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3화 : 황룡 혈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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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13화 : 황룡 혈우 (3)


황룡 혈우 (3)

“시작한다.”

마백풍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관도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 이질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 니 저항해 봐야 죽음을 피할 수 없 다 여긴 것이다.

“이렇게 넋이 빠져 있으면 곤란하 지, 술래잡기의 묘미는 잡힐 듯 잡 히지 않는 추격전에 있는데. 아, 그 럼 이렇게 하지. 일각의 시간 동안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은 그냥 보내 주겠어.”

마백풍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의 말에 절망으로 얼룩졌던 모두 의 얼굴에 미력하게나마 희망의 빛 이 되살아났다. 싸워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하기만 하면 되니 다 들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 다.

‘크큭, 그래, 그렇게 발버둥을 쳐야 밟아 죽이는 맛이 있지. 자, 어서 움직여, 이 심장이 요동치게.’

드디어 죽음의 술래잡기가 시작됐 다.

관도들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사방 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조인창이 흩 어지면 위험하다 외쳤지만 그 말을 듣고 멈춰 선 관도들은 많지 않았 다.

마백풍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흩 어진 관도들의 뒤를 쫓았다. 그의 첫 번째 표적인 된 이는 유명환이었 다.

유명환은 형주유가의 자제로 빠르 고 경쾌한 특징을 갖고 있는 섬룡퇴 의 전수자였다.

섬룡퇴는 한 방, 한 방의 힘은 그 리 강하지 않지만 치고 빠지기에 능 해 쉽게 지는 법이 없었다. 이를 방 증하듯 유명환은 등 뒤에서 들이치 는 마백풍의 검을 현란한 발놀림으 로 빗겨 쳤다.

잠깐이지만 마백풍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을 정도로 그 한 수는 군 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한데 검을 쳐 내고 난 뒤 유명환 의 발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검에 발이 닿는 순간 마백풍이 검의 방향 을 살짝 비틀어 날을 차게 만든 것 이다.

“크윽!”

유명환이 오른쪽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퇴법의 위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매일같이 단련한 발이었지만 적혈검의 예리함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이번 한 수, 제법 훌륭했어! 그에 대한 상으로 깔끔하게 보내 줄게!” 마백풍은 어느 틈엔가 유명환의 뒤를 선점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유명환 은 황급히 왼발을 이용해 신형을 반 대로 튕겼다.

그런데 적혈검은 그가 도망치는 방 향에 미리 자리하고 있었다. 미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던 유명환은 검 에 스스로 제목을 내던지고 말았 다.

서걱.

섬뜩한 파륙음과 함께 유명환의 목 이 잘려 나갔다.

“크크큭, 바로 이 맛에 술래잡기를 한다니까.”

마백풍은 붉은 피를 한껏 뒤집어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조장님, 저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진무관 삼동 이 층에 자리하고 있던 창우대 대원들이 무거운 표정 으로 맹철기를 바라봤다.

눈앞에서 어린 후배들이 잔혹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맘 같아선 당 장에라도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 은 심정이었다.

“우리가 나간다고 해도 결과는 달 라지지 않는다.”

“하, 하지만……”

“정 저 아이들을 구하고 싶거든 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라. 아마, 네 녀석이 땅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마천의 검이 네 몸에 사정없이 꽂힐 것이다.”

맹철기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대원 에게 냉정하게 현실을 주지시켜 줬 다. 하지만 그 대원은 쉽게 물러서 지 않았다.

“조장님, 악 대주님께선 분명 저희 들에게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부탁 한다 하셨습니다. 한데 이렇게 방관 하는 것은 대주님의 뜻에 반하는 행 동입니다.”

“강철후, 여기선 내가 명령권자다! 다시 한 번 그 입으로 대주의 직함 을 거론한다면 그때는 내가 용서하 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조장님께서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혼자라도 나가지요. 하 지만 명심하십시오. 이번 일을 악 대주님이 아시게 된다면 그냥 넘어 가지 않을 겁니다.”

