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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07화


3부 1장. <벙어리 미녀>

눈이 많이 내리는 제국의 항구 도시인 보르이크. 항구 도시엔 쌓이고 쌓인 것이 주점이지만 그중에 ‘흑해’라는 이름의 주점은 다른 곳보다 손님도 많고 규모도 큰 주점이었다. 안에선 거칠게 생긴 사나이들 열 명 정도가 술을 들이키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와하하하! 이번에 가이라스에서 잡혀온 노예는 정말 끝내주더라고! 몸매도 괜찮고, 잘만 가르치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아! 하하하하!!!”

이른바 제국에서만 허용되는 ‘노예업’의 종사자들이었다. 다른 왕국에선 인신매매라 하여 금지되어 온 직업이지만 특별히 제국에서만 허용되는 일이었다. 단, 다른 왕국의 사람들만 매매가 허용되었고 제국의 국민들은 매매가 허용되지 않았다.

“어이, 대장! 이번의 노예를 팔면 언제 또 나갈 거요?”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른 사나이가 애꾸눈 사나이에게 물었다.

“웅? 조금 쉬면서 하자구! 일주일 후면 어떨까 한다! 하하하…!”

한참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술을 조용히 마시고 있던 한 노인 뱃사람이 일어서다 실수로 애꾸눈의 머리에 부딪혔다.

“아, 아니 이 노인네가…!!”

노인은 기겁을 하며 애꾸눈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했으나 애꾸눈은 한창 취한 상태여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가 노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쥐는 찰나.

끼이익.

적막을 부르는 소리가 문 쪽에서 들려왔고 주점의 모든 사람들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큰 키에 붉은 머리를 한 사나이가 눈을 잔뜩 맞은 채 문 앞에 서서 앉을 곳을 찾고 있었다.

“우, 우욱…?!”

그 사나이에게서 뿜어지는 이상한 분위기에 애꾸눈은 술이 깬 듯 노인을 놔주었고 노인은 도망치듯 동료들과 함께 주점에서 사라졌다.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구석에 남은 자리에 앉아 점원에게 주문을 했다.

“우유 좀 주시오. 따뜻하게 데워진 걸로.”

보통 사나이가 주점에서 우유를 찾았다면 사람들이 웃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사나이의 말을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사람들은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고 애꾸눈들도 술을 다시 마시며 웃고 즐겼다.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온 우유를 들이키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반 시간쯤 지나고 사람들이 얼큰하게 취할 때쯤, 주점의 문이 열렸고 주점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남자가 아니었다. 상처를 입었는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건지, 허리를 구부린 채 콜록거리고 있는 금발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비틀거리며 애꾸눈 근처의 빈자리에 걸터앉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에게 이 주점에서 가장 독한 술을 손으로 가리켰다. 점원은 괜찮겠냐는 질문을 던지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애꾸눈은 끼가 발동했는 듯,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호오… 주점으로 기어 들어오는 여자는 처음인걸? 어디 얼굴 좀 볼까? 후후후….”

애꾸눈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채를 잡아 올리고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약간 지저분하긴 했지만 상당한 미모였다. 애꾸눈은 입맛을 다시며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호오… 괜찮은 여잔데? 좋아, 나랑 오늘 밤에 별이나 세며 낭만을 즐겨 볼래? 우하하하!!”

퍼억!

애꾸눈의 동료들과 주점 안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성의 따귀를 맞은 애꾸눈이 피를 흘리고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애꾸눈이 다시 일어섰을 때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그녀에게 자신의 잔에 담겨있는 술을 끼얹었다.

“이 더러운 계집이!!”

그녀는 얼굴에 묻은 술을 옷자락으로 닦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푸훗….”

그녀의 눈이 차갑게 빛나자, 애꾸눈 일행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보통의 여자에게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어서였다. 그녀는 조용히 애꾸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분명한 도발 행위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애꾸눈은 탁자에 기대에 놓은 자신의 대검을 뽑아들며 그녀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애꾸눈은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옷자락을 잡은 사나이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 날 방해할 작정이냐!!!”

애꾸눈의 눈에는 이미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긴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손바닥을 펴 보이고 실실 웃으며 애꾸눈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아하~ 이거 미안하오 형씨. 하지만 여자를 칼로 때리는 건 너무하잖소, 안 그러오?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그러니 기분 풀고 앉으시오.”

애꾸눈은 사나이의 팔을 쳐내며 그를 향해서 검을 들어 보였다.

“너! 이 검에 두 동강이 나고 싶냐!!”

사나이는 팔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우,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참견이야! 네가 이 계집의 남편이라도 되는 거냐!!”

애꾸눈의 말을 들은 사나이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애꾸눈의 어깨에 다시 팔을 올려놓았다.

“어허…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에게 그런 실례의 말씀을. 이러지 말고 기분 푸시오… 제발 부탁이외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애꾸눈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애꾸눈은 그 사나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소이다…! 그, 그만 갈 테니 팔 좀 치워주시오, 제발…!!”

사나이는 팔을 풀며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했다. 애꾸눈은 도망치듯 일행과 함께 바깥으로 사라졌다.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 일어서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의 눈초리는 그리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

사나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녀가 자신을 노려보며 계속 서있자 사나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이런… 끼어들어서 미안하오. 사과할 테니 제발 앉으시오, 예?”

그녀는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앉는 자세가 여자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터프했다. 사나이는 그냥 그렇겠지 하며 넘어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인사나 합시다. 난 리오 스나이퍼라고 하오. 그쪽은 어떻게…?”

리오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까지 들은 그녀의 분위기가 험악해져서였다. 그녀의 눈은 가늘게 변해 있었고 살기마저 풍기는 듯했다.

“아, 아니. 왜 그러세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오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곧 그녀가 주문한 술이 탁자 위에 놓여졌고 그녀는 술을 받자마자 병째로 들이켰다. 리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 나 참.”

술을 다 들이킨 수수께끼의 여성은 비틀거리며 주점을 빠져나갔고 리오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 벙어린가?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이상한 여자군.”

리오가 한숨을 쉬며 천천히 일어설 때, 점원이 급히 달려나오며 리오에게 계산서를 들이밀었다.

“어? 우유값은 지불했잖소?”

“저 숙녀분과 아시는 사이시죠? 그분이 드신 술값입니다.”

리오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으며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허, 정말 굉장한 여자군. 비싼 술도 공짜로 마시고 말이야… 자, 여기 있소이다.”

점원에게 돈을 계산한 리오는 주점을 빠져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웃기는군… 큰맘 먹고 제국에 혼자 온 주제에 처음부터 사기나 당하고 말이야…. 에이… 젠장할.”

리오는 천천히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항구 도시라서 그런지 다른 거리는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눈발이 날리는 거리를 혼자 거닐던 리오는 한 골목을 거닐 때 잠시 멈춰 섰다.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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