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3화 : 드디어 복룡(伏龍)의 자취에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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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5권 – 3화 : 드디어 복룡(伏龍)의 자취에 닿다


드디어 복룡(伏龍)의 자취에 닿다

유비는 선복을 더욱 무겁게 대하고 삼군에게도 크게 상을 내려 사기를 돋우었다. 한편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간 조조의 군사 몇 은 조인을 찾아가 알렸다.

“여광, 여상 두 장군은 죽임을 당하고 군사들은 거의 모두가 사로 잡혀 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인은 크게 놀랐다. 유표에게 빌붙어 지내는 보잘 것없는 식객으로만 여겼던 유비가 고르고 골라 보낸 자신의 오천 군사와 두 장수를 한 싸움에 질그릇 깨뜨리듯 쳐부숴버렸기 때문이 었다.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조인은 곧 이전을 불러 의논했다. 무장이기는 하지만 매사에 침착하고 속 깊은 이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광과 여상 두 장수는 몰래 적을 치려다가 도리어 목숨만 잃었 소이다. 지금은 군사를 움직일 때가 아닌 듯하니 먼저 이 일을 승상 께 알리는 게 좋겠소. 대병을 일으켜 적의 소굴을 치는 게 가장 나은 계책이 될 듯싶소.”

그러나 조인은 생각이 달랐다. 아직도 유비를 얕보는 마음을 버리 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의 소심함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렇지 않소이다. 지금 우리 편의 두 장수가 죽고 또 수많은 군 마가 꺾였으니 이 원수는 급히 갚지 않으면 안 되오. 손바닥만 한 신 야를 치기 위해 어찌 승상의 대군을 수고롭게 할 수 있겠소?”

“유비는 뛰어난 인물이다.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되오.” 

이전이 다시 그렇게 말렸으나 오히려 조인의 심기만 건드렸을 뿐 이었다. 문득 언성을 높여 이전의 말을 받았다.

“공은 어찌 그리 겁이 많소?”

“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을 이 길 수 있다 했소. 나는 싸우는 것을 겁내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꼭 이기지 못할까 겁내고 있을 뿐이외다.”

이전이 조인의 말투를 탓하지 않고 좋은 말로 일렀으나 결과는 조인의 부아만 돋우었다. 완연히 노한 조인은 한층 목소리를 높여 이전을 몰아댔다.

“공은 혹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오? 그렇지 않고서야 유 비 그놈에게 이 같은 수모를 당하고도 어떻게 그놈만 추켜세운단 말 이오? 두고 보시오. 내 반드시 유비 그놈을 사로잡을 것이오!”

주장(主將)격이 되는 조인이 그렇게 나오니 이전도 더는 어쩌는 수가 없었다. 말리는 대신 자신만이라도 그 가망 없는 싸움에서 몸을 빼려 했다.

“할 수 없구려. 만약 장군께서 신야로 쳐들어가신다면 나는 여기

남아 이 성을 지키겠소.”

하지만 조인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그대가 나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다!”

조인이 그렇게 잘라 말하니 이전은 어쩔 수 없이 조인을 따라나섰다.

조인은 이전과 더불어 남은 이만오천의 군사를 모두 끌고 그날 밤으로 강을 건너 신야로 향했다.

한편 선복은 싸움에 이기고 신야로 돌아가자마자 유비에게 말했다. 

“조인은 번성(城)에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여광과 여상이 죽 은 줄 알면 반드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이리로 밀고 올 것입니다. 맞 을 채비를 해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막아내면 되겠소?”

유비가 다시 걱정이 되어 물었다. 조인이 거느린 군사가 워낙 많 아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선복은 이번에도 별로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조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나 여유 있 게 대답했다.

“조인은 성정이 격하니 반드시 휘하의 군사를 모조리 이끌고 올 것입니다. 그리되면 번성은 비게 되니 그 틈을 타 그곳을 치면 어렵잖게 성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믿지 못하는 유비의 귀에 대고 자세한 계책을 일러주었다.

선복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유비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다. 비록 스 스로 계책을 짜내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했지만, 오래 전장을 누비 고 다닌 까닭에 어떤 계책이 맞고 안 맞고는 알아볼 만한 안목이 있 었다.

선복에게 들은 대로 유비가 모든 준비를 갖추었을 무렵에야 탐마가 급히 달려와 알렸다.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유비보다 선복이 더 기꺼워했다.

“과연 내가 헤아린 바를 넘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스스로 찬탄하고는 유비를 권해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을 맞게 했다.

양쪽 군사들이 서로 맞서 진을 친 뒤 유비 쪽에서 먼저 조운이 달 려 나가 싸움을 돋우었다.

“누가 이 조자룡의 창을 받아보겠느냐?”

조운의 그 같은 외침에 맞서 달려 나온 것은 이전이었다. 차마 주 장인 조인을 내보낼 수 없어 대신 나온 것이지만 원래 이전은 조운 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말과 말이 엇갈리기 여남은 번이나 되었을 까, 이전은 마침내 조운의 무예를 당해내지 못하고 말 머리를 돌려 저희 편 진으로 달아났다.

조운은 승세를 타고 조인의 진 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대로 군사를 몰고 뒤쫓아 결판내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조인도 전혀 대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 양날개에 궁수를 배치하여 어지럽게 활을 쏘니 조운은 말 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간신히 자기 진채로 돌아간 이전은 다시 한번 조인에게 권했다. “적군의 기세가 매우 사납고 날카로우니 가볍게 맞서서는 안 되 겠소. 번성으로 군사를 돌리는 게 낫겠소이다.”

그 말에 조인이 크게 노해 꾸짖었다.

“너는 아직 군사를 내기도 전에 되잖은 소리로 장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더니, 이제 또 우리를 적에게 넘겨주려는구나! 비록 승상을 따라 몇 번 공을 세운 적이 있다 하나 군령을 어겼으니 용서할 수 없다.”

