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1화
카밀카르의 법무대신이자 현재는 노스윈드의 포로 신세인 라스 카밀카르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선 채 얼어붙은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라이 온은 멀뚱한 얼굴로 라스를 마주보다가 말했다.
“괴이한 표정입니다. 예, 좋아요. 입술을 조금만 더 뒤집으시고, 음. 코를 약간 더 격렬하게 벌름거리시면 완벽하겠습니다. 아, 훌륭합니다. 제가 지 금까지 본 것 중 최악의 얼굴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군요. 소감 한 마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어, 어떻게 농담을 하는 거요?”
“저야 사정을 모르니 왜 놀라야 되는지도 모르지요. 설명해 주시면 저도 비슷한 표정을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드래곤이 좋아하는 것이 뭡니 까?”
라스는 라이온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맙소사, 이건 안 돼…………… 말도 안 돼. 그 자가 어찌 감히……”
라이온은 슈마허를 향해 얼굴을 돌렸고, 슈마허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라스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잠 시 후 슈마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로드 라스. 왜 그러십니까? 드래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데 그러십니까?”
“그걸 모른단 말이오? 서 슈마허 당신이나 라이온, 두 사람 모두 똑같은 얼간이군, 그래!”
졸지에 동격이 되어버린 슈마허와 라이온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함께 라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라스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옛이야기 그대로요. 서 슈마허. 어린 시절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졸라대던 시절을 떠올려보시오. 못된 드래곤이 나오는 이야기, 용감한 기 사가 등장하여 드래곤을 물리치는. 그래, 그 멋지고 잘났다는 기사는 도대체 왜 드래곤을 물리친답니까? 서 슈마허, 서 슈마허. 모르시겠소?”
슈마허는 얼떨떨함 반, 한심함 반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옛이야기라니. 그러니까 못된 드래곤은 아름다운 처녀를 잡아먹으려, 먹으려, 먹으려…………!”
슈마허는 말끝을 아주 이상하게 마무리하고는 조금 전 라스가 구사하던 표정을 똑같이 흉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종의 새로운 전염병은 아닌가 의심하며 라스와 슈마허를 번갈아 바라보던 라이온은 자신의 이마를 딱 쳤다.
“아, 그렇다면 율리아나 공주를 대드래곤에게? 아름다운 처녀를 잡아먹는, 아아! 어, 그런데?”
라이온은 갑자기 미심쩍은 얼굴로 라스를 보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공주가 처녀였습니까?”
라이온은 슈마허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죄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온은 슈마허에게 쥐어박혀서 퍼렇게 멍든 눈두덩이를 쓰다듬으 며 속으로만 낑낑거렸다.
키 드레이번이 율리아나 공주를 대드래곤 라오코네스에게 제물로써 바칠 생각이라는 것을 라이온이 간파해 낸 것은 정오 조금 전이었고, 그 이야기 가 노스윈드의 선단 전체로 퍼져나간 것은 정오 조금 후였다. 하나의 선단 내에서 소문이 퍼져나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점심 식사 시간을 이 용하여 해적들은 재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점심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노잡이 노예들마저도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점심 시간 직후 레보스호를 방문한 식스를 향해, 라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합리적이군요? 공주와 보물을 동시에 챙긴 다음, 보물을 팔기 위해 테리얼레이드로 향하고, 공주는 그 중간의 미노 만을 통과하기 위해 이용한다. 그래서 오닉스가 그 난리를 치는데도 율리아나 공주를 태운 것이군. 쳇. 늙은 선장은 수평선 너머도 내다볼 수 있다지만, 키 선장은 도대체 얼마나 내 다보는 거지요?”
식스는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 선장님은 그런 분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네. 우리들의 목적 때문에 고귀하면서도 무력한 것을 희생시키는 모양이란 말이야.”
“그래도 슈마허만 하려고요. 이 눈이 이 모양이 된 것이 누구 때문인 것 같습니까? 발광을 하기에 두들겨팬 다음 방안에 가둬놓았습니다. 미노 만을 무사 통과할 때까진 아무것도 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음. 그렇잖아도 그 말 전하러 건너왔네. 아무쪼록 잘 감시하게. 공주를 돌려주고 몸값을 받을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포로들이 가 만있을 것 같지 않군.”
라이온은 울상을 지어보였다. 익살스럽게.
“너무하는군요. 레보스호의 선원들 태반은 널빤지 위에서 변절한 놈이란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모조리 바다에 처넣는 건데.”
“그럼 레보스호는 어떻게 움직이고? 도리없네, 조심하는 수밖에. 명심하게. 만약 레보스호가 포로들에 의해 점거당하거나 하면 말짱 도루묵이야. 우 리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테리얼레이드로 향하는 이유는 이 배에 실린 보물 때문일세. 이 배만 없다면 우린 굳이 테리얼레이드로 갈 필요도, 공주 를 드래곤에게 바칠 필요도 없단 말이야. 포로들도 그 정도는 떠올릴 수 있을 걸세.”
“아아, 잘 알겠습니다. 쳇. 이래서 임시 선장 같은 것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 갑판장 체질이란 말입니다.”
라이온의 투덜거림이야 어쨌든, 레보스호 내부의 분위기는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져 있었다. 원래 카밀카르의 병사들이었던 자들은 눈에 살기를 띤 채 오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해적들은 긴장한 고양이만큼이나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금세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때 문에 라이온은 우울했다. 그런 부하들을 통솔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라이온에게 키의 전갈이 전해진 것은 제9시경이었다. 키의 전갈은 단순 했다.
‘달이 뜰 때다.’
라이온은 이해했다. 달이 뜰 때 공주를 드래곤에게 바친다. 따라서 저녁 무렵이 고비일 테니 조심하라. 그때만 넘기면 안전할 것이다. 라이온은 씁쓸 한 심정으로 오늘 달이 몇 시쯤에 뜨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오늘 달은 일몰 후 5시간쯤 뒤, 자정 무렵에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