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07화 : 마계 지배자 루시퍼와 인간에 대한 계획
마계 지배자 루시퍼와 인간에 대한 계획
나와 천마는 금웅의 등에 올라타고 청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왠지
설란과 환아와 화아의 얼굴을 보고 오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청해 쪽에 도달한 순간 놀라운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저,저것은 뭐냐?”
우리는 아직 금응의 등에 있었다. 상공을 선회하며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의 끝에는 이상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분명 일월산이
있던 자리였다. 산은 어디 갔는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분
화구가 입을 쩍하니 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옅지만 검은 흑
기류가 산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빠른 것이어서 내가 최고 속도로 경공을 펴치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신속했다.
“마무가 퍼져 가고 있다. 벽이 뚫린 거야,”
천마의 탄식에 이어 또다시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마무를 뚫고
땅에서부터 십여 장의 높이로 괴목이 솟아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
찌 순삭간의 자라는 나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워낙에 상식에 어긋나는 일인지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다름이었다.
“으음……”
마계의 땅으로 화해 가고 있다, 괴목이 완전히 가지를 뻗치자 그
끝에서 탐스런 붉은 과실이 열려 갔다.솔직히 먹음직스러웠다. 과
일을 먹어 본 지가 꽤 오래되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괴목에서 자
라는 과실은 탐스럽기 그지없었다.
“내려가 보자.”
내 제의에 천마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된다. 위험해. 지금은 지켜보고 있을 때다.”
더 이상 마계 유입은 가상이 아니었다.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해오던 일상을 모두 멈추어야 할 만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홍균과 괴목 그리고 마무. 이건 이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다. 앞으로 내 눈앞에 나타날 모든 것들이 새롭고 기이한 것들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무는 예전의 일월산에서처럼 그리 짙지 않아
희미하나마 변화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마무의 질주는 이미 우리 시
야 너머로 경계를 넓혔고, 그 뒤를 따라 홍균과 괴목이 번져갔다.
“뒤를 이어 초식마수들이 나타나겠군, 그 뒤엔……….육식 마수들
이다. 흔히7대마수라 불리는 놈들이지. 인간들이 조심해야 할 놈들
은 바로 그놈들이다.“
그놈들에게 당하면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고
했던가? 난 그놈들의 생김새에 대해 천마에게서 자세히 듣긴 했지
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위험함이 어느 정도인
지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내가 고급영자가 아니라면 그놈들에게 당하는 순간 영혼은 놈들
의 노예가 되고 말겠지. 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그놈들에게 당할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마신들과의 격전으로
전투력이 상실되어 있다면 놈들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되는 걸 거부할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약자이고 놈들은 강자이니. 나는 생물의 기복적인
구조인 약육강식에 의해 처절하게 분해될 것이다. 어찌 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허구의 섹OP를 그리고 있는 듯 막연한 예측에 불과하
지만 결코 눈앞에서 벌어지고 이쓴 건 꿈이라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었다.
마무는 쳐다보고 있자니 안식을 주는 듯 포근하게까지 느껴진다.
두려움의 근원에 잠겨 나를 굴종시켜서라도 그 두려움을 해소하고
픈 욕망일까.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괴목에 매달려 있는 탐스런 과
실에 가 머물렀다.
“한 가지 걱정은 덜었군, 더 이상 생선 비린내는 맡지 않아도 좋으
니 말야.“
천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위험 신호를 준다.
“저건 그냥 과일이 아냐. 영성에 치명적이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먹을 경우 자신도 모르는 새 마성이 또아리를 틀게 되고,단언하건
데 결코 인간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난 인간의 의지가 그렇
게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거든.“
독과였구나. 그렇지만 당장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면 먹고 사지가
베베 꼬이는 고통을 당한다 해도 사람들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마계는 빛나는 전과를 올릴 수 있겠어.
“죽거나 기동하지 못하거나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보군.”
“그렇지. 오히려 눈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니 사람들이 먹고
좋아할지도 모르지. 게다가 맛도 그만이니 말야.“
“그런 거라면 나도 한번 먹어 보고 싶은데.”
“가히 상상이 가는군.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따면 곧 생겨나니………노동이란 단어
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축복된 순간이야,“
“흐흠, 마계라고 하면 연상되는 느낌과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
는군.“
“천만에! 마계는 차원계 가운데서도 가장………..욕망을 최상의 가
치로 여기는 곳이다. 퀘락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곳, 그들의 말을 빌
리면 현존하는 극락이라 자처하는 곳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을 저당 잡혀야 하지만 말야. 마수들은 결코 마인들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순종한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마계는 마성을 지닌
마인들에게는 진정 낙원일지도 모르지.“
우리는 좀더 가까이 내려가 보았다. 금응역시나 마무가까이 이
르자 기분이 나쁜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금응의 그 거대한 날갯짓
에도 마무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면에서 7장이나 8장 정도
높이로만 흐르고 있었고, 그 위는 푸르스름하게 빛난다. 대지에 거
대한 띠를 둘러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장면만은 아름답다 여겨질
정도로 환상경을 연출했다.
인간계가 마계화 되어 가는 장면을 우리는 물끄러미 방관하고 있
는 셈이었다. 즐기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라도 분명 이 순간 우리
는 방조자였다. 하긴 뭘 어찌 하겠는가? 거대란 분화구 안에서는 끊
임없이 마무가 흘러넘친다. 더 이상의 다른 변화는 없었다. 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수들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데…………”
우리는 이후 세 시진 넘게 있었지만 마수는커녕 산 다람쥐 한 마
리도 보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가 어디 갔지?구름에 가렸나?”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RM 어디에서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
다고 어둠이 내릴 시간이 된 것도 아니었다. 분명 마무 위의 세상은
사물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광휘의 세상이었으나 그렇다
고 눈부시게 밝다는 느낌 역시 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해를 볼 수는 없을 거다.”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가 마계의 유입으로 파괴
되기라도 했나,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다 퍼뜩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럼 이 마무가 해마저 가렸다는 거냐?”
“그래, 인간 오감의 한계를 넘어서 있어서 네가 느끼지 못할 뿐이
지 마무는 훨씬 두껍게 세상을 뒤덮었다. 단지 네가 보고 느낄수 있
는 건 저 아래에 깔려 있는 정도지만.“
그랬던가?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아쉬울 수 있
다는 게 내겐 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마무 자체가 발광체이기도 하지. 저 푸르스름한 빛 보이지?”
띠처럼 두른 것을 천마는 손으로 가리켰다.
“낮과 밤의 구별이 없어진 세상. 시간의 흐름마저 잊을지도 모르
겠군.“
그곳에서 하루를 더 소비하며 기다렸건만 다른 변화는 볼 수 없
었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단념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시작된 것이다 마계와의 싸움이. 그것이 싸움이라
불려질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항쟁이나 저항 따위로 부르기
엔 우리 자신이 너무 처라하게 여겨진다. 우리는 중원으로 돌아오
며 여러 번 더 놀랐다.
섬서를 지나 오는데 그 흔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영
문인지 몰라 금응을 낮게 날게 했다. 인간들은 여전히 넘치게 많아
괴목들 사이를 뛰어다니는데 그들은 벌거숭이들이었다,
“뭐지,저건?”
천마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지 답변을 주지 않는다. 땅 위엔 아
무것도 없었다. 단지 벌거숭이 인간들과 지난 식량난에도 용케 살
아남은 개가 우리를 향해 짖을 뿐이었다. 허, 말도 안돼!그 많던 집
들이 어찌 한 순간에 사라질수 있는 거지? 우리가 지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건가?
그렇지만 지형만은 그대로였다. 집이 있던 자리엔 터가 그대로 남
아 있고 거대한 석조 건물이 있던 자리는 깊이 패여 있다. 건물들만
이 사라졌다는 결론이었다. 사람들의 일부는 괴목의 잎을 따다 치
부를 가리고는 망연자실해 아무 곳에나 드러눕거나 앉아 있다. 그
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탐스런 과실이 들려 있다는 것이 눈 아프게
시야를 찔렀다.
“어찌된 일일까?”
천마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무릎을 탁 치며 빠르게 말을 이
었다.
“이제 보니 마무에 마황신의 주술이 걸려 있었구나. 그런데 왜 이
런 일을 하는 거지?“
천마의 설명은 간단했다,. 마황신이 마무에 주술을 걸어 건물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는 거다.
“이를테면 인간의 의지가 깃들인 인공물에 대해서만 효력을 지니
는 주술을 건 거다, 옷도 마찬가지고, 가공된 패물이나 검, 도도 마
찬가지다. 자연 형태로 있는 건 하나도 훼손시키지 않고 말이다.“
난 개봉에 있을 식구들을 생각했다. 설란도 그럼……..난 그 생각
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후에 만들어질 어떠한 인공물도 소멸된다는 말이
냐?“
“아니, 주술은 일회성이다. 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롭게 만들어지
는 건 소멸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난
제일 먼저 마수들이 튀어나올 줄 알았건만.“
하늘을 날고 있던 우리를 제외하고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발가벗겨진 셈이었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멀
쩡히 거리를 활보하던 노인도, 시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던 며느리
도, 신하들의 대례를 받고 있던 황제도 순간적으로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을 거다.
“이제 보니 마황신이란 작자 꽤나 장난꾸러기인가 보군.”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그의 신비한 능력에 두려움이 앞섰
다. 주술이라 했던가? 그런 능력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못한 것
이지 않은가? 이 땅은 원시의 상태로 회귀해 있는 셈이었다. 수천,
수만 년을 이어오며 찬란히 빛나던 인간의 문명이, 그 문명이 이룩
한 모든 결과물들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개봉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해 보니 그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무것도 남은 것은 없었다. 울퉁불퉁 불규칙적인 지형과 넘쳐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금응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순간 나
는 아차, 싶은 심정이었다. 내 옷도 사라지려나? 아참, 일회성이라
했지. 그리고 내겐 마신갑이 있으니 여차하면 발동시키면 되는 것
이고, 피부 아래에 숨어 있는 마신갑을 사용할 만반의 준비를 하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대로였다. 역시 천마의 말대로 일회성이었던 거다. 이땅에 사
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의복이라 불릴 만한 걸 입은 사람은
우리가 유일한 셈이었다. 사람들은 되려 우리들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런 시선에 아랑곳없이 우리는 천마교가 있던 자리로
뛰어갔다.허허, 멋지군,멋져
무사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괴목의 잎을 걸치고 있었다. 간신히
치부만 가린 자에서부터 상반신과 하반신을 전부 가린 자까지. 손
에 흔한 철검 하나 자니지 않은 천마교 무사들을 보고 있자니 TGJTDNT
음이 나왔다. 이래가지고 무슨 싸움을 할 수 있으리.
