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47화 : 루시퍼,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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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검 – 147화 : 루시퍼,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다.


루시퍼,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다.

파천의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중간계의 어디쯤 되는 건지를 일부러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중간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원령체의 지혜도 중간계에 대해 그에게 알려 주는 바가 없었다.
그는 환경이 변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한 곳. 거대한 석전이 보였다.
거인들의 왕국에라도 온 듯 여겨지는 거대한 석전은 문의 높이만도 웬만한 산의 중턱에 이를 정도였다.
석전 안은 수없이 많은 방으로 빼곡 채워져 있었다. 파천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반쯤열려 있는 문 안으로 슬쩍 몸을 디밀었다. 바로 그때였다. 둔중한 통증이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시야가 차단되었다.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쏠린다는 걸 자각했지만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파천은 방 중앙에 힘없이 쓰러졌다.
파천의 상반된 두 의식은 처절하게 사투를 벌렸다. 싸워 이기는 것만이 남아 모든 걸 지배하게 될 것이다. 지난날의 기억은 더 없이 좋은 병기가 되었고, 그가 품었던 그 많은 감정 상태의 지꺼기들은 이제 더 얺이 훌륭한 사냥터로 화했다.
그 안에서 파천의 자의식은, 본류적인 의지는 박약한 방외자가 되어 멀찌감치 쫓겨나 있는 상태였다.
앞은 시야가 트였고 뒤는 막막한 어둠이라면 누구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 내부의 갈등은 미리 그렇게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혼란으로 몰려갔다.
치열한 싸움은 정점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음에 상처를 냈다. 선한 의지는 불현듯 아름다운 회상으로 젖어드는가 하면 악한 의지는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을 자꾸만 연출했다.
실제로도 파천의 외견은 보아 주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광란의 몸짓. 그의 체내, 외를 가리지 않고 힘은 폭주되어 갔다.
빨개진 파천의 눈은 무언가를 자꾸만 찾아 나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가둔 공간을 향해 무모한 공격을 시도한다.
그러던 파천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맹렬한 외침은 거칠긴 하나 잔잔한 호흡으로 바뀌었고 입가에 미소라고 여겨지는 한줄기 선이 그어졌다.
“아가야, 우리 아가야. 예쁘게 커서 장차 훌륭한 황제가 되어야지. 온 백성이 진심으로 우러러보는 사랑 받는 어버이가 되어야지.”
파천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 파천의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사랑스런 표정엔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포근함이 담겨 있었다.
아기는 방싯방싯 웃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매만졌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 아기의 얼굴에 가득하다. 어머니는 아기의 손을 잡아 살포시 잡아 당신의 입술에 갖다대었다. 아기는 자지러질 듯 웃었다.
파천은 바보처럼 입을 헤벌리고 웃었다.
‘어머니.’
그는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컸다. 그에게 어머니란 의미는 낯선 것이다. 그럼에도 파천은 언제나 그녀를 그리워했다. 성인이 된 이후까지 그의 사랑의 대상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어머니를 찾아내는 행위였다.
“클클클클…….”
아기의 얼굴이 바뀐다. 문약한 황제. 황제는 불타는 궁성을 뒤로한 채 눈물을 흘리며 도주했다. 살길을 택해 다른 이들의 죽음을 빌려 간신히 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산으로 이르는 길은 너무도 멀고 험했다. 한 번도 이런 시련을 겪어 보지 않았던 황제는 지치고 곤한 육신을 아무데라도 눕혀두고 싶었다.
걸인의 초라한 행색은 모든 이들에게는 멸시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은 차가운 밥 한 주먹 대신 그보다는 배는 더 차가운 욕설과 비웃음 그리고 뼈가 시릴 정도의 폭력을 선사했다.
황제는 서러워서 울었다. 자신의 초라함이 싫어서 머리를 벽에다 찧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끈질긴 삶에의 욕구를 버리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경멸했다.
태산에서의 수련은 힘들고 버거웠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어 좋았다. 단순하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건지 황제는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깨어 있는 시간은 연약한 육체, 그 한계와의 싸움이었고 잠든 시간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악몽과의 사투였다. 잠을 줄였다. 그리고 육신을 더 괴롭혔다. 피곤하고 지쳐 곯아 떨어지길 원했다.
갑작스레 주어진 막강한 힘. 예전엔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초임의 힘. 황제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하하하.”
파천은 무림의 지존으로 우뚝 섰다. 누구도 자신 앞에 고개를 빳빳이 세우지 못했다. 절대의 힘은 원하는 모든 걸 가능케 했다. 많이 퇴색되고 상당히 변질되었지만 순수했던 옛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를 지켜 주는 사람들. 자신을 위로하고 믿고 따르는 이들. 이제 다시 파천은 힘을 내야 할 조건이, 상황이 생겨났다. 목표는 뚜렷해지고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넘치는 힘이 잘못 사용될 때 불러 오는 비극을 보고 겪기도 했다. 자신이 선이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행복을, 평안을 해치려는 자들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싸웠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주변의 친인들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다.
파천은 이겼다. 모두의 얼굴을 다시 맞은 평화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것이면 족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 변함없는 신뢰를 주고, 받는 동료들 그리고 영원히 함께할 친구. 그들은 파천에게 삶의 전부였다. 세상의 어떤 숭고한 가치보다도 소중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여서 좋다. 파천은 마냥 행복했다.
