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1화 : 황룡 혈우 (1)
황룡 혈우 (1)
“후우, 대주님, 이 심장의 떨림이 느껴지십니까?”
해도 채 떠오르지 않은 새벽녘에 일단의 무리가 서안 대로변 한복판 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두에는 마백풍이 네 자루의 검을 요란하게 흔들며 흥분된 마음 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었다.
“백풍, 이곳은 전장이다. 지나친 흥 분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자중해라.”
육지환이 마백풍을 살짝 나무랐다.
“후훗, 붉은 호랑이와 검을 맞댄다 는데 어찌 흥분이 안 되겠습니까? 조금만 봐주십시오.”
“그래도 하려거든 당사자 앞에 가 서 해라. 너 때문에 청랑대의 기강 이 흐트러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어이구,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따 릅죠.”
그제야 마백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청랑대를 이끌었다.
황룡 학관을 치기 위해 나선 청랑 일대는 전원이 검기를 발현할 수 있 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선발대로 기선을 제압한다는 의미에서 소수 정예화를 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마백풍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는 한 마리 날짐승 같은 무사였 다. 규격 외의 인물이라고 할까. 그 는 세 자루의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 했다. 상식적으로 저게 가능할까 싶 은데, 그의 검들은 놀랍게도 적재적 소에서 활용됐다.
“그나저나, 대주님, 모두 죽입니 까?”
“마천의 군림에 방해가 되는 것들 은 깡그리 지워야 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여라.”
“후훗, 오랜만에 진한 피비린내가 진동하겠군요. 가자!”
마백풍이 진군 속도를 높였다. 뒤 따르던 청랑대는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펴듯 좌우로 흩어져 그 뒤를 쫓았다.
“하암, 드디어 끝났군. 이제 오늘 밤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 건가?”
늦은 밤, 설우진의 방에선 불빛이 훤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연 이어 이틀 동안 밤을 지새우며 내기 무의를 만드는 데 한껏 심혈을 기울 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급해진 건 이틀 전에 일품점 서안 지점을 통해서 날아든 나살문의 서신 때문이었다.
나살문은 짧은 시간이지만 정보 조 직으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했다. 본 래 살수지문들이 기본적으로 비선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 다.
나살문이 전해 온 서신에는 난주에 머물고 있던 마천의 선발대 중 일부 가 사라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놈들이 황룡학관을 노리고 나선 거라면 전처럼 예고도 없이 들이닥 칠 가능성이 높아. 그럼 지금 놈들 은 어디쯤 왔을까?’
설우진은 마천이 들이닥칠 시점을 계산했다. 하지만 종적이 사라진 시 기와 난주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종합적으로 감안해도 정확한 시기를 짚기가 어려웠다. 그들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오늘만 아니면 돼.’
설우진은 완성된 내기무의를 한쪽 에 쌓아 두고 침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짧게나마 눈을 붙이기 위함 이었다.
한데 침상에 몸을 누이려는 찰나 그의 예민한 감각에 껄끄러운 기운 이 감지됐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의 기운, 바로 살기를 머금은 마기 였다.
‘빌어먹을, 마천 놈들인가?’
설우진은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 지붕으로 뛰어 올라갔다. 시야를 확 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마기가 흘러나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 어맞았다. 어둠에 휩싸인 대로에 일단의 무리가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 는 것이었다.
그들에게선 속이 역해질 정도의 진 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잠을 청할 여유 따위는 없다.
설우진이 다시 방으로 내려가 천뢰 도와 완성된 내기무의들을 챙겼고, 그사이 마기를 내뿜는 무리는 황룡 학관의 높은 담을 그대로 타고 넘었 다.
잠에 취한 황룡 학관은 조용했다. 무가가 아니었기에 교대로 보초를 서는 무사들도 없었다. 그저 밤하늘 아래 풀벌레 소리만 요란했다. 그런데 낯선 이들의 발소리에 풀벌레가 울음을 멈췄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 없애라.”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 리. 그 뒤를 따라 세 자루의 검을 허리에 찬 마백풍이 앞으로 달려 나 갔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진한 살 의를 머금고 있었다.
마백풍은 건물 안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쫓았다. 첫 번째 희생양이 된 건 학관에서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맹씨 형제였다.
허름한 방 안.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쳐 있던 맹씨 형제는 방 안에 사람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코까지 골아 대며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 다.
마백풍은 그들의 얼굴을 빤히 내려 다보고는 이내 허리에서 검을 뽑아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악.
어둠 속에서 핏물이 자욱하게 뿌려 졌다. 잠결에 목이 베인 맹씨 형제 는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 로 바닥에 고개를 떨궜다.
“이건 너무 싱겁잖아. 화끈하게 깨워서 즐겨 볼까?”
마백풍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읊조렸다.
잠시 후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학관의 종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댕댕댕
밤하늘을 깨우는 그 소리에 깊은 잠에 취해 있던 관도들이 앞다퉈 밖 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들을 기 다리고 있는 건 잔뜩 날이 선 세 자루의 검이었다.
