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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2권 – 16화


“왜란종결자? 왜란종결자가 뭐유?”

흑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유정에게 물었다. 그러 나 유정도 똑같이 어깨를 으쓱할 뿐,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더생각해 본 뒤 흑호에 게 전심법으로 말했다.

“왜란종결자라….. 이 왜란을 끝낼 사람을 말하는가

보오.”

“왜란을 끝낼 사람? 그러니 그게 누구냔 말유?” 

“난들 알겠소? 이 책으로 해동감결을 풀이해 보면 뭔가 알 수 있을것도 같지만…. 천기에 얽힌 일을 내 어찌 알겠소? 아미타불…”

“천기에 얽히긴 뭐가 얽히우. 천기니 뭐니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가는 판인데.”

흑호의 말에 유정은 찔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놀랐다. 서산대사로부터 천기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있었지만, 일개 금수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제아무리 도를 닦은 영물이 어도 말이다. 흑호는 생각을 짜내는 듯 대가리를 흔 들흔들하다가으르릉 소리를 냈다.

“이거 도저히 모르겠구먼, 제기. 그런데 내 몸이 가 볍고 아프지가않수. 스님이 고쳐 주었수?”

흑호는 유정이 몹시 고마웠다. 인간들을 그리 좋아 하지 않았으나이 스님은 마음 씀씀이가 자상하고 법 력도 깊은 것 같으니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차츰 파고들었다.

‘비록 인간이지만 이 스님의 도움을 청하면 어떨 까?’

유정 역시 궁금한 것이 많은 점은 흑호와 매일반이 었다. 서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면 이런 자리도 없었 으리라.

‘이 스님이라면 뭔가 도움이 될 거여. 게다가 나를 구해준 은인이아닌가?’

흑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승사자를 만난 일과 마계 의 괴수와 겨룬 등등 그간의 이야기를 유정에게 소 상하게 들려주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야기에 유정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흑호는 아직 우주 전체의 순환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 일이 사계나 다른 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큰 일이라는것은 말하지 않았 다.

세계에서 온 마수들이 무언가를노리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천기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 을 막기위하여 태을사자 등의 저승사자 일행들이 애 를 쓰고 있다는 것. 신립의 패전도 아무래도 마수들 의 개입 때문에 그리 된 것 같다는 것. 자신은 신립 에게 귀띔을 해주러 왜병 진지 근처로 갔다가 마수 들의 공격을 받고 왜장의 화살에 상처를 입어 이리 되었다는 것 등등…….

엄청난 흑호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유정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 왜장이야말로 왜군의 선봉장인 고니시라오. 그 자를 죽이지는않더라도 크게 다치게만 했으면 왜군 은 지리멸렬해졌을 터이고, 신장군도 그 틈을 타 포 위망을 돌파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깝군,아 까워. 나무아미타불…….”

그 말을 듣자 흑호도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그 자가왜장 중 좀 높은 자로만 알았지, 한 양으로 진군하는 선봉부대의 대장일 줄은 몰랐다.

“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이판사판으로 그놈을 없애 버리는 건데……… 다시 갈까?”

“그만두시오. 지금 다시 가면 개죽음만 당할 것인 즉.”

유정은 흑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도 차마 믿 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연후에 흑호의 말이 앞뒤가 맞는다는사실을 깨달았다. 그러 나 도저히 믿을수 있을만한 규모의 이야기는아니었 다.

‘노스님께서도 천기가 어그러진다는 말씀을 하시었고, 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쳐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 하시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호 랑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앞뒤가 맞기는 하지 만 너무나 허황되어 감히 믿을 수가 없구나.’

그러고 나서 유정은 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급한 일이 있다. 무애를 시켜서 해동감결을 노스님께서 계시는 금강산으로 빨리 갖 다드리라 일러놓았지만, 노스님께서 해동감결에 쓰 여 있는 녹도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알수 없구나.’

그러나 이 녹도문해만 있다면 해동감결의 해석이 그 리 어렵지 않을 것 아닌가? 유정은 기왕에 신립의 패배가 확실하니 여기에서 헛되이 시간을 낭비해선 아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시라도 빨리 금강산 으로 녹도문해를 가지고 가서 해동감결을 해석해야 겠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문득 정신을 잃고 있는 은 동의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찌된 일이오? 혼이 나간 것 같으니…….”

“혼이 나간 것 맞수. 다 내 잘못이우만………….”

