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왜란종결자 3권 – 2화 : 절대절명


2. 절대절명.

홍두오공이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덮쳐들자 호유화 는 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 호유화는 머리카락 을 뻗쳐서 은동과 금옥, 그리고 태을사자의 몸을 감아 올렸다. 그러자 홍두오공의 징그러운 이빨은 호 유화의 발 밑을 간발의 차이로 스치고 근처에 있던 나무를 두세 그루나 쓰러트린 다음땅을 깊숙히 파고 들었다. 홍두오공은 마계의 괴수였지만 생계에서의 물리적인 힘도 행사하고 있었다. 아마 생계로 들어 오면서 호유화처럼 육신을 지니게 된 것 같았다. 호 유화가 공중에 떠서 날렵하게 공중제비를 넘으며 몸 을 피하는 사이에 홍두오공은 다시 한 번 호유화에 게 덮쳐 들었다.

호유화는 살짝 은동의 몸을 들어올려 홍두오공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호유화는 소리를 치며 양 손바닥을 딱 소리가 나게 마주쳤다.

“꽉 잡아! 법술을 쓴다!”

호유화가 소리를 치자 그때까지 싸움을 가만 보고 있던 이판관은 뒤로언뜻 물러났다. 호유화의 법술은 대단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두오 공마저도 뭔가 눈치챈 듯 갑자기 둥글게 또아리를 틀며 방어자세를 갖추려 했다. 그러나 호유화는 법 술을 쓰지 않고 급하게 머리카락을 말아 올려 은동 과 금옥을 양 손으로 잡은 뒤 급히 몸을 날려 숲 사 이로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런 앙큼한! 속였구나!”

이판관은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호유화는 이미 두 명의 신장과 태을사자와 있는 힘을 다해 대적했 고 또 뇌옥을 깨고 공간이동을 하여 오느라 법력은 거의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호유화의 이 름이 하도 사계를 진동시키다보니 이판관은 호유화 의 술수에 깜박 속아 넘어간 것이다.

“쫓아라!”

이판관이 고함을 지르자 홍두오공은 기이한 금속성 의 소리를 내면서 수많은 다리를 놀려 무서운 속도 로 숲으로 파고 들어갔다. 홍두오공의 힘은무서웠 다. 홍두오공에게 부딪히는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부러지거나 뿌리채 뽑혀갔다. 호유화는 비록 전력을 다해 다람쥐처럼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면서 달아 나고 있었지만 나무들을 무식하게 짓쳐부수고 돌진 해오는홍두오공의 속도가 더 빨랐다. 은동은 영문도 모르는 채 호유화에게 소리쳤다.

“왜 도망가는 거에요? 저기 아버지랑 흑호가 있는 데..!”

“지금은 내가 지쳐서 안돼! 후에 얼마든지 복수해 주마.”

호유화는 은동을 달래는 듯 말했으나 어느새 홍두오 공은 호유화의 뒤로바싹 따라붙고 있었다. 은동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았댔자 흉악 한 홍두오공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은동은 오 금이 저려서다시 앞을 돌아보았는데…

“아이고! 조심해요!”

호유화의 앞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이판관이 모습 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생계인지라 호유화는 생계의 존재들처럼 육 신이 생긴데다가 법력이 떨어져 둔갑술을 쓸 수 없 었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인 이판관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은동이 경고하지 않아도 이판관이 나타난 것을 보지 못할 호유화는 아니었다. 호유화는 잠시 입술을 깨 물더니 힘을 모으며 일갈성을 발했다. 그러자 순식 간에 호유화의 몸에서 흰 빛이 번쩍 비치더니 호유 화의 몸은 네개로 분리되었다. 놀랍게도 그 네 개의 몸은 모두가 각각 은동과 금옥을옆구리에 끼고 있었 다. 이판관은 호유화의 분신술이 놀라운 경지에 이 르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술법을 부릴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치 못했다. 네 명 의 호유화는 각각 서로 다른 동서남북 방향으로달아 나고 있었다. 이판관과 홍두오공은 어느 호유화가 진짜인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눈이 날카로운 이판관은 금방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네 명의 호유화 중에서 머리카락으로 먼발치에서 태을 사자를 잡고 있는 것은 한 명 밖에 없다는 것을. ‘넷으로 갈라진 중에 셋은 호유화가 꼬리로 만든 가 짜다! 호유화의 꼬리가 아홉개이니 분신 셋이 각각 끼고 있는 아이와 여자까지 해서 셋을 만든 것이로구나. 그러나 바보같으니! 자기가 머리로 태을사자를 잡고 있으면서 그것은 세지 않다니!’

이판관은 재빨리 호통을 치며 다른 호유화는 내버려 두고 머리로 태을사자를 잡고 있는 호유화를 추적했 다. 홍두오공도 재빨리 방향을 돌려 그호유화를 쫓 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와 정 반대쪽으로 가고 있던호유화의 옆구리에서 은동이 소리를 쳤다.

“태..! 태을사자님!”

순간 이판관은 막 분신의 호유화에게 덮쳐들려는 참 이었으나 그 소리를듣고 덜컥 그 자리에 멈추어섰 다. 저 소리를 지른 은동이야말로 진짜 은동임이 틀 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판관이 걸음 을 멈추고 방금소리를 지른 은동과 함께 있는 호유 화를 향해 추적해오자 호유화는 더 힘껏 도망치려 했으나 이판관에게 앞을 막혀 버렸다. 그러자 나머 지 분신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으며 정신을 잃은 태 을사자의 영혼만이 허공에 버려진채 맴돌았다. 그러 자 홍두오공이 태을사자를 슬쩍 집게처럼 생긴 주둥이로 물었다. 호유화는 이판관에게 앞이 막히자 몸을 번득이려 했으나 이판관은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뒤미처 따라온 홍두오공도 호유화의 뒤를 막아섰다. 호유화는 길이 막히자 입 술을 깨물면서 은동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이! 왜 소리를 질러!”

“태..태을사자를 그냥 놓아두면..”

“으이구 이 답답아! 속이고 빠져 나갈 수 있었는데…!”

호유화는 원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은동도 어떻게 된 것인 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영리한 호유화가태을사자를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이 판관이 그런 것 쯤은 눈치채리라는 사실을 알고 순 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분신 쪽에서 태을 사자를 끌고 가게 만든 것이다. 비록 그러면 태을사 자는이판관에게 잡히고 말겠지만 호유화는 안그래도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있는 태을사자의 안위 따위 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몸과 은동 정도만 빠져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은동은 좀 서먹서먹하기는 했지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태을사자님은 놓고 갈 거였나요?”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없잖아!”

“그럴 수는 없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죠!”

그러자 호유화는 코웃음을 쳤다.

“죽어? 내가 미쳤다고 저런 저승사자 나부랑이 때 문에 죽어야 한단 말야? 엉?”

그때 이판관이 호통을 치는 바람에 은동과 호유화 의 입씨름은 그쳤다.

“발칙하게 감히 속임수를 쓰려 하다니! 이제 더 부 릴 수작이 남았나?”

그러자 호유화는 이판관에게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 다.

“그래 남았다! 악독한 네 놈에게 무지무지한 고통 을 주고 흔적도 없이소멸시켜 버리겠다! 네놈을 잔 인하게 없애 버리는 방법에는 삼천 육백가지가 있는데 네가 말해 보아라. 어떤 걸로 택할테냐?”

호유화가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자 이판관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서도 주둥이만은 한없이 나불거리 는구나. 끝난 것은너다.”

그리고는 이판관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 냉냉한 표 정이 되어 말했다.

“이제 한 번만 더 도망치려 한다면 그 꼬맹이와 그 꼬맹이의 아비마저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말하면서 이판관이 양 손을 한 번 떨치자 은동과 강 효식의 몸이 날아와이판관의 손에 덜컥 덜미가 쥐어 졌다. 그것을 보고 호유화가 흥하는 소리를 내자 은동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나 호유화는 냉정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구.”

