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15화 – 그들은 모두를 미워하라 했다 1 : 반란
반란
니제르 강이 크게 굽이를 이루며 흐르는 아프리카의 한 나라 인 말리 말리 공화국의 대통령 훔바타의 비서관이 노크도 하지 않고 대통령의 집무실로 뛰어든 것은 11월 중순의 어느 맑은 날 이었다. 책상 앞에 놓인 서류들을 들추어 보던 대통령은 갑자기 뛰어 들어온 비서관을 보고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큰일입니다. 반란입니다.”
“뭐라고?”
비서관이 난처한 듯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대통령은
눈을 크게 떴다.
“반란? 도대체 누가 반란을 일으켰단 말인가?”
“도・・・・・・ 도곤족입니다.”
“도곤족이?”
대통령은 놀랍다기보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곤족은 대부분 농민이잖아. 목적이 뭐야? 공산 쿠데타도 아닐 테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설에 의하면 백인들의 문명을 반대하 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야? 문명을 반대하는 구호를 내세운다? 도곤족이 갑자기 자연보호론자들이라도 된 것인가!”
“글쎄요. 그런 것은 알 수 없습니다만 좌우간 기세가 대단합 니다. 지나가면서 걸리적거리는 것이라면 모조리 파괴하고 있 습니다. 아직은 수가 많지 않아 넓은 범위로 퍼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음. 기세라니? 도곤족이 무장을 하고 있나?”
“아닙니다. 무장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뭐야? 경비대를 파견해서 진압해야지, 어서!”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것이..”
“뭐가 어떻게 됐다는 말인가?”
“벌써 두 차례에 걸쳐서 중대 규모의 지방 경비대가 전멸됐습니다.”
여태껏 침착한 기색을 보이던 훔바타 대통령이 비로소 놀라는 눈치였다.
“뭐라고? 도곤족이 언제 그런 막강한 화력을 소유하게 됐단 말인가? 딴 나라의 정부가 개입한 흔적은 없는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혀 무장을 갖추지 않았고 기껏 해야 창이나 활 같은 무기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라니? 그런데도 경비대가 그들을 당해 내지 못했단 말인가? 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이상한 술수를 씁니다. 그래서 모두 전멸되어 버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군.”
대통령은 책상을 내려치고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 멍청한 비서관을 당장 갈아 버려야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난데없이 쿠데타라니? 그것도 반문명 쿠데타? 무장조차 하나도 갖추지 않은 농민 집단이 중대 규모의 경비대를 두 차례 에 걸쳐서 전멸시켰다고?
대통령은 노기 섞인 목소리로 국방장관을 호출했고 국방장관 은 대기중이었던 듯, 즉각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국방장관조차도 사건의 전모를 모르고 몹시 놀란 듯 더듬거리는 것이 훔바타 대통령으로서는 더욱더 울화통이 치밀었다.
“대, 대, 대통령 각하! 3차로 파견한 경비대도 전멸됐습니 다. 이번에는 2개 중대 규모로 장갑차까지 동원하여 진격했는데 “자세하게 얘기를 해 봐!”
“모르겠습니다. 전방의 통신병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이 이상한 불빛과 안개를 뿜었다고 하고, 통신기에서 비명 소리가 들 리더니 모든 통신이 두절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뭘 하고 있는 건가? 항공기 순찰을 해! 헬리콥터를 띄우란 말이야!”
“헬리콥터 세대가 이유 없이 추락해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 떻게 된 일인지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집어치워!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국방장관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아무튼 책임지고 진압해 버려. 경비대가 아니라 정식 훈련을 받은 정규군을 파견하란 말이야. 알겠나?”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전 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통을 던져 버렸다. 옆에서는 비서관이 창백한 안색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건 심각한 사태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도대체가 무슨 도대체야! 집어치워!”
대통령은 큰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그 역시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또 전멸이라니! 군대를 파견한 지 얼마나 됐
다고 출동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전멸을 한단 말이야! 이게 말 이나 되는 소린가?”
“글쎄요. 그건 저로서도…………….”
이제 대통령 앞에는 국방장관과 비서관은 물론이고 내무장관 과 그 외에 각료들까지 모두 서서 대통령의 질책을 듣고 있었다.
“원인이 뭔지도 알 수가 없단 말인가? 그들이 화학 무기나 생 물학 무기를 쓰는 것은 아니야?”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곤족의 군대, 아니 도곤 족의 무리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우리 병사들의 시체만이 있을 뿐, 화학 무기나 특별한 화력을 지닌 무기를 사용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뭐야! 항공기로 공습을 하든지 포격을 해서 그들을 없애 버리면 될 것 아니야!”
“그들의 행적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숲 속으로 숨어들어 소규모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가 몇인지도 파악할 수 없고, 더군다나 금속성 무기나 장비는 일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레이더나 기타 어떤 수단으로도 그들이 어디 있는 지 잡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야!”
대통령은 책상을 쳤다. 장비도 하나도 없고 무기도 없어서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는다니. 그런 그들이 정규군을 순식간에 전 멸시킬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어떤 수단을 쓰기에 그토록 강한 능력을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씩씩거리며 지루한 장 광설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문화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곤족은 이상한 지식을 소유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초과학이라든가, 아니면 주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뭐, 초과학 주술이라구?”
“주술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습니다. 초과학이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흔적이 없이 밀고 나갈 수는 없겠지요. 더군다나 그 들은 반문명적인 종족이니까요.”
“주술을 써서 군대를 전멸시키다니. 그건 말이 되지 않아요.” 국방장관이 소리를 치자 문화부 장관은 다시 조용히 말을 받 았다.
“그것 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저 미개 종 족이 잘 훈련된 우리 병사들을 고스란히 전멸시킬 수 있단 말입 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시대가 어느땐데……….”
“하지만 그것밖에는 해답이 없지 않습니까?”
잠시 회의석상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종족들은 주술사를 가지고 있었다. 주술사의 능력은 종족 마다 다르긴 했지만, 어느 종족에서나 추장 바로 다음가는 위치 였다. 주술사에게 잘못 보이면 엄청난 저주를 받아서 힘을 잃게 되거나 죽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주술사의 힘으로 다른 부족을 멸망시키거나 무서운 괴물을 퇴치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는 대통령이나 각료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백인들에 의해서 개척되고 종교를 개종한 사람들이 촌락과 도 시와 국가를 이루고 살게 되면서, 그러한 주술사의 존재는 서서 히 잊혀 갔다. 이제는 몇몇 원시 종족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존재 들은 옛날이야기에나 등장할 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남아 있 었다. 어렸을 적에 받은 영향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해서가 아닐 까 하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만한 것도 없 었다.
“그렇게 황당한 추론을 믿어도 된단 말인가?”
대통령이 신음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을 때 문화부 장관은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일일지라도 조사해 보아서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음!”
대통령의 한숨 소리가 침묵을 깨고 밖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