흑호는 은동의 몸에서 혼을 빼내었던 이야기를 유정 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유정은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흑호는 아이에게 몹쓸짓을 했다는 것을 이미 마음속 깊이 뉘우치던 참이라 유정에게 자신있 게 말했다.

“아마 조금 있으면 태사자가 아이의 혼을 가지고 올 거유. 여기는 인적이 별로 없으니 안전할 거 아 니우?”

“허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좌우간 또 이러면 아니 되오.”

“알겠수. 안 그래도 뉘우치는 참이우.”

“좌우간 나는 일이 급하니 그만 가보아야겠소. 비록 이 아이에게부친을 만나도록 힘 써보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의식을 잃고 전투가한참이니 약속을 지킬 수 가 없어 미안하구려.”

“부친? 그럼 이 꼬맹이의 아비가 신립의 군중에 있 수?”

“그렇소. 왜병의 손에 모친이 돌아가시고 아비만 남은 모양이던데그마저도 전투에 지면 목숨을 잃기 십상이니 딱하기 그지없구려. 아비의 이름은 군관 강 효식이라 하던데…………….”

“쯧쯧, 세상에……………”

흑호는 다시 한 번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몰랐다. 얼 마 전 증조부를잃은 처지이질 않던가. 은동이 위험 에 빠진 아버지를 찾아 전쟁터까지 왔다는 것이 측 은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게도 여겨졌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혼을 빼내 이 꼴이 되게 하다니…….

“스님은 가시우. 내가 이 아이의 정신이 돌아오는 대로 이 아이의 아비를 만나도록 한번 해보겠수.” “그러나 마수들이 있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 속 을 들어간다는것은……”

“밤이 되어 태을사자가 오면 아마 저승에서 마수들 을 잡으러 신장들을 우르르 데리고올 거유. 그럼 마 수들도 끽 소리 못할 테니 뭐 그정도 못하겠수?”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그래도 유정은 정신까지 잃은 어린아이를 호랑이 옆에 두고 떠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듯했 다. 그러나 은동을 데리고 가면이 아이의 혼을 거두 어갔다는 저승사자와 또 길이 엇갈릴 터이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호랑이 옆에 아이를 그냥 두고 간다는 것이 찜찜한 지라 유정은 다시 한 번 흑호에게 다짐을 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그대가 정 그렇다면 나와 약속을 해주어야겠잘 지켜줄 수 있겠소?”

“물론이우! 내 몸이 가루가 되드라도 이 아이를 지 켜줄 거유.”

“좋소. 그러면 이 아이가 의식을 회복하는 대로 금 강산 표훈사로오시오. 반드시 이 아이를 멀쩡한 정 신으로 되돌려놓고 나에게 데려와주어야 하오. 이 책은 내가 잠시 빌리니 나중에라도 은동이에게 돌려 주어야 하니 꼭 명심하시오.”

“금강산 표훈사라고 했수? 알았수.”

“만의 하나라도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그대를 용서치 않을 것이오!”

유정은 매섭게 법력을 쏟아 흑호에게 따끔하게 일러주었다. 그러자흑호는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마시우. 내 비록 금수이나 그 정도 도리는 알 고 있는 몸이우.

내 맹세하리다. 이 아이를 온전하게 스님께 데려가 지 못하면 내 스스로 골통을 깨고 그 자리에서 죽어 보이겠수. 됐수?”

“그렇다면 됐으이.”

유정은 내키지 않는 양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 고 녹도문해의책을 지니고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금 강산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흑호는 은동의 옆에 앉아 왜란종결자가 도대체 누구 이며, 호군은어째서 그런 글을 남긴 것인지 곰곰 생 각에 잠겼다. 그렇듯 조용히 앉아만 있자니 답답하 여 좀이 쑤시는 것 같았다.

‘아참, 아까 나 때문에 조선군이 필사적으로 돌격을 감행하였는데그 승패도 모르고 있구먼. 그래, 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이상 뭔가보답을 해주어야겠어.’

흑호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히죽거렸다.

‘가만, 이 아이 아비가 군관 강효식이라구 했지? 그 사람을 빼내오면 이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까?’ 참으로 그럴 듯 생각이었다. 그리고보니 아까 왜병 의 진중에서 언뜻 얼굴이 마주친 군관의 생각이 떠 올랐다. 그 군관의 얼굴이 은동과닮았으니 그 군관 이야말로 강효식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이거 그리 어렵지 않겠구먼. 단 하나.. 마수 들이 문제인데..’