“아니야! 아니야! 아버지를 구해 줘요! 어서요!”

은동은 너무나 애가 타서 발버둥치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호유화는 냉정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제기랄. 날 보고 어떻게 하란 말야!”

호유화는 은동와 금옥을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날카롭게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꼬맹이가! 약속이고 뭐고 다 귀찮 다. 일단 내가 살아야겠어!”

그러자 은동은 너무나 기가 막혀 말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맹세까지 해 놓고선 그럴 수가..”

그러자 호유화는 너무도 몰인정하게 꽥 소리를 질렀다.

“닥쳐! 입 닥치지 않으면 내가 없애 버릴 테다!” 

“그만 두지 못할까!”

소리를 친 것은 이판관이었다. 그러나 호유화는 지 체없이 이판관에게맞대들었다.

“네가 꼬마를 어떻게 하건 나와는 상관 없어! 마음 대로 하라구!”

이판관은 호유화가 뜻밖의 행동을 하자 다소 당황했 다. 호유화가 정말이 꼬마가 어떻게 되거나 관여하 지 않기로 했다면 인질을 잡아 보아야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판관은 다시 생각을 돌렸다. 호유화는 아까 위급한 순간에도 은동이라는 꼬마와 여자를 끼고 도망쳤었다. 그것을보아 호유화는 절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판관은 믿었다. 지금 호유화가 일부러 꼬마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것 은 또한 호유화의 술수가분명했다.

‘간사한 것. 네가 수작을 부려 보았자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다!’

이판관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좋다. 이 꼬마의 몸뚱이부터 박살을 내주겠다.” 

이판관은 화를 벌컥 내면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혼이 빠져나가축 늘어져 있던 은동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이판관은 은동의 몸을 바위에다 내 던졌다. 그대로 두면 은동의 몸은 박살 날 것이고그러면 은동은 살아날 수 없게 될 것 이 분명했다.

“잠깐!”

호유화는 놀라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순간 이판 관은 다시 슬쩍 소맷자락을 말아 올렸다. 그러자 은동의 몸은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피해 솟구쳐 올랐 다. 이판관이 최후의 순간에 호유화의 외침을 듣고 힘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호유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이판관은 그 모습을 보고 득의양양하여 말했다.

“자꾸 군소리 하지 마라.”

호유화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면서 이판관에게 말했다.

“이 망할 녀석…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러자 이판관은 빙글빙글 웃는 낯을 지으며 말했다.

“간단하다. 너는 세 가지 만 들어주면 된다.”

“세 가지 라니?”

“첫째로 너는 좀 불편하겠지만 금제를 좀 당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둘째로 시투력주를 내게 넘겨라.”

호유화는 몹시 번민하는 것 같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호유화는 다시 이판관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더 이상 생계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고분고분 뇌옥으로 돌아가 있어라. 네 재주와 수천년간 닦은 공력을 아껴 하는 말이니 듣기 바란다. 어떠냐? 손 해날 것은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강제로 해야겠지. 너를 없애버리기만 한다 면 시투력주를 빼앗을 수도 있고 귀찮게 금제를 해 뇌옥으로 데리고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을명심해라.” 

그러자 호유화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시투력주를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을까? 시투력주는 내 몸과 동화되어있으니 내가 죽으면 그것도 없어질텐데?

이판관은 호유화의 말에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러자 호유화는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은동을 바라 보았다. 은동은 이판관의 손에 잡혀 있는 아버지를 보고 흐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록 흐느낀다 고는 하나 영혼만 빠져나온 은동으로서는 눈물을 흘 릴 수도 없었지만. 그런 은동을 부드러운 눈길로 보 며 호유화는 안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하구나. 은동아.”

그리고 호유화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려 다시 살기등등한 얼굴로 이판관을 바라 보았다.

“좋아. 그러나 나에게도 두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 네 처지를 생각해라.”

그러자 호유화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것도 싫다면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을 끊겠어. 시투력주는 영영 못찾게 될 것이니 기대하지도 마.” 그러자 이판관은 조금 고개를 갸웃해 보였으나 여전 히 여유있는 태도로말했다.

“꼭 들어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말해보아라.”

“우선 첫째로 이 아이와 다른 자들은 놓아줘.”

그러자 이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태사자 그 자는 안돼.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으니.”

그러자 호유화는 아무 말도 없이 다음 조건을 말했다.

“두번째로 사계의 판관인 네가 어째서 마계의 졸개가 되었는지 말해 봐. 모르고서는 절대 직성이 풀리지 않겠어.”

그러자 이판관은 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그것을 안다고 누구에게 발설할 수 있을 성 싶으냐?”

그러자 호유화는 갑자기 머리를 곤두세우면서 몸에 서 빛을 냈다. 오색이 영롱한 빛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자 이판관은 조금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 나 호유화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인지 호유화의손에는 오색이 영롱한 구슬 하나가 쥐 어져 있었다. 그 구슬은 꽤 큼직하여거의 복숭아나 조금 작은 사과만 했는데, 그 찬란한 빛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신비해 보였다.

“시투력주!”

이판관이 숨이 막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호유화 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다시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 구슬은 호유화의 몸 속으로 삽시간에빨려 들듯 사라져 버렸다.

“어서 대답해. 이 구슬은 내 몸에 동화되었다고 벌 써 말했었지? 나를 죽여 보아야 시투력주도 같이 깨트리는 거야. 얻고 싶으면 어서 대답해.”

이판관은 시투력주를 보자 욕심이 동하는 것 같았 다. 그러나 이판관은신중하게 말했다.

“왜 그리 알고 싶어 하는 것이냐?”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아. 어째서 네가 이런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앞으로 뇌옥에서 수백 년 있는 동안 조바심이 나서 죽을 거야. 빨리 대답해. 안그 러면 내 법력이 회복될지도 모른다구. 그러면 너희 는 다 죽은 목숨이니.”

그러자 이판관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좋다. 그까짓것 말 못할 이유도 없겠지. 그러나 먼 저 금제를 가해야겠다.”

이판관은 비록 마계의 수하가 된 악인이나 거짓말읗 할 것 같지는 않다고 여겼는지 호유화는 순순히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판관은 소맷속에서 밧줄 하나를 꺼냈다. 검은 색으로 금속처럼 윤기가 흐르 는 밧줄이었다.

“이것은 흑면투색(黑綿投索)이라는 밧줄이다. 한 번 펼쳐지면 절대 벗어날 길이 없으니 수작은 부리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이판관은 밧줄을 허공에 날리면서 주문을 외 웠다.

“투색금제(投索禁制)!”

그러자 밧줄은 뱀처럼 호유화의 몸에 저절로 가서 묶였다. 호유화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밧줄을 받 았다. 호유화는 눈 한번 깜짝거리지도 않고있다가 밧줄이 다 묶이자 이판관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 사정 이야기를 해 봐. 네가 어째서 마계 의 앞잡이가 되었는지 말야.”

호유화의 말을 듣고 이판관은 웃었다.

“내가 마계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헛소리하지 말아라.”

“그러면 무엇이냐?”

“잘 보거라. 내가 정말 사계의 존재로 보이느냐? 둔갑은 너 혼자만 하는 줄 아느냐?”

껄껄 웃으면서 이판관은 몸을 주욱 폈다. 그러자 이 판관은 삽시간에 검은 도롱이 같은 것을 걸친 어두 운 인상의 남자로 변했다.

그것을 보고 은동은 물론 호유화마저도 깜짝 놀랐 다. 아마도 태을사자가 제 정신이었더라면 더욱더 놀랐을 것이다.

“아니.. 너..너는 그러면…”

“그래. 내 진면목을 보여 주었으니 이름도 알려 주 어야 겠지? 나는 마계 서열 이십 사위의 백면귀마 (百面鬼魔)라고 한다.”

