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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0화


“흐으음… 왜 안 오시지?”

클루토는 리오와 약속한 장소에서 레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클루토는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왕국의 수도에 자신이 와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잘 정돈된 거리와 세련된 사람들의 옷차림은 자신의 고향과 어느 정도의 수준 차이가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이, 오래 기다렸냐?”

클루토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리오였다.

“어어, 레나씨는요?”

“으응… 사촌집이 여기 있다고, 거기서 있겠다는군. 자 숙소로 돌아가자.”

“그래요… 그러죠 뭐.”

클루토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와 함께 숙소로 떠났다.


“리카 언니.”

리카는 자신의 앞에서 빵을 조금씩 씹어먹고 있는 제나를 보았다.

“왜?”

“언니는 왜 여기까지 왔어?”

“으응… 그냥.”

제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이~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

리카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잠자코 빵이나 먹어. 으으… 클루토는 왜 안 오는 거지?”

“치! 너무했어.”

제나는 딴청을 피우는 리카가 싫은 듯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와아… 엘프족인가?”

리카는 제나의 감탄사에 아이가 보고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보았다.

“어어? 진짜네?”

저쪽, 리카와 제나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검은 눈, 검은 머리에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는 미남 청년이었다. 하지만 엘프족보다는 키가 크고 근육도 그런대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귀도 엘프족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날카로움이 있었다.

“뭐야 저 꼬마들은…”

그는 리카와 제나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 듯했다.

“잠이나 자야겠군…”

그는 주인에게 선금을 준 후 열쇠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갔다.

“미남이긴 한데… 맘에 안 들어. 그렇지 제나?”

“난 마음에 드는데?”

“……”

리카는 얼굴을 찡그리며 제나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주었다. 제나는 머리를 부비며 리카를 살짝 쏘아보았다. 조금 후 여관의 문이 열리며 리오와 클루토가 들어왔다.

“아, 기다렸니?”

“아니, 꺽다리.”

리오는 리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클루토는 매우 시장한 듯 여관 주인에게 빵 몇 조각과 우유를 주문했다. 리오는 의자에 앉으며 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음… 이봐, 리카.”

“왜.”

“너 검술을 얼마나 배웠니?”

“음… 삼 년쯤? 그런데 왜?”

리오는 머릴 긁으며 소리 내 웃었다.

“하하하… 삼 년 가지고 검투기 대회에 출전한다구?”

리카는 얼굴을 붉히며 따지고 들었다.

“뭐야! 그게 어쨌다는 거야!”

리오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응, 그냥… 가르쳐 줄까 해서 말이야.”

“뭐라구? 호호호… 당신에게 가르침 받을 건 없는 것 같은데…?”

리카가 비꼬듯 말하자 리오는 눈을 감으며 되받아쳤다.

“오오.. 그러신가? 하긴, 예선 탈락이 되도 난 상관할 이유가 없지. 맘대로 해라.”

리카는 리오의 태연한 태도에 더욱더 화가 났다. 결국엔 소리를 치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흠… 클루토.”

“예?”

“쟤 원래 저러냐?”

클루토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씁쓸한 기억이 있는 듯했다.

“예…”

리오는 물 한 잔을 들이키며 클루토를 보았다.

“클루토, 한 가지 물어봐도 되니?”

“예, 뭐든지요.”

“너, 마법을 몇 급까지 쓸 수 있니?”

클루토는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6급…이요.”

리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마법의 급수 개념에서 8급은 마법을 아무리 못하는 사람이라도 주문만 외울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고, 7급은 그보다 정신력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약간은 어려웠고, 6급은 마법사라는 이름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 마법이었다. 그런데 기초 마법만 믿고 검투기 대회에 출전을 하다니…

“학원 다녔다고 했잖아.”

“다니는데 어느 날 리카가 다짜고짜 끌고 나왔어요.”

“으음… 문제 소녀군…”

리오는 클루토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소질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음… 그런대로 소질은 있어 보이는데… 그래도 2급까지밖에 못 배워.”

