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9화 : 장강수로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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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9화 : 장강수로채 (2)


장강수로채 (2)

설우진은 투권의 약점을 정확히 짚 었다.

투권은 수많은 비무를 통해 자신만 의 무리를 개척해 나갔지만 거기에 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바로 내 공의 부재였다.

투권이 익힌 내공심법은 태강공이 었다.

태강공의 태강이란 정사지간의 고 수가 만든 심법으로 설우진이 익힌 벽뢰진천과 마찬가지로 동공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수준은 천양지간이었 다. 같은 기간 동안 수련을 한다고 했을 때 태강공으로 얻을 수 있는 내력의 양은 벽뢰진천의 일 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축기의 효율 이 떨어졌다.

“너란 녀석은 참 복도 많구나, 부 잣집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도 모자 라 천하를 위진시킬 내공심법까지 얻다니.”

궁악비는 부러운 눈초리로 설우진 을 바라봤다.

한때는 그도 낭인이라는 한계를 뛰 어넘어 천하일절의 고수가 되고자 했다. 한데 빈약한 내공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가 익힌 심법은 투권이 익힌 태 강공보다 그 수준이 떨어졌다. 자신 에게 부법을 전수해 줬던 사부가 아 예 심법을 몰라 돈을 주고 심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절정 수준까지는 그 허술한 심법으로 무공을 전개하는 데 큰 문 제가 없었다. 그런데 절정의 벽을 넘어서자 소모되는 내공의 양이 급 격하게 늘어났다.

무수한 실전을 통해 소모되는 내공 의 양을 최소화했지만 같은 급의 고 수에게는 그 방법이 통하질 않았다. 

“그런 눈으로 쳐다볼 것 없습니다. 사실 이 심법만 욕심내지 않았어도 이리 고생스럽게 뛰어다닐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설우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분명 벽뢰진천은 전생에 누리지 못 했던 막강한 내공을 안겨 줬다. 하 지만 그 반대급부도 분명 존재했다. 그건 바로 마천 쟁투라는 위험한 전 쟁에 다시 한 번 자의반 타의 반 으로 끼게 된 것이다.

‘그때 벽뢰진천에 욕심내지 않았다 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벌이는 좀 못해도 마음은 편했겠지.’

마음 한 구석에 슬쩍 후회가 밀려 들었다.


드르릉.

달도 기우는 늦은 밤, 우렁차게 터 져 나오는 코골이에 합창하듯 울려 퍼지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깡그 리 묻혔다.

그 코골이의 주인공은 궁악비였다. 그는 요리가 나오자마자 걸신들린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특히 칠어육 선은 그가 손을 대기 무섭게 사라졌 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이번 엔 술까지 욕심을 냈다.

설우진은 인상을 쓰면서도 그에게 술을 내줬다.

궁악비는 술도 참 게걸스럽게 마셔 댔다.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보다 입 밖으로 새는 게 더 많아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열 병을 비웠고 취기 가 오르는지 눈이 반쯤 돌아갔다. 보다 못한 설우진이 젓가락으로 그 의 수혈을 격타했다. 한데 어찌나 몸이 단단한지 쉬이 잠들지 않았다. 결국 설우진은 내던지는 젓가락에 뇌기를 실었다. 이에 궁악비도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하, 저 인간을 데려가는 게 좋 은 선택인지 모르겠네.’

설우진은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는 궁악비를 보고 술을 들이켰다.

향이 좋은 고급 술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쓰게만 느껴졌다.

“크윽.”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침상에 누워 있던 투권이 가슴을 움켜쥔 채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어났으면 이쪽으로 오쇼.”

설우진이 투권을 불렀다.

‘저자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건가?”

투권은 설우진의 얼굴에 혼란스러 워하면서도 침상에서 내려와 식탁으 로 향했다. 식탁에는 궁악비가 남겨 놓은 잔해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 었다.

“한잔 받으쇼.”

설우진이 빈 술잔을 내밀었다. 투 권은 엉겁결에 잔을 받아들고 빤히 설우진을 쳐다봤다.