그러고는 군사들에게 소리 높여 영을 내렸다.

“어서 저놈을 끌어내 목을 베어라!”

하지만 조인이 아무리 조조의 아우이며, 그곳에서는 이전의 상장이 된다 해도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여러 장수들이 혹은 이전의 옛 공을 내세우고 혹은 조조의 신임 을 들어 번갈아 말리니 마침내 조인도 마음을 바꾸었다.

“그대는 후군을 맡으라. 내가 전부가 되리라.”

다음 날이 되었다. 조인은 전날의 열세를 만회하려는 듯 싸움의 방식을 바꾸었다.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군사를 낸 뒤 장수를 앞세 워 싸움을 돋우는 대신 이상한 진식(陣式)을 펼쳤다.

“돗자리나 치던 촌놈아, 이 진을 알아보겠느냐?”

진세를 다 벌인 조인은 유비를 진문 앞으로 불러내 큰 소리로 물었다.

자신의 진법으로 먼저 유비의 기세를 꺾어두려는 속셈이었다.

유비도 싸움이라면 신물 나게 겪었지만 진법에는 그리 밝지 못했 다. 조인이 펼친 진을 자세히 살폈으나 얼른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높은 곳에서 조인의 진세를 살핀 선복이 유비 곁에 와서 일러주었다. 

“저것은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이라는 것입니다. 팔문이란 휴 (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 여덟 문을 말합니다. 생문(生門), 경문(景門), 개문(開門)으로 들어가면 좋고, 상 문(傷門), 경문(驚門), 휴문(休門)으로 들어가면 다치며, 두문(杜門)이 나 사문(死門)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인이 친 저 팔문금쇄진은 겉으로는 가지런하게 잘 짜인 듯하나 중간의 고리 근처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저 진을 깨뜨 리려면 동남쪽에 있는 생문을 치고 들어가 서쪽 경문으로 뛰쳐나와 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 진은 반드시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실로 감탄할 만한 선복의 재주였다. 듣기를 마친 유비는 곧 조인 을 불러 소리쳤다.

“내가 진법에는 그리 밝지 못하지만 네가 펼친 진만은 알아보겠 다. 사람을 보내 한번 깨뜨려보랴?”

“좋다. 네놈에게 재간이 있다면 어디 한번 깨뜨려보아라!”

조인이 자신만만하게 응수했다. 설마 유비 따위가 어떻게 그 진을 깨뜨릴 수 있으랴 생각한 것이었다.

유비는 곧 조운을 불러 오백 군사를 준 뒤 선복에게서 들은 대로 소상하게 일러주며 진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조운은 오백 군사와 더불어 진 동남쪽으로 가서 함성과 함께 중군으로 뛰어들었다. 마음놓고 지켜보던 조인은 조운이 쉽게 생문을 찾아 진 속으로 뛰어들었 을 뿐더러 똑바로 자신이 있는 중군으로 짓쳐들자 크게 놀랐다. 얼 른 몸을 피해 북쪽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조운은 조인을 뒤쫓지 않고 그대로 서쪽으로 달려가 경문으로 뛰쳐나가버렸다. 진 속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이름 그대로 철통 같이 가둬 사로잡아 버리려던 조인은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진을 뛰쳐나간 조운이 나가면서 서쪽을 휩쓴 기 세를 몰아 동남쪽으로 다시 뛰어드니 조인의 진세는 크게 어지러워 지고 말았다.

유비는 조인의 군사들이 이리저리 몰리는 걸 보자 때를 놓치지 않고 남은 군사를 휘몰아 덮쳐갔다. 결과는 조인의 대패였다. 조인 은 급히 군사를 물렸으나 적지 않은 군사를 꺾이고 말았다.

“뒤쫓지 마라. 모두 돌아서라!”

유비의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조인의 군사를 뒤쫓으려 할 때 선 복은 그 같은 명을 내려 스스로 군사를 거두었다. 많지 않은 군사로 너무 멀리 뒤쫓다간 도리어 역습을 당할까 우려해서였다.

한편 조인은 한바탕 낭패를 겪은 뒤에야 이전의 말이 옳았음을 믿게 되었다. 사람을 보내 후군에 있는 이전을 다시 자기 곁으로 불 러들인 뒤 의논을 시작했다.

“유비의 군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유능한 자가 있는 것 같소. 내진이 어이없이 깨뜨려지고 말았는데 이는 유비 따위로는 어림없 는 일이오.”

그러나 이전은 그 말에는 대답 않고 조인에게는 엉뚱하게만 들리는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나는 여기 있어도 번성이 매우 걱정되는구려.”

실은 온당한 걱정이었지만 아직도 조인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 지 못했다. 당장 눈앞의 싸움에 골몰해 건성으로 이전의 말을 받았다. 

“오늘 저녁 적의 진채를 급습해보는 게 어떻겠소? 만약 이기면 그 에 따라 다시 계책을 의논하고, 지면 빨리 군사를 물려 번성으로 돌 아가면 될 것이오.”

“아니 되오. 유비는 반드시 거기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외다. 급히 번성으로 돌아감만 못하오.”

그래도 이전은 다만 번성으로 돌아가기를 권할 뿐이었다. 조인은 다시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의심이 많아서야 어찌 군사를 부릴 수 있겠소? 정히 그러 시다면 공은 다시 뒤나 맡아주시오. 내가 앞장서서 부딪혀보겠소.” 

그렇게 잘라 말한 뒤 그날 밤 이경 무렵 스스로 앞장서 군사를 이 끌고 야습을 나섰다. 하지만 과연 이전의 말대로 유비의 진채는 이 미 그 같은 야습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낮의 일이었다. 유비가 선복과 마주앉아 뒷일을 의논하고 있 는데 홀연 미친 듯한 바람이 일었다.

