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8화 : 낭왕 징벌 (1)
낭왕 징벌 (1)
창우대가 떠난 뒤, 황룡 학관은 평 소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설우진은 한층 복잡하고 어려워진 수업 내용 에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 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설우 진은 황보민과의 비무를 위해 연무 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붙는다는 소문이 관내에 쫙 퍼졌는지 연무장 주변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안에는 철사자회 식구들도 섞여 있었다.
“무슨 대단한 구경났다고 애들이 이렇게 몰려든 거야?”
“황보민이 워낙 유명하잖아. 벽이 처럼 용권이라는 수식어까지 달고 있으니.”
“어린놈이 겉멋만 잔뜩 들어서 …….”
설우진은 점점 더 황보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남궁벽이 말을 걸어왔다.
“그 자식 싸가지는 없어도 실력은 진짜다.”
“놈을 알아?”
“예전에 붙어 본 적이 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지만 그때 반수 차이로 놈한테 졌다.”
“네가 졌다고? 천하의 검귀가!”
설우진이 놀란 얼굴로 남궁벽을 빤 히 쳐다봤다. 남궁벽은 민망한지 얼 굴을 붉히며 대화를 이었다.
“흠흠, 그때의 패배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당시 놈은 권법을 배운 지 일 년도 안 된 시기였다. 한데 내 검은 놈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 다.”
“재능을 타고난 모양이군.”
“그래, 그때가 삼 년 전이었으니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남궁벽은 진지한 얼굴로 경고했다.
한데 설우진은 그 말에 긴장하기보다 강한 의구심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뛰어난 천재였다면 왜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거지? 일찍이 마천 쟁투에 휘말려 죽기라 도 한 건가?”
설우진은 소위 천재라 불렸던 이들 과 적잖게 어울렸었다. 낭왕이라는 신분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런데 그 천재들 중 황보민은 없었다.
“지금 놈하고 붙으면 어떨 것 같 아?”
“……내가 이긴다. 놈이 재능만 믿 고 수련을 게을리할 때 난 죽어라 이 검을 휘둘렀으니까.”
“그럼 승부는 이미 났네. 네 녀석도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내가 질 리 없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설우진은 이미 여러 차례 남궁벽을 꺾은 바가 있 다. 그 결과에 빗대어 본다면 황보 민과의 비무 결과는 안 봐도 뻔했 다.
“크흠, 내가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 렸군.”
“알면 됐어. 네가 삼 년 전에 당한 것까지 제대로 분풀이해 줄 테니까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
“그래도 손 속에 사정은 둬라. 가 문에서 내놓은 난 몇 대 쥐어 터져 도 상관없지만 그놈은 사정이 다르 다.”
“황보세가가 가만있지 않을 거란 말이냐?”
“그래. 특히 오늘 학관을 나선 황 보준 장로는 놈에 대한 사랑이 지극 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아마 네 녀석이 놈의 몸에 생채기라도 낸 걸 안다면 천양에서 득달같이 달려올지 도 모른다.”
“니미, 달려올 테면 오라고 해, 내 쪽도 만만찮은 뒷배가 있으니까.”
설우진은 그 말을 하면서 제갈명과 황유하를 떠올렸다.
아무리 십대 장로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 해도 맹주와 군사에 비 할 바는 아니었다.
“진짜 나오셨네요?”
황보민이 설우진의 얼굴을 보고는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난 내 입으로 뱉은 말은 무슨 일 이 있어도 지키거든. 그런 의미에서 한마디 더 하자면 넌 오늘 기어서 집에 가게 될 거야.”
“크큭, 이야, 선배, 감히 절 열 받 게 만드시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네요!”
황보민은 실소를 내뱉었다. 그러고 는 양손을 가볍게 털어 냈다. 권을 펼치기 위한 준비 동작과 같은 것이 었다.
황보세가의 권법은 빠르면서도 묵 직했다. 쾌와 중의 묘리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다. 특히 대표 절기인 맹호철권의 경우 일격에 바 위를 부수고 백 타를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참고로 황보민은 삼 년 전에 맹호 철권에 입문했다.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걸로 하 지.”
설우진이 비무의 규칙을 제시했다. 한데 황보민이 거기에 이의를 제기 했다.
“그건 너무 싱거울 것 같고, 팔다 리 중 하나가 먼저 부러지는 쪽이 지는 걸로 하죠.”
“괜찮겠어? 꽤 아플텐데.”
“선배 걱정이나 하시죠.”
황보민은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새끼야, 네가 아는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 게 해 주마.’