사사삭.
섬뜩한 파륙음과 함께 세 개의 머 리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러고 그 뒤를 이어 검은 그림자들이 관도들을 하나씩 덮쳤다.
관도들은 반사적으로 검을 피하려 했지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들이 경험했던 그 어떤 검보다 빠 르고 예리했다.
“마천이다! 마천이 쳐들어왔다!”
앞서 나간 관도들의 죽음을 목도한 이들이 소리치며 기숙사 안으로 다 시 들어갔다. 그들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저항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 이다.
잠시 후, 눈에 띄는 관도 하나가 활을 들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궁일 문이라는 산동 무가의 차남인, 황윤 이었다.
그는 작년까지지자 조에 속해 있다가 연말에 치른 승급 시험을 통 과해 천자 조로 승급했다.
호방한 성격에 무공 실력까지 뛰어나 학관 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황룡삼천에서도 서로 그를 영입하겠다 고 싸움을 벌였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황룡삼천의 제의를 거 절했다.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 직이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마천 놈들, 순순히 앉아서 당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황윤은 적의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하며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몽추를 불렀다.
“몽추, 애들을 모아 줘! 학사님들 이 달려오실 때까진 시간을 벌어야 해!”
몽추는 지 자 조에 속한 관도였다. 덩치는 작으나 차돌 같은 단단함이 느껴지는 이였다.
몽추는 충실하게 황윤의 지시에 따 라 관도들을 불러 모았고 복도에는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였다.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출신 가문이나 사문이 쌍룡맹에 예 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 는 맹철기의 간교한 술책이 담겨 있 었다.
“다들 겁먹을 것 없어. 이렇게 한 데 뭉쳐 있으면 절정 급의 고수라도 능히 상대할 수 있어.”
황윤이 사기를 북돋았다. 하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비명 탓에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이 버티고 있는 복도로 낯익은 얼굴이 걸음을 내디뎠다. 흉신 악살처럼 얼굴에 피를 흠뻑 뒤 집어쓴 마백풍이었다.
“이야, 친절하게 한곳에 모여 있었 네. 어디 이번엔 얼마나 발버둥을 쳐 댈지 확인해 볼까?”
마백풍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고 는 산보하듯 서천회가 뭉쳐 있는 방 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우릴 얕보지 마라.”
모욕감을 느낀 황윤은 붉게 달아오 른 얼굴로 재빨리 허리에 차고 있던 시복에서 열 개의 화살을 꺼내 시위 에 걸었다. 그런 뒤 앞으로 내달리 며 시위를 튕겼다.
시위를 떠난 열 개의 화살은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지르며 마백풍의 전면으로 들이쳤다.
궁일문의 비기, 십연환시였다. 각각의 화살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날아가기에 막기가 여간 까다 로운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백 풍은 세 자루의 검을 빠르게 교차시 켜 십연환시를 가볍게 분쇄했다.
“이번 공격은 제법 매서웠어. 근데 날 만족시키기엔 아직 부족해. 조금 만, 조금만 더 힘을 내 봐.”
마백풍의 두 눈은 광기로 물들었다.
그 광기는 겨우겨우 이성을 유지하 고 있던 관도들을 뒤흔들었고 결국 사고가 터졌다. 벽을 이루고 있던 관도 하나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 나간 것이다.
패황신도라는 중도류를 익힌 천패 도문의 유강이었다.
유강은 악을 내지르듯 수중에 쥐고 있던 묵철도로 마백풍의 미간을 노렸다.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도세였다. 그런데 중도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 게 마백풍은 왼손으로 들어 올린 검 으로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쯧쯧,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 날 더 만족시켜 보라고. 이런 공격은 털끝만큼도 자극이 안 된다니까.”
마백풍의 오른손이 유강의 목덜미 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후두둑 살점이 찢기며 그의 목에서 분수처럼 핏물이 쏟아졌다.
“커, 커억!”
유강이 목덜미를 부여잡고 괴로운 신음을 토해 냈다. 목이 완전히 잘 린 것이 아닌지라 살점이 찢겨 나간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봐, 날 만족시키지 못하니까 검이 제멋대로 움직이잖아. 살고 싶으면 죽을힘을 다해 덤벼 봐. 내 몸에 생 채기를 하나라도 내면 살려 줄 테니 까.”
마백풍의 광기는 점점 도를 더해 갔다.
학사님들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 지? 저 괴물 같은 놈을 상대로는 단 일각도 버텨 내지 못할 것 같은 데.’
황윤은 초조한 얼굴로 복도 너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쾅쾅쾅!
강한 폭음이 연달아 학사관에 울려 퍼졌다.
그 충격으로 창문이 산산이 깨졌고
벽 한쪽은 무너져 내렸다.
“웬 놈들이냐!”
관주 사마무기가 육중한 철환도를 뽑아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사마무기, 벌써 내 얼굴을 잊은 건가? 난 한 번도 당신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는데.”
사마무기의 정면에는 육지환이 서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사마무기는 굳 은 표정으로 한껏 내력을 끌어 올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