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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1화


“중얼대지 말고 어서 검을 뽑아…”

그녀는 그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무기라고는 아무것도 휴대하지 않고 있었다.

“진짜 널 쓰러뜨려야 하겠나?”

“물론이지, 하지만 무기가 없는 사람과는 싸우기 싫어.”

그 말을 들은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기가 없다고? 똑똑히 살펴보시게나.”

그는 양손을 합장하였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도라도 가지고 있나…엇?!’

그녀뿐만이 아니고 구경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의 손바닥 사이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양팔을 벌렸다. 긴 빛의 줄기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곧 빛 줄기는 은빛의 우아한 곡선을 가진 물체로 변하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검과는 약간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약간 휘어졌지만 그렇게 휘어진 것도 아니었다. 직선에 가까운 곡선이었다. 그가 검을 잡고 두어 번 공중에 휘두르자 흰색의 호선이 밝은 대낮인데도 확실하게 보였다. 그녀는 약간 긴장을 했다.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좋아, 이름을 밝혀라!”

그도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바이칼 레비턴스. 그쪽은?”

“슈레이 베르니카.”


여관 안에서 리오와 클루토는 둘이 마주 앉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클루토는 처음 보는 수련 방법이라 약간은 어려웠지만 한 시간쯤 그러고 있으니 이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걸 다른 대륙에선 좌선이라 한다. 방법만 알면 어떠한 수행보다도 좋은 효과를 얻어낼 수 있지.”

“리오는 어디서 이런 걸 익혔어요?”

“음…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까 이거저거 다 알게 되더라고. 자 다시 한번…”

둘은 다시 눈을 감고 수행에 몰두했다. 클루토는 리오가 가르쳐준 그대로 호흡을 해나갔다.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자, 잘해나간다. 더욱 편안해지면 네가 알고 있는 5급의 주문들을 외워봐. 생각나는 대로…”

리오의 말대로 클루토는 주문들을 생각해 나갔다. 화염계, 냉동계, 지진계, 뇌격계의 5급 주문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주문들을 외워봐. 적이 앞에 있다고 생각해라. 그 적을 향해 마법을 쓰는 거야.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해봐.”

클루토는 더더욱 정신을 집중해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 안에 클루토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괴물들을 떠올렸다.

`리자드 맨인가… 그들은 냉동계 마법에 약하지…’

클루토는 주문을 외웠다. 5급 주문이었다. 주문을 외우는 사이에 리자드 맨들이 덮쳐왔다. 그들의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는 외쳤다.

`가라앗!!’

그와 동시에 리자드 맨들은 얼음 덩이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산산조각이 났다. 완전히 얼어붙은 그들의 내장기관도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해냈다! 5급 알자르만을 익혔어!’

“익히면 뭐해!!”

클루토는 리오가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그만 정신집중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왜 그러세요, 이제 막 주문 하나를 익혀나가고 있었는데… 어엇?”

클루토의 눈앞에서 같이 정좌를 하고 있던 리오는 어느새 클루토의 뒤쪽으로 와 있었고 클루토의 앞쪽에 있던 가구들은 모조리 얼음으로 변해있었다.

“이, 이건…?”

“마음속으로 하라고 했잖아, 마음속으로…! 진짜로 중얼대면 어쩌란 말이야?”

클루토는 얼굴을 붉히며 모자를 눌러썼다. 하지만 주문이 실제로 되었다는 것으로 그는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자, 자. 계속하자구. 이것들은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까.”

클루토는 다시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굉장한 것을 배웠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아앗!”

슈레이는 자신의 검을 세우며 바이칼에게 돌격해왔다. 무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만의 특색있는 돌격 방식이었다. 여성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격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대결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 돌격에 의해서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만다. 그렇게 이기는 것도 대부분이었지만…

“슛.”

“아아앗!”

잔상이다! 슈레이는 즉각 반전하여 기척이 있는 곳으로부터 거리를 벌려놓았다. 바이칼은 슈레이의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고 그도 전법을 바꾸기로 했다. 즉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중심을 확실히 잡았다. 슈레이는 잔상이 생길 정도의 스피드를 가진 바이칼에 대해 약간은 놀랐다. 하지만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조금 후 그들의 검이 부딪혔을 때 슈레이는 뒤로 쓰러질 뻔한 것을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다. 굉장히 강한 힘이었다.

`보기완 다른데? 어디서 이 정도의 힘이 나오는 걸까?’

“헤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세웠다. 거의 본능적이었다. 슈레이는 자신의 목에서 한 뼘 거리에 있는 바이칼의 칼날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바이칼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결투 중에 잡념을 가지는 건 죽여달라는 말과 같다구, 정신 차려.”