‘이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파천은 그의 일생을 다시 체험하고 있었다. 어린 유년의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태산에서 칩거할 때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다시금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웃고 울고 슬퍼하고 좌절했다. 그러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된다.
“루…… 시…… 퍼.”
파천의 메마른 입술은 천천히 그렇지만 매우 또렷하게 하나의 이름을 읊어냈다.
죽는다. 사람들이 죽는다. 찢기고 갈라진 배를 움켜쥐고 내장이 반이나 삐져나와 손 안에 그득한 이가 고통을 호소한다.
아이를 업은 여인네는 가슴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피는 아랑곳없이 아기를 품안에 안으려고 허우적댄다. 마수들에게 먹히고 마신들에게 짓밟히는 사람들. 철저한 유린은 지옥도를 세상에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이었다.
“으으으으으.”
파천의 입에서 이 저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머리칼을 몽땅 뽑아 버릴 듯이 움켜쥐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파천의 얼굴은 점차 악마로 화해 가고 있었다.
루시퍼는 죽음을 집행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고 파천이 보는 앞에서 친인들이. 죽음을 함께 하자던 친인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마수들의 입 안에 반쯤 걸쳐진 그들의 시체는 파천의 눈에서 피를 쏟아내게 했다.
“욱…… 크억.”
파천은 울었다. 그들의 죽음이, 고통이, 한이 시퍼런 검날이 되어 가슴을 쪼개 왔다. 아팠다. 쓰리고 아팠다.
“으아아아아.”
파천은 이기고 싶었다. 마신과 대마신 그리고 루시퍼를 이기고 싶었다. 그들을 무찔러 죽어 가는 친인들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제 그의 앞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죽음도 이제 파천에게는 새로울 수 없었고 그를 더 이상 슬프게 할 수 없었다.
파천은 루시퍼를 다시 불러냈다. 물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우리가 네 야심, 그 추악한 야심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너는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는냐? 네가 뭐기에, 네가 무슨 자격, 무슨 권한으로.”
파천에 의해 불려온 루시퍼는 대답이 없다. 그냥 빙그레 웃고만 있다.
파천은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광란의 마지막을 알리는 포화였다. 파천은 가둔 공간은 그의 의지로써 탈출해야만 했다. 환상은 그의 의식의 투영. 분노와 슬픔을 먹고 더 큰 족쇄를 채웠다.
이대로라면 파천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자멸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걸 인식해야 할 파천은 자신 안에 있는 괴로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만 있었으니.
“파천.”
작은 소리였다.
“파천.”
꿈결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파천.”
파천의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였다.
“일어서라. 너는 강하다. 네 안의 널 믿어라. 너는 그 무엇보다 강하다.”
‘그럴…… 리가 없어. 난 약하다. 모든 걸 잃었는데…… 강할 리가 없다. 아들과 딸까지 빼앗긴 아비가…… 어찌 강하다 할 수 있나…….’
“일어서서 다시 너를 보아라. 네 안에 숨겨질, 살아 숨쉬고 있는 가능성을. 그 무한함 힘을 느껴 보아라. 자, 어서. 어서 일어나라.”
‘싫어. 힘이 없어. 난…… 너무도…… 피곤하다. 난 …… 이대로…… 쉬고 싶다.’
“그럼 아이들은? 그럼 설란과 천마는? 그럼 넌 기다리고 있는 많은 영자들은? 그들을 모두 외면할 참이냐? 그들은 널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네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파천의 풀렸던 동공이 희미한 빛을 담고 있었다. 그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인도하는 한줄기 빛을. 수호자의 봉인된 의식. 이제 그것이 풀어지고 있었다.
굳게 잠겼던 문이 활짝 열리고, 어둠을 가르고 새별을 알리는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파천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빛은 따스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그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가 있었다.
“파천, 일어서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여기서 이러고 잠만 퍼 자고 있느냐?”
“너는?”
“나? 나는 너다. 영자들은 나를 일러 수호자라고 한다.”
‘수호자…… 그렇군.’
“잘 견뎌주었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다. 나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 일어나서 네 힘껏 외쳐봐라. 그 동안 널 괴롭혀 왔던 운명과 의문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자.”
‘후훗, 자신만만하군.’
“그럼. 나는 널 믿거든. 날 믿듯이 널 믿는다. 해낼 수 있으리라고. 네가 해내지 못하면 아무도 해낼 수 없다.‘
‘칭찬인가? 기분은 나쁘지 않군.’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내가 만든 환상대자와는 달리 이곳과 영계의 시간 흐름은 동일하다. 네가 이렇게 퍼져 있는 동안 영계가 위기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파천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직까지도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빛줄기를 눈부신 듯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거 봐라. 넌 해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자, 가자. 첫 관문은 넘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뚫어 봐야지. 너와 내가 힘을 합한다면 광명 앞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처음으로 파천이 입을 열어 말했다.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리고 관문이란 게…… 대체 얼마나 많이 남은 거지?”
