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1권 3화 – 와불이 일어나면 2 : 신사(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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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1권 3화 – 와불이 일어나면 2 : 신사(神社)


신사(神社)

“자! 코스 설명이다! 아래쪽 산길부터 시작해서 이쪽 침침한 골짜기 지나고, 저기 보이는 저 낡은 집이 반환점! 오케?”

대학생들의 리더인 듯한 남학생 하나가 크게 소리치면서 동료 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들떠 있었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현암은 숲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런 기분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고 기분 좋게 노는 것을 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원래 현암은 대학생들보다 먼저 신사에 올라 잡귀가 있다면 일격으로 요절을 내거나 잘 인도하여 승천시키고는 사라질 심 산이었다. 그러나 영감님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던 듯, 어느새 ‘담력 시험’을 하는 대학생들이 근처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지 금 저 신사-신사인지 뭔지 이제는 구별조차 잘 가지 않을 정 도로 낡아 있었다. 그러니 노인들 말고는 저 건물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고 당연히 철거하려는 노력도 별반 하지 않았을 것이 다에서는 요기는 아니라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영 력이 그다지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현암에게도 저 정도의 기운 이 평상시에 느껴진다면 뭔가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학생들을 설득시켜서 피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깨고 겁을 주 어야 할 정도로 기운이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학생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행여 무슨 일이 있으면 처리하거나, 전부 돌아간 뒤에 조사를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애들이 많은데 무턱대고 뛰어들 수는 없지. 이해도 못 할 텐데 무작정 설득할 수도 없고, 어쨌거나 오늘 하루는 날아갔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현암은 눈을 빛냈고 대학생들은 킬킬 거리면서 변장을 하고 여기저기 숨기 시작했다. 남학생들이 귀신으로 변장을 하고 코스에서 기다렸다가 여학생들을 놀래는 것이 담력 시험의 골자인 것 같았다.

‘좋은 시절이구나. 후훗.’

현암은 이유 모를 한숨을 내쉬며 눈을 빛냈다.


박신부는 늦은 시간인데 승희가 전화를 받지 않아 궁금해졌다. 

‘뭐. 그 애도 어른이니…………. 아니, 아니 애가 어른이라니. 무슨 소리야. 허허. 잠이나 자자..

박 신부는 실없이 웃으면서 누우면서 전기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어?”

박신부가 스위치에 손을 대기도 전에 전기가 끊어졌는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하게 주변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지? 정전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때 창밖에서 솨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신부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지?’

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답게 조용한 어둠 속에 나뭇잎만 바람에 날리며 바스락거릴 뿐이 었다.

‘뭐지?’

박 신부는 긴장했다. 동네에서 꽤 떨어진 산 중턱 외딴집에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예고도 없이 찾아올 리는 만무했다. 그런…….

‘영기다・・・・・・ 이상한 일이다.’

어렴풋이 영기가 느껴졌다. 미미했지만 박 신부는 매우 긴장 하고 있었다. 어째서 집 안에서까지 영기가 느껴지는 것일까? 준 후가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를 일에 대비해 영적으로 철벽같이 진법을 펼쳐 두었고 박 신부도 주변의 모든 것을 축복하여, 보통 의 영기라면 뚫고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박 신부는 품에서 십자가를 꺼내 들고 조심스레 창문으로 다 가섰다. 조심스럽게 창밖을 살펴보았으나 어둠과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는 나뭇잎, 그리고 시커멓게 흐려진 하늘 외의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요!”

박신부는 소리를 쳐 보았지만 대답이 들려올 것을 기대하지 는 않았다. 그러면서 영기가 짙어지는 곳이 없는가 하고 날카롭 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관 쪽에서 약간의 영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박 신부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현관으 로 돌아섰다. 그러나 잠시 느껴졌던 영기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 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박 신부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반쯤 열려진 문 뒤쪽에서 폭발하듯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이 뒤로 왈칵 밀려 나갔으나 박 신부는 반사적으로 몸에서 기운을 끌어 올리고 몸을 돌리면 서 그쪽을 향해 십자가를 들이댔다.

뭔가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그런데 박 신부가 들이댄 십 자가는 허공을 훑듯 형체를 뚫고 지나갔다.

‘아니!’


현암이 살짝 목을 돌리자 투툭 하고 조그맣게 마디 꺾이는 소리가 났다. 저쪽까지 들릴 염려는 없다. 지금까지 신사로 올라가 는 ‘담력시험’ 코스에서는 이미 여러 번의 비명 소리와 그 뒤를 이어 깔깔거리며 멋쩍게 웃는 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울려 퍼졌 고 “조용히 해!”라든지 “미쳤구먼!” 등의 불만 섞인 마을 사람들의 툴툴거림도 몇 번인가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별일 없는데 헛고생하는 것은 아닌가.’