슈레이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자존심이 뭉개지는 것 같아서였다. 7호장이라 불리우는 자신이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이상한 사나이에게 놀림을 받는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잇! 없애주겠다!!”

슈레이는 강하게 바이칼의 검을 밀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몸에서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바이칼은 그 장면을 보고서 속으로 감탄했다.

`호오… 별걸 다하네? 그런데 뭘 쓰려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몸에 있는 기를 끌어올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일명 `필살기’라는 걸 쓰기 위해서였다. 슈레이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동작을 지켜본 한 기사가 바이칼의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으윽!! 이봐, 거기 있는 사람들! 빨리 비키시오, 안 그러면 당신들도 죽게 된다구!”

바이칼은 점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비키자 그녀는 검을 있는 힘껏 잡았다.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후회는 지옥에 가서 하거라! 하아아앗!!”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그녀의 검이 음속 이상의 스피드로 땅을 내리쳤고, 공기를 가르는 파문이 굉음을 내며 바이칼을 덮쳐왔고, 바이칼의 표정이 세 번 교차했다. 그는 결국 진공파를 정면으로 받고 말았다. 폭발음이 수도의 하늘을 울렸다.

“후훗, 끝났군. 미남이었는데 아까워…”

그때, 자욱하게 낀 먼지를 뚫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슈레이는 미처 방어할 틈이 없었다.

“아앗?! 어떻게!!”

“전광 미진참(電光 微塵斬)!!!”

그녀의 눈앞에서 몇 가닥의 빛의 실선이 그어졌다. 처음 보는 기술이었다.

“이, 이건…”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몸에 장비되어 있던 갑옷과 검이 작은 금속 조각으로 변하여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무장 해제된 기분이 어떠신가?”

바이칼은 끼끼끼 웃으며 그녀에게 놀리는 투로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검을 다시 자신의 신체 안으로 집어넣었다. 슈레이는 몇 시간 전에 왕궁 안에서 슐턴을 내리누르던 붉은 장발의 사나이와 비교할 만한 실력이라 생각되었다.

“자, 이제 나와 약속을 지키시지. 평상복 차림이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 아니야.”

슈레이의 갑옷 밑에 입고 있던 옷은 아이보리색의 약간은 헐렁해 보이는 평상복이었다. 보조 사슬 갑옷 같은 건 입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오늘 가족을 만나러 왕궁에서 잠시 외출을 한 것인데 도중에 바이칼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바이칼은 기대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곁에 있었다.

“……좋아, 약속은 지키지. 그러나.”

“또 뭔데?”

“난 선약이 있어서 가는 도중이었거든, 거기만 다녀오면 안 되나.”

바이칼은 그의 갸름한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급한 성격은 아니라서 허락해주었다.

“좋아, 그러나 동행해도 아무 말 안 하겠지?”

“물론.”

슈레이는 그녀의 말을 근처에 있던 기사에게 말을 왕궁 안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 후 아직도 먼지가 자욱한 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슈레이는 먼지 안에서 콜록거리는 두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 아이들의 위치는 바이칼이 있었던 장소에서 바로 뒤쪽이었다.

`이 남자… 피할 수 있었으면서 피하지 않았던가?’

슈레이는 바이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바이칼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재촉했다. 슈레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길을 걸어갔다. 그 뒤로 아이들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들이 아이를 달래면서 바이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다. 하지만 바이칼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계속 걸어갔다.

“아줌마들에겐 흥미 없어.”

나지막하게 말하는 바이칼을 슈레이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슈레이가 바이칼에게 살며시 질문을 던졌다.

“이봐, 호색한.”

“이름을 불러, 이름을.”

바이칼은 `색한’이란 단어를 굉장히 싫어했다. 자신이 만나는 여자마다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는 것 때문이었다. 슈레이는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 질문을 했다.

“너는 검술을 누구에게 배웠지?”

“얼굴은 예쁜데 말투는 완전히 남자군. 괜찮아, 이런 여자도 열 번째니까 이해할 수 있어.”

“질문에나 답하라구 색한.”

바이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독학했지. 나에게 스승은 없어, 마을 장로만이 내게 유일한 조언자일 뿐이야.”

“독학한 검술이 그 정도인가?”

“허이구… 미치겠군.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말아줘.”

“좋아. 아, 한 가지 더. 네가 가진 그 마법의 검 말이야,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 드워프?”

“점점 더하는군… 그렇게도 궁금하면 왕궁 서재에 가서 책이나 뒤져봐. 그럼 알 거 아니야.”

슈레이의 궁금증은 가시질 않았다.

“그럼, 검을 한번만 보여줄 수 있어?”

“나중에 보여줄게. 그만 좀 물어볼 수 없니?”

슈레이는 그래도 물어보려 했으나 자신의 집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는 말을 멈췄다.

“무서운 여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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