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20화 : 불협화음 (3)
불협화음 (3)
“무슨 일이시오?”
“저어, 혹시 이곳에 의원이 있습니 까?”
“그건 왜 묻나? 누가 다치기라도 했나?”
“그게 위험한 독에 중독됐습니다. 의원께 진맥을 받아 봐야 할 듯싶은 데, 있다면 누군지 좀 알려 주십시 오.”
설우진은 괴독의가 이곳으로 들어 왔다면 특기인 용독술을 살려 의원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크큭, 많이 괴로운 모양이구나? 하기야 싸면 쌀수록 내기가 빠져나 가는데 그럴 만도 하겠지.”
갑자기 촌장의 태도가 돌변했다. 설우진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고 이내 촌장이 괴독의 본인임을 깨달았다.
“대체 우리한테 왜………?”
“호의를 불의로 되갚은 건 네놈들 이다. 아무 대가 없이 잘 곳까지 내 줬거늘 어찌 제 어미 봉양에 열심인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있느냐!”
“그게 무슨……?”
“모른 척하지 마라. 어제 네놈 일 행 중 하나가 제 어미를 먹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채취한 청년의 천령삼을 강탈해 갔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약초꾼에겐 생명이나 다름없 는 다리까지 망가뜨리려 했다.”
그제야 설우진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의문이 풀려 나가는 기분이 들 었다. 또한 그 원흉이 누구일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이에 설우진은 깔끔하게 잘못을 인 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만일 그가 다른 이였다면 왜 애꿎은 사람까지 괴롭히느냐고 성을 냈을 것이다. 하 지만 상대가 괴독의였기에 꾹 눌러 참았다.
괴독의는 그 별호처럼 강팍한 성격 의 소유자였다.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더 강하게 받아친다는 의미다. 실제 녹림의 한 산채의 사람들이 괴독의와 가벼운 시비가 붙었다가 변독에 줄초상이 났었다. 당시 무공 을 익히지 않은 졸자들을 제외하고 간부급들은 모두 내력을 잃고 폐인 이 됐다고 했다.
‘이 새끼들이 기어코 대형 사고를 쳤네. 뒈지려면 지들끼리 뒈질 것이 지 왜 엉뚱한 곳에 똥물을 튀겨!’
설우진은 북리강의 얼굴을 떠올리 며 이를 갈았다. 언제고 사고를 칠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 지만 이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일단 그의 능력으로는 해결이 불가 능했다. 변독은 일반적인 독과 그 괘를 달리했다. 보통의 독은 뇌기를 이용해 태워버리면 되지만 변독은 독기와 더불어 약기도 품고 있기에 섣불리 건드렸다간 되레 진행 속도 가 빨라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괴독의는 무력으로 상대 하기 까다로운 자였다. 그는 용독술 의 대가로 작정하고 독을 쓴다면 설 우진이 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고 해도 학관의 식구들을 지키며 싸우 기는 힘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분께 보상하겠습 니다. 하니 변독을 해독해 주십시 오.”
“크흠,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 눈 빛을 보아하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 고……………. 좋다. 그럼 반나절의 말미를 줄 테니 황금화리를 구해 와라.”
‘황금화리라면, 온몸이 금빛으로 빛난다는 그 전설의 잉어?’
설우진의 얼굴이 살짝 뒤틀렸다. 황금화리는 강태공들 사이에서 꿈 의 물고기로 불리는 존재였다. 워낙 에 그 모습을 찾기도 어려운 데다 그 손맛이 다른 물고기들과는 비교 도 안 될 정도로 좋아서다.
“부서진 뼈를 붙게 하는 데 황금화리만큼 좋은 게 없다.”
“반나절 만에 어떻게 그걸 구합니 까?”
“마을 입구를 나선 뒤 북쪽으로 달려가면 황하의 지류가 나올 것이다. 황금화리는 물살이 거센 곳을 좋아 하니 요령껏 잡아 와라.”
‘빌어먹을. 황금화리를 돈을 주고 살 수도 없고, 이거 졸지에 강태공 이 되게 생겼네.’
하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의 수는 없었다.
설우진은 황금화리를 낚아 오겠다 고 약속하며 먼저 변독을 해독해 달 라 청했다. 그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고통에 시 달렸다.
