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10화 : 추격전 – 1
라이가 열심히 도망치면서도 찾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언데드 샌드웜이었다.
예전에 그놈과 만났던 장소라고 예상되는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무작정 서쪽으로 달리고 있을 뿐이다.
사막 지형은 특이점을 찾기가 힘들다.
높낮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래로 된 평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모래 사이로 수분이 다 빠져나가기에 풀은 거의 볼 수가 없지만, 무릎 높이
정도의 키가 작은 나무는 많다.
풀에 비해서 나무는 수분 보관에도 유리할뿐더러 깊게 뿌리를 뻗을 수 있는 덕분이다.
토착민들이 이 나무들을 이용해 목축을 할 정도로 그 수량은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그 위를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작은 나무라고 해도 나무는 나무다.
다행히 밤하늘에 달이 떠 있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 나무들을 피해 달려야 하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진로상에 나타나는 나무들을 피해서 달려야 발이 걸려 나뒹구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딴생각할 새가 조금도 없다.
예전에 언데드 무리와 만난 것은 밤이었고, 또 샌드 웜의 뱃속에서 탈출할 때까지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한 후였다. 그렇기에 언데드 무리와 만난 정확한 위치는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 뒤에는 살벌한 꼬리까지 붙어있다. 죽자고 도망치는 상황이니만큼 방향이 맞는지 따지고 있을 겨를조차 없다.
“이런 젠장. 밤새 달렸는데 따라오는 저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이 정도 달렸으면 샌드 웜이 있을 만한 장소에 도달했을 만도 하건만, 샌드 웜은커녕 언데드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샌드웜이 자신을 찾아오기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다.
미친 듯 그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약간씩이나마 거리를 벌려,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예 시야 밖으로 벗어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이제 곧이어, 아니 어쩌면 벌써 용기사들이 자신을 찾아 하늘로 날아올랐을지도 모른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주위는 급속도로 밝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시야가 확보되어 달리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문제는 해가 뜨고 나면 그때부터는 급격히 올라가는 온도 탓에 달리는 게 더욱 힘들어지리라.
용기사 정찰조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모래 속을 파고 들어가 숨는 게 맞다. 하지만 자신을 추적하는 기사와의 거리를 얼마 벌려놓지 못한 상황이기에 멈춰 서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에게 따라잡힐 터이다.
최대한 모래 위에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달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흔적이 전혀 남지 않도록 달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이 맴돌고 있었지만, 라이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마나를 운용하여 최대한 몸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달리고 있는 만큼, 다리를 박찰 때마다 더욱 먼 거리의 도약이 가능했다.
추격해 오는 기사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흔적을 적게 남기고 싶었지만, 반동을 얻기 위해서는 모래를 딛지 않으면 안 되니 그게 문제였다.
자신도 모르게 무림의 경공술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지만, 라이는 이런 행동이 뭘 뜻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건 라이의 뒤를 쫓다 지금은 반쯤 포기한 채 헐떡거리고 있는 클리프였다.
“애새끼가 왜 저렇게 잘 달려!?”
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요새에서 봤던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의, 더군다나 그 나이대의 평균에도 못 미칠 정도로 왜소한 신장이었기에 더욱 어려 보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어린 녀석이 저렇게 장시간 전속력으로 내달릴 수가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달리고 있었다.
제국의 정규기사단에서, 그것도 단장의 호위기사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자신보다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젠장, 이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해봐야 허풍 떨지 말라고 하겠지? 하긴 누가 이런 사실을 믿어주겠냐고.’
사막의 동쪽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을 보며 라이의 마음은 점차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짝 뒤를 추격해 오는 기사를 완전히 따돌려 버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해가 뜨기 시작한 것이다.
조만간에 용기사들이 날아와 사막 위를 샅샅이 훑기 시작하면,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젠장!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비비 꼬인 거야! 뭐 하나 평온하게 살아가기가 힘드네.”
밤새도록 사막 위를 전력 질주를 했으니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달리는 기술은 초저녁 때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게 사실이긴 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멀리 지평선 가까이에 떠 있는 작은 점 하나. 그게 뭔지를 잘 알고 있는 라이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부지런한 용기사 녀석은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밝아오는 미명에 의지해 와이번을 날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링카 성에서 여기까지 이 시간에 날아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젠 끝났다는 절망감이 마음을 좀먹다 보니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던 라이는 모래 위에 풀썩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이젠 끝인가….?”
이렇게 케이론과 헤어지긴 싫었다. 헤어지고 나면 케이론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고 있다 보니 더욱 헤어지기 싫었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던 것인데……………
이것도 끝인 모양이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이 넓은 사막 위에서 용기사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은 아예 없었다.
물론 용기사 하나라면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가 숨으면 되겠지만, 밤새 자신의 뒤를 끈질기게 추격해 온 저 찰거머리 같은 기사 놈이 있는 한 발각되는 건 금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