호유화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백면귀마를 바라보 았다. 우주 전체에서 繭窒師자신도 손꼽히는데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둔갑을 하다니. 그러나 조금 더 유심히 집중하여 백면귀마를바라보던 호유 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남의 영체를 뒤집어쓰고 있구나!”

그러자 백면귀마는 다시 껄껄 웃었다.

“이판관은 이미 내 손에 잡혀 영체를 내게 주고 정 신만이 남아있느니라.”

그 소리를 들은 은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판관 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인데 그 귀신의 몸을 빼앗아 둔갑을 하다니. 그렇다면일전에 노서기를 손바닥으 로 흡수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판관을 흡수한 것 일까? 호유화는 그런 백면귀마를 보고 더럽다는 듯 말했다.

“정말로 더럽기 이를 데 없는 놈이네. 남의 몸을 뒤 집어쓰고도창피하지도 않으냐? 그런 것은 둔갑이라 고 할 수도 없어.”

“마계에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너조차 내 정체 를 간파하지못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내 술수가 뭇 계(界)중에서도 뛰어난것 같구나. 아주 기분이 좋 다. 허허…”

“좋기도 하겠다.”

호유화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면 너는 언제부터 사계에 와서 이판관의 행세를 한 거냐? 아무리 겉모습이 그럴 듯 해도 이판관의 집무를 행하기는 쉽지않았을 텐데?”

그러나 백면귀마는 빙글거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다 방법이 있다. 좌우간 이제 네 말에는 다 대답했 으니 이제 시투력주를 순순히 넘겨 주실까?”

“그러면 네가 사계에 들어온 것도 다 시투력주를 얻 기 위해서였느냐?”

“그래. 잘 짐작하는군.”

호유화는 날카로운 눈매로 백면귀마를 한 번 노려보 더니 다시 몸에서 빛을 발했다. 다음 순간, 호유화 의 손에는 빛나는 구슬이쥐어져 있었다. 호유화는 구슬을 들고 한 번 돌려서 그것을 보더니 백면귀마 에게 말했다.

“이것이 그리도 탐이 나느냐? 사백년 후의 천기밖에는 알 수 없는 물건인데?”

“그래. 그건 대단히 귀중한 물건이거든.”

“무엇에 쓰려고?”

“그것은 대답할 수 없다. 좌우간 이제 어서 구슬을 넘겨라.”

그러자 호유화는 유유히 미소를 띄며 백면귀마에게 말했다.

“싫다면?”

그러자 백면귀마는 크게 안색이 변했다.

“일구이언을 하다니! 나는 마계의 존재이지만 거짓말을 하지는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호유화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생글생글 웃었다. “나는 애당초 응낙한 적이 없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한 것뿐이지 그렇게 하겠다고 수락한 적은 없으 니.”

“하지만 너는 좋다고 말하고 네 조건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호유화는 깔깔깔 웃으며 말했다.

“너는 다른 이들을 모두 풀어주라는 조건에서 태을 사자를 빼놓았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응낙한 적이 없어. 똑똑히 기억해 보아라.”

그리고 보니 호유화는 은근슬쩍 말재주로 백면귀마를 우롱한 셈이 되었다. 백면귀마는 호유화가 자신을 속인 것에 몹시 화가 난듯 했다.

“이 버르장머리없는 계집이! 그런다고 흑면투색에 묶인 네가 꼼짝이나 할 수 있을 성싶으냐! 흑면투 색! 그 년의 법력을 모조리빨아 들여라!”

백면귀마가 소리를 지르자 호유화를 묶고 있던 밧줄 에서 갑자기음산한 기운이 감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순간, 호유화의 몸이 갑자기 짜부라져 버리는 것처럼 되면서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 닌가! 그리고 흑면투색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은동은 크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호유화!”

그러나 백면귀마는 은동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백 면귀마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가 갑자기 경악하며 뒤로 돌아섰다. 호유화는 바로 그 뒤에 있었던 것이 다.

“어어!”

은동은 너무 놀랍고도 반가워 소리를 질렀다. 호유화가 도대체 어떻게 흑면투색을 풀고 백면귀마의 뒤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가없었다. 그러나 백면귀마는 곧 이를 갈면서 말했다.

“네 년… 처음부터 분신으로…”

그러자 호유화는 깔깔 웃었다. 애당초 영악하기 이 를 데 없는 호유화는 앞일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 니 아까 분신술을 폈을 때은동을 끼고 달아나던 호 유화조차도 진짜가 아니라 분신이었던것이다. 백면 귀마는 호유화가 구미호이니 만치 꼬리가 아홉 개여 서 아홉 가닥으로 분신을 할 수 있다고만 믿었다. 그러나 호유화의 정작 꼬리 말고도 몸은 따로 있는 법이니 아홉 개의 분신 외에도 진짜 몸이 하나 있었 다. 아까 분신을 할 때에 호유화는 꼬리의 분신만을 아홉 개 만들어서 백면귀마와 홍두오공의 주의를산 란하게 만든 다음 정작 진짜 몸은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가 힘을회복하려고 숨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흑면투색이 효력을 발휘하려고 하자 재빨리 꼬리를 회수했던 것이다. 호유화는눈살을 찌푸리면 서 백면귀마에게 말했다.

“네 놈이 뭇 계에서 가장 뛰어난 둔갑술을 지녔다 고? 다시 한 번말해 봐. 분신을 코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너는… 네 법력은..”

“나는 이미 쉴 만큼 쉬었다. 법력도 절반은 회복되 었으니 네 놈들 따위는 내 상대가 못 된다.”

그러면서 호유화는 귀찮다는 듯 머리카락 한 가닥을 내저으면서말했다.

“썩 꺼져버리면 뒤쫓지는 않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면귀마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을텐데? 허세 부리지 말아라.”

백면귀마는 호유화의 머리카락 한 끝을 가리켰다. 

” 비록 분신에 쓰인 것이라고는 하나 네 몸의 일부임에는 틀림없으니.”

그러나 호유화는 흥 하고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외쳤다.

“그러면 어서 해치워야 겠군!”

소리를 치고는 호유화는 눈부신 동작으로 머리카락 아홉 개를 마치 꽃송이처럼 솟구쳤다가 땅에 일제히 내리 꽂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백면귀마의 주변 에 네 명의 호유화의 분신이 나타났고 홍두오공의 주위에 다섯 명의 호유화의 분신이 나타났고 호유화 의 진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호유화의 아홉 분신들은 일제히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 면귀마도 만만치는 않았다. 아홉 분신 중 흑면투색 이 씌워져 있는 분신이 아직도 있었는데 백면귀마는 그쪽부터 먼저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흑면 투색이 씌워진 호유화의 분신은 뒤로 물러서면서 나 머지 세분신이 그 앞을 막아섰다. 한편 홍두오공은 거대한 몸을 굴리면서 마구 날뛰면서 다섯 분신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홍두오공은 워낙이 거대하 여 분신들이 가하는 공격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큰 괴수라 그 정도 공격에는 큰 타격을 받는 것 같 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 공격을 받고 나자 홍두오공 은 화가 났는지 괴이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홍 두오공은 입에 물고 있던 태을사자를 공중에 던져 버렸다. 정신을 잃은 태을사자의 몸은 허공을 맴돌며 부유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태을사자가 제 정신이 들려면 멀은 것 같았다. 귀찮은 것이 없어지

자 홍두오공은 꿈틀거리면서 호유화의 분신들을 향 해 덮쳐 들어갔다.

은동과 금옥은 그 지독한 싸움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호유화와 백면귀마의 싸움은 법력으로 싸우는 것이 라 주변 사물에 피해를 별로 주지 않았지만 홍두오 공은 나무며 돌들을 마구뭉개버리면서 싸우고 있었 다. 한참 싸우고 나자 호유화는 백면귀마가 말한 대 로 점차 법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호유화는 분 신들을 다시 합하여 둘로 갈라져서 각각 백면귀마와 홍두오공과대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호유화 쪽이 점점 밀리는 것이 눈에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금옥 이 중얼거렸다.