현암은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수련에나 더 몰두하 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슬슬 자리를 뜰 궁리를 했다. 어느새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무서워서 떨거나 기겁해 소리를 지르면서, 혹은 남자보다도 더욱 태연하고 대담하게 깔깔거리고 웃으며 담력 시험 코스를 지나갔다. 눈치를 보니 한두 명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현암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어 차피 밤늦은 시간에 마을에 갔다 오기로 계획한 것이지만 시간 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보아도 조그맣 고 귀엽게 생긴 여학생이 머뭇머뭇하면서 몇 번씩 놀라며 신사 의 앞까지 도달했을 즈음 현암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원래 대로라면 신사 앞에 여학생이 도달했을 때 양쪽에서 너덜너덜한 천조각을 몸에 두르고 붉은색의 빨랫줄 같은 것을 친친 감은 두 명의 남학생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사 앞에서 여 학생을 놀라게 한 다음 다독거려 주고 끝났다면서 아래쪽으로 내려 보낸다. 즉 이 신사는 반환점인 동시에 마지막 코스인 셈이 었다. 먼지와 거미줄투성이의 신사 내부로 들어가게 하지는 않 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풀숲에 숨어 있을 두 명의 남학생이 튀어 나오지 않았다. 여학생이 겁에 질린 듯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신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까지도 아무런 소 리나 기척이 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이번에는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 걸까?’ 

현암이 끼어들까 말까 멈칫하는 사이, 여학생이 결심을 했는 지 삐걱거리는 신사 문을 살그머니 밀면서 안으로 발걸음을 옮 기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암은 여학생이 올라온 길 쪽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풀숲에 숨어 있어야 할 두 명의 남학생이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길 아래쪽에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끝났다고 생각한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누가 더 나타날 일은 없겠군.’

고개를 돌리는 현암의 눈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낡은 신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신사의 안쪽에서 희미하게 하얀빛 이 보였고, 여학생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아주 먼 데서 외치는 것처럼 들려왔다. 더 이상 지체할 겨를도 없이 현암은 본능적으 로 기공력을 돌리면서 신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당, 당신은.”

박 신부는 의외의 사태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흉악한 악령 이나 괴물이었다면 차라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신부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사람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 은 덩치에 몸은 뿌연 광채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흰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으나 위엄이 있었고 고통 과 슬픈 기운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박 신부가 더욱 놀랐던 것은 그가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천부인(天符印)의 묘 앞에서 숨을 거두었던 철기옹이 었다. 박 신부는 공격하려던 자세와 기도력을 풀어 내리면서 침 착함을 되찾고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어쩐일입니까?

철기옹의 모습은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지만 영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박 신부로서도 죽은 사람의 영은 자주 보아 왔지만 생전 에 알던 사람의 영을 코앞에서 만난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맞닥 뜨리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죽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철기옹의 모습은 영(靈) 같지 않았고 일종의 환영(幻처럼 보였다. 느껴지는 기운도 철기옹이 아니라 어딘 지 다른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이라면 박 신부의 친화력에 의해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텐데도 그 형체는 박 신부 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박 신부는 다시 한번 영기를 느껴 보고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영이 아니라 그냥 환영이구나.’

정말로 영이었다면 아지트 안에 배치된 주술의 방어를 뚫고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 눈앞에서 느낄 수 있는 영기도 이 정도로 미미하지는 않을 테니, 박 신부의 눈앞에 서 있는 모습은 환영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뒤이어 또다시 의문이 생겼다. 영력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른 곳에 투영시키는 방법은 어느 정 도의 능력을 지닌 술사가 되면 가능하지만 철기옹은 죽은 사람 이 아닌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술수를 부린다는 말인가?

눈앞에 나타난 환영은 고통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으나 투사된 환영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올 리 없었다. 박 신부는 긴장하여 그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입 모양을 자세히 읽으면 무슨 말 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세히 들 여다보자니 눈앞의 환영이 철기옹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기는 해 도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철기 말고 이런 모습을 가진 사 람은 내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철기옹도 강화도에서 만났을 당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환영도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매우 힘겹게 입을 벙거리면서 손을 천천히 들어 망치질을 하 는 것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다른 입 모양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계속 반복되는 한 가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입술을 비죽 내밀어 하는 말은 틀림없이.

‘왜, 왜놈, 왜놈들이라고 하고 있다!’

그 말과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 신부는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뚝! 분명 준후가 ‘비밀 프로젝트’라 말한 쇠말뚝과 연 관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그 일에 대해서 박 신부에 게 환영을 보낸 것일까? 그리고 철기옹과 놀랄 만큼 닮은 이 사 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왜놈들. 그리고 말뚝, 틀림없이 어르신은 일제 강점기 때의 쇠말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쉽게도 환영은 박 신부의 말을 알아듣거나 전달해 주기까 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박 신부가 말을 다 알아들었는데도 불 구하고 한참 동안이나 같은 동작을 고통스러운 듯이 반복하더니 손을 덜덜 떨면서 몇 번 입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독순술을 따로 배운 바 없는 박 신부는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아 리’와 비슷하게 입을 놀리는 것과 ‘잉아’ 비슷하게 보이는 두 단 어만 대강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와우’와 같은 단어 하 나와 ‘우우아’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단어. 더 이상은 환영 자체 가 흐릿해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뭔가 중요하고 커다란 비밀이 그 속에 있다고 느낀 박 신부는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떠 보 아도 알아내기 힘들었다. 순간 환영이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저 환영을 내게 보내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박신부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고 온통 어 둠만 깔려 있었다. 환영을 보낼 정도의 실력이라면 큰 능력을 가 지고 있는 사람일 터인데 어째서 직접 찾아오거나 하다못해 편 지나 전화로 전달하려 하지 않고 굳이 저토록 어렵게, 의사소통 하기 어려운 방법을 택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왜 그 사람이 철기옹과 그토록 닮은 모습이었는지, 그가 전달하려 했던 단어들은 무엇이었는지, 무엇보다도 그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경고하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 알 수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분명 그는 이번에 준후가 참여하기로 한 말뚝 제거의 일에 대해 알고 그에 관한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적어도 그것만은 분명하다……………..’

