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8권 – 13화 : 수귀, 낚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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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8권 – 13화 : 수귀, 낚다 (2)


수귀, 낚다 (2)

장강의 귀신인 수귀만 손에 넣으면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마천의 위협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음, 자네 말도 분명 일리는 있네 만 무슨 수로 수귀를 잡을 참인가? 같은 수적들도 혀를 내두르는 판 에.”

설우진의 의도는 이해했지만 그 방 법에 대해선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궁악비였다.

그들이 타고 가는 배는 상선이다.

그러니 당연히 수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목가유를 미끼로 써서 수귀를 끌어낸들 잡을 수단이 없다는 말 이다.

한데 설우진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 다, 맘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수귀를 잡을 수 있는 사람처럼.

대체 그가 믿고 있는 바는 뭘까.


촤악촤악.

요란하게 일렁이는 장강의 물결. 그 위에 배 한 대가 유유히 떠 있 었다.

주변에 휘감고 도는 물결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좌초돼 물속에 파묻힐 것 같은데 배는 용케 균형을 유지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배의 선수, 그러니까 앞 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용머리 위에 는 상의를 시원하게 풀어 헤친 중년 의 사내가 입에 담뱃잎을 물고 팔자 좋게 누워 있었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아래로 떨어 질 텐데 그의 얼굴엔 긴장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끼익끼익.

요란하게 울려 대는 선수 갑판. 두 명의 사내가 용머리 쪽으로 다가왔 다. 중년 사내에게 볼일이 있는 듯 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우락부락한 인상 의 사내였다. 험한 뱃일로 몸이 단련이 된 것인지 양쪽 팔뚝이 거의 사내애 몸통만 했다.

“형님, 정말 계속 이렇게 버틸 거 유? 이러다가 놈들이 떼로 몰려오기 라도 하면 어쩔 거유?”

“두발아, 이 형님 낮잠 자는 거 안 보이냐? 네놈이 뭐라 해도 내 생각 은 바뀌지 않으니 그만 쫑알대고 안 으로 들어가서 잠이나 자.”

“씨발, 잠이 오게 생겼소? 이달에 만 벌써 세 번이나 놈들과 수전을 치렀소. 신룡탄의 험한 물길을 활용 한 덕분에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 지만 이대로 가다간 분명 이놈의 배 가 신룡탄 밑으로 가라앉을 말 거 유.”

고두발이 목청을 높였다. 그는 눈 앞의 중년 사내, 그러니까 용문걸이 두령으로 있는 노도채의 부두령이었 다.

뭐, 말이 좋아 부두령이지 실제로 는 용문걸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하 는 가련한 신세였다.

“우리 두발이, 나이를 먹더니 겁만 많아졌구나.”

“겁먹은 게 아니라 현실을 얘기하 는 거유. 우리 이쯤에서 놈들이 내 민 손을 잡읍시다. 그때 총채주 자 리는 형님 몫이라 하지 않았소.”

고두발은 며칠째 용문걸에게 새로이 만들어지는 장강 수로채에 합류하자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문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원 군사, 멀뚱히 쳐다만 보지 말 고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내 말은 귓등으로 안 듣는 양반이 그래 도 군사 말은 좀 듣잖아.”

고두발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원상을 끌어들였다.

원상은 낙방학사 출신으로 뜻하지 않게 노도채에 합류하게 된 인사였 다.

당연히 무공이라곤 간단한 호신공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하지 만 노도채의 수전 능력은 그의 몫이 절반이라고 할 정도로 전략을 짜내 는 머리가 탁월했다.

“부두령님, 두령님이 이리 완고한 태도를 보이시는 데에는 분명 합당 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합당한 이유는 개뿔, 또 그놈의 잘난 자존심 때문이겠지.”

“두발아, 어째 말이 좀 심하다. 그 래도 내가 명색히 두령인데 기본적 인 예의는 지켜야지.”

“니미럴, 우리가 언제부터 그따위 것을 지켰다고. 어디 진짜 이유가 들어 봅시다. 대체 이렇게까지 똥고 집을 부리는 이유가 뭐요?”

고두발이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 히며 물었다.