“예? 무슨…”

리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클루토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했다.

“방으로 올라와.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데까지 가르쳐주지.”

클루토는 의외의 말이어서 깜짝 놀랐다. 마법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것같이 보이는 리오가 마법을 가르쳐주다니…

“정말이세요?”

“5급까지는 가르쳐줄 수 있어. 네 마음에 달린 것이지만.”

클루토는 잠시 생각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배우겠다고 말했다.

“좋아! 자 그럼 제나야?”

“……”

제나는 얘기 상대가 없어서인지 의자에 앉아서 콜콜 자고 있었다.

“아이라니까 이러겠지, 후후. 클루토, 제나를 방에 데려다줘라. 잠은 깨지 않게.”

“예.”

클루토는 제나를 안고 리카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이라고는 했지만 클루토의 힘이 워낙 약했기 때문에 클루토는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며 낑낑대기 시작했다.

“으윽… 리오는 한 손으로 번쩍 안아 올리던데?”

겨우 2층으로 올라간 클루토는 리카가 있는 방문을 힘겹게 두드렸다.

“리카, 문 열어줘.”

“뭐라구!”

“문 열어달라니깐… 힘들어 죽겠네.”

리카가 방문을 열어젖히자 클루토는 뒤로 쓰러질 뻔한 것을 리카가 붙잡아준 덕분에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뭘 그리 놀래? 무슨 일 있어?”

클루토는 리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리카의 머리 푼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머리 푼 거 처음 봐? 빨리 애 뉘어놓고 사라져.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아… 알았어.”

클루토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제나를 뉘어놓았다.

`아니… 머리 풀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나? 이상하네…?’

이렇게 생각하며 클루토는 리카에게 떠밀려 방에서 쫓겨났다.

“뭐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예선까진 3일 남았다구.”

“아, 알았어요.”

클루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방문을 닫자마자 바로 옆 칸의 방문이 열렸다.

“흐음… 리오 녀석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헌데… 아니겠지.”

미남 청년이었다. 그는 2층에서 내려가 여관을 잠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방해할 장로님도 없고… 후후후, 이제 본격적으로….”

그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며 거리로 향하였다. 그가 거리를 거닐 때마다 근처의 여인들은 한 번씩 그를 쳐다보았다. 유부녀도 마찬가지였다. 몇몇의 여성이 그를 유혹했으나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못생겼군…’

그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다가 저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타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림 같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씨익 웃어보였다.

“오오, 저기 한 건이 있군. 가보자.”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말 위에 타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약간은 탄 듯이 보이는 매력적인 갈색의 피부가 그녀의 갑옷 사이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그녀의 피부색보다 약간은 짙은 갈색이었다. 얇지만 짙은 눈썹이 푸른색 눈동자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코와 입은 그녀의 성숙미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와우. 90점대 같은데?”

그는 그녀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가 그를 응시하자 그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쪽 눈을 감아보였다.

“뭘 원하지?”

그녀의 말투가 약간 남성적이었으나 그는 그것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음, 나와 사귀어볼 생각 없어요?”

“뭐라구? 하하하!”

그녀를 알아본 시민들은 자리를 하나씩 피하기 시작했다. 곧 사람들에 의해 둥그런 원이 형성되었다. 중형 사이즈의 투기장처럼 보였다.

“오오, 이런. 말투가 거치신데?”

그는 팔짱을 끼며 그녀에게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그 미남 청년을 쏘아보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당신이 누군지 알면 이러고 있겠어? 자자, 얼굴 풀고 나랑 식사나 하러…”

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놓자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아니!’

강한 힘이었다.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 미안. 힘을 과하게 주었나?”

그는 이내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좋아, 네 말을 듣기로 하지. 하지만!”

그녀는 말의 안장에 붙어 있는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그전에 날 이겨야 한다!”

미남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중얼중얼…

“이런 여자가 벌써 11명째군. 허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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