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00화
귀가 긴 엘프 여성이었다.
그 모습을 본 리오는 잠시간 망설였지만 언젠간 닥칠 운명이란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엔 다시 미소가 흘렀다.
“오랜만이구나. 이리프….”
이리프…. 자신이 엔션티드 엘프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평범하게 살아왔던 그 엘프족 소녀의 상대가 하필 리오라는 것도 그녀에겐 불행일지도 몰랐다. 리오는 왼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리프와 왕비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리오의 그 모습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에게 이런 일이 또 생길 줄이야….”
리오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이리프와 왕비를 쳐다보았다. 이리프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리오에게 물었다.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난 널 만난 적도 없는데 말이야….”
이리프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훗… 미안하군. 너와 이름이 똑같고 얼굴도 똑같은 엘프 소녀가 한 명 있었지. 귀엽고 다정다감한 아이였어….”
리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다시금 그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눈은 핏빛으로 변했다. 리오는 말을 이었다.
“넌 내가 아는 이리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까 전과 같다, 깨끗이 없애버릴 것이다―!!!”
이리프는 그 말을 듣고서 움찔했다. 아까 전보다 기의 방출량이 늘어서였다. 이대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 이리프는 곧바로 마법력을 모아 주문을 사용했다. 전음 주문의 빠른 효과였다. 잔상을 남기며 호선을 그린 그녀의 손앞에 거대한 광탄이 생성되었고 이리프는 리오를 향해 그것을 쏘았다. 지크는 곧바로 성의 창문으로 몸을 날렸고 리오는 그 광탄을 기로 받아내기 시작했다. 리오의 기와 이리프의 마력이 광탄을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는 작은 전투를 행했다.
“크으아아아악―!!!”
리오의 외침 소리와 함께 그의 기는 순간적으로 폭발했고 쌍방의 마력과 기에 짓눌린 광탄은 중간에서 폭발하였다.
쿠쿵!
성 밖에서 전투를 하던 병사들은 불사병들을 제외하고 모두 성의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밝은 빛과 함께 성의 윗부분이 박살 나는 그 장면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태라트, 조나단 등은 그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작은 세 개의 물체가 폭발 지점에서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붉은색의 거대한 기와 노란색의 마력의 구체가 가장 눈에 띄었고 그 옆의 푸른 구체는 사람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왕비였다. 왕비는 공중 부유술을 사용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가이라스 국왕은 그렇지 못했다. 폭발에 성 밖으로 튕겨나가 성의 아래쪽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이라스 왕의 사체는 돌 더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뭣들하는 건가! 어서 공격하라, 지금은 우리의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조나단의 호령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각 기사단들은 정신을 차렸고 다시 전투는 계속되었다.
기사단들이 싸우고 있을 동안 태라트는 저항군의 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다시 진열을 만들었을 때 그의 옆으로 지크가 달려왔다.
“아, 지크!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지크는 바이나를 의무병에게 맡긴 뒤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뛰어가며 태라트에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엉망이에요!!!”
곧 지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태라트는 황당한 표정으로 지크가 달려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간단하군….”
불사병들이 차츰 뼛가루로 변하여 사라지는 것이 자신의 눈에 보이자, 네크로맨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세 개의 기사단의 힘이 커서였다. 마지막 선을 지키고 있던 좀비 부대 앞까지 기사단들이 진군해오자 네크로맨서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크으윽… 이제는 하는 수 없군. 전부 죽는 것이다, 후하하하…!”
네크로맨서는 천천히 단검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단검의 끝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가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서 기괴한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고 그가 조종하던 불사병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들의 움직임이 멈추자 기사단도 움직임을 멈추었고, 그들은 바짝 긴장한 채 불사병들을 바라보았다.
“최강의 불사병이지, 후후후후… 나의 최후의 작품! <본 임페리얼>이다!!!”
네크로맨서는 자신의 가슴을 단검으로 도려낸 후, 심장을 빼어들며 주문을 마지막까지 외워 나갔다. 그의 몸에서 나오던 기괴한 빛은 하늘로 솟아올랐고 그 빛을 향하여 파괴된 불사병들의 잔해와 아직 멀쩡한 불사병들의 육체가 모여들었다.
“저, 저것은…!! 전군 후퇴, 전군 후퇴하라!!!”
위험함을 느낀 조나단은 전 기사단에 후퇴 명령을 내렸고 기사단은 모두 명령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그 빛 안에 흡수된 뼈들은 하나의 거대한 뼈의 거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단백질의 찌꺼기가 그의 옷을 만들었고, 갑옷을 이루던 강철은 그의 도끼와 갑옷으로 변화해 갔다. 마지막으로, 네크로맨서의 육체는 그의 머리로 올라가, 거인의 왕관을 이루어 주었다. 완성된 거대한 불사병, 본 임페리얼은 괴성을 지르며 저항군에게 자신의 탄생을 알렸다.
리오는 조용히 왕비와 이리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은색으로 빛을 발하는 상태였다. 이리프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리오에게 말했다.