“관문의 수는 꽤나 많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고…… 시력은 점차 돌아올 거야. 그동안은 내가 네 눈을 대신하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
파천의 수호자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지금은 그를 의지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걸음 하나까지 그의 지시를 이행했다. 점차 둘의 호흡은 척척 맞아들어 갔다. 수호자에 대한 신뢰. 그것이 없었다면 이처럼 빨리 호흡을 맞추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파천이 석전이라 생각했던 본인의 자의식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것이었다. 그처럼 많은 방이 있는 건 한 인간의 의식의 세계가 그처럼 무한하다는 걸 뜻했다.
파천은 하나하나 몸으로 겪어 가며 싸워 이겨야 했다. 어떤 강하고 교활한 적과 싸우는 것보다도 더 힘든 사투였다.
수호자는 말했다.
“이 끝을 넘어서야 진정 네가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른다. 생명의 뜰. 그 무한한 세계를 최초로 방문하는 생령이 된 걸…… 파천, 축하한다.”

매소 나마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은 심령을 한없이 위축시켰다. 제왕도 그걸 느꼈다.
‘이건 아바돈이 만들어낸 마기다. 이곳 어딘가에 출구가 있다. 그들은 그곳을 통해 공간을 넘어 이곳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아바돈은 이런 곳을 무한계 곳곳에 벌써 오래 전부터 만들어 두었다. 그들은 그 통로를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며 무한계 동정을 살펴 왔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단순히 그런 정도가 아니다. 불길하고 섬뜩한 기운. 이건 무엇 때문인가? 마령의 기운과 닮아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로메로도 이때 비슷한 류의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들이 혹……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한 건가? 금단의 마신이라도 제조한 것이라면…… 일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마신이라면 아바돈에 의해 만들어졌고 몇 번인가 출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로메로가 말하는 건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
‘대적자들이 하다가 중지한 그 일을 …… 아바돈이? 아닐 거야.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미 오래 전에 판명 난 일.’
순간 로메로의 뇌리를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아바돈과 대적자가 연합한 징후가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결국은…….’
로메로는 할 말을 잃었다. 불길한 자신의 예감이 맞다면 이야말로 큰 일이 아닌가! 로메로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몸서리쳤다.
‘놈들이 그런 짓을 했고, 또한 성공했다면 신의 분노를 모면할 길이 없어진다. 과연 그런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했을까?’
로메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최종적으로 자신이 너무 앞질러 가고 있다고 결론은 내렸다.
로메로와 제왕이 한 곳에 모였다.
[아무것도 발견되는 것이 없는데 그만 철수시키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로메로의 영언에 제왕도 동의했다.
[그러는 게 좋겠소. 여긴 왠지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을 것 같소]
로메로는 곧장 불칸에게 지시를 내렸다.
[철수시켜. 아무것도 발견되는 게 없다.]
불칸은 로메로의 결론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럴 리가. 아까 분명 기척이 포착됐었잖아.]
[이곳 어디쯤 놈들의 본 진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것 같다. 놈들은 이미 그곳을 통해 모두 빠져나간 뒤다.]
불칸은 조사대에게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카포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또한 그것이 로메로의 최종 진단이라는 말에 슬쩍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보물. 제왕의 보물에 그의 마음이 가 있었다.
조사대는 긴장을 풀며 원진을 풀었고 주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보물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섰다. 이제 눈치 볼 것도 없었다. 후다닥 뛰어가 잽싸게 손에 쥐면 자신의 것이 된다. 망설일게 무에 있겠는가.
아난다와 페리칸, 카이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보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그들은 원하던 대로 보물을 한두 가지씩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들은 보물을 얻은 기쁨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곧 터진 로메로의 경고성은 그들 모두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다. 모두 조심해.”
보물을 손에 든 채 화들짝 놀라는 자들의 꼴들이란 그리 좋게 보아 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난다는 주변을 섬세한 감각으로 훑어보았다. 대지 아래, 섬뜩한 기운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아니, 스며 나오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리라.
약간은 붉은 빛을 띠고 있던 흙이 검게 타들어 가고 먹물이 번져가듯 새까매졌다. 그건 나마스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제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건.”
가슴을 갑갑하게 하던 불길함의 정체를 그도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저들이 위험하다.’
그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즉각적으로 판단했다. 허공중으로 도약한 제왕은 손에 홀을 쥐고 힘껏 외쳤다.
“이 사악한 놈들, 이런 짓을 하고도 신의 심판을 면하리라 생각했더냐!”
제왕의 홀에서는 눈을 부시게 하는 무지개 빛이 폭발했고 곧장 검게 물든 대지를 향해 힘차게 내리꽂혔다.
파파파팍
땅이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매소 전체가 함몰될 듯 휘청댔다.
그그그긍
조사대원들은 하나같이 기함을 하며 위로 힘차게 솟구쳤다.
그들은 모두 허공중에 뜬 채로 눈을 동그랗게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매소를 반쯤 삼켜버린 대지는 아래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는데 그 깊이가 무려 30여 장에 이를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엔 놀라움과 함께 비탄이 가득했다. 시커멓게 고여 있는 물은 점차 위로 차 오르고 있었다. 거세게 용솟음치는 물줄기에 휩쓸려 여기저기 떠도는 건 영자들의 시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지면과 수평을 이룰 정도 까지 차 오른 물은 차츰 고요하게 안정을 찾아 갔다. 하지만 조사대의 긴장은 더해 갔다. 아난다가 소리쳤다.