“이게 무슨 조짐이오?”

심상찮게 여긴 유비가 묻자 선복은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오늘밤 조인이 틀림없이 우리 진채를 뺏으러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막아야 하오?”

“제가 이미 모두 헤아려 준비해두었습니다.”

선복은 가벼운 웃음까지 띤 얼굴로 그렇게 대답해놓고 다시 유비 에게 그날 밤 미리 꾸며둬야 할 일들을 일러주었다. 이미 선복의 말 이라면 콩을 팥이라 해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유비인지라 그대로 따랐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날 밤 이경이 좀 지났을 때였다. 조인이 군사들을 이끌고 유비 의 진채에 이르자 조용하던 진채 사방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 타 들 어가고 있었다. 조인은 그 불길을 보고 유비가 야습에 대비하고 있 음을 알았다.

“모두 돌아서라! 적이 이미 알고 우리를 기다린다!”

조인은 급히 군사를 돌리려 했다. 그런데 조운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군사들을 몰고 조인을 덮쳐왔다.

이미 겁먹고 혼란된 터라 조인의 군사들에게 싸울 마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군사들을 수습해 자신이 진채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고 여긴 조인은 그대로 북쪽 강변을 바라고 달아났다.

겨우 추격을 벗어나 강가에 이른 조인은 급히 타고 건널 배를 찾 았다. 그러나 배를 찾기 전에 그 강 언덕으로 한 떼의 군마가 먼저 짓쳐왔다. 앞선 장수는 다름 아닌 장비였다.

뒤가 강물이라 조인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후군에 있던 이전 도 그런 조인을 보호하며 힘을 다해 싸우니 둘 다 그럭저럭 배에 오 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군사의 태반이 물에 빠져 죽 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간신히 물을 건너 맞은편 언덕에 오른 조인은 곧 번성으로 달려갔다. 두 번씩이나 이전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낭패를 보았는지라 새삼 번성이 걱정스러워졌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미 늦은 뒤였다.

“문을 열어라!”

겨우 번성에 이른 조인이 성문 앞에서 그렇게 소리쳤을 때였다. 홀연 북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나오며 크게 외쳤다.

“내가 이미 번성을 취한 지 오래되었거늘 어떤 놈이 감히 성문을 열라 말라 하느냐!”

그 소리에 조인과 이전이 놀라 바라보니 이번에는 관운장이었다. 봉의 눈에 삼각수를 바람에 휘날리며 적토마 위에 우뚝 앉아 있는 것이 어느 때보다 위엄이 넘쳐흘렀다.

관운장의 무용은 특히 조조의 장수들에게는 잘 알려진 터였다. 거 기다가 방금 거푸 낭패를 당하고 쫓겨온 조인이라 싸울 마음이 일 리 없었다. 한번 창칼을 맞대보지도 않고 그대로 말을 돌려 달아나 니 관운장이 군사를 휘몰아 뒤따르며 쫓기는 조인의 군사를 함부로 죽였다.

거기서 조인은 다시 남은 군사의 태반을 꺾이고 황황히 밤길을 달려 허창으로 돌아갔다. 자는 범에 코침 놓기로 공연히 가만 있는 유비를 건드렸다가 대군을 잃고 번성까지 빼앗겨버린 뒤였다.


그런데 유비와 조인의 이 번성 싸움에는 한 가지 특기할 게 있다. 그것은 『연의』 전편을 통해 처음으로 진법 싸움이 선보이고 있는 점 이다. 진법이란 한마디로 군사의 배치라 할 수 있다.

지휘소와 주력의 위치, 화력 배치와 보병 및 기계화 부대의 전개 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처럼 옛날의 전쟁에서도 중군의 위치와 기병 및 보병의 진출 방향이며 궁노수의 배치 따위는 승패의 한 결정적인 요인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론으로서의 진법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것을 실전에 응용하여 효과를 보기 위해서 는 반드시 정비된 군사 조직과 훈련된 병사가 필요하다.

생각하면 황건과 십상시)의 난리로 군웅의 할거가 시작된 이래 그때까지의 싸움은 선봉장의 개인적인 무용과 모사의 기지에 의지한 기세 싸움이었다.

사방을 떠도는 유민들을 아무렇게나 끌어모아 급조한 군사들로 하는 싸움이라 조직이나 훈련은 거의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점차 천하가 몇 갈래의 세력으로 고착되면서 처음으 로 진법에 의지하는 싸움이 나타났다. 삼십 년에 가까운 전란의 세 월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나타난 전투 양상의 변모였다.


조인이 크게 싸움에 지고 허창으로 물러간 뒤 현덕은 군사를 이 끌고 번성으로 들어갔다. 현령 유필(劉이 나와 현덕을 맞았다. 유 필은 장사 사람으로 현덕과 같이 한실의 종친이었다. 현덕이 성안 백성들의 마음을 가라앉히자 유필은 그를 자기 집으로 청해 잔 치를 열었다.

잔치 중에 현덕이 보니 유필 곁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사람됨이 시원스럽고 생김이 훤출했다.

“저 사람이 누구요?”

현덕이 유필에게 묻자 유필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저 애는 제 생질 구봉寇)입니다. 부모가 모두 죽어 저에게 와있습니다.”

현덕은 그 구봉을 몹시 사랑하여 수양아들로 삼으려 했다. 유필이 기꺼이 들어주어 구봉은 현덕에게 절하고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다. 성도 구씨에서 현덕을 따라 유씨를 쓰게 되니 그때부터 구봉은 유봉 (封)이 되었다.

유필의 집에서 유봉을 데리고 나온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도 절 을 올리게 하고 숙부로 모시게 했다. 그런데 관운장이 무슨 예감이 들었던지 떨떠름한 얼굴로 현덕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다시 수양아들을 정하셨습니까? 뒷날 반드시 어지 러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저를 아들처럼 대하면 저도 나를 아비처럼 섬길 것이다. 무슨 어지러운 일이 있겠는가.”

