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3권 – 13화 : 원가도 중원을 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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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3권 – 13화 : 원가도 중원을 향하고


원가도 중원을 향하고

허도를 벗어난 유비의 군사는 며칠 안 돼 서주(徐洲)에 이르렀다. 자사로 있던 차주(車胄)가 멀리까지 나와 유비를 맞아들였다. 아직 허도의 내막을 모르는 차주는 유비가 조조의 명을 받아 온 것이란 점만 믿고 정성을 보인 것이었다.

유비를 대접하는 잔치가 끝나자 미축과 손건이 전에 유비를 따르 던 이들과 함께 보러 왔다. 유비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 늙고 젊 은 가솔들과 지내는 한편 사람을 뽑아 원술의 움직임을 살펴보게 했 다. 오래잖아 조조의 부중에서 만총에게 들은 말을 뒷받침하는 소식 이 들어왔다.

“원술은 지나치게 사치가 심해 장수인 뇌박과 진란(陣蘭)이 그를 버리고 숭산(嵩山)으로 숨는 등 세력이 많이 줄었습니다. 홀로 지탱할 수 없게 된 원술은 할 수 없이 종형 원소에게 글을 보내 제 호(號)를 바치겠다 하니 원소도 그를 받아들이겠다 했습니다. 이 에 인마를 수습하고 황제 노릇할 때의 어용지물(御用之物)을 챙긴 뒤 원소에게 가기 위해 서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같은 소식을 들은 유비는 곧 중도에서 원술을 치기 위해 군사 를 움직였다. 관우와 장비 외에 주령, 노소 등 조조가 딸려 보낸 장 수들과 오만 군사를 몰아 원술이 지날 길목에 진을 치고 기다리기로 했다.

오래잖아 원술의 선봉 기령이 대군을 이끌고 그곳에 이르렀 다. 오랜 싸움에 굶주려 온몸이 근질거리던 장비가 나는 듯 말을 달 려나가더니 한마디 수작도 건네보지 않고 똑바로 기령에게 덤벼들 었다. 기령 또한 원술의 상장(上將)이라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 았다.

한동안 둘의 싸움은 제법 볼만하게 어우러졌다. 그러나 이미 몰락 해가는 주인을 둔 탓인지 기령은 끝내 장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처 열 합을 넘기지 못하고 한소리 외침과 함께 내지르는 장비의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대장이 그 모양으로 죽자 원술의 선봉군은 허물어지고 군사들은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다행히 원술이 스스로 대군을 이끌 고 나타나 싸움은 크게 어우러지게 되었다.

유비는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었다. 주령과 노소는 왼편에 있게 하고 장비와 관우는 오른편을 맡게 한 뒤 스스로는 중군이 되어 마 주쳐 갔다. 저만치 원술이 문기(門旗)아래 서 있는 걸 보자 유비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나라에 반역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도리조차 어긴 놈이다. 나는 지금 밝으신 조서를 받들어 너를 치러 왔다. 마땅히 두 손 을 묶어 항복한다면 지난 죄는 면할 수도 있으리라.”

원술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껏 소리 높여 유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본시 돗자리나 짜고 짚신이나 삼던 하찮은 무리였거늘 어 찌 감히 나를 그토록 가볍게 여기느냐? 네놈을 사로잡아 그 버릇없 는 혀를 잘라놓으리라!”

그러고는 그대로 군사를 몰아 덤벼들었다. 유비는 잠시 그 기세에 못 이긴 척 군사를 물렸다. 그걸 알 리 없는 원술의 대군이 유비의 진채 깊숙이 밀려들자 홀연 좌우에서 군사가 일었다. 왼쪽에서 쏟아 지는 것은 주령과 노소의 군사요, 오른편에서 밀고 드는 것은 관우 와 장비의 군사들이었다. 원술은 당황했다. 그때 다시 도망치던 유 비가 되돌아서서 치고 나오자 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눈사태 뭉 그러지듯 무너지니 곧 들판은 원술의 군사들이 남긴 시체로 덮이고, 흐르는 피는 내를 이를 지경이었다.

간신히 목숨은 건져 달아났으나 원술의 비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 았다. 제 주인을 믿지 못하게 된 사졸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흩어 지고 그 위에 숭산으로 달아났던 옛 장수 뇌박과 진란이 나타나 곡 식과 돈까지 앗아가버렸다.

원술은 할 수 없이 원래의 근거지인 수춘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적 떼가 벌떼처럼 일어 덤벼드니 돌아갈 길이 없었다. 겨우 강정(江)이란 궁벽한 곳으로 쫓겨들어 진채를 내렸다. 그때 남은 군사는 천 명 남짓, 그나마도 모두 늙 고 힘없는 자들이었다.

때는 한창 더운 철인데 양식은 다하여 남은 것은 다만 밀 서른 가 마였다. 그것이나마 군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어 버리자 거느린 가 솔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자가 많았다. 한때 황제를 칭하던 원술의 가솔이 겪는 것 치고는 너무도 비참한 정경이었다.

원술도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끼니라고 내오는 것이 잡곡밥 이니 그때껏 호사스럽게 지내던 그의 목구멍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주방 일을 맡은 자에게 꿀물을 가져오 게 했다. 답답한 속 때문에 생긴 갈증이라도 달래보려는 뜻에서였다. 

“꿀물이 어디 있소? 있다면 핏물이나 있을까.”

주방 일 맡은 자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다 망하여 쫓기는 주제에 딴에는 애써 장만한 음식을 거칠다 하여 내치고 없는 꿀물을 찾는 데 부아도 났거니와 이제는 더 참을 기분도 아니었다.

주방 일 맡은 자의 그 불측한 댓거리에 원술은 억눌러온 심화가 일시에 터졌다.

“네 이놈!”

평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크게 호통을 치다 그대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지더니 피를 한 말이나 토하고 죽어버렸다. 때는 건안 사년 유월이었다.

원술에 대해 정사(正)『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이런 평을 하고 있다.


‘원술은 사치하고 음란하며 방탕하여 그 끝이 좋지 못했으니 그는 모두 스스로가 불러들인 화이다[袁術奢淫放肄榮不終己自取之也].’