괴독의는 흔쾌히 그 청을 들어줬 다. 해독법이라고 해 봐야 손을 아랫배에 가져간 게 전부였지만 그의 손길이 닿기 무섭게 미친 듯이 요동 치던 배 속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 다.
“시간을 잘 지켜라. 반나절 안에 황금화리를 구해 오지 못하면 변독 을 해독한다고 해도 단전이 손상되 어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 다.”
괴독의는 단단히 경고했다. 그의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알기에 설우진은 그길로 곧장 신형을 튕겼 다.
마을을 나선 지 반 시진 만에 설 우진은 괴독의가 얘기했던 황하 지류에 도착했다.
설우진은 주변을 슬쩍 둘러본 뒤 아래로 발걸음을 향했다. 한참 뒤 그의 발걸음이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물줄기 앞에 멈췄다.
그곳은 지류의 방향이 바뀌는 곳이었다.
“제대로 된 도구도 하나 없는데 황 금화리를 어떻게 낚는다?”
설우진은 곰곰이 전생의 기억을 떠 올렸다. 낭인들에게 낚시는 그리 낯 선 작업이 아니었다. 구비한 식량이 떨어지면 으레 가까운 강이나 계곡 을 찾아 물고기를 낚아 올리기 때문 이다.
‘황금화리는 힘이 좋기로 소문난 녀석이야. 어지간한 낚싯대로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할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이 손으로 직접 잡는 게 나 아.
설우진은 바지에서 수실 뭉치와 주 소령에게 선물로 받았던 금황침을 꺼냈다. 그러고는 능숙한 솜씨로 금 황침의 꼬리에 수실을 끼워 넣은 다 음 그 안에 내기를 주입했다.
수실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황금화리의 힘자랑에도 너끈히 버틸 수 있는 강한 몸으로 탈바꿈한 것이 다.
뒤이어 설우진은 근처 수풀로 향했 다. 금황침에 끼울 미끼를 찾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설우진이 득달같이 수풀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허리에서 천뢰도가 번뜩였 다. 천뢰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피가 흩날렸다.
“요 녀석이면 황금화리도 좋아하겠 지.”
설우진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 를 그리며 수풀 한가운데 떨어진 길 쭉한 것을 들어올렸다. 장정 엄지만 한 크기의 뱀이었다. 비늘에 꽃이 핀 것처럼 문양이 나 있는 걸로 봐 서 화사로 짐작됐다.
황금화리는 아름다운 모양새와 달 리 거칠고 포악했고 그에 걸맞게 육 식을 즐겨 했다. 뱀은 황금화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였다.
설우진은 목이 잘려 나간 화사의 몸통에 금황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 다. 그러고는 수실을 통해 내기를 밀어 넣어 금황침을 화사의 몸통에 고정시켰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설우진은 물살 이 심하게 몰아치는 곳으로 금황침 을 내던졌다.
풍덩.
금황침을 머금은 화사가 물에 잠겼 다. 물살이 워낙 세서 그런지 미끼 를 문 것이 아님에도 수실은 안쪽으 로 빨려 들어갔다. 설우진은 수실을 쥔 손에 힘을 줬고 이에 더는 수실 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설우진은 왼손으로 수실을 쥐고 남은 오른손으로 물속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감지했다.
어지간한 물고기는 뱀 미끼에 달려 들지 않을 테니 진동이 전해진다면 그 주인공은 황금화리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이것들이, 네놈들이 싼 건 네놈들 이 직접 치워.”
설우진이 황금화리 낚기에 몰두하 고 있을 때 마을에선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여기저기서 앓는 듯한 신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설우진이 겪었던 변독의 독성은 황 룡 학관의 관도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숲 속을 오가 며 아랫배를 비웠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 변독은 계속해서 토해 내라 압박을 가했다.
마을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그 들을 차가운 눈초리로 외면했다. 촌 장인 괴독의를 통해서 그들이 소산 을 괴롭힌 걸 들은 것이다.
소산은 마을에서 소문난 효자였다. 마을 사람들 중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런 소산이 다리를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다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식한 것들아, 의원 불러오라고, 의원!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의원 불러와!”