“이제보니…… 저건 고르곤!”
중간계에 드나들었던 옛 절대자들로부터 전해진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중간계에는 각종 생명체가 잡다하게 뒤섞여 있다. 하나같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고르곤이란 생물이었다.
생명이 다한 시체가 썩어 나중에 시커먼 물만 남으면 그곳에서 더 검은 색의 곰팡이가 핀다. 중간계의 짐승들이 죽은 시체에서 자생한 이 곰팡이는 오랜 세월동안 서로가 서로를 찾아 모여들고 그것이 뭉쳐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그것이 곧 고르곤이다.
고르곤은 처음 접하는 기운을 그대로 복사하는 습성이 있다. 만약 고르곤이 천사를 만나거나 영력이 탁월한 영자를 첫 대면한다면 이 놈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악령이나 사악한 기운을 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흉폭한 마성을 띤 괴물이 되는 것이다. 중간계에서 고르곤이 나타나는 건 흔히 볼 수 잇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나타났다하면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켜 버린다. 그 힘을 당해낼 생명체가 전무하다.
이런 무지막지한 고르곤이 영계에 나타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제왕은 생각했다.
‘마령을 쐰 고르곤이라면 일단은 피하고 봐야 한다.’
로메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공간을 갈라갔다.
고르곤과 마주치지 말라. 그놈의 눈만 보지 않으면 살아날 수 있다. 조사대원들은 기를 쓰고 필사적으로 도주를 감행했다. 저 멀리 뒤에서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캬아아악.”
귀를 뜯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기분 나쁜 울음소리였다. 조사대 선두에서 날아가던 로메로가 모두에게 경고를 잊지 않는다.
“절대 돌아보지 마라.”
로메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조사대원들 중 하나인 슐탄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매소 나마스의 무너진 건물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시커멓고 흉측한 괴물이 길쭉하게 앞으로 튀어나온 입을 쩍 벌리고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그놈의 눈이 슐탄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슐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전신이 마비되어 날아가던 속도를 늦추고 말았다.
“캬아아악.”
고르곤이 뛰어온다. 슐탄은 허공에 우뚝 멈춰 서 있었다. 조사대는 슐탄을 그냥 내버려 둔 채 멀리까지, 고르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다.
혼자 남겨진 슐탄. 마령의 기운에 영향을 받았다지만 그는 마신들과 다른 일반의 영자였다. 두려움에 전신이 떨려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으으으으.”
그런데도 도망을 가지도 못했다. 극도의 공포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르곤의 마안이 슐탄의 전신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고르곤은 슐탄의 지척에 이르러 손을 뻗쳤다. 가까이서 보는 고르곤은 더 흉측했다. 새빨간 눈은 세로로 쭉 찢어져 있고 주둥이는 앞으로 일장이나 튀어나와 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있어 입안이 훤히 보였는데 세모꼴의 이빨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전신의 피부는 우둘투둘하고 손과 발끝엔 통으로 된 하나의 창을 붙여 놓은 듯하다.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돼 등 뒤까지는 말의 갈기처럼 붉은 털이 수북했고 견갑골은 귀밑까지 이를 정도로 툭 불거져 있다.
“크르르르.”
작게 호흡하는 소리건만 슐탄에게는 천둥이 치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으으으으, 사, 살려줘. 으아아악.”
슐탄은 마지막 발악을 했다. 두 손을 힘차게 휘두르며 짜낼 수 있는 전력을 고르곤을 향해 쏟아냈다.
퍼펑
눈두덩이쯤을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멀쩡하기만 했다. 타격을 받은 건 고사하고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는다. 고르곤의 집게손이 슐탄의 몸을 부드럽게 집었다.
“으아아아아.”
비명을 질러 보았지만 구해 주러 오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아바돈과 내통해 오고 있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이가 있을까? 그를 처단할 증거가 불충분해 지금껏 방치해 두고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구해 주고 싶을 만큼 동료애를 발휘할 자들은 조사대 중에 있을 턱이 없었다.
고르곤은 고개를 갸웃하며 슐탄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 갔다. 끔뻑이는 눈알이 슐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동공 안은 깊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슐탄은 체념했다. 그는 두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고르곤은 호기심이 충족되었는지 입을 쩍 벌리고 슐탄을 날름 삼켜버렸다. 슐탄은 비명도 남기지 못하고 고르곤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르곤은 하늘은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세상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크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고는 자기가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바돈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빨리 그들이 움직이리라고는 무한계측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룬의 남부 지역에서 대적자들이, 서부 지역에서 아바돈의 에레츠 군이 동시에 공세를 발동시킨 것이다.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당했으나 하룬의 지도부는 침착했다. 시점이 앞당겨지긴 했으나 미리부터 대비하고 있던 일.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의 전략대로 먼저 칠대부족을 앞세웠다. 칠대부족 중 첫 자리를 꿰차고 있는 용족이 대적자들의 본진을 머리부터 끊어 갔고, 라곤의 술사들은 아바돈의 군대를 혼돈 중에 빠트렸다. 역시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라곤족은 대규모 전투에 가장 효과적인 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각종 술법들은 직접 부딪치기도 전에 아바돈의 진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술법은 기본적으로 홀로 부딪쳐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동료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바돈은 자연스럽게 전력이 하향되는 듯했다.