그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눈에 힘 좀 푸쇼, 당신한테 해코 지를 하려고 했으면 진즉에 저장강 에 내던져 버렸을 테니.”

“그럼 왜 날 이곳에……?”

“그냥 얘기가 듣고 싶었소, 투권이 란 이름으로 명망 높은 사내가 왜 사파 놈들의 작당질에 끼게 된 것인 지.”

설우진이 에둘러 물었다. 궁금한 건 권왕의 근황이었지만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그걸 물을 순 없으니 일단 의례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투권은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이다 가 이내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어렵게 입을 뗐다.

“이런 말을 하면 구차하다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내겐 오 년 전에 받 아들인 제자가 하나 있네. 무재가 아주 남다른 아이지.”

‘호오, 권왕 녀석을 얘기하는 건 가?”

설우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 다.

“하면 그 제자 때문에 이번 일에 끼게 된 거요?”

“맞네. 그 아인 태생적으로 몸이 약하네. 조금만 찬 바람을 쐐도 고뿔에 걸려 며칠을 앓을 정도지.”

‘그 괴물 같은 놈이 고뿔에 끙끙 앓았다고?”

설우진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권왕은 여포봉선을 연상케 하는 육중한 체구의 사내였 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강철 같은 몸의 소유 자인데 몸이 약해서 고뿔에 끙끙 앓 았다니 도무지 두 귀로 듣고도 믿기 지 않았다.

그사이 투권의 말이 이어졌다. “난 병약한 제자를 위해 수년 동안 양기가 강한 영물을 쫓아다녔네. 한 데 쉽지가 않더군. 그런 차에 최근 혈사보에서 사람이 찾아왔네. 그리 고 열옥환을 대가로 지불하겠다며 내게 손을 내밀더군.”

‘오호라, 이제야 알겠군, 놈이 어떻게 그 괴물 같은 몸뚱이를 가지게 된 것인지.’

열옥환이란 이름을 듣고 설우진은 반색했다.

낭왕 시절 그는 권왕 앞에서 서면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그 원 인은 권왕의 몸에 있었다.

권왕은 모든 것이 컸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사내의 상징인 거기까지. 한데 오늘 그 사기 같은 몸의 비 밀을 알게 됐다.

열옥환은 사파일문인 마환문의 비 전이다. 마환문은 정도를 대표하는 약선문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연 단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마환문이 만들어 내는 약은 효능이 뛰어난 대신에 소소한 부작 용을 안고 있었다. 이는 열옥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한꺼번에 양기가 주입됨으로써 몸의 성장을 촉진시켰 다.

그게 무슨 부작용이냐고 반문할지 도 모르겠지만 열옥환을 찾는 이들 은 대다수가 여인이었다.

“그럼 열옥환을 손에 넣을 때까진 놈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거요?” 

“제자가 튼튼한 몸을 가질 수만 있 다면 그깟 오명쯤은 얼마든지 뒤집 어쓸 수 있네.”

투권이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가만, 양기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영약이 열옥환뿐인 건 아니잖아. 분명 약선문에도 그에 준하는 약이 있 는 걸로 아는데.’

설우진은 투권이 탐났다. 그는 권 왕 못지않은 실력에 향후 권왕의 자 리에 오를 제자까지 두고 있다. 그 사실을 몰랐으면 모르지만 알고 있 는 이상 이대로 혈사보로 돌려보낼 순 없었다.

설우진은 즉시 제안했다. 열옥환에 버금가는 영약을 내줄 터이니 날 따 라오라고.

당연히 투권은 의심부터 했다.

“무슨 수로 약을 구한단 말인가?”

“천금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투권은 좀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강하다. 게다가 그 곁에는 무위를 짐작키 어려운 고수 까지 붙어 있다. 한데 왜 이리 자신 에게 열을 내는 것인지 도통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하기야, 나 라도 저 입장이었다면 그랬을 테지. 하지만 이미 당신은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들었어. 내 허락 없인 절 대 못 벗어나.’