겁나게 덤벼드는 마수들이 조금은 두려웠지만, 아까 보니 마수들은영혼을 회수하느라 전투가 끝난 싸움 터에만 주로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런데 전투는 조선군이 주로 돌격을 하는 형편이니 마수가 있는 곳은 왜병 진지 부근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조선군 진영 부근에는 마수가 없을 터이 고 군관 하나 정도는 쉽게 빼내올 수도 있지 않을 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흑호는 좀이 쑤셔서 태을사 자가 돌아오는밤까지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 다. 벌떡 일어나 굴 밖으로 나갔다. 남의 눈에 띄일 까봐 나무 한 그루를 앞발로 쳐 쓰러뜨려 굴 입구 를 완전히 막아 놓았다. 그리고 마음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탄금대의뒤, 강 쪽으로 돌아 조선군 진영 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이었다.


승아의 안내를 받아 길을 가는 동안, 은동은 아까 참에 우연히 보았으나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이 줄 곧 마음에 걸렸다.

‘이판관의 일을 태을사자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태을사자에게 물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무 뚝뚝하게 대하는 태을사자에게 부아가 나서 말을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너무 넘 겨짚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승에서 이 영혼들은 못하는 것이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하물며 울달, 불솔 같은 거인이 쇠고리로 변하기까 지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노서기가 이판관의 손바닥으로 들어간 것 도 혹시 무슨 둔갑이나 재주의 일종이 아닐까? 만 일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니라면 태을사자에게 구태여 그 일을 이야기해 보아야 핀잔밖에는 듣지 않을 거 야.’

이런저런 생각에 골똘하게 잠긴 은동이었건만 태을 사자는 은동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은동은 설혹 자신이 면박을 받더라도 찜찜한 점을 이야기하 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태을사자에게 말을걸 었다. 그러나 역시 조금은 꺼리는 구석이 있었기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잠깐만요, 사자님!”

“왜 그러느냐?”

“큰일이 있습니다. 아까부터 이야기하려고 한 일인데…”

“무엇이냐?”

“저…….., 영혼이 손바닥으로 빨려들어갈 수도 있습니까?”

웬 뜬금없는 질문인가 싶어 태을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그러자 은동은 이판관이 노서기의 영혼을 손바닥으 로 빨아들이는광경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태을사자에 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태을사자가 깜짝 놀라 목소 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판관님이 노서기를 어찌했다구?”

“손바닥으로 빨아들였어요. 노서기인지 그 영감님은 계속 비명지르다가 결국은 없어졌는데…….” 

“그만두어라! 네가 잘못 본 것일 테지!”

태을사자는 화를 냈다. 태을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은동의 말대로라면 이판흡수하여 소멸시켜 버렸다는 뜻인 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판관이 그런 짓을 했단 말 인가? 그러나 은동은 은동대로 부아가 치밀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에요!”

“그러면 거짓말일 테지.”

“거짓말도 아니라구요!”

“좌우간 나는 믿을 수 없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러자 은동은 답답해져서 곁에 가던 여인의 영을 붙들고 편을 들어 달라고 졸랐다.

“아가씨도 같이 보았잖아요? 뭐라고 좀 해줘요.” 

신 장군만을 찾으며 여전히 흐느끼던 여인의 영이 은동이 말을 걸자 흐느낌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 는 은동을 내려다보더니 갑자기손을 뻗어 은동의 머 리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은동이 말을 시키자 조금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 았는데, 여인의의외의 행동에 은동이나 태을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인이 엉뚱한말을 했다. 

“귀엽구나. 나이가 꼭 내 동생뻘이야.”

여인은 스무 살이 조금 안 되어 보였고, 은동 나이 또래의 동생이있는지 아닌지는 은동으로선 관심밖의 일이었다. 그저 여인이 딴소리를 하는 통에 애가 탔다.

“그러지 말고 말 좀 해주어요. 아까 판관이 그 노인을 없애 버리는걸 같이 숨어서 봤잖아요?”

“날 누나라고 부르려무나. 그래 주지 않겠니?” 

“그럴게요, 누님. 봤지요? 저와 같이 보았지요?”

그러자 그 여인은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하더니 태 을사자에게 말했다.

“봤습니다.”

그러나 태을사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뭘 보았나?”