“큰 일이네…”

그러자 은동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우리 때문이에요.”

“뭐가?”

“우리가 잡히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둘로 나눠서 싸 우는 거라구요. 하나로 합해 싸우면 다른 하나에게 우리가 잡힐지도 모르니…”

은동은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호유화의 안위 나 태을사자도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아버지 강효식이 더더욱 걱정되었다. 지금은 비록 백면귀마나 홍두오공이 호유화와 싸우 느라 정신이 팔려 강효식을 그냥 땅에 놓아두고 있 지만 호유화가 지게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 이다. 더구나 강효식의 몸과 자신의 몸은 백면귀마 의 발 밑에 있으니 행여 상하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힘이 있으면… 아이구..”

발을 구르던 은동에게 문득 아까 태을사자가 건네 주었던 육척홍창 생각이 났다.

‘맞아. 이거라도 어떻게…’

은동은 태을사자가 가르쳐 준 주문대로 육척홍창을 쑥 뽑아 내었다. 그리고 은동은 육척홍창을 손에 꼭 쥐고서 백면귀마 쪽으로 달려갔다.

“조심해!”

백면귀마와 한참 치열하게 싸우던 호유화(분신이었 지만)는 은동이 달려오자 소리를 쳤다. 그 틈을 타 서 백면귀마가 호유화의 어깨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은동은 백면귀마를 향해 힘껏 육척홍창을 던졌다. 비록 힘없는 은동이 던진 창이었지만 난데없이 법기 가 날아들자 놀랐다.

‘아니! 저것은 법기 아닌가? 저 어린 녀석이 어떻 게 법기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백면귀마는 오랫동안 이판관 행세를 해왔고 윤걸을 자주 보기는해 왔었다. 그러나 윤 걸은 주로 백아검 을 사용하였고 육척홍창은 그다지 꺼내본 적이 없 었다. 그래서 백면귀마는 육척홍창이윤 걸의 법기인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은동이 던진 힘은 워낙 보잘것 없었기 때문에 백면귀마는 쉽게 한 손으로 창을 쳐 냈다. 그러나 그 틈에 호유화는 간신히 잡힐 뻔했다 가 다시 몸을 추스를 수있었다. 백면귀마는 화가 나 서 은동을 향해 훅 하고 숨을 불었다. 그러자 한 줄 기의 보이지 않는 무형의 바람 같은 것이 닥쳐와서 은동은 타격을 입고 데굴데굴 굴렀다. 금옥은 깜짝놀라서 은동을 잡으려 했으나 은동은 벌써 굴러서 하 필이면 홍두오공이날뛰는 발치로 굴러가게 되었다. 호유화는 백면귀마가 대단한 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호유화는 백면귀마와는 네 개의 분신을 합 한 힘으로, 홍두오공은다섯 분신을 합한 힘으로 싸 우고 있었는데 홍두오공 쪽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을 듯 싶었지만 백면귀마는 정말 힘에 겨웠다. 할 수 없이 호유화는 홍두오공에게는 두 개의 분신 만을 남겨 홍두오공을 유인하는 한편 일곱 분신의 힘으로 백면귀마와 싸웠다.

그러나 그래도 백면귀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호유 화는 점차 힘이 빠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분신 중 하나에 씌워진 흑면투색때문에 점점 힘이 빠져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호유화는 당황했다.

‘큰 일이다. 이러다간 여기서 정말 끝장 나겠는데?’ 

은동은 나무며 바위들을 뚫고 굴러갔다. 아직 영혼인 몸이라 나무 며 바위에 부딪히더라도 그대로 통과해버리고 고통 은 없었다. 하지만 홍두오공의 발치로 굴러갈 것같자 은동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영혼이어도 홍 두오공에게걸린다면… 그때 누군가가 휙 하고 은동 의 몸을 나꿔챘다. 은동은 깜짝 놀랐으나 다음 순간 반가워서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바로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흑호였기 때문이었다.

“흑호!”

그러나 은동의 몸을 받아 들자마자 흑호는 몸을 한 번 휘청했다.

“제길. 미안혀. 큰일 날 뻔했네.”

흑호는 웃는 얼굴을 지으며 말하는 듯 싶었지만 피 투성이에 만신창이가 된 얼굴은 웃는 것 같지 않고 더더욱 참혹해 보였다. 맞느라 법력이 모자라 몸은 이미 호랑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쩌다가…”

은동이 말하자 흑호도 간신히 전심법으로 들릴락 말 락 하게 말했다.

“제길.. 깜박 속았어. 태을사자의 상관이라구 해 서… 그런데 그놈은 어딨어? 엉?”

흑호는 이판관의 모습을 한 백면귀마에게 속아서 방심했다가 백면귀마에게 거의 반죽음을 당했다. 금 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만큼당했고 백면귀마는 그런 흑호를 태을사자가 나타날 경우 인질로사용하려고 숨만은 붙여 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태을사자는 정 신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나타나서 협박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자 백면귀마는 흑호는 내버려두고 강효 식과 은동의 몸만을 들고호유화를 추적한 것이다. 그러나 흑호는 호유화나 태을사자, 백면귀마 등과는 달라 영력이나 법력이 아니라 자연력으로 힘을 발휘 하는 존재였다. 그런 흑호를 무성한 숲 속에 버려두 고 간 것은백면귀마의 실수였다. 자연력이 왕성한 숲 속에 흑호를 내버려두자 흑호는 저절로 어느 정 도 치유가 되기 시작했고 그러자 약간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급히 이쪽으로 달려 왔다가 운수 좋게 은동을 구하게 된 것이다. 좌우간 은동은 호유화의 분신이 홍두오공에게 쩔쩔 매는 것과 태을사자의 영이 부유하는 것을 보고 다 급하게 말했다. 전에는 흑호를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하도 급한 판이라 무서워할 겨를도 없었다.

“아이구. 그 이판관은 가짜예요. 백면귀마라는 마수였어요.”

흑호는 그 말을 들으며 한 번 입으로 좇 하고 검은 핏덩이를 뱉고 나서 으르 거렸다.

“제기. 난 아직 회복이 안되어서 싸울 수는 없구…. 어떻게 허나.. 아이구아이구.”

흑호는 머리가 좀 둔한 편이라 무얼 해야 좋을지 몰 라 발만 구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은동이 둥둥 떠 다니다가 자칫하면 홍두오공에게 밟힐 것 같아 보이 는 태을사자의 몸을 보고 말했다.

“저 태을사자 님이라도 구해 줘요!”

“아하. 그렇지. 그래. 알았어.”

흑호는 그제서야 대가리를 끄덕이더니 힘든 듯이 몸 을 일으켰다.

흑호의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것이었지 만 하는 수없었다. 흑호는 뛰어 나가기 전에 꼬리를 한 번 말았다. 그러자은동의 몸은 그 꼬리에 찰칵 달라붙었다. 신기한 재주였으나 기실 그것은 호랑이로서 잡귀를 잡을 때 쓰는 수법이었다. 그러나은동 은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 좌우간 은동은 꼬리에 달 라붙은것만으로는 미덥지가 않아 꼬리를 손으로 쥐 었다. 다른 물체들과달라 영력이 있는 흑호의 꼬리 는 영혼인 은동으로서도 손에 잡혔다. 두툼한 꼬리 였다. 그리고 흑호는 홍두오공의 곁을 지나 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꼬리에 매달려서 달려가는 은동 의 기분은매우 묘했다. 흑호는 비록 가끔 다리를 비 틀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잽싸게 홍두오공의 많 은 다리 틈을 비집고 태을사자 쪽으로 달려갔다. 호 유화의 분신도 그것을 눈치챈 듯 홍두오공을 유인했 다. 홍두오공은 호유화의 분신을 쫓느라 정신이 팔 려서 뛰어 들어오는 흑호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흑호는 펄쩍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허공 에 떠 있는 태을사자를 앞발로 걸터 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홍두오공은 흑호가 뭔가 일을 꾸민다는 것 을 알았는지 아가리를 벌리고 녹색의 안개 같은 것 을 내뿜었다. 은동이나 태을사자는 영혼이라 그 안 개가 맞지 않았지만흑호는 전신에 그것을 뒤집어 쓴것 같았다. 갑자기 흑호는 으르릉 하고 소리를 지르 고서 땅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느라 태을사자 를 놓칠 뻔한 것을 은동이 간신히 잡았다. 흑호는 땅에 떨어져서도 데굴데굴 몸을 굴렸다. 은동도 흑 호와 같이 굴렀는데그러는 중에 태을사자의 소맷자 락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보았다. 그것은 백 아검과 예전에 이판관에게서 받았던 묘 그것들을 주울 생각도 못한 채 흑호에게 외쳤다.