현덕이 그렇게 말했으나 관우는 여전히 기뻐하지 아니했다. 현덕은 선복과 의논하여 조운에게 일천 군사를 주며 번성을 지키

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무리를 이끌고 신야로 돌아갔다. 이때 허창의 조조는 바라지 않은 대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었다.

북으로 태행산에 오르니

험하고도 이리 드높구나. 艱哉何巍巍

비탈길 양장처럼 굽어 羊腸坂詰屈

수레바퀴를 꺾고 車輪為之推

나뭇가지 쓸쓸히 흔드는 樹木何蕭瑟

샛바람 소리 실로 슬프다. 北風聲正悲

곰의 무리 나를 향해 웅크리고 熊羆對我蹲

호랑이와 표범 우짖으며 내닫는데 虎豹來路啼 

골짜기에는 사는 사람 적고 谿谷少人民

눈은 저리 펄펄 내리는구나 雪落何霏霏

목을 늘여 길게 탄식함이여 延頸長歎息

길이 머니 생각도 많아라. 遠行多所懷

내 마음 어찌 이리 무겁고 어두운가 我心何佛鬱

오직 동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네. 思欲一東歸 

물은 깊고 다리 끊어져 水深橋梁絶

길 가다 말고 헤맨다. 中路正徘徊

지나온 길 잃어 찾을 수 없고 迷感失故路

날 저물어도 쉴 곳 없구나. 薄暮無宿棲

가고 또 가기 이미 여러 날 行行日已遠

사람과 말 함께 굶주리니 人馬同時飢

망태 메고 다니며 장작을 줍고 擔囊行取薪

도끼로 얼음 깨어 죽을 쑨다. 斧氷持作糜

슬프다 저 종군의 노래 悲彼東山詩

아득히 나를 슬픔에 젖게 하네. 悠悠令我哀

(「동산시(東山詩)」, 『시경』의 편명, 「종군가(從軍歌)」와 비슷한 내용)

일찍 조정에서 돌아온 조조는 후원에서 홀로 시를 짓고 있었다. 원소의 잔당을 토벌하여 태행산을 넘을 때의 일을 읊은 것으로 뒷날 「고한행(苦行)」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이다. 같은 전장을 노래 한 것이면서도 씩씩하기보다는 애수가 깃들인 노래라 조조가 자못 흡족한 마음으로 종이에다 옮기고 있을 때 문득 사람이 와서 알렸다. “번성을 지키던 조인과 이전이 돌아왔습니다.”

“조인과 이전이?”

하도 뜻밖이라 조조가 붓을 놓고 물었다. 둘 중의 하나가 왔다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둘이 다 왔다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 었다.

“군사까지 약간 거느리고 돌아왔는데 거동이 심상치 아니합니다.” 이에 조조는 놀라 들고 있던 붓을 던지고 본채로 내려갔다. 기다 리고 있던 조인과 이전은 조조가 들어가자 땅바닥에 엎드리며 눈물 로 청했다.

“바라건대 못난 저희들에게 중벌을 내리시어 뒷날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중벌을 내리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마음속으로 짐작가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조조는 행여하는 기분으로 물었다.

조인이 송구스런 어조로 그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번성 을 뺏긴 일과 장수를 잃고 군사가 꺾인 내막을 차례로 밝히며 다시 한번 죄를 청하는 것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 매양 있는 일이다. 너무 부끄러워하지말라. 그러나 한 가지 모를 일은 누가 유비를 위해 계책을 짜내주는가 하는 것이다.”

듣고 난 조조가 담담하게 말했다. 조인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제가 이리로 오는 길에 들으니 선복이란 자가 군사(軍師)가 되어 유비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조조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에 조조는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선복이 누구요?”

“아마 그 사람의 이름은 선복이 아닐 것입니다. 형주 부근에서 그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서원직(徐元)일 것입니다.”

정욱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여전히 귀에 익지 않은 이 름이라 조조가 다시 물었다.

“서원직은 또 어떤 사람이오?”

“그의 이름은 서庶)이고 원직은 자입니다. 원래 영천(川)사람 으로 어려서부터 학문과 아울러 칼 쓰기를 좋아했는데 중평(平) 말년에 어떤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을 죽였지요. 그는 곧 머 리를 풀어 헤치고 얼굴에 검댕을 칠한 채 달아났으나 그 거동을 수 상쩍게 여긴 어떤 벼슬아치에게 붙들리는 바 되었습니다. 그 벼슬아 치는 서서(庶)가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자 그를 앞세우고 북 을 울리며 저잣거리를 돌았습니다. 저잣거리 사람 중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이름과 아울러 모습을 바꾸고 도망쳐야 했던 죄 목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설혹 그를 알아도 감히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패거리들에게만 그가 붙들렸다는 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패거리는 곧 힘을 합 쳐 그를 옥에서 빼내주었지요. 그 뒤로 그는 이름을 선복으로 바꿨 습니다…….”

“그렇다면 학문은 그리 많이 하지 못했겠군.”

조조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욱이 정색을 하며 그 말을 받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학문에만 전념하여 두루 이름 높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지요. 일찍부터 그와 담론을 나 누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 중에는 수경선생 사마휘 같은 사람도 있습 니다.”

“그렇다면 그의 재주는 그대에 비해 어떠하오?”

정욱이 추켜세우는 바람에 서서를 달리 보게 된 조조가 물었다.

정욱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보다 열 배는 나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조조는 놀라 탄식했다.

“애석하다, 어진 선비가 유비에게로 가버렸구나! 유비에게 깃과 나래가 생겼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은가?”

