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54화 : 수호자의 책임
수호자의 책임
난 메타트론이다. 서로 상반된 성질 중에 나는 선을 지향한다. 신의 뜻을 실천하고 신의 의지가 세계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내 속에는 항시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또 하나의 나! 그의 고독함이 날 괴롭힌다. 그는 항상 내게 손짓을 한다. 와서 힘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어서 또 괴롭다.
사람들은 내가 메타트론이라는 것을 모른다. 메티트론은 인간들에게 악의 화신으로, 악마의 지배자로 인식되어 있다.
메타트론의 분신인 날 사람들은 수호자라고 부른다. 난 그들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
완전자가 나올 때마다 나는 신의 위대함을 또다시 절감한다. 인간들은 자신 안에 신을 품고 있다.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현세의 욕망에 충실하며 그것이 전부인 양 살다가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완성은 멀고도 먼 길.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들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제왕의 대지가 메타트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착실하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서로 반목하게하고 이간시키며 최후에는 공멸을 유도한다.
그가 쓰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부추기기만 해도 된다. 남보다 앞서고 싶은, 지배하고픈, 모든 걸 소유하고픈 욕망을 이용해 메타트론은 인간들을 쉽게 이간질시킬 수 있다.
그가 또 하나 즐겨 쓰는 방법은 두려움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질병이나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본질을 바라보는 선한의지를 희석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립이 치열해질수록 그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신의 의지가 옳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시간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용을 만났다. 그가 말했다.
“그는 너와 같다. 인간들이 삶을 통해 그것이 제한적이든 무한하든 간에 조금씩 자신을 완성해 간다면…… 우리 또한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건 아닐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들을 용납한 이면에 그런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서 나온 것이 버려진다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서로가 돕는 역할은 아닐까 하고……
인간세가 인간들의 비약적인 완성을 위해 마련된 장소라면 우리는 인간들 가운데서 그들을 지켜보며 때로는 반목하며 그들을 해롭게 하는 과정 중에서 조금씩 신에게로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두 가지 구원이 있다. 하나는 신에게로 향한 방식이고 또 하나는 그를 완전하게 부정하는 방식.
신에게로 향하는 건 멀고도 먼 길.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단번에 이룰 수도 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단번에 이룰 수도 있다. 신을 부정한 피조물은 자신의 조재 자체도 부정하는. 그로인해 완전한 소멸을 이룰 수 있지. 그 또한 다른 형태의 메타트론은…… 후자를 택했지만 완전하게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항시 그의 머릿속엔 신이 도사리고 있다. 신을 향해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와 다름없지. 어느 쪽이든 완성은 어려운 일이다.
수호자, 너무 애쓰지 마라. 너와 메타트론은 하나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가 널 원하듯 너도 그를 원하고 있다. 너희들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거야. 그런 일이 가능만 하다면 말이야.”
그의 말대로다. 난 그와 하나다. 그가 소멸하면…… 나도 소멸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통해서만 이뤄져 왔다. 우리의 대립은 치열하지만 언제나 그 안에는 변치 않는 묵계가 있었다. 서루를 인정하고 존중해 왔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과 빈번한 왕래가 있고 난 뒤부터였다. 그들의 존재 형식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모든 인간들을 단번에 신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계획이 있다고 했다. 소멸극복.
그것은 대적자들을 통해 인간들에게도 일부 전해졌다. 그 방식은 완전에 이르는 길을 지연시키고 있다. 순리를 역행하며 멈춰선 것과 진배없다. 그는 날 자신 안으로 흡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내게도 기회가 왔다. 나도 지쳤고 메티트론도 지쳤다. 파천! 그를 통해 나와 그는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선택을 그의 삶이 우리의 명암을 갈라놓을 것이다. 내가 메타트론에게 일치되든지 내가 그에게서 독립되어 자유롭게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파천을 지켜보며 때로 함께 하며 난 인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들의 슬픔과 분노 이면에는 항상 어떤 대상에게도 없는 것이 그에게는 있었다.
인간이 우리와 다른 점의 이런 것이 아닐까?
신에게서 분리되며 잃어버렸던 신성 중에서 가장 순수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파천이 이뤄줘야 한다. 파천은 나이며 메타트론이며 순수한 인간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생에서 그리 길 지도 않은 삶 중에서 그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가 내린 선택의 결과는 내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하며 메타트론의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꿔 줄 것이다. 그리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나 또한 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기를. 예전의 나 메타트론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생략된 시간을 체험하고 있는 파천은 그 자신이 누구인지에서부터 그간의 인간의 역사와 신과 천사와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내부에는 원래 본체를 이루는 첫 사람에 대한 것들까지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었다.
파천은 자신 안에 이처럼 거대한 인연이 응집되어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이처럼 태연 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그들과는 또 다른 독립된 존재였다. 그들의 감정이 살아 숨쉬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존재. 그랬다. 파천의 존재 형식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애매한 것이었다.
수호자와 메타트론은 현재 분명히 파천과 의식을 함께 하고 있었다. 파천이 체험하고 있는 것을 그들 역시 함께 했다. 놀랍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제한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전혀 놀랐다. 용에게 와 유혹했던 스스로의 존재하는 자가 파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걸 수호자와 메타트론은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파천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그들은 끝끝내 모를 것이 분명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진정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현재의 영계가 당면하고 있는 복잡한 양상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인간들이 겪고 있는 이 불행의 시초를 놓았던 이는 다름 아닌 파천 자신이다.
지신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그 스스로의 삶에서 그처럼 많은 고통과 수난과 역경을 겪어야 했으니 그가 다른 누군가를 원망함이 마땅치는 않은 것이다.
파천은 눈을 떴다.
메타트론과 수호자도 파천이 깨어남을 인식했다. 메타트론과 수호자는 서로의 몰랐던 부분을 조금은 공유하게 되었다. 그들 셋은 서로를 시선 속에 담았다. 메타트론이 먼저 말했다.
“이제 마지막 순간만이 남았다. 광명을 얻어라. 얻지 못한다면 넌 내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파천은 담담했다.
“얻게 된다면?”
“생각해보지 않았다. 광명을 얻은 이후의 네 능력이…… 날 능가한다면…… 네 뜻대로 할 수 있겠지.”
“내가 어떻게 하리라 보는가?”
“네 목표는 내 아들 루시퍼와 나에 대한 복수이지 않은가? 그렇게 하겠지. 나와 루시퍼를 소멸시키고자 하겠지.”
파천은 수호자를 슬쩍 살폈다. 그는 파천을 보고 있지 않았다. 외면하는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메타트론의 소멸이 수호자에게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파천이다.
그는 어떤 결정도 성급하게 내리지 않았다. 파천은 그들 둘에게서 시선을 떼어놓고 천사 나타나엘을 깊숙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또 거쳐야 할 절차가 있소?”
“아닙니다. 절 따라오세요.”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파천은 새로운 감정 상태로 빠져들어 있었다.
‘어떤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해서 그것이 나라고 할 수는 없다. 내 의지가 그런 사실들로 인해 흔들릴 이유는 없다. 나는 파천이다. 여전히 나는…… .’
파천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는 아무런 광련도 없는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다음 한편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으로 인해서 비롯되었다는 자책이 조금씩 움터왔다. 파천의 눈에서 물기가 스며 나왔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