“지존.”
광마존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았다. 그는 내가 건네 준
마신주를 운용하고 있는 참이었다. 멋들어진 마신갑을 착용하고 있
는 그를 다른 사람들은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광마존의 뒤쪽으로 호법들과 장로들과 그리고 화아를 안은 설란
과 환아도 보였다. 다행히 그녀는 벌거벗고 있지 않았다. 꽤나 잘 만
든 엽의를 맵시 있게 차려 입었다. 아마도 적루아가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시작된 겁니까?”
“그래.”
“어찌해야 합니까?”
“나도 모르겠다.”
“날씨가 따뜻해져 더 이상 생선을 잡아야 소용이 없을 듯합니다.
당장 먹을 수는 있지만 보관하거나 멀리까지 보내기에 무리가 있습
니다. 그리고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지천으로 자라 있는 괴목을 가리키는 광마존을 보고 난 언뜻 궁금
증이 일었다.
“먹어 보니 맛이 어떠하더냐?”
천마의 경고보다는 그것이 더 궁금했다.
“처음으로 맛보는 달콤함이었습니다. 혀에 닿는 순간 녹아들어
식도를 넘어가니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두 알 정도를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집니다. 또한 기분마저 좋아지니 이 보다 더한 영과
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난 천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천마는 어이없어 하며 제 손으로 과일을 따 내게 내밀었다. 난 손
바닥으로 쓱 문질러 닦고는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으음, 난 순식
간에 하나를 다 목 안으로 밀어 넣고는 손가락에 묻은 과즙을 입술
로 훔쳤다. 정말 달고 시원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훌륭한 음식도
이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단순이 '달다' 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력적인 맛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그런 효능이 있단
말인가? 난 진실로 믿고 싶지 않았다.
“어때? 도 먹고 싶지?”
“솔직히……….”
“그럼 마음껏 먹어. 어차피 처음부터 되도 않은 싸움인걸. 아예
포기하자. 그 순간 낙원은 펼쳐지는 거니까.“
난 천마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싸워 보기도 전에 포기하자는 말이 천마 입에서 나왔다. 사실 우
리는 서로를 가장 크게 의지하고 있고, 마신들과의 싸움에서 조금이
라도 힘이 될 전력은 서로뿐이라 믿고 있다. 물론 선맥에 속한 자들
이나 그들이 말한 준비된 자들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우리는 그
들을 또는 그들의 능력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 그 만큼 서로는 서
로에게 절박하다. 누구 하나가 잘못되면 이 싸움은 혼자서 치러야
하는 외로운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나 천마나 결코 마신들에게 순순히 고개 숙이지 못할 건 당연한
일이고, 끝까지 싸울 것 역시나 당연했다. 이런 말을 내게 하는 건
정신 차리라는 충고의 다른 표현이었다. 난 달리 그에게 변명하거
나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천마는 내 마음을 알 것이기 때문이
다. 그나저나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달리 식량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먹지마라' 라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사방을 둘
러봐도 보이느니 이 마과뿐이었다.
“그냥 먹게 해야지, 별수 없다. 선택은 개인이 하는거니까. 그래
도 알려는 줘야겠지.“
난 이후 한 시진동안이나 마계의 유입이 시작되었다는 선언과 함
께 마수들에 대해서, 그리고 마과의 중독성과 마성을 증대시키는 효
능에 대해서 목이 아프도록 외쳤다. 모두 이해는 한 듯했지만 동감
한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설란에게 다가가 화아를 안아 들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날
쳐다보더니 '아빠'라고 한다. 그 순간 난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들었소?들었지, 방금 날보고 아빠라고 한 걸 말야.”
난 기뻐서 그렇게 외쳤다. 그렇지만 설란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걸로 보아 화아가 말한 걸 나 이전에 이미 들었다는 얘기다.
“애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이제 몇 달 되었다고 벌써 말을 하기
시작하다니.“
순간 난 칠성의 환생인 적루아가 했던 말과 장삼봉이 이른 말을
떠올렸다.
“영성이 회복되고 있는 징조인가?”
한소리로 말하고 하나로 듣는다고 했으며, 사람들의 얼굴이 푸르
게 변한다고도 했던가?뭐. 그래봐야 크게 달라질건 없겠지. 화아를
설란에게 넘겨 주고 나서 난 천마교의 수뇌들을 불러 모았다.
달리 모일 내실도 없어진 지금 우리는 그냥 맨바닥에 앉을 수밖
에 없었는데 그런 우리들을 천마교 수하들이 빙 둘러싸고는 내려다
보는 형국이었다. 조금 민망했다. 그들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지
만 이 상태로 회의를 속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수하들 일
부에게 일러 우리 주위에 벽을 쌓게 했다. 그리고 음파마저 차단시
켰다.
“해안에 남아 있는 수하들을 모두 불러 들여라.”
“이미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수궁주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저번 해일로 소수만이 생존했다는 보고와 함께 이리로 향하고 있다
했습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군. 중원의 사정이
급박하니 그곳까지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저번 정도의 해일
과 폭풍우였다면 군도를 비롯한 섬들이 입은 타격은 대단했을 것이
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다. 나는 수하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마과에 대해 보든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전해라. 그들이 사실을
알고서 먹고 안 먹고는 차후 그들의 선택 문제이다,. 그리고 마수들
에게 당하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도 빠트리지 마라. 곧 마계의 마신
들이 등장한다는 것도………………….“
나는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리고 나서 전 수하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괴목들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천마교 무사들은 모두
내게로 시선을 향했다.
“앞으로 큰 전쟁이 있을 것이다. 마계의 힘은 그 동안 우리가 상대
했던 일월교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 대항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선택은 개개인의 몱이다. 지금이라도,
아니 언제라도 이 대열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라.
마과를 먹어도,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해도 난 그 사람을 비
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서로에게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러
나 난 이런 생각이 든다. 잠시의 평안을 위해, 잠시 있다 갈 이 세상
에서의 평안을 위해 영원한 속박을 자처하지는 마라. 우리 영혼은
자유로운 존재라 들어 알고 있다. 이 자유를 잠시의 쾌락과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자살하는 짓은 피해라. 차라리 견디기 힘이 든다
면 동료에게 죽여 달라 하라. 언제 우리가 또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그 누구도 여러분들을 강제하지 않
을 테니 자유롭게 행동하라. 여기에 남아 있어도 좋고 여길 떠나도
좋다. 내 얘기를 이걸로 끝이다.“
이어 천마가 간략히 죽음 이후에 대해 설명했다. 죽고 난 뒤 현생
의 업에 대한 정화를 하여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흔히 사람들이 지옥이라 부르는 그 과정은
내가 상상해 보아도 끔직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 지은 업에
따라 강도도 달라지고 기간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불꽃이라
부를 수도 없는 뜨거운 어떠한 기운이 각 영혼을 깨끗이 씻긴다는
것이었다.
잠시 무리 중에 두려움이 머문다 해서 그들이 모든 걸 이겨낼 거
라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들 중 과연 얼마가 참고 인내할 것
인가? 오히려 마계의 지배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하는 자들이 속출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타협은 오히려 달콤한 유혹이 아니던가.
천마의 얘기에 주목하고 있는 중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마과에 가
닿는 것을 난 눈여겨 보았다,. 이제 저 마과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천마가 얘기를 다 마
치고는 뒤쪽으로 물러서며 내게 작게 속삭였다.
“반응이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더 과장할 걸 그랬나?”
두려움은 때로 그 무엇보다 크게 행동에 제약을 준다. 그것은 눈
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진질로 믿는 순간 변할 수 없는 신념으로 자
리매김 한다. 괴목을 난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땅 위로 보이는 부분의 제일 밑둥은 몇 줄기로 벌어져 그 사이로
공간이 있다. 그리고 점차 위로 올라가며 뒤틀려져 서로가 서로를
꼬고 있는 형상이다. 일장 정도부터는 거대한 잎들이 붙어 있는데
질기고 탄력이 있어 마치 천 같다. 쭉 늘어져 있는 그 사이로 작은
줄기들이 땅으로 내려뜨러져 있고,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 좋을 만큼
의 적당한 높이에 과실이 매달려 있다.
전체의 높이는 십장이 넘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있지만 꼭대기에
서부터 시작된 가지라 할지라도 그 과실은 끝에 매달려 사람의 손길
이 닿는다. 그리고 열매를 따내면 금방 생겨난다. 난 손으로 괴목의
표면을 만져보았다. 보기엔 거칠고 딱딱해 보였는데 매끄럽기 그지
없다. 난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고는 하나의 나무에 손을 갖다댄 채
로 기를 운행했다.
파악
둘레가 2장이 넘을 나무였지만 내가 쏘아낸 강기를 이기지 못하
고 내 허리 부분 정도의 높이가 싹둑 잘라졌다. 순간 나와 천마교
무사들은 놀라운 전경을 보아야만 했다. 굉음을 내며 땅 바닥으로
쓰러질 것이라 여겼건만 이런 우리들의 예측은 너무도 간단하게 빗
나가고 말았다. 잘려진 괴목의 윗부분이 잎들을 제외하고는 먼지처
럼 부서져 내린 것이다. 공중에서 거대한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
렸다.
“오.”
“어찌 저런 일이.”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말을 잊고 섰는가 하면, 신기하다는 듯 바
라보기도 했다.
나 도한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대해 언뜻 이해가 가지 않긴 마
찬가지였다. 잘려진 표면은 푸른 액들이 가득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부글부글
푸른 액들이 끓어 오르며 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잘려진
표면에서 나무 기둥이 새롭게 쭉쭉 자라나기 시작했다. 몇 번의 호
흡을 하는 동안 괴목은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는 탐스런 과실을 늘어
뜨리고 있었다.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었다.
