이 왔다. 흡혈귀는 현암이 오른팔로 자신의 손을 막자 이빨 을 들이밀며 물어뜯으려 했다. 왼손이 자유로운 상태라면 하다 못해 태극패라도 꺼내서 흡혈귀를 후려치기라도 하겠지만 왼팔 이 부러진 상태에서, 또 오른팔이 흡혈귀의 손아귀에 잡힌 상태 에서는 별다른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흡혈귀는 현암을 종잇장처 럼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괴성을 지르면서 그대로 집어 던지려 했다.

‘아니, 이놈이!’

현암은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어 기공력을 끌어 모아 오른손 의 반탄력을 두 배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구성(九)의 공력을 이용한 것이다. 현암이 팔에 돌리고 있던 기공력을 배가시키자 흡혈귀는 충격을 받았는지 캬악 소리를 내고는 뒤쪽으로 주춤거 리며 물러났다. 현암은 비틀거리다 중심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흡혈귀와 현암의 마주 선 자세가 바뀌게 되었다. 현암이 땅에 발 을 짚으면서 균형을 잡고는 기공력을 모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뒤쪽에서 박쥐들이 덤벼들었다. 박쥐들은 현암의 전신을 물어뜯 기 시작했고 당황한 현암이 박쥐들을 떼어 내기 위해 땅바닥에 몸을 데굴데굴 굴렸다. 몸 밑에서 박쥐들이 찍찍 소리를 내며 터 지는 감촉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 암이 박쥐들을 떼어 내기 위해 몸을 굴리는 사이 옆구리에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다. 흡혈귀가 다시 현암에게 달려들어 발길질 을 해 댄 것이다.

‘이런 죽일 놈. 내가 축구공이냐?

현암은 기공력을 모아 놓은 오른손으로 흡혈귀의 발목을 잡고 는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그러나 땅바닥에 털썩 넘어진 흡혈귀 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미처 일어나지 못한 현암을 깔아뭉 갰다. 덩치가 큰 흡혈귀는 현암을 깔고 앉자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덤벼들었다.

‘아니, 이런!’

현암은 허우적거리며 흡혈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도저 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흡혈귀의 이빨이 현암의 목덜미에 닿으 려는 순간, 갑자기 타타탕 하는 총소리가 들리더니 흡혈귀가 비 명을 질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암은 최대한 기공력을 모아 흡혈귀의 아래턱을 후려갈겼다. 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현 암의 손에 통증이 왔고 흡혈귀의 송곳니 하나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현암의 주먹을 맞은 흡혈귀는 고통스러운 듯 몇 번 몸을 굴렸다. 흡혈귀의 망토에 여러 개의 총알 자국이 보였고, 그 자 국들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누가 총을 쐈구나. 그런데 흡혈귀가 총을 맞았다고 저렇게 고 통스러워할 수가 있을까?’

현암은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른팔로 땅바닥을 쳐서 반탄력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토굴 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반 교수였다.

“교수님!”

“어, 미스터 현암!”

이반 교수는 곧 땅바닥에 구르고 있는 흡혈귀를 향하여 총을 쏘아댔다. 총소리가 동굴 안에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 총알이 흡혈귀의 몸이며 머리에 정신없이 적중하자 살점이 떨어져 나가 고 피가 튀었다. 그러나 흡혈귀는 여전히 힘이 남아있는지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반 교수를 향하여 덤벼들었다.

몸을 추스른 현암이 품속에서 태극패를 꺼내 들었다. 태극패 에 공력을 밀어 넣자 푸른 빛줄기가 뿜어 나와 월향을 새카맣게 에워싸고 있던 박쥐에게로 향했다. 쾅 하는 폭발 소리와 동시에 허공에 뭉쳐 있던 박쥐들의 몸뚱어리가 파편이 튀듯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월향은 주변의 박쥐들을 털어 내고는 현암에게 날아 왔다. 현암은 태극패를 집어넣고 월향검을 받으려는 찰나, 흡혈 귀가 이반 교수를 향하여 몸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반 교수의 총에서는 철컥철컥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현암은 급 히 태극패에 빛을 운용하여 월향검에게 비추었다.

‘월향! 저놈을!’

한 번에 흡혈귀의 목을 날려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월향검은 현암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제비처럼 날아들어 흡혈귀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뚫고 나갔다.