“너무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비록 그는 유비에게 있으나 승상께서 쓰실 데가 있다면 불러오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욱이 그렇게 조조를 위로했다. 귀가 번쩍 뜨인 조조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돌아오게 할 수 있겠나?”

정욱이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서는 사람됨이 지극히 효성스럽습니다. 어려서 아비를 잃고 홀어머니만 남아 있는데, 전에는 아우인 서강이 모셨으나 지금 은 그마저 죽어 아무도 돌보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승상께서는 급히 사람을 보내시어 그 홀어머니를 허창으로 모셔오도록 하십시오. 그 리고 그 홀어머니로 하여금 글을 써서 보내게 하면 서서는 반드시 이리로 올 것입니다.”

그 말에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날 밤으로 사람을 보내 영천에 있는 서서의 홀어머니를 모셔오게 했다. 하루도 되지 않아 서서의 홀 어머니가 허창에 이르렀다. 조조는 그녀를 후하게 대접한 뒤 말했다.

“듣기로 아드님 서원직은 천하의 기재(奇)라 합니다. 그런데 지 금은 신야에서 역적 유비를 도와 조정에 반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아름다운 구슬이 진흙 속에 떨어진 격이니 그를 기르시느라 들 이신 성의가 참으로 애석합니다. 번거롭겠지만 아드님에게 글을 내 리셔서 허도로 불러들이도록 하십시오. 제가 천자께 상주하여 반드 시 무거운 상이 내려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명하여 벼루와 먹, 붓,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그 아들에 그 어미라 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늙어빠진 할멈에 지나지 않았으나 서서의 어머니는 역시 여느 아낙과는 달랐다. 가져온 문방 사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만히 조조에게 물었다.

“유비는 어떤 사람입니까?”

“탁군(郡)의 보잘것없는 무리로 망령되이 스스로를 황제의 아재 비라 칭하고 다니는 자입니다. 신의란 조금도 없어 이른바 ‘겉으로 는 군자요 안으로는 소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가 슬며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서서의 어머니가 소리 높여 조조를 꾸짖었다.

“너는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그토록 거짓과 속임이 심하냐?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현덕이 중산정왕(中山靖)의 후예이며 효경황제 (孝景皇帝) 각하의 현손임을 들어왔다. 뿐이랴, 아래로 몸을 굽혀 선 비를 대하며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을 기다리니 그 어진 이름이 세상 에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어린아이며 늙은이, 소치는 목동과 나무 꾼까지도 모두 그를 알거늘 네 어찌 그처럼 진정한 당세의 영웅을 함부로 헐뜯어 말하느냐? 내 아들이 그를 돕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인을 찾은 셈이다. 거기 비해 너는 비록 말로는 한의 승상이라 하 나 실은 한의 역적이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유현덕을 역신으로 몰며 나로 하여금 밝은 데 있는 자식을 어두운 곳으로 끌어들이게 하니 될 법이나 한 일이냐? 그만큼이라도 몸이 귀하게 되었거든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라!”

그러고는 말을 마침과 아울러 눈앞에 놓인 벼루를 들어 조조를 쳤다.

무거운 돌벼루는 얼결에 피했으나 조조의 노여움은 컸다. 곧 좌우를 돌아보며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저 늙은것을 끌어내다 목을 베어라!”

그때 정욱이 급히 나서서 조조를 말렸다.

“서서의 어미가 승상의 노기를 짐짓 더 돋우는 것은 그렇게 하여 승상께 죽임을 당하려는 속셈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승상께서 죽이신다면 승상께서는 즉시 의롭지 못한 이름을 얻을 뿐만 아니라 서서 어미의 덕을 높여주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또 그 어미가 그렇게 죽는다면 서서는 반드시 힘을 다해 유비를 도와 원수 갚음을 하려 들 것이니 결코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차라리 그 어미를 이곳에 머물게 하여 서서로 하여금 몸은 그곳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이곳을 걱정하도록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리 되면 서서는 비록 유비를 돕는다 해도 그 어미 때문에 힘을 다 쓰지 는 못할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마침내는 서서가 이곳으로 와서 승상을 돕게 할 계책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난 중에도 정욱의 말을 듣고 나니 조조도 깨달아지는 게 있었 다. 거기다가 정욱에게 달리 서서를 불러들일 계책이 마련되어 있다 면 구태여 그 어머니를 죽여 원한을 살 필요는 없었다. 이에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 외진 곳에 옮겨가 정욱으로 하여금 돌 보게 했다.

정욱은 그날부터 매일 서서의 어머니를 찾아 문안을 드리고 자신 과 서서는 일찍이 형제의 의를 맺은 사이라 속였다. 뿐만 아니라 정 말로 그녀를 받들기를 친어머니 모시듯 하며 맛난 음식과 좋은 옷 가지를 자주 보냈다. 그것도 언제나 공손하고 정성스런 쪽지와 함께 였다.

충의에는 철석같은 서서의 어머니도 여자라 그런지 정에는 약했 다. 정욱이 워낙 정성을 다해 받드니 절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일었 다. 음식이며 옷가지와 함께 쪽지가 올 때마다 그녀도 쪽지를 써서 답을 보냈다.

그런데 정욱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쪽지였다. 그걸 통해서 서서 어 머니의 필적을 손에 넣은 정욱은 그 필적을 흉내 내어 편지 한 통을 쓴 뒤 믿음직한 사람을 불러 가만히 말했다.

“너는 이 편지를 가지고 지름길로 달려가 신야에 있는 선복이란이에게 몰래 전하도록 하라.”

이에 그 심부름꾼은 급히 신야로 달려가 선복의 군막을 찾았다. 군막을 지키던 군사는 고향집에서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다는 걸 선복에게 전했다. 그러잖아도 홀로 두고 온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던 선복은 급히 그 사람을 불러들였다.

“너는 누구냐?”