거기 비해 주)를 단 배송지松)의 평은 훨씬 심하다. ‘사치하고 음란하여 그 끝이 좋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는 원술의 큰 악(惡)을 보여주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어쨌든 『연의』와 정사의 잦은 상위(相違)에도 불구하고, 원술에 대한 인물평만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그야말로 사람과 귀신의 미 움을 함께 받은[人鬼之所同疾]모양이었다.


원술이 죽자 그 조카 원윤胤)은 원술의 시신과 그 처자를 이끌 고 여강 태수 유훈(劉勳)에게 의지해 갔다. 그때 서구(徐)란 자가 있어 무리를 이끌고 도중에 그들을 습격했다. 변변한 군사 몇조차 딸리지 못한 원술의 유족들을 마음껏 죽인 뒤에 옥새를 빼앗아 허도 의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서구에게 고릉(高陵)태 수 벼슬을 내리고 옥새를 거두니 그때부터 전국의 옥새는 조조의 손 에 들어갔다.

한편 간신히 서구의 손을 벗어난 원술의 딸과 아들 요()는 여강 태수 유훈에게 갔으나, 곧 손책이 보낸 군사에게 유훈이 패하자 손 책에게 항복해버렸다. 손책은 원술의 딸을 후궁으로 받아들이고 원 술의 아들 요에게는 낭중 벼슬을 주어 강동에 살게 했다. 뒷날 손권 은 원요(袁)의 딸을 자신의 아들 손분)의 배필로 삼기까지 했으나 지하에 든 원술로 보면 한가지로 굴욕적인 자손들의 몰락이 었다.

원술이 죽었다는 소식은 유비의 귀에도 들어갔다. 유비는 그 소식을 조정에 상주함과 아울러 조조가 딸려 보낸 주령과 노소를 따돌리 기로 하고 글 한 통을 닦아주며 둘에게 말했다.

“이미 원술이 죽었으니 두 분 장군께서는 허도로 돌아가 승상께 이 글을 올려주시오. 나는 서주가 허술하니 그곳에 남아 지키겠소.” 

조조와 유비의 미묘한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주령과 노소로서는 굳이 유비의 말을 거슬려가며 남을 이유가 없었다. 그날로 약간의 졸개들만 데리고 허도로 돌아갔다.

그래도 주령과 노소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던 조조는 그 둘 이 편지 한 통만 들고 덜렁 허도로 돌아오자 몹시 노했다.

“저 미련한 두 놈을 끌어내 베어버려라!”

그때 순욱이 나서서 말렸다.

“이미 대권이 현덕에게 있는데 그 수하에 있던 저 둘이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현덕의 교활함을 나무라실지언정 저 둘을 벌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조조도 그 말을 듣자 무턱대고 화만 낼 수는 없었다. 주령과 노소 를 목 베는 대신 꾸짖어 물리치고 다시 순욱과 마주 앉았다. 

“마침 서주에는 차주가 태수로 있습니다. 그에게 몰래 글을 보내 현덕을 없애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순욱이 그런 조조에게 조용히 말했다.

조조도 그 계책이 그럴듯하다 여겼다. 곧 사람을 뽑아 몰래 차주 에게 글을 보냈다. 때를 보아 유비를 죽이라는 글을 받자 차주는 곧 진등을 불러 그 일을 의논했다. 저번 여포를 잡아죽일 때 세운 공으로 보아 어김없이 조조의 사람이 되었다고 믿은 탓이었다.

“그 일이라면 아주 쉽습니다. 지금 유비는 성을 나가 백성들의 환 심을 사는 데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며칠 안 있으면 다시 성으로 돌 아올 것인즉 그때 장군께서는 군사를 성벽 안에 감추고 기다리다가 그가 말을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려 한칼에 베어버리도록 하십시오. 저는 따로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 위에 있다가 뒤따라오는 그의 졸 개들을 활로 쫓아버린다면 일은 깨끗이 해결될 것입니다.”

차주에게 불려온 진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차주는 좋은 계책이라 여겨 따랐다. 그러나 진등은 차주와 작별하자 마자 부친 진규를 찾아가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현덕은 그렇게 해칠 사람이 아니다. 먼저 그에게 이 일을 알려주 어 대비케 해야 된다.”

진규가 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꼭 유비를 죽일 마 음이 없었던 진등은 부친의 명을 받자 급히 말을 달려 성을 나갔다. 마침 관우와 장비가 유비보다 한발 앞서 성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진등은 그 둘에게 차주가 조조로부터 밀명을 받은 일과 아울러 자기 가 차주에게 일러준 꾀를 알려주었다.

“얼른 가서 차주 그놈을 한 창에 꿰어놓아야겠소!”

미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장비가 장팔사모를 둘러메며 소리쳤다. 관우가 그런 장비를 진정시켰다.

“이미 저쪽은 성벽 안에 군사를 감추고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가 면 반드시 낭패를 볼 것이네. 내게 차주를 죽일 수 있는 계책이 있으 니 그대로 해보세. 밤중에 조조의 군사가 서주에 도착한 것처럼 꾸며 차주로 하여금 성을 나와 우리를 맞게 하세. 그래 불시에 그를 치면 힘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을 것이네.”

성난 가운데도 들어보니 옳은 계책 같았다. 이에 장비도 관우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먼저 자기편 군사들을 조조의 군사처럼 꾸몄다. 원래 유비가 이끈 군사들은 대개가 조조로부터 얻은 군사들이었다. 기치며 병장기가 모두 조조군의 특색을 보이는 것들이라 일은 어려 울 게 없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이 깊어 삼경쯤 되었을 때 한 떼의 군사가 서주 성 앞에 나타나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그대들은 어디서 온 군사들인가?”

성 위에 있던 차주의 군사들이 물었다. 어둠 속에서 다시 여럿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조승상께서 장문원(張) 장군과 함께 특히 뽑아 보내신 인마 다. 아무래도 서주의 일이 마음에 걸려 밤을 낮 삼아 달려가도록 명 하셨으니 그대로 태수께 아뢰도록 하라.”

군사들이 그대로 차주에게 알렸다. 차주가 성 위에 나가 내려다보 았으나 어둠 속이라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되돌아가 진등을 잡고 걱정했다.

“만약 나가서 맞지 않으면 승상을 섬기는 내 정성이 의심받을 것 이고, 나가서 맞아들이려 하니 또한 속임수가 있을까 두렵소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다가 진등이 별 계책을 내지 못하자 답답한 듯 다시 성벽위로 나가 소리쳤다.

