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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41화


10장 [폭염장]

리오 일행은 어느덧, 제국의 수도가 멀리 보이는 마지막 외곽 도시, 퍼렌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오는 숙소를 정한 후에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일행은 별일 아니겠지 하며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리오에겐 큰 고민거리였다. 그는 근처의 주점으로 향하며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면서 공중 요새라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을까…. 거기다가 여신교는…? 프시케인가 하는 아가씨가 실종된 뒤에 잠잠해졌고 말이야….”

리오는 천천히 주점 안에 들어서도 생각에 잠긴 상태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군. 예전에 그 공중 요새 화력을 보아하니 이 세계를 집어삼키는 건 어린아이 사탕 빼앗기에 비할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요새도 한두 대가 아니라고 크리스도 말했고….’

“흐음… 알 수가 없군.”

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며 의자에 푸욱 눌러앉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리오에게 고정되었으나, 리오는 상관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우유 한 잔, 차가운 걸로.”


숙소에서 조용히 여장을 풀고 있던 세레나는, 바로 옆의 침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뭘 보는 거죠?”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훗,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 같은 약골이 어떻게 리오 씨와 ‘조금’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가서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약골’이란 말을 들은 세레나의 속에선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으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크리스에 비해서 약골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세레나는 겉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크리스에게 말했다.

“아, 그래요? 리오 씨가 ‘보호본능’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셨나 보군요. 정말 유감이네요, 호홋.”

반격을 당한 크리스 역시 겉으론 웃어 보였지만 속으론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여성의 대결은 그곳에서 끝난 것이 물론 아니었다. 무언가 빈틈이 보일 때마다 둘은 서로에게 공격과 반격을 가하였고, 그때마다 승패는 사이좋게 뒤바뀌었다. 물론, 리오는 둘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였다.


리카와 메이린은 숙소에서 싸우고 있는 두 여성과는 달리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왔던 친구처럼 짝이 잘 맞고 있었다. 크리스와 세레나가 싸우고 있을 무렵에, 둘은 숙소를 빠져나와 도시의 시장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리카, 여기 좀 봐!”

메이린은 어느새 멀리 떨어진 리카를 불러 세우며 자신의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한 애완동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리카 역시 털이 복슬복슬한 그 애완동물을 보고서 눈을 반짝였다. 15세의 소녀라면 누구나 그런 행동을 취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작고 귀여운 동물이었다.

“와아! 귀여워라!!”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리오는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과연… 자신이 저 아이들을 데리고 제국의 수도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문득 떠올라서였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인데… 위험에 빠지지 말아라, 제발….’

리오 자신에게서 어느샌가 없어져 버린 ‘감정’이라는 것을 리카와 메이린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그 ‘감정’이라는 것은 슬픔, 그리고 사랑이었다.

‘…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울 것은 없지. 있으면 더더욱 마음이 아플 뿐이니까.’

리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머리를 몇 번 좌우로 흔들고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녀들의 어깨를 살짝 잡아주었다.

“아, 꺽다리!”

리카는 활짝 미소를 띄우며 리오를 올려다보았고, 메이린은 가볍게 웃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음… 너희 둘만 나온 거니?”

“으응. 클루토와 히렌 녀석은 침대에 쓰러져서 자고 있고, 두 언니들은 방에서 서로에게 뭐라 말하면서 가만히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 둘만 나온 거지.”

리카의 말을 들은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리오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 메이린은 흠칫 놀라며 입술을 잠시 떼었다가 다시 닫았다. 리오는 표정을 풀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 너희들, 제국의 수도를 한번 볼래?”

리오는 동의한 둘을 데리고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었으나 그들에겐 별 의미 없는 것이었다. 옥상에 올라선 세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노을을 뒤로하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거대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도시, 바로 제국의 수도였다. 관광차 이곳에 놀러 온 사람들에겐 그 거대한 광경이란 굉장한 볼거리에 불과했으나, 다른 이유로 찾아온 셋에겐 볼거리 이상의 존재였다. 리오는 찰랑거리는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내리 누르며 두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무엇이 느껴지니, 얘들아.”

메이린은 무언가에 질린 듯한 표정을 하고 천천히 대답을 했다.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이상해요, 다른 제국의 대도시도 그랬지만 수도는 더더욱… 무언가에 압박당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예요. 그리고 저 높은 건물들… 마치 신에게 도전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에요. 역시 제국의 수도는 다른 것 같아요.”

리오는 리카를 바라보며 같이 말해보라는 눈빛을 전했다.

“… 리카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 나도 그런 것은 느꼈어. 굳이 덧붙이자면…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느낌이야.”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더구나. 수도라는 곳은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외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지. 그것만으로도 공포가 아닐는지….”

리오는 말을 잠시 끊고 아이들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제국 수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너희들이 과연 저 무시무시한 곳에 갈 자신이 있냐고 묻기 위해서였어. 너희들의 대답 여하에 따라… 여기에 남아있을 수도 있고, 날 따라갈 수도 있단다. 대답은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까, 염려 말고….”

리오의 질문을 다 들은 리카는 활짝 웃으며 리오의 굵은 팔뚝을 자신의 가는 팔로 감싸 안았다.

“당연히, ‘자신이 있습니다’ 아니야? 헤헷…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리오가 같이 가주는데 무슨 걱정이야?”

리카와 같이, 메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리오가, 육체만 강한 사람이었다면 전 따라가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리오와 여기까지 오면서 결코 힘만이 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분명히… 리오 스나이퍼란 사람은 육체적 강함을 뛰어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전 확신해요. 그러니, 당연히 따라가야죠?”

아이들의 확실한 대답을 들은 리오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안다는 것, 그 사실은 누구에게나 큰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믿음’이 리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된다.

“좋아, 정말 고맙다…!”


가즈 나이트….

공간을 넘나들며 주신의 명령을 받드는 전사들의 이름이다.

주신이 탄생시킨 가즈 나이트의 수는 모두 일곱 명. 지, 수, 화, 풍, 광, 암(暗), 마지막으로 무(無)…. 빛과 어둠의 가즈 나이트는 훨씬 전에 있었고, 그 후에 다섯은 거의 동시에 탄생하여 형제라고 불리운다.

빛과 암흑의 가즈 나이트에겐 ‘특권’이 부여되어 있다.

특권일까…? 아니, ‘십자가’에 비유해도 될 것이다.

누구도 특권에 의한 그 둘의 슬픔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속성의 가즈 나이트에겐 ‘증폭력’이 부여되어 있다. 자신의 힘을 수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다.

수-생명의 근원이어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모든 것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완력을 가지고 있다.

화-모든 것을 태울 수 있기 때문에 그에 상응되는 자제력을 가지고 있다.

풍-그에게 부여된 것은 ‘자유분방함’이다.

무속성의 가즈 나이트에겐 ‘심판’을 부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이 부여되어 있다. 누구도 그와 그가 보호하는 이를 심판할 수 없다. 심판자가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그가 옳기 때문에 심판을 부순다면 ‘처벌’이 따르지 않으나, 그렇지 않다면 주신의 가차 없는 처벌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을 방출한 적도 물론 없다.

그런 연유로 주신 바로 아래의 두 신이 가장 미워하는 가즈 나이트이기도 하다.

유속성과 무속성, 그리고 빛의 가즈 나이트에겐 지켜야 하는 세 가지 항목이 있다.

인(仁)-타인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항목이다.

의(義)-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거침없이 행하라는 항목이다.

신(信)-타인에 대한 믿음을 꼭 지키라는 항목이다.

언제건, 어디에서건.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행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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