“이봐, 리오 스나이퍼. 저기 저항군이 위험하게 생겼는데 내려가지 않을 건가? 난 기다려줄 용의도 있는데 말이야.”
리오는 공중에 뜬 상태로 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네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넌 반드시 내가 없애버릴 것이다. 그걸 알아두도록…!”
이리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훗, 대단한 자신감이야. 날 과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웃기는군…!”
이리프 역시 마력을 뿜어내며 리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2급 마법, <파이어 블라스트>!!!”
수십 개의 화염탄이 구체에서 리오를 향해 쏟아져 나왔고 리오는 그 구체들을 디바이너로 일일이 자르며 막아내었다. 이리프의 마법 공격은 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리오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검으로 마법을 막아내는 것도 한도가 있었는지, 결국 리오의 등에 화염탄 한 발이 명중되었다. 그 빈틈을 이용해 이리프의 맹공이 리오를 덮쳐왔다.
“죽어라! 2급 마법, <밀리언 스피어>―!!!”
뇌력이 만들어낸 번개의 창 수백 개가 리오의 몸을 강타했고 힘을 잃은 리오의 몸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니, 뭐야… 너무 싱겁잖아? 호호호호…!!”
이리프는 떨어진 리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소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리프의 물리 방호망 위쪽이 큰 충격을 입으며 깨어져 나갔고 이리프도 그 힘에 충격을 입고 몸을 떨었다.
“크으윽―! 뭐, 뭐냐!!!”
이리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망토를 벗은 리오가 검을 든 채로 이리프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내 망토가 역할을 잘해주었군!!”
이리프의 마법이 적중시킨 것은 모조리 리오의 망토였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고 사용되는 전음 주문법의 약점을 간파한 리오의 책략이었다. 이리프는 긴장된 표정으로 리오를 향해 양손을 모았고 리오를 맞추지 못하고 공중을 방황하던 화염탄들이 다시금 리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리오는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포기했고 이리프는 다시금 마법 주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훗… 농담이 아니었군. 설마 이 정도로 강력하게 공격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아마 방호막이 없었다면 내 몸이 날아가 버렸을지 몰라.”
나머지 화염탄을 모조리 잘라낸 리오는 다시금 이리프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전사의 전투에서 마법사는 최선을 다해 거리를 벌려야만 하고 전사는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 말은 간단했지만 이 전투에선 간단하지가 못했다.
<본 임페리얼>의 공격은 강력했다. 템플 나이트 중에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본 임페리얼>에겐 통하지 않았다. 언데드만의 강력함과 네크로맨서의 마법 방어력이 창출해낸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무기도 통하지 않았고 간단한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저항군과 기사단에겐 그야말로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기사단은 물러서지 않고 <본 임페리얼>에게 도전했지만 희생자를 늘릴 뿐, 전혀 효과가 없었다. 조나단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고 그는 자신의 검, <파이어 턴>을 바라보았다.
“… 라칸.”
그는 자신의 옆에서 젊은 기사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라칸의 이름을 불렀다.
“내 대신 바이나 공주님을 부탁한다….”
라칸에게 이 말을 남기고서, 조나단은 <본 임페리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라칸이 그의 뜻을 알고서 그를 말리기엔 이미 때가 늦어있었다.
<파이어 턴>은 불꽃이 검을 휩싸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 마법검과도 같은 원리이지만 칼집에 들어가기까지 그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검에 박혀있는 마그마 스톤 덕분에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조나단은 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사용하기 위해 <본 임페리얼>에게 돌진하는 것이었다. 바로, 마그마 스톤의 에너지를 무제한 방출시키는 것이다. 분명 그 에너지는 궁극에 가까울 것이고 <본 임페리얼>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게 되면 사용자에게도 마그마 스톤의 에너지가 방출되어 그 사용자는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 세레나, 티퍼… 미안하다…!!’
“어이, 아저씨! 검 좀 빌려줘요!!”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나단은 움찔했다.
파악―!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파이어 턴>은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강탈당했고 조나단은 놀란 나머지 말을 멈췄다. 조나단은 자신의 검을 가져간 그 청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중에 돌려줄게요 아저씨!!!”
지크는 왼손에 <파이어 턴>을 움켜쥐고, 오른손엔 무명도를 뽑아든 채 <본 임페리얼>의 앞에 섰다.
“난 누군가가 희생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니글거려서 볼 수가 없다고… 헤헷!”
지크의 모습을 본 <본 임페리얼>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소롭다는 눈초리였다.
지크는 두 개의 칼을 땅바닥에 꽂은 후, 자신의 기전력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스파크가 지크의 몸을 감쌌고 지면에도 스파크가 흘렀다.
“우아아아아아앗―!!!”
기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지크의 몸은, 그야말로 ‘번개’였다. 두 개의 칼을 다시 뽑아들고 <본 임페리얼>의 머리까지 치솟아 오르는 중, 남는 것은 그의 잔상뿐이었다. 두 개의 칼을 부여잡은 지크의 기합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팔백 구십식! <쌍 용격 분천참(雙龍格噴泉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