“지금은 밤중이라 잘 분별하기 어려우니 내일 아침 날이 밝은 뒤에 서로 보도록 하는 게 어떻소?”

“그렇게 늑장을 부릴 여유가 없소. 유비가 알까 두렵소이다. 얼른 성문을 여시오.”

바깥의 군사들이 한층 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래도 차주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데 성 밖에서 성문을 열라는 함성은 한층 높아졌다. 언뜻언뜻 보이는 기치도 조조의 군사들이 항용 쓰는 것들 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한 차주는 갑옷을 차려입고 군사 일천까지 딸린 뒤에야 비로소 적교를 내리게 했다.

“문원)은 어디 계시오?”

적교 위에 올라선 차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때 횃불 아래서 관 우가 청룡도를 휘두르며 똑바로 말을 달려오는 모습이 비쳤다. 

“이 하찮은 것아, 어찌 감히 속임수로 우리 형님을 죽이려 했느냐?” 

벽력 같은 호통과 함께 달려드는 관운장을 보자 차주는 몹시 놀 랐다. 손발이 떨려 몇 합 겨루어보지도 못하고 말 머리를 돌려 달아 나려 했다. 그러나 적교를 건너려 해도 진등이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아 붙여 건널 수가 없었다.

차주는 할 수 없이 성벽을 끼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멀리 갈 팔자는 못 되었다. 뒤따라온 관운장이 청룡도를 번쩍 들어 한 번 내려침과 함께 차주의 몸은 두 동강이나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반적 차주는 내가 이미 죽였다. 나머지는 죄가 없으니 항복만 하면 죽음은 면하리라!”

관운장이 차주의 목을 베어들고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 러자 서주를 지키던 차주의 군사들은 모조리 창칼을 거꾸로 잡고 관 우와 장비에게 항복해버렸다. 백성들도 아울러 유비에게로 돌아서 니 성안은 곧 평온을 되찾았다.

관우는 뒤늦게 성안으로 들어온 유비에게 차주의 목을 바침과 함 께 그동안의 일을 알렸다. 유비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큰일날 짓을 했네. 자기가 믿고 서주를 맡긴 차주를 함부로 죽였 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나? 만약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온다면 어쩔 셈인가?”

“아우와 장비가 나가 맞겠습니다.”

관우가 늠름하게 대답했으나 현덕은 종내 근심을 지을 수가 없 었다. 누구보다 조조의 세력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 었다.

유비가 성안으로 들어서니 늙고 젊은 백성들이 길에 엎드려 유비 를 맞이했다. 그들을 일일이 위로하고 태수의 부중(府中)으로 들어 간 유비는 곧 장비를 찾았다. 그때 이미 장비는 차주의 일가 노소를 모조리 죽이고 돌아온 뒤였다. 딴에는 후환을 없앤다고 한 짓이지만 그 참혹한 일에 유비도 드디어 성을 내어 꾸짖었다.

“조조가 아끼고 믿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놓고도 어찌 성하기를 바라겠느냐? 너무 끔찍하구나.”

그러고는 더욱 큰 근심에 빠져들었다. 보고 있던 진등이 딱했던지 한 가지 빠져나갈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 조조가 두려워하는 것은 원소입니다. 원소는 기주, 청주, 병 주, 유주 네 고을을 호랑이 굴로 삼아 조조에게 맞서고 있는 바 갑병 (甲兵)이 백만이요, 그를 섬기는 문무의 인재도 매우 많습니다. 이 같은 때에 어찌 그에게 사람을 보내 구함을 청해보지 않으십니까?” 

“원소와 나는 예전에 한번 만났을 뿐 그동안 내왕이 거의 없었소 이다. 거기다가 이번에 다시 그의 아우 원술을 쳐 없앴는데, 어찌 나 를 도우려 나서겠소?”

유비가 맥없이 반문했다. 원소와 원술은 오래 반목했으나 적어도 근래에는 화해가 성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등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에 원소와 삼대에 걸쳐 교분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 다. 만일 그의 글 한 조각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원소는 반드시 달려 와 장군을 도울 것입니다.”

“그게 누구요?”

“그 사람은 장군께서도 평소 존숭의 예절로 깍듯이 모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어찌 잊고 계십니까?”

그러자 유비도 비로소 깨달은 듯 소리쳤다.

“그렇다면 정강성(鄭成) 선생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유비의 물음에 진등이 빙긋이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정강성의 이름은 현(玄)으로 유비에게는 일생에 걸쳐 몇 번이고 예사 아닌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그는 유비의 스승이었던 노식과 함께 당대의 석학이던 마융(馬融)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재주에 못지않게 행실도 곧았다. 마음은 제자를 가르칠 때 넓은 방에다 장 막을 드리워 앞에는 제자들을 앉게 하고 뒤에는 아리따운 가기(歌 妓)들을 벌려 세워 제자들이 공부하는 양을 구경하게 했다. 학문 못 지않게 학문하는 자세의 단련에도 뜻을 둔 배치였다. 젊은 제자들은 대개 아리따운 기녀들에게 곁눈질을 하게 마련이었으나 정현(鄭) 은 마음의 문하에 머문 삼 년 동안 단 한번의 삿된 눈길도 보낸 적 이 없었다.

마도 그런 정현을 심히 아껴 힘써 가르쳤고 배움을 마치고 돌 아갈 때는 감탄하여 말했다.

“내 학문의 깊은 부분을 얻은 자는 오직 정현 하나뿐이다.”

그러나 정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학문에 전심하였다. 그러다 보니 집안 전체가 저절로 학문에 젖어 시비들까 지도 모시(毛詩詩經)를 줄줄 욀 정도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시비 가운데 하나가 정현의 뜻을 거슬 러 계단 앞에 꿇어앉아 벌을 받게 되었다. 짓궂은 다른 시비 하나가 모시의 구절을 빌려 놀린다.

“어쩌다가 진흙 속에 떨어지게 됐느뇨[胡爲中]?”

“한 말씀 드리려다 노여움을 산 탓이라네[薄言往恕 逢彼之怒].” 