설우진은 가볍게 단전의 뇌기를 깨 웠다. 황보민의 실력을 높이 사서가 아니라 제대로 밟아 주기 위함이었 다.
“먼저 들어오시죠.”
황보민이 선공을 양보했다. 이에 설우진은 흔쾌히 선공을 취했다. 타닥.
설우진이 바닥을 힘차게 찼다. 발 끝에서 사나운 기류가 휘몰아치며 그의 신형을 빠르게 날려 보냈다.
황보민과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아 졌다.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에 놀랐 는지 황보민의 얼굴은 살짝 경직돼 있었다.
‘네놈이 자랑하는 주먹으로 깔끔하 게 눌러 주지.’
설우진은 주먹을 가볍게 감싸 쥐고 그 안에 뇌기를 눌러 담았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멋모르고 받는다면 적잖은 충격을 먹을 것이 분명했다. 설우진의 주먹은 기세 좋게 황보민 의 얼굴로 향했다. 권격 안으로 들 어선 상태라 피하기엔 조금 시간이 모자랐다.
한데 놀랍게도 황보민은 설우진의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뒤집어 스스로 권격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역시, 천재라는 건가.’
설우진은 내심 크게 놀랐다. 전력 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방금 전 에 보여 준 황보민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유연했다.
“선배, 이젠 제 차롑니다.”
황보민은 자세를 수비에서 공격으 로 전환했다. 그러고 나서 한줄기 폭풍처럼 설우진의 전면으로 들이쳤 다.
하지만 설우진은 무슨 생각인지 황 보민의 권격 안으로 스스로 뛰어들었다.
파파팍.
황보민의 주먹이 설우진의 얼굴에 사정없이 꽂혔다. 아니, 꽂히는 것처 럼 보였다.
‘뭐, 뭐야! 왜 내 주먹이 안 통하는 거지?”
황보민은 연달아 막히는 주먹에 당 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일격에 백 번을 때리는 맹호철권이 다. 한두 번이야 우연히 막을 수 있 다고 쳐도 지금처럼 연달아 막히는 건권이 날아올 방향을 미리 읽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건 주먹에 전해 지는 반탄력이었다.
맨 주먹도 아니고 내력이 실린 주 먹인데도 손목이 찌릿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건 힘 대 힘의 대 결에서 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이, 후배, 힘을 좀 더 쓰지그래! 그렇게 주먹이 새털처럼 가벼워서야 어떻게 날 쓰러뜨리겠어!”
“이익!”
설우진의 도발에 황보민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선배, 소원대로 산산이 부숴 드리 죠.”
황보민은 내기를 한껏 끌어 올렸 다. 명문가의 자제답게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내력을 단전에 쌓은 상태였다.
‘호오, 이거 한순간에 기세가 반전 됐는데! 이제야 제대로 싸워 볼 마음이 생긴 건가?’
한껏 내력을 머금은 맹호철권은 아 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를 풍겼다. 산보하던 호랑이가 먹잇감을 발견하 고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황보민의 주먹이 허공을 격타했고 수십 개의 권영이 설우진의 전면으로 들이쳤 다.
권영 하나하나에 맹호철권의 기세 가 담겨 있었기에 어느 것도 허투루 받아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권왕의 주먹 앞에서도 당당했던 설우진이다. 게 다가 지금은 그때 부족했던 내력까 지 채워진 상태이다.
설우진은 웃으며 황보민의 주먹을 그대로 맞받아쳤다. 특별한 초식을 쓴 것이 아니라 야수안으로 권영의 궤적을 읽고 거기에 맞춰서 빠르게 주먹을 내뻗은 것이다.
뇌기를 머금은 그의 주먹은 맹호철 권 못지않게 빨랐다.
파파팍!
두 사람의 주먹이 한가운데서 맞닥 뜨렸다. 그때마다 쇳덩이가 충돌하 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둘의 신형은 서로의 빈틈을 노리듯 좌우 로 빠르게 움직였다.
한마디로 호각지세였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실제 상황은 설우진이 황보민을 압도하고 있었다.
황보민은 뛰어난 재능에 취해 무공 의 기초가 부실한 편이었다. 권법가 의 기초는 튼튼한 육체인데 황보민 의 경우는 뼈대나 근육의 강도가 비 슷한 수준의 권법가들에 비해 현저 히 떨어졌다.
이를 방증하듯 설우진과 주먹이 맞 닿을 때마다 황보민의 얼굴은 사납 게 일그러졌다. 주먹을 타고 전해진 충격이 근육과 뼈대를 상하게 한 것 이다.
‘빌어먹을. 저, 전력을 다해서 싸우 고 있는데 대체 왜 내가 밀리는 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