“왜 그래요?”

“아이구.. 독…독이여!”

은동도 깜짝 놀랐다. 흑호의 갈기털이 어느덧 시커

멓게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독이라구요?”

흑호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면서 신음소리처럼 내뱉었다.

“아이구아이구… 법력이 있으면… 법력만 있었으면 괜찮을 건데… 아이구구…”

은동은 애가 타서 발을 굴렀다. 아마도 흑호가 법력 이 남아 있었으면 스스로 독을 몰아낼 수 있다는 말 같았지만 은동이 무슨 수로 흑호의 법력을 회복시켜 준단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 은동의머릿속에 뭔가 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번 뇌옥에서 호유화는저 승사자들의 법기를 태을사자에게 전이도력(轉移道 力)이라는 술수로 흡수시킨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 렇다면 흑호에게라고 안될것은 없지 않은가? 은동 은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있는 호유화의분신을 향해 소리쳤다.

“호유화 님! 여기 묘진령이…! 이걸 어서 흑호에게 전이도력술로 불어넣어 주세요!”

그러나 호유화는 호유화대로 지금 한가한 것이 아니 었다.

몸을 둘로 나누어 백면귀마 및 홍두오공을 한꺼번에 대적하고 있는 호유화로서는 몸을 뺄래야 뺄 틈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분산되었다가는 위험한 판인데 싸움 이외의 술수까지 부릴 수는 없었던 것 이다. 그리고 호유화는 흑호 같은 호랑이는 별로 좋 게 생각하지 않았다. 호유화는 비록 구미호라 해도 생계의 여우와는 달랐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감정은 비슷한 데가 있었다.

호랑이를 가깝게 여기는 여우는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 바빠! 둘 상대하는 게 안보여?”

호유화가 다시 홍두오공의 공격을 피하면서 소리를 치자 은동은어쩔 줄 몰라하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흑호를 바라보다가 백아검을 집어들었다. 일단 백아 검을 쥐자 찌르르 하는 기운이 퍼져나왔다. 백아검 안에 봉인되어 있는 윤걸이 기운을 보내는 것같았 다. 은동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으나 마음을 다잡 아먹었다.

‘싸울 자가 없다면 나라도 싸워야지. 아무리 내가 힘이 없어도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은동은 몹시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백아검을 들 고 홍두오공의다리께로 달려갔다. 마침 홍두오공은 은동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참이라 은동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한 듯 싶었다. 은동은 달려가서 홍두오 공의 꼬리께의 갈고리를 백아검으로 냅다 쳤다. 그 러자 꼬리 끄트머리가 은동의 팔뚝만큼 쓱 잘라졌다. 그 정도는 거대한 홍두오공에게는 조금 따끔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홍두오공은 화가 난 듯 했 다. 홍두오공의 시뻘건 네 개의 눈동자가자신에게 향해지자 은동은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았다. 은동은 너무도 겁이 나서 그 자리에서 뒤로 몸을 돌려 달아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홍두오공은 은동을 뒤쫓았다. 은동은 죽을힘 을 다해 달렸고 영혼인지라 숨이 차거나 하지 않아 서 무섭게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홍두오공은 그보 다 더 빨랐다. 직선으로 달려가면 오히려따라 잡힐 것 같아서 은동은 원을 그리면서 뱅글뱅글 돌았다. 홍두오공은 몸집이 커서 그러자 다소 따라오는 속도 가 늦어지는 것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죽을힘을 다해 주변을 두어 바퀴나돌았는데도 결국 속도 차이 는 어쩔 수 없는지 홍두오공은 점점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은동은 눈까지 딱 감고 도망갔으나 막 홍두 오공의 갈고리가 은동의 뒷덜미에 닿을락 말락 하는 듯, 뒷덜미에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한편 호유화는 은동이 용감하게 홍두오공을 유인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흐트러졌다. 지금 점점 소모 되어 가는 법력으로 백면귀마를 상대하기도 어려운 판이었지만 은동이 목숨을 걸고 태을사자를 구하려 하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호유화는 홍 두오공을 유인하던 분신 쪽으로 법력을 더 보냈다. 은동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잡은 기회를 그냥 놓 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저 호랑이 놈은 덩치만 컸지 도움은 안 되는군!’

호유화는 법력을 분신 쪽으로 나누어 전이도력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판관의 법기였던 묘진령에 도력 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그리고 호랑이인 흑호에게 법력이 잘 전달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호유화는 전력을 다해 순간적 으로 묘진령을 분해하여 법력을 흑호에게 밀어 보냈 다. 그러나백면귀마와 싸우던 호유화의 분신은 힘이 딸려 차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유화는 눈을 딱 감고 전이도력술을 완성했다. 그런데 그 순간 땅 속에 둔갑술로 숨어 있던 호유화의 진짜 몸이휙 당겨지는 느낌이 왔다.

‘아차! 분신이 잡혔구나!’

호유화는 당겨지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휙 몸을 돌 려 바깥으로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도력이 딸리는 틈을 타서 백면귀마는 어느 새 호유화의 분신을 붙 잡아 버린 것이다. 호유화는 재빨리 분신을 다시 머 리카락 모양으로 변하게 하여 빠져나가려 했다. 그 러나 백면귀마는 손을 풀지 않았다. 호유화는 머리 카락을 잡힌손을 풀려고 머리카락을 칼 모양으로 변 화시켰지만 백면귀마는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백 면귀마의 손은 강철같아서 호유화의머리칼이 변한 칼로도 베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호유화는 백면귀마 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 자 백면귀마는 흐흐 하고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자 신의 법기인 커다란 낫을꺼냈다. 그러자 호유화는 이를 악물면서 잡힌 머리카락으로 미모침을 쏘아 보 냈다. 코앞에서 쏘아진 미모침은 백면귀마로서도 피 할 수가 없어서 백면귀마의 얼굴에는 미모침 몇 개 가 박혔다.

“이것이! 나가라 혈겸!’

백면귀마는 소리를 치면서 혈겸이라 불리워진 낫 을 휘둘러 던졌다. 그러자 던져진 혈겸은 공중을 회 전하면서 거대한 백골 모양으로 변해서 호유화에게 날아들었다.

도망치던 은동은 뒷덜미가 아릿아릿한것을 느꼈다. 홍두오공 이 그야말로 바싹 뒤쫓아 온 모양이었다. 은동은뒤 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만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어른의 품보다 더 큰 지네 의 갈고리가 막 자신을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은동은 악 하는소리를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이젠 정말끝 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뿐, 홍두오공은 자신에게 더 가까이오지 못했다. 갑자기 못이 박힌 것처럼 홍 두오공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만 것이다. 은동이 의아해서 얼굴을 가렸던 팔을 푸는순간, 홍두오공은 오히려 뒤로 주르르 끌려가고 있었다. 은동은깜짝 놀라 백아검을 안고 다시 달려 홍두오공에게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왜 홍두오공이 뒤로 갔는지 알 수있을 것 같았다. 저만치에서 홍두 오공의 꼬리를 흑호가 안고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 다. 흑호는 독의 부작용 때문인지 전신이정말 시커 멓게 변해 있었는데, 어느 새 둔갑을 했는지 지금은 반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비록 만신창이 가 된 것은 어쩔수 없었지만 힘만은 살아난 것 같았 다. 은동은 흑호가 기운을 차린 것을 보고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무사하군요!”

