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12화 : 새로운 날개를 얻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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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12화 : 새로운 날개를 얻다 (3)


새로운 날개를 얻다 (3)

“싸우기 싫은 놈들은 빠져도 된다, 억지로 데려가 봐야 걸림돌만 될 테 니. 대신 이거 하나만 스스로에게 물어라, 저승에 가서 형님의 얼굴을 보고 떳떳할 수 있겠는지.”

고광호는 낭왕루의 식구들에게 선 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들의 마음을 거침없이 뒤흔들었 다.

그리고 얼마 후, 일전에 낭왕루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위세호가 앞으로 나섰다.

“마천, 때려잡는 데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후회하지 않겠느냐?”

고광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저 재수 없는 놈도 낭왕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선 마당에 제가 빠질 수 는 없는 노릇이지요.”

위세호가 설우진을 잡아먹을 듯 노 려보며 답했다.

‘저놈은 아직도 나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겠어.’

설우진은 위세호의 적의 어린 시선 에 인상을 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흐뭇해했다.

위세호가 나섬으로써 결정을 망설 이던 낭인들이 대거 함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말 다들 후회하지 않겠느냐?” 

고광호가 재차 물었지만 답은 같았 다. 그만큼 현역으로 뛰고 있는 낭 인들에게 궁악비는 아버지 같은 존 재였다.

위세호 덕분에 낭인들을 고용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설우진은 고광호에게 낭인들의 수 준별로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했 다. 위험한 일이니만큼 보수는 상당 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느냐? 단순히 정면을 치는 건 별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계약이 체결되고 난 후, 고광호는 설우진과 독대했다.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설우진은 팽천호와 나누었던 얘기 를 그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러니까, 우리 보고 후방에서 놈 들의 보급로를 끊어라?”

“그래. 아무래도 후방은 무사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테니 머 릿수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야.”

“과연 그 정도로 마천이 무너질까?”

고광호는 반신반의했다.

보급로를 일시적으로 끊는다고 해도 마천이 주력을 투입하면 쉽게 회 복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단순히 보급로를 끊는 것만으로 마천이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 하지 만 후방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난전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설우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승자가 없는 전쟁을 만들고자 했다.

쌍룡맹과 마천, 역천회가 뒤엉켜 서로의 살을 갉아먹는 그런 난장판 을.

황유하와 적사호의 세력만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

고광호는 따로 기별하겠다는 얘길 듣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나간 지 얼마 안 돼 또 다른 손님이 설우진을 찾아왔다. 손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침울한 표정의 조인창이었 다.

“표정을 보아하니……… 녀석을 찾지 못한 모양이구나?”

“으응. 아무래도 마천이 데려간 것 같아.”

조인창은 사흘 전, 설우진과 재회 한 뒤 철사자회의 변고를 그대로 전했다.

설가장에 일이 났을 때부터 설우진 은 철사자회에도 화가 미쳤을 것이 라 직감했다. 마천이 자신과 연관된 곳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우진은 조인창을 다시 철 사자회로 보냈고 역시나 불길한 예 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조인창이 철사자회에 도착했을 때 남아 있는 건 피에 찌든 시체들뿐이 었다.

한데 유일하게 남궁벽의 시체만 보 이질 않았다.

장원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발견한 건 평소 남궁벽이 애용하던 한 자루의 철검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벽이를 살 려서 데려간 걸 보면 분명 다른 목 적이 있는 듯한데.”

“일단은 연락이 오길 기다려야지.” 

“연락이 오면?”

“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야지.”

“함정이 있을 게 뻔한데?”

“나 때문에 녀석을 죽게 만들 순 없잖아. 대신 나도 그냥 가지는 않 을 거야.”

“다른 복안이 있는 거야?”

“응. 생각한 대로 그것을 얻기만 하면 벽이를 구하는 건 물론이고 함 정을 만든 놈들까지 다 때려잡을 수있어.”

설우진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답했다.

과연 그가 생각하는 복안은 무엇일까?


“크으윽.”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살덩이. 철마들에 의해 황룡 학관으로 끌려 온 남궁벽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 설우진에 대한 분풀이를 친구인 그 에게 한 것이다.

때문에 그의 몸은 너덜너덜해졌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끼익.

그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횃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며 다가왔다.

남궁벽을 이 꼴로 만드는 데 결정적 인 역할을 한 사마중달이었다.

“많이 고통스러운가 보군?”

사마중달이 몸을 수그려 횃불을 남궁벽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네, 네놈은 누구냐?”

남궁벽은 갑자기 빛이 들어와 밝아 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잠시 후, 횃불 너머에서 소리가 들 려왔다. 크지 않음에도 묵직한 무게 감이 전해지는 목소리였다.

“난 천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마중달이라고 한다. 널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한 장본인이기도 하 지.”

순간 남궁벽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 렸다.

마천의 인사가 곧 자신을 찾아올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 다. 한데 그 인사가 설마 이런 거물 일 줄이야………….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뿐이 니.”

“크큭, 맘만 먹으면 세상에 알아내 지 못할 게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 내게 뭘 묻겠다는 거지?”

남궁벽이 날선 반응을 보였다. 

