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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48화


예언자가 바이서스의 파멸에 앞서 예언한 몇 가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예언들이 모두 적중했을 때 바이서스 사람들의 불안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거의 국가 와해 분위기 비슷한 것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죠. 그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다른 예언자를 찾아 반대되는 예 언을 하게 하는 수법 같은 건 사실 거론하기도 창피스럽지만 바이서스 정부는 그런 서툰 시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헌신적이고 능력 좋은 배우들만 있 으면 예언자를 만들어내는 거야 가능하긴 하지요. 일어날 거라고 한 일을 일어나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조작이 탄로 났을 땐 어떻게 될까요?

바이서스 정부로서는 정말 곤혹스럽게도 그들의 계략은 가짜 예언자의 양심선언이라는 극적인 방식으로 탄로 나고 말았습니다. 국가의 공중분해가 가시권에 들어온 긴박한 상황에서 바이서스의 지도부는 그들이 대단히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더 이상의 장난질을 하지 않기로 했 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지지라는 예금 잔고를 가지고 계속 도박을 하다간 막상 수익성 확실한 장사를 하려 할 때 밑천이 부족해서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아실만한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정도의 결단을 할 수 있는 정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둘째, 왕비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어린 왕자를 앞으로 내밀며 외쳤지요.

‘나의 백성들이여, 내 아기를 지켜주오!’

원시적이지만 그래서 생명력 충만한 요청이었지요. 게다가 그것은 바이서스 인들의 전통적인 기사도 정신을 자극하는 탄원이기도 했어요. 결국 결 행 날짜만 기다리던 폭동이나 대규모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몇몇 치안 담당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요.

엄청나게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국민의 지지를 약간이나마 남기는 데 성공한 바이서스는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여러 가지 사업에 분산 투자를 할 수야 없었지요. 한 번에 끝을 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 처음부터 뻔한 것이었죠. 결정된 미래가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시에프리 너를 공격하는 것이었지요. 시에프리너에게 아이를 포기해 달라고 요청할 수야 없지 않겠어요. 예언자가 지적한 전선의 확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 해 바이서스 정부는 카르엔 드래고니안으로 막대한 보물과 함께 중립 요청을 보냈어요.

‘이것은 시에프리너와 바이서스의 문제다. 당신과 우리 사이의 오랜 우정 같은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겠다(멋지군요. 한 때 드래곤 라자가 태어나던 바 이서스답습니다. 그들은 드래곤을 압니다.). 우리는 드래곤들이 자신의 영토에 보내는 감정에 대해서만 지적하겠다. 시에프리너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시에 프리너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다. 시에프리너도 자신의 영토를 지킬 수 없다면 다른 드래곤에게 도움을 요청하느니 그냥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것이 드래곤의 명예이지 않은가. 그러니 카르 엔 드래고니안의 주인께서는 그녀가 바라지도 않는 도움을 보내지는 마시라.’

대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드래곤 레이디는 보물을 모두 반환했어요.

‘곡해하지 말라. 이것은 시에프리너의 자손과 바이서스의 문제다. 너희들이 억지로 미래를 보고 그 미래를 억지로 부정하는 어이없는 광기를 부릴 때마다 드래곤이나 다른 존재의 다음 세대가 피해를 입어야 한다면 그것을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너희들이 정녕 시에프리너를 공격한다면 드래곤들 은 너희들이 너희 왕비의 요청에 응하였듯이 시에프리너의 구조 요청에 응할 것이다. 너희들이 다른 드래곤에게도 미래의 위험이라는 납득할 수 없 는 이유로 공격의 칼날을 들어올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몇 개의 주먹이 몇 개의 탁자를 내리쳤습니다. 술병을 벽에 집어던지고 발길질로 문을 여는 활극물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지 요. 그리고 바이서스 인들은 무서운 결론을 내렸습니다.

‘좋다! 드래곤과 싸우자!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가장 풍요로운 땅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때문에 하루 거리를 대엿새씩 돌 아가는 일도 질렸다. 그들이 잠든 때를 틈타 슬쩍슬쩍 그 땅을 이용하는 것도 짜증났다. 예언자의 예언은 사실 우리 모두가 조만간 일어나리라 예상 하고 있던 일의 재확인에 불과하다. 그들과 우리는 싸워야 한다. 그때가 왔을 뿐이다. 우리에겐 이미 경험이 있지 않은가? 말 타고 활 쏘던 그 옛날의 루트에리노 대왕도 드래곤 로드를 물리쳤다. 그 동안 드래곤들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지만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왜 대왕의 업적을 재현하 지 못한단 말인가! 모든 드래곤을 죽이고 그 땅과 그 보물을 빼앗자. 그리고 계속해서 살아남자!’

예. 공황 상태에 빠진 자의 헛소리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옛날의 루트에리노 대왕과 달리 바이서스 인들은 이제 철로 된 말을 타고 납으로 된 화살을 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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