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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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9화


같은 시각, 멀리 테리얼레이드의 전경이 보이는 산허리에서 키 드레이번의 해적들은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위 위에 서서 테리얼레이드를 바 라보던 키는 고개를 돌려 하리야 선장을 보았다.

“하리야 선장. 테리얼레이드에 교회가 있나?”

하리야 선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열성적인 선교사가 테리얼레이드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10년째 노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교 단에서는 제법 유명한 소문입니다.”

“아직 살아 있나?”

“예. 살아 있으며 아직까지 노력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펠라론의 법황청은 테리얼레이드를 포기한 셈치고 있지만 선교의 포기를 인정할 수는 없는 만큼 그 선교사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선교사들의 놀라운 열정을 은유하는 가공의 전설인지, 아니면 사실에 입 각한 이야기인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키 드레이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산 아래로 아스라이 보이는 테리얼레이드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공주라면 저 지옥 같은 도시에서 누구에게 조력을 구하겠나.”

“그렇군요. 당연히 교회겠지요.”

하리야 선장의 대답에 라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도시라도 그건 마찬가지겠죠. 교회는 대륙 곳곳에 발이 닿아 있는, 초, 초, 초………… 슈마허?”

슈마허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초국가적 단체.”

“아, 그래. 그거. 대륙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교회의 연락망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키 드레이번은 라이온의 말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얼마 전 그와 싸웠던 사내들, 애져버드에 대해 생각했다.

애져버드의 출현은 이 사건에 대한 교회의 개입을 의미할 것이다. 교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필마온 기사단에게 페리나스 해협을 나설 빌미를 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 아이로니컬한 일. 교회와 법황을 수호하는 필마온 기사단을 교회와 법황 스스로가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키는 쓰게 웃 으며 혼자말처럼 말했다.

“교회를 도와야 되나.”

하리야 선장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어젯밤 키의 말을 들었던 라이온은 키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다른 선장들과 해적들은 키의 말에 크게 놀랐다. 킬리 선장의 경우에는 아예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서, 선장님?”

“말 그대로야. 성하께서는 애져버드 놈들까지 동원해서 필마온과 카밀카르의 결합을 막으려들고 있잖아.”

“좀 빠른데요. 천천히 가면 안 되겠습니까?”라는 항의는 트로포스에게서 나왔다. 키는 무거운 표정으로 트로포스를 돌아보았고 짜증스럽게 말하던 트로포스는 흠칫했다. 하지만 키의 입에선 불벼락 대신 차분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애져버드 놈들은 카밀카르의 전령을 살해했다. 만일 그 전령이 살아서 도착했다면? 필마온은 카밀카르의 협조 요청을 받아들여 페리나스 해협을 나서게 된다. 성사 중의 성사인 결혼이 방해받은 사실에 대해 분노하며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법황은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연락이 가지 않도록 한 거지. 그 애져버드 놈들의 배후에 있던 것은 다름아닌 법황 아리스 4세야.”

하리야 선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성하께서 살인 청부를 의뢰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든 정황이 설명하고 있다.”

키는 말을 조금 끊었다가 자신의 추리를 차분히 설명했다.

이 모든 사태는 애져버드의 몰락에서 시작되었다. 애져버드의 몰락으로 법황은 충성스러운 교회 기사단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제국 내에서 국가를 초월하여 교회를 수호하는 교회 기사단이 없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제2의 애져버드를 원하지는 않았던 제국이 찾아낸 것이 바로 필 마온의 해적들이다. 필마온의 해적들을 교회 기사단으로 임명하라는 제국의 권유를 받은 것은 ‘폭우의 법황’ 라우스 5세였다. 펠라론에 3일 동안이나 계속된 폭우를 내렸던 전대미문의 기적을 보였던 라우스 5세였건만 제국의 권유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법황청이 이끌어낸 최대의 타협은 필마온 기 사단은 오로지 법황과 교회를 위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필마온의 해적들은 필마온 기사단으로 개칭하고 ‘모든 국가를 초월하 여 교회와 법황을 수호하는 교회 기사단이 되었다.

하지만 필마온 기사단은 곧 제국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발전을 이룩했다. 해적이었을 때부터 그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페리나스 해협은 무수한 배 들이 오가는 바다의 관문이었고 이제 교회 기사단이 된 필마온 기사단은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나가는 배들을 공격해 대었다. 각국이 보내는 격렬한 항 의에 대한 필마온의 해명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그들은 이단의 혐의를 가지고 있었소.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해명이다. 미신 한두 가지쯤 믿 지 않는 선원은 없으므로 필마온 기사단이 노략한 배에서 이단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극히 용이한 일이었다. 조그마한 부적, 우스꽝스러운 우상, 선원들이 기념품 삼아 주워모은 야만인들의 토산품들.