그러나 흑호는 몹시 놀라고 있었다. 흑호는 호유화 가 전이도력술로 묘진령을 기운을 자신에게 불어넣 어서 자신이 정신을 차린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갑자기 법력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했고그러자 급히 일어났다. 그러자 홍두오공이 은동을 뒤쫓는 것을보 게 되었고 급히 달려가 얼결에 홍두오공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저 거대한 홍두오공이 자신에게 끌려올 줄은몰랐다. 자신은 부상을 입었고 독에까지 중독 되었는데 어째서법력이 예전보다도 더 세어졌는지 흑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여유는 없었다. 홍두오공은 꼬리를 잡히자 분기탱천 한 듯 했다. 홍두오공은 화 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길게 괴이한 소리로 포 효했다. 그러자 지네의 온 몸에서는 날카로운 가시 며 뿔 같은 것들이 솟아 보기에도 무서울정도가 되 었다. 흑호의 덩치도 크다고는 하지만 홍두오공에 비하면 큰 뱀과 작은 쥐 정도만큼이나 차이가 있었 다. 흑호도 찔끔하는 것 같았다.

‘제기. 거 겁나는 놈이네.’

흑호는 이를 드러내며 움츠러들려는 마음에 투지를 불러일으키려 홍두오공에 맞서서 길게 포효했다. 두 괴수(?)가 지르는 소리가 서로 부딪혀 산이 저르릉 하고 울었다. 홍두오공은 흑호를 향해 무섭게 달려 들었고 힘이 더욱 솟아난 흑호도 겁 없이 홍두오공 에게 달려들었다. 은동은 둘이 정면으로 격돌하는 순간 자신도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윽.”

호유화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백면귀마의 혈겸이 날아드는 순간, 몸을 움직여서 피하려 했으 나 백면귀마는 잔인하게호유화의 머리를 잡아 당겼 던 것이다. 그 때문에 호유화는 피하지 못하고 몸을 최대한 비틀어서 혈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혈겸은 호유화의 오 른 팔을베고 지나갔다. 호유화의 눈은 분노로 이글 이글 불타 올랐다.

“이 놈! 네 놈을 반드시 없애 버리겠다!”

호유화는 머리카락을 빳빳이 세우면서 외쳤다. 호 유화의 오른팔에서는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호유화의 눈은 그피만큼이나 빨갛게 변해 있 었다. 백면귀마는 그 기세에 자못 놀라 조금 찔끔했 는데 호유화가 몸을 번득이는 것이 보였다. 

“큰소리를 쳐놓고 도망가기냐?”

백면귀마는 호유화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다시 머리 칼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호유화가 노리던 것이었다. 호유화는당겨지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백면귀마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육탄공격의 기세였다. 백면귀마는 놀라 뒤로 주 춤하는데 호유화는 백면귀마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서 머리카락을좌악 솟구쳐 냈다. 마치 홍수 물이 터 져 나오는 듯한 기세였다.

“모라망(毛羅)! 없어져라! 더러운 놈!”

순식간에 백면귀마는 호유화의 머리카락에 칭칭 감 겨 버리고 말았다. 호유화는 전력을 다하여 백면귀 마를 그대로 으스러트리려는 듯 했다. 조여드는 힘 이 엄청나서 백면귀마는 비명을 올렸다.

그러나 백면귀마에게는 아직 법기로 쓰던 혈겸이 남아 있었다.

그 혈겸은 호유화의 등 쪽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 혈겸에 정통으로 찔리면 제 아무리 호유화라도 별 수 없이 죽을 판이었다.

호유화는 할 수 없이 몸을 돌려 달려드는 혈겸을 두 손으로 잡았다. 호유화는 한 손으로 혈겸을 잡으려 했으나 흑면투색이 법력을 계속 없애고 있는데다가 백면귀마를 옭아 맨 것이 오히려 법력을 많이 소모 하여 양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내가 실수했네.’

호유화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지금 몸을 뒤로 돌린 상태에서 혈겸을 잡고 있는 것은 위험하기 짝 이 없었다. 백면귀마의 혈겸을 잡은 손이 조금이라 도 느슨해지면 혈겸이 정통으로 닥쳐들것이니 피할 재주가 없었다. 그런가하면 비록 백면귀마를 모라망 의 술수로 얽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모라망에 놓은 법력 또한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되었다. 백면귀마의 법력도 만만치 않은 터이니 모라망이 조금이라도 약 해지면 놈이 모라망을 헤치고 나와 등뒤에서 호유화 를 공격할 것이다. 양손이 자유롭지 못하고 진신(眞 身)이 드러나 있는 터에 등뒤에서 기습을 당한다면…

‘에잇. 하는 수 없네. 미안해. 호랑이씨.’

호유화는 홍두오공 쪽은 흑호에게 맡기기로 하고 홍두오공을 유인하던 분신의 힘마저도 모조리 끌어 와서 백면귀마를 더더욱 옭아매었다. 어서 놈을 결 단 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호유화의 법력이 모라망에 더욱 가해지자백면귀마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으으윽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백면귀마의 고통스러워하는 눈이 금옥을 보 게 되었다.

금옥은 그때까지 멍하니 이 믿어지지 않을 환수와 마수의 싸움을넋이 나간 듯이 보고 있었다. 백면귀 마의 머리는 순간적으로 회전했다.

‘저 계집은 신립을 사모한다고 했으렷다. 신립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겠지.. 그러니.. 그러니..’

백면귀마는 눈을 붉게 변하게 하면서 입을 벌렸다. 그러자 백면귀마의 입에서 한 사람의 영이 반쯤 몸 을 내밀게 되었다. 사람형상을 한 백면귀마의 입에 서 또 한사람의 몸이 내밀어진다는 것은 자못 괴이 하게 보였다. 하지만 금옥은 그것을 괴이하게 여길 수 없었다. 백면귀마의 입에서 반쯤 솟구쳐 나온 사 람은 바로 신립이었기 때문이다.

“시.. 신 장군!”

그러자 백면귀마의 음흉한 목소리가 금옥에게 들려왔다. 전음법(傳法)을 사용하여 금옥에게만 들리 는 목소리였다.

어서 호유화를 찔러라…. 그래. 저기 창이 떨어 져 있군. 그것을 주워서 저 년을 찔러! 백면귀마는 아까 은동이 떨군 육척홍창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 다. 금옥은 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안돼요! 못 합니다!”

신립 놈의 혼령, 내가 회수 해 두었다. 말을 듣 지 않으면 신립 녀석을 물어서 결단 내 버릴 것이 다. 그러면 놈은 영원히 환생도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좋으냐? 응?

백면귀마는 금방이라도 신립의 영을 물어서 두 조 각을 내려는듯 아가리에 힘을 주었다. 신립의 영혼 은 비록 아무 정신이 없는듯 했으나 백면귀마가 힘 을 주자 고통을 느끼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을 본 금옥은 화들짝 놀랐다. 자기가 죽었으면 죽었지 자신이 사모해 왔던 신립의 고통을 본다는 것은 더 견딜 수 없는일이었다. 더구나 신립은 영의 몸이 되 어서 훨씬 젊었을 때의 모습, 그러니까 금옥이 만났 던 그 당시의 젊은 신립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그것 을 보자 금옥은 더더욱 마음이 울렁거리는 듯 했다.

“시.. 신 장군…”

금옥은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 야 한단 말인가? 그래. 나는 나라도 팔아먹었고 수 천의 군사가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다. 나는 못된 년이다. 그래. 그런 것이야 무슨 상관이있겠는가? 아니, 아니야.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는 없어. 더 이 상은 안돼. 그러나 신 장군이… 신 장군이… 금옥 은 애써서 자신을 채찍질하려 했으나 그럴수록 신립 의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만이 더더욱 분명히 나타날 뿐이었다.