박 신부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수화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백호와 바로 연결되는 호출 번호를 누르기 시작 했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곡절을 알아내기 위해 서는, 지금 아무리 번잡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걷어치우고 준 후와 함께 이 일에 직접 참여해야 할 것 같았고, 불길한 예감도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쉬고 난 다음이어서인지 유독 가슴이 들끓은 박 신부 는 자신이 십 년은 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사 쪽으로 몸을 날리던 현암은 신사의 문틈을 통하여 새어 나오는 강한 영기를 감지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신사 옆 에 도착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영기가 엄청나게 센 느낌으로 다 가왔다. 저 아래에서는 이렇게까지 느껴지지 않았는데………. 현 암의 머릿속에 ‘봉수 할아버지’라던 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건물을 부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도 흠집이 가지 않았다는 말. 그렇다고 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낡고 보 잘것없어도 안쪽에는 주술적인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 다. 신사의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여학생이 신사 안으로 들어섰을 때 영기가 강해지면서 빛을 뿜어낸 이유 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빠른 속도로 현암의 뇌리를 스치고 지 나갔다.

현암은 이것저것 고려할 틈이 없이 만일을 대비해 손에 기공 력을 돌리면서 신사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기공력이 실 린 현암의 손이 신사의 문짝에 닿자 파팟 하면서 열기 없는 파란 불꽃이 튀었다. 현암이 깜짝 놀라 손을 떼고 안쪽 상황을 문틈으 로라도 들여다보려는데 여학생의 비명이 안에서 희미하게 들렸 다. 이상한 것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소리인데도 먼 데 서 지르는 소리처럼 조그맣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현암은 손에서 기공력을 빼고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허술해서 살짝 건드려도 와르르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신사의 문 은 강철 자물쇠라도 달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할 수 없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현암은 문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벼락같이 손에서 기공력을 발 출했다. 그러자 푸른 불꽃이 어지럽게 튀면서 현암의 몸이 충격 에 의해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눈앞에서 일어난 시퍼런 불꽃 때문에 눈이 부셔서 잠시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뒤로 날아가 떨어지는 중에도 현암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공력은 도혜 선사가 평생을 수련하여 넣어 준 것으로 이 제껏 거의 대적할 상대를 찾지 못했는데, 아무리 공력을 완벽하 게 운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도대체 이 문짝 하나에 얼마만한 주술력이 깃들어 있기에 자신의 공력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뒤쪽의 나무에 등을 호되게 부딪힌 현암은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졌다. 머리가 아찔아찔하고 등도 몹시 아픈데다 몸에서 기혈이 들끓어 올랐으나 현암은 이를 갈 면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홧김에 옆에 굴러다니 는 사람 머리통만큼 큰 돌을 집어 들어서 문짝을 향해 던졌다. 돌은 마치 야구공처럼 날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때렸지 만 철판에 부딪힌 것처럼 막혀 바깥쪽으로 튕겨 나왔다. ‘반탄력! 그렇구나.’

현암은 들끓는 기혈을 억누르며 손에 공력을 모았다. 분명 저 것은 주술적이건 물리적이건 간에 외부에서 가해 오는 힘만큼 반발해서 밀어내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도리어 잡아당기면 서 끌어낸다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계속 수련을 하여 더욱더 몸에 익은 태극기공 중 ‘흡)’ 자결을 손에 돌리 면서 손잡이를 잡았다.

불꽃이 일어나면서 강한 압력과 충격이 현암의 팔을 통해 전달되어 왔다. 현암은 입술을 깨물면서 ‘흡’ 자결을 운용해 바깥 쪽으로 밀어내려는 힘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와지끈 소리가 났 고, 현암은 밀려오는 힘을 다 받아 내지 못해 뒤로 한두 발짝 물 러서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반쯤 부서진 문의 손잡이는 현암 의 손안에 들어와 있었고 부서진 문틈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밝은 빛이 휘황하게 비쳐 나왔다.

현암은 쥐고 있던 문손잡이를 집어 던지고는 부서진 문틈에 손 을 넣고 와락 열어젖혔다. 신사의 내부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 을 만큼 밝아서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현암이 긴장한 채 공력 을 돌리면서 안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발밑이 허전해졌다. ‘함정!’