“설우진, 그놈에 대해서 얘기해 봐 라. 아주 사소한 버릇이라도 좋다.” 

“역시 그 녀석 때문에 이 사달을 벌인 거였군?”

“그래. 처음엔 재주 많은 후기지수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다. 한데 날이 갈수록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잦아지더군.”

사마중달이 담담하게 설우진에 대 한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실패를 모르던 사내였다. 젊은 시절부터 유망한 인재로 주변 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그 이후 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군사라는 지 고한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한데 설우진이 나타나면서 탄탄대 로를 걷던 그의 인생이 조금씩 뒤틀 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로 인해 천 내에서 그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 다. 군사직에 오를 당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인재들을 모두 쳐 내버 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중달은 실패 그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 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종국에 이 르러 설우진에 대한 살의로 변질됐 다.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놈 을 죽일 것이다. 널 이곳에 데려온 것도 그 일환이지.”

“흥, 그렇다면 쓸데없는 짓을 한 거다. 녀석과 나는 뜻이 맞아 함께 움직였을 뿐, 생각하는 것처럼 막역 한 사이가 아니다.”

남궁벽은 설우진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친우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 군. 강호의 선배로서 보기가 참 좋 아.”

사마중달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남궁벽을 만나 보기 전까지 그는 한 가닥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우진은 대인 관계가 그리 좋은 편 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또래의 친구들을 대할 때 마 치수하 부리듯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해서 남궁벽과의 관계도 그 범주 안에 드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남궁벽이 하는 말을 듣고 확신했다, 둘의 사이는 그 범주를 벗어났음을.

“조만간 이곳으로 네 친우를 데려 오마. 아마 지금의 네 모습을 본다 면 무척이나 가슴 아파할 테지. 그 때까지 몸조리 잘하고 있어라.”

원하는 답을 얻어낸 사마중달은 뒤 도 돌아보지 않고 밀실을 빠져나갔 다.

“설우진, 절대 놈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 내 말을 무시하고 이곳에 찾 아온다면 그때는 네놈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남궁벽은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읊조리듯 말했다.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수많은 기 암절벽들.

한데 특이하게도 절벽의 색이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홍조를 머 금은 것처럼.

“저곳이 적월봉인가?”

절벽이 올려다 보이는 구릉에 보이 는 낯익은 얼굴은 나흘 전 이른 새 벽에 은밀히 설가장을 나선 설우진 이다.

그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 다.

마천과의 생사대전에 앞서 자신의 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함이다.

분명 그가 익힌 벽뢰진천은 강하다.

시간을 두고 꾸준히 익힌다면 천하 제일인의 자리도 넘볼 수 있을 정도 였다.

하지만 그에겐 시간이 없었다. 

‘당시에 차준경은 천신동에서 천신 의 무서와 신왕단을 얻었다고 했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천신의 무서보 다는 천왕이야. 그것만 얻으면 벽뢰 진천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 

설우진은 천신동에서 신왕단을 얻 고자 했다. 신왕단은 천신 담천월이 약왕문에 의뢰해 만든 천고의 신단으로 복용하면 일거에 오 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얻을 수 있다.

설우진이 그간 쌓은 내공은 적지 않았다. 처음 봉뢰동에서 뇌정을 복 용해 일 갑자가 넘는 내공을 얻었 고, 이후 혈옥불을 통해서 꾸준히 그 양을 늘렸다. 해서 지금 설우진 의 내공은 삼 갑자가 조금 넘는 수 준이었다.

그 정도면 대문파의 장급들과 비교 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설우진은 마천과의 거듭된 충돌을 통해 자신이 지닌 한계를 명 확히 인식했다.

그는 혼자다.

철사자회를 기반으로 세를 키우려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이뤄 내기도 전에 마천에 의해 그 의도가 꺾여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수천을 헤아 리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마천과 맞서야 한다.

삼 갑자의 내공이 적은 건 아니지 만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선 보 다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태산을 찾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단 천신동부터 찾자.’

설우진은 무작정 적월봉의 가파른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도 천신동이 적월봉에 있다는 것 만 알 뿐 그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설우진은 날다람쥐처럼 깎아지르는 절벽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적월 봉의 크기가 상당했기에 입구를 찾 는 데만 꼬박 반나절이 소요됐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우 여곡절 끝에 천신동의 입구로 짐작 되는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설우진은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절벽에 나 있는 동굴치고는 크기가 상당했다. 절반쯤 안으로 걸어 들어 가자문이 나왔다.

두꺼운 철문이었는데 그 한가운데 열쇠를 꽂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설마 열쇠로 여는데 함정이 발동 하지는 않겠지?’

설우진은 문을 주시하다 이내 목에 걸고 다니던 천신동의 열쇠를 구멍 에 끼워 넣었다. 열쇠는 제 집을 찾 은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드르륵.

열쇠를 가볍게 옆으로 돌리자 문이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설우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위를 주시하 며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기우였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문은 얌전히 열렸다. 애당초 함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천신동의 내부는 검박했다.

싸움밖에 몰랐던 자답게 방 한가운데 청동 인형이 세워져 있고 수련에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다채로운 형태의 병장기들이 그 주위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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