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57화
16장 「용왕 강림」
커드-교황은 다시 자신의 의복으로 갈아입은 후 성당의 윗층으로 향했다.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그곳엔 넓적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바로 공중 요새로 직통되는 ‘빛의 길’이었다.
“쳇, 완전한 힘을 얻을 수 있었는데 아쉽군. 하지만 상관없어, 이제 ‘신의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야.”
혼잣말을 하던 교황은 빛의 길을 통해 우르즈 로하가스의 안으로 천천히 향하였다.
“친구의 힘이라니, 무슨 소리야!”
슈렌의 질문에 바만다라는 웃으며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들었다.
“이것입니다. 이것은 육마왕 중 최강이라 불리던 마도사, 타르자의 200년분 마력이 잠재되어 있지요. 이 정도라면 아공간의 문을 여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의 직업은 소환술사. 이러면 딱 맞군요. 오호호호홋!!”
슈렌과 지크는 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현재의 신들과 고신들의 전쟁 후 패한 고신들을 쫓아낸 곳이 바로 아공간, ‘시간의 저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고신들을!?”
바만다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순간 이동의 마법진을 전개하였다. 우르즈 로하가스로 가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당신들이 선(善)신의 사자인 천사들이나 악(惡)신의 사자인 악마들을 가지고 논다는 주신-패(覇)신의 사자 가즈 나이트라지만 고신들을 당해낼 순 없겠지요? 게다가 그분들은 오랫동안 힘을 쓰지 못해서 안달이 나셨으니 더 하겠지요. 호호홋… 그럼 전 이만. 고신들의 부활 후에 봅시다 여러분.”
거의 놀림 투로 말을 남긴 바만다라가 요새로 사라져가자 지크는 분함을 참지 못해 무명도를 우르즈 로하가스를 향해 휘둘렀다. 헛수고인 게 당연했지만 요새가 떠있는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없는 자신을 미워하는 수 외엔 지크에겐 방법이 없었다.
교황과 바만다라를 태운 우르즈 로하가스는 천천히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거대한 물체의 움직임으로 인해 아래의 도시엔 약간 강한 돌풍이 불었다.
“칫… 이거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잖아!”
지크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도시에서 멀어지는 요새를 보며 욕을 던졌고 슈렌은 창에 기대어 인상만 찡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 하나…?”
프시케는 자신은 짐이 되는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저기압 상태인 둘에게 마땅히 ‘위로’할 말 역시 없었다.
“이봐! 멍청이들!!”
지크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멍청이라고 부른 것 같아 인상을 쓰고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얼굴은 굳어졌다.
“뭐, 뭐야 저 녀석은.”
슈렌 역시 낮은 음성으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들의 앞에는 역시 그들과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쳇, 살아있었구나 지크. 하긴, 죽을 놈이 아니니까.”
“흐음… 여자도 사귀다니, 엄청난 녀석이군 저 녀석은.”
슈렌은 한 사나이를 보고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이름을 말했다.
“너, 너는… 광(光)계의 휀-라디언트!? 어떻게…!”
휀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신께서 내려가 보라고 하셔서 온 거지 뭐. 그건 그렇고 오래간만인데 형제들의 인사가 이 정도라니 실망인데 리오?”
리오는 자신의 붉은 머리를 긁으며 멋쩍은 듯 피식 웃어 보였다.
“흠, 어쨌든 이제 간단해졌으니 된 거지 뭐. 자, 여기서 고민해 봤자 일도 안 될 것 같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 지크. 그건 그렇고 아는 곳 없어? 여관비도 다 떨어졌는데….”
지크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무나 반가운 마음을 숨기려고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시케는 자신 앞에 모인 네 명의 가즈 나이트들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중에 한 명, 지크 이외에 알고 있는 또 다른 가즈 나이트도 있는 이유도 있었다.
“휀… 변하지 않았군요.”
이제 여섯으로 줄어버린 리오 일행은 조용해진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세레나와 크리스는 이제 싸울 일이 없었다. 자신들이 공통적으로 동경하고 있는 대상이 없어서일 것이다.
“하아…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요 세레나?”
