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53화 : 메타트론의 고백
메타트론의 고백
나는 신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를 따르는 것이, 그의 명을 완수해내는 것이 내 존재의 유일한 보람이다. 인간들은 사랑스럽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때로 신을 대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많다. 나를 따르는 천사들이 중 하나가 말했다.
“신의 사랑이 인간에게만 머물러 있는 걸 보면 때로 질투가 납니다.”
나는 그를 나무랐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가 많다.
용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난 천사들을 지휘하고 다스리지만 때때로 그들을 감시하기도 한다.
신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지만 신은 강제로 통제하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르는 걸 미연에 방지할 책무는 내게 있다. 만약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라면 모르지만 이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난 용납할 수 없다. 난 그때부터 용을 특별하게 주시하기 시작했다.
용이 오히려 날 찾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고백이 흘러 나왔다.
난 처음에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날 미혹하는 용을 저주하고픈 마음뿐이었다. 심란했다. 다시 인간들을 보았다. 불현듯 일어나는 생각들은 날 난폭하게 만들어 갔다. 천사들이 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용과 함께 몇 번이나 생명의 뜰의 초입까지 갔다 되돌아오곤 했다.
날 망설이게 하는 건 단지 하나. 신에게 버림받을 것이 두렵다. 그러나 이런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손에 들린 생명나무의 생명열매는 내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용과 난 반역의 계획에 착수했다. 난 지금이라도 신이 날 책망해주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신은 침묵을 지켰다. 날 부르지 않은 지도 꽤나 되었다.
신을 대면하고 싶다. 그의 관심이 내게서 떠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괴롭다. 날 파괴시키고 싶다. 아니 신의 사랑이 머물러 있는 인간들을 파괴시키고 싶다. 저들을 타락시키자. 저들을 신에게서 떼어놓자. 그것만이 내 유일한 욕구가 되었다.
용을 따라 다른 차원에서 온 자를 만났다. 그도 인간이었다. 그런데 인간이면서 신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는 강했지만, 그는 지혜로웠지만 내 눈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대로 비춰졌다.
그의 지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신에게 반역하고도 징벌당하지 않을 계책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이면 얼마든지 내 뜻대로 모든 걸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실행에 옮겼다. 내 생각대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다. 그들의 타락을 유도하고 지켜보는 건 통쾌한일이었다. 신의 분노를 떠올렸다.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은 여전히 침묵했다.
인간은 내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뜻대로 그들을 다스렸다. 그들을 서로 이간시키고 욕망을 한껏 부추겼다. 그들은 신을 두려운 대상으로 인식했다.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새로운 두려움을 신으로 만들어 가는 인간들을 보며 나는 마음껏 그들을 비웃었다.
인간의 의지는 보잘 것 없었다. 우주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 내 눈에 비치는 그들은 형편없는 존재였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저런 저들을 부러워했던 것이, 질투했던 것이, 그로 인해 신을 반역해 지금껏 이런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모든 건 내 뜻대로 될 것이다. 나는 확신에 젖어 있었다. 내 힘은 날로 강해져 갔다. 머지않아 우주에서 날 능가할 자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용이 달라졌다. 그는 내 계획에 동참하지도 협조하지도 않는다. 그는 날 멀리했고 스스로를 벌주겠다며 어딘가에 자신을 가두겠다고 했다. 그가 인간들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태연했다. 그가 최후에는 내 편을 들 수밖에 없음을 난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나와 다르지 않기에. 나와 함께 신께 반역한 입장으로 나와 대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한통속인 것이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또 하나의 나! 분할된 또 하나의 내 의지가 날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 힘은 나에 버금갔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날 극복할 수는 없다. 그는 나의 분신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는 그와 대결하며 때로는 힘을 합하며 서로를 증명하려 애썼다. 그는 완전하게 내게서 독립된 인격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를 인간들은 수호자라 부르며 존경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완전자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의 예언대로란 말인가? 나는 결국 신을 극복하지 못했단 말이더냐? 인정할 수 없었다. 신의 특별한 관심과 혜택으로 인해 빚어진 일일 따름이다.
완전자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 자를 본 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우주에서 날 두렵게 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신뿐이다. 그런데 난 그에게서 동질의 두려움을 맛본다.
난 그를 내 힘으로 억누르려 시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고 신과의 일치를 이룬 상태였다. 그는 곧 신과 다름없었다. 내 힘은 그에게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했다. 그는 영계를 벗어나 차원계를 벗어나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신에게로 갔다. 완전자의 세상. 유일하게 내 힘이 침투하지 못하는 곳이다.
용이 완전자의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크나큰 근심거리였다.
그는 안심할 수 없는 존재다. 그가 만약 완전자의 세상을 연다면 나는 굴복당하고 말리라.
그렇지만 차라리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맘도 없지 않다. 신의 계획이, 뜻이, 의지가 동시에 꺾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용이 완전자의 세계를 열면 신의 계획, 모든 인간이 완전에 이르는 길이 중단된다.
내게도 기회가 왔다. 어쩌면 진정으로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던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신에게 허락을 받았다. 수호자는 벌써부터 여러 안배를 해두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엔 그가 완전자가 되지는 못할 테니까.
난 인간의 단 한 번의 생으로 완전자가 된다는, 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실패할 것이고 내 신념은 증명될 것이다. 그런 연후 가장 비참한 종말을 맞게 해주겠다. 그것을 본 이들이 절망할 수 있게.
기실 그가 완전자가 되어도 달라질 건 없다. 또 하나의 완전자가 늘어났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직도 더 많은 인간이 멀고도 먼 길을 남겨 두었으니 내게는 수많은 기회가 있는 셈이다.
수호자는 약속했다. 그가 광명을 얻지 못하면 나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모든 게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선택된 인간을 소멸시키고 영계를 내 뜻대로 지배할 날이 멀지 않았다. 수호자와 나의 합쳐진 힘이라면, 비밀차원 역시 내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 그 힘이면 신도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