그래서 바야흐로 바다의 왕자로 군림하게 된 필마온 기사단은 이제 그들을 묶고 있던 족쇄, 즉 ‘필마온 기사단은 페리나스 해협을 나설 수 없다’는 조건을 벗어던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키 드레이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해했나. 만일 필마온과 카밀카르, 이 강력한 해양 세력들이 결합하면 제국 최대의 군사 세력이 탄생하게 되지. 대마법사 하이낙스가 제국을 유린 한 이후 현재 육상에는 강국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강국들은 하이낙스의 공격을 가장 심하게 받았다. 따라서 육상은 무력 부 재의 상태지. 그들은 바다로부터 제국을 치고 들어갈 수 있다.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야심가에겐 매력적인 계획이겠지. 그리고 카밀카르의 라힘턴 3세는 모르겠지만 필마온의 발도 로네스는…………”

라이온이 키의 말을 받았다.

“확실히 야심가 타입이죠. 게다가 메르데린 공작과는 달리 능력도 겸비한 야심가죠.”

돌탄 선장은 입을 벌린 채 놀라워했고, 오닉스 선장 역시 말은 하지 않은 채 몸으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탄 선장이 키의 추리에 대 해 놀라워한 것에 비해 볼 때 오닉스 선장은 필마온 기사단장 발도 로네스의 야심에 대해 놀라워하며 분노하고 있었다. 비록 말은 없었지만 페리나스 해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점잖지 못한 손짓을 해대는 오닉스를 보며 다른 해적들은 그의 마음을 쉽게 짐작했다. 하리야 선장은 우울하게 말했다.

“말씀 이해됩니다. 주여, 피치 못할 선택을 해야 했던 법황을 용서하소서. 그럼 키 선장님의 말이 맞군요. 우리들은 교회를 도와서라도 율리아나 공 주가 안전하게 카밀카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군요.”

키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하리야 선장은 갑자기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곧이어 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의 불안을 공포로 바꿨다. 

“싫어.”

“키 선장님!”

하리야는 비명처럼 외쳤다. 하지만 키 드레이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교회의 속셈이 어떻든 필마온의 갈가마귀 놈들의 계획이 어쨌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감히 내 손에서 도망친 놈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성격이라는 것뿐이야.”

“하지만 안 됩니다! 필마온이 카밀카르와 결합한다면…………”

“닥쳐! 어차피 율리아나 공주가 필마온으로 시집가게 되었을 때부터 그 결속은 시작되게 되었다! 율리아나 공주가 카밀카르로 안전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필마온이 포기할 것 같나? 다시 결혼식이 시작되고, 교활한 제휴는 반복될 것이다! 바뀌는 것은 없어!”

하리야 선장은 욱하는 얼굴로 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입에선 엉뚱한 질문이 나왔다.

“그럼 그 때문에 율리아나 공주를 라오코네스에게 던져주려 하신 겁니까?”

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리야 선장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키 선장님께서도 법황 성하와 같은 생각으로 카밀카르와 필마온의 제휴를 막기 위해 공주를 대드래곤에게 넘겨주려 하신 것이군요.”

입을 꽉 다문 채 하리야를 노려보던 키는 잠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모든 문젯거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괜찮은 생각이라고 믿었지. 공주가 확실히 없어지면 필마온과 카밀카르의 결속이 불가능할 테 니. 라오코네스의 먹이가 되는 것만큼 확실히 없어지는 방식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공주는 실종되었다. 그래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다.”

키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그는 눈앞에 있지 않는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빌어먹을 노예놈………….”

예상치 못한 채 키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게 된 하리야 선장은 침을 삼킨 다음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스발 말씀이십니까.”

키는 하리야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키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힘껏 깨물었다. 선장들과 해적들은 뭐라 말할지 몰 라 입을 다문 채 키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키는 잇자국이 선명하게 난 주먹을 주머니 속에 꽂아넣으며 낮고 강하게 말했다.

“모두 일어나. 테리얼레이드로 전진.”

해적들은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들이 일어나며 낸 소음 때문에 키의 다음 말은 가장 가까이 있던 라이온에게만 들렸다.

“아니, 테리얼레이드까지가 아냐. 오스발 놈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까지라도.”

라이온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율리아나 공주가 아닌가? 하지만 키는 이미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고 그를 불러세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라 이온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이 뭘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키가 뭘 잘못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칼집을 고쳐매던 라이온은 슈마허 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봐, 그만 웃어. 슈마허.”

슈마허는 날카롭게 미소 지었다.

“웃고 싶은데, 라이온 선장? 공주님은 잘 달아나고 계시고, 교회도 공주님을 도우려 하고 있어. 지금 내 기분을 물어온다면 최고로 행복하다고 대답 하겠어.”

라이온은 코방귀를 뀌며 말했다.

“글쎄.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지 두고보지. 한 가지만 명심해 두시지. 슈마허. 키 선장님이 제국의 공적 1호라 불린다는 것은, 그를 상대하기 위해 선 제국 전체가 덤벼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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