그러자 이번엔 아바돈에서도 술사들이 동원되었다.
어둠과 어둠이, 물과 물이, 불과 불이, 환상과 환상이 격돌했다. 아바돈의 술사들은 라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쟁에서 선공은 준비된 적의 예봉을 꺾을 때에만 빛을 발한다. 선공을 했음에도 되려 적에게 휘말린다면 타격을 더 크게 돌아온다. 에레츠 군은 잠시 주력을 뒤로 물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바돈이 물러나니 무한계 연합군의 집중 포화는 당연 대적자들에게로 몰렸다. 대적자들은 허둥대며 아바돈이 퇴각한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은 뒤였다. 무한계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지를 듯 높아졌다.
상대를 지나치게 얕잡아 보아도 안 되겠지만 도에 넘치게 보아 줘도 손해다. 첫 번째 격전의 결과만 놓고 보면 아바돈과 대적자는 무한계연합군의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룬 지도부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아바돈의 삼군 중 우라노스가 전체의 5할을 차지한다고 봐야 하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에레츠 군은 아바돈의 주력이라 볼 수 없소. 그들로서 잠시 우리의 전력을 시험해 봤던 것 뿐. 잠깐의 승리에 도취되어서는 긴 싸움을 이겨낼 수 없소.”
연합군의 지도부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로메로의 말은 모두가 수긍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간략하게 앞으로의 전황을 예상했고 덧붙여 연합군의 대응 전략도 설명했다.
“에레츠와 대적자의 본진만으로는 우리 상대가 아님을 적들도 알았을 터. 아바돈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프뉴마와 우라노스가 합류한 시점에서야 전력을 퍼부을 것이오.
그들은 현재 남부에서 서부에 걸쳐 있지만…… 내 판단에는 서부쪽으로 완전하게 옯겨 갈 공산이 크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사평의회 의작인 에이어의 질문이었다.
“한 곳으로 전력을 모을 것은 분명한 사실. 왜 굳이 서부 지역이냐 하면, 그건 두가지 이유 때문이오. 하나는 우리가 메덴으로 들어가는 걸 그들이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오.”
“으음.”
“흠, 그렇겠군.”
“미리 우리의 퇴로를 봉쇄해 놓을 것이 틀림없소.”
로메로는 퇴로라고 했다. 싸움을 시작하는 마당에 벌써부터 패배를 염두에 둔다는 건, 더군다나 이런 자리에서의 언급은 미리부터 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로메로는 전려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항상 염두에 두고서 계획을 짜고 그에 맞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다. 적과 대등한 전력이라 판단될 때에도 패배한 이후까지 계획의 범위를 확대시켜 놓는 것이다.
“메덴은 적은 수록 많은 수를 상대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요충지라할 수 있소. 더군다나 아바돈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성스런 기운이 머물고 있는 땅.
그들은 우리가 메덴으로 이동할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소. 아바돈의 에레츠 군이 우라노스와 프뉴마의 지원 없이고 급하게 서부 지역을 막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소.“
“그럼 우리가 먼제 메덴으로 전력을 이동시켜 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수련자 카포의 그런 의문은 당연했다. 굳이 유리함을 버릴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그건 잠시 뒤 설명하리다. 아바돈의 주력이 서부 지역을 봉쇄할 것이란 추측의 근거 중 또 하나는……. 여러분 들 중에 혹시 아바돈의 본영이 어디인지 아시는 분이 계시오?”
아무도 모른다. 아바돈의 본진은 구구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중에도 단 한 번도 영자들에게 발각된 적이 없다. 혹시 로메로는 알고 있었단 말인가?
“모르실 거요. 나 역시 모르오. 하지만…… 그들의 본진과 연결되는 통로가 무한계중부권 서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파악해 오던 바요.”
그랬던가? 그래서 아바돈의 에레츠 군이 하룬 서부 지역에서 갑자기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들은 서부 지역에 포진한 채 우리를 몰아붙일 것이 분명하오.”
로메로의 말이 당장 사실이라면 아바돈의 우라노스와 프뉴마가 지금 당장이라도 하룬 서부 지역에 나타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는 고민했다. 대체 로메로의 계획을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이대로 하룬에 머물고 있는 저의를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제야 로메로는 자신의 계획을 모두에게 설명했다. 아바돈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들의 주력을 허물어뜨릴 수는 없소. 앞으로 영원토록. 아바돈은 형세가 불리해지면 언제든 자신들의 본진으로 몸을 숨길 터. 메덴에 들어가 있으면 그들의 배후를 차단할 방법이 없고. 허나…….“
이곳에 있으면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아바돈 주력의 총공세에도 버텨 주기만 하면 그들의 배후는 차단될 것이오. 이건 분명한 사실이오.”
“로메로님의 말씀은 그들의 배후를 공격할 세력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난다의 질문에 로메로는 활짝 웃으며 확신에 차 말했다.
“맞소. 아바돈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오. 그들의 배후를 칠 세력은 아바돈의 본진과 연결된 통로를 모두 파괴시킨 이후에나 이곳에 당도할 것이기 때문이오.”
그렇게만 된다면 무한계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계와 제왕의 군대가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 아바돈을 정리해 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경우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로메로의 예측대로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는 이는 이들 중에 극소수뿐이었다.