아무리 보아도 낯선 얼굴이라 서서가 물었다. 정욱의 심부름꾼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저는 영천 역관의 주졸(卒)로서 노부인의 말씀을 받들어 편지 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품안에서 글 한 통을 꺼내 바쳤다. 선복이 반가운 마음으 로 뜯어보니 눈에 익은 필적이 나왔다.


‘근자에 네 아우 강(康)이 죽어 나는 사방을 둘러봐도 가까운 피 붙이 하나 없는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슬프고 참담하여 눈물로 나 날을 보내는데 문득 조승상이 사람을 보내 나를 허도로 불러들였다. 가보니 조승상은 네가 조정에 반역한 죄를 들어 나를 가두려 하였으 나 다행히 정욱 등이 힘써 구해주었다.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놓여 난 것이 아니다. 네가 와서 항복해야만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으니 너는 이 글을 받는 즉시로 달려오기 바란다. 너를 낳아 기른 이 어미 의 은공을 생각해서라도 이 밤을 넘기지 말고 달려와 효도를 보전토록 하라. 그 뒤 천천히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며 살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너와 이 어미 모두 큰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 지금 내 목숨은 가는 실오라기에 매달린 것과 같으니 오직 바랄 것은 너 의 구원뿐이다. 다시 수다스레 당부하지 않더라도 부디 빨리 돌아오 너라.’


물론 정욱이 그 어머니의 필적을 흉내 내어 거짓으로 쓴 것이었 으나 워낙 빈틈없는 흉내라 선복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거 기 담긴 기막힌 내용 때문에 눈물만 샘솟듯 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간신히 정신 을 추스런 선복은 어머니의 편지를 가지고 유비를 찾아갔다. 

“저는 원래 영천 태생으로 이름은 서서이며 자는 원직이라 합니 다. 어떤 일로 쫓기게 되어 이름을 지금 쓰고 있는 선복으로 바꾸어 썼던 것입니다.”

선복은 먼저 자신의 참이름부터 밝혔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바라 보는 유비에게 다시 그를 찾아오게 된 경위를 밝혔다.

“전에 듣기로 유표가 어진 이를 불러들이고 좋은 선비를 찾는다 기에 특히 그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 얘기를 나 누어본즉 유표는 아무짝에도 쓰일 데 없는 인물이기에 글을 써서 작 별 인사를 대신하고 떠났지요. 그리고 그날 밤 수경선생 사마휘의 장원에 묵게 된 저는 그분에게 유표를 찾아갔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 습니다. 수경선생은 내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몹시 꾸짖으신 뒤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유예주께서 이곳 신야에 와 계신데 어찌 그를 섬길 줄을 모르느냐?’고. 그래서 저는 짐짓 미친 사람처럼노래를 지어불러 주공의 눈길을 끌었던 것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지난일을 되씹고 계십니까?”

무언가 알지 못할 불안 때문에 굳어진 얼굴로 유비가 비로소 입 을 열었다. 서서가 문득 처량하면서도 송구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도 그때 사군께서는 저를 어리석다 버리지 않고 무겁게 써주셨습니다. 그런데 방금 저의 늙으신 어머니가 조조의 간계에 빠 져 허창에 갇혀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지 않으 면 늙으신 어머니를 해칠 것이라 하니 자식된 도리로 아니 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개나 말의 수고를 대신하여 사군의 두터운 은 혜에 보답하고 싶으나 어머니가 저편에 사로잡혀 있으니 어찌 있는 힘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찾아뵙고 제가 돌아감을 고해 올리 려는 것입니다. 뒷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 떠남을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그러면서 늙은 어머니의 편지를 내놓는 서서의 눈은 붉게 충혈되 어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보다 더했다. 모든 일에 서서만 믿고 있 던 그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모자간이란 하늘이 정한 도리로 묶인 사이니 원직께서는 지나치 게 이 유비를 위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먼저 늙으신 어머님을 구하 신 뒤에 행여라도 인연이 닿으면 다시 가르침을 받들도록 하겠습 니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은 유비가 애써 안타까움을 감추며 말했다.

서서 또한 가슴이 아팠으나 늙은 어머니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잠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곧 유비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고 떠나려했다.

“빌건대 하룻밤만 더 묵어 내일 떠나도록 하십시오. 차마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유비가 문득 서서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모자간의 일이 중하다 해도 그동안 서서가 세운 공에 비해 너무도 해준 게 없음이 새삼 마 음에 걸려서였다. 하룻밤 술잔치라도 크게 열어 그가 세운 공의 천 에 하나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서서도 차마 그 같은 유비의 청마저 뿌리치지는 못했다.

서서가 짐을 꾸리려 물러난 뒤 손건이 가만히 유비에게 말했다. 

“원직은 천하에 드문 기재인 데다가 신야에 오래 머물러 우리 군 중(軍中)의 허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면 조조가 틀림없 이 그를 무겁게 쓸 것이니 우리로 보아서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 이 됩니다. 주공께서는 마땅히 그를 붙잡아두실 일이요, 결코 놓아 보내셔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조조는 반드시 그 어 머니를 죽일 것이고 원직은 또 그걸 알면 반드시 원수를 갚으려 들 것입니다. 그때는 이를 악물고 조조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니 이는 비단 우리의 위태로움을 피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원작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다해 주공을 돕게 하는 방도도 됩니다.”

그러자 유비는 손건을 타이르듯 대답했다.

“아니 된다. 다른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죽이게 하고 그 아들을 쓴다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또 그를 붙들어두는 것은 모자간의 도리를 끊는 짓이나 마찬가지로, 의롭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않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고 비정한 정치 마당에서 윤리나 도덕을 앞세 우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정치적 책략이 될 수도 있다. 유비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으니, 그 자리에서 는 물론 뒷날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사람치고 유비의 인품에 감동하 지 않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술자리가 마련되자 유비는 자기 처소에 가 있는 서서를 불렀다.

