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2권 – 5장 : Royal blood’s gift – 1화

랜덤 이미지

폴라리스 랩소디 2권 – 5장 : Royal blood’s gift – 1화


사트로니아 공화국의 정부 청사, 정문에 서 있는 검은 사자상 때문에 흔히들 흑사자관이라고 불리우는 그 건물은 수상한 공기 속에 사로잡혔다. 흑 사자관을 오가는 정부 관료들은 마주칠 때마다 낮고 급한 어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들 중 상대방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 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보다 더 답답한 기분으로 다음 사람을 찾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들은 모두 실력으로서만 출세할 수 있는 공화국 사트로니아의 관료들이었다. 명실상부한 야전지휘관형 관료라 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은, 그러나 흑 사자관에 감도는 이상한 기류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그 사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불안한 눈초리로 며칠 전부터 반미치광이 행동을 보이고 있는 일부 관료들을 주목했다. 그 일부 관료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잘 알고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것은 관료들로서는 직업 윤리 위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험악한 몰골을 한 채 주위 세 발자국 이내 로 누군가 들어오기만 하면 흠칫흠칫 놀라면서 애써 ‘좋은 날씨죠?’ 따위의 말을, 자기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투로 중얼거리고 있는 그들은 모두 사트로니아 총리실 제3국의 관료들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사트로니아 총리실 제3국은 흔히들 말하는 사트로니아 정보국이다.

어느 나라의 대외정보부, 혹은 그와 유사한 일을 하는 부서는 다 마찬가지겠지만, 사트로니아의 총리실 제3국원들도 완벽한 비밀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비밀주의자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비밀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던 사트로니아의 관리들로서는 도 대체 저 완벽주의자들을 당황시킨 사건이 무엇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결국, 역시 어느 나라의 정부 부서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관료들은 자신 들만의 정보망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관리들의 정보망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들도 공복이 가져야 되는 심리적 제한선은 존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바쁘게 말에 오르는 전령이 손에 무슨 음식을 들고 있는가까지 관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지는 않는다. 어디 볼까. 저런 독주 를 얼마나 추운 곳을 달려갈 생각인 걸까. 거기다 지금 이 시간이면, 흐음. 안팔로 계곡? 그렇다면 붉은 주머니가 있을 터. 오호라. 과연 가지고 있 군. 안팔로 계곡 아래의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기 위해 필요한 마패까지 가지고 있군. 저 붉은 천은 얼마 전 우리 사위가 마패 주머니용으로 납품한 거 라 잘 알거든. 결론: 저 사자는 오늘 오후 안에 안팔로 고개를 넘어 모레 아침엔 다벨 공국에 도달하겠군.

대략 이런 식의 사소한 정보들과 사트로니아 공화국을 움직이는 특급 두뇌들이 휴게실 같은 곳에서 모이게 되면 상당히 심도 깊은 추리가 가능해진 다. 결국 그들은 지금 총리실 제3국원들이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해 9할 이상 해석해 내었다.

사트로니아 정보국은 며칠 전부터 제국 곳곳에 퍼져 있는 정보망을 전면 중단시킨 채 모든 정보 수집력을 다벨과 다케온, 록소나, 팔라레온에 집중 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사트로니아의 정보국이 행하는 것 치곤 너무 성급해서 위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속도였다. 하지만 그 기민성과 별개로 그들 이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고, 그래서 그들은 이 사실에 당혹해하고 심지어 분노하기까지 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알아낸 자는 교육부의 한 차관보였다. 그는 씩씩거리며 흑사자관의 통로를 걸어가는 청소부를 조용히 관찰한 다음 그를 살짝 구슬려보았다. 그러고는 그 청소부가 총리실 제3국을 청소하 다가 정보국장에게 ‘넙죽넙죽 일 받는 놈만 많았지 제대로 일하는 놈은 하나도 없다’에 해당하는 욕을 얻어먹었음을 알아내는 개가를 올려 동료 관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머지의 중요한 1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사트로니아는 왜 다벨, 다케온, 록소나, 팔라레온을 관찰하는가.’ 경제부의 사무관 하나가 그 땅이 왕자의 땅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거론했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 땅이 왕자의 땅인 것은 맞지만 현재의 그 땅에서 시운과 재능과 행 운을 갖춘 다섯 번째의 검이라 할 만한 작자는 있지도 않다는 공박을 보내었을 뿐이다. 그런 정도의 인물이라면 사트로니아 정보국이 아니라 이미 주 점의 주당들에게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을 것이라는 요지의 반박에 경제부 사무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쯤에서 관료들은 휴게실에서의 휴식 시간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 이상은 선을 건드리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정보국 의 경계선이라면………… 물론 각자의 부서로 돌아가는 관료들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의심을 계속 키워나가는 것은 완전히 자유였다. 그 정도의 정보 수 집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트로니아의 모든 정보 수집력이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정보가 적은가.