이반 교수를 덮치던 흡혈귀는 비명을 내지르며 현암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흡혈귀의 오른쪽 어깨는 반쯤 갈라져서 팔이 덜렁거리면서 경련이 일듯 꿈틀대고 있었다. 이반 교수는 그 모습을 보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망설이지 마시오! 이놈을 죽여야만…………! 이놈이 바로 우두 “머리 격인…….”

흡혈귀는 이반 교수가 소리를 지르자 다시 덮쳐들었고, 이반 교수는 새 탄창을 꺼내려 배낭을 뒤졌다. 그러나 새 탄창을 꺼내 기 무섭게 흡혈귀가 덜렁거리는 오른팔로 냅다 후려쳤다. 순간 이반 교수는 총과 탄창을 다 놓치고 한쪽 구석의 벽에 처박혀 버 렸다. 월향검은 그사이에 방향을 바꾸어서 현암에게로 날아들 었고, 현암은 다급한 나머지 태극패에 공력을 주입했다. 흡혈귀 는 벽에 처박힌 이반 교수를 왼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반 교수가 고통에 겨워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현암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흡혈귀를 향하여 월향검을 쏜 것이다.

꺄아아악!

평상시보다 더 큰 귀곡성이 울리더니 번쩍하는 섬광이 일었 다. 흡혈귀의 목덜미 부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모락모 락 일고 있었다. 이반 교수를 놓친 흡혈귀는 잠시 비틀대다가 현 암을 향해 다가왔다. 정면에서 본 흡혈귀의 모습은 정말 징그러웠다. 목이 뚫리고 팔이 덜렁거릴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아직 살아 있다니. 겉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었지만 괴물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암이 월향을 조종하려 벼르고 있는데 흡혈귀의 등 뒤에서 갑자기 불덩어리가 화르륵 일어났다. 비명을 질러 대던 흡혈귀 는 기운을 소진했는지 무릎이 꺾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흡혈 귀의 온몸은 사나운 불덩어리가 되어 사방을 구르더니 이내 재 로 변해 버렸다. 그 너머로 휴대용 화염 방사기를 들고 있는 이 반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교수는 흡혈귀에게 잡혔던 목이 아픈 듯 고개를 몇 번 젓고는 목을 쓰다듬더니 걸걸하게 변한 목소리 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진작 플레임 스로어(Flame Thrower, 화염 방사기)를 쓸걸. 은 총알로는 영…….”

현암은 다시 날아온 월향검을 허공에 떨쳐서 오물을 털어 냈 다. 월향검은 허공에 한번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말끔해져서 예 의 그 써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현암의 손으로 돌아오자 기 분 좋은 듯 우웅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월향을 본 현암의 얼굴 에 미소가 떠올랐다. 현암은 월향검을 왼팔에 꽂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 흡혈귀, 이제는 그 재도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있었다. 현암에게 다가온 이반 교수가 발로 재를 쓱쓱 문질렀다.

“이놈이 두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같지 않군.”

“음! 흡혈귀는 관과 함께 파괴해야 영원히 생명을 잃는다네. 그러나 보다시피 관도 없고, 이놈은 내 생각과 달리 으뜸은 아닌 것 같군. 흠. 좌우간 일은 처리됐으니 박 신부님이 있는 곳으로 가세.”

“박 신부님?”

현암은 더 묻고 싶었으나 의사 전달이 쉽지 않았다. 다만 이반 교수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박 신부나 준후도 같이 왔을 거라는 생각에 반가움이 앞섰다. 이반 교수는 현암에게 같이 가자고 손 짓했다. 현암은 탈진 상태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암과 이반 교수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뒤에서 희미하 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굴에는 문 말고 두 갈래의 통로가 있었다. 이반 교수와 흡혈귀가 들어온 통로와 소리가 들려오는 통로는 서로 다른 곳이었다. 또 다른 적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둘은 말없이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이반 교수가 땅에 떨어졌던 총과 탄창을 집어서 보더니 배낭 에 넣었다. 은 총알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반 교수는 화염 방사기를 가방에 집어넣은 대신 십자가와 뾰족하게 깎은 나무 말뚝을 꺼냈다. 현암은 잠깐 그런 이반 교수를 쳐다보다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조금 아까 현암과 치열하게 싸 웠던 그라쉬 그라쉬가 예의 팔다리가 없는 몸으로 꿈틀거리며 한쪽 구석 벽에 몸을 기댄 채 흐느끼고 있었다. 깜짝 놀라 현암 이 그라쉬에게로 다가갔다. 뒤편 어두운 곳에는 놀랍게도 거인 미르챠가 쓰러져 있었다. 조금 전에 현암과 더불어 격렬하게 싸 웠던 거인이었다. 비록 현암의 ‘탄’자 결에 타격을 입고 주술 갑 옷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라쉬와 함께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갔 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핏 보기에도 찌글찌글 말라 버려 오래전에 죽은 듯한 참혹한 모습이었다. 현암이 흠칫 놀라자 그 라쉬가 뭐라고 우물거렸다. 이반 교수가 옆에 있다가 그라쉬의 말을 현암에게 전해 주었다.