“저건 마황신의 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교감한다. 땅을
파내고 뿌리를 보면 알겠지만 모든 괴목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저건 거대한 생물체인 셈이다. 또한 마황신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
도 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한 말과 행동은 하나 남김없이 그에게
전달된다. 그런 이유는 물론 아닐 테지만 마계 역사상 배신자는 내
가 유일하다.“
놈이 저 괴목을 통해 모든 걸 감시하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그놈
의 눈길을 벗어날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이다. 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아났다. 놈이 여길, 나를 보고있다. 내가 한 말
과 행동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난 괴목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마
주 섰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게 네 놈들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네가 전능한 힘
을 보인다 해도 넌 어쩔수 없는 욕심많은 추악한 짐싱일 따름이다.
할 수만 있다면 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 네발로 땅을 기
게 하고 싶지만……….하여튼 너와 난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
을 거다. 카악,퉤.“
나는 가래를 괴목에다 뱉었다. 이후에야 어찌되었든 난 지금 내
적의를 놈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또 다시 난 불타 오르고 있는 셈이
었다. 적이 강하기에 이 열정은 더 강하게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제길, 이떻게 생겨 처먹은 놈인지도 모르지만 왠지 기분 나쁜 놈이
야. 이런 변태 같은 습성이 있는 것하며…………..
빨리 뭔가를 만들어야겠어. 가장 먼저 화장실을 지어야겠다. 홰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을까? 놈에게 내가 볼일 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설란은 더더군다나 네 놈의 눈요기로 삼게 할
수는 없지. 생각난 김에 난 무사들을 동원해 흙과 둘을 이용해 간단
하나마 거처를 짓게 햇다. 괴목들 사이사이에 지붕 낮은 석옥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석옥의 소는 많아져 갔다, 인간은 어쩔 수 없
이 무언가를 조형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그
일을 하며 집이라는 특정 공간이 사람들 간에 벽을 쌍ㅎ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그리 깊이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살 거처들이 마련되자 그 다음엔 여자들을 시켜 괴목들
의 잎을 가져다 정교하게 옷을 짓게 했다. 달리 천을 만들 방법도
재료도 없기도 하거니와 괴목의 잎은 그 어떤 천보다 부드러워 착
용감이 그만이라 했다. 천마는 며칠 동안 내가 하는 짓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금방 무너질 집을 짓고, 그깟 몸, 아무거나 대충 가리면 되지, 이
깟 일에 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단 말이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의 석옥이 세워지자 그는 군소리 없이 들어가 살았으며 내 손에 들려 있던, 첫 번째 만들어진 옷을 빼앗아 적루아에게 갖다 주었다.
뻔히 시한부 인생임을 안다 해도 살 날까지는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왕 사는 김에 불편함을 없애고자 하는 건 또한 인가답게 살기 위합이다. 이 인간답게라는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모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익숙해진 생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개봉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천마교 무사들이 하는 것을 보고는 그걸 따라 집을 짓고 옷을 만들고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시간은 더 소비가 되겠지만 어쨌든 그들 모두도 집과 옷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아무 하는 일 없이 보내었다. 나는 마수가 등장하길 바라지는 않지만 현재는 어쨌든 그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셈이었다,. 그전에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일은 없었다. 천마가 무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그건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만약 쇠가 유통이 된다는 얘기가 들린다면 그때 가서 구해 보리라 작심은 하고 있었다. 며칠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시점에 -밤과 낮이 없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무림맹의 지도부들이 개봉을 찾아왔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이지 난 오랜만에 소리 나게 웃었다, 그들 역시나 괴목의 잎으로 어설프게나마 옷을 해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들의 얼굴엔 근심이 쌓이기 보다는 담담한 미소가 어렸다. 이대로라면, 마신들이 인간에게 관여하지만 않아 준다면 예전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칠성의 예언을 내가 다시 떠올리게 된건 어느날 본 설란의 얼굴로 인해서였다. 가만보니 그녀의 백옥같던 피부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쯤 여러 가지 다른 변화도 생겨났다. 사람들 가운데 없던 능력을 발휘하는 자가 생기는가 했더니, 근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을 하고, 귀신을 부리는 자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기 그지없어 마성에 젖어들고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더 진중하고 친절하며 사리에 밝아졌다는게 어울렸다, 우리는 어쨌든 현재로서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천마의 집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다 날 맞으며 시큰둥한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왔냐?” 저놈이 또 무슨 일로 저렇게 볼이 부어 있는지 모를 일이군 “무슨 일이 있어야 오나?그냥 이것저것 답답해서 얘기라도 나눌까 해서 왔다.”
“오셨어요?” 적루아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른 품위가 느껴졌다. 나는 한가지에 생각이 미쳐 그녀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일반의 사람들도 영안이 열려 귀신을 보고 부리는가 하면 예언을 하고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하물며 칠성의 환생이라는 적루아에게서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게 이상히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 이런 생각을 읽었던지 천마는 내가 전음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그러고는 날 끌고 제 홀로 쓰는 방으로 데리고 간다. 앉자마자 그는 입을 열어 그간의 불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적루아가 너무 달라져 이제는 딴사람처럼 느껴진다.”
역시 무슨 변화가 있긴 한 것 같았다.
“참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왜 그래?”
“말이 부부지 한 방을 써본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냐?”
“평소엔 멀쩡한 것 같다가도 내가 침실로 들어서기만 하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이건 마치 징그러운 짐승이 제 분수도 모르고 사람 사는 곳에 들어왔다는 의미로 번뜩이니, 이래서야 부부라고 할 수도 없지 않냐. 내가 손이 닳도록 빌어서 겨우 한 침상을 쓰게 되어도 등을 딱 골리고 자는데……….말 안해도 알겠지?“
“흐흠, 그 이유를 물어 보지 그랬어?”
“당연히 물어봤지. 그랬더니 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칠성의 대덕'이라나, 자신이 그렇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신을 단순한 정욕으로탐하려 하지 말라는 거야.”
“으음”
“그럼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네 마음을 읽고 그러는 거겠지.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지 않았다고 그러는 것 아니냐?”
“그야 나도 알지. 그렇지만 우리가 신혼도 아니고 어떻게 매 순간 사랑스럽기만 하겠냐? 나도 이제 포기했다. 그것만이면 내가 말을 안한다. 만날………그러고 보니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것 같군. 이맘때쯤이면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중얼거리며 세 시진도 좋고 네 다섯 시진도 좋고, 그러고 있는거야.뭐하나 싶어 귀를 갖다 대보면 칠성대덕이 명하니 어쩌구 저쩌구…………………….”제 존재를 깨달았구나. 이건 우리에게 좋은일 아닌가? 좀전에 적루아가 내게 대하던 모습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난 그녀의 변화를 지긋한 눈으로 보고 싶었다.
“천마, 괜찮다면 적루아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그래라. 난 관심 없으니.”
난 천마의 방을 나와 적루아가 혼자 있는 방으로 가서 헛기침을 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잎을 여러 겹으로 포개 만든 문을 살그머니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침상에 앉아 있다 날 반겨 준다. 관심 없다고 했던 천마가 내 뒤를 바짝 따르고 있음은 당연했다.
“여기 앉으세요.”
그녀가 내준 방석 위에 앉으며 잠시 옆에 함계 앉은 천마를 바라보다 다시 적루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구요?”
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네”
“요즘 뭘 하고 계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제 안안의 경계를 확대하고 있어요. 이 세계를 건너 다른 차원을 바라보기 위해서이죠.”
“흐흠,가능할 것 같습니까?”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간혹 영문이 막히면 태악대제나 그의 딸 태산낭랑, 그도 아니면 여러지신의 도움을 받기도 하구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말을 돕는다.
“영문이란 영적인 주술의 힘을 담은 말을 일컫는 거죠.태악대제는 물론 아시겠죠?”
태산의 산신령을 민간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실제로 있단 말인가? 내 이런 생각마저 읽었는지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지신이나 산신령은 이 세계가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오며 자연적으로 생겨난 영성을 지닌 기운이에요, 인격적인 존재라고 볼 수는 없고 힘이라고 할수 있죠 그렇지만 인간처럼 지성적인 존재에요.”
“아,네.”
“궁금하신게 많으시네요, 그렇지만 나 또한 알고 있는건 한정되어 있고, 알고 있어도 발설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마계가 왜 저렇게 웅크리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고 언제쯤이나 그들이 움직일지 그 시기도 알수 있다면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번에 했던 예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바랍니다.”
“으음, 좀 곤란한 질문들뿐이군요. 그 시기는 알 수 없지요. 그리고 저번에 했던 예언 역시나 제 본신이 한것이라 저는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마계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거라도 그럼 해주시오.”
“그러죠.”
그녀는 두손을 살포시 포개고 눈을 반개했다. 그리고 입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칠성대덕이 명하시니, 법층의 위계를 따라 귀계 상문들은 내 아래 조복하고 동서남북 천지사방 흩어져 있다 일순에 모여 그눈으로 본 것들을 고할지니라, 귀계칠좌 칠성대덕 공좌신행 귀일도래 만승만환…………..”
스스스스
뭔가 오고간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게 눈에 보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런데도 천마는 눈을 부라리고 있다.
(너 설마 보고 있는거냐?)
(그래, 네 눈엔 안보이냐?)
(안보이는데…..)
(저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여길 들락거리니 내가 혈압이 올라 죽을것같다. 온갖 귀신들이 이 집을 제집처럼 여기고 있으니……내가 지금까지 견딘게 기적이다.)
그는 평소에는 귀령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귀계가 다른 차원계들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건 그 기괴막측한 형태들과 행동들로 인해서라고 했다. 어쨌든 내 눈엔 보이지 않으니 마음만은 편했다.
잠시 뒤, 적루아는 눈을 뜨고 한숨을 포옥 쉰다.
“청해 일월산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궁전이 세워지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온갖 보옥들로 지어지는 아름다운 궁전이군요. 아직 완전히 완성되기 전인 듯했어요. 마신들이 그 안에 있는 건 느껴지는데 감히 안까지 들어가 볼 수 없었어요, 마수들은 아직 이땅에 들어오는게 허락되지 않은 듯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 버렸다. 들어 왔구나. 게다가 궁전을 짓고 있다고? 하잘 것 없는 인간들은 언제라도 한 순간이면 쓸어 버릴 수 있으니 제 계획대로 착착 진행 시켜 가는 건가? 여유만만이군. 그놈의 얼굴이 더 보고 싶어졌다. “천마, 마황신이라는 놈 어떻게 생겼느냐?”
“자알 생겼지?”
“물론 남자겠지?”