그런 와중에도 북리강과 일당은 여 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북리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 르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돈을 내던 졌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분개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바로 그때 괴독의가 분노에 몸을 떠는 청년에게 다가와 얇은 대나무 막대를 하나 건넸다. 청년은 당황스 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흥아, 참으면 병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불알친구인 산이를 병신으 로 만들려고 한 놈이 아니냐. 이 죽 대로는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을 테 니 산이 몫까지 마음껏 후려쳐라.”
“정말 그대로 될까요?”
모흥이 되물었다. 이에 괴독의는 말 대신 죽대를 그의 손에 세게 쥐 였다.
이에 용기백배한 모흥은 북리강에 게 다가섰다. 북리강은 모흥의 손에 쥐인 죽대를 보고 흠칫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매를 들었으니 그 답은 뻔하잖아. 어디 네놈도 산이의 고통을 그대로 느껴 봐!”
휘익. 착!
죽대는 차진 소리를 내며 북리강의 허벅지를 세게 후려쳤다. 북리강은 피하려고 했지만 변독의 후유증으로 몸이 맘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한번 손맛을 본 모흥은 줄기차게 죽대를 휘둘렀다. 그런데 자존심 때 문인지 통증이 꽤 심할 텐데도 북리 강은 신음을 꾹 참았다.
“저대로 둬도 되는 겁니까?”
북리강의 뒤편에서 그의 일당이 불 안한 시선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괜히 쓸데없이 나서지 마. 저 죽 대가 언제 우리한테 돌아올지 몰 라.”
“맞아. 이럴 땐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는 게 최고야.”
평소에는 북리강을 하늘처럼 떠받 들던 이들이었지만 그에게 위기가 닥치자 철저히 외면했다.
‘이 비겁한 자식들! 평소에는 내 앞에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 처럼 굴더니……..?’
북리강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웅크리고 죽대 를 얻어맞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구원자가 나타났다. 자신이 눈엣가 시처럼 여겨 왔던 설우진이었다.
“오호, 용케 시간 내에 잡아 왔구 나. 용왕탄에 서식하는 황금화리는 거칠고 사납기로 유명한데, 대체 무 슨 조화를 부린 게냐?”
“제 놈이 거칠어 봐야 물고기 아닙 니까.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기에 칼 등으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버 렸습니다.”
설우진은 왼손으로 황금화리를 들 어 올려 보였다. 그 크기는 설우진 의 키만 했다.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게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압권인 건 녀석의 이빨이었 다.
마치 사람의 이처럼 튼실했고 특히 먹이를 무는 데 쓰이는 어금니는 검 날을 갈아 놓은 것처럼 날카롭고 예 리했다.
“허허, 이놈, 허풍이 심하구나! 물 속에서 발버둥치는 놈을 어찌 칼등 으로 후려친단 말이냐?”
“왜 못 칩니까? 이렇게 치면 되는 데.”
설우진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고 순 간 도갑에 들어 있던 천뢰도가 쑥 빠져나오더니 이내 괴독의의 면전으 로 날아들었다.
‘이기어도?’
괴독의는 천뢰도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분명 도에는 손에 닿지 않았다. 그 런데 도가 저절로 뽑혀 나와 방향까 지 비틀었다.
이는 이기어도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얼굴에 태가 남아 있는 것이 위 장을 하거나 환골탈태를 거친 것은 아닌 듯한데, 네놈 정체가 뭐냐? -보다시피 황룡 학관의 일개 관돕 니다.
-일개 관도가 이기어도를 펼친다 고?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이기어도는 무슨, 영감님, 벌써 노안이라도 온 겁니까? 잘 보세요, 도병에 뭐가 묶여 있는지.
설우진은 천뢰도를 회수하며 도병 을 흔들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도 병 끝자락에 한 가닥 수실이 매듭져 있었다. 이기어도가 아니라는 확실 한 증거였다.
괴독의는 영 미심쩍었지만 더는 그 일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제때 황금화를 가져왔으니 약속 을 지키마. 독에 중독된 녀석들에게 이걸 먹여라.”
괴독의가 목함 하나를 건넸다. 받 아서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콩알만 한 크기의 단약들이 수북이 쌓여 있 었다.
“이것만 먹으면 멀쩡해지는 겁니 까?”
“이 몸이 손수 배합해 만든 해독단 이다. 평소의 몸 상태에 따라 회복 되는 시간은 조금 차이가 나겠지만 해독이 되는 건 분명하다.”
괴독의는 호언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