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2권 – 7장 : 죽지 않는 선장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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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2권 – 7장 : 죽지 않는 선장 – 5화



키는 총독 관저로 돌아가는 대신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자유호를 향했다. 자유호의 해적들은 환호를 보내었지만 키는 짤막하게 보트를 내리도록 명 령했다. 보트에 오른 키는 조금 떨어진 앞바다에 떠 있는 물수리호를 가리켰다.

억센 노잡이들은 순식간에 밤바다를 가로질러 물수리호의 건현에 보트를 가져다대었다. 보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건만, 물수리호의 갑판원들 은 아무 말 없이 키를 내려다보았다. 노스윈드 선단의 가장 이질적인 해적들을 올려다보던 키가 말했다.

“자유호의 선장 키 드레이번이다. 승선을 허락하라.”

키 드레이번을 내려다보던 해적들 중 하나가 사라졌다. 잠시 후 물수리호의 갑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는 사다리를 붙잡고 가볍게 뱃전을 올라갔 다.

물수리호의 선원들은 밤 안의 밤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는 차분하게 말했다.

“알버트 선장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갑판을 비워주게.”

아무런 명령도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고급 선원들은 고물 쪽으로 사라져 갔고 다른 갑판원들은 고요히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텅 빈 갑판에 떨어지는 달빛을 밟으며 키는 메인 마스트로 걸어갔다.

알버트 선장이 그곳에 있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솟아오를 때마다 물수리호의 갑판원들이 몸으로 그를 가렸지만, 그래도 험난한 바다의 날씨를 온몸으로 받아 왔던 알버트 선장의 옷은 너덜너덜했다. 제멋대로인 머리카락들은 굵게 엉켜 그의 얼굴 태반을 가리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이 아니더라도 알버트 선장의 얼굴은 보기 힘들었다. 목깃에서 튀어나온 혈관들이 그의 양볼과 이마를 휘감아 돈 다음 머리카락들 사이로 기어들어가 마스트에 감기고 있었다. 소 맷자락에서 튀어나온 혈관과 근육들은 댕댕이덩쿨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마스트에 휘감겨 있었고 갑판에 파묻히다시피 한 다리는 식물의 뿌리처럼 보인다. 키 드레이번은 그 근육과 혈관들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못대가리를 바라보았다. 심장 부근에 박혀 있는 커다란 못대가리는 시뻘겋게 녹슬어 있었다.

그렇게 알버트 선장은 물수리호를 지배하고 있었다.

노스윈드의 선단 전체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물수리호의 조타수가 그 사실을 가장 확실히 증언할 수 있었다. 물수리호 는 때때로 조타수의 조작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럴 때 조타수는 재빨리 물수리호의 일항사를 부르고, 일항사는 재빨리 메인 마스트로 달 려간다. 그러고는 메인 마스트에 반쯤 묻혀 있는 그들의 선장 알버트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당신의 지배를 따릅니다.’

그것은 야비한 반란과 바다의 사내가 내뱉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맹세가 뒤얽힌 이야기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에 의해 메인 마스트에 못박히게 된 알버트 선장은 모든 바다의 악마들의 이름을 빌려 물수리호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그 배와 그 선원들을 지배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 순간 느닷 없는 폭풍이 배를 습격했다. 그리고 그 번개와 그 파도와 그 천둥 소리 속에서 죽어가던 알버트 선장의 몸이 끔찍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몸에서 근육과 혈관들이 튕겨나왔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혈관들은 물수리호의 메인 마스트에 뒤얽혔다. 그리고 그의 다리에서 뻗어나온 신경 줄은 갑판에 뿌리내렸다. 그 기괴한 모습을 본 순간 반란을 일으켰던 해적들은 무기를 집어던지고 엎드려 울부짖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렸다.

그 날 이후로 알버트 선장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상태로 물수리호를 지배해 왔다. 메인 마스트에 고정된 그의 창백한 얼굴에 표정이 떠오 르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지만, 물수리호의 해적들은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물수리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알버트 선장이 살아 있음을, 그리고 아직도 물수리호를 지배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물수리호의 해적들은 그들의 배를 신뢰했다. 놀라운 일은,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단 한 명의 해적도, 심지어 단 한 명의 노잡이 노예 조차도 물수리호를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 기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수리호의 해적들은 그들이 알버트 선장의 것이 되었음을, 죽 은 뒤까지도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물수리호를 떠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키는 알버트 선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태반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고개 숙이지 않는 그 얼굴엔 위엄이 있었고 분노가 있었다.

그리고 공허했다.

“알버트. 고맙군.”

물론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시체를 향해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수리호의 선원들이라면 절대 찬성하지 않겠지만.

“때로 생전의 자넬 만나봤었다면 즐거웠을 거라 생각한다. 알버트 렉슬러.”

휘우웅.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물수리호의 갑판을 쓰다듬었다. 바람은 키의 코트 자락을 잠시 펄럭거리게 한 다음 다시 멀어져 갔다. 짧은 순 간 알버트 선장의 머릿결이 움직이며 그 눈이 드러났다. 그러나 키가 그 눈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다시 그의 얼굴을 덮었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눈 속에서 각자가 잃은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었겠지. 혹은 서로의 숨통을 끊어놨을지도 모르지만. 난 자네가 그런 사내였을 거라 상상한다. 그런……”

키는 말을 멈췄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턱을 움켜쥐었다.

잠시 후 키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좋은 꿈 꾸게, 친구여.”

그 순간이었다. 키는 자유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바다를 가로질러 킬리 선장을 불렀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음음… 음…… 음.

키는 얼어붙은 듯 갑판에 우뚝 서서 자유호를 바라보았다. 다른 배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고 있었지만 이곳 물수리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순간 그 바람을 타고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음………… 음음…… 음음.

키는 바람을 향해 가슴을 내밀며 두 팔을 좌우로 던졌다.

쏴아아아ㅡ.

바닷바람은 물수리호의 동체 전체를 어루만지고 그 위에 서 있는 키를 얼싸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키는 느꼈다. 삐이이 ᅳ 걱. 물수리호의 선수가 서서히 움직였다. 거대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에 이끌리듯 움직인 선수는 다시 닻줄에 의해 도로 당겨졌다. 배에서라면 항상 있게 마련인 작은 흔들림 이었지만 키는 세상이 움직이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키는 고개를 돌렸다.

알버트 선장을 내려다보던 키는 몸을 돌려 보트를 향해 걸어갔다. 뱃전을 넘을 때까지 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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