벌을 받고 있던 시비도 같이 모시의 한 구절로 응수했다. 집안의 풍류와 아취가 대개 그 정도였다.

환제 때 벼슬길에 오른 정현은 상서에 이르렀으나 십상시의 난 때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와 서주에 자리를 잡았다. 유비는 탁 군에 있을 때 스승 노식으로부터 그에게 배울 수 있도록 추천장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상산의 나무꾼 늙은이 [常山樵翁]를 만나 생각을 바꾸고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 인연은 나중에 유비가 서주목徐州 牧)이 되었을 때 기어이 맺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학문의 귀함을 깨 닫게 되어 늦게나마 정현을 찾아 가르침을 청함으로써였다. 여포의 배신으로 비록 오래도록 배울 수는 없었으나 유비가 정현을 스승으 로 섬기는 정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진등의 깨우침으로 그런 정현을 생각해낸 유비는 크게 기뻤다. 곧 진등과 함께 정현의 집으로 달려가 급한 사정을 말하고 원소에게 보 내는 글 한 통을 써주기를 청했다. 제자로서보다는 헝클어진 천하를 풀어나갈 인재로서의 기대에 바탕한 글이었다.

“그대는 이 글을 품고 밤을 낮 삼아 달려 원소에게 전하도록 하라.” 

정현의 글을 받아낸 유비는 돌아오자마자 손건을 불러 그렇게 일 렀다.

주인의 곤궁을 짐작하고 안타까워하던 손건은 나는 듯 말을 달려 기주로 갔다.

“현덕은 내 아우를 공격해 죽게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돕는다는 것은 당치 않다. 그러나 정상서의 글이 중하니 가서 구해주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은 원소는 그렇게 말하며 문무 관원들을 불러모은 뒤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칠 의논을 했다.

모사 전풍(田豊)이 일어나 말했다.

“해마다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은 지쳐 있고 창고에는 쌓인 곡식도 없는데 다시 대군을 일으켜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 천자께 공손찬을 이긴 첩보를 올리고 허도의 태도를 살피십시오. 천 자와 조정이 우리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기를 기다려보다가 정히 뜻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시 표문을 올려 조조가 우리와 천자 사이를 이간시킨 죄를 묻고 군사를 일으키시면 됩니다. 먼저 군사를 여양 땅에 둔쳐 방비를 굳게 하신 뒤 하내(內)에서는 배와 노를 더 만들 게 하시고 싸움에 필요한 군기(軍器)도 말끔히 수선하시어 내실부터 기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군사를 내시되 정면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병을 갈라 조조와의 변방을 여전히 굳게 지키기만 한다면 삼년 이내에 대사는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면 대결을 피하고 굳게 지킴으로써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자는 주장이었다. 모사 심배(配)가 당장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소이다. 우리 명공의 신무(神武)하심으로 하삭(河朔)의 강성함을 어루만져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조조를 치는 것은 손바닥 을 뒤집는 것처럼이나 쉬운 일이오. 무슨 까닭으로 쓸데없이 세월을 끌어간단 말씀이오?”

하지만 다른 모사 저수祖)는 생각이 전풍과 비슷했다. 심배의 혈기 찬 말에 은근히 퉁을 주듯 맞섰다.

“싸움에 이기는 길이 반드시 강성함에 달린 것은 아닐 것이외다. 저쪽은 이미 조조의 법령이 자리 잡았고 그 군사도 날래고 단련되어 있으니 공손찬과는 다릅니다. 가만히 앉아서 곤궁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오. 이제 전풍의 훌륭한 계책을 버리고 명분 없는 군사를 일으 키는 것은 명공께서 취하실 만한 계책이 못 됩니다.”

그런 저수의 말을 또 한 사람의 중요한 모사 곽도(郭圖)가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다. 조조를 향해 일으키는 군사가 어찌 명분이 없단 말씀이오? 명공께서는 바로 지금이 일찌감치 대사를 정해두어야 할 때 외다. 바라건대 정상서의 글에 따라 유비와 함께 대의로 조조를 치 도록 하십시오. 이는 위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바람에도 맞는 일입니다.”

아끼는 모사 넷이 두 패로 갈라져 각기 자기들의 계책이 옳음을 주장하니 원소도 선뜻 마음을 정할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불 려온 허유(許)와 순심이 방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원소가 말 했다.

“이 두 사람도 보고 들은 게 많은 선비요. 이들의 주장이 어떠한 지도 한번 들어봅시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이 예를 다하기 무섭게 물었다.

“정상서가 글을 보내기를, 나더러 군사를 일으켜 조를 치라는구 려 그대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옳겠소,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편 이 옳겠소?”

그러자 두 사람은 목소리를 함께하여 대답했다.

“명공께서는 많음으로써 적음을 꺾고 강해진 뒤에야 약함을 공격 하셨습니다. 왕실을 받들고자 한나라의 역적을 치는 것은 또한 같습 니다. 마땅히 군사를 일으키셔야 합니다.”

그들의 말에 원소도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했다. 몸을 일으켜 탁 자를 치며 소리쳤다.

“두 사람의 소견이 정히 내 뜻과 같소. 속히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시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현에게 답을 띄우고 한편으로는 유비에게 접응할 채비를 갖추라는 전갈을 보내도록 했다.

원소군의 진용은 이러했다. 주전론을 편 심배와 봉기가 나란히 통 군(軍)이 되고, 거기에 가담한 허유와 순심에다 지구론을 편 전풍 을 딸려 모사로 삼았다. 군세는 마군 십오만에 보군 십오만을 합쳐 총 삼십만으로 안량)과 문추(文醜)가 대장이 되어 여양 땅을 향 해 발진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원소의 인맥을 살펴보자.

심배는 위군(郡) 사람으로 자를 정남(正)이라 했다. 어려서부 터 충렬, 강개의 기상이었으며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절도가 있었다. 원소가 기주를 얻을 무렵부터 신임을 받아 치중별가(治中別駕)가 된 이래 그를 섬기게 되었는데, 그 재주와 지략이 범상치 않아 자주 논 의를 주도했다.