“비록 금옥같이 값지고 향기로운 술[金玉液]일지라도 늙으신어 머니가 갇혀 있음을 생각하니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습니다.”

차려진 술상을 보고 서서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유비 또한 쓸쓸한 목소리로 거기에 대꾸했다.

“이 유비는 선생께서 떠나신다는 말을 들으니 왼손 오른손이 다 잘린 듯합니다. 비록 용의 간이나 봉의 골鳳髓]같은 귀한 안주 라도 또한 입에 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는데 다시 두 볼에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마주 앉은 서서의 눈에도 한가지로 눈물이 괴었다.

그날 밤 둘의 울적한 술자리는 날이 새도록 계속됐다.

그러나 유비는 아직도 정이 미진한지 성 밖에다 다시 자리를 벌 이고 여러 장수들을 모조리 불러내어 서서를 배웅하게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작별한 서서는 이윽고 유비와 더불어 성을 나와 장정(長)에서 작별을 했다. 말에서 내린 유비가 잔을 높이 쳐들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서서에게 말했다.

“유비는 분복(福)이 얕고 인연이 엷어 이제 더는 선생과 더불어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새 주인을 잘 섬겨서 부디 공명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저는 재주 없고 아는 것도 적으나 사군께서는 무겁게 써주셨습 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어야 하건만 이제 불행 히도 제가 떠나야 하는 것은 실로 늙으신 어머님 때문입니다. 하지 만 조조가 저를 억지로 불러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평생토록 조조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계책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서서가 울며 대답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유비의 진실 어린 말 속에 강한 만류의 뜻이 있듯, 서서의 맹세 속에는 떠나지 않을 수 없 는 자신의 입장이 한층 강하게 드러나 있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 말을 유비가 괴로운 한숨과 함께 받았다.

“선생께서 떠나신 뒤에는 이 유비 또한 깊은 산속에 숨어 지내는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제는 큰 뜻을 버리고 녹림에 몸담아 산적 노릇밖에 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한편으로는 서서를 보내는 자신 의 괴로움과 아쉬움을 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한번 더 강한 만류의 뜻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가 사군과 함께 왕패(王)의 대업을 꾀함에 있어 믿는 것은 오직 한 조각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마음이 늙으신 어 머님의 일로 하여 이토록 어지러우니 설령 이곳에 머문다 하더라도 사군께서 꾀하시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군께서는 마땅히 따로 높고 어진 선비를 구하셔서 함께 대업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저 따위를 보내는 일에 이토록 상심하셔서는 결코 아니됩니다.”

서서는 그렇게 대답한 뒤 뒤따라오던 유비의 문무 관원들을 돌아 보며 그들에게 하는 말을 빌려 자신의 뜻을 한층 뚜렷이 했다. 

“여러분들은 사군을 도와서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우고 공을 청사(靑史)에 길이 남기도록 하십시오. 이 서아무개처럼 처음과 끝 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천하에 높고 어진 선비가 있다 한들 선생보다 더 나은 이가 어디있겠소?”

유비가 문득 탄식 섞어 물었다. 서서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가죽나무나 상수리나무처럼 큰 재목으로는 쓸 수 없는 재 주뿐입니다. 어찌 그 같은 말씀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문득 굳게 입을 다물며 말에 올랐다.

그동안 서서와 정들었던 문무의 관원들은 모두 눈물을 머금으며 그 자리에서 작별을 했다. 그러나 유비는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작별 대신 말 위에 오르며 말했다.

“함께 조금만 더 바래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서서와 말 머리를 나란히 하며 말없이 말을 몰았다. 한 마장이 지나가고 또 한 마장이 지나갔다. 그러나 유비는 통 돌 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서서가 먼저 작별을 청했다.

“사군께서는 수고롭게 먼 길을 나오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이 만 떠나겠습니다.”

그제서야 유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 위에서 서서의 손을 움켜 잡으며 탄식으로 그 작별의 말을 받았다.

“끝내는 이렇게 나뉘는구려. 이제 헤어지면 각기 사는 하늘 밑이 다르니 언제 또 만나리오!”

그러는 유비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서서 또한 흐느껴 울면서 유비와 헤어져 떠났다.

유비는 작은 숲가에 말을 세우고 서서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 았다. 서서는 따르는 자 하나와 함께 총총히 말을 달려가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는 서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비가 크게 울며 한탄 했다.

“갔구나. 아아, 원직은 끝내 가버리고 말았구나…. 이제 나는 어 이할꺼나!”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을 닦는데 문득 서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 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서서가 가리어진 것이었다. 

“이 숲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구나!”

유비가 문득 채찍으로 숲속의 나무를 가리키며 내뱉었다. 그리고 뒤따라 온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한 서린 눈길로 나무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저것들이 내 눈앞을 가로막아 서원직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끝내 서서에 대한 애착을 떨쳐버리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때 홀연 서서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니라 말을 박차 되돌아오는 앞모습이었다.

“원직이 돌아오고 있다! 혹 떠나지 않기로 작정한 것은 아닌지……” 

유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또한 말을 박차 앞으로 내달았다. 서서 의 늙은 어머니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장은 되돌아오 는 그가 반갑고 기쁠 뿐이었다. 서로 말을 나눌 거리가 되기 바쁘게 유비가 물었다.

“선생께서 이렇게 돌아오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서서는 말고삐를 당겨 세우며 대답했다.

“제가 어머님의 일로 마음이 어지럽기가 얽힌 삼타래 같아서 잊 은 말이 있습니다. 이곳에 학식과 재주가 빼어난 선비가 있는데 양 양성(陽) 밖 이십 리에 있는 융중(中)이란 곳에 숨어 지냅니 다. 사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지 않으십 니까?”