그리고 그날 오후 사트로니아 대통령 길버트 하드루스는 정보의 빈약함을 이렇게 해석해 냈다.

“결국, 우리가 그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거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사람은 나이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인 것은 턱까지였고 그 아래로는 젊은이 못지않은 장대한 체구였다. 투구 라도 씌워놓는다면 아무도 노인임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심술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의심해 왔던 대로 그 멍청이들은 대사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아피르 족과 우리 사트로니아 외엔 아무도 모르나 봅 니다.”

물론 대통령의 예측은 틀렸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카밀카르의 독서광 공주가 바로 그들의 국립도서관에서 그들이 미처 수거하지 못했던 린타의 낡 은 논문 한 점을 읽었음을 알지 못했다. 또한 부활의 법황이 자신의 관상식물을 통해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음도 알지 못했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계 속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얽어매던 족쇄가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 정보국장 을 정서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거죠.”

“글쎄요. 그들 모두가 바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두는 것이 안전할 듯합니다. 같은 정도의 불확실성이 있다면 적을 과대평가하는 편이 항상 나으니 까요. 조만간 어떤 행동이 있을지도 모르죠.”

“내기하시겠다면, 나는 다음에 행동에 들어갈 사람이 메르데린 공작일 거라는 데 걸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바스톨 장군?”

바스톨 장군이라 불린 노인은 빙긋 웃었다.

“그 내기는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걸고 싶은 곳에 각하께서 먼저 거셨군요.”

하드루스 대통령은 바스톨 장군을 따라 웃었다. 그의 웃음은 할아버지에게 칭찬받은 손자와 같은 웃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고명한 장수인 바 스톨 장군이 그의 예측에 동의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바스톨 장군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동의했겠지만. 그래서인지, 바스톨 장군은 말을 덧붙여야겠 다고 느낀 듯했다.

“그는 언제라도 행동하려 들었으니까요. 다만 이번에는 유난히 행동이 쉽다는 것을 느끼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겠죠. 그가 모르도록 그의 행동을 견제해 왔던 대사가 없어졌으니.”

“그런데 대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까?”

바스톨 장군의 질문에 하드루스 대통령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처음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린타가 철탑의 인슬레이버에게 선물받았던 구슬의 색깔이 흐려졌습니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예. 그리고 대사는 린타에게 그 구슬이 흐려질 때면 자신이 더 이상 철탑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으리라는 언질까지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철탑을 떠난다는 말인지 그녀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철탑의 주인으로서 행하던 일은 이제 중지되었다고 생각 해야겠지요.”

“그렇다면 확실하군요. 이제 정보부에 새로운 지시를 내려야 될 때군요.”

하드루스 대통령은 잠시 당황하여 노장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장군은 대통령의 어깨 너머로 책꽂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대사를 쓰러뜨린 자가 누군지 알아내야 합니다. 오 왕자의 검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다섯 번째의 검이란 건, 사실 대사를 쓰러뜨리는 검 이잖습니까. 이제 아달탄 황제가 말했던 다섯 번째의 검이 나타난 겁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 그 자가 누군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길버 트.”

길버트 하드루스 대통령은 머리를 조금 숙였다. 정신적으로는 바스톨 장군에게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노장군의 우국충정은 너무나 특이한 형 태였기 때문이다.

바스톨 엔도 장군은 용병계의 오랜 전설을 현실로 이루어낸 인물이었다. 10대에 용병으로서 검을 쥔 바스톨 장군은 50대가 되었을 때 자신이 일국 의 왕이 되어 있음을 보았다. ‘검 한 자루 비껴 차고 지평선으로 달려가 왕이 되어 돌아오다.’ 용병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을, 바스톨 장군 은 견실한 40년 세월을 통해 조용하지만 확고한 형태로 획득했다.