창가에 턱을 괴고서 가만히 밖을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는 따분함을 못 이기고 옆에서 조용히 자신의 겉옷을 수선하고 있는 세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 수학 이야기라도 해 드릴까요?”
크리스는 재미없는 세레나의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말을 건 내가 죄지….”
얼마간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세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 세레나는 리오의 어디가 좋은가요?”
그 질문을 들은 그녀는 수선하던 바느질을 멈추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어서였다. 그녀가 말이 없자 크리스가 자신의 질문에 대신 대답을 하였다.
“전 리오의 깊은 속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지은 죄가 많은 저를 한순간에 용서해 주었으니까요. 후훗… 전 그때부터 좋아하기로 했지요.”
너무나도 솔직했다. 분명히 듣고 있는 세레나 자신도 리오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예에… 그랬군요.”
세레나는 감탄하듯 말하며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그 후로 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여관 주인이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군인들이 모두 없어진 탓에 잠잠해진 거리를 바라보며 여관의 주인은 하품을 길게 하였다. 솔직히 너무나도 지루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주인이 그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가 열려있던 여관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자 주인은 정신을 차리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아, 어서 오십시오 손님….”
방문객과 눈이 마주친 여관의 주인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문객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미청년이었으나 눈빛만은 싸늘하기 그지없어서였다.
“이곳에 붉은 머리 기사가 데리고 다니던 일행이 있나.”
말투도 역시 싸늘하였다. 주인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2층 10호실과 11호실에 계십니다만….”
주인의 대답을 들은 미청년은 옆에 놓여있는 의자에 약간 거만한 자세로 앉고 말했다.
“그럼 불러오도록. 덧붙여서 여관비는 내가 내지.”
누가 내든 내기만 한다면 주인에게 걱정은 없었다. 주인은 빠른 걸음으로 윗층에 올라갔다.
“… 들어오시지요 공주님.”
미청년은 밖에 서있는 자신의 일행을 불렀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곱게 기른 한 미인과 귀여운 얼굴의 소녀였다.
“오빠아!”
소녀는 여관 안에 뛰어 들어와 미청년의 목을 감쌌다. 청년은 그래도 표정을 일변화시키지 않고 그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미녀는 바이칼의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는 이곳에 없나 보지요, 바이칼 씨?”
미청년-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레나 공주님.”
잠시 후, 여섯 명의 리오 일행이 윗층에서 내려왔고 리카는 의자에 앉아있는 레나와 바이칼을 보고 기겁을 하며 계단을 헛디디고 말았다.
“으, 으아악! 레나 공주님!?”
놀란 것은 클루토도 마찬가지였다. 둘 이외엔 아무도 레나가 누군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리카… 클루토!”
레나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곧, 두 아이들은 레나에게 뛰어들어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살아나셨군요! 으아아앙!”
“다, 다행이에요 공주님!!”
거의 네 달에 가까운 헤어짐이었다. 수정으로 변해있던 레나에겐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지만 두 아이들에겐 엄청난 시간이었다.
“치잇… 이럴 때 꺽다린 어디 간 거야!”
리카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안타까운 듯 리오를 찾았다. 그 소리를 듣고서 크리스와 세레나의 안색이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나와라. 여기에 남아도 책임은 안 져.”
바이칼은 예전부터 같이 다니기로 한 소녀-베라를 안아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 이봐. 도대체 저 기분 나쁜 녀석은 뭐야?”
히렌은 바이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클루토에게 물었다. 그러자 클루토는 기겁을 하며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쉿! 저 바이칼이란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다구!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칼로 간단하게 해결한단 말이야!”
히렌은 그 말을 듣고 겁을 먹은 듯 자신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
“자 여러분, 어서 저분을 따라가 주세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답니다.”
레나는 리카의 손을 잡고서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크리스와 세레나는 처음에 그들을 약간 경계했으나 리카와 클루토가 믿고 따르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하였다.
“어, 밖이 이상하게 시끄럽네…?”
세레나의 말 그대로 여관의 밖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중엔 두려움이 섞인 말도 담겨 있었다.
일행은 밖으로 나서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직접 보기란 거의 힘든, 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는 드래곤 두 마리가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