– 어서 해라! 나는 절대 혼자 죽지는 않겠다. 이놈이 결단 나는 것을 보고 싶으냐? 응?

“안돼.. 안돼요…”

금옥은 떨리는 손으로 자기도 모르게 육척홍창을 집어들었다.

만약 창 속에 윤걸이 들어 있는 것이라면 금옥을 말렸을지도 모르지만 육척홍창은 단순한 윤걸의 법 기 였을 뿐. 더군다나 이미백아검에 봉인되어 있는 윤걸로서는 백아검 밖에 나온 육척홍창을 회수할 수 도 없었다. 혈겸과 씨름을 하는 한편 모라망으로 백 면귀마를 옭아매느라 땀을 흘리던 호유화도 비로소 금옥의 표정과 백면귀마의 입에서 반쯤 내밀어진 신 립의 모습을 보고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짐작했 다.

“금옥! 안돼! 녀석을 찔러 버려!”

– 신립 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으냐? 어서 저 년 을 찔러! 저년은 꼼짝도 하지 못한다! 한 번만 찌 르면 신립을 놓아주겠다! 어서! 

지금 백면귀마와 호유화는 둘 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전 법력을 기울여 대치하는 상태에서 외부 에서 조그마한충격이라도 가해진다면 법력이 흩어져 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없다. 결국 가공할 법력을 지닌 둘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다만아무 힘도 없는 금옥의 손에 운명이 결정되는 판이었다. 금옥은 망설이는 듯 계속 창을 들고 떨리는 손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호유화는 거의 생전에 흘려본 일 이 없는 땀을 뻘뻘흘렸고 백면귀마는 상기되어 안색 이 시퍼렇게 변했다. 금옥의 안색도 백짓장처럼 하 얗게 질렸다. 금옥이 만약 영혼의 상태가 아니고 몸 을 지니고 있었다면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러 나 지금 금옥은 울 수조차 없었다. 금옥은 창을 들 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호유화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 다. 호유화는 날카롭게 외쳤다.

“뭐야?”

그러자 금옥은 떠듬떠듬한 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쇤네를.. 용.. 용서해 주세요…”

그러자 수천 년을 살면서 한번도 당황해 본적없는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미쳤어! 안돼!”

그러나 금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창을 쥐고 호 유화에게 다가왔다. 비록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무엇인가 결심한 듯, 눈빛만은 단호해 보였다. 백면귀마는 좋아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전음법을 쓰지도 않았다.

“그래! 어서 찌르란 말야! 그러면 놈을 놓아준다! 어서!”

금옥은 잠시 머뭇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눈을 딱 감고 창을 치켜들었다. 호유화는 그때까지도 설마 설마 하는 생각으로 큰 눈망울을 들어 금옥을 뚫어 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분신을 나누어금옥을 제지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조금이라도 힘을 뺐다간 당장백 면귀마가 뛰쳐나오거나 혈겸이 가슴팍을 찌를 판이 었다. 그러나 호유화는 설마 은동과 함께 자신을 따 라온 금옥이 정말 자기를 해치기야 할까 하는 생각 이 있었다.

‘설마.. 설마…’

그러나 금옥은 창을 치켜들더니 호유화의 왼 팔에내리 꽂았다.

“으라챠!”

흑호는 기합성과 함께 거대한 홍두오공의 대가리를 잡아 옆으로굴렸다. 그러자 거대한 홍두오공의 몸은 구르면서 팔뚝만한 나무들과 덤불들을 마구 넘어트 리고 깔아뭉개면서 볼 품 없이 나뒹굴었다. 흑호는 절로 신바람이 났다. 조금 아까 홍두오공의 독에중 독 되었던 기미도 어느 새 사라져 버렸고 힘이 펄펄 솟아났다.

그것은 바로 이판관의 묘진령의 기운을 흡수한 때문 이었다. 이판관은 저승에서도 상당한 고위직의 인물 로 거의 백면귀마에 상당하는 정도의 법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법기인 묘진령에만도 보통 저 승사자 두 명 분 정도의 법력이 깃들어 있었다. 과거 흑호는 혼잣몸으로 태을사자와 흑풍사자, 윤 걸 등과 잠깐대적을 하여 밀리지 않은 경험이 있었 다. 그렇게 대략 잡을 때지금 흑호의 법력 수준은 다시 두 명의 저승사자의 기운을 흡수한 태을사자에 비해서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에까지 다다른것 이다. 다만 흑호는 중상을 입은 몸이었고 별로 느껴 지지는 않는다 해도 홍두오공의 독이 몸에 감돌고 있었다. 거기다가 방금얻은 법력을 완전히 부린다 는 것도 무리여서 지금은 온전히 법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둔갑술이나 기타의 법력 은 발휘하지 못하고 오로지 물리적인 힘으로만 모든 법력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러니 홍두오공과 같은 거대한 괴수를 일격에던져 버리는 것도 가능했던 것 이다. 흑호는 현재 대략 이 만근가량의 힘을 낼 수 있었으니 그 거대한 홍두오공보다도 힘으로보아서는 우세했다. 그러나 홍두오공도 만만한 괴수는 아니었 다.

흑호에게 꼬리를 잡힌 데다가 내 던져지기까지 하자 홍두오공의분노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홍두오공은 사실 흑호가 만신창이의 상태로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보고 가소롭다는 생각에 전력 을 다하지 않았었다. 한 번 꼬리를 잡힌 다음에도 그냥 겁을 주려 몸을 흉악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뒹굴어서 흙투성이가 되고 나자 홍두오공도 바싹 긴장했다. 흑호는홍두오공을 던져 버리고 나자 기고만장해졌다.

‘저 놈은 덩치만 컸지 아무 것도 아녀. 내가 언제 이렇게 세졌는지 몰러. 좌우간 법력이 남으니이친 구도 정신이 들게 해 줄까?’

흑호는 껄껄 웃으면서 홍두오공을 돌아보지도 않고 태을사자의정신 잃은 몸을 주워들었다. 그래서 아까 강효식이나 은동의 몸에 해 준 것처럼 법력을 밀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은동이소리치는 것이 들 렸다.

“아이구! 뭐하는 거예요! 조심해요!”

흑호는 원래 머리가 조금 둔한데다가 기고만장해져 있었기 때문에 은동의 말에 태연히 대답했다. “염려말어. 저런 놈은 내 상대가 못…”

그러나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던 흑호는 갑자기 눈 을 화등잔만하게 뜨면서 입을 쩍 벌렸다. 어느 틈에 그런 것인지 홍두오공의주위에는 수많은 조금 작은 지네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지네들은 흉측하게도 몸은 지네이면서도 얼굴은 비통하게 일그러진 사람 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대략 세 자 정도의 길이였 는데 날개도 없는데 허공에 떠 있었다. 아마 날아다니는 놈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홍두오공의 이마 한 가운데 박힌 구슬 같은 것이 계속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홍두오공 은 계속 아가리에서 인면오공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에서야 흑호도 긴장했다. 얼른 태을사자를 뒤로 돌려 두고 흑호가 법력을 모으는데 홍두오공이 길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인 면오공(人面蜈蚣)들이 흑호를 향해 새카맣게 몰려들 었다. 흑호는 다시 이를 드러내면서 몸을 굽혀 으르 렁거리다가 자신도 전력을 다하여 털이 북슬북슬한 앞발로 땅바닥을 후려쳤다. 그러자 땅에서 주먹만한 것부터 자갈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돌들이 솟 구쳐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면서그 돌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날아서 인면오공들을향하 여 부딪혀 갔다. 일전에 풍생수와 싸우던 태을사자 를 구원할 때 사용한 적이 있는 영발석투(靈發石 投)의 술법이었다.