깜짝 놀란 현암은 재빨리 몸의 중심을 잡고 발을 빼 뒤로 돌아 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알 수 없는 힘이 현암의 몸 전체를 감싸고 아래로 내리눌렀다. 현암은 저항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은 채 아 래쪽을 향하여 떨어져 내렸다.


아침 일찍 해가 뜨자마자 박 신부는 준후와 함께 차를 타고 백 호와 다른 사람들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준후는 불과 조금 전에 박신부도 같이 간다는 말만 들었을 뿐 상세한 설명을 듣지 않은 터라 어리둥절했다. 박 신부에게는 다른 골치 아픈 일도 많을 텐 데,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니고 시간만 잡아먹는 이번 일에 왜 따라나서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해 궁금했다.

준후가 묵묵히 차를 모는 박 신부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부님, 신부님도 같이 가는 것 맞아요?”

박신부가 피식 웃었다.

“왜 내가 같이 가는 것이 싫으냐?”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워서요.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아요.”

“하하하.”

박신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준후야! 네 생각으로는 어떤 것 같으냐?”

“예, 무슨 말씀이죠?”

“아참,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느라 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나. 어젯밤에 말이야. 이상한 것을 보았다.”

“예, 이상한 거라구요? 뭘 보셨는데요?”

“어젯밤 잠들고 난 다음에 뭔가 느끼지 못했니? 하긴, 자고 있 었고 그것의 기운도 약했으니.”

박 신부는 미소를 띠면서 어제 본 환영에 대한 이야기를 준후 에게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준후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한참 지나서 입을 열었다.

“환영이라…………. 원래 도가(道家)의 술수 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시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요. 그런데 정말 그분이 철기옹 아니었나요? 철기옹의 영이 뭔가를 알려 주려고 온 것이 아닐까요?”

“그건 아니야. 너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있는 곳에는 우리가 불러내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이 들어올 수 없어. 진을 펼쳐 놓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하긴 그래요. 그렇다면 도가 환영술 같은 종류가 분명한 데……. 철기옹은 아니었겠네요. 죽은 영이 환영술을 쓸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철기옹과 그렇게 모습이 닮았다면…………… “

“준후야, 환영을 보여 줄 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을 나타나게 할 수도 있니?”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제 신부님이 본 모습은 말소리를 전달하거나 마음을 전달하지도 못하고 이쪽의 상황을 투시해서 읽지도 못했다면서요. 물론 그 정도도 대단한 술수지 만 제 생각으로는 만약 자신을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자기가 상 상하는 모습으로 남에게 투사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면 환영이 말을 전달하거나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 문에 그 모습은 주술을 쓴 당사자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되네요.” 

박신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걸까? 철기옹은 돌아가셨는데, 그토록 닮은 분이 있다니.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우리가 철기옹을 직접 만난 것은 지난번 강화도에 서 왜구들의 지박령과의 싸움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었니? 그랬는데.”

준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 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박 신부는 핸들을 돌리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곧 알게 되겠지. 누구든 환영까지 보내서 나에게 뭔가를 알려 주려고 한 것을 보면 이번 일에 중요한 일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어제 늦게 백호 씨에게 전화 를 걸어 여기에 합류하겠다고 생떼를 쓰다시피 해서 허락을 얻 어 냈단다. 하하하.”

“그런데 신부님!”

“음? 왜 그러니?”

“신부님이 같이 가게 되어서 기분은 좋은데요, 의문이 있어요. 그 환영이 정말 신부님에게 나타난 것일까요?”

“무슨 말이지?”

“방금 전에 말씀하시길 그 환영이 신부님의 의도를 알아차리 지도 못하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 아니 말도 아니지. 입을 벙긋거리고 손만 휘젓다가 사라졌다면서요. 신부님에게 전달을 했다고만 보기보다는 우리 중 누구, 아니 우리 모두에게 뭔가를 전달하려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박신부가 듣기에도 그쪽이 더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굳이 박 신부를 지목하지 않았다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준 후도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 현암이 아는 사람이었을까?

“음,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준후야.”

“예.”

“우리가 이곳에 함께 모여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이 몇이나 될까?”

“글쎄요. 이제껏 만났던 사람 중에 그런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몇 안 되는데 어쩌면……..”

“어쩌면 뭐?”

“음, 제가 요즘 백호 아저씨 주변에 영능력자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자주 보았거든요. 이번에 같이 가는 사람들 중에도 몇몇 끼 어 있고, 전에 우리가 보았던 주기 선생이나 사천왕 같은 사람들도 백호 씨와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은신처를 백호 아저씨는 알고 있잖아요. 백호 아저씨 가 그중 몇몇에게 이야기해 주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 은 신처를 알고 있는 영능력자가 우리에게 환영을 보냈는지 모르지요.”

“백호 씨를 만나 보아서 과거에 철기옹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가 알아보면 되겠구나.”

“예, 그리고 백호 아저씨보다는 아마……………”

“어떨지 모르겠지만 혹시 무련 스님이………….”