그러나 엔도 왕조는 일대에 그치고 말았다. 자신의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본 왕은 엔도인들이 사트로니아와 합병되기를 은근히 바란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엔도인들은 바로 이웃 나라인 레갈루스와의 경쟁이 힘에 겨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트로니아가 레갈루스에 의해 막힌 바다로의 출 구로서 엔도를 원한다는 사실도 잘 간파하고 있었다.

국민의 뜻을 알게 된 왕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사트로니아에게 사자를 보내었다. 왕의 땅을 탐내고, 그래서 이 이름 높은 무인과의 한판 전쟁이라 도 불사할 결심이었던 사트로니아는 이때 제국의 외교사에서 승자가 보낼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답변이라 일컬어지는 명문의 답장을 보낸다. 그러 나 그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딸 가진 가정에서라면 한번쯤 들어보게 되는 말이 된다.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왕은 웃으며 40년 동안 키워낸 딸 엔도를 사트로니아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물론 회의주의자들이나 냉소주의자들은 ‘뼛속까지 무골이었던 그는 정당한 자신의 땅조차 관리할 수 없어, 차라리 그것을 남에게 맡기고 그 아래로 들어가 용병 노릇하는 편을 택한 것’이라는 조롱 섞인 평가를 보내어왔다. 그런 평가에 대해 바스톨 장군은 별말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비루한 자를 향해 비수 같은 한마디를 말했다 한다.

“그것은 왕이 된 적도, 될 수도 없는 자의 말이다.”

따라서 길버트 하드루스 대통령이 바스톨 엔도 장군의 모습에서 시집 보낸 딸을 걱정하는 장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고 사위로서의 책임감까지 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더군다나 상대는 왕이었던 인물이다. 비록 반종신직이나 다름없는 사트로니아의 대통령이었지만 왕과 대통령은 그 격이 같다 할 수 없다.

정신적 아버지에게,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짐작했다고 해야겠죠. 각하께서 린타와 대사의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대충 짐작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개인적으로 린타의 저작들을 조사해 보았 고, 그가 다섯 번째의 검에 대해 말한 설명들에서 이상한 점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팔라레온, 다벨, 다케온, 록소나의 강력한 네 자루의 검과 시운 과 재능과 행운을 가진 다섯 번째의 검이라는 말은 그럴 듯했습니다만…………… 그것은 무인이 할 말이 아닙니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다시 절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무인이 할 말이 아니라고요?”

“무인은 질박함을 그 미덕으로 삼습니다. 무인은 그것이 단지 위험하고 무서운 힘이 될 수 있다 해서 아무것이나 검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혼 족마저도 경탄했을 만큼 사나운 공격을 감행하여 ‘제국의 검’이라 불렸던 제부르카스 장군의 예를 상기해 보십시오. 황제가 다섯 번째의 ‘검’이라고 말했다면, 그건 정말 검이거나 검을 쥔 자인 것입니다. 어떤 무인일 것입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내저으며 미소 지었다.

“모든 칼 쓰는 이가 곧 무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드리고 싶군요. 그렇다면 어떤 검이 그 다섯 번째의 검이 될 수 있을까요? 아, 그렇지. 메르 데린 공작은 후보에 들어가겠습니까?”

잠시 멀뚱한 시선으로 하드루스 대통령을 바라보던 바스톨 장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깃털 없이 난다 해서 박쥐가 드래곤이겠습니까?”

배를 붙잡고 뒹굴던 하드루스 대통령이 간신히 진정될 때쯤 바스톨 장군은 진지하게 말했다.

“글쎄요. 우리 시대의 무인이라면 제국 기사단의 브라도 경이나 하이낙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자마쉬의 팔비스, 저 그리치의 리플리 공 같은 분들이 있겠지요. 혼 족의 타르타니어스 공도 있고. 하지만 말입니다………

“예?”

“지루해하시는 얼굴이군요, 각하.”

“하하, 예. 좀 그렇군요. 그분들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러실 겁니다. 사실 전 좀 의외의 인물들을 뽑고 싶군요.”

“의외의 인물이오?”

“그렇습니다. 각하. 저는 하이낙스의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국 정벌에 나서기 직전까지도 아무에게 주목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어 서자마자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어쩌면 다섯 번째의 검 또한 쟁쟁한 무인들이 아닌, 의외의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됩 니다.”

하드루스 대통령이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며 바스톨 장군은 빙긋 웃었다. 하드루스 대통령 역시 그런 대답을 기대했던 것이다.