전풍은 자가 원호(元皓)로 거록(鉅鹿) 사람이라고도 하고 발해(渤 海) 사람이라고도 한다. 타고난 자질[]이 빼어났으며 권모술수 와 지략에 아울러 밝았다. 효성 또한 지극하여 어려서 친상을 당했 는데 슬퍼함이 극진하였고, 몇 달이 지나도록 이가 드러나게 웃는 법이 없었다. 책을 두루 읽어 아는 것이 많아 일찍부터 주군(州郡)에 이름을 떨쳤다. 잠시 군리(郡)를 지내다 효렴에 뽑히어 시어사侍 御史)가 되었으나 환관들이 발호하자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돌아와 살았다. 원소가 간곡한 글과 폐백을 보내 그를 부르매 왕실을 받든 다는 그의 대의명분에 응해 섬기게 되었는데 일찍이 원소에게 천자를 모실 것을 권할 만큼 그의 살핌은 밝은 데가 있었다. 조조에게 있어 곽가나 순욱 같은 존재로 비록 원소가 그의 충언을 잘 받아들이 지는 않았으나 모사 중에는 으뜸가는 인재라 할 만했다.

봉기의 자는 원도(元圖)라 썼는데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일찍 원 소가 동탁과 틀어져 낙양을 빠져나올 때부터 허유와 함께 그를 따랐 다. 원소는 기주를 손에 넣을 때부터 주로 그의 계책을 따랐고 신임 또한 두터웠으나 심배를 얻게 되자 그와 자주 뜻이 맞지 않았다. 그 러나 도량이 넓어 사감으로 큰일을 그르치는 법은 없었다. 어떤 사 람이 원소에게 심배를 모함하자 의심을 품은 원소는 봉기에게 심배 의 일을 물은 적이 있었다. 봉기는 선뜻 대답했다.

“심배는 천성이 맵고 강직한 데가 있어 옛사람의 절도에 비할 만합니다. 의심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대는 심배를 싫어한다 들었는데?”

원소가 뜻밖으로 심배를 변호하는 그에게 어리둥절해 말했다. 그 러자 봉기가 엄숙히 대답했다.

“지난날 그와 다툰 것은 사감 때문이었으나, 지금 말하고 있는 것 은 나랏일입니다. 어찌 혼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또한 원소의 신임을 얻기 위한 말재주라는 의심이 있으나 대 개그의 사람됨이 그러했다.

저수는 광평(平)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뜻이 크고 권략에 밝았다. 주(州)의 별가(別駕)를 지내다 현령을 거쳐 전(前)기주 자사 한복(韓 馥)의 별가가 되었다.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자 기도위(騎都尉)에 있 던 그도 원소의 사람이 되었는데, 또한 모사 중에 모사라 할 만했다.

허유는 자를 자원(遠)이라 쓰며 조조와는 동향인 국사 람이었다. 일찍이 임협(俠) 시절부터 조조와 가까운 사이였으나 동탁이 낙양으로 들어왔을 때 조조가 겉으로나마 동탁을 돕는 체하 는 데 실망하여 원소를 따르게 되었다. 원소와 함께 기주로 달아난 뒤 그를 도와 일했는데 지나치게 격하고 진퇴에 가벼운 흠이 있으나 재사로는 역시 당대에 일류였다.

그밖에 곽도와 순심 등도 하나같이 박식하고 지략에 밝아 인재를 모으는 데까지는 결코 원소가 조조에 뒤지지 않았다. 무장도 안량과 문추를 비롯해 고람(高覽), 장합(張郃), 신비(辛毗) 등 당천)의 용사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모든 일이 정해지자 다시 곽도가 나서서 말했다.

“이제 명공께서 조조를 치시고자 크게 떨치고 일어나셨으나 먼저 해야 할 것은 조조의 죄악을 모조리 헤아려 격문을 여러 군에 돌리 시는 일입니다. 사방에 널리 그 죄를 성토하고 군사를 내셔야만 명 분이 바로 서고 사람들도 우리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원소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문전(文典)을 맡고 있는 진림(陳 琳)을 불러 조조를 성토하는 격문을 짓게 했다.

진림은 지난날 하진(何이 환관들을 뿌리 뽑고자 사방의 군웅들 을 불러들이려 할 때 그 같은 계책의 어리석고 위태로움을 지적하며 말리던 주부(主簿) 진림 바로 그 사람이었다. 예견한 대로 낙양에 들 어온 동탁이 난리를 일으키자 기주로 피신했다가 오래잖아 기주를 차지한 원소의 부름을 받아 문전을 관장하고 있었다.

명을 받은 진림은 그 뛰어난 문장으로 격문을 써내려갔다.

‘대저 듣기로 밝은 임금은 변란을 억눌러 위태로움을 없이 하고 충성스런 신하는 어려울 때를 걱정해 권세와 위엄을 세운다 했다. 그러므로 비상한 사람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 은 뒤에야 비상한 공이 이뤄지게 되니, 무릇 비상한 일은 오직 비상 한 사람만이 뜻할 수 있는 바다.

옛적 진(秦)은 나라는 굳세어도 임금이 여려, 조고(趙高)가 권세를 잡고 조정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위세와 화복이 모두 그로부터 나오니 그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껴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세(二世)황제는 끝내 망이궁(望宮)에서 조고에게 죽 고, 조종은 모두 불타 없어지매 그 욕됨은 오늘까지 전해 와 길이 세상의 경계할 바가 되어 있다.

그 뒤 한의 여후(呂后) 때에는 여산(呂)과 여록(呂)이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해서, 안으로는 남군, 북군을 함께 거느리고, 밖으로는 양(梁)과 조(趙) 두 나라를 아울러 주물렀다. 조정의 온갖 중한 일을 저희 멋대로 해치웠으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신하가 임금을) 얕보 고대신하니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한심하게 여겼다.

이에 강후, 주발)와 주허후(侯, 유장)가 군사를 일으켜, 포 악한 역적들을 분노로 쳐 죽이고 태종(太宗)을 세웠다. 그리하여 왕 도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빛남이 널리 드러나게 했으니 이는 곧 대신이 권세와 위엄을 세워 나라의 어지러움을 구한 뚜렷한 본보기 이다.