“인간으로 착각하지 마라. 그들은 성이 없다. 양성이지. 여자도 되었다 남자도 되었다가 이리저리 변하지. 역사처럼 강인한 모습일 때도, 아름다운 요부의 모습일 때도, 본신인 용의 형상을 하는 때도 있다.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가 뭣하군.
한가지 공통점은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 그래, 보고 있으면 내 영혼이 끌려 들어갈 것처럼 아름답다. 루시퍼는 특히 천사들 중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지극했던 존재다. 그 아름다운 얼굴로 그 어떤 존재보다 사악한 짓을 행하니 모두들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그래, 나 역시 그를 사랑하였고 두려워했었다. 그는 그런 존재야. 어쩌면 너도 보고 반할지도 모르지.“
듣고 있기만 해도 역겨웠다. 이런 반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도 알수없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자이다. 말로만 들었다. 그것도 피상적인 언어의 형태로 설명된 것을. 그런데도 내게는 마계를 다스린다는 마황신. 루시퍼에 대한 적개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했다.
놈은 세상의 모든 아름답던 인공물들을 해체해 보리고선 세상 사람들이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아름답고 거대한 궁전을 짓고 있다. 그걸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 자신의 위대함에 스스로 감탄해 신이라도 된 듯하겠지? 그도 아니면 바닥에 기어 다니며 꼬물거리는 벌레들을 보듯 인간들을 굽어보고 있으려나.
언젠가는 볼수 있겠지. 만나게 된다면 난 그놈이 단 한번도 겪지 않은 모욕을 해줄 것이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욕을 해줄까? 아니면 내 아랫도리를 까내리고 오줌을 갈겨 버릴까? 크크,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물론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전제하에서지만.
“그를 만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요. 피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해요. 그는 강한 자. 칠성도, 노군도,33천의 천주들도 기피하는 자랍니다.
무한계의 거신족 중 가장 강하고 거대했던 카라반이란 자가 있었죠. 그는 자신의 힘을 믿었고 그 강하고 큰 팔을 흔들어 모든 적대자들을 물리쳤지요. 그렇지만 그는 루시퍼의 발에 깔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다 굴종을 강요다하고는 지금까지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답니다. 그를 이길 존재는 메타트론과 대천사장 정도뿐이겠지요. 메타트론은 그를 낳아 준 아버지와 같은 존재, 결코 그를 해치지 않아요. 누가 그를 이길 수 있을까요? 괜히 그를 일러 우주의 무법자라 하지는 않는답니다. 적루아의 말에 내 투지가 꺾일 리는 업지만 듣지 않은게 나을 뻔했다.무지막지한 놈인가 보군. 난 내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평소같으면 뭐라 반박하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대안이라도 늘어놓았을, 그래서 희망이라는 놈을 불러 들였을 천마조차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동의한다는 건가? 그런데도 우린 그런놈을 상대로 싸우려 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미친 짓이겠군. 까짓 한번 미쳐보자.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가 한 말들이 내 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s가 심각한 얼굴로 들어서는 것이 의아했던지 설란이 팔을 잡고 흔들었다.
“왜 그래요? 무슨일이 있었지요?”
“아니, 그냥. 화아는 자오?”
“네, 보채다가 방금 잠들었어요.”
우리 가족과 천마네 가족은 마과르 먹지 않는다. 그럼 뭘 먹고 사느냐고? 그야 이제 질리고 물려 더 이상은 먹는게 고통인 생선이지. 반쯤 넘어가면 반쯤 올라올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냉동 창고로 쓰기위해서 석옥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 책임자는 당연 율극이다. 한번 들어가서 힘 좀 쓰고 나오면 한 닷새는 끄떡없다.
생선이 떨어지면 나와 천마는 한 달 치 먹을 식량을 반나절 동안 잡아 운반해 온다. 그날은 냉동 생선이 아니라 먹을 만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딱딱하게 언 생선을 불에 굽거나 삶거나 기름에 튀겨먹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에 두어번 정도는 산에 가서 사냥을 해와 푸짐하게 포식한다.
이럴 때면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해 보면 그들은 옛 기억을 떠올려 한 입 먹다가 맛없다며 뱉어 낸다. 벌써 사람들의 입은 마과에 길들여져 다른 어떤 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것이다.
피부는 윤기가 나고 눈망울은 맑다. 마과를 먹어서인게 분명해보였다. 온순한 양들을 보는 것처럼 그들에게서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신들의 얘기를 해도 시큰둥했고. 그런 말을 하는 우리들을 되려 이상하게 보기까지 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환아는?”
“제 방에 꼼짝 않고 있어요.”
“그래? 왠일이지? 이시간이면 언제나 나가서 놀던 녀석이.”
난 환아의 방을 찾았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너 왜그래? 무슨일이야?”
내 호들갑에 설란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서운 꿈을 꿨어요.”
“잤었던가 보구나”
난 환아를 품안에 안았다. 머릿결을 쓸어 넘기며 부드러운 어조로 달랬다.
“괜찮아. 꿈은 원래가 현실과는 반대야.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마라.”
“아빠가, 내게 화아를 남겨 두고 끌려 가시는 꿈을 꿨어요, 머리에 뿔 달린 괴물들이 아빠를 막 때리며 끌고 갔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가 막 울며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는……………….전 아빠를 따라 가려고 뛰었는데 아무리 뛰어도 쫒아갈 수 없었어요. 아빠가 내게 오지말고 화아를 보살피라고…….귀를 돌아보니 화아도 울고 있고………..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어엉엉.”
“그래, 그래, 괜찮아, 아빠 여기 있으니까. 그리고 어디 가지않아.”
“저 무서워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저 어떻게 해야 하죠?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으면 전 어떻게 해야죠?”
“으음. 그런일은 없을거야.”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넌 화아를 지켜야 된다. 엄마랑 약속하자. 화아를 지킬 수 있니?”
이 사람이 애한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가뜩이나 악몽 때문에 놀란 애한테.
“어허, 그만두구려.”
“아니 해야 해요. 이아이도 알아야죠. 머잖아 아빠도 엄마도 제결에서 절 지켜주지 못한다는걸.”
실란은 아예 작정한 듯 싶었다. 이럴땐 가만 있는 게 상수다.
“너와 화아만 있다면 넌 어떻게 해야할까?”
“화아를 …..제가 돌보고 지켜야 해요.”
“그래, 잘알고 있구나.”
난 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환아야, 넌 엄마도 지켜야해. 넌 사내대장부니까. 물론 아빠가 없을 때 얘기지만.”
“네, 약속할게요. 아빠가 안계신다면…..난 엄마도 화아도 내 손으로 지킬 거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자, 자. 이만 천아한테 가서 놀아라. 놀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질거야,”
“네, 아빠.”
언제 그랬던가 싶게 발딱 일어나서 밖을 향해 뛰어간다. 우리는환아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아이의 모습을 쫓기라도 하듯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적루아의 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금응을 타고 여기저기를 조사하고 다녔다. 눈에 띄는 건 초식 마수들뿐이었다. 이것들 역시 공격성은 있지만 근복적으로 홍균을 먹거나 마괴를 먹고 살기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완력으로는 다루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몇가지 종류가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제일 먼저는 괴목에 매달려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것들로 생이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원숭이처럼 생겼는데 꼬리가 길어 제 몸을 감고 다닌다. 귀와 윗머리 쪽이 하얀 것이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였다.
이놈의 특징은 평소에는 나무들을 타고 다니면서 놀지만 대로 사람처럼 서서 걸어 다니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정쩡한 자세가 아닌 완벽한 직립으로 말이다. 크기는 13세 정도의 사람 크기이고 꼬리 길이는 완전히 펼치면 집 장이나 된다 했다. 그 무게만도 엄청날 텐데 용케 몸에 감고 다니는 게 신기했다.
생이라는 놈의 주변에 항시 보이는 놈이 있다. 이놈은 생과 사가 좋은 건지 별 경계심 없이 무리를 짓고 다니기도 한다. 이놈의 이름은 천구라 불리는데 꼭 너구리 같이 생겼고, 목이 새하얀 털로 덮였다. 이 두 놈은 이 땅의 동물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은 보고 있으면 저게 어떻게 저런가, 싶을 정도로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누가 이것저것 떼여다 붙여 놓은 것처럼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수들은 케타트론이 만들었다고 했다. 일종의 창조 행위를 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많고 흔한 것들일수록 엉성했다. 이를테면 초기 실패작들인 셈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녹촉이라는 마수인데 겉모양은 의젓한 말이다.
역시 이놈도 목이 희다. 꽤나 휜 것에 집착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모양은 말인데 거즉은 호랑이다. 호랑이 무늬를 가진 말인 셈이었다. 거기다 꼬리는 타는 듯 붉은털로 뒤덮었고, 사람과 흡사한 소리를 내지만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멀리서 들어면 사람이 말하는 것 같지만 가깡; 가서 들어보면 그저 웅얼거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한놈 한놈 발견하고 짚어 보면서 이놈들을 만든 메타트론이라는 존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는 분명 이 땅의 동물들을 참조해 마수들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뒤섞어 놓은 바람에 흔히 보아 오던 것이 아니라 익숙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한마디로 참 희한했다.
이외에도 여우의 몸에 날개가 달려 있고, 기러기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폐폐, 몸이 개인데 펴범 무늬를 지니고 이마에 뿔이 돋아난 교, 전체적으로 거북의 몸에 목은 새목이고 꼬리는 뱀같은 선귀, 모양이 붉은 표범과 같고 꼬리가 다섯 개인 쟁, 뿔넷 달린 사슴인데 두 다리는 말과 같고 두 개의 사람 손을 지닌 영여등이 있었다.
이놈들이 대표적인 초식 마수들인 셈이다. 오직 먹고 자고 노는데만 정신이 집중되어 있기에 먼저 건들지 않는 한 도발하지 않는, 어찌보면 순한 놈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놈들이 한번 공격성을 띠기 시작하면 상대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공격을 중단하지 않는다.
생은 긴 꼬리와 이빨로 물어뜯고 천구는 앞니가 날카롭고 길다. 녹촉은 무늬가 호랑이여서 맹수과인 줄 착각하기 쉬운데 놈의 공격력은 의외의 곳에 있다. 꼬리 끝에 매달린 붉은 털은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데 독성이 지독하다. 침에 쏘이면 일각도 되지 않아 전신에 마비가 오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될 수 있으면 이놈 곁에는 가지 않는게 상책이다.