“무련 스님?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니에요. 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서요. 조금 있으면 아시게 될 텐데요. 뭐.”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차의 액셀러레이터를 힘주어 밟았다. 백호를 비롯해 같이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보 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전화 통화처럼 쉬 운 방법을 두고 왜 굳이 그런 힘든 주술을 사용했을까? 그런 것 이 아니라면 현암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들의 은신처를 알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더 높은 것 아닐까? 박 신부는 조급해 졌다.

“그나저나 준후야, 현암 군은 어디서 수도를 하고 있니?”

“글쎄요. 저도 알 수가 없지요. 남도의 인적이 없는 산을 찾아 가겠다고 이야기 했으니까요.”

“음, 그래, 남도란 말이지.”

“신부님 생각처럼 이번 일이 그렇게 중대한 것이라면 현암 형도 있어야 힘이 될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승희더러 찾아 달라고 하면 금방일 텐데.”

“연락해 보시지그래요.”

“전화를 받지 않아. 어디로 나간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도 해 보셨어요?”

“응. 해봤지.”

“그럼 이상한데요. 승희 누나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기는 해 도 우리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집을 비우다니. 그건 좀……………. “

“글쎄다. 승희도 어른이니 내가 뭐라고 하겠니. 허허허. 성깔 이 있기는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애고, 능력도 있으니 염려할 것 은 없다. 나중에 다시 연락해 보자꾸나.”


박 신부와 준후가 승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승희는 밤 차를 타고 무등산 자락에 도착해 아침 햇빛을 받으며 박 신부에 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마침 그 시간에 박 신부와 준후는 ‘프로 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타고 가고 있어 통화가 되지 않았 다. 승희는 투시를 해 볼까 아니면 박 신부의 카폰으로 연락을 할까 하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꼬박꼬박 보고를 해야 하는가 하 는 묘한 기분이 들자 그냥 두기로 했다. 투시는 쉬운 일이 아니 었고 그런 힘을 쓸 때마다 조금씩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사 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힘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고 지금도 구태여 투시를 하면서까지 박 신부에게 자신의 거처를 알려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금 나이를 먹더라도 현암군은 찾아야겠지?’ 승희는 현암의 기척을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데 희 한하게도, 분명 차를 타고 이만큼 가까이 왔으니 기척이 서울보 다 가깝게 느껴져야 하는데, 오히려 멀게 느껴졌다. 아니, 거리 상으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뭔가가 중간에서 방해를 하는지 현암의 자취가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현암 군이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수 련중이라고 했으니 별일은 없을 텐데……………..’

승희는 신경을 써서 현암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도 마음속을 읽어 낼 수 없었다. 현암 자신이 읽히기를 거부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건 이상한데 수련을 하러 들어간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여간에 사고도 많아.’

승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그래도 믿는 마음이 있었으므 로 걱정을 접고 현암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 방향을 잡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속을 헤매고 다녀야하니 피곤할 것 같기는 했지만.


현암은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 전에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이었다. 신사의 내부에 감쪽 같이 장치되어 있던 함정에 빠져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은 후 얼 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고 해도 이렇게까지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닌데 어쩌다 정신을 잃었는지 이상했다.

현암은 몸을 조금씩 조금씩 끝 부분부터 움직이면서 부러지거 나상한 곳이 없나 꼼꼼하게 살폈다. 몸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 할 때까지는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는 게 좋겠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본 후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 하고서야 서서히 눈을 떴다. 자신이 있는 곳은 땅을 파서 만들 어 놓은 듯한 암굴이었다. 사람이 드나든 지 꽤 오래된 느낌이었 고 벽은 지하수가 새는지 축축하게 젖은 채 눅눅한 곰팡이 냄새 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땅속 깊은 곳일 텐데 희한하게도 어둡 지 않았다.

현암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위쪽을 쳐다보 았다. 현암이 떨어져 내린 구멍이 보였는데 그 구멍은 수직으로 뚫린 게 아니라 약간 기울어져서 전체가 아닌 한쪽만 보였고 상 당히 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분명 어두워야 할 암굴 안에 희미 하게 퍼져 있는 빛에 대해서는 현암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현암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신사는 분명 일제 때 세워진 것 일 테고 적게 잡아도 오십 년 이상 사람들이 오간 적이 없을 텐 데 이런 깊숙한 암굴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무 슨 목적으로 신사의 지하에 이러한 암굴을 뚫었던 것일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현암은 사라진 여학생을 떠올렸다. 그 여학생 도 분명 여기로 떨어졌을 것이다. 팔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시 간은 아침나절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암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의 깊게 둘러보면서 굴 안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암굴은 사람 하나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땅굴이었고, 통로도 상당히 길었다. 여기 저기 버팀목으로 세워 놓은 나무들은 몹시 낡아서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 같았다.