불칸, 그는 로메로의 말에 확신했다.
‘로메로는 어떤 일에든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저 정도로 자신감을 내보인다는 건 볼 것도 없다. 적어도 그의 계산속에서 아바돈에 대한 대책은 완벽하게 수립되어 있다는 말이다.’
불칸은 로메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 자부한다. 로메로의 무서운 점은 그의 침착함 속에 숨겨진 번뜩이는 전력이었다. 그와 적이 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피하고 싶은 맘이었다. 그만큼 그는 로메로를 인정하고 있었다.
로메로는 이어 아바돈의 총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를 대비한 구체적인 작전 지시로 들어갔다. 그는 상황에 걸맞는 가장 효과적인 용병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의 지시는 언뜻 보아 한 가지를 이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설명을 들어 보면 몇가지의 변용이 가능한 유연한 전술들이었다.
칠대부족의 장단점을 고려해 전사들과 메덴의 주력에 각기 분산 배치했고, 주력의 선봉과 배후에는 언제든지 치고 빠질 수 있는 소수 정예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모든 전략의 기본 바탕에는 아군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교묘한 술수들이 위장되어 있었다.
아바돈이 무턱대고 몰아붙인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을 게 당연해 보였다.
이런 로메로에게도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그건 아바돈이 보유하고 있는 마신들과 최후의 병기 고르곤이었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기에 구체적인 지시를 미루고 있는 터였다.
그는 칠대부족과 전사, 수련자들 중 마신들과 상대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강자들을 추려 각기 한 명씩의 술사들과 짝을 이루게 했다. 마신들이 어느 시점에 투입될 것인지를 알 수 없기에 그들은 예비 전력으로 따로 분산시켰다.
문제는 고르곤. 이놈을 상대할 마땅한 대책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골머리를 싸맸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고르곤은……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요. 설마하니…… 아바돈이 고르곤을…… 중간계에서 끌어들인 줄이야.”
몰간이 은근슬쩍 불칸을 보며 말했다.
“언젠가 카란 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고르곤은 암수가 하나에서 나온다 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고르곤을 데려와 무한계에서 키우고 싶었지만 뒷일이 걱정되어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불칸도 함께 있던 자리에서 카란이 한 말이었다. 불칸은 심히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고르곤이 하룬에 나타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째야 하지? 이놈을 무슨 수로…… 상대해야 할지 참 난감하군.”
고르곤에 대한 공포. 이들이라고 별 수 없었다. 약간은 과장돼 전해졌다는 걸 감안한다 해도 놈들은 무적의 괴수였다. 영자들이 유동시키는 프리즈마쯤에 쓰러질 괴물이 아니었다. 아난다는 조금 다른 방향과 각도에서 접근했다.
“고르곤이 무한계에 나타난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방치했다간 어찌 된다는 걸 예상하고 있을 천궁이…… 아무래도 처리해 주지 않을까요?”
마계의 침략과 고르곤의 무한계 침습은 상황과 사정이 다르다. 아난다의 견해처럼 천사들이 직접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간 참 대단한 놈들이야, 아바돈은. 어찌 이런 생각을 다 했나, 그래.”
카포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그렇게 투덜댔다.
아바돈의 변칙적인 수작은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 셈이었다. 단지 고르곤 한 마리가 가져온 근심치고는 상당히 반응들이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실상이었다.
고르곤과 맞상대를 하려면 적어도 카란이나 메테우스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들이라고 제압할 수 있다 단언하기 어렵다. 조사대와 함께 도주의 길을 택했던 제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라 고르곤이 무서워서 도망간 건 아니겠지만 그 또한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임은 분명했다.
로메로는 대충 회의를 정리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대책이 없는 건 없는 거다.
그는 끝까지 아바돈의 배후를 칠 모종의 세력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로메로가 그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대단했다.
‘적절한 시기에 도착만 해준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문제는 고르곤인데…….’
이때 로메로는 갑자기 파천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실소를 흘렸다.
‘그가 있다면…… 힘이 될 텐데.’
어느새 파천은 로메로의 가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신뢰라는 이름으로.

파천과 수호자는 둘이지만 하나였다. 둘의 의식은 서로를 구분하는 개별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공감하고 공유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수호자가 돕고 파천이 해결해 나간다. 이런 의도는 썩 효과가 있었다.
파천은 자의식의 형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수호자의 견해가 작용했겠지만 대부분 파천이 직접 체득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파천의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중간계가 천궁으로 입성하는 입구 역할을 하지만 천사들이 항상 이곳을 지나쳐 가는 건 아니었다. 중간계는 어떤 이에게는 작은 연못일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이 되기도 했다. 존재의 사념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파천은 정당하고 바르다는 의미에 대해 그다지 깊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는 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건 상대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생각이 사념의 방을 지나쳐 오며 상당 부분 깨져 나갔다.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역과 순리의 고유 가치는 엄밀히 존재하며, 그건 자신의 판단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다는 것을.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떠난 자리에 겨울이 자리하는 건 순리다.
‘많은 선들이 있다. 그 선들은 겹치기도 하고 평행을 달리기도 하지만 서로를 자르거나 꼬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안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저절로 그리 되어야 하는 것. 그리 되면 좋은 것. 이것이 곧 순리다.