“미르챠가 누구지? 자네는 아나?”

“예, 압니다. 굉장히 커다란 거인이죠. 저기 저 사람입니다. 그 런데……”

현암은 어느 정도 알아듣기는 했으나 영어 실력이 짧아서 자 세하게 상황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이반 교수도 좀 답답했던지 현암의 말을 기다리다가 다시 그라쉬의 말을 현암에게 옮겨 주었다.

“미르챠가 죽었다는군. 흡혈귀에게……….”

“예? 뭐라구요?”

현암과 이반 교수의 입에서 미르챠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라쉬 는 현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뭔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 같았다. 현암은 조용한 눈빛으로 그라쉬를 마주 보았다. 그라쉬 에게 동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라쉬가 마을 사람들을 흡 혈귀가 되도록 유도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코제트의 술수에 걸 려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그라쉬를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고, 흡혈귀가 미르챠를 죽였다면 그라쉬가 저토록 슬 퍼하는 것도 이해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흡혈귀가 미르챠를 죽였을까? 같은편 아닌가?’ 그라쉬는 중얼거리더니 음산한 어조로 뭐라고 말을 했다. 이 반 교수가 그 말을 현암에게 옮겨 주었다.

“중상을 입은 미르챠를 흡혈귀가…………. 이상하군. 방금 우리가 해치운 놈과는 또 다른 놈이 저렇게 만든 것 같군.”

현암은 우울한 눈빛으로 그라쉬를 바라보았다. 붉게 상기된 두 뺨 위로 굵은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터져 나오려는 슬 픔과 분노를 억누르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 시. 감정의 복받침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는지 그라쉬는 큰 소 리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라쉬가 우는 것을 보고는 현암은 마음이 아팠다. 이반 교수는 현암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천천 히, 또박또박 말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이자는 누구고 미르챠는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왜 이자는 코제트를 죽여 달라는 것이지? 이자가 어떻게 코제트에 대해서 알지?”

현암은 이반 교수의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 없이 그라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라쉬의 눈은 제정신이 아닌 극도로 감정이 혼란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눈이었다. 현암은 대강 짐작이 갔다. 코제트는 그 라쉬와 미르챠가 현암을 제거하는 데 실패한 것을 알고는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미르챠를 죽였을 것이다.

“자신이 속았다는군. 자네의 말이 맞았다고 하고 있어. 언제 이 친구와 만났었나?”

현암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반 교수도 고개를 끄덕하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어떤 일이라도 돕겠다는군. 어떻게든 코제트에게 복수를 해 달라는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이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예, 조금요. 하지만………….”

현암은 답답했다. 마을 사람 모두를 흡혈귀로 만든 것을 보면 이 마을에서 그라쉬는 코제트의 으뜸가는 부하일 것이고, 그런 그라쉬가 자신을 돕는다면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아 이반 교수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니 기가 막혔다. 결국 현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반 교수에게 아주 간략하게 말했다.

“블랙서클!”

“아, 블랙서클.”

이반 교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라쉬도 그 말뜻 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이반 교수가 블랙서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고 그라쉬에게 물었고, 그라쉬는 눈빛을 번뜩거리면 서 이반 교수에게 한참이나 설명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현암은 문득 연희 생각을 했다. 연희가 있으면 문제없이 이야기 가 통할 텐데. 현암은 몸을 일으켜 철문을 열어 보았으나 연희와 승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쥐 떼나 흡혈귀의 습격을 피해서 멀리 간 것 같았다.

“이런………….”