설우진은 투권을 납득시키기 위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마천의 이름이 언급되자 투권은 적 잖이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정말 마천과 척을 졌단 말인가?”

“그렇소.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저기 누워 자고 있는 낭왕을 깨워 물어보면 될 거요.”

‘저 노인이 낭왕이라고…………?”

투권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궁악비를 쳐다봤다. 그리고 자연스 럽게 시선이 허리로 향했다. 그가 들은 바로 당대 낭왕은 핏빛 혈부를 차고 다닌다고 했다.

잠시 후 그의 두 눈이 파르르 떨 렸다. 허리에 걸려 있는 핏빛 혈부 를 본 것이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요. 다만 혈사 보가 당신과의 약속을 지킬지는 잘 생각해 보쇼.”

설우진이 은근히 혈사보를 끌어들였다. 혈사보가 사파의 명문이라곤 하나 결국엔 그들도 사파였다. 사파 는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공 인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길 수 있는 집단이다.

이번 쌍룡맹에서의 행보만 봐도 그 랬다. 물론 전생의 혈사보는 투권과 의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약속이 지켜지기 한참 전이다. 

“정말 자네를 따라가면 약을 주는 겐가?”

투권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작전이 주효했다는 증거였다. 이에 설우진은 쐐기를 박기 위해 보다 파 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원한다면 바로 약을 구해다 줄 수도 있소.”

“그게 가능하겠는가?”

“회로 돌아가기 전에 미리 서한을 보낸다면 가능할 거요.”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무 한에는 약선문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의방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을 통한 다면 회에 도착할 때쯤 약을 받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언제 약을 내줄지 모르는 혈사보보다는 이쪽이 더 믿음이 가. 기아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이 사 부가 반드시 널 건강하게 만들어 주 마.’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숙고 끝에 투권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설우진은 반색하며 잔 을 채웠다.

“앞으로 잘해 봅시다. 오늘의 이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될 거 요.”

두 사람은 건배를 나눴다. 그사이 장강 너머로 아스라이 해가 고개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기다릴 참이 냐?”

“네놈 때문에 사흘 넘게 계집의 속 살은 만져 보지도 못했다.”

“오늘까지 기다려도 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군사의 명령이고 나발이고 내 너의 목부터 뽑아 버릴 것이다.”

지강의 관도에 일단의 무리가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사마중달의 명으로 하우연 을 따라온 귀마들이었다.

하우연은 귀마들이 여과 없이 내뿜 는 마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뗐 다.

“다들 자중하시지요. 우린 지금 천 주님의 명을 따르는 중입니다.” 

하우연은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 는 귀마들이 골치 아팠지만 그들은 마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힘을 갖 추고 있었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은 숙이고 들어가야 했 다.

“우리가 지금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것 같으냐! 네놈이 이틀 전에 얘길 했지 않느냐, 놈이 이곳을 지날 거 라고. 한데 사흘이 넘도록 놈은 코 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 

“그, 그것은……”

하우도 그 부분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분명 흑 랑사자가 전해 온 정보에는 의창에 서 내렸다고 했다. 해서 의창과 육 로로 이어져 있는 지강에 귀마들과 매복했었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네놈이 부리는 그 시커먼 놈이 요 며칠 모습이 보이질 않던데, 혹시 그놈이 우리가 이곳에 매복해 있다는 걸 알린 거 아니냐?”

이곳에 있는 귀마들 중 가장 서열 이 높은 고수태가 흑랑사자를 언급 했다.

고수태는 한 마리 사자처럼 치렁하 게 기른 머리에 피처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익힌 혈수마공의 영향이었다.

혈수마공은 자신의 피를 제물로 보 다 강한 위력의 마공을 발현한다. 대신 부족해진 피를 다시 채워 넣어 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흡혈을 해야 했다.

섬뜩하게 빛나는 고수태의 혈안과 마주한 하우연은 요동치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어렵게 답했다.

“흑랑사자의 은신술은 천내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 납니다. 흑랑사자가 작정하고 나서 지 않는 이상 놈들이 그 존재를 알 아챌 리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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