현암은 조심스럽게 그림자의 방향을 살폈다. 그림자가 드리운 방향을 보면 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 나 방향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면서 현암은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 는 기운…………. 악한 것도 아니고 영기라고도 할 수 없는, 그렇지 만 강렬한 힘을 담고 있는 무엇이 분명 암굴 안에 있었는데 도대 체 어떤 것이 이토록 강렬한 영기를 뿜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 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토굴의 한쪽 벽이 굽어지고 반대쪽에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었다. 현암은 왼쪽 팔에 차고 있는 월향검을 빼 들고는 벽에 몸을 붙여서 휘어진 통로로 다가섰 다. 반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뛰어들까 하다가 여학생이 아 닐까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나 현암이 모퉁이를 돌자 후다 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인기척은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는 건 아닐까? 여학 생 말고 혹시 다른 사람이 ………………’

현암이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발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 졌다. 무척 조심해서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으려고 하는 것 같았 으나 울림으로 보아 체중이 그다지 많이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 다. 아까 그 여학생일 것 같아서 현암은 큰마음을 먹고 소리쳐 불렀다.

“여보세요! 거기 누굽니까?”

응답이 없었다. 현암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 저 발소 리의 주인공이 여학생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응당 기뻐하고 반 가워해야 옳을 것 같은데.

“여보세요. 겁내지 마세요. 도와 드리겠습니다!”

현암은 계속 소리를 치면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저쪽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나, 저…………… 저…. 아니, 아니…….”

앳된 여자의 음성이었다. 여학생이 틀림없는 것 같아서 현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겁내지 말아요. 저도 당신과 비슷하게 여기 들어온 사람입니다. 우리 함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봅시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왜 그러죠?”

“저리 가! 난 싫어, 싫어! 무서워! 없어져 없어지라고!” 

현암은 여학생이 떠드는 소리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섭다고? 없어지라고? 그렇다면 저 여학생은 이곳에서 무서운 것이라도 보았단 말인가?’

현암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무서워하지 말아요. 저도 당신처럼 이곳에 굴러떨어 진 사람입니다. 당신과 똑같은 보통 사람이란 말이에요. 제가 도 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숨지 말고 이쪽으로 나오세요.”

대답 대신 큼직한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러나 살의가 담겨 있 지는 않았다. 힘을 잔뜩 실어 던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현암은 가볍게 돌멩이를 피하고는 소리쳤다.

“겁내지 말라니까요!”

“저・・・・・・ 저, 정말, 정말이죠?”

여학생은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 다. 잠시 동안 기다리자 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 굴 한쪽의 움푹 파인 어두운 구석에서 여학생이 주춤주춤 고개를 내밀었다. 현암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조금씩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자, 자, 이제 겁낼 것 없어요. 겁낼 것………….”

현암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학생은 울음을 터뜨리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저런저런 이 안에 뭔가 있긴 있는가 보다. 방심하면 안 되겠군.’

현암은 여학생 쪽으로 다가갔다. 여학생이 나왔던 한쪽 구석 의 방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백열등과는 다르게 광선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은은하게 사방을 가득 채워, 현암도 강렬한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 자, 이제 됐어요. 겁먹지 말아요.”

현암은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 여학생의 등을 다독거려 주 었다. 여학생은 계속해서 흐느끼면서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으 나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웅얼대기만 했다.

“자, 자, 괜찮다니까요. 이제 나갈 방법을 찾아봅시다. 혹시 이 안에 다른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았나요?”

여학생은 계속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흑흑거리면서 현암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귀엽고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눈물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서 눈만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 더욱더 애처로워 보였다.

“저 안쪽에 시, 시……………”

“예, 뭐라고요?”

“저 안쪽에 시체・・・・・・그, 그런데도 그게…………… 그 이상한 게 자꾸 나와서 나는 저기…………….”

“자, 자…… 침착하게 말해 봐요.”

“그게 나와서 나는 저 시체………… 시체 옆에서 계속….계속 난………… 난………… 더…………… 그 이상한 게 더 무서워서………….

현암은 한숨을 쉬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슨 말인지 대 강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여학생은 토굴에 떨어진 뒤 뭔가 이상한 것에 쫓겨서 몸을 피하다가 방을 찾아냈는데 그 안에 시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시체가 무서워 밖으로 나가면 그 이상한 것에게 잡힐 것 같고, 결국 할 수 없이 시체가 있는 방에서 거의 하룻밤을 보냈다는 뜻 같았다.

‘이상하군. 그 이상한 것은 어째서 저 안까지 쫓아 들어가지 않았지?’

현암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여학생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겁먹지 말고 얘기해요. 이젠 괜찮아요. 그 이상한 것이라는 게 도대체 뭐죠?”

현암이 묻자 여학생은 무서웠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현암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유・・・・・・ 유령이요.”

“도대체 어떤 …………….”

“그것, 그것은…… 으, 으악!”

여학생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기다 시피 하며 몇 걸음을 물러섰다. 현암이 그녀가 응시하는 곳을 쳐 다보니 토굴 저편에서 회색의 형체 하나가 일렁이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현암은 일단 여학생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비명만 지르면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현 암은 기공력을 약간 올려서 여학생을 들어 올려 토굴 안쪽으로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현 암에게 죽자 살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가가기 싫어요! 거긴 가기 싫어요! 거기 있는 시체는…….. “

“자, 걱정 말고 내 뒤에 잠깐만 숨어 있어요. 아이고, 이렇게 잡고 있으면………..”