현암은 혀를 끌끌 차면서 이반 교수에게 돌아왔다. 이반 교수 가 그라쉬와 이야기를 끝내는 중이었다. 말을 마친 이반 교수가 현암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그라쉬의 이야기를 옮겨 주었다.

“블랙서클은 코제트가 속해 있는 집단・・・・・・ 코제트는 블랙서 클 중에서도 승정(Bishop)……. 삼대 승정 중의 한 사람. 맨 위 에는 총수가 있고 그다음에 마스터가 있는 것 같은데, 실질적인 명령은 마스터가 한다는군.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여 알아들을 수 없도록 통신을 하지만 가끔 편지나 물건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는군.”

“블랙서클의 목적은요?”

이반 교수가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글쎄 그게 이상해. 블랙서클의 목적은 말이지………… 없어!”

“예?”

“글쎄 나도 이상하게 생각되네만 그것까지는 그라쉬도 모르 는 모양일세. 여러 차례 물어보았지만 그라쉬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어. 다만 이런 말을 해 주었네. 증오, 증오를 그들의 바탕 으로 삼는다고 증오(Hate)와 고통(Pain)과 공포(Terror), 이 세 가지가 그들 힘의 근원이라는군.”

“증오와 고통과 공포?”

“HPT…………. 이 세 가지가 블랙서클의 목적이고 모든 것이라 는 거야. 그들은 다 함께 어떤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성원 하 나하나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같아.”

“각자의 일이라면?”

“음, 그러니까 개개인의 목적대로 알아서 일을 하고 나머지는 그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 어. 그라쉬는 코제트의 경우조차도 자세히는 모른다는군. 다른 두 명의 승정들에 대해서도 약간 들은 바는 있는데, 코제트는 가장 높은 총괄 승정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명은 아프리카에 있는 것 같다고 하네. 아프리카에서 서신이나 이상한 물건 등이 가끔 운송되어 온다는 거야. 또 한 명은 미국에 있는 것 같다는데. 그 사람은 이름이 알아볼 수 있는 글자여서 한 번 본 적이 있대. 그 자의 이름은 젠킨스.”

“젠킨스?”

현암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이름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다. “그 외에 블랙서클의 실질적인 인원이라든가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알고 있질 못하군. 또 물어볼 것이 없나?”

현암이 말없이 쳐다보자 이반 교수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자신 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블랙서클 자체에 대한 내용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지 금 가장 중요한 것은 코제트에 대한 것이 아닐까. 코제트가 도대 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아마 자네도 그랬을 것이고 나도 그 여자와 맞닥뜨려 보았지만 한 번도 잡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잖나. 코제트의 공간 이동술이라는 것 때문 이었지. 그것에 대해서 물어볼까?”

현암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반 교수의 머리는 외모와는 달 리 몹시 치밀한 것 같았다. 이반 교수가 텔레포트라는 말을 하자 그라쉬는 눈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또다시 빠르게 중얼거렸고, 이반 교수도 긴장한 듯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재빨리 현암에게 전해 주었다.

“텔레포트의 비밀은 ‘이집트의 반지’에 있대. 원래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집트의 반지요?”

“음. 그렇게 말하는군.”

“가만, 이집트의 반지라면……….”

현암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세 크메트의 눈을 얻게 되었던 사건. 한국에서 내전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기 위해 블랙서클에서 이름 모를 이집트의 주술사를 커크 교수로 위장시켜서 한국에 왔을 때, 그 주술사도 잠시나마 제물 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공간 이동술을 썼다고 했다. 코제트도 그 때 공간 이동술을 배운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코제트가 지금 처럼 마음대로 공간 이동술을 할 수 있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힘 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 힘이 집약된 것이 바로 이집트의 반지, 지금 그라쉬가 말하는 반지일까?

“이집트의 반지…..”

현암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이반 교수는 궁금한 눈길로 쳐다 보았지만 현암은 이반 교수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줄 능력이 없었다. 그라쉬는 그런 현암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증오 서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죠?”

“코제트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는군. 맞아. 그건 나도 박 신부님과 본 적이 있어. 코제트는 어린 여자아이를 싫어하네. 그 것도 금발 여자아이를 대단히 싫어하고 무서워한다는군. 아까 어떤 여자아이가 우리 뒤를 따라왔는데 그 아이 덕분에 박 신부 님과 내가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다네.”