조조의 할애비인 중상시 조등은 좌관 서황 같은 내시들과 어울려 갖은 요사스럽고 못된 짓을 다한 자이다. 더럽게 재물을 긁어모으고, 거칠 것 없이 날뛰어, 세상의 풍속을 썩게 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조조의 애비 조숭(曹嵩)은 원래 비럭질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조등 의 양자가 된 뒤 뇌물을 써서 벼슬자리를 얻은 자이다. 바리바리 금 은보옥을 권세 있는 이의 집으로 실어날라 마침내는 태위까지 사게 되니 천하의 중한 일을 함부로 둘러엎은 꼴이다.

이제 그 아들 조조를 보자. 조조는 더러운 내시의 자손으로서 원 래 아름다운 덕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교활하게 협행(俠行)을 꾸미 며, 어지러움을 좋아하고 화를 일으키기를 즐겨했다.

막부(幕府, 여기서는 원소의 진영 또는 원소 자신)는 응양군을 이끌고 흉악한 역적의 무리를 쓸어 없앴으나, 잇달아 동탁이 나와 높은 자 리를 차지하고 나라를 힘으로 억눌렀다. 이에 (막부는) 칼을 뽑고 북 을 울려 동하(東夏)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영웅을 끌어모음에 버릴 자는 버리고 쓸 자는 쓰니, 그로 인해 조조와도 함께 의논하고 꾀를 합치게 되었다. 그때 조조에게 군사를 내어준 것은 그의 매나 개 같 은 재주를 (막부의) 발톱이나 이빨로 쓰려 함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어리석고 계략이 짧아, 가볍게 나아가고 쉬이 물러남으로써 여러 번 군사만 잃고 싸움에 져 쫓기었다.

막부는 그런 조조에게 다시 군사를 나누어 잃은 것을 채워주었고, 한편으로는 천자께 아뢰어 동군 태수로 삼고 연주 자사에까지 오르 게 했다. 그렇게 하여 세력과 위엄을 쌓게 해준 것은 적과의 싸움에 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오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조조는 발디딜 근거가 생기자 함부로 날뛰기 시작해, 흉악하고 못된 짓을 멋대로 저질렀으며, 어진 이를 죽이고 착한 이를 해쳤다. 구강 태수 변양)은 재주 있고 씩씩하기로 이름난 사람이 었으나, 바른 말만 하고 아첨을 모르다가 죽음을 당해 그 목은 저잣 거리에 걸리고 그 아내와 자식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선비들이 그 일을 분히 여기고 백성들의 원망도 높아가, 한 사람 이 팔을 걷어붙이자 모든 고을이 소리를 함께해 조조를 욕했다. 그 때문에 조조는 서주에서 패해 그 땅은 여포에게 뺏기고, 동쪽으로 떠돌며 거처할 곳조차 얻지 못했다.

막부는 나라의 줄기를 든든히 하고 곁가지가 쓸데없이 무성하는 걸 막고자 반역하는 무리에 들지 않고 다시 군사를 내어 자리말 듯 밀고 나아가 적을 쳤다. 징소리 북소리 울리는 곳에 여포의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조조는 목숨을 건짐과 아울러 방백(方 伯)의 자리까지 되찾았다. 따지고 보면 막부는 연주 땅 백성들에게 는 아무런 덕도 베풀지 못하고 헛되이 조조만 크게 도와준 셈이 되 고 말았다.

그 뒤 천자께서 (낙양으로 되돌아오시자 역적의 무리들이 떼지어 쳐들어왔다. 그때 막부는 기주에 있었으나, 마침 북쪽의 더러운 도 적이 우리 백성을 놀라게 해 그 어려운 국면에 기주를 비울 수가 없 었다. 따라서 막부는 종사중랑 서훈(徐勳)을 보내 조조로 하여금 먼 저 낙양으로 가게 했다. 가서 불탄 종묘를 수리하고 어린 임금을 지 키라 한 것인데 조조는 모든 걸 제멋대로 하고 임금과 신하를 겁주 어 억지로 천자를 자신에게로 옮겨 가뒀다. 왕실을 낮추고 욕보였으 며, 법을 뒤엎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 앉아서 삼대(三臺)를 거느리고 조정의 일을 제멋대로 하니, 상과 벌이 모두 그의 마음에 달 렸고 죽이고 죄 주는 일 또한 그 입 끝에서 정해졌다. 그의 아낌을 받으면 위 아래로 오대(五代)가 빛났고 미움을 받으면 삼족이 죽어 없어졌다. 여럿이 모여 떠들면 드러내놓고 죽였으며, 마음속으로 욕 하는 이는 아무도 모르게 죽이니, 모든 벼슬아치는 입을 다물고 다 만 눈짓으로 뜻을 통하며, 상서는 다만 조회를 적을 뿐이고, 공경은 그저 자리나 채울 뿐이었다.

태위 양표는 일찍이 사도, 사공을 지내나라에서 가장 높은 벼슬 자리를 거친 이였다. 그러나 조조의 눈 밖에 나자 죄 아닌 죄로 갖가 지 고문을 당하고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니, 조조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며 나라의 기강을 돌보지 않음이 그와 같았다.

또 의랑 조언(趙)은 충성스럽고 바른 말을 해 그 옳음이 하나같 이 받아들일 만했다. 조정에서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때로는 잘못 을 고치고 때로는 그 충성을 상주었으나 조조는 나라의 권세를 훔치 기 위해, 바른 말을 못하게 하려고 조언을 죽이고 천자께 아뢰지도 않았다.

또 양효왕(梁孝王)은 선제(先)와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간이 니 그 묘소는 떠받들어져야 하고, 둘레의 소나무 잣나무까지도 마땅 히 귀히 여겨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조조는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 고 가서, 그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깨어 시신을 드러내면서까지 금 은과 보화를 꺼냈다. 천자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백성들이 모두 슬퍼 해 마지않은 일이다.

조조는 또 발구중랑장(發丘中郞)이니 모금교위(摸金校尉니 하는 벼슬아치를 내세워 닥치는 대로 무덤을 파헤치게 하니, 보물과 함께 묻힌 해골치고 드러나지 않은 게 없다 할 만하다. 몸은 비록 삼 공의 자리에 있다 해도 그 하는 짓은 도둑이나 다를 바 없다. 실로 나라를 더럽히고 백성을 해치며 사람과 귀신에게 아울러 독한 짓을 하는 자이다. 거기다가 그 다스림의 세세함은 끔찍하고도 모질다. 법과 형벌을 두루 펴서, 세상살이 곳곳에다 함정을 파고 길을 막으 니 (백성들은) 손을 들면 그물에 걸리고 발을 움직이면 함정에 떨어 지게 되었다.