폐폐는 날아다닌다는 이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조심할 구석이 없다. 그냥 여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교는 성격이 잔인해서 한 번 물면 놓아 주지 않는다 했다. 이놈의 이빨은 뱀처럼 독을 뿜어내며 물리면 아무리 큰 놈이라도 즉사다. 놈은 적이 쓰러져 있는데도 여전히 물고 있다가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하고서야 놓아 준다.
선귀는 가장 공격성이 없는, 거의 전무하다 해도 할 마수다. 모양이 이상해서 그렇지 집에다 데려다 놓고 키워도 좋을 만한 놈이었다 쟁은 이당의 최고 맹수인 호랑이 다섯 마리와 붙여 놓아도 지지않을 정도로 강한 놈이라 했다. 아니, 호이려 그 정도는 놀이감 정도로 여길 것이다. 한 번 도약하면 십여 장은 가뿐해, 떄로 괴목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생을 뛰어올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놈도 역시 장난을 좋아할 뿐이지 결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이런 맹수 같은 놈인데도 불구하고 육식을 하지 않고 홍균만 먹고 산다니, 이 또한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영여는 내가 보기에 제일 징그러운 놈이었다. 사람처럼 서서 걸어 다니며 어깨 쪽에 달린 두 팔의 끝에 사람 손과 똑같은 게 붙어 있다. 이놈은 손을 아주 정교하게 놀리기 때문에 사람이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놈도 다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마에 달린 네 개의 뿔은 어떤 보검보다도 날카롭고 강해 한번 스치기만 해도 살가죽이 찢어진다.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두 발은 사람보다 빨리 달리며 도약도 쟁 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큼 한다. 그리고 특히 머리가 좋아 이놈을 상대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이들의 특징은 역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과 결코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천마에게서 들은 것과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종합해 보니, 이놈들의 특징들이 대충 나왔지만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다. 홍균을 먹다가 누가 놀라게 했거나 평소 보던 것들이 아닌 사람을 대하고 두려운 마음에 먼저 공격할 확률도, 보지 않아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있을 듯했다.
이런 초식마수들은 순식간에 전 지상에 퍼져 나갔다. 이놈들로 인해 원래 이 땅에 서식하던 동물들이 멸종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기우일까? 천마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육식 마수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논들을 보면 저걱들은 귀엽다고 느껴질 것이다. 육식 마두들은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고 말을 한다. 그 흉폭함은 이루 말할 데 없어 때로 마인들에게 대들 때도 있다. 그,러나 마신들에게 덤비는 일은 없다. 이놈들은 메타느론이 최후에 만든 것들로 가장 강하고 위험한 놈들이다.’
7종으로 구분되며 그 이름은 각기 쿤다리, 몰스, 차반, 헤로곤, 바알, 에놈, 라그란다라고 불린다 했다. 이 중에 가장 강한 놈은 쿤다리이고 가장 약한 놈이 라그란다다. 쿤다리의 수가 가장 적고 라그란다의 수가 가장 많다. 많다고 하지만 다른 초식마수들 수에 비한다면 훨등하게 적은 수다.
이놈들은 초식마수들을 사냥해 살아간다. 기본적으로 홀로 다니지만 때로 조직적인 인간의 사냥을 방불케 한다. 때로 유회를 즐기듯이 초식마수들을 잡는 걸 즐긴다고도 했다. 이 사냥의 목표가 인간이 될 것이다. 놈들은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인간들을 고양이가 쥐 갖고 놀 듯 할지도 모른다. 무림 고수라 하더라도 이놈들을 이길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였다.
서서히 마계 유입의 모습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수들의 등장, 뒤이은 마신들의 등장, 지배. 이런 순으로 진행시켜 나갈 것이다. 놈들의 뜻대로만 풀료 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장애가 되는, 골치 아픈 놈이 인간 중에도 잇다는 걸 보여 줄 것이다. 순순히 이 땅을 너희들에게 내어 주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와 천마는 두루 퍼져 있는 초식마수들을 살피다 개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마계의 궁전이 있는 청해 쪽으로 감히 갈 생각조차 품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야겠지만 아직은 미루고 싶었다.
개봉에 와보니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거의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않았다. 집 바로 앞까지 초식마수들이 설치고 다니니 그럴만도 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몰골의 생물들을 멀쩡히 옆에서 지켜볼 만한 간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천마교 쪽으로 가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무사들이 마수들과 연무라도 하듯 싸우난 장면이 눈에 띄었다. 무사들은 넓게 둘러선 채 지켜보고 있다. 나와 천마가 도착하자 무사들이 길을 열었다.
“옥기린, 뭐하고 있는 거냐?”
생이라 불리는 원숭이 같이 생긴 마수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건 의외로 천마교 군사직을 맡고 있는 옥기린 이었다. 그는 여유 있게 생의 공격을 피하며 내 물음에 답한다.
“이놈들의 공격력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피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는데 생이 약이 올랐는지 그 몸놀림이 빨라진다.
파팟
마치 무림 고수가 경공을 펼치듯 바닥을 박차고 오른 생은 옥기린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놈.”
옥기린은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다 여겼던지 두 손을 펄쳐 장력을 발출했다.
펑
생은 정통으로 장력에 부딪히고서 뒤로 훌쩍 날아갔지만, 그 긴 꼬리로 괴목의 가지를 잡고서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섰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대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구나.”
옥기린은 감탄한 표정으로 생을 바라보았다. 생은 몸에 감고 있던 고리의 끝 부분을 잡더니 옥기린을 노려본다.
“조심해라.”
천마의 당부에도 옥기린은 그다지 긴장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생은 오직 옥기린만이 눈앞에 보이는 듯 그만을 목표로 했다. 주변의 괴목에 걸터앉거나 매달려 있는 다른 동료 생들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생의 두 눈이 반짝 빛난다는 느낌을 가진 순간 생의 몸에 둘러져 있던 긴 고리가 확 풀어지며 늘어났다.
“헉.”
그 속도는 내 예상을 깨는 정도로 빨랐다. 그래서인지 옥기린도 언뜻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그가 보통 고수였던가. 이기어검의 경지에 든 초절정 고수가 한낱 원숭이와 싸워 졌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며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자 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새 긴 고리는 그의 몸의 일부에 청청 감겨 있다. 머리머저 긁적이는 것이 귀엽기까지 했다.
“이놈! 여기다.”
옥기린이 생의 뒤에서 외치자 생은 펄썩 뛰며 괴목 위로 올라갔다. 그건 단순히 피하기 위함만은 아닌 것이 이후 동작에서 증명되었다. 놈은 한 손으로 가지를 붙든 채 꼬리를 풀어 재차 옥기린을 공격했다. 단순한 빠름 위주의 공격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당했다.
퍽
땅이 패이고 먼지가 풀썩 일어날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옥기린은 이번엔 기다리로 있었던지 꼬리가 맨땅을 치는 순간을 노려 한발로 꼬리 끝을 밟았다.
“키약, 키약.”
두 번인가 울비짖던 생은 꼬리를 회수하는 몸짓을 취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꿈쩍도 하지 않자 더욱 열이 받아 꽥꽥거리며 힘을 주는 눈치다. 꼬리가 생과 옥기린 사이 허공에 떠서 팽팽해졌다.
“우와, 저 녀석 만만찮은데, 저 얼굴 좀 봐. 똥싸겠다., 똥싸겠어.”
“하하하.”
주변에 늘어 서 있던 무사들 중 하나가 장난스레 소리치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난 그상황을 빨리 종결 지을 것을 권고하고 싶었다. 힘 약한 초식마수를 상대로 조금 월등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조롱하고 있는 듯 여겨지는 현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옥기린, 적당히 하고 그만둬라.”
“네……”
밟고 있던 꼬리를 놓자 생은 뒤로 휘청하며 괴목의 높은 곳으로 재빨리 올라간다. 그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놈이 사람정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면 옥기린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되었든 빈틈을 노려 재차 공격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나는 집 앞에 가 엉덩이를 주저앉혔다. 수하들이 보고 있건 말건 그런 걸 따지고 싶지 않다. 점차 다가오고 있다. 난 약간의 흥분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대체적인 감정은 역시나 두려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 저렇게 웃고 떠들고 있는 저들이 얼마 있지 않아 생이라는 원숭이의 입장이 되어야 함을 알까? 옥기린이 무사들에게 하는 말 중에 일부를 듣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까지 상대해 본 마수들의 수준을 봤을 때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나와 천마가 이곳을 비운 사이, 여러 초식마수들과 상대해 본 모양이었다. 난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었다. 우리가 겼어야 할 적이라 불릴 만한 상대들은 저런 초식마수대위가 아니라네, 이친구야. 굶주린 사자와 맨손으로 싸워야 할 사람이 왈왈대는 강아지를 간단한 발길질로 쫓아내고 이것 별것 아니군, 하는 것 같앗다.
천마가 옥기린의 말을 막고서 친절하게도 육식마두들에 대한 설명을 더해 준다. 옥기린은 구라너 그것들 역시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표정이었다. 다른 무사들 역시나 마친가지인 듯했다.
얼마 전부터 개봉에도 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련한 기술자들을 동원해 검과 도를 부족한 대로 생산해 가고 있었다. 대량 생산의 목적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라 그리 대단하다 할 수 없을 정도의 하품들이었지만 그것들을 허리에들 꿰차고 있으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나?
며칠 전에 무림맹 무사들의 개봉 합류가 완전 종결되었다. 그런 움직임은 무림맹주 제갈초홍의 요구에서였다. 맹주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무림맹 무사들이 나와 천마가 있는 개봉으로 합류하자고 맹주를 종용하고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개봉은 사람들의 주요 거주지가 예전보다 오히려 확대되더 있었다. 몇 층으로 된 전각으로 지었던 건물들이 없어지고 작은 석옥만으로 지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상당한 비율을 괴목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 천마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며 사람들이 개봉으로 몰려든 이유도 있었다.
절들은 우리 두 사람을 믿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기적처럼 마계를 물리치고 또다시 이땅에 평화를 정착시켜 주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두사람은 실의에 빠져 있는 때가 그렇지 못한 시간보다도 더 많은 것을. 이미 마음속으로는 패배를 자인하고 있다는 걸 저들이 안다면……
당하지도 않은 일에 미리부터 겁에 질려 있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굳이 그런 현실을 더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이유도 없다. 때로는 더 많은 준비를 하게 하겠지만 이 경우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 모르는 게 속 편하지. 그냥 살던 대로 살다 불가항력이면….. 그때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행하겠지. 나하나, 내 가족도 건사하지 못하는데 난들 어쩌란 말인가.
