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4화
율리아나 공주는 차분히 천정을 바라보며 유사 이래의 어떤 죄수들에게도 항상 보장되었던 자유를 향유하고 있었다. 공상의 자유는 감옥에 가둔다 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공상은 주로 이 선실에서의 탈출과 해적들과의 사투, 자유호의 점거, 슈마허와 라스의 해방, 위대한 승리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일련의 드라마틱한 공상의 클라이맥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지는 키 드레이번의 모습이었다. 공상 속으로 정수리까지 빠져 있던 율리아나 공주는 자 신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낄낄낄.
하지만 그런 공상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녀는 이미 식사 에 따라나오는 생선 가시와 그녀의 속치마에서 뽑아낸 실을 잘 조합한 다음 낚시처럼 사용하여 문의 빗장을 연다는 계획까지 세워보았고, 그 계획을 위해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가면서까지 탈출 도구를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그 ‘대탈주의 열쇠’의 제작이 끝났을 때, 공주는 그것을 침대 밑에 던져버 리고는 침대 위에 벌렁 쓰러졌다. 문은 열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안타깝게도 이곳은 바다 위였고 따라서 공주는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 었다. 해적들과의 사투? 공주는 검을 다룰 줄 모르며 그에 준하는 어떠한 살인 도구에 관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물론 머릿속의 지식과 우수한 변 론술조차도 때론 살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며, 그 두 가지에 한해서라면 공주 또한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거친 해적들을 상대로 그 들의 존재론적 약점을 자극하여 필연적 자살로 이끈다는 것은 변론의 황제 린타가 부활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자유호의 점거 는 말이 안 되며, 레보스호에 있는 슈마허와 라스를 해방시켜 그녀를 돕게 한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며, 위대한 승리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따라 서 키 드레이번은 품위 저조한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지는 난처한 지경에 빠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속상해.
침대에 드러누운 채 속상해하던 공주는 싱잉 플로라의 고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멍한 얼굴로 그 노래를 듣던 공주는 무의식중에 가시에 찔려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공주는 흠칫하며 손가락을 뺐지만 이곳이 카밀카르의 왕궁이 아니라는 사실, 즉 공주가 품위 없는 행동을 취할 경우 바람처럼 나타나 끝없는 잔소리로 그녀를 제지할 궁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율 리아나 공주는 고운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다음 마음 내키는 대로 빨아대며 다시 공상에 빠져들었다.
자유호의 승객이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공주가 자신의 자유를 쟁취할 방법들에 대해 공상하는 동안, 자유호의 또다른 노예는 자유호에서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자유에 대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오스발은 멋쩍은 표정으로 노예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노예장님. 불편하시다면 쇠사슬을 채우세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갈 것도 아니고.”
“약올리는 거냐? 선장님께서 채우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널 묶는다고?”
“아,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저, 그럼 마음 편하게 주무세요.”
노예장은 끙! 하는 소리를 내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들 준비를 취하지도 않았다. 노예장은 벽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번쩍이는 눈으로 오스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노예장의 얼굴이나, 간혹 옆에 놓아둔 칼자루를 발작적으로 움켜쥐는 그의 손은 수십 마디의 말들을 외치고 있었다. 왜 안 자고 있는지 안다. 내가 잠들면 넌 내 목을 딸 거지? 그리고 노예들을 모두 풀어준 다음 반란을 일으킬 거지? 그 래서 잠들지 않고 있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어림 반푼어치 없다. 네녀석이 잠들 때까지 나는 절대로 잠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노예장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의 추리의 시작, 즉 ‘왜 안 자고 있는지 안다’ 부분에서부터 그의 추리는 완전히 어긋나고 있었다. 오스발이 잠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는 노예장의 시선이 거북스러웠기 때문이다. 오스발은 몸을 옆으로 돌려보 았지만 곧 노예장의 삼엄한 고함에 질겁하며 똑바로 누워야 했다.
“똑바로 누워! 두 손 모두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얼굴도 보이게 하란 말이다!”
오스발은 할 수 없이 쇠사슬에서 풀려난 이후로 매일 밤 그래왔던 것처럼 눈을 꼭 감은 채 잘 들리지 않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를 들어보려 애쓰 면서 잠을 청했다. 자유의 이불은 그에게 결코 편친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