강직한 성품의 강철후는 사나운 표 정으로 맹철기를 바라본 뒤 곧장 창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건방진 놈, 어디 그 알량한 정의 감으로 지옥에서 발버둥 쳐 봐라! 내 이곳에서 똑똑히 지켜봐 줄 테 니!”

맹철기의 눈꼬리에 사납게 힘줄이 돋았다.

그사이 바닥에 착지한 강철후는 술 래잡기에 심취해 있는 마백풍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 마백풍의 시야에 걸려든 이 는 조인창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조인창이 표적이었 던 것은 아니다. 본래 마백풍이 노 렸던 이는 홍문표였다.

한데 홍문표가 마백풍의 검에 당하 려는 찰나 조인창이 끼어들어 그를 밀쳤고 덕분에 조인창은 등판은 붉 게 얼룩졌다. 마백풍의 검을 빗겨 맞으면서 살갗이 길게 찢긴 것이다. 

“친구를 위해 제 몸을 희생한다? 정말 눈물 나는 우정이야. 한데 지 금 네 친구를 봐. 네 덕분에 살아났 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저렇게 꽁 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도망치고 있잖아.”

마백풍이 정신없이 도망치는 홍문 표를 검으로 가리켰다. 조인창은 가 슴이 아팠지만 그 감정을 밖으로 드 러내진 않았다.

“난 저렇게라도 친구가 살 수 있다 면 만족한다.”

“하아, 성인군자 나셨네. 근데 어쩌 지? 난 너 같은 놈들을 보면 베고 싶어 미칠 것 같거든!”

마백풍은 조인창이 자신이 예상했 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자 진한 살기를 뿜어내며 조인창의 전 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번엔 검도 한 자루 더 뽑았다. 시리도록 푸른 빛깔을 머금은 청마검이었다.

그것은 진한 음기를 품고 있는 녀 석으로 살을 베는 것만으로도 상대 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백풍은 장난을 치듯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며 조인창을 압박했다. 천천히 괴롭히다 죽이려는 듯 검이 닿을 찰나에 조금씩 방향을 비틀었 다. 그 때문에 조인창의 얼굴은 거 듭된 정신적 공황으로 하얗게 질렸 다.

“쯧쯧, 이거 완전히 맛이 갔군. 이 래서는 장난을 더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잖아. 이쯤에서 끝내자.”

장난질을 이어 가던 마백풍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청마검에 힘을 실었다. 시퍼런 검기와 함께 청마검이 조인창의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갔 다.

“멈춰라!”

바로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창 한 자루가 난입했다.

창기를 머금은 창두는 맹렬한 기세 로 날아와 조인창의 목을 노리던 청 마검을 옆으로 튕겼다.

이번 공격은 마백풍도 빈틈을 찔렸 는지 검을 옆으로 흘리고 말았다. 덕분에 조인창은 간발의 차이로 목 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거, 이거, 예상 밖의 일이 연이 어 터지는걸. 네놈은 무슨 배짱으로 기어 나온 거지? 여기 오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았을 텐데.”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그럼 죽어.”

감정이 뒤틀렸는지 마백풍이 곧장 강철후에게 달려들었다. 두 자루의 검이 붉고 푸른빛을 뿌리며 맹렬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이에 강철후는 모든 내력을 쥐어짜 내 저항했다. 힘을 아껴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 쏟아 낸 것이 다.

한데 검과 맞닥뜨릴 때마다 팔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현격한 힘의 차이였다.

“빨리 도망 가!”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강철후가 조인창에게 소리쳤다. 하 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여기서 잠 시 벗어난들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 는가.

‘빌어먹을, 이런 때 대주님만 계셨어도….’

강철후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음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결국 힘에 밀 린 철창이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이 미 손바닥은 까지고 터져 피로 얼룩 져 있었다.

“죽어라.”

마백풍은 그대로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며 그의 전면으로 들이쳤다.