털썩
천마가 내 옆에 와 앉았다.
“한심한 일이야. 엉성이 회복되어 간다고 하더니….. 모두 개소리였어. 아니면 회복될 엉성조차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비록 그냥 하는 소리이긴 했으나 군중들의 태도는 더 많은 경우에 우리 두 사람을 힘 빠지게 했다. 바싹 긴장하고 있어도 모자란 시점에 조금 전의 유흥이라도 즐기는 듯한 태도는 영 못마땅했다. 물론 옥기린이야 다른 무사들에게 마수들의 공격 형태라든지 공격력의 정도를 직접 보여 주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했겠지만…
어쨌든 모든 게 불만이었다. 요즘 난 점차 불만만 늘어 가는 부정적인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같군.
나는 등에 닿는 석옥의 촉감을 느끼며 내 십 년 간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걸 다시 떠올렸다. 뭐 그리 애석한 일은 아니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만의 하나 이 환난을 무사히 넘길 수만 있다면 내 늙은 날의 훌륭한 소일거리가 사라 진 셈이다.
늙으면 추억을 되씹으며 산다고 하던데. 십 년 간의 내 삶은 외형상으로는 계속되는 일상의 반복으로 무미건조 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때만큼 치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외부에서의 자극이 아닌 내부의 문제로 매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왜 그리 집착이 심했던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동안 지녀 왔던 생각들의 근저부터 뒤흔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 발악이라도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비교적 충실했다. 그 고통의 과정만이 내 영혼에 알알이 새겨졌을 뿐 결론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가 갑자기 그리웠다. 그라면 현재의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를 불러내는 건 간단하다. 그렇지만 그를 내 쪽에서 불러낸다는 건 은연중에 그가 지닌 모든 생각과 이념들마저 어느 정도는 수용하겠다는 표현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난 망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난 그를 불러 내지 않을 것이다. 솔직한 바람은 그 스스로 나타나 주었으면…. 이 정도가 서로의 입장을 한 걸음씩 양보한 타협점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는 내 위기 앞에서도 결코 나타나 줄 생각이 없는 듯햇다. 단념하자.
“그나저나 왜 진인에게서는 연락이 없는 거지? 지금쯤이면 연락이 올 때도 되었잖아?”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예전 일월교 때도 거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그럴 양인가? 아니면 이번엔 진인은 아예 빠지는 건가? 저번 일월산에서 만났던 부녀를 떠올리는 순간, 그들이라도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잇는건 천마 단 하나. 그 외에는 아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급마신인 나찰을 상대할 정도의 고수가 무리 중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다. 광마존도 신수궁주도 울극도 마라 정도나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연검의 경지는 더 원숙해졌다. 아니, 십 년 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어쩌면 그와의 치열한 논쟁 덕분인지도 몰랐다. 그를 이기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더불어 난 내가 개달은 것들을 연습하고 몸에 익히는 데 주력했다.
백 번의 연습으로 초입을 열어 형태와 이치를 깨친다면 천 번의 연습이 있어야 익숙해지고 만 번의 연습 이후에야 통달하게 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예전에 펼치던 자연검의 최극의 정수는 오행신주를 통한 공격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이상의 것을 체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전과는 분명 다른 경지를 보인다.
나는 오행신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좀더 관찰하며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오행신주를 통한 변칙적인 응용에 대해 고민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새로운 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만 명백히 그것이 ‘새롭다’라고 인정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한 번 만들어진 오행신주를 예전에는 터트리지 않는 한 풀지 못했다. 나와 일월교주를 가두었던 오행신주 안에서 나올 수는 있어도 재차 꺼내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오행기를 변형하고 완성하고 해체할수 있게 되었다. 이 변형의 측면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뭐?”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가 내게 뭐라고 했던 것 같다.
“참나, 너 요즘 부쩍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아졌어. 좋아, 그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뭐라고 했었지?”
“여길 떠나는 걸 자제하자고 그랬다. 그리고 금웅도 더 이상 부르지 말고,”
“ 첫 번째 제안은 동의할 수 있지만 금응은 왜?”
“난 그놈이 마수들에게 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가 않다. 다른 마수들이야 금응의 상대가 되겠느냐만 그놈들 중에 금응의 천적이 있다. 만약 두놈이 맞닥뜨리면…. 금응은 죽게 될 거다.”
금응은 우리 두 사람에게 친구 이상의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는 녀석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충실한 수하라도 대로 불만을 토로하거나 싫은 내색을 표하지만 이놈은 그런 것도 없다. 아무 군소리 없이 모든 걸 요구대로 해준다.
“금응의 천적이라는 놈, 그놈이 누구지?”
7대마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난 그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 기억으로는 금응처럼 하늘을 나는 놈이 두 종이다. 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는 바였다.
“쿤다리와 헤르곤. 7종의 육식마수 중에 하날을 나는 놈들이다. 이놈들 중 쿤다리는 당연히 금응보다 강할 거고, 헤르곤은 모르겟다. 그 놈들은 여러 마리가 동시에 공격하니 아마도…..”
금응을 타고 다니지 않으려면 약간의 불현함과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는 번거러움만 감수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놈들과 만나지 않을까? 이세상 살고 있는 한은 말이다.
얼마 뒤 난 보고를 받고 황하변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한 때의 무리들이 지나가는데 잎으로 된 옷을 걸친 이도 그게 찢어진 이도 있었으나 모두 맨발로 일정한 걸음걸이로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거의 천여 명에 육박하는 무리였던지라 어찌 된 연유인지를 물어 보라 했다. 뛰어간 광마존은 다시 돌아와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합니다. 마치 강시들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 무리에 좀 더 가까이 가 보앗다. 광마존의 말마따나 그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 볼 수는 없었다. 표정에도 생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숨을 쉬지도 않는다.
“이들은 죽은 사람이다.”
천마의 결론이 내 마음속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내려졌다.그럼 이 들이 바로….
“드디어 육식 마수들이 움직였나 보다. 그런데 어디서였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지?”
나는 제일 먼저 이곳 개봉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예상을 했었다. 그들을 대적하려 하는 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 개봉이었고, 그 힘이 가장 강성한 곳 역시나 개봉이었다.
나는 마수들에게 죽임을 당해 어딘가로 정처 없이 걸어가는 자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저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테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을 터인데 저런 봉변과 불은을 겪어야 하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마는 야릇한 흥분을 보인다. 그와는 필연적으로 주우할 수밖에 없는 숙적들을 이 땅에서 다시 만나게 된데 대한 본능적인 반응으로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본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제약을 지니고 있다. 이런 불평등한 조건에서 절대 약자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 게 어찌 기분 좋을 수 있을까.
“가자, 경계를 철저히 하고 놈들의 공격에 대비하자. 적어도 마수들 정도는 거뜬히 물리쳐야 체면이라도 서지.”
그는 한때 7대마수 중 하나인 차반의 군주였다고 했다. 7대마수는 저마다 섬기는 군주가 있다. 그 역할을 대마신들이 했었고, 당연 천마도 제외될 수 없었다. 일부 마수는 오히려 마신들보다 상대하기 가다롭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닌 여러 가지 능력 대문이라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수하들을 배치시켰다. 개봉 외곽 지역에 감시 인원을 두었다. 그렇지만 사실상 그들이 마수를 발견한다 해도 더 발리 소식을 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고를 한다 해도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경계 병력을 세우는 것도 무용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일단 그렇게 했다. 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놈들이 온다면 그들의 경계망에 걸리지도 않겠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지만 비교적 사람들은 밤 시간대가 되면 예전의 습관대로 잠을 잣다. 그 시간대엔 개봉 전체에 왕래가 듬해졌다. 오랜 습관이 빚어낸 현상이었다. 대부분이 잠든 시간 파천은 밤하늘을 보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십 장이나 되는 괴목 위로 솟아올라도 잘 보이지 않자 내친김에 더 높이 솟아올랐다.
한참을 오르니 별빛이 또렷하게 보인다. 구름에 몸을 싣고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게 굼만 같았다.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롭게 중원을 떠돌며 내 마음껏 살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처음 쌍노가 나더러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했던 대답이랑 비슷한 것을 깨달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 이상의 변화는 원치 않는다. 여기서만 멈추어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계가 인간계와 양립하는 현 상황이라도 말이다. 난 그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들이 날 무시한다 해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난 그들을 평생 동안 잊고 살 테다.
나와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들만 보장해 준다면 난 그들에게 매년 찾아가 공물을 바치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힘이 없다는 게이라도 비참한 것을, 다시는 이런 현실을 나니 내 주변 사람이 겪게 하지 않으려 그렇게 발버둥치며 노력했건만.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게 있단 말인가? 내가 신이 되려 노력한 것도 아니고 이 땅의 모든 걸 지배하고자 했음도 아니고 그저 평화롭게만 살 수 있기를 바란 것뿐인데. 힘이 없는 자의 소원은 헛된 망상일 뿐인가……
난 방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걱정해 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만 주무세요.”
설란의 나직한 음성. 그녀는 심정의 변화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내가 잠들디 못하면 같이 깨에 있었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들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난 그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고맙다고, 그대가 옆에 있어 주어서 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난 이말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 지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설란.”
“네.”
난 실란과 마주보고 누웠다. 난 그녀를 가슴 깊숙이 끌어 안았다.
“그대가 나의 여인이라는 사실이 난 얼마나 자랑스럽고 다행인지 모르오. 그대가 내 곁에 있어 줘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 알고 있소?”
“그럼요, 알고 있어요.”
“늘 그대에게 근심만 안겨 주는데….. 내가 밉지 않소?”
“저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난….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다뜻한 마음을. 그리고 나에 대한 진실까지.”
“고맙소.”
우리는 그렇게 잠을 청했다. 이밤이 마지막이 되어도 난 행복한 사내였다.