용문걸은 새로 주머니에서 꺼낸 담 뱃잎을 말아 쥐며 대화를 이었다.

“두발아, 넌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뭘 고르겠냐?”

“….그야, 꼬리보다는 머리가 낫지 않겠소?”

“그래. 내가 놈들의 손길을 뿌리친 건 바로 그 이유다. 우릴 찾아왔던 그놈들은 이미 말 잘 듣는 개가 되 어 있었다. 굴복에 길들여진 게지.” 

“그럼 놈들이 우릴 찾아온 이유 ……?”

“자기들과 똑같은 개가 되라는 거 지. 난 당장에 칼을 맞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용의 꼬리를 보고 짖어 대 는 개 따윈 되고 싶지 않다.”

용문걸이 전에 없이 굳은 표정으로 불붙은 담뱃잎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고두발의 반응이 영 신통찮 았다. 그의 심경 고백에 감동을 하 기는커녕 되레 심통 맞은 표정으로 눈에 쌍심지를 켰다.

“거 재밌소?”

“……티 났냐?”

“장난질도 한두 번 해야 속아 넘어가지. 머리를 장식으로 돌아다니는 바보로 아는 거유!”

고두발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또 시작인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원상 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봐 온 노도채는 격의가 없었 다. 노잡이를 하는 식구들도 두령인 용문걸에게 자연스럽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일 정도였다.

노도채에서 유일하게 격의를 지키 는 건 군사인 그뿐이었다.

뿌웅.

그렇게 두 사람의 실랑이가 격화될 즈음 갑자기 돛대 위에서 요란한 나 팔 소리가 길게 한 번 울려 퍼졌다. 근처에 배가 나타났다는 신호다.

이에 언제 다퉜냐는 듯 고두발과 용문걸이 배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시나 타를 잡은 건 용문걸이었다.

“거 보슈, 또 왔잖소.”

조타실 안에서 고두발이 투덜거렸다. 용문걸도 이번엔 할 말이 없는지 묵묵히 타만 움직였다.

잠시 후 맞은편에서 네 척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우진이 타고 있 던 상선과 목가유가 끌고 온 세척 의 군선이었다.

‘응? 저것들 뭐지? 왜 상선을 이리 로 끌고 오는 거지? 우리한테 뇌물 로 바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망원경을 통해 전방을 바라보던 용 문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 로 읊조렸다.

이건 그간에 장강 수로채가 보여 줬던 모습이 아니었다, 군선을 더 끌고 와도 모자랄 판에 상선이라니.

“이건 정말 미친 짓입니다. 그간 놈들의 행태로 봤을 때, 신룡탄에 들어서기 무섭게 화포를 날려댈 겁니다.”

설우진이 상선을 선두로 내세우자 목가유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장강수로채가 운영하고 있는 군선 과 달리 상선은 덩치가 크고 무거워 서 화포 공격에 무척 취약했다.

한데 그 상선을 끌고 신룡탄 안으 로 들어가겠다니 그의 상식에서 도 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자는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은 자야. 그리고 뭣보다 재물에 약하지. 눈앞에 이리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있으니 물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설우진이 웃으며 목가유를 앞으로 떠밀었다. 목가유는 당장에라도 물 속으로 뛰어들고픈 심정이었지만 신 룡탄의 거센 물결이 자꾸만 눈에 걸 렸다.

결국 그는 설우진이 시키는 대로 미끼가 되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청호채의 목가유가 노도채의 채주 를 뵙기를 청하오. 만남을 수락한다 면 백기를 세 번 흔들어 주시오.” 

잠시 양 진영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가유의 얼 굴은 점점 사색으로 변해 갔다.

그렇게 반 각여의 시간이 흘렀을 까, 노도채의 배에서 백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정확히 세 번 흔들렸다. 

‘이게 통해?’

목가유는 어이가 없었다. 그간에 몇 번이나 노도채주를 설득하기 위 해 신룡탄을 찾았지만 이런 긍정적 인 반응은 처음이었다.

촤아악.