“그러시다면 원직께서 이 유비를 위해 한번 찾아보아 주실 수 없 겠습니까? 그로 하여금 나를 찾아보게만 해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고마움이 없겠습니다.”

서서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서운했지만 그래도 새 사람을 천거해 주는 게 고마워 유비가 그렇게 부탁해보았다. 서서는 문득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몸을 굽혀 누구를 찾아올 사람이 아닙니다. 사군께서 몸소 가셔서 데리고 나오도록 해보십시오. 만약 그 사람만 얻을 수 있다면 옛적에 주나라가 여망(呂望, 강태공)을 얻은 것이나 한(漢)이 장량(張)을 얻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유비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서서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역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어떠하길래 선생께서 그처럼 대단하게 말씀하십니까? 선생에 비해 그 재주와 덕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저와 그 사람을 비한다면 저는 느리고 미련한 말이요, 그는 기린 (麒麟)이라 할 수 있으며, 또 저는 겨울의 까마귀요, 그는 난조(鷲鳥) 나 봉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매양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에 비기고 있으나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관중이나 악의 따위는 그에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하늘을 다스리고 땅을 주름 잡을 재주를 가졌으니 실로 천하에 하나뿐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유비는 더욱 달아올라 매달리듯 청했다.

“바라건대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그의 성은 두자성 제갈(葛)씨요, 이름은 양(亮), 자는 공명(明)이라고 합니다.”

서서는 그렇게 대답해놓고 이어 자세히 그 사람의 내력을 일러주었다.

“그는 원래 낭야군 양도陽都) 사람으로 한 사예교위를 지냈던 제 갈풍(諸葛豐)의 후손이 됩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규()요, 자는 자공(貢)인데 일찍 태산군의 승丞)을 지냈으나 젊어서 죽고 그는 숙부인 현()에게서 자랐지요. 그런데 제갈현(諸葛玄)은 유표와 예 부터 아는 사이라 의지하여 살러 오다 보니 가솔들을 이끌고 양양으로 옮겨 앉아 살게 된 것입니다.

숙부인 제갈현이 죽은 뒤 제갈량은 그 아우 균(均)과 스스로 받을 갈며 남양 땅에 살았습니다. 「양보음(梁父吟)」이란 노래를 즐겨 부르 며 또 살고 있는 곳에 와룡강臥龍岡)이란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이 름을 따 스스로를 와룡선생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사람 은 세상에 둘도 없는 기재이니 사군께서는 마땅히 서둘러 그를 찾아 보도록 하십시오. 만약 그 사람이 나와서 도와만 준다면 사군께서는 이제 천하를 평정하는 데 아무것도 근심할 일이 없으실 것입니다.” 

서서는 그래 놓고도 오히려 모자란다는 표정이었다. 유비는 거기 까지 듣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전에 수경선생께서 이 비에게 말씀하시기를 복룡과 봉추 둘 중 의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안케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혹 지금 선 생께서 말씀하신 사람은 그 복룡, 봉추 가운데 하나가 아니십니까?” 

“봉추는 양양의 방통龐統)을 말합니다. 그리고 복룡은 바로 제가 방금 말한 제갈공명 그 사람입니다.”

수경선생 사마휘와는 달리 서서는 봉추까지 선선히 일러주었다. 둘 중의 하나라도 누군지 알고 싶어 하던 유비로서는 뜻밖의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유비는 뛸 듯이 기뻤다.

“오늘에야 복룡과 봉추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게 되었습 니다. 그 같은 대현(大)들이 눈앞에 있는 줄 어떻게 짐작이나 하였 겠습니까? 선생께서 일러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유비는 실로 눈은 있으되 장님이나 다름없을 뻔했습니다. 실로 고맙습니다.”

유비는 서서에게 머리 숙여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와의 작별이 아쉬워 선뜻 놓아주지 못했다. 그 연연해하는 감정을 뿌리치듯 다시 서서가 먼저 작별을 고했다.

“이제 저는 그만 떠나봐야겠습니다. 부디 좋은 사람을 얻어 큰 뜻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제갈공명을 천거한 것만으로도 한결 어깨가 가벼운 듯한 태도였 다. 말을 끝내기 바쁘게 말을 채찍질해 떠나갔다.

서서를 보내는 서운함도 잠시 유비는 이내 그가 남기고 간 말을 곰곰 되씹어보았다. 제갈공명이란 사람이 정말로 그런 인물이라면 사마의 말도 거짓인 성싶지는 않았다.

그러자 유비는 문득 술에서 깨어난 것 같기도 하고 꿈꾸다가 일 어난 느낌도 들었다. 유비는 그만큼 인재(人材)에 목말라 있었다.

신야로 돌아온 유비는 곧 제갈공명을 만나러 갈 채비를 했다. 그 리고 공명에게 바칠 예물을 넉넉히 준비하게 한 뒤 자신은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먼저 남양으로 갔다. 숨은 용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정사와의 관련이다. 서서가 사 마휘와 더불어 제갈량을 천거한 것은 사실이나 『연의』에서처럼 극 적은 아니었다. 서서가 유비를 떠나게 된 것은 뒷날 유비가 조조에 게 패하여 쫓기게 될 때로, 그 어머니가 번성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게 사로잡힌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제갈량은 유비의 사람이 되어 유비와 함께 생사를 같이하고 있었다.

『연의』를 지은 이는 어떻게 보면 이 밋밋한 사실을 가지고 유비와 서서의 이별을 중심으로 한 감동적인 얘기와 아울러 제갈량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얽매여 유비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제갈량에게 무리한 신비감을 불 어넣었다는 비난이 있지만 어쨌든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실로 탁월하다 아니할 수 없다. 거기다가 뒷사람에게 가탁(假)하여 그 럴듯한 시까지 덧붙여놓은 데 이르면 그 재능은 탁월함을 넘어 능청 스럽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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