이에 연주, 예주의 백성들은 즐거움을 모르고, 천자 계신 서울은 원망 소리만 드높을 뿐이다. 세상의 책을 모조리 들쳐 무도한 신하 를 찾아낸다 한들 조조보다 더 욕심 많고 잔인하며 가혹한 자가 어 디 있으랴.

막부는 한창 바깥의 간사한 역적을 치느라 바빠 그런 조조를 다 스리고 가르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너그러이 용서해 그가 마음을 고쳐 먹기만 바라며 그때그때를 보아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늑대같이 컴컴한 마음으로 가만히 화를 일으킬 음모를 키워 나갔다. 나라의 기둥 같고 대들보 같은 신하들을 휘어잡아 한실을 외롭고 약하게 만들고, 충성되고 바른 이들을 내쫓거나 죽여 홀로 우뚝한 영웅이 되었다.

지난번 우리가 북을 울려 북쪽의 공손찬을 칠 때, 굳센 적은 모질 게 맞서 에워싸이고도 일 년이나 버티었다. 조조는 적이 깨뜨려지지 않음을 보고 몰래 글을 주고받아, 겉으로는 우리를 돕는 체하면서도 안으로는 가만히 우리를 덮치려 했다. 다만 그 심부름꾼이 우리에게 잡히어 흉계가 드러나고 공손찬 또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칼날을 감추고 못된 꾀를 거두어 우리를 해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조조는 오창에 머물러 우리가 강을 건너기 어려움만 믿고 버마재비의 앞발 같은 도끼로 수레바퀴 같은 우리의 군사에 맞서려 한다. 막부는 한실의 위령(威)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는 바, 긴 창을 든 군사 백만에 말 탄 장수의 무리만도 천이다. 옛적의 중황(中)이나 육, 하육), 획獲, 오획)같이 날래고 씩씩한 장사가 좋은 활과 강한 쇠뇌를 갖춰 떨쳐 일어남이니, 병주의 고간)은 태항산(山)을 넘고 청주의 원담은 이미 제수(水)와 탑수 (水)를 건넜다. 대군은 그 머리를 앞으로 향해 황하(黃河)를 건너 고, 형주 군사는 완성과 섭성으로 내려가 조조의 뒤를 끊었다. 우레 처럼 울리고 범처럼 나아가 저의 근거지에 모이는 날에는 타오르는 불로 마른 쑥덤불을 사르듯, 푸른 바다를 뒤엎어 단 숯불을 끄듯 적 을 칠 것이니, 누가 죽어 없어지지 않고 견뎌낼 것이다.

거기다가 조조의 군사와 벼슬아치들 가운데 싸울 만한 자는 모두 가 유주, 기주 땅 사람들로, 더러는 일찍이 내 밑에 있었던 적도 있 어 모두 돌아오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바라고 있다. 또 그 나머지는 연주, 예주 땅 백성이거나 여포와 장(張)을 따르 던 무리로, 주인이 망한 뒤 위협을 못 이겨 억지로 따르고는 있되, 각기 조조와의 싸움에서 다치고 상한 적이 있어 그를 원수로 여기는 바다. 한번 우리가 깃발을 휘두르며 높은 곳에 올라 북만 울려도, 바 람에 쓸리듯 모두 항복해 와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스러지 듯 할 것이니, 칼날에 피를 묻힐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한실은 힘을 잃고 기강은 풀어졌으며, 조정에는 돕는 신하가 없고 종실에도 역적을 막을 세력이 없다. 도성 가까운 곳의 바른 말 하던 신하들도 이제는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나래를 접은 채 어찌할 줄 모르는 새 새끼 같은 꼴이다. 비록 충의로운 신하가 있다 할지라 도 포학한 신하에게 억눌려버렸으니 어찌 그 절개를 펴보일 수 있 으랴.

또 조조는 자기가 거느린 군사 칠백으로 궁궐을 에워싸, 겉으로는 천자를 지킨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실제로는 천자를 가둬놓고 있다. 그가 역적질할 마음이 그렇게 함으로써 싹튼 게 아닌지 참으로 두렵 다. 이제야말로 충신이 간과 뇌를 땅에 쏟으며 몸을 바칠 때이며, 열 사가 나라를 위해 크게 공을 세울 때이니 누가 가진 힘을 다 쏟아붓 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조는 또 어명과 나라가 정한 바에 따름이라 내세우고 사람을 흩어 군사를 모아들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고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군사를 댈까 걱정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럿의 뜻을 어기 고 역적질에 가담하는 짓이 되며,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 밝고 생각 깊은 사람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로 유주, 병주, 청주, 기주 네 곳에서 아울러 군사를 낼 것이 니, 이 글이 형주에 이르거든 형주도 얼른 군사를 일으켜 건충장군 (建忠將軍, 장수)과 성세를 합치도록 하라. 그밖의 주군도 각기 의로 운 군사를 가다듬어 경계에 벌여 세우고, 크게 무위를 떨쳐 기울어 진 나라를 바로잡으라. 그리함으로써 비상한 공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조조의 목을 얻는 자에게는 오천호후(五千戶侯)에 봉하고 오천만 전을 상으로 내릴 것이며, 조조 아래의 장수나 장교, 관리라도 항복 해오는 자는 그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널리 이 너그러움과 믿음을 펴며 벼슬과 상을 걸고 천하에 포고한다. 천자께서 갇히고 핍박받는 어려움 속에 계심을 알리나니 영이 떨어지는 대로 따르라.’


진림이 지어올린 격문을 본 원소는 매우 기뻐하며 여러 벌 베껴 급히 각 주군에 돌리게 하는 한편, 물과 물의 주요한 길목마다 방으 로 붙이게 했다.

격문은 오래잖아 허도에도 이르렀다. 그 무렵 조조는 두풍(頭風) 을 앓아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조홍이 송구한 듯 그 격문을 가져다 바쳤다. 그걸 읽자 조조는 모골이 송연하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더 니 두풍까지 싹 가셔버렸다. 그만큼 진림의 글은 매서웠다.

“이 격문은 누가 지었다고 하던가?”