“이 아이가 말한 대로입니다.”

“이 아이가 말한 게 사실이라고?”

“그렇습니다.”

“이 아이가 말한 것을 너도 본 것이 맞느냐?”

“맞습니다.”

그러자 앞에 가던 승아가 끼여들어 한마디했다.

“이 아이가 거짓말 한 게 맞지요?”

그러자 여인은 약간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얼떨떨한 듯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자 태을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를 하는 여인에게 말을 시켜

서 무엇하느냐?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 혼을 도로 돌려 주지 않고 지옥에놔두고 가겠다!”

그러자 은동은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사실 노서 기를 이판관이없애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아 까 노서기의 울부짖음을 생각하니 불쌍하다는 생각 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태을사자가 저렇게 까지 말하는데, 입을 다물 도리밖에는 없었다. 은동이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승아가 태을사자에게 이 둘은 어떻게 같이 오게 된 것이냐고 꼬치꼬치 캐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을사자는 대답하지 않았 다. 그러는 동안 그 여인은 조금 멍한 얼굴로 은동 에게 말을 건넸다. 여인도 은동처럼 말문이 열린 것 같았으나 여전히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이름이 뭐니?”

은동은 여인이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 태을사자 에게 구박을 받기는 했으나, 그 때문에 이 가엾은 여 인을 원망할 만큼 속이 좁은아이는 아니었다. 여인 이 말을 걸자 은동은 선선히 대답했다.

“원래 이름은 강은호라 하는데 그냥 은동이라고 부 른답니다.”

“그렇구나. 은동아, 귀엽기도 하지. 난 금옥(金玉) 이라 한단다.”

“…….”

“아까 누나도 네가 말한 걸 다 봤는데…… 안타깝구 나. 아아, 그런데 신 장군은 어찌 되셨을까. 은동아, 내가 한 일이 정말 잘못이라고생각하니?”

“무슨 일이요?”

“난 신 장군을 뵙고 싶어서.. 풍생수의 말을 들었 …….”

은동은 아까 태을사자와 흑호의 이야기도 들었고, 태을사자가 이판관에게 경과를 아뢰는 말도 들은 탓 에 여인의 일에 대해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 서 은동은 조금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누나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잘하 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 그렇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 이제 조금 씩 정신이 드는것 같아……. 이상해, 내가 왜 그랬 을까? 도대체 왜…… 신 장군에게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금옥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보고 은 동은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도 멍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금옥이 어째 서 제정신이 든것일까? 모르는 일이야.’

은동은 특별하게 기대하는 마음없이 금옥에게 물었 다.

“누나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나요?” 

“나는…………… 나는 신 장군이 야속해서 집에 불을 지르 고 자살을 했단다. 그러나 죽고 나서 금방 후회했 …….”

금옥은 신립이 야속하여 세상을 도저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죽어서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가는 동안몹시 후회스러웠고 상심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정신이 희미해졌다고 하는데, 그 다음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은동은퍼뜩 의아심이 일었다.

‘가만 있자, 금옥 누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누나는 저승사자의 손에 의해 저승으로 보내졌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풍생수의 꼬임을 받고 세상에 나와 호리병에 들어가게 되었지?’

은동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태을사자를 불렀 다. 태을사자는귀찮은 표정이었으나 옆에서 재잘거 리는 승아가 더욱 귀찮았던 듯, 은동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또 무엇을 말하려고 그러느냐?”

“사자님, 일단 저승에 온 영혼이 이승의 사람에 의 하거나 마수에의해 저승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 까?”

“어허, 그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 이상합니다. 금옥 누나의 말을 한 번 들어 보세요.”

그러고 보니 금옥이 어떻게 해서 이승에 남게 되었는가를 태을사자 역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 던 일이었다. 태을사자도 조금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그 말을 다 듣고 나자 태을사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이상한 일이구나. 나는 이 여인이 생계에 원 귀가 되어 남아있다가 풍생수를 만나 꼬임에 넘어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구나. 저승으 로 올라온 영혼이 어찌 다시 하계로 내려갔을까?’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금옥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그래, 기억이 납니다. 그 판관…….”

“이판관님을 말하는 것이냐? 그분이 어땠기에?”

“그분은… 나쁩니다. 전에도 한 번 본 일이 있어 요. 그렇습니다. 저를 저승에서 빼내어 풍생수에게 넘겨준 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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