순리의 상징은 신. 신의 섭리는 순리를 순리 되게 하는 것. 그의 침묵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걸 내가 알아보리라.’
어찌 보면 상당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파천의 이런 생각조차도 그가 중간계에서 받은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파천은 완전자와는 거리가 멀고 완전자의 길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지금 그가 가는 길이 그에게만 주어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영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큰 순리의 한 표현중의 일부였다. 인간계의 멸망으로 인해 유일하게 남은 인간, 파천에 대해 신이 내린 기회이자 대답일 수도 있었다.
수호자는 파천을 안내하며 그의 달라져 가는 생각들을 전혀 간섭하거나 의도적으로 한 곳으로 몰아가지 않았다.
그는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는 모험을 했었다. 생령이 파천이 지기에는 너무도 무거는 짐을 그는 과도하게 지웠다. 수호자가 말했다.
“날 원망한 적은 없었더냐?”
“그다지…….”
“난 네게 모든 걸 걸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내 생존을 건 도박은 내게 있어 유일한 돌파구였가. 모든 게 마무리되면 알게 되겠지. 내가 널 통해 왜 그런 모험을 하게 되었는가를.
너에게는 아직 많은 선택의 순간이 남아 있다.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운명은 결정된다. 어쩌면…… 메타트론과 직접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 운이 좋다면 피해 갈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은 그의 것. 나도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 또한 널 통해서 나와 대립하고 있고, 그 또한 네게 운명을 걸었다는 걸.
나처럼 그도 많은 순간을 참고 기다려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어디선가에서 널 지켜보거나 네 결정을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너희들의 대결에는 관심도 없다. 난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내 판단에 당신의 영향력이 작용한 건 사실이나 그것 또한 내가 안고, 감수해야 할 부분. 광명이 내게 필요해서 왔고 가져 갈 것이다.
메타트론이 내 앞을 막는다면, 당신이 말리다 해도 난 그는 상대한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을 훼방하거나 적대한다면 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파천의 확고한 의지를 수호자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생명의 뜰에 이르면 널 맞아들이는 천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널 시험하게 된다. 네가 과연 광명을 대할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보려 할 것이다. 네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넌 광명을 대하지도 못한다.
먼저 그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그 다음에 광명을 얻는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자신 할 수 없는 난제들. 파천.“
“왜?”
“광명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광명이 무엇이냐고? 글쎄…… 광명이 대체 뭘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호자는 꺼져 가는 불꽃의 심지를 돋우듯 파천의 심령에 깨달음의 조각을 심어 준다.
“광명을 밖에서 찾으려 들면 안 된다. 그리고 광명은…… 생명의 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파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해줄 수가 없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의 몫이었다. 그가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인도해 줄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였다.
파천은 가만있었다. 묵묵히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 언어가 전달해 줄 수 있는 이면의 진실까지. 거기에 다다라 보려 애썼다.
‘내게 해주려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파천은 고민에 빠져 버렸다.

마계의 준동이 시작되었다. 헤르파와 라아그 그리고 라넷이 무한계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왔다는 건 영계 침략의 서막이 오를 것임을 예고한다.
루시퍼의 명령은 즉각적으로 내려졌다. 대마신 일곱을 수장으로 하는 7로의 마군과 헤르파를 사령관으로 하는 중앙의 마황군으로 편성되었다.
루시퍼는 전면에서 빠졌다. 그도 물론 동행하겠지만 전쟁을 직접 지휘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이 말해 왔던 대로 헤르파를 사령관의 중책에 앉혔다. 영계의 운명을 저울질할 막중한 책임이 헤르파의 손아래 떨어진 것이다.
중앙군은 상급 마신인 아수라들과 마계전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7로 군 중 선봉은 대마신 발리가 맡게 되었다. 그는 헤르파가 사령관이 된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결정에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기분이 흡족해진 발리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남발하며 의기양양해 했다.
“역시 사령관…… 은 날 제대로 보는군. 천상계나 선계 놈들 정도는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으니 마음 푹 놓고 있어도 될 거야.‘
발리는 정말로 신이 나 보였다. 파천과는 풀 길 없는 악연으로 묶여 버린 발리는 그 동안 웅크리고만 있었던 걸 한꺼번에 풀게 됐다며 좋아했다. 그의 잔인한 성품을 보건대 장차 치러질 전쟁의 양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마신 중 첫 번째 지위를 단 한 번도 내놓지 않았던 아사셀은 루시퍼를 수행하는 책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조용한 어조로 루시퍼와 대화중이었다.
곧 출정을 앞두고 모여 있는 마계의 군영은 전체적으로 소란했다. 루시퍼는 헤르파가 마신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는 모습에 눈길을 둔 채 아사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둠의 천사들이 뒤를 따른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에게 내려진 임무인 걸 어떻게 하겠나?”
“왠지 께름칙합니다만…….”
“흐음, 그렇게 생각할 건 못 돼. 내 아버지 메타트론 님의 수족들이다.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거늘 그리 여기면 곤란하지.”
“저들은 한때 우리와 함께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너무 많은 걸 내보이시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날이 있을 겁니다.”
“흐음,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도록 하고……. 헤르파가 어떤 것 같나?”