현암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힘 약한 여자라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매달리는 바람에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 다고 힘을 주어 뿌리칠 수도 없고………….

“잠깐만요. 이것 좀 놔 달란 말이에요. 잠깐만요!”

현암이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도 회색의 형체 는 서서히 둘을 향해 움직였다. 늙고 두 눈이 퀭하게 뚫린 모습, 그 영은 찢어진 옷자락을 펄렁이면서 뭔가 움켜쥘 듯한 자세로 양손을 내밀며 두 사람 앞으로 날아왔다.

현암은 달라붙는 여학생을 떼어 내기를 포기했다. 여학생이 거 의 넋이 나간 상태라 함부로 힘을 쓸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회 색의 형체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처리해야 했다. 현암은 그냥 월향검으로 두 쪽을 내 버릴까 하다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오래된 신사 밑에 비밀리에 건립 된 토굴 속을 헤매고 다니는 유령이라면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자신에게 엉겨 붙는 여학생의 팔을 가볍게 뿌리치면 서 월향검을 뽑고 몸에 공력을 돌렸다. 오른손에 공력을 집중하 자 월향검에서는 기다란 검기와 함께 귀곡성이 울려 나왔고, 몸 에서는 자연스럽게 반탄력이 형성되어 여학생을 밀어내게 되었 다. 여학생은 난데없이 여자의 비명 소리가 울리자 덩달아 소리 를 지르면서 뒤로 풀썩 쓰러졌다. 여학생의 비명 소리에 그만 순 간적으로 현암의 주의가 산만해지자, 월향검의 날카로운 검기를 보고 주춤거리던 영은 틈을 놓치지 않고 현암에게 달려들었다. 영의 공격을 피하려던 현암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지금 자신이 피한다면 뒤쪽에 있는 여학생이 영에게 붙잡힐 것 이 아닌가. 현암은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검기가 맺혀 있는 월향 검을 날카롭게 그었다. 파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월향검에서 뿜 어져 나온 날카로운 검기는 덮쳐드는 영의 왼쪽 팔과 어깨 부분 을 마치 종이를 자르듯 가볍게 그었고, 영의 어깨와 왼쪽 팔은 파삭 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스러져 버렸다. 그러나 영은 현암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현암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세가 흐트 러진 틈을 타 투명하고도 앙상한 손을 현암의 왼쪽 어깨에 밀어 넣었다.

“으악!”

현암의 비명이 동굴 안을 크게 울렸다. 하필이면 공력으로 보 호받고 있지 못한 왼쪽 어깨를 붙잡힌 것이다. 영은 비록 물리력 은 없는 것 같았으나 투명한 손가락이 몸속을 파고들자 마치 근 육을 후벼 파내는 것처럼 격렬한 고통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으슬 으슬한 한기가 몰려들었다.

현암은 휘청하며 뒤로 쓰러지려는 몸을 겨우 가다듬고 왼쪽으 로 반 바퀴쯤 돌려 영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소용 없었다. 영의 손은 현암의 어깨 속에 깊숙이 박힌 채 팔목이 고 무줄처럼 쭉 늘어났다. 현암의 공격에 왼쪽 어깨 부분이 부서져 없어졌는데도 고통을 느끼거나 타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현암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월향검을 쥔 손에 공력 을 집중했고 월향검은 공력을 받아 다시 한번 길게 귀곡성을 울 렸다. 월향의 검기가 허공을 날카롭게 휘젓고 지나가자 이번에 는 영이 허공에서 둘로 갈라지더니 둥둥 떠 있는 영의 하반신이 스러져 없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영이 해골과 같이 앙상한 입을 헤벌리면서 웃는 듯한 표정을 짓자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뭐 이런 놈이……………. 으윽!’

현암은 다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영의 손이 더욱더 안쪽으로 파고든 듯,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고 음울한 한기가 몸에 퍼져 견딜 수가 없었다. 현암은 그대로 두 동강 내 버릴 생 각으로 내리쳤던 월향검을 위로 쳐올렸다. 영의 그림자는 현암 의 어깨에 박고 있는 손을 회전축으로 하여 빙글 돌면서 공격을 피했다. 현암은 이제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꽁꽁 얼어붙는 듯해 버티고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현암이 쓰러지자 영은 입을 쫙 벌 리면서 현암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 웃음소리 같은 것이 메아 리가 되어 토굴 안에서 어지럽게 흔들렸다.

여학생은 자신의 앞에 서 있던 현암이 고통스러워하며 쓰러 지자 기절할 듯한 비명 소리를 질러 댔고, 현암은 넘어지는 와중 에도 기합을 내지르며 영을 향해 월향검을 던졌다. 영의 웃음소 리와 현암의 분노에 찬 고함 소리, 여학생의 비명 소리가 뒤섞여 좁은 암굴 벽에 메아리쳤다.

