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7화
아홉 척의 배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뱃사나이들의 가슴이 거세게 쿵쾅거리는 것에 비례해서 그들의 얼굴은 더욱 빠르게 굳어갔다. 욕설과 함성을 지르던 해적들도 숨을 죽였다. 그래서 아홉 척의 배들이 생사의 갈림길을 확인하고자 돌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원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정적 어린 수면 위로 격렬한 노 젓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이 정적을 깨기 두렵다는 듯이, 엘리엇 선장과 식스 1등 항해사 모두 소리 없이 팔만 휘둘 러 명령을 내렸다.
사수들은 경련하듯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곧 해적 함대와 레보스호에서는 무수한 쿼렐이 발사되었다. 양쪽에서 무더기로 발사된 쿼렐은 일순간 수면 위에 덤불숲이 생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 으켰다. 그리고 괴괴하게 흐르고 있던 정적은 핏빛 비명에 의해 얼룩졌다.
“크어억!”
“헉!”
양측 모두 상대방의 기동력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돛과 돛줄을 겨냥하고 있었으므로 쿼렐에 맞은 자들은 상당히 운수가 사나운 자들이었다. 해적들 의 인원이 더 많았지만, 정규병을 태우고 있는 레보스호는 해적 사수들과 비슷한 숫자의 궁병을 데리고 있었으며 기량의 경우에는 월등히 뛰어났기 에 일차 사격의 피해는 비슷했다. 양측 모두 밧줄이 몇 개 끊어지고 돛대와 돛에 쿼렐을 맞았지만 돌진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레보스호의 이물 에 서 있던 기사 슈마허는 빈 석궁을 휘두르며 소리 높이 외쳤다.
“전열 후퇴하고 후열 전진! 2차 사격 목표는 적 궁병이다!”
정규병의 경우 또 하나 유리한 점이 있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은 카밀카르의 정규병들은 궁병을 2열로 배치하고 있었다. 사격을 끝낸 전열이 물러나 서 석궁을 재장전하는 동안 후열이 일제 사격에 들어갔다. 석궁을 당기느라 꾸물거리고 있던 해적 사수들은 2차 사격에 맞아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자유호의 식스는 격노했지만, 사격을 끝낸 레보스호의 후열이 다시 물러나며 재장전을 끝낸 전열이 3차 사격을 시작하는 것을 보자 고함칠 겨를도 없이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다른 해적들도 모두 기겁하며 갑판에 엎드렸다. 그 사이를 틈타 레보스호는 해적 함대 사이로 무턱대고 돌입했다. 레보 스호가 자유호와 그랜드머더 사이의 공간으로 끼여드는 순간, 자유호와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명령이 터져나왔다.
“대포 발사!”
노끼리 서로 부딪힐 정도의 근접 거리다. 겨냥이고 뭐고 필요없이 발사하면 무조건 맞는 사격에서, 승부의 관건은 장전 속도와 발사 속도다. 레보스 호의 포수들은 배워 익힌 대로 심지에 불을 붙이자마자 방화 방패를 세워들고 몸을 숨겼다. 그러나 자유호의 포수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사했다. 그리고 그 방식의 차이는 두 배의 포격 대결에서 자유호의 포구가 먼저 불을 뿜는 것으로 나타났다.
콰아앙! 스무 발 남짓한 포환이 레보스호의 우현을 난타했다. 자유호와 레보스호 사이에 시커먼 포연이 물결치는 가운데 목재와 의장들이 하늘로 치 솟아올랐다. 레보스호의 우현이 무너지듯 파괴되며 선원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떨어져갔다. 레보스호의 용골을 타고 흐르는 충격은 배 전체를 뒤흔들었고 엘리엇 선장은 악에 받쳐 외쳤다.
“빌어먹을, 단심이다!”