인면오공들은 수는 많았지만 하나하나가 그렇게 강 한 것은 아니었던 듯, 좀 큰돌을 정통으로 맞은 놈들은 끼익 끼익 하는 소리를 지르며 땅에 떨어져 내 렸다. 영발석투로 쏘아낸 돌들은 그냥돌이 아니라 하나하나에 얼마간의 법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 위 력도 상당했다.

 흑호는 두 개의 앞발을 번개같이 놀려 인면오공들을 정신없이 후려쳤고 만근의 힘이 있는 흑호의 앞발에 정통으로 맞은 인면오공들은 썩은 냄새와 검은 물을 퉁기면서 글자그대로 바스러져 없어졌으나 인면오공들은 계속 덤벼들어흑호의 온 몸을 물고 늘어졌다. 견디다 못 한 흑호는 뒤로 물러서면서 다시 땅을 후려쳤다.

“회오리!”

그러자 영발석투로 쏘아졌던 돌들은 잠시 공중에서 멈칫하더니곧 무서운 기세로 회오리 모양을 그리면 서 돌기 시작했다. 돌 회오리바람이 인면오공의 한 무리를 덮치자 인면오공들은 개미가소용돌이에 휩쓸 리듯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검은 물이될때까지 박살이 나서 사방에 뿌려져 버렸다. 삽시간 에 흑호의돌 회오리는 수십 마리의 인면오공을 박살 내 버렸다. 그러나 또다른 수십 마리의 인면오공은 흑호를 물어뜯으며 늘어졌다. 견디다 못한 흑호는 다시 소리를 쳤다.

“소나기!”

그러자 회오리를 이루고 있던 돌들은 갑자기 하늘 로 눈부시게솟구쳐 올라갔다가 흑호를 향해 소나기 처럼 떨어져 내렸다. 흑호도 물론 같이 돌 비를 맞 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흑호는 비록돌에 맞더라 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고 인면오공들은 그렇지 못했다. 삽시간에 흑호의 몸을 에워싸고 있 던 인면오공들은 돌 소나기 세례를 받고 수없이 죽 어갔다. 비록 흑호도 이미다친 상처에 돌을 많이 얻 어맞아 몰골은 더 흉악해졌으나 의기양양했다. 흑 호는 아까 독에 물들어 검게 변했었는데 인면오공의 박살난 검은 피를 온통 뒤집어쓰고 자기가 내린 돌 비를 얻어맞아 아까보다 더 붓고 깨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흐뭇하게 이를 드러내며 자랑스럽게 웃는 모습이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은동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그런 기분이었다.

‘자기가 저렇게 얻어맞고도 좋아하다니… 용감한 건지 둔한건지 아니면 무식하다 못해 무모한 건지 알 수가 없네.’

그러나 흑호가 의기양양할 수 있었던 것도 잠시에 지나지 않았다. 인면오공들을 물리쳤다고 해도 아직 주(主)가 되는 홍두오공은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는 홍두오공이 다시 흑호에게 덤벼 들었다. 홍두오공의 기세는 조그마한 인면오공들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흑호가 긴장하며 팔에 힘을 주는 순간, 홍두오공은 갑자기흑호의 바로 앞에서 방향을 틀어 땅 속으로 우르릉 소리를 내며들어갔다. 흑호는 잠시 당황하여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홍두오공은 재빨리 흑 호의 뒤쪽에 불쑥 대가리를 솟구쳐 올라왔다. 흑호 는 얼른 몸을 날려 고개를 뒤로 돌린 상태에서 앞으 로피했다. 그러나 흑호의 앞을 가로막고 홍두오공의 꼬리가 솟구쳐올랐다.

“어이쿠!”

흑호는 홍두오공의 꼬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얼마나 세게맞았는지 몸이 붕 떠서 날아간 흑호는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를분지르면서 계속 날아갔다. 그러다가 큰 나무등걸에 덜컥 부딪힌후에야 흑호는 땅에 떨어져 내렸다. 홍두오공은 그것을 보고 다시 아가리를 벌려 시퍼런 독을 내뿜었다. 흑호는 어질 어질했지만얼른 몸을 굴려 독을 피했다. 그러자 독 을 맞은 나무는 그 자리에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 숯처럼 변해 버렸다.

“지독하구먼!”

홍두오공은 계속 독을 뿜어대어서 흑호는 몸을 일 으킬 수조차없었다. 이번에 뿜어내는 독은 아까의 녹색 독보다도 훨씬 지독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보 다 못한 은동은 돌이라도 집어 던지려했으나 영혼인 은동의 손에는 돌조차 쥐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흑 호는 몸을 계속 굴리다가 균형을 잘못 잡아 가시덤 불로 굴러들어갔다. 따가운 것은 둘째치고 잔가시에 엉겨서 몸을 굴릴 수조차 없었다. 홍두오공은 그것 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대가리를 치켜들며 독을 뿜어 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무엇인가가 휙하고 날 아들면서 홍두오공의 미간을 노렸다. 비록 홍두오공 은 간신히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몹 시 놀란 모양이었다.

은동은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하고 돌아보다가 기뻐서 소리를 쳤다.

“태을사자님!”

태을사자가 어느새 일어나 있었던 것이었다.

아까 흑호가 법력을 나누어 주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방금 홍두오공에게 날려 보낸 것은 묵학선이었는데 아직 태을사자의 법력은 거의 회복되지 않아서 묵학 선도 학으로 변하지 못하고 다만부채 모양으로 홍두 오공의 시야를 현혹시킨 것에 불과했다. 태을사자는 손에 백아검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운이 없는 듯몸을 휘청했다. 그러면서도 태을사자는 은동에게 소리쳤다.

“이 놈도 마수냐?”

“맞아요! 그리고…”

은동은 태을사자에게 이판관이 가짜이고 그 진짜 정체는 마수인백면귀마이며 자신의 몸과 아버지 강 효식이 그 놈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고 외치고 싶었 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홍두오공은 흑호를 내버려 두고 태을사자에게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태을사 자는 비록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 다. 만검법을 응용하여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백아 검을 돌리자 백아검은 홍두오공의 대가리에 푹하고 꽂혀 들어갔다. 그러나 거대한 홍두오공은백아검이 박혔는데도 계속 태을사자에게 덤벼 들었다. 그리고 태을사자는 다음순간 홍두오공의 머리에 받히고 말 았다. 백아검은그 서슬에 홍두오공의 머리에서 뽑혀 나가 버렸다. 그러나 법기이기도 한 백아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물 위를 둥둥 떠가듯이밀려가 버렸 다. 가시덤불에서 몸을 일으킨 흑호가 그것을 보고 홍두오공에게 미친 듯 덤벼들었지만 홍두오공의 꼬 리가 흑호를막았다. 홍두오공의 꼬리에는 아가리처럼 집게가 한 쌍 있었는데 흑호는 비록 홍두오공의 꼬리를 움켜쥐었지만 흑호도 그 집게에물리고 말았 다. 잘못하면 허리가 두동강이 날 참이라 흑호는 집 게를 움켜쥐고 힘을 썼다. 그리고 홍두오공의 대가 리에 받힌 태을사자는 놀랍게도 홍두오공의 이마에 박힌 구슬에 빨려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벌써 하반신은 그 구슬에 빨려 들어가서 태을사자는 상반신만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홍두오공의 이마에 박혀 있는 구슬은 인혼주(人魂珠)라는 것으로 예전 에 나타났던 홍두오공이나 풍생수의 이마에 박힌 것 처럼 인간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태을 사자도 비록 저승사자이지만 근본은인간의 영혼이니 거기에 빨려 들려 하는 것이다. 태을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안간힘을 써 버티고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인혼주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리고 흑호도 홍 두오공의 집게에 잡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포효하 는 소리를 계속 지르고 있었다.

둘 다 홍두오공에게서 빠져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 다. 은동은 그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려왔다. 거의 절대정명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힘없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