월향검이 귀곡성을 내며 빠르게 날아갔으나 영은 월향검을 피 하더니 득의만만한 눈에서 붉은빛을 번뜩이며 현암의 어깨를 깊 숙이 헤집으며 다가섰다. 고통스러워하는 현암의 얼굴에 영이 내 뿜는 붉은빛이 비치자 여학생은 뒤로 쓰러져서 기절해 버렸고, 현암 역시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아무리 공력을 돌리려 기를 써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현암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월향, 어서!”

영이 막 현암의 몸속으로 완전히 비집고 들어가려는 찰나 귀 곡성을 울리면서 월향이 빠른 속도로 호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번뜩이는 빛을 사방에 뿌리며 날아든 월향은 방심한 영의 뒤통 수에 박혀 들어가 앞이마를 뚫고 나왔다. 현암의 눈앞에 흰빛이 번뜩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현암을 피해 정수리 바로 위쪽의 땅에 푹 하고 꽂혔다. 영은 이제야 고통을 느끼는지 형체가 흐릿해지 면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영의 신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 자 주변의 돌이며 흙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은 바로 코앞에서 폭발하듯 터져 버렸고 현암은 그 힘을 이기지 못 하고 뒤로 데굴데굴 굴러 안쪽 석실로 나가떨어졌다.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 현암의 눈에, 토굴의 좁은 벽 안에 쌓인 시커멓게 삭아버린 나무 상자들과 벽에 점점이 박힌 채 흰빛을 뿜어내는 옥색 구슬들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밑으로 한 사람 이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쪼글쪼글하게 늙고 체구가 몹시 작은 노인이었다. 노인의 얼굴을 본 현암의 얼굴에 심한 경련이 일었다.

아니! 철기 어르신이 여기에 어떻게……

영의 모습이 사라졌음에도 석실 바깥쪽에서는 단말마의 비명 이 계속 울려 토굴의 사방을 떨리게 만들었고, 벽에 박혀 있던 옥색 구슬들은 밖의 영이 비명을 질러 댈 때마다 점점 붉은빛을 띠어갔다.

“아니, 이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위기감 을 느낀 현암은 이를 악물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월향!”

현암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저쪽의 땅바닥에 꽂혀 있던 월향 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날아왔다. 현암은 간신히 오른손 을 뻗어 월향을 움켜쥐면서 남아 있는 공력을 아낌없이 월향에 주입시키고는 왼손으로 넘어져 있는 철기옹의 팔목을 만져 보았 다. 그러나 그 팔목은 목숨을 잃은 사람의 식어 버린 팔목일 뿐 이었다.

현암은 더 이상 몸을 가눌 힘이 없었다. 수백 마리 벌레들이 기어가는 느낌과 으스스한 한기, 저릿저릿한 고통 때문에 손끝 과목위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가야 해. 나가야…………….’

토굴은 점점 더 심하게 흔들렸고 벽에 박혀 있던 옥색 구슬은 더욱더 새빨간 빛을 띤 채 마치 화약처럼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 했다. 폭발로 인해 구슬이 조각나고 그것이 흰 가루로 변해서 몸 에 내려앉자 현암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

“월향! 나를, 나를 내보내 줘!”

현암에게서 받은 공력을 비행하는 데만 쓰는지 검기가 사라 진월향은 현암을 질질 끌면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 다. 현암은 꼭 쥔 오른손과 왼손 그리고 얼굴을 제외하고는 아무 런 감각이 없었다. 처음에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이토록이나 지독한 술수를 부릴 줄 몰랐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월향 은 힘겨운 듯 토굴의 벽을 따라 현암을 질질 끌면서 앞으로 나아 갔다.

석실은 현암의 뒤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현암은 이성을 잃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넋이 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학 생을 보았다. 다시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현암은 멍하니 주저 앉아 있는 여학생의 옷자락을 왼손으로 아슬아슬하게 움켜잡았 다. 월향은 무게가 가중되자 힘에 겨웠는지 주춤거렸다. 그러나 토굴이 온통 흔들릴 만큼 날카로운 귀곡성을 내면서 힘을 내 현 암과 여학생의 몸을 끌고 토굴 벽을 따라 나아갔고, 토굴의 안쪽 에서는 구슬이 터지는 소리가 수그러들더니 곧이어 천둥과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토굴은 천장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 져, 질질 끌려가는 현암과 여학생의 뒤를 쫓듯이 허물어졌다.

어느새 월향은 신사로 연결된 구멍 입구까지 둘을 끌고 왔다.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구멍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려 했으나 두 사람의 몸을 들어 올릴 정도의 힘은 없었다. 다시 한번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위로 솟구쳐 오르려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학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때 갑자기 여학생이 잡 고 있던 현암의 왼손을 놓았고, 그러자 현암의 몸이 위로 솟구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그건 안…….”

떨어지는 여학생의 하얀 얼굴이 슬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사방이 정지되어 있고,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느 낌……. 여학생의 얼굴 위로 동생 현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동생 현아의 모습이.

‘안 돼. 절대로 안 돼!’

현암은 월향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놓았다. 월향검의 날카로 운 비명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커다랗고 널찍한 바윗덩어리 하 나가 현암의 뒤를 따라 같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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