“지금으로선 세 명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먼저, 필마온 기사단의 발도 로네스 경이 있습니다.”

“역시!”

“저는 이 자를 도무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 늙은 노새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작자인 듯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냉정해야 할 때라고 말할 때 분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아갈 거라 믿을 때 멈춰 섭니다. 그러고도 남해를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론……….”

하드루스 대통령은 바스톨 장군이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했다. 잠시 후 바스톨 장군은 약간 자신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키 드레이번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웃지 않았다. 다만 기막혀 했다.

“예? 키 드레이번이라면 그…………… 해적 말씀입니까?”

바스톨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장군이 실언했다고 생각한 대통령은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동조하는 척했다.

“물론………… 예. 다른 사람도 아닌 장군의 예를 보더라도……………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논하고 있는 것은 제국 전반에 영향을 미칠 자에 대한 이야기입니 다. 그는………… 고작해야 수천 명의 수하를 거느린 해적이잖습니까. 해적으로서는 좀 많지만 한 나라와 비교하면, 뭐 우리나라의 일개 부대는 되겠군 요.”

바스톨 장군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전 그 자를 제 자신의 경우와 비교해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각하. 그리고 그가 거느린 수하의 숫자로 말씀드린 것도 아니고. 저는 그 자 자신을 놓고 말한 것입니다. 어쩐지 각하께선 이 늙은 노새보다 더 완고하신 듯하군요.”

하드루스 대통령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바스톨 장군이 처음부터 말한 것이 하이낙스의 예였지 않은가. 바스톨 장군은 계속 말했다. 

“해적이든 어쨌든 그는 현재 제국의 공적 1호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의 기함에 2천만 데리우스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아, 제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공탁한 그 현상금 말입니까? 국고의 무의미한 낭비라고 의회의 원성이 자자…… 죄송합니다. 말씀하십시오.”

“하이낙스가 제국의 공적 1호로 지명되었을 때도 각하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사트로니 아는 그에게 무릎을 꿇어 겨우 잔명을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몰락 이후엔 각하의 말씀대로 2천만 데리우스를 무의미하게 낭비해 가면서 제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지요. 대륙의 중부를 호령하던 사트로니아가 처한 오늘의 모습을 생각하십시오, 각하. 바로 하이낙스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무나 제국의 공적 1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국의 공적이 된다는 것은, 그가 정말로 제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아니면 제국이 감기에 사망할 정도의 중증 환자가 되었던가. 하드루스 대통령은 사람들이 키 드레이번의 발호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논리를 머리에 떠올렸다. 하지만 하드루스 대통령은 늙고 고집센 노새라 자평하는 바스톨 장군보다 더 보수적인 성격이라고 평가되는 것은 싫었기에 그 말을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대신 대통령은 바스톨 장군의 인간적인 약점을 찔러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긴, 그 자가 가진 복수를 간과할 수는 없군요. 흐음. 브라도 경이 다시 측은해지는군요.”

하드루스의 생각대로, 바스톨 장군은 슬쩍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표정을 보며 하드루스는 바스톨이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브라도 경을 자신의 적수로 여기고 있음을, 그리고 해적에게 검을 빼앗긴 경쟁자를 비웃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마주친 적은 한 번밖에 없지만 어쨌든 40년의 경쟁자다. 그 40년 동안 한 사람은 대륙의 무인들 중 정점인 제국 기사단장이 되었고, 한 사람은 일국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전자는 자신의 검을 잃었고, 후자는 왕관을 포기했다.

일생의 경쟁자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드루스 대통령은 상념을 망각 저편으로 보내곤 남은 질문을 꺼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입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바스톨은 키 드레이번의 이름을 거론했을 때보다 더 당황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키 드레이번의 이름을 들은 이상 그보 다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던 하드루스는 선선히 웃으며 기다렸다. 이번엔 산적 두목 정도 되려나? 바스톨 장군의 입이 힘 들게 열렸다.

“다벨의 휘리 노이에스입니다.”

“예? 그건 누굽니까?”

바스톨 장군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당신 미쳤냐는 듯이 바라보는 노장군의 얼굴을 보며 하드루스는 간신히 그 유명한 이름 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하드루스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그 이름을 장군, 기사단장, 용병대장(그리고 해적 두목이나 산적 두목 까지 포함) 등이 속한 카테고리가 아닌,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서 찾아낸 것이다. 하드루스 대통령은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가수 말입니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