이젠 피할 힘도 저항할 힘도 없었 다.

‘대주님, 죄송합니다. 마지막을 함 께하자 약속했었는데, 이 강철후, 내 세에 다시 뵙겠습니다.’

강철후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런 데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을 베어 올 것 같던 마백풍은 뜻밖의 행동을 보 였다. 등 뒤에서 뭐라도 날아오는지 갑자기 신형을 돌려 쌍검을 가슴 어 름에서 교차시킨 것이다.

팅.

검의 교차점에서 미세한 기음과 함 께 황금빛의 물체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전체적으로 몸이 가늘고 끝이 뾰족 한 것이 침처럼 보였다.

‘크윽, 벌써 붉은 호랑이가 달려온건가?”

마백풍이 가늘게 떨리는 손목을 진 정시키며 전면을 주시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저 애송이가 방금 전의 공 격을 선보였단 말인가? 손목이 절절 할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 있었는….’

마백풍의 눈에 비친 얼굴. 그 얼굴 의 주인은 그가 기대했던 적사호가 아니라 설우진이었다.

설우진의 얼굴은 차가운 살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이곳까지 달려오는 길에 관도 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 안에는 철사자회의 식구들도 포함돼 있었 다.

“네놈이냐? 이 난리를 피운 장본인 이.”

설우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물 었다. 한판 제대로 붙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한데, 여기선 내가 대장이야. 근데 넌 정체가 뭐지, 얼굴이나 옷 차림으로 봐선 이곳의 관도 같은 데?”

“여기 관도 맞아.”

“흐음, 너 정도의 실력자가 왜 이 런 곳에서 관도로 있는 거지? 그 정도 실력이면 쌍룡맹에 들어가도 간부 자리 하나는 쉬이 꿰찰 수 있 을 것 같은데.”

마백풍은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방금 전 침을 막을 때 그의 손목 엔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 다. 급하게 반응하느라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 걸 감안하더라도 설우진의 무위는 일개 관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접어 둬, 네놈 은 곧 여기서 뒈질 테니까.”

설우진은 마백풍과의 대화를 일방 적으로 끊고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간격이 좁아지자 지체 없이 천뢰도로 야수감각도를 전개했다.

야수감각도는 궁극적으로 신도합일 을 추구한다. 손에 쥔 칼이 신체 일 부분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전생엔 네놈들의 그 괴물 같은 힘 에 밀려 도망치기 급급했지만 지금 은 상황이 다르다.’

설우진은 벽뢰진천의 뇌기를 실어 천뢰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전생 에 휘둘렀던 천뢰도는 칼끝에 제대 로 힘이 실리지 않아 가벼웠다면, 지금의 천뢰도는 손아귀가 아플 정 도로 묵직했다.

쾅쾅쾅!

천뢰도가 마백풍의 적혈검과 청마검을 세차게 두들겼다. 세 자루의 도검이 맞물릴 때마다 흡수 화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호각지세였다.

공격은 설우진이 주도하고 있지만 마백풍의 수비도 만만치 않았다. 특 히 두 자루의 검을 연속으로 교차시 켜 충격을 감쇄하는 모습은 놀라우 리만치 감각적이었다.

“놀랍군, 놀라워. 스무 살도 안 되 어 보이는 애송이가 날 이 정도까지 몰아붙이다니. 하지만 장난질도 이 쯤에서 끝내자. 진짜가 오고 있는 것 같거든.”

마백풍이 발끝으로 마지막 남은 세 번째 검을 차올렸다. 공중으로 솟구치는 먹빛의 검. 천험의 독지에서 탄생한 흑룡검이었다.

마백풍은 입을 이용해 흑룡검을 문 뒤, 세 자루의 검을 풍차처럼 연환 시켜 설우진의 가슴 한복판으로 파 고들었다.

이에 설우진은 천뢰도를 양손에 쥐 고 단전의 뇌기를 칼끝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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