펄쩍 뛰듯 일어난 조조가 물었다. 조홍이 불길 이는 눈길로 대답했다.

“듣기로 진림이란 놈이 지었다고 합니다.”

눈앞에 있다면 금방 한주먹으로 으깨어버릴 듯한 태도였다. 조조 와 사촌인 조홍으로서는 당연했다. 그러나 조조는 역시 달랐다. 대 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하는 자들은 싸움하는 재주를 당해내지 못한다. 진림의 글이 비록 아름답다 하나 원소의 싸움하는 재주가 그에 따르지 못하니 어 쩌겠느냐? 원소가 내게 깨뜨려지는 날은 반드시 내 손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런 다음 곧 여러 모사들을 불러놓고 원소를 맞아 싸울 의논을 했다. 전에 북해 태수였던 공융이 그 소식을 듣고 왔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소는 지금 세력이 엄청납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화해를 하도록 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원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인인데 무 엇 때문에 그와 강화를 맺는단 말이오?”

순욱이 공융을 나무라듯 물었다. 공융이 그 말을 받아 계속했다. 

“원소는 거느린 인재가 많고 백성들도 강성하오. 그 밑에 있는 허 유, 곽도, 심배는 모두 지모가 있는 사람들이며 전풍과 저수는 충직 한 사람들이오. 안량, 문추의 용맹은 삼군(三軍)을 덮을 만하고 고람, 장합, 순우경 등도 모두 세상에 드문 명장들이외다. 그런데 어찌 원 소를 쓸모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나 순욱은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원소의 군사는 많으나 정연하지 못하고 전풍이란 사람은 강직하 여 윗사람을 자주 거스르며, 허유는 탐심이 많아 지혜롭다 할 수 없 고, 심배는 지모보다 고집이 세고, 봉기는 쓸데없이 과단성만 앞세 울 뿐이오. 거기다가 이 사람들은 서로 뜻이 맞지 않으니 오래잖아 반드시 서로 싸우게 될 것이외다. 장수도 마찬가지요. 안량, 문추는 그저 하찮은 무리의 용맹뿐이니 한번 싸움에 사로잡을 수 있고 그 나머지 용렬한 무리들은 백 명에 이른다 한들 입에 올릴 가치도 없 소이다.”

그러자 공융도 잠시 그 같은 순욱의 말을 되씹어보는 듯 말이 없었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순욱을 편들었다.

“그렇지. 모두 문약(文)의 헤아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그러고는 곧 유대(劉岱)와 왕충(忠)을 불러 영을 내렸다. 

“유(劉)장군은 전군이 되고 왕(王)장군은 후군이 되어 군사 오만 을 이끌고 서주로 가시오. 승상의 기호(號)를 그대들에게 내줄 터 이니 반드시 그걸 앞세우고 유비를 공격하도록 하시오.”

공융과 순욱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서주 쪽에 보낼 장 수까지 마음속에서 결정해둔 모양이었다. 명을 받고 나가는 둘을 보 며 정욱이 조심스레 말했다.

“유대와 왕충이 과연 맡은 몫을 해낼지 걱정됩니다.”

정사에 따르면, 유대는 자가 공산(公山)이고 패국(國) 사람이다. 그런데 『연의』에서는 그가 ‘옛날엔 연주 자사였는데 조조가 연주를 취함에 이르러 유대는 조조에게 투항하였고 조조는 그를 편장으로 등용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연의』의 저자는 그와 동래(東萊) 모평 (平) 사람인 유대를 혼합하여 한 사람으로 얘기한 것이 분명하다. 유대는 편장(將) 노릇을 하고 있었고, 왕충은 그보다도 더 이름 없 는 장수였다.

조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역시 이들이 유비의 맞수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 소. 다만 허장성세로 유비를 속이려는 것뿐이오.”

다시 말해 조조는 모든 역량을 원소와의 싸움에 집중시키기 위해 유비를 우선 서주에 묶어두기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대와 왕충이 서주로 떠나기 앞서 덧붙인 당부로 더욱 뚜렷했다.

“결코 가볍게 나아가지 마시오. 굳게 지키며 내가 원소를 깨뜨릴때까지 기다리면 그때 서주로 대군을 몰고 가 유비마저 깨뜨릴 것이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 조조는 스스로 이십만 대군을 이끌고 여양을 향해 떠났다.

여양에 이르러 조조는 원소의 대군과 팔십리 거리를 두고 진채 를 내렸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원소의 대군이라 섣불리 덤벼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의 허실을 탐지한 뒤 싸우기 위 해 호를 깊이 파고 담을 높이 쌓아 방비부터 든든히 하니 이번에는 원소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서로 멀찌감치서 맞서 상대가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새에 두 달이 흘렀다. 가을 팔월에 떠나 초겨울 시월에 접어든 것이었다. 원 래 이치로 보아서는 원소 쪽이 공격에 나서야 했다. 먼저 와서 충분 히 휴식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공손찬이란 강적을 쳐부순 지도 오래 되지 않아 사기도 드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원소의 진영은 마침내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 끌 고질을 앓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내분이었다. 먼저 허유는 심배가 군사를 이끌고 자신은 한낱 모사로 나앉은 것이 즐겁지 아니했다. 진격해 공을 세워봤자 제공이 못 되리란 생각으로 굳이 속전을 주 장하지 않았다. 다음 저수는 또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써주지 않은 것에 한을 품었다. 만약 그 싸움에서 원소 쪽이 이기게 되면 지구전 을 주장한 자신의 계책은 더욱 그른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이기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져서는 더욱 안 되기 때문에 싸움을 애매한 상태로 두는 데 힘을 썼다.

만약 원소가 확고한 주견이 있고 과감하게 결단할 수만 있어도 그 정도의 불화는 큰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이 말 저 말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니 군사는 그 대로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초조하게 원소의 공격을 기다리던 조조도 두 달이 지나 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 소가 급히 맹공으로 나올 수는 없으며 또 나온다 해도 그리 대단한 힘을 보이지는 못하리란 판단이 들었다.

이에 조조는 장패臧)를 불러 청서를 지키게 하고, 우금과 이전 은 하상에 둔병하게 한 뒤 조인으로 하여금 관도에 머물러 그들 모 두를 함께 감독케 했다. 그리고 자신은 몸을 빼어 일단 허도로 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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