“잘…… 하고 있네요.”
“제 아비를 만나고 왔을 텐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군.”
그는 라넷에게서 모든 걸 들어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후의 일이지만 헤르파와 라아그에게서도 직접 보고받았었다.
“파천이 원령체가 됐다는 건 좀 의외야. 광명마저 얻게 되면, 어쩌면…… 난적이 될지도 모르겠어.”
발리 같았으면 그럴 리 없다면 루시퍼를 추켜세웠지만 아사셀은 경솔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원령체나 광명을 경시하지 않는다. 잘 알 수 없기에 두려운 것이다. 미지의 두려움은 그래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대신 아사셀은 이런 말을 했다.
“제게 먼저 기회를 주십시오.”
파천을 먼저 상대하게 해달라는 청이었다. 루시퍼는 그러마, 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아사셀은 아바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들에 대한 입장 정리가 애매하겠군요.”
루시퍼는 사실 아바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무혈입성의 따분함을 파천이 달래 줄 것이란 정도가 그가 지닌 감흥의 전부였다. 아바돈은 루시퍼의 눈에 차지 않는다.
“애매할 것도 없어. 순종이냐, 불복이냐만 따지면 돼. 그건 제왕도 마찬가지고.”
그는 유일무이한 영계의 폭군이 되고자 했다. 그가 존중하고 인정하는 건 오직 메타트론뿐. 그 외에는 모두는 눈 아래로 본다.
마계의 군대는 전열을 정비하고 출정 명령이 내리길 기다렸다. 그들의 앞에는 승리뿐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마신들과 마인들의 눈을 지배하고 있는 단색의 감정이었다.
헤르파가 루시퍼에게로 왔다.
“준비를 끝났습니다.”
높은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있던 루시퍼게 한쪽 손을 슬쩍 쳐들며 간단하게 지시했다.
“그럼 출정명령을 내리거라.”
“네.”
헤르파는 마계의 총사령관으로 군대 앞에 섰다. 그의 외침이 크게 공간을 떨어 울린다.
“출전하라.”
“와아아아아.”
사기는 드높다. 단결력도 으뜸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우위. 모든 면에서 승리의 여건을 완벽하게 갖춘 마계 대군이 선계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의 출정을 하늘도 슬퍼하는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마계는 텅텅 비어 있는 선계를 지나쳐 곧장 무한계로 들어서려 했다. 그 앞을 천상계와 선계 연합군이 막아섰다.
두 세력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주섰다. 선봉을 맡게 된 발리는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지만 아직까지 사령관의 명이 없었기에 참을 도리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전혀 없을 거라던 인내심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본다.
‘대체 왜 저리 늑장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중앙군은 한참이나 뒤에 있었고 가장 가까운 7로 군 중 하나도 군령을 전달하기에도 꽤나 먼 거리였다.
가물가물 시선에 잡히는 무리가 바로 천상계와 선계 연합군이었다. 그 쪽을 향하는 발리의 시선엔 숨길 수 없는 살욕이 번들거렸다. 이때 헤르파의 영언이 그에게로 전달되었다.
[먼저 저들의 전력을 파악해 보는 차원에서의 선공입니다. 시작하십시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지? 그냥 밀로 올라가면 될 것은.]
[길게 보셔야 합니다. 루시퍼님의 의지를 말씀드리지요. 우리 목적은 저들 모두를 소멸시키고자 함이 아닙니다. 굴복시키고자 함입니다. 한 가지 충고 드리죠. 웬만하면……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이 애송이가!’
발리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감히 내게 충고 따위를 한단 말인가!’
발리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내가 여러 번 참는다. 루시퍼님의 특별한 명이 있었으니 내 참는다만 이 전젱이 끝나고 나면 네 운명도 끝인 걸 알아라.’
발리는 마신들과 마인들에게 명령했다.
“제7대만 나서라. 놈들에게 본계의 무서움을 보여 주어라.”
발리가 이끄는 선봉군은 다시 열 개의 단위 부대로 쪼갤 수 있다. 아수라들 중 최상위로 분류될 수 있는 자들이 지휘하며 마인들이 주력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헤르파의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단번에 몰아붙여도 마계로서는 불안거리가 없다. 전력의 우위는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
나름의 복안은 있겠지만 과연 그가 장기전으로 몰아가려는 건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계와 영계의 연합군이 마주서고 있는 시점에 무한계 중부권 하룬의 전장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로메로의 예측처럼 대적자의 군영이 아바돈의 에레츠 군이 주둔하고 있는 서부 지역으로 옮겨 간 것이다.
로메로가 파악해 두고 있던 공간 통로를 통해 아바돈의 나머지 두 우라노스와 프뉴마도 비밀리에 합류를 끝냈다.
세 명의 하기오스들은 대적자들의 지휘부와 함께 전면전을 앞두고 회동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군영에서 일부가 은밀한 가운데 본진에서 이탈해 남부 지역을 향해 빠져나갔다. 두 세력은 깊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건 폭풍전야의 고요함뿐이었다.
그들 모두는 생멸을 건 전면전을 앞두고 자꾸만 가빠지는 숨을 차분히 고르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던 영계대전쟁의 서막이 조용하게 열렸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는 영자들의 기원과는 상관없이 힘차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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