신룡탄 위로 상선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상선에는 노잡이들만 남아 있었다. 해서 갑판 위에는 설우진과 궁악비, 목가유 셋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원상아, 저걸 어찌 받아들여야 되 냐?”

“흠, 제 짐작으론 그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변수가 생긴 듯합니다.”

“지금 시점에서의 변수라면 마천과 쌍룡맹의 전면전?”

“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별다른 움 직임이 없었는데………….”

원상의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용문 걸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 다.

그사이 두 배의 간격이 삼장 가 까이 좁혀졌다. 작정하고 경공술을 발휘하면 상대의 배로 뛰어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용문걸을 비롯 한 노도채의 식구들은 설우진 일행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쳐들어가지는 않으시겠죠? 분명 다른 복안이 있을 거 라고 믿습니다.

눈앞에 노도채의 핵심 인사들이 보 이기 시작하자 목가유가 긴장된 표 정으로 설우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기대였다. 설우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도 채의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뒤이어 궁악비도 거친 욕을 지껄이 며 그 뒤를 쫓았다.

‘빌어먹을, 이 상황에서 상선을 되 돌려 달아날 수도 없고.’

목가유는 두 사람의 등판을 보면서 수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타타닥.

공중에서 세 개의 신형이 연달아 떨어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부 두령인 고두발이었다.

그는 뱃전에 널브러져 있던 강철 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강철 노는 끝이 뭉툭하고 재질이 무거워 병기 로서의 효용이 많이 떨어졌지만 고 두발의 손에 들리자 엄청난 위압감 을 자아냈다.

그리고 뒤이어 소란을 접한 노도채 의 무사들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숫자는 서른 남짓으로 다른 수로채 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지만 그 하나하나가 뿜어 대는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설우진 일행을 포 위했다.

목가유는 퇴로가 막히는 걸 막기 위해 다급히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한데 굵직한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 았다.

-가만있어, 아직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나눠 봤는데 칼부림부터 할 순 없잖아.

-지금 분위기에 대화가 통할 것 같습니까?

-통하게 만들어야지. 하니 내가 따 로 지시를 내리기 전까진 얌전히 있 어.

설우진은 목가유를 제지하며 용문걸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췄다.

‘저 노인네가 대장인 줄 알았더니 실세는 이 녀석이었군. 한데 장강 수로채에 언제 이런 놈이 들어온 거 지?’

용문걸은 한눈에 설우진의 비범함 을 알아챘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의구심을 풀기 위해 직설적으로 물 었다.

“네놈, 정체가 뭐냐?”

“그쪽을 낚으러 온 사람.”

“후훗,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재밌는 놈이군. 그래, 날 어떻게 낚을 거지?”

“당신한테 사업을 하나 제안할까 해. 많은 돈을 안겨 줄 획기적인 사업이지.”

설우진이 핵심적인 단어를 언급했다.

돈.

그가 아는 노도채주 용문걸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선의로 구한 줄 알았던 낭인들에게 냉정하게 목 숨값을 정해 청구할 정도였다.

때문에 설우진은 마천 쟁투가 끝난 이후에 한동안 노도채에 돈을 갚아 야 했다. 그 액수는 자그마치 금전 스무 냥이었다.

“일단 얘기나 들어 보지. 원상아, 술상 좀 내와라.”

용문걸은 설우진의 제안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원상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 로 향했다. 하지만 고두발은 제자리 를 고수했다. 부두령의 역할은 적으 로부터 두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 다.

한데 이놈의 빌어먹을 두령이 자신 의 손에서 강철노를 빼앗아 갔다. 안 뺏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 없었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인상 과 달리 두령은 강했다.

“젠장, 정말 이러기유?”

“인마, 사방에서 살기가 풀풀 날리 는데 술맛이 나겠냐! 너만 남고 애 들은 모두 안으로 내려 보내.”

“그러다 저놈들이 공격하면 어쩔거유?”

“그땐 네가 몸을 날려서 막아 내야지. 그러라고 있는 게 부두령 아니 냐!”

‘아휴, 내가 저 인간이 뭐가 좋다 고 따라와서 이 고생인지.’

고두발은 용문걸의 뻔뻔스러운 태 도에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원상이 술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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