해적식의 짧은 심지다. 대포가 깨지거나 오폭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게 되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수법이지만 해적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제 공 격을 허용한 레보스호는 그 대가로 우측 대포의 절반 가량을 잃고 우현 곳곳이 파괴되는 참사를 입었다. 포탄 몇 발은 노잡이석으로 뛰어들어 노 몇 개와 그 노잡이들을 가루로 만들어놓았다. 해적들은 환호를 지르며 갈고리를 집어들었고 레보스호의 선원들 사이에는 지독한 공포의 악취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 위로 엘리엇 선장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신경 쓰지 마! 궁병, 계속 사격! 갈고리가 걸리면 끝장이다. 피해를 돌보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발 아래에서 박살난 포수와 노잡이들의 몸이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미칠 듯한 분노를 느끼며 석궁을 세워들었다. 단심 을 이용한 해적들의 포격 때문에 레보스호는 대포의 40퍼센트 가량을 잃었지만, 자유호와 레보스호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상대 속도가 워낙 빨라서 두 번째의 사격을 맞을 염려는 없었다. 재장전이 끝나기도 전에 두 배는 서로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쿼렐은 그 사이에 몇 대라도 쏘아붙일 수 있다. 곧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빗발 같은 화살들이 자유호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크허헉!”
기세좋게 갈고리와 사다리를 들어올리던 해적들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나동그라졌다. 엘리엇 선장은 선원들 전부에게 들으라는 듯이 고함 질렀다.
“갈고리만 걸리지 않으면 도망칠 수 있다! 계속 쏴라!”
자유호의 식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이를 갈았다.
“대담한 사내로군! 저 말 들었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갈고리를 걸어!”
그러나 식스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은 감히 뱃전 너머로 머리를 들지 못했다.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기계 같은 정확함으로 교차 사격을 퍼부 어대고 있었고 화살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날아들었다. 식스는 다시 불호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열렸던 것만큼이나 빠르 게 다시 닫혔다.
어느새 석궁을 챙겨든 라이온 갑판장이 뱃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라이온은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슴을 펴라! 죽음은 양해를 구하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나, 우리 모두는 태어난 것으로 이미 그 손님의 방문 예고를 받은 셈이지.”
라이온은 휘파람을 불며 석궁을 장전했다. 날아온 쿼렐 하나가 그의 귓가를 스치며 귀밑머리들을 떠오르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은 뱃전에 다리 하나를 올리기까지 했다. 식스와 해적들은 모두 탄복하는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얹은 라이온은 한쪽 눈을 감았다. 그 러고는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레보스호의 뱃전을 쏘아보며 외쳤다.
“지금, 이 세상에서의 자네의 방랑을 끝내주지.”
라이온은 방아쇠를 당겼다. 갈고리를 벗어난 시위가 진저리를 쳤다.
슈마허는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는 쿼렐에 기겁했다. 젠장! 맞을 뻔했군. 그러나 라이온은 슈마허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 간 쿼렐은 레보스호의 선교 위에서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의 가슴에 명중했다.
철판도 뚫는 석궁 화살이다. 조타수는 해머에 맞은 것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쿼렐이 폐를 관통했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갑판에 쓰러진 조타 수는 입을 뻐끔거렸지만 그의 입에서는 말 대신 피거품만이 흘러나왔다. 조타수가 나가떨어지며 타륜이 팽그르르 돌았다. 거대한 속력 때문에 키의 반작용도 거대했다. 레보스호는 곧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해저의 악마들이라도 수면 위로 뛰쳐나와 박수를 쳐줄 만한 사격을 성공시켰지만, 라이온은 통쾌하게 웃는 대신 빈 석궁을 옆으로 던지고는 갑판으 로 몸을 날렸다. 레보스호의 거대한 선체가 옆으로 기우뚱하더니 곧 자유호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레보스호의 선원들과 해적들 모두 핏기가 가신 얼 굴이 되어 무의미하게 입을 뻐끔거리는 가운데 라이온의 외침이 길게 울려퍼졌다.
“충격에 대비하라! 충돌한다!”
배수량 56만 파운드에 달하는 레보스호의 육중한 선체가 전속력 질주의 관성을 유지한 채 자유호와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