“예? 여자아이를요? 아니! 코제트 같은 악랄한 여자가…………….” 

“음.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네만 아 직까지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어. 어쨌거나 그건 나도 눈치채고 있었던 일이지. 자네도 기억해 두고 있게나.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박 신부님도 준후를 구하기 위해서 나와 같이 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는데 지금쯤 코제트를 만났을지도 몰라.” 

“예. 준후라구요? 준후를 구하다니요? 준후에게 무슨 일이………….” 

“음. 준후는 우리와 같이 마을로 가던 길에 코제트의 부하들에 게 납치당한 것 같아. 지금 무사한지 어떤지 도대체 알 수가 없 군. 준후를 잃어버리다니 자네에게 면목이 없네.”

이반 교수가 헛기침을 하고는 그간의 일들을 간략히 이야기해 주었다.

“모든 것이 코제트의 계략이었어. 우리는 계략에 빠져서 따로 따로 놀고 있었던 셈이지. 그러나 코제트가 하나 잘못 생각한 것 이 있어. 자네 일행의 힘을 얕잡아 본 걸세. 자네도 무사히 어려 운 위기를 빠져나온 것 같고, 박 신부님과 나도 박 신부님의 능 력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지. 그렇게 본다면 그 아이도 무사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현암 군, 다른 두 여자분은 어디에 있나?”

현암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철문 쪽을 가리켰고 이반 교수 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안은 위험한 듯하네만. 어서 그들을 찾아보세나. 그리고 우 리도 코제트에게로 가세. 어서 박 신부님과 합류를 해야 하네.” 

“아! 연희에게 세크메트의 눈이 있는데………….”

“눈, 눈이라니?”

영어를 쓰는 이반 교수에게는 현암이 중얼거리는 눈이라는 소리가 수녀(nun)로 들렸나 보다. 현암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The Eye of Sekhmet’라고 설명했다. 이반 교수는 고개를 갸 웃거렸고 현암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는 듯 오른팔로 그라 쉬를 번쩍 일으켜서 등에 업었다. 이반 교수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현암, 자네 뭘 하는 건가? 그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하려 1”

현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라쉬는 팔다리가 없으니 미로 안에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고, 그의 수족 노릇을 하던 미르챠 마저 죽어 버렸으니 구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그라쉬를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라쉬는 움직일 수 없으니 두고 갈 수는 없노라고 현암이 이반 교수에게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싸우러 가는 상황에서 혹을 다는 것을 꺼리는 이반 교수의 마 음도 이해는 되었지만, 현암은 이것도 코제트의 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흡혈귀가 같은 편이었던 미르챠를 죽인 것 은 분명히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이 있던 그라쉬 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그라쉬는 흡혈귀에게 저항도 하지 못할 텐데……. 그라쉬는 아 무도 구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분명히 미로 안에 갇힌 채 꼼짝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어 갈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것까지도 코 제트가 예상한 술수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그라쉬를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인명을 하찮게 여기고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는 코제트. 그녀에 게 그라쉬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정신없는 표정으로 중얼 거리던 그라쉬의 모습…………. 분명 그라쉬에게는 코제트와 직접 해 결해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반 교수도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 고개를 몇 번 끄 덕이면서 그라쉬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라쉬도 눈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현암의 등에 예의 그 갈고리를 이 용해서 바싹 달라붙었다. 현암의 어깨에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 다. 그라쉬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이 증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현암에 대한 고마운 감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현암의 등에 매달리면서 이상하게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중 얼거리는 말을, 이반 교수는 놓치지 않고 들었다.

“코제트, 내가 간다. 너의 어디까지가 참이고 거짓인지 꼭 알고 싶다.”

그라쉬는 중얼거리다가 말고 눈을 번쩍 뜨더니 이반 교수에게 빠르게 말했다. 현암은 이반 교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을 보아 그라쉬가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뭐죠 이반 교수님?”

“그라쉬는 적어도 이 미로에 대해서만은 정통하다는군. 분명 히 코제트는 지하에 새로 신축된 광장에 있을 것이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하네. 길을 알려 주겠다는 거야. 어서 가세.”

“예? 정말인가요?”

현암은 이반 교수와 함께 등 뒤의 그라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빠르게 발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현암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승희와 연희 씨를 찾아서 같이 가야 할 텐데………….”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