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25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3 – 지하 일층에서
지하 일층에서
주술 벽을 지난 일행이 지하 일층으로 내려서자 커다란 철문 이 보였다. 현암이 인상을 쓰면서 철문 앞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준후가 말했다.
“이건 아무래도 가짜 같은데요?”
현암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철문을 손으로 두들겨 보았다. 탕 탕 하는 소리가 철문에서 울려 나왔고 촉감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철문 같은데? 열고 들어가야지.”
준후가 귀엽게 혀를 날름하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철문 옆의 벽을 살폈다.
“아, 벽들이 환영이군요. 사람들은 아마 철문을 쓰러뜨리기 위 해서 많은 노력을 했겠지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
준후가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벽의 바깥쪽을 북 긁었다. 그러 자 벽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고, 준후의 손에는 벽과 똑같은 색깔을 띤 종잇조각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제가 옛날에 썼던 것과 같은 종류의 술수예요. 이상하군요. 이건 인도의 요가에서 비롯된 눈을 속이는 환영술의 일종인데. 참, 마스터가 인도사람이라고 했지.”
일행은 철문 옆으로 돌아가면서 문 뒤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바깥에서 볼 때만 철문으로 위장되어 있었을 뿐이지 실은 천장 과 땅바닥에 굳게 박힌 쇠뭉치에 불과했다. 그것을 열려면 용접 기라도 갖고 와서 몇 시간이고 달구어야 부술 수 있을 것 같았 다. 애당초 열리지 않게 만들어진 문이니 여는 것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준후의 기지로 지하 일층으로 내려서자 박 신부가 말했다.
“우리를 맞이하러 누가 벌써 나와 있군. 수가 제법 되는데?” 지하 일층에는 긴 복도가 있었고 그 끝에 지하 이층으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었다. 이 건물은 그런 식으로 길게 복도를 지나가 야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블랙서클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이 앞에 흉악한 것들이 있어. 옛날에 보았던 좀비들과 흡사할 테니 조심하게. 이반 교수님도 조심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현암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벽에 박혀 있던 기다란 쇠파이프 한 가닥을 뜯어 내서 손에 들었다. 현암이 앞장을 서고 준후와 연희는 박 신부의 오라 막에 싸여서 걸음을 옮겼다. 이반 교수는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좀비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자 배낭에서 물총을 꺼냈다.
“이 안에는 성수가 들어 있죠. 그리고 보통 성수보다 훨씬 더 소금을 많이 탄 성수입니다. 하하하.”
이반 교수는 좀비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일행이 조심스럽 게 걸음을 옮기는데도 각 방의 문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 지 않았다. 현암이 피식 웃음을 띠며 말했다.
“놈들이 문 뒤쪽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예, 맞아요. 모두 하급이네요.”
“음. 그래. 우리가 복도의 중간쯤 갔을 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겠지.”
아니나 다를까. 복도 중간쯤 도달하자 양쪽 문들이 후다닥 열 리면서 흉측하게 생긴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현암은 길게 소리를 지르면서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가로로 눕힌 뒤 기합 소리와 함께 불도저처럼 좀비들을 밀고 나갔다. 좀 비들은 우당탕 쓰러지기도 하고, 현암이 밀고 가는 파이프에 걸 려 허우적거리기도 하면서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현암은 복도 끝까지 좀비들을 몰고 가 길을 트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 다 수가 많았기 때문에 계단의 바로 앞까지만 좀비들을 밀어낼 수 있었다. 현암이 소리를 쳤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갑시다.”
박 신부는 현암이 밀어낸 복도 저편으로 기도력을 올리면서 달려 나갔다. 중간에 쓰러졌던 좀비들이 박 신부를 움켜잡으려 고 손을 저었으나 오라 막 안으로 뻗친 손이나 발은 기도력에 눌 려서 그대로 부스러졌다.
“불쌍한 자들, 편히 쉬게나.”
박 신부는 현암이 고함을 지르면서 힘을 모아 좀비들을 밀어 내고 있는 곳까지 간 다음 기도력을 모아서 현암의 등 쪽으로 밀 어 넣어 주었다. 뒤이어 준후가 쪼르르 달려와서 현암에게 자신 의 기운도 밀어 넣어 주었다. 좀비들은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 이 서로 엉켜서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현암은 시간을 아끼기 위 해 좀 잔혹한 방법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현암은 기합을 발하면 서 크게 호통을 치고 오른팔과 쇠파이프에까지 돌리고 있던 기 공력을 ‘폭’자결로 바꾸었다.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쇠 파이프는 산산이 터져 버렸고, 파이프의 파편에 좀비들은 계단 저편으로 넘어졌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난간 쪽으로 떨어진 좀 비들은 불덩어리가 되어 뒹굴다가 이내 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장치까지 돼 있다니. 생각도 못한 현암의 입이 딱 벌어졌다. 무 작정 계단 너머로 뛰어들었다면……….
“이런 여기를 빨리 통과할 것을 대비하여 저쪽 구석에다 진법 같은 것을 쳐 놓은 모양이군.”
“그럴 수도 있고 좀비들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양쪽 끝을 차단해 놓은 것일 수도 있죠. 저 진은 제가 옛날에 사용 했던 화염진과 비슷하니 어떻게 해 볼게요.”
준후는 이상하게 진과는 관계없는 다른 방향을 향하여 부적을 날리기도 하고 뇌전을 가늘게 쏘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 현암과 박 신부는 뒤에서 덤벼드는 좀비들을 쓰러뜨렸고 연희는 박 신 부의 오라 막 속에서 계속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반 교수는 이 쪽으로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좀비들과 싸우고 있었다. 준후가 진을 파괴하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 렸다. 현암이 재빨리 몸을 날려 박 신부와 연희를 밀어냈고 준후 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면서 지하 일 층의 복도는 삽시간에 막혀 버렸다.
“크! 진이 풀리면 천장을 무너뜨려 통로를 막으려 했던 것 같 아요. 지독하네요.”
다행히 네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나 복도 저편에는 이반 교수 와 좀비들이 있었다. 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반 교수님이 괜찮을까요?”
박신부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많은 무기를 갖고 온 이반 교수 라면 저 정도의 좀비들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좀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지금 저 돌무더기를 치울 시간은 없지 않은가? 진지가 파괴되고 있는 것을 마스터도 눈치채고 있을 테니 어서 움직여야 해.”
“맞습니다. 어서 가죠!”
현암은 기운차게 대답하면서 지하 이층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 고 박 신부와 연희도 이반 교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 뒤 를 따랐다. 준후는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 맨 뒤에 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