큰 괴수 놈들이 내 뒤를 쫓았다. 그놈들은 어지해 보아도 다돌릴 수 없는 놈들이어서 내 달음질도 소용없는 것이 되었지만 난 포기하지 않앗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가 고개 돌리고 바라보는 시선 자락에 유독 크게 걸려든 건 내 무능을 일깨우는 것이다. 어찌 된 것이 검을 찔러 넣어도 박혀들지 않으니 내 몸부림은 공연한 몸짓에 불과하였고, 덜컹 컵을 집어먹고서 살고자 도주를 택하게 되었다.
나를 따르는 건 수치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벗어 놓고 온 건 자존심만이 아니었다. 저 괴수 놈의 입가에 걸려 있는건 내 친우요, 가족이며, 내가 평생토록 지키겠다. 마음속에 다짐한 내 전부이다.
난 그걸 내팽개치고 오로지 내 생명을 돌보고자 도망가고 있는 것 이다. 저 멀리 푸른 강물이 보인다. 저 강만 넘으면 일단은 살 길이 열릴 터였다.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내 달음박질은 힘을 더해 갔지만 어떻게 된 이유인지 뛰면 뛸수록 목표치는 더 멀어진다. 그렇다고 금세 괴수가 날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도 아니엇지만 마음은 다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놈을 떨쳐야 한다. 그래야 산다. 강물에 어찌어찌하여 닿은 것 같은데 이번엔 강을 건널 배가 없어 마음이 급하다. 일단은 갈대숲에 몸을 숨겨야겠다 싶어 얼른 자맥질을 해 갈대 가운데 내 작은 몸을 숨겻다. 우거진 갈대숲은 내 한 몸 가리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싶엇다.
난 적이 안삼이 되어 숨을 돌리는데 눈가에 축축한 것이 젖어들었다. 이제 살아도 무슨 염치로 살 것이며 죽어도 그들의 얼굴을 어찌볼까. 지금 내가 산 것이 무슨 큰 의마라고 안심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자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분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은가 싶어 자괴감도 든다. 내 마음이 이런데 하늘은 어떤가, 하고 고개를 드는데 괴수의 얼굴이 내 눈앞에 있었다.
“허억.”
“당신, 왜 그래요?”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났더니 설란이 염려하는 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꿈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무슨 그런 요상한 꿈을 꾸었을까?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가족을 잃고 도주하는 내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꿈이었다.
“아니요, 괜한 흉몽을 꾸어서 그렇소. 그만 자구려.”
나는 일어나 앉아 곁에 있는 주전자를 들었다. 잔에 따르지도 않고 주둥이를 입 안에 밀어 넣고 통째로 쏟아 부었다. 속이 시원했다. 막힌게 싹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설란도 자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애써 태연한 신색으로 다시 잠을 청하고자 햇다. 그런데 두 눈을 감아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뒤척거리고 싶지만 옆에 누운 사람을 생각해서 참았다. 한참을 멀둥거리며 그렇게 있었다. 그 순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 좀더 주의를 기울여 기운을 구분해 보았다.
“이건…..어서 일어나시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내 집이랑 나란히 있는 천마네 석옥도 문이 활작 열리며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왔나?”
우리 두 사람은 두 눈을 마주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인지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보이지 않는다. 마무가 대지 위를 흐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무 위까지 Q얻어 있는 괴목의 끝과 그 위마저 분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 정도의 높이에 무엇인가가 다가오는게 보였다.
“왔다!”
새였다. 아니, 마수였다.
“저놈은 헤르곤이다.”
박쥐의 날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온몸은 딱딱한 비늘이 돋아 있고, 이마 가운데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은 것이 툭 불거져 자리 잡았다. 눈은 붉고 이빨이 입 밖으로까지 솟아 나와 있어 흉측했다. 손톱과 발톱이 매의 그것처럼 뾰족하면서도 구부러져 잇었지만 휠씬 크고 날카로웠다.
그놈은 일장 정도의 신장에 날개 길이는 사오 장은 족히 될 듯했다. 7종의 마수들이 대부분 십여 장에 육박하는 것에 비해 이놈은 라그란다와 함께 덩치가 작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바른 놈익도 했다.
그놈은 우리 바로 위에 잇지 않앗다. 개봉의 중심 하늘 위에 떠서 팔짱을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 있다 또 한 마리의 헤르곤이 출현했는데 먼저 온 놈과 하나도 틀리지 않은 판박이였다.
“친애하는 인간 여러분들, 잠을 깨워서 미안하지만 내 얘기를 좀 들어 보셔야겠소.”
분명 그놈이 하는 말이었다. 나는 저렇게 흉측한 놈이 인간의 말을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픈 마음이었지만 분명코 지금 난 그놈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곧이어 사람들이 조금씩 쏟아져 나왔다. 워낙에 큰 소리여서 귀밝은 무림인들이 가장 먼저 나왔고, 그 뒤를 이어 일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온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서로들을 쳐다보다 누구 하나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여기저기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무척 영광이오. 나는 헤르곤이라 불리는 마계의 심부름꾼입니다. 자, 자, 놀라지 마시고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오.”
그놈은 천역덕스럽게 말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육식 마수들이 말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더군다나 저렿게 능수능란하다니. 그리고 대체 무슨 속셈으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난, 놈들이 대놓고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더 불안했고 단순하지 않다는 게 더 걱정스러웠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겠어. 지성을 가진 존재라더니 이건 생각보다 더 한걸.”
“일단 무슨 짓을 하나 지켜보자.”
천마교와 무림맹의 수뇌들은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도 놀라 뭐라고 중얼거리며 주의 깊게 놈을 주시한다.
“마계의 지배자이시자 우주 제일의 강자이신 루시퍼 님의 전언을 여러분에게 전하게 되어 무척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계는 여러분들의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들의 친구로서, 오랜 인간의 역사 동안 동반자로 도움을 주려 노력해 왔습니다.
차원간에 깊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묵계를 깨고 마계와 인간계 사이의 두터운 벽을 허문 것 모두가 인간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우리 마계의 신중한 결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현저하게 발전이 더디면서도 생명이 짧으며 가장 큰 고통과 고난을 당해온 존재들입니다. 이걸 단순히 운명이라 이름하며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잘못된 폐단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우주의 생명체는 동등함과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걸 반대하거나 가로막는 것이야 말로 진리를 거스르는 악입니다. 모든 우주의 생명체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는 윤회의 사슬 속에서 허덕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질서라는 그 이름을 과감히 부수고 뛰쳐나와야 할 때 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마계는 일어섰습니다. 먼저 인간들을 해방시키고 이어 전 우주를 해방시킬 것입니다. 윤회는 멈추어야 하고 없어져야 합니다. 모든 선택은 원래의 권한자인 개개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여루분들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또다시 그 어리석음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혁명의 선봉에 서서 자유를 누리느냐, 선택하십시오. 마계가 여러분들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단,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마계를 선택하는 순간 여러분들이 겪게 되리라 예정되어 있던 정화의 고통도 또다시 반복되는 지겨움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자,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와 뜻을 함께 하여 우주를 지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종속되어 노예로 살아갈 것입니까?“
“저놈 흥분하는군. 그래도 말은 잘하네.”
그럴 듯한 말이었다. 마계의 실상을 모두 안다고 해도 저 말만 듣고서는 동조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여겨질 정도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설마 저 소리에 혹해 마계의 지배를 받아들일 멍청이는 없을 거다. 어, 어,?이것 분위기가 심상찮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한 사람이 그렇게 외쳤다. 모두가 그를 바라본다. 그 자는 괴목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헤르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계의 뜻에 동조하실 분들은 먼저 지금 결정하시고 차후 이곳에서 벗어나시면 됩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향하십시오. 신성스런 마계의 성민이 되길 지원하는 사람들이 지금 온 땅에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가다 보면 여러분들을 안내할 존재들이 나타날 겁니다.
그들을 따라가십시오. 결정은 괴목에 두 손을 대고 마음속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을 맹세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들의 이마엔 신성한 표식이 생길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마계의 성민이 되었다는 유일한 증표가 될것입니다.”
성민이란다. 저 놈이 하는 말은 뒤죽박죽이다. ‘신성한’이라고? 정말 어휘 선별력이 특별한 경지에 올라 있군. 마계의 사자를 자처하는 놈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는 놈이야. 그러나 저놈의 말은 그럴듯하고 또한 달콤하기 그지없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저놈의 말에 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보다는 마계의 지배를 인정하는 의식에 더 관심이 갔다.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한다. 아주 쉬운 일이었다. 글은 인간들 간의 계약을 의마한다면 말은 영혼을 제약한다. 모든 영적인 관계는 말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쉽게 뱉어낸 말조차 공간에 새겨하고 있다. 개가 아무리 요사한 웃음을 흉내 내어 짖어본들 개소리지 않겠는가. 너희들을 아무리 아름다운 옷으로 치자해 본들 여전히 내 눈엔 흉측한 마수들로 보일 건 변할 수 없는 진실인 것을.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시작해 볼까?”
천마가 분위기를 잡아갔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마황님의 뜻을 전하러 온 거지 싸우려고 온 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먼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마황님의 분노가 깨닫지 못하는 미련한 자들에게,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그들에게, 혁명조차 생각지 못하는 용기 없는 자들을 향해 내려질 것입니다. 그때엔 바알세불님과도 적으로 서게 되겠지요.“
놈들은 끝까지 일관된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놈은 아까부터 루시퍼 님, 마황신님, 마황님 하며 스스로 흐트러지고 있다. 아니면 원래 그렇게 마음대로 부르는가?
“좋다, 그럼 네 놈들 마음껏 사람들을 유혹해 보라.”
천마는 그 말을 하고서는 바닥으로 내려서더니 제 석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홀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갑자기 민망해져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러나 나까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놈들이 하는 말을 지켜봐야 했고 사람들의 선택을 또한 지켜봐야 했다. 일월교를 뒤에서 획책한 자들이라 뭐가 달라도 달라. 저 당당함은 강자의 오만인가?
“이제 선택의 시간입니다. 무엇을 해도 스스로 책임질 자신이 있다면 그대로 용기를 갖고 하십시오. 용기 있는 자만이 진실을 알 기회를 얻습니다.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선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미안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선택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면 그만입니다. 아직 여러분들은 불완전해서 무엇이 진실인지 바르게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마음에 심긴 씨앗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라는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질문해도 됩니까?”
“그러십시오.”
“마계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찌되는 겁니까?”
“저희들은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항하는 자들은 죽입니다. 그러나 망설이는 자들에게는 기회를 더 제공합니다. 단,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마계의 궁전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런 저희들의 최후의 호의마저 거절한 것으로 간주해 죽이거나 노예로 남습니다.
그리고 성목은 저절로 말라죽을 것이므로 이 땅에 그 어느 곳에도 먹을 것이 없어질 겁니다. 척박한 땅에는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 할 거고 살아남는다 해도 저희들이 죽일 겁니다. o대답이 되었습니까?“
이래저래 자기 말을 따라 청해로 가란 얘기이군. 사람들은 아마 그곳에 세워진 호화로운 궁전을 보면 마음이 많이 흔들리겠지. 그들의 환대를 받아보면 마음이 흔들릴 거고. 그래도 안 넘어가는 사람들은 노예로 삼는 건가?
어차피 모든 건 결정되어 있다. 처음부터 가지 않을 사람들과 갈 사람들. 자의로 저들의 지시를 따른 사람이 후에 저들의 뜻을 거부하기는……아마도 힘들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저들의 뜻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영안이 열려 저들의 간계를 파악해 내거나 의지가 남달라 견디어 내거나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들만 마계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래서 잔인이 마계의 유입을 그리 염려한 거군. 저들이 유입이 되지 않는다면 자연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겠지만 저들의 강력한 힘은 그 선택의 폭마저 좁혀 놓았으니.
나도 결과를 지켜보기 힘들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아를 안은 설란과 환아도 내 뒤를 따랐다. 과목이 말라죽는다고 했던가? 역시 이것부터 퍼트린 이유가 여기 있었어.
먹을 것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청해로 떠날 것이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말이다. 재난에 죽은 사람들이 차라리 낫다고 해야 하나, 이런 선택에 갈등하지 않아도 좋으니. 저들은 아직 그 어느 쪽으로도 확신이 서지 않을 거다. 이런 판국에 안락을 넘어서 쾌락이 있는 곳과 고통과 두려움과, 끝내 처참한 죽음이 있는 곳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나도 모르겠어.
빌어먹을. 술이 없는 게 오늘 따라 왜 이리 서글프냐? 이럴 때는 술에라도 취해 자는 게 최고인데 말야. 나는 또다시 머리 뒤 꼭지가 인두로 지진 듯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간혹 있는 통증이지만 오늘은 유별나게 더 심했다.
나는 벌렁 누웠다. 대자로 벌리고 있으니 편하긴 했다. 어차피 선택은 개인의 몫. 저놈이 한말은 맞다.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그리고 담담히 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어차피 죽음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그냥 기다려야 하는 존재인 거다.
진실의 문이 열리는 건 죽음 이후에나 가능한데 억지로 그걸 열려고 해봤자 돌아오는 건 혼란뿐. 인간들끼리라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그만이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말고 서로의 신념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저놈들은 그러지 않는다. 저놈들은 최대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 놈들의 신념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도 안 통하면 힘으로 압박하고 통제하고 속여 진실인 것처럼 위장하고, 마지막으로 영원히 유배시켜 버린다. 아무도 반대할 수 없도록. 그래서 저놈들은 악어다. 그것만으로도.
흔히 불가에서 탐, 진, 치를 여의고 마음을 비우라고 말한다. 비운다는 의미는 공인데 비어 있으니 무엇도 찰 수 있음이요, 그 무엇이라도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건 모든 현상에 적용이 되는 오묘한 법칙이기도 해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갖다대면 남을 용납하고 제 자신을 비우라는 것이 되고, 일반적인 이해로 따져도 비어 있으니 가득 찼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건 자세에 대한 표현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비우는 자세. 공을 이루어 가는 과정, 이것이야 말로 깨달아 가는, 완전해 가는,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가까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우주가 비었어도 가득 차 있어 그 안에 만물을 담고도 남음이 있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모든 이를 용납하고 싶고 웬만하면 나와 다른 견해를 지닌 이도 존중하며 이 세상 살다 가고 싶다.
그런데 저 마계인은 용납하고 싶지가 않고 인정할 수가 없고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없다.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달라졌더라, 라고 누군가 외쳤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얄팍한 것이 사람 마음이요. 그 마음의 작용이 요상하여 감히 현자라고 자처하는 이도 앞일을 예측하기 난감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사람의 진실된 실체라면 난 인간인 것을 앞으로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개봉에 그 차고 넘치던 사람들이 물 빠지듯 쓸려가고 텅텅 비어있다.
텅텅 비어 있다는 표현은 좀 잘못된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 마계의 궁전을 향해 떠났다는 결론이다.
나는 탄식했다. 천마교와 무림맹과 일반 사람들까지 합쳐도 5만이 채 안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만 조금 못되는 인원이 천마교도들이고 보면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다. 이 정도만 해도 많다 해야 하는가?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천마는 나와는 반응이 달라, ‘어,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 라고 해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천마교에서도 혼세마인들은 대부분 따라갔다. 영적인 각성은 생각보다 더뎌 아직 사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린애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마개의 영역으로 들어섰으나 제 의지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건 중원 전체, 더 나아가서 세상 전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천마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아니야, 생각해 봐라. 저번에 보았던 자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들 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은 자들도 보인다. 이건 이미 한 차례 선별 과정을 거치고 그들의 분노가 임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마계 궁전에서 먼 곳에서부터 차례대로 시도되었다는 의미겠지. 머잖아 이곳에도 역시 그들의 공격이 시작 되겠군.”
우리의 이런 예상과는 달리 며칠이 지나도 마계에서 개봉을 공격하는 그 어떤 시도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말려 죽일 생각인지 아니면 너희들 쯤이야 한 끼 식사거리도 안 되니 마지막에 처치해 주겠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그들의 실행에 중대한 변수라도 생겼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개봉을 스쳐 지나거나 당당하게 중앙을 통과해 가는 자들-그들은 그래도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숙여 보였다-이 자주 보였다. 대부분 무리를 지어 이동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강시같은, 영혼이 억제당한 자들도 보인다. 그들은 마수의 명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 아무런 의식조차 없었다.
영혼이 육신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억제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에는 비감이 서린다. 더군다나 저들은 거부했기에 저런 상태가 되지 않았겠는가. 고급 영자들이 아니어서 저런 지경에 빠졌다니, 어이없고 한심해 울컥 울화가 치밀었다.
난 영계에도 그런 고급, 하급의 구분이 있는 건 아직까지도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설사 백 번 양보해 모든 걸 인정한다 해도 하급인 것만도 억울한데 저런 화까지 입어야 하는 저들의 처지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신이라면……. 내 생각은 이런 식으로 비약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라면 이런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자유라 하지만 이건 차라리 형벌에 가까워.
그들의 뒤를 따라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개봉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마계의 강요를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떠돌며 숨어 지내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있던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자세히 알아 봤더니 그들 무리는 호광성 장사의 사람들이라 했다. 그곳은 이미 괴목이 말라죽고 대지가 터지듯 쩍쩍 갈라져 더 이상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 되었다 했다. 그래서 괴목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을 향해 떠났다가 개봉에 나와 천마가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 들은 기억을 되살려 내친김에 이곳까지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천마의 결론은 간단했다.
“일종의 경계를 지을 셈인가 보군. 그도 아니면 청해 인근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거나. 아니지, 그렇다면 몰려드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테니 어느 지역까지는 내버려 둘꺼야.”
천마는 따지고 보면 그들의 의식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그는 어떤 일에 접하면 곧바로 근접한 결론을 도출해 내어 마음이나마 후련하게 해줬다.
그들의 의도는 점차 분명해져 갔다. 계속 개봉으로 유입되거나 지나치는 사람들을 붙들어 세워 두고 아래 지방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유입되는 사람은 여러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었지만 지나치는 사람은 그 방향으로 볼 때 산동이나 절강성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나머지 지방 사람들을 최적단 거리를 택해 이동할 것이므로 이곳을 거쳐 갈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최남단의 사람들까지 개봉으로 유입되었다. 올 사람들은 다 오고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났다. 그들에게서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아래지방, 이를테면 무창 같은 곳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대시진이었던 곳만 벗어나면 사람 구경하기가 힘이 든다고 했다.
결국 두려움에 잠긴 사람들은 동류가 모여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창 아래로는 이미 괴목들이 모두 말라 버렸다는 사실도 더불어 확인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괴목이 말라 버린 경계 지점이 산서성은 태원까지이고, 하남성을 거쳐 호광성은 무창에서 형주를 타고 이어지는 선까지이다. 사천성과 귀주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와 천마는 금응을 불러다 타고 중원을 돌아보았다. 둘러보니 대체적으로 장강 이남은 괴목이 모두 말라붙었고 강북만이 아직 그대로였으며, 단지 무창은 예외로 남겨져 있었다. 동쪽으로는 산서성 태원에서 하남성 경계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호광성과 마주치는 부분으로 이어졌다.
나는 한 가지 사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숙부는 어찌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는 남았을까, 떠났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중원을 전체적으로 보고 난 뒤, 개봉으로 돌아와 보니 장삼봉 진인이 와 있었다. 그는 의외로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괴목의 잎으로 된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더니 마계의 주술이 침범하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는 한 가지 말만 하고 다시 돌아갔다. 그는 매우 바쁜 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 마수들의 공격이 있은 뒤에 마신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할게다. 그때 은자천을 바롯한 이 땅의 선맥들도 총동원되어 싸울 거다. 운명은 이미 하늘의 뜻에 맡겨진 것.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없지.
파천, 지금이라도 뜻을 굽힐 생각은 없는 게냐? 난 그걸 확인하러 왔다. 그리고 마신이 등장하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내가 이르는 곳으로 오도록 해라. 꼭 금응을 타고 괴목이 고사한 경계를 지나쳐라. 그러지 않으면 마황의 촉수를 벗어날 수 없다.“
“어디로 오라는 겁니까?”
하여간 노인네 비밀도 많다니까.
“장백산 정상으로 오너라. 와보면 널 안내하는 자가 있을게야.”
그 말을 하고서 또다시 훌쩍 개봉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지금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물러 있는 곳은 이곳 개봉과 사천성 성도, 호광성 무창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적은 인원이었다. 개봉은 어림잡아 5만정도. 나머지는 3만을 넘지 않는다. 결국 남은 사람은 중원 전체를 따져도 20만이 안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봉에 모였던 무림인들만 해도 그보다는 많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현실이었다. 하긴 천마교도 중에서도 절반이 빠